아내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가정에 진심인 보바리와 그의 사랑을 맘껏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를 불행의 구렁텅이에 가두는 보바리부인이 이 책의 중심 인물이다.
이 책의 초중반을 읽으며 나는 보바리부인의 성격과 태도를 가엽게 여겼다. 옆에서 그녀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위로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녀 곁에는 누구나 부러워할 의사라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남편이 자신을 진심을 다해 사랑해주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의 사랑을 하찮게 여기며 스스로를 사랑받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으로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보바리부인은 보바리가 주는 사랑을 거부하며 2명의 남자들과 불륜을 저지르며 보바리와 함께할 땐 전혀 찾을 수 없는 행복을 가졌다. 난 보바리부인이 아니기에 내가 읽은대로 그녀의 슬픔을 평가한다. 또한 책의 내용은 책의 내용이니 온전히 보바리부인의 사회적으로 부정한 행동이라고 평가하는 불륜과 불륜 대상에 대해 느끼는 그녀의 감정을 받아들였다. 난 보바리부인이 불륜으로 보바리와 함께하는 삶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행복을 보이기에 그녀의 불륜을 찬성했다. 사람마다 슬픔을 회복하는 방법은 다르다. 불륜이 그녀만의 슬픔회피법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든 책을 읽으면 보바리부인이 불륜대상과 있을 땐 정말 행복해보인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책의 후반부 내가 보바리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가여움’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불륜대상들과 ‘사랑의 타이밍’이 맞지 않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기간동안 충분히 행복해보였다. 하지만 ‘사랑의 타이밍’이 어긋난 후 그녀는 이들과 있으면서도 그녀는 단 한 순간도 행복했던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미치기 시작했다. 돈에 미쳐 사치를 부리기 시작하며 돈 서류에 꼬여 엄청난 빚을 지기까지 하였다. 이 돈을 값기위해 절박해진 보바리부인은 자신을 외면하고 떠난 사람들에게도 연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기간들이 지속되며 보바리부인은 정신과 몸이 더더욱 쇠약해져 결국 자살을 택한다. 도대체 왜??? 그녀가 정의하는 ‘행복’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뿌리치며 스스로를 아픔에 몰아넣는지 모르겠었다. 자존감의 문제인가? 보바리의 사랑표현이 부족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모르겠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데에도 좋은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스스로 내가 정의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행복했던 순간 등을 떠올릴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