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페스트는 중세 유럽을 강타한 전염병으로 흔히 흑사병이라고도 불리며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감염병이다.  
페스트가 발생한 초기에는 그것이 감염병이라는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정한 후에도 초기 대처가 너무나 미흡하고 서툴렀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겪은 코로나19과 비슷하다고 느껴져서 공감이 갔다.
삶의 의미와 죽음에 대한 고찰,  그로 인한 삶의 무의미함, 인간의 본성이라는 요소가 흥미로웠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유명한 소설이지만, 시험 지문에서 밖에 접해보지 못했다.
자세한 줄거리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1970년대를 작품의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때의 시대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작가는 고통받는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안타깝지만 가난한 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안정된 삶을 살 순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허무했다. 

비행운 (김애란 소설집)

비행운은 책 표지에 이끌려 가져왔다. 
이런 내용일 줄 몰랐는데, 내가 느끼기에 책의 분위기가 상당히 암울했다. 
현실감을 넘어 그 이상 극적인 요소들이 많았고, 한 번에 읽기 버겁게 느껴져서 나눠 읽었다.
“다른 친구들은 무언가 됐거나 되고 있는 중인 것 같은데. 저 혼자만 이도 저도 아닌 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불안해져요. 아니, 어쩌면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요.” 라는 구절이 공감됐다. 불안함을 느낄 때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모습과 비슷했다. 

이방인

“이방인”이라는 책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나도 사람들 속에서 이방인 같다고 생각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소설 자체가 감정 묘사를 섬세하게 담아놔서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뫼르소의 내적 충돌과 심리 변화를 보면서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뫼르소의 의도와는 다르게 안 좋게 흘러가는 상황이 안타깝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이 책을 많이 추천해 줬다. 그만큼 이 책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것 같다. 시간이 되면 다시 읽어보고 싶다.


홍학의 자리 (정해연 장편소설)

홍학의 자리에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이 이야기는 시끌벅적한 웃음소리, 칠판에 쓰이는 분필소리, 수업시간에 일정히 들리는 선생님의 말소리로 생기넘치는 학교에서 일어난 사건에 의해 시작된다. 
여느 다를 거 없이 야근을 하던 중 교사 준후에게 한 통의 문자가 온다. 학생 다현이었다. 둘은 늦은 밤 한 교실에서 만났다. 이 밤 이후에 다신 준후는 다현을 만날 수가 없었다.  
다현의 실종, 그리고 인근 호수에서 시신 한 구가 나왔다는 뉴스가 펴졌다. 그 시신의 주인은 다현이었다. 이에 학교의 분위기도 함께 어수선해졌다. 
실종사건에서 살인사건으로 전환되어 형사와 함께 이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준후는 다현과의 사이가 밝혀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둘은 원조교제, 불륜의 사이이다. 사회적 체면을 고집스럽게 중요시하는 준후였기에 더욱이 그렇다.  
그래서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다현을 서슴없이 죽였다. 아, 본인이 직접 죽인 것이 아니다. 다현의 시신을 학교에서 빼내 인근 호수에 던졌다. 분명한 타살의 증거인 독특한 칼과 함께 말이다. 
같이 있던 교실에서 싸늘하게 죽은 다현을 보고 119에 전화하기보다 둘의 관계가 밝혀질까봐 숨기기 급했다. 그래서 내린 선택은 호수에 던지는 것이었다. 
자신과의 관계는 숨기되 그토록 원하고 사랑했던 다현의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 준후는 선택을 했다. 자신의 선택이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했고, 믿고 싶었다. 

경찰 강치수는 이제껏 범인을 검거하는데 자신의 감이 틀린 적이 없었다. 늘 그랬다. 이번 사건에서는 유독 준후가 눈에 들어온다.
다현의 담임이라 이 사건의 수사과정 담당교사는 준후였다. 그래서 경찰과의 대면은 필수적이었다.
무엇보다 다현이 실종된 날 마지막으로 간 곳이 학교였기에 살해된  날, 시간대에 있던 준후와 경비원이 주요 인물이었다. 수사 과정에 필요한 면담을 했다.
준후는 긴장되는 모습을 들키지 않을려고 노력한다. 노력한다고 될 일은 아니지만, 다현을 살해한 진범은 따로 있어서 그나마 당당해질 수 있었다.   
수사를 진행하면서 다현과의 연결고리가 될 만한 인물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다현은 혼자였다. 지독하게 외로운 아이였다. 
부모님 두 분 다 없다. 하나 남은 가족이라곤 할머니뿐이었는데 그마저도 돌아가셔서 없다.  
강치수는 수사에 사적인 감정을 섞어서는 안된다는 것쯤은 아는 계급이다. 하지만 다현을 수사할수록 외로운 아이였구나를 뼈저리게 느꼈다. 

수사가 박차를 가해 진행되어 사건의 실마리도 풀리기 시작했다. 이 사건의 끝에 지목된 이는 역시나 준후였다. 
자신이 죽인 것이 아니라고 진범은 따로 있다고 반박했다. 강치수는 다현의 최종 사인이 익사라고 했다. 
준후는 분명 교실에 있던 다현이 숨을 쉬지 않아 심페소생술을 했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목에 누군가 상처를 낸 자국이 있었다. 그래서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준후가 죽었다고 판단했을 때 다현은 죽지 않았던 것이다. 그가 호수에 내던지지 않고 119를 불렀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또한, 타살의 흔적이라 말하지만 죽기 위해  혼자서 시도해도 가능하다는 과학감식조사의 결과였다. 
PAPS 초등학생 5학년 이상이 받는 건강체력평가에서 1등급을 받고, 170이라는 키를 가진 남학생이라 가능하다고 답한다.
준후는 다현이 자살했다는 사실과 경찰이 다현과의 관계를 알았다는 사실에 그대로 굳었다. 그렇게나 숨기고 싶었고 다른 이가 어떻게 볼까라는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준후는 다현을 원했다. 원했지만 다현과의 미래를 그린 것은 아니다. 
다현은 달랐다. 그래서 준후의 아내에게 가 이혼을 요구했고, 준후와 함께 할 미래를 그렸다. 자신을 이해하는 건 준후가 전부라 생각했다.
어쩌면 다현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신과 같은 마음이 아니란 걸 그래서 함께 있어도 더욱 갈망했고, 외로웠는지 말이다. 
그 날도 다현은 준후와 함께 보내고 마지막의 기억조차도 준후로 새기고 싶다는 것도 자살을 계획할 때 염두해 둔 것이다.        
후반부 내용을 읽어도 책 제목이 왜 홍학의 자리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다현이 관심을 가진 동물이 홍학이었고, 언젠가 갈 수 있다면 가고 싶다던 네덜란드 아루바라는 섬에서 홍학을 보고 싶다는 말이 전부였다. 
내용이 끝에 다닿을 때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다현은 남학생이었고, 준후가 그토록 숨기고 싶어했던 이유는 자신이 양성애자라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네덜란드는 동성 결혼이 합법화된 나라이고 다현이 관심을 가진 홍학은 수컷과 수컷끼리 새끼를 키우는 동물이었다. 
이 내용을 읽고 너무 반전이라 당연히 다현이 여학생일 거라는 나의 편견이 부서졌다. 분명 앞 내용에서 묘사했던 다현의 생김새가 여성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면 남성이어도 말이 안 되는 건 없었고, 그 어디에도 책에 다현을 나타날 때 여학생이 아닌 학생으로 적혀 있었다. 
이를 통해 홍학, 즉 다현이 죽고 간 뒤 남은 자리에 무엇이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다현이 갈망했던 온전한 사랑,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 또다시 혼자가 될 거라는 불안함 등이 놓아져 있다. 
다 읽고 나선 허전함이 있었다. 믿고 의지할 사람,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말이다. 
동성애, 고아, 사기 가해자의 자식 이라는 사회적으로 취약하게 소외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사회 전반의 시사점을 던진다. 
나 역시 그렇다. 이 책을 읽고 안일했던 사회 상황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된 책이고, 다른 이들에게도 한 번씩 추천하고 싶다.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 (태 켈러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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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에서 태 켈러는,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이 단군 신화에서 곰이 ‘고난과 시련을 인내함’으로 요약되는 여성다움이라면, 호랑이는 ‘고생을 거부한 대가로 추방을 당한 여자’가 아닐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밝혔는데, 여기서 파생될 수 있는 이야기와 상상력, 그것들이 가진 함의가 이렇게나 많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감탄했다. 그리고 왜 나는 바로 근처에 있는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조차도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머쓱한 기분을 느끼며 반성하게 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대부분이 릴리의 시점에서 쓰였지만, 초반부터 중반까지 나는 릴리의 언니 ‘샘’이 되어 릴리와 할머니를 바라보았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내가 마법에 걸린 순간은, 릴리의 할머니가 병마와 싸우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것은 아마 나에게도 갓난아기 때부터 함께 살았던 할머니가 계시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최근 그런 할머니가 어떤 두려움에 젖어 목놓아 우시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날 이후 ‘할머니’라는 세 글자는 나의 눈물 버튼이 되었는데, 정말 떠올리기만 해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반응해대는 바람에 이 책의 마지막 책장을 덮기까지도 수없이 책 읽기를 멈추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일을 반복했다. 여하간 그때부터 나는 어느샌가 릴리가 되어 비슷한 두려움을 느끼면서, 호랑이와 그의 이야기들을 믿고 싶어졌다. 동시에 이 책을 읽는 내내 그간 내가 정말 두려움이 많고, 솔직하지 못했으며, 중요한 때 용기 내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니 사실은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철저히 외면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통해 결국에는 릴리와 할머니가 각자의 두려움을 극복해 내는 것을 보며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이상한 부러움과 샘솟는 열망을 느꼈다.

   줄거리를 생략한 대신에 나에게 인상 깊게 와닿은 몇 가지 메시지를 꼽아 보자면, 첫 번째로 ‘우리가 다들 하나 이상의 존재일 수 있다는 것.’ 내가 한창 비슷한 고민을 했을 때,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그때마다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라는 노래를 들으며 위로받았던 순간이 생각났다. 두 번째로 두려움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라는 사실. 어디에선가 용기를 내는 일은 두려움이 없어서 가능한 게 아니라, 두려워도 하는 것이라는 말을 보았다. 나는 이 말의 실체를 ‘조아여’였던 릴리가 사랑하는 할머니를 위해 한 행동들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어떤 두려움은 그에 맞설 용기를 준다. 세 번째로 ‘이 세상에는 좋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나쁜 이야기도 필요하다는 사실.’ 몇 년 전 참석한 영화 gv에서 한 배우가 궁극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인터뷰어의 물음에, ‘아름다운 것만 보려고 하지 않고 어두운 것도 함께 보는 사람이고 싶다’고 이야기한 것을 떠올렸다.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나는 이것을 릴리가 마침내 깨닫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전함으로써, 자신의 바람대로 할머니를 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할머니를 보면서 느끼는 두려움에 맞서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답을 찾은 것 같으면서도, 막상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또 금방 잊어버리거나 외면해 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왠지 이 또한 호랑이 여인처럼, 맹렬하면서 부드러운 릴리의 할머니처럼, ‘조아여’라 불린 릴리처럼, 나의 내면이 여러 가지로 어지럽게 얽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4차산업혁명 머니슈머의 시대가 왔다

24년 기준으로 현재 책을 보면 벌써 적용된 기술들이 있다. 아직 미적용된 기술도 있으나 매우 흥미롭고 주식투자를 한다면 유익할 것이다. 4차산업 혁명과 미래 기술에 대한 예측으로 향후 직종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께 적극 추천해드립니다.

만화의 이해

만화의 정의, 구성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만화에 대해 설명하는 책 답게 모든 설명이 만화 형식으로 되어있어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보기 전, 나는 만화를 높은 수준의 예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예술이 아니라고 할 순 없겠지만, 예술이란 건 오페라, 명화 같은 좀 더 고급스러운 분야가 아닌가 하는 편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만화는 무척 고위의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의존하는 만화의 진행 방식을 통해서 말이다. 만화를 읽을 때, 사과를 잡는 칸 다음에 던져지는 사과가 그려져있다면,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사과를 던졌구나. 하고 맥락을 읽는다. 그러나 사과를 들어올리고, 힘껏 내던지는 과정을 그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도 자연스레 ‘그럴 것이다’하고 맥락을 유추해 읽을 수 있는 그림은 만화가 유일하다. 또, 만화는 즉각적인 이미지인 시각적 요소(그림)과 읽어야 이해되는 이미지인 언어적 요소를 합친 유일한 예술작품이다. 글과 그림이 따로 존재할 때 표현할 수 없던 것을 만화는 이를 조화롭게 엮어내어 하나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러한 내용을 읽으며 평소 가볍게 생각했던 만화에 대한 시선을 재고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총 균 쇠 (인간 사회의 운명을 바꾼 힘)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총(무기), 균(질병), 쇠(금속) 이 어떻게 인간의 문명을 바꿨는지 설명하는 책이다.
그리고 대륙마다 인간의 발전속도가 다른데 이 책은 이를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된것이라고 보고있다.
이 책을 읽고 문명간의 불평등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