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1930년대에 지어졌다는게 믿기지않는다. 전체주의, 기술적 낙관주의, 개인성의 폐쇄. 이 모든 것이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30년대의 이데올로기에 맞추어 인간의 이성을 회의하는 태도로 집필되었다 하더라도, 작가가 표현한 이 세계는 놀랍도록 우리 사회와 같다.
작가는 이 세계가 “멋진 신세계”가 아니라는, 모순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개성과 개인성을 중요시하는 나로서도 이 세계가 멋진 신세계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태어날 때 부터 정해지는 계급, 쾌락과 성욕의 자유, 혹은 권장. 개인성이 몰살되어 전체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이 세계는. 평화이다.
세계안에 인물들은 자신들의 위치나 주체성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질서와 평화에 속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완전하다는 것이다. 안전하다는 것이다.
내가 지향하는 세계는 어떤가, 삶과 죽음을 통찰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현재를 생동하며 과거를 회상한다. 관계안에서 나를 느끼고 우리를 만난다. 주체성과 개인성으로 모더니즘의 색채를 지우는 세계.
불완전하며 불안정하다.
현시점의 도덕적인 관점들은 뒤로하고 신세계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내가 야만인이다.
야만인이자 필자의 가치관은 이곳에선 구시대적인 가치인것이다. 신세계에는 신세계의 가치가 적용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야만인으로 살 것이다. 존으로서 살 것이다. 슬픔을 계량화하고, 소마와 성욕으로 쾌락만을 추구하며, 내가 아닌 사회의 점이 되는 곳에서 안락함을 느낄수있다 하여도.
인간은 불안에서 거주한다. 배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불안과 함께 달리는 음악가이다.
“위험하게 살아가는 삶이라면 무엇인가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1930년대에 지어졌다는게 믿기지않는다. 전체주의, 기술적 낙관주의, 개인성의 폐쇄. 이 모든 것이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30년대의 이데올로기에 맞추어 인간의 이성을 회의하는 태도로 집필되었다 하더라도, 작가가 표현한 이 세계는 놀랍도록 우리 사회와 같다.
작가는 이 세계가 “멋진 신세계”가 아니라는, 모순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개성과 개인성을 중요시하는 나로서도 이 세계가 멋진 신세계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태어날 때 부터 정해지는 계급, 쾌락과 성욕의 자유, 혹은 권장. 개인성이 몰살되어 전체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이 세계는. 평화이다.
세계안에 인물들은 자신들의 위치나 주체성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질서와 평화에 속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완전하다는 것이다. 안전하다는 것이다.
내가 지향하는 세계는 어떤가, 삶과 죽음을 통찰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현재를 생동하며 과거를 회상한다. 관계안에서 나를 느끼고 우리를 만난다. 주체성과 개인성으로 모더니즘의 색채를 지우는 세계.
불완전하며 불안정하다.
현시점의 도덕적인 관점들은 뒤로하고 신세계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내가 야만인이다.
야만인이자 필자의 가치관은 이곳에선 구시대적인 가치인것이다. 신세계에는 신세계의 가치가 적용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야만인으로 살 것이다. 존으로서 살 것이다. 슬픔을 계량화하고, 소마와 성욕으로 쾌락만을 추구하며, 내가 아닌 사회의 점이 되는 곳에서 안락함을 느낄수있다 하여도.
인간은 불안에서 거주한다. 배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불안과 함께 달리는 음악가이다.
“위험하게 살아가는 삶이라면 무엇인가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