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소설)

|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
“나는 단편소설을 쓰는 것은 마치 길을 가다가 거리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잠깐 구경하는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그들 사이에 오가는 몇 마디의 말과 표정을 보고 많은 것을 짐작으로 메우는 일이다.” 
“그들의 전 생애와 성장 배경 같은 것은 알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작가의 말 중.
필자는 단편소설을 그닥 선호하진 않는다. 소설을 읽는 목적은 이야기에 편승하는 경험을 하기위함인데, 단편소설의 배는 자그마한 까닭이다.
김영하의 이 단편소설은 필자의 생각을 반전했다. 이유는 단편소설들의 ‘비어있음’에 주목하며 느끼는 것이기에.
“이미 타락해버린 누군가를, 그런 줄도 모른 채 너무도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비극인가. 희극인가.” -‘조’ 중
타락과 순수는 상대적이며, 지극히 개인적이다. 때문에 개인간에 비극과 희극이 동시에 일어난다. 분명한 것은 순수는 타락을 이기기 힘들다는 것. 그리고 누구나 타락이 내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득해지는 감각 속에서 내 영혼이 마치 잘 맞은 야구공처럼 펜스 너머 저 광대한 우주로, 하나의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암전.” – ‘마코토’ 중
필자는 과거와 많이 달라진듯 하다. 마코토에서의 쾌락, 사랑, 분노, 질투등의 감정은 젊음을 표방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이 상징을 떨쳐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불가항력인 것 같다. 젊음은 짧고 결국은 암전된다.
김영하에게 한번 더 놀랐다. 그의 서늘한 필체와 흡인력은 짧은 단편소설 속에서도 빛난다. 암전임에도.
다만, 과거와 같은 독특하고 다채로운 색채는 옅어진듯 하다.

멋진 신세계

|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1930년대에 지어졌다는게 믿기지않는다. 전체주의, 기술적 낙관주의, 개인성의 폐쇄. 이 모든 것이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30년대의 이데올로기에 맞추어 인간의 이성을 회의하는 태도로 집필되었다 하더라도, 작가가 표현한 이 세계는 놀랍도록 우리 사회와 같다. 
작가는 이 세계가 “멋진 신세계”가 아니라는, 모순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개성과 개인성을 중요시하는 나로서도 이 세계가 멋진 신세계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태어날 때 부터 정해지는 계급, 쾌락과 성욕의 자유, 혹은 권장. 개인성이 몰살되어 전체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이 세계는. 평화이다.
세계안에 인물들은 자신들의 위치나 주체성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질서와 평화에 속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완전하다는 것이다. 안전하다는 것이다.
내가 지향하는 세계는 어떤가, 삶과 죽음을 통찰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현재를 생동하며 과거를 회상한다. 관계안에서 나를 느끼고 우리를 만난다. 주체성과 개인성으로 모더니즘의 색채를 지우는 세계. 
불완전하며 불안정하다.
현시점의 도덕적인 관점들은 뒤로하고 신세계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내가 야만인이다.
야만인이자 필자의 가치관은 이곳에선 구시대적인 가치인것이다. 신세계에는 신세계의 가치가 적용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야만인으로 살 것이다. 존으로서 살 것이다. 슬픔을 계량화하고, 소마와 성욕으로 쾌락만을 추구하며, 내가 아닌 사회의 점이 되는 곳에서 안락함을 느낄수있다 하여도.
인간은 불안에서 거주한다. 배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불안과 함께 달리는 음악가이다.
“위험하게 살아가는 삶이라면 무엇인가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1930년대에 지어졌다는게 믿기지않는다. 전체주의, 기술적 낙관주의, 개인성의 폐쇄. 이 모든 것이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30년대의 이데올로기에 맞추어 인간의 이성을 회의하는 태도로 집필되었다 하더라도, 작가가 표현한 이 세계는 놀랍도록 우리 사회와 같다. 
작가는 이 세계가 “멋진 신세계”가 아니라는, 모순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개성과 개인성을 중요시하는 나로서도 이 세계가 멋진 신세계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태어날 때 부터 정해지는 계급, 쾌락과 성욕의 자유, 혹은 권장. 개인성이 몰살되어 전체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이 세계는. 평화이다.
세계안에 인물들은 자신들의 위치나 주체성에 대해서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질서와 평화에 속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완전하다는 것이다. 안전하다는 것이다.
내가 지향하는 세계는 어떤가, 삶과 죽음을 통찰하고 미래를 계획하고 현재를 생동하며 과거를 회상한다. 관계안에서 나를 느끼고 우리를 만난다. 주체성과 개인성으로 모더니즘의 색채를 지우는 세계. 
불완전하며 불안정하다.
현시점의 도덕적인 관점들은 뒤로하고 신세계의 관점으로만 본다면, 내가 야만인이다.
야만인이자 필자의 가치관은 이곳에선 구시대적인 가치인것이다. 신세계에는 신세계의 가치가 적용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나는 야만인으로 살 것이다. 존으로서 살 것이다. 슬픔을 계량화하고, 소마와 성욕으로 쾌락만을 추구하며, 내가 아닌 사회의 점이 되는 곳에서 안락함을 느낄수있다 하여도.
인간은 불안에서 거주한다. 배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불안과 함께 달리는 음악가이다.
“위험하게 살아가는 삶이라면 무엇인가 특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눈먼 자들의 도시(탄생 10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 (주제 사라마구 장편소설)

|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
“우리는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한 순간의 눈이 멀게된, 암흑보다 어두운 백색의 실명이 된 도시. 그 도시에 한 사람만이 눈이 멀지 않게된다.
눈먼자들의 도시는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 현대사회의 도시의 비판이다. 눈뜬 자들의 도시의 살고있는 우리는 사실 앞이보이지 않는 장님인 것이다.
물질주의의 사회. 타인을 볼 수 있는 두 눈을 가지고 있음에도. 보지않으려 하는 사회에 살고있다. 약자를 배척하고 배려를 실명하며, 소유에 자신의 모든것을 헌신한다. 시민으로서의 긍지를 잃어버린지 오래된 시민들이었다.
인간성을 잃어버린 사회에 한 사람만이 그 긍지를 이어가려한다. 기적같은 신의 선택일지라도, 그녀의 숭고함은 도시의 회복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세명의 여자가 빗물로 더러운 오물을 씻어내는 장면은. 도시답지않음을, 현대사회의 실명을 씻어내는 인간성의 회복의 상징이었다.
이 책에서 모든 등장인물들의 이름은 밝혀지지않는다. 의사, 의사의 아내, 선글라스를 낀 여자, 한쪽 눈에 안대를 쓴 노인으로 묘사된다. 
이름은 주체성의 가치이다. 이기심과 폭력만이 남아버린 이 도시에서 주체성을 발현시키기엔 한계가 있다. 사회의 불안정에서 개인의 자유와 주체성. 시민의 긍지가 솟아날 수 없다는 집단주의이다.
필자는 주체성과 개성을 중요시하지만, 집단의 구축이 우선시 되어야한다. 결국 개인은 사회내에서, 집단내에서, 환경내에서 자라날 수 밖에 없으니.
우리는 이름이 있지만 이름을 잃어버린 “실명”된 사회에.
눈이 있지만 시야를 잃어버린 “실명”된 사회에 살아가고있는 듯 하다.

부의 추월차선 (10주년 스페셜 에디션,부자들이 말해 주지 않는 진정한 부를 얻는 방법)

이 책은 일반인이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싶어하지만 아무나 부자가 될 수는 없다. 내 글을 본 당신 지금 당장 실천하고 행동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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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의 추월차선을 읽고나서.. 알게되거나 느끼게된 점 및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하나
부자가 되려면  3F를 만족해야한다…
가족 (관계)/건강/자유
자유=돈?
돈은 잘못 사용하게 되면 자유라는 것을 나에게 빼앗아 간다.
예를 들어 내가 20대 연봉이 3000만원 직장인이라고 가정을 하자
그런데 주제 넘게 포르쉐라는 차가 너무 갖고 싶어서 구매를 한다면,
이 차를 몰고다니는 1~2년은 마냥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할부로 샀기에 나는 이 차를 위해서 일을 시작해야한다.
즉 돈을 모을 수 없다. 난 이 차의 주인이지만 노예가 된 것이다.
내가 부자랑 자산가의 차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바로 이런거다.
실물 자산이 있지만 이런 대출 때문에 노예가 되는 것이 바로 자산가이고
실물 자산은 있지만 노예가 아닌 사람이 부자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이야기기도 하다.
그렇다면 노예가 안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노예가 안되는 방법은 주제에 맞게 감당이 가능한 돈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똑똑하게 돈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나에게 한층 더 자유에 가까워지게끔 도와준다.
감당이 가능한 돈과 똑똑하게 돈을 사용하는 것
감당이 가능하지 못한 돈을 쓰게된다면 빚이 빚을 불러 그 사람을 노예보다 더한 존재로 떨어지게 할 수 있다.
똑똑하게 돈을 사용하는 것 이는 아이러니하게 빚을 잘 내서 수익을 보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감가상각이 일어나는 자산을 사는 것이 아닌
내가 감당 가능한 빚을 통해 자산 중 상승하는 자산을 사는 것이다.
상승하는 자산은 내가 배우자가 없더라도 맞벌이의 체계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잘때도 돈이 일을 해주는 것
이는 자유로 가는데 훨씬 빠른 추월 차선을 타게된다.
돈은 버는데 그쳐서 안된다. 돈은 모으는데 그쳐서는 안된다.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불려야하는 것 이다. 기하급수적으로 자산이 늘어난다면 가난한 이도 자산가로 올라가고 자산가에서 부자가 될 수 있다.
나 역시 이를 믿기에 지금은 웅크리고 있다.
돈을 똑똑하게 이용할 계획을 다 세워뒀다.
돈을 똑똑하게 사용한다면 나에게 자유로운 인생을 금방 가져다 주게될 것이다.
그래서 돈을 어떻게 불릴껀데? -> 이것은 비밀이다. 내가 먼저 이 추월차선을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보여주어야만 내 주변 사람의 마음에 울림을 일으켜 긍정적인 변화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해서 내가 가장 먼저 성공할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조세희 소설집)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소설은 난장이 일가를 주인공으로 한다. 난장이 일가는 불합리한 세상에 저항하다가 결국 압력에 굴복하고 몰락한다. 여기서 난장이 일가는 전형적인 빈민층의 삶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난장이 일가의 가장인 김불이는 가난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해 왜소한데, 이는 사회적 약자의 지위를 극단적으로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도 나름대로 이상 세계를 꿈꾸던 캐릭터인데 결국 죽음을 통해 굴복하는 것을 보면 개인의 사상만으로는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일깨워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들도 각기 다른 행보를 보이지만 결국 좋지 못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을 통해 이 소설은 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설적으로 풍자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기억 전달자

학교에는 책이 없길래 집 근처 도서관에서 읽었다.
사실 이 책은 중학교 때 처음 읽은 책인데 영화도 봤었고 이후에도 종종 생각나서 꽤 여러 번 읽은 책이다.
소설이 진행되는 배경은 매우 엄격하게 통제된 공간이다.
그곳의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출근 퇴근도 딱 맞추며 잠자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심지어는 가족도 정해져 있으며 직업까지 정해진 대로 살아야 한다. 이를테면’임산부’라는 직업이 따로 있는 사회다.
이 곳이 이렇게 변해버린 이유는 역사적 아픔 때문이다. 그걸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늘 같음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날씨도, 옷차림과  머리 스타일도 변하지 않으며 이들은 색깔을 구분하지도 못한다. 감정도 없고, 음악과 춤도 없다.
그런 사회 속에서 주인공 조너스는 12살에 기억 전달자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다.
기억 전달자는 다른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알지 못하는 과거의 것들, 색깔, 감정, 소리들을 기억하고 다음 세대의 기억 전달자에게 전달해주는 직업이다.
남들이 모르는 부분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우나 이 직업의 괴로운 면은 알고 싶지 않은 것들도 전부 느끼고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작가가 여렸을 적 사망한 언니 때문에 아버지가 힘들어하자 ‘고통스러운 기억은 차라리 없애는 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영감을 받아 쓰게 된 책이라고 한다.
좀 웃긴 얘기지만 난 이 책을 읽는 내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다ㅋㅋ
망각이라는 게 나쁜 것인지 좋은 것인지, 필요한 것인지 아닌 지에 대한 고민을 충분하게 해볼 수 있는 책이다.

순정복서 (제2회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

이야기는 스포츠마케팅 전문업체 S&P 회의실에서 시작됩니다.

민세가 지난 달 예능 프로그램에서 식단관리를 철저히 하는 도시락을 공개한 후

태영은 대기업 편의점과접촉하여 도시락 사업을 제안합니다.

다행이 도시락 사업을 마지못해 찬성하는 태영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축구선수가 운동광고가 아닌 편의점 도시락 광고라 다소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여기 권투선수 권숙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계 상위 랭커와 맞 붙은 권숙은 1라운드 시작과 동시에 통쾌한 펀치를 날리며

상대를 KO로 눌렀습니다.

그러다 경기를 앞두고 투병중인 어머니가 사망하며 은퇴를 선언합니다.

유치원에서 이유리로 개명을 하고 보조교사로 일하는 권숙의 모습에서

달라진 것을 환경을 생각하게 합니다.

복귀를 하며 다시 링에 오르는 권숙의 이야기 여자 복서지만 그 속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꿋꿋히 가는 모습을

지금 초년생시절을 시작하는 분들도 배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린 왕자

어린 왕자’는 프랑스의 비행사이자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작품으로, 어린 왕자가 사막에 불시착하여 만난 여우와 함께 나눈 대화를 기록한 동화이다. 작가는 수많은 행성 중 지구에 살고 있는 평범한 소년 보아뱀에게서 받은 인상을 글로 표현했다. 여기서 등장하는 보아뱀은 코끼리를 삼킨 모습인데, 이것은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또한 장미꽃 역시 가시 때문에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됨을 상징한다. 여우는 길들여짐으로써 서로 간의 관계가 형성됨을 알려준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진다는 것은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고 정성을 쏟으며 마음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소행성 B612호다. 이곳에서는 바오밥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성장이라는 개념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어린이들은 이러한 내용보다는 순수한 동심이나 상상력에만 집중하지만, 어른들이 보기에도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동화책을 좋아했다. 특히나 어렸을 때 읽었던 ‘어린 왕자’는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명작이다.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보니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우선 첫 번째로 느낀 점은 문장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다웠다는 것이다. 마치 시처럼 아름다운 구절들이 많아서 읽는 내내 감탄했고, 나중에 꼭 필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는 다양한 비유법 덕분에 이해하기 쉬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라는 대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적절한 비유를 사용하여 전달했기 때문에 더욱 몰입하게 되고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세 번째로는 공감되는 장면이 많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라는 문구가 참 와닿았다.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점차 사회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아이같은 면이 남아있다. 그렇기에 이런 글귀가 가슴 깊이 와닿았던 것 같다. 네 번째로는 여운이 많이 남는다는 것이다. 결말부에 가서야 비로소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 예상이 되었고, 그제서야 감동이 밀려왔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좋은 작품이었고, 오랜만에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불편한 편의점 (김호연 장편소설, 40만부 기념 벚꽃 에디션)

이 책의 제목을 보고 편의점? 뭘까 싶어서 읽게 되었는데, 역설적 제목의 소설이었다. 불편하지만 편안한 편의점이고 힐링 장소인 편의점이다 요즘 시대가 경제가 매우 어렵다 어렵고 힘든 이 시기에 편의점 알바 독고도 노숙자 출신이고 단골손님들도 하나같이 취준생 생계형 알바생 박봉의 회사원 등 경제적으로 열악한 사람들이 편의점이란 곳에 모여있다 불편한 광경이다 하지만 편안함을 주는 안식처가 이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점이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아몬드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책에서 윤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라고 소개된다. 그리고 또다른 괴물은 강한척하느라 바쁜 곤이이다. 이 괴물들은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질지 몰라도 사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것이다. 어쩌면 윤재는 아직 철이 들지 못한 내 마음속 한구석에 그리고 곤이는 사랑받지 못하는 내 몸 속 어딘가에 있을지 모른다. 내가 과연 이런 상황에 처해져 있어도 자신있게 대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에 잠긴다. 나는 맞게 살아오는 걸까? 내 판단은 맞을까? 우리 사회는 올바른가? 이 책을 읽고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계속 던지게 된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너무 슬프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