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신청

조선왕조실록 독후감

1771135 송해정

독서를 하기 좋은 가을과 비슷한 날씨 최근 저희 소모임은 조선시대 역사에대해서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각자 조선시대 왕에 대해서 조사를 하기로 하였고 그러기에는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시대 역대 왕가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며, 조선왕조실록 책에는 왕들의 즉위 배경, 업적, 가족들에 대해 잘 다뤄져 있고 왕을 중심으로한 조선의 커다란 역사를 볼 수 있다.
내가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보기로 한 부분은 세종이다. 세종실록에서 중요한 점은 훈민정음 창제, 가계도, 후사문제 등 세가지가 존재한다.
첫째로, 훈민정음은 정식으로 반포될 때까지 실록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 실록은 왕의 세밀한 부분까지(이성계가 말에서 떨어진뒤 사관에게 그건 실록에 쓰지마라고 했는데 그말까지 실록에 기록되 있다.) 기록해 놓은 책이다. 이 곳에서 언급되어 있지 않다면 공식적인 활동이나 개인적인 활동에서 전혀 훈민정음 창제에 관해 비밀시 했다는 것이다. 또한 훈민정음 창제를 반대하는 세력이 많았기에 신하들의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세종은 간접적으로 신하들의 도움을 받았을 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것을 스스로 해야했을 것이다. 그 시기에 세종은 두창으로 인해 급히 세자에게 국정을 받기고 요양을 시작했고 갑자기 언어 관련 책을 대량으로 모으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증거가 된다. 이점으로 보아, 세종이 집현전 학사들을 시켜 한글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잘못 되었고, 나는 세종이 그 시대 언어계에 대해 얼마나 박식했는지 다시금 놀라웠다.
둘째로, 세종은 조선시대사상 가장 아들이 많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나는 그점에서 호기심이 들어 그의 가계도를 살펴보게되었다. 그의 정식부인은 모두 6명 성종이나 중종, 태종, 철종 등 많은 왕들에 비해 적은 숫자이다. 알고 보니 정비 소헌왕후는 아들8명, 신빈 김씨는 6명, 혜빈 3명 등 한 부인들에게서 왕자들을 많이 얻었다. 나는 그사실을 통해 세종은 다른 왕들보다 적은 숫자의 부인들을 아껴서 많은 왕자들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점으로 보아 세종은 정이 많은 왕인 것 같다. 하지만 후사문제는 정말 어지러웠을것이고 분명 실록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문제들이 존재했을것같다.
셋째로, 세종은 많은 아들을 낳았고, 그의 아들들은 그를 닮아 하나같이 똑똑했다. 세종은 본래 태종의 셋째 아들로 아버지인 태종이 세자를 위해 그의 공부 수준을 제한하고 교육하는데 제약을 두어 유년시절 많은 서러움을 느꼈었다. 그래서인지 세종은 세자를 포함한 모든 아들들에게 공평한 교육과 지위를 주었다. 아들들은 그 덕분에 훌륭한 자질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곳 어지러운 후사문제를 일으켰다. 이는 곳 세종의 실책이다. 그 실책으로 그의 장손인 단종은 죽음을 당하고 그의 둘째아들인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게 된다. 나는 이것을 통해 훌륭한 성군인 세종도 실책을 하게되며, 이를 경계해 앞으로 생활에 더 조심해야 겠다고 교훈을 얻었다. 또한 이번 우리 기행단의 주요 왕인 단종이 훌륭한 자질과 인덕을 가지고 있었어도 수많은 형제들과의 경쟁을 이기기에는 너무 어렸던점과 수양대군과 아버지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낄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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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독후감

1495093 임장백

이번 우리 소모임의 주제는 조선시대의 왕이다. 나는 국호를 조선으로 짓고,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정도전의 도움으로 조선의 기틀을 마련했으며 과거제를 강화하고 중앙집권적 국가를 만든 유일한 실수라면 세자 책봉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렀고 이방원의 난의 계기를 만든 태조와 그의 아들 태종에 대해서 조사해보았다.
태조시대를 거친 조선은 아직 안정화 되려면 갈길이 멀다. 1차 왕자의 난이 이복형제 사이의 싸움이었다면 지금은 동복형제 사이의 싸움이었고 그것은 결국 태조 이후에 잠시 잠깐 그저 시기만 메꿔주는 정종이 차지했다가 바로 태종 시대로 넘오오게 된다. 가족들끼리도 형제들끼리도 믿지 못하는 사이를 만들어 주는 권려, 왕이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자리였던가. 자꾸만 다시 되새기게 된다.
첫째 자리를 잡아가는 조선시대 태종 시대로 넘어온 조선은 안정을 찾는 듯이 보인다. 특히 태종 시대에 이르러서는 여러 가지 법들이 만들어 지고 있었던 법들이 바뀌게 되는데 양반이 노비를 천명 이상씩 소유하고 있던 시절, 무조건 어미의 신분을 쫓아 노비가 되어야만 했던 자식들은 노비종모법을 노비종부법으로 바꾼 태종의 법개혁으로 인해서 아버지의 신분을 따라 갈 수 잇게 되었다.
둘째 일본식민사관은 바꿔야 한다. 특히 중점적으로 보이는 것은 내가 알고 있던 역사가 제대로 된 역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 국사과목을 배웠꼬 분명 열심히 외웠던 4군6진 정책이 우리나라 역사가 아닌 일본의 학자들에 의해서 조작이 된 것이라는 글을 읽을 때 그것이 진정 사실이가 싶어서 다시 한번 집중을 하게 되었다. 분명 조선의 북방 강역에 대해 학교에서는 세종의 4군 6진 개척으로 압록강에서 두만강까지 확장되었다고 가르쳤는데 이책을 읽다보니 그것은 일본식민사학자들이 왜곡한 우리 역사를 지금껏 추종하고 있는 것이였다. 태종은 북방지역을 두고 명으로 사신을 보내어 자신들의 국경의 위치를 명확히 하고자 했고 결국 그때 당시 요동땅이 조선 강역임을 그들도 인정했다. 즉 그 때 당시 조선과 명나라는 철령과 공험진을 국경으로 인정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태종때 국경이 결정되어 있었다.
셋째 안정화 시킨 조선을 물려주고 싶었다. 태종은 조선을 세종에게 넘기기 전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서 정세를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일가친척들까지도 척결하면서까지 말이다. 비록 안타까운 죽음들도 존재했지만 그것이 세종이 조선을 치리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으로 태종은 자신이 임기를 마무리 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 태종, 왕자의 난으로 인해서 빼앗다시피 한 왕위였지만 그는 나름대로 훌륭한 업적을 이루고 왕위를 넘겨주었다. 이제 우리도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세종이 뒤를 잇게 된다.
태종의 업적을 생각하다보면 자신들의 형제를 제치고 왕이 되었던 그의 마음은 어땠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태종과 정몽주의 대화가 생각이 나기도 하였다. 자신의 혈족을 무력으로 돌려세우고 왕을 차지한 왕 그는 과연 성군 이였을까?

2018-2 상상독서 문학기행 선발 결과 안내

<2018-2 상상독서 문학기행 선발 결과 안내>

상상독서 문학기행 선발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 ‘기억해조’, ‘궁시렁궁시렁’,  ‘팀 장백쓰의 행복여행'(이상 3팀 선발)

위의 선발된 팀에게는 개인연락을 통해 추후 일정에 대한 안내가 갈 예정이며,

아쉽게 탈락한 학우들에게는 소정의 선물을 드릴 예정입니다.(전원)

선물은 학술정보관 2층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수령 가능합니다. (학생증 지참, 10월 22일 이후)

지원해주신 모든 팀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