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장편소설)

아가미로 숨 쉬는 찰나를 담은 듯한 글자. 점을 찍기 전인 행간 사이로 들숨과 날숨을 끼워 넣은 신이 청련한 그 날의 곁을 거닐던 할아버지와 강하에게 곤과 강렬한 인사를 건네는 시간을 마련했다.

일시적인 인사치레였다면 몸을 구석구석 살피지도, 어디서 온 누구인지를 궁금해하지도 않았겠지만 가진거라곤 남들과 다른 특수한 몸집 하나를 지닌 곤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분요할 노릇이었다. 그럴 팔자였는지 모르겠으나 이내촌 사람들은 물론이고 존재의 노출을 기피하는 정체성이 곧 그의 세상이었다. 어쩌면 현실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미지의 아이들을 떠올리게끔 만든 페이지가 아니었을까 괜스레 짐작한다.

“싦음이 증오를 가르키지 않는다는 건 차라리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었어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물 위의 뗏목 같아요. 그 불안정함과 막연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곤은 그들의 세상을 아우르기 위해 여기에 남아있는 자세를 취했지만 흙으로 돌아간 먼지가 흩뿌려졌으리라 생각을 품었는지 눈물 닦을 필요 없는 물 속으로 그렇게 몸을 안긴다.

양심 고백

김동식 소설집은 읽는 시간보다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다. 두 번째로 집은 책 마저 윤리, 사회부조리, 성찰, 풍자를 오가는 자유로운 영혼의 느낌을 준다. 상황에 따라, 입장에 따라, 관점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되는 통찰이 경이로울 지경이다.

재능을 교환해주는 가게

10년간 연마하면 누구나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 김남우는 본인의 재능이 소설가였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가게 안을 들어선다. 뚱한 표정을 지닌 채 가장 낮은 5등급의 재능 – 바로 잠자는 재능이다. 새로운 환경, 침대가 없는 곳, 어디서든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 재능을 맡기곤 기다린다. 4등급의 다트 잘하는 재능이 마음에 안들었고, 3등급의 정원수 손질 재능을 지나, 2등급 시계 수선 재능을 뿌리쳤다. 욕심에 이끌려 1등급 가게의 관리직으로 교환 당했다.

일상이었고 익숙했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재능을 누구나 한 개씩 지녔을 거다. 허우적 대는 공중의 손을 바라보면서도 이미 김남우의 손을 감싸는 피부를, 그 감촉을 느끼지 못했다. 내기 지닌 거에 집중을 해보라는 의미를, 작은 거를 들여다보는 안구를 선사한다. 지금 나에겐 탐구하고 생각하는 습관과 어울리게 꾸밀 줄 아는 패션센스와 강인한 체력을 만든 운동루틴 이렇게 3가지의 재능을 꼽았다. 모든 것은 내 안의 내제된 것들로 피어난다. 그게 출발점이자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거라는 점. 무엇보다 타인의 것을 동경하고 아무런 기준점 없이 좇아갈 때, 그 끝을 마주할 때는 내가 아닌 내가 서 있을테고 길을 잃을 것이다. 그걸 알기에 나만의 내공을 쌓고 현재 지닌 것에 감사하며 내 손에 무얼 담았는지, 담을 수 있는지 탐색하는 이 시간이 참 귀중하다. 그렇게 또 한 번 나 자신을 지키는 힘을 기를 수 있길 바란다.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의 독특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남는 풍부한 표현력과 어조가 인상 깊었다.

[한 달 후 일 년 후] 에 이어 첫 집필 [슬픔이여 안녕]을 집게 된 걸 보니 저자인 그녀와 조우했고 그에 따라 지조가 꺾인 사랑의 관념을 인식한 순간이었다. 이를테면, 아주아주 진하고 향기로운 사랑을 맡곤 튕기듯이 그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눈을 감아도 감미로웠으며 코 끗에 잔향이 어렴풋이 남아 있는 듯한 느낌은 젊음, 조잘거림, 낭만, 열정, 청춘의 일부를 마치 평생토록 흐려지지 않을 색감처럼.

그렇지만 이런 사랑에도 가족을 빌미로 ‘반대’라는 이유도 존재했다. 누군가의 딸로서, 아버지로서, 어머니로서. 이들은 제삼자가 아닌 존재의 출발점으로 인식되는 경계가 무너진 정서적 공명이다. 감정은 서로의 울림통처럼 얽혀서,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을 흐릿해지게 속삭인다.

생명과 죽음 사이의 사랑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체 뭐길래 울고 웃고 어수선한 감정을 느끼게 하냐며 되뇌인다. 본능과 계락, 운명 어딘가를 거느리는 게 인생이겠거니 하는 생각과 진취와 개척을 운운하며 쟁취하고야 말겠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어쩌면 이 순간만큼은 사강의 지성에 매료되어 삶에 있어 가장 민감했던 부분이 수면 중으로 솟아올랐다. 작품 속 세계관에 침투해 마치 나를 투사하는 듯한! 깊은 곳에 내재해 있던 사랑을 되찾은 듯한! 어딘가 모를 그 강렬함을 인식한 순간이었고 그리 썩 나쁘지 않은 기분도 들었다.

내가 아는 사랑은 혁혁하지 않을뿐더러 상대와 조율해 나가는 모습에 있어 굉장한 피로도를 느꼈다. 성향, 습성, 삶에 대한 태도 그 어느 것도 닮은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형태였다. 나는 박스에 들어가 몸을 구겨 넣곤 불편한 기색을 비치면서도 이 마저도 사랑이 될 수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세실과 시릴, 자석같이 착 달라붙는 뜨거운 영혼을 바라보곤 숨죽여 외쳤다. 사랑이란 건 이상해.

한 달 후, 일 년 후

대도시의 사랑 이야기. 누구나 들어봤을 법 한 전개로 삶의 일부, 어쩌면 전부를 바치게 되는 매혹적인 주제이다. 여러 선택지 중에 고르고 고른 또렷한 마음의 소리, 하지만 명제로 치부될 수는 없는게 사랑이라 말한다. 수많은 인연들 속에 피어난 사랑의 짧음과 덧없음에 대하여.

그 형태를 마주할 때의 용기, 단순함 그리고 환상. 어쩌면 비극인지 모를 사랑의 묘한 힘을 믿는 순간이었다. 우연과 필연 사이에는 개연의 축적이 존재한다. 마침표를 들고선 주변을 둘러보며 필사적으로 쉼표를 찾으려는 베르나르, 치명적인 소용돌이를 몰고 다니는 아우라의 대명석 베아트리스. 모순된 불씨와 순간의 불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언제나 흔들리고 또 다른 빛으로 위장된다.

“정말로 자기 자신을 바라볼 시간이 있는 사람은 결코, 아무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눈을 찾는다. 그것으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기 위해.”

사랑은 타인을 향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비추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었다. 평탄하고 순조롭고 따뜻한 사랑을 원하는지, 그저 열렬한 사랑을 원하는지 자문했다.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무삭제 완역본)

드디어 읽었다. 어찌나 대출자와 예약자로 에워싸던지 도서 주변으로 아우라가 느껴졌다.
나는 딱 세 가지 포인트만 소개할 예정이다.
1. “다른 사람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져라.” 모든 인간은 95%가 나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만큼 내 이야기를 상대에게 쏟아내고 자랑하고 싶을 때가 많다는 의미이다. 미소를 짓고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 상대가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하라는 건 최선을 다해 상대의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노력을 시도하라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집에 돌아가면서 떠오른다. 관심사를 주제로 원활하게 주고받았던 대화는 나와 결이 비슷하게 느껴졌고, 그와 만남을 위한 자리를 또 마련하고 싶을 정도였다.
2. “누구나 칭찬과 인정을 갈망한다. 그걸 받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하지 못한 칭찬이나 인정을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첨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알고 있는, 누가 봐도 보편적으로 해줄 법한 칭찬도 좋다. 외에 스며들어 향조차 맡지 못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언급해 준다면 뿌리지 않아도 은은하게 배어나는 매력이 될 거 같다. 나만의 시그니처를 파악하는 계기가 될 수도, 역량을 더 강화하기에도 적절해 보인다.
3. “용기를 줘라. 상대에게 무언가를 못 한다, 소질이 없다, 몽땅 틀렸다고 한다면 더 잘해야 할 이유를 모조리 파괴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나에게 재능이 없다고 한 거나 다름없겠다는 어조일 테니까. 약간의 격려는 의욕뿐만 아니라 동기부여와 자극을 불러일으켜 새벽까지 방에 불을 켜놓게 된다. 당신의 말 한마디로 영혼을 구하고 변화시키는 기적을 원한다면 !
인간관계가 막막한 이들, 본인의 에너지가 과도하게 내부로 쏠려 눈치 보게 되는 이들, 보다 더 안정적으로 세계관을 확장하고 싶은 이들에게 권한다.
그렇게 카네기는 자신이 두려워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하면서 성공 경험을 쌓아나가길 바랐다.

돈의 심리학 (당신은 왜 부자가 되지 못했는가(보너스 스토리 수록))

“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에는 가격이 있다. 집, 휴대전화, 에어컨, 힙한 바지, 하물며 고양이까지도. 언뜻 표면적으로 보기에 동일해 보여도 어떤 제품에는 손이 가기 마련이다.
이를 설득 당한 행동, 즉 선택이라 부른다. 사업, 투자, 성장을 생각할 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먼저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있고, 그걸 통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스토리는 다른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력한 힘을 경제에 미친다. 돈과 관련해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시간을 어떻게 보고, 나와 다른 게임을 하는 사람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질문하는 것이다. 10년을 내다볼 것인가? 30년의 가치를 기대할 것인가? 1년 안에 팔 계획인가?투자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부터 시작된다. 저자는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내가 사실이길 바라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라고 믿어 버린다.” 매력적인 허구라 치부한다. 어떤 예측을 하면서도 우리는 잠재적 결과가 ‘내가 옳은 것’과 ‘내가 아주아주 옳은 것’ 사이에 놓이길 바란다.

내가 깨달은 것은 부와 안정, 미래와 투자, 성공과 존경 이 키워드를 피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누구에게나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획득하고 싶을테다. 세상에 대한 관점이 불완전할 때 우리는 그 속을 스토리로 채우려 한다. 하지만 본질은 ‘충분’을 알고 방점을 찍어야 할 순간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판단력이고, 만족감이고,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점임을 느낄 때가 분명히 찾아올 것이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인간은 자기가 한 일 -결코 버릴 수 없는 것 -에 확실히 묶이고, 지키기로 한 것을 지키면서 자유로워진다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단어를 살아낸다고 수년째 주장해 오고 있다.

오늘 마음에 새긴 단어는 ‘앎’이다. 앎을 얻으려 쏟아부은 시간은 앎과 결코 동등한 라인에 설 수 없다. 조각낸 미세한 앎을 발견하고 앎의 전부인 마냥 춤을 춘다. ㅇ인지 인지 ··· 쓸데 없는 것은 많이도 알면서 정작 중요한 마음은 놓치고 있는걸까, 매일 보는 태양에 대해서 조차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래 너는 하나뿐인 인생으로 무얼 한 거지?” 이 행복이 행복인 줄도 모르고, 이 사랑이 사랑인 줄도 모르고, 이 평안이 평안인 줄도 모르고.

멋지고 근사한 일이 내게 찾아왔는데 너무도 몰랐다. 주어진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내가 찾던 것들이 주변에 있는 줄 몰랐다.

“지금은 알았니? 이제는 보이니?” 딱 하루 어깨를 돌렸더니, 이 한 끗 차이로 세상이 환했다. 얼마나 슬픈 세상에서 얼마나 기쁜 언어가 있는건데?

그 세계가 어떤 모형인까 하는 의문으로 가득찼다.


어쩌면 슬픈 세상은 사람들이 모두 같은 목적지로만 향해 걸어가고 있음을 암시하고, 여러 압력에도 불구하고 공유되는 따뜻한 언어를 바라본 작가의 시선이 뭍은 세계라며 어렴풋이 짐작한다. 한 줄로 그어진 라인과 걷는 모양새가 제각각인 문장들처럼 말이다. 지금은 이 스토리를 위해 글을 빼곡하게 채우기 급급하지만, 훗날 엮었던 자음과 모음을 분리해 도화지처럼 여백으로 남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이 덮는다.

부자는 왜 더 부자가 되는가

나는 몹시 궁금했다. 그리고 돈에 대해 배우고 싶었다. 주로 학교 시스템은 좋은 학점을 받고 취업 준비를 열심히 해서 기업에 입사 후 저축하고, 더 나아가 노후 대책이라는 분산 장기 투자를 제시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는 봉급 생활자로는 단언컨대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기하급수적으로 점점 빠르게 변하는 글로벌 시대에 접어들었고 전 세계가 돈을 찍어 내고 있으며, 명목 화폐의 가치는 점점 하락하고 있다. 그게 부유층과 빈곤층, 중산층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이유다.

세상은 사분면, E: 봉급생활자 / S: 자영업자, 소규모 사업가나 의사, 변호사, 부동산 중개업자 같은 전문직 종사자 / B: 직원 500명 이상을 고용한 대규모 사업가 / I: 적극적인 투자자로 분류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학교에 다니고 일자리를 구하라는 명목 아래의 삶에 길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는 사분면은 E 사분면뿐일 것이다. 현 교육의 시스템이 정신 / 신체 / 감정 / 영혼을 봉급 생활자로 걸어가게끔 설계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린 어디를 향해 가야 하는 것일까? 싶은 의문이 들 텐데 우선 진정한 금융 교육을 받아야 한다. 즉, 수입과 지출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닌 자산과 부채에 집중해야 한다. 풀어서 설명해 보면 (이 도서는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대학원생 버전이라 칭할 수 있는데, 금융 문해력을 키우는 것에 일조하는 복습 개념이 등장한다.) 가난한 아빠는 일자리를 구하라고 하지만 부자 아빠는 돈을 위해 일하지 말길 권유한다.

부자는 투자 소득과 수동적 소득을 위해 일한다. 예를 들어서 투자 소득은 부동산이 폭락할 때 매수한 후 가치가 상승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매도하는 경우다.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닌 저가에 매수하고 고가에 매도할 때마다 발생한다. 주식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반면 수동적 소득은 자산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의미하는데, 10만 달러에 임대 부동산을 구입하고 월 순수 임대 소득이 1,000달러인 경우 그 1,000달러가 수동적 소득이다. 이 부분이 발전된다면 극소수의 매우 부유한 사람들의 소득을 알 수 있다. 빈곤층과 중산층이 볼 수 없는 현금흐름, 부채와 세금의 파생상품이 “유령 소득”의 핵심이다. 물론 부채는 까다롭고 자칫하면 위험해지기 쉬우므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부채를 활용한 정교한 투자자는 자산가치의 상승을 불러일으키며, “좋은 부채란 다른 사람이 대신 갚아 주는 부채” 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강조한다. 또, I 사분면을 이용해 세상을 지배한다거나 황금을 가진 자들이 규칙을 만든다는 사실도 그 속에 스며있었다.

일자리를 로봇이 대체하는 현시점에서 기술의 가속화는 나를 불안으로 내몰았다. 그럼에도 경제적 안정이 아니라 돈의 주인이 되고 싶어서 훌륭한 스승을 찾고자 손을 뻗었고, 그 본질을 파헤치고자 여정을 떠나려 한다. 판매, 리더십, 거절에 대한 두려움 극복과 지연된 만족에 관해 탐구하고 평생 배움을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나는 오늘 행운을 읽고 현명을 얻었다. 비록 지금은 작을 테지만 굴리고 굴려서 내공을 쌓아 나아갈 거다.

탕비실 (이미예 소설)

탕비실을 주제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더니 처참하게 망했다. 날아드는 비난을 피해 서바이벌을 재창조 했는데, 등장인물은 이러하다.

  1. 정확한 니즈 파악으로 커피와 콜라를 얼린 ‘얼음’
  2. 자칭 환경 운동가: 20여 개의 텀블러 보유
  3. 주머니 속에 쑤셔 넣은 ‘커피믹스’
  4. 중얼 거리는 ‘혼잣말’
  5. 공용 냉장고에 꽉 채운 ‘케이크’
  6. 공용 전자레인지 코드 뽑고 충전한 무선 ‘헤드셋’
  7. 사용한 걸 버리지 않고 쌓아둔 ‘종이컵’

누가 가장 싫습니까?

룰은 간단하다. 하루에 허락된 탕비실 체류 시간은 100분이고, 목표는 술래를 찾아내는 것이다.

술래에 관한 흰트는 규칙을 위반하면 제공된다.

마치 언행을 분석하고 비교하고 판단하는 세상 속 작은 세상에 온 기분이다.

“누군가를 싫어하는 건 쉽지만 정말로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건 어렵다.” 저마다 기준과 잣대로 결론을 내린다.

같은 상황을 겪거나 관찰할 때 어디에 초점을 맞췄는지 제각각 다르다. 여러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술래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반전을 기대했다. 다소 얇은 서적에 긴장감과 몰입감 그리고 세세한 심리적 단서들을 충분히 녹여내기엔 어려워 보였다. 그래서 술래를 찾지 못했다. 적어도 내 눈엔 보이지 않았다. 허구의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고, 일상에 늘 함께했던 인물이라는 것을 상기 시켰다. 의문이 들었다. 부도덕한 행동을 보며 그들을 질책하려는 걸까? 주변인에게 피해주지 말고 올곧게 살아가라는 메시지가 담겼나? 자신의 대인관계를 돌아보고 자아성찰을 하라는 의도였을까?

3자의 입장에서 나와 너를 보게 되었다.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개인주의, 의심, 질투, 욕심, 불만, 이익 실현, 무모한, 암묵적 룰 파괴 등 단어들이 둥둥 떠다닌다. 사회가 원래 그런 것이라며 다독이는 마음과 한편으론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물으려 하지 않았다. 당사자의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시도할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그대의 결이 스친다는 상상만으로도 불쾌감 지수는 고점을 찍을테니까. 간단하면서 복잡한 질문과 모르는 듯 알 수도 있는 정답으로 둘러싸인 기분이다.

어떤 사람을 곁에 누구를 두고 싶은가? 내가 그리고 있는 상사나 동료의 모습은?

그럼 내 모습은?

싫고, 좋고, 그냥 그렇고.

밤의 공항에서

더 깊은 여행으로 이끈다. 저자의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통찰을 경험케 한다.
그런 뒤 행복, 저녁, 그릇, 세상, 여행, 어른, 열정, 후회, 걸음, 내일 ˴˴˴ 여러 단어를 조합하고 나열해서 인생의 빈칸을 채운다.
어딘가에 반드시 무언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오늘도 문을 열고 나가 모험을 하는 모습이 꼭 나 같다. 더욱 마음이 가고 애정이 쌓였다.
불특정 장소나 관광지가 아닌 여정의 서사를 알고 나니 작가의 그릇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을 담았고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름다움이 없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내 속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있고 행복이 있는지.”

“남한테 신경 쓰며 이것저것 맞춰 주다 보면 제 스타일만 망가집니다. 스텝이 엉키고 리듬이 흐트러져 버리죠.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 방식대로 하세요,”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그릇을 가지고 있다. 20대와 30대에 이 그릇을 최대한 넓히고 많이 담아 둬야 한다. 나이 들면 이 그릇에 담긴 걸 꺼내 먹으며 살아야 하니까.”

틈이 없는 톱니바퀴는 멈춰버리고 만다.”


“세상은 우리가 다가가지 않으면 진면목을 보여 주지 않는다. 저질러라. 그다음에 생각하라.”

“얘야, 여행은 우리가 원하는 것만 얻을 수는 없다는 걸 가르쳐 주지. 하지만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을 얻었을 때 그 기쁨이 얼마나 큰지도 가르쳐 준단다. 그러니 계속 걸어가렴.”

그 속에서 나도 마음에 간직하고 싶은 문장들도 생겨났다. 공책 한 장을 가득 채웠다.
인생의 진리와 정답을 탐색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세상에는 정말 뾰족한 해답을 가질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걸 체득했다.
옳은 길로만 걸어가고 싶은 시기였는데, 이 책은 내가 미궁 속에서 허우적댈 때 어느 길의 중간마다 띄엄띄엄 서있는 소나무 같았다.
조언이나 안내를 해준 건 아니다. 그저 쉼을 제공해주며 다른 형태도 존재한다고 내 어깨와 나란히 맞대고 있는 기분이었다.
뭐가 그리 조급하고 불안했는지 과거의 습관은 싹 잊고, 현재에 충실하도록 하루라는 카드를 선물 받았다. 더 가지고 싶지만 더 가질 수 없는 하루라는 카드.
이것만으로 닮고 싶은 마인드를 지녔음을 알 수 있었다.
순간마다 감사하기로 했다.

책을 덮고 나서도 여러 문장들을 더듬어 갔다.
나는 다른 얼굴을 갖게 됐고, 깊은 눈빛을 지니게 됐다. 계속 걸어가기에 그만하면 충분했다.
이런게 삶의 모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