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코리아 2026 (2026 대한민국 소비트렌드 전망)
바깥은 여름 (김애란 소설)
여름의 마지막을 위해 아껴뒀던 책을 마침내 읽었다. 이 책을 고등학교 2학년 때 좋아하는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추천받아서 읽은 이후로, 결말을 알면서도 여름철마다 괜히 꺼내 보게 되었다.
156p, <풍경의 쓸모>
“반면 차창 너머 여름은 느긋했다. 푸르고 풍요롭고 축축해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된 정보를 들여다 보고 있자니 손에 스마트폰이 아닌 스노볼을 쥔 기분이었다.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그런.”
여기에 실린 모든 이야기의 배경이 여름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름에만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느껴지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여름보다는 가을에 가까운 지금 내가 책 속의 인물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도 마치 스노볼을 보는 감각과 닮아있다. 내가 있는 쪽이 안인지 밖인지는 확실히 할 수 없고, 또 중요하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주는 경험은 정확히 이런 부분에서 특별하다. 만나본 적도 없는 누군가의 솔직한 이야기를 아주 가까운 곳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점. 내게는 특히 김애란 작가의 글이 그렇게 느껴진다.
266p,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한다는 건 자신의 삶을 걸고 죽음을 구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문장을 읽고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존재를 곧 죽을 것으로 정의하는 것은 그 사람과 그 사람을 구하려는 사람까지 둘 모두를 모욕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깥은 여름>의 인물들처럼 때때로는 삶에서 미련하다고 느낄 정도로 선한 사람을 마주하곤 한다. 그런 사람들이 나 다음에는 어디로 향할지에 대해서 궁금해하기도 했다. 내게 있어서는 이런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는 이유도 마찬가지인데 김애란 작가 또한 스스로가 이름 붙인 존재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바라보는 곳이 이따금 궁금하다고 말한다. 그 말 그대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각자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고 또 다른 시간을 향해서 나아간다.
원하던 정답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더는 그들의 이후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끝에 기다리고 있는 것이 희망찬 미래일지도, 상실의 늪일지라도 나아갈 사람들임에 분명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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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 (도원.군성, 손안의 클래식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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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와 의사들 (전쟁과 의료윤리, 일본의 의학자.의사의 ’15년 전쟁’ 가담과 책임)
크래시
21p
“본을 알던 우리는 모두 외과 수술로 몸을 절개하고 그 틈 사이로 보이는 장기를 끄집어내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자동차 충돌 사고라는 도착된 에로티시즘을 인정한다.”
<크래시>라는 소설은 교통사고에 성적인 욕망을 느끼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교통사고’라는 메인 테마를 가진 것 치고 소설은 그닥 박진감있는 진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느리고 선명한 말투로 모든 것을 묘사하는데 이 부분이 특히 읽기 괴롭게 느껴진다. 개그와 호러와 에로티시즘은 서로서로 가까이 맞닿아 있어서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섞이고 뒤바뀌기 마련이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너무 잔인해서 도발적이고 너무 적나라해서 오히려 우습다.
234p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점점 양식화되어서 우리가 유능한 외과 의사나 마술사, 아니면 코미디언 콤비가 된 것 같았다. 이제는 부상당한 희생자를 봐도 두렵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이른 오후까지 낀 안개로 사고를 당해 차 옆 풀밭에 앉아서 어이없어하거나 계기판에 찍힌 희생자를 봐도 본과 나는 직업적인 초연함을 느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 일에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
이 문장이 다가오기 전까지 나는 망할 책을 현대 사회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은유라느니 하는 그럴듯한 문장으로 포장했다고 생각했다. 문명의 이기는 분명히 우리에게 상처를 남기고 있구나. 그리고 우리는 그런 상처를 알면서도 그 발전이 주는 쾌락에 당연하듯 몸을 맡기고 있구나… 억지스럽긴 했지만 이 책은 마침내 나를 이해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의 성공적인 비유를 인정하는 것과 책 자체를 인정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다. 여전히 불쾌하고 어렵다는 기분을 떨쳐 낼 수가 없다. 우연히 내 눈 앞에 배고프다며 애처롭게 울고 있는 파쇄기가 나타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가미 (구병모 장편소설)
아가미로 숨 쉬는 찰나를 담은 듯한 글자. 점을 찍기 전인 행간 사이로 들숨과 날숨을 끼워 넣은 신이 청련한 그 날의 곁을 거닐던 할아버지와 강하에게 곤과 강렬한 인사를 건네는 시간을 마련했다.
일시적인 인사치레였다면 몸을 구석구석 살피지도, 어디서 온 누구인지를 궁금해하지도 않았겠지만 가진거라곤 남들과 다른 특수한 몸집 하나를 지닌 곤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분요할 노릇이었다. 그럴 팔자였는지 모르겠으나 이내촌 사람들은 물론이고 존재의 노출을 기피하는 정체성이 곧 그의 세상이었다. 어쩌면 현실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미지의 아이들을 떠올리게끔 만든 페이지가 아니었을까 괜스레 짐작한다.
“싦음이 증오를 가르키지 않는다는 건 차라리 혼돈에 가까운 막연함이었어요. 사람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매 순간 흔들리고 기울어지는 물 위의 뗏목 같아요. 그 불안정함과 막연함이야말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법 아닐까요.”
곤은 그들의 세상을 아우르기 위해 여기에 남아있는 자세를 취했지만 흙으로 돌아간 먼지가 흩뿌려졌으리라 생각을 품었는지 눈물 닦을 필요 없는 물 속으로 그렇게 몸을 안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