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양귀자 장편소설)
『모순』은 단순히 한 여성의 연애와 가족사를 따라가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선택의 딜레마와 감정의 아이러니가 깊이 깔려 있다. 사랑이냐 안정이냐, 감정이냐 현실이냐를 두고 끝없이 흔들리는 인물들을 통해 작가는 독자에게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을 조용히 던진다.
주인공 안진진은 어찌 보면 평범하고도 소박한 일상 속 인물이지만, 그 내면에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의 결들이 교차하고 있다. 그녀가 가족, 연인과 맺는 관계는 단선적이지 않고, 각 장면마다 감정의 충돌과 선택의 무게가 실려 있다. 특히 이모의 삶을 직접 살아보겠다는 그녀의 결정은 현실적으로는 어리석게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주체적인 의지로 읽힌다.
작가는 화려한 문장이나 과장된 사건보다 차분한 일상의 흐름을 통해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해내며, ‘모순’이라는 제목처럼, 이 작품은 이성과 감성,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본질을 담담하지만 날카롭게 짚어낸다.
흰 (한강 소설ㅣ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흰』 감상문
처음 이 책을 가볍게 읽었을 때는 각 이야기들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어떤 개연성을 가지는지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이고 다시 읽었고, 그럼에도 답을 찾기 어려워 결국 인터넷에서 책에 대한 쉬운 해설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정보를 찾아보면서 이 책이 공통적으로 상실, 기억하려는 마음, 애도라는 감정을 품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그제야 비로소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 속에 깊은 의미가 숨어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작가는 경험과 감정을 하나의 색채로 묶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그 방식이 무척 인상 깊었다. 특히 ‘흰색’이라는 색에 대한 접근이 흥미로웠다. 나는 그동안 흰색을 밝고 따뜻한 색으로만 인식해 왔지만, 책을 읽으며 흰색이 때로는 차갑고, 어쩌면 검은색을 닮은 감정을 내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슬픔, 그리움, 보고 싶음 등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고, 색채를 통해 감정과 정서를 드러내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신선했고 매우 매력적이었다.
2장은 1장의 연장선으로 죽은 언니의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라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그녀’에 대한 이야기였다. 1장과 2장의 분위기 변화에 따라 흰색의 이미지도 달라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1장은 전체적으로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를 풍긴다면, 2장은 상대적으로 밝고 희망찬 느낌을 준다. 특히 2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파도’였다. 겉으로 보이는 하얗고 높은 파도가 아닌, 그 아래 수천, 수만의 반짝임들이 있다는 표현은 큰 위로로 다가왔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받는 듯해 마음에 깊이 남았다.
1장과 2장은 다소 애매하고 모호한 느낌이 있었지만, 마지막 3장은 앞선 이야기들 속 혼란이 하나씩 풀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흰’이라는 색이 나와 죽은 언니를 이어주는 매개체처럼 느껴졌고, <언니>라는 단편에서는 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감정이 진하게 묻어났다. 마지막 <백지 위에 쓰는 몇 마디 말처럼>에서는, 1장에서 철문에 흰 페인트를 칠하던 장면처럼, 흰 눈이 다시 세상을 덮는 이미지가 희망적으로 다가왔다.
아래는, 『흰』을 읽으며 느꼈던 흰색의 대한 느낌과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담아 쓴 짧은 단편이다.
<흰 달>
그 곳에는 토끼가 산다고 했다. 절구에 무언가를 찧고 있다고 했다. 어릴 적엔 그게 떡이라 들었고, 조금 더 자라선, 그게 꼭 떡이 아닌, 끝없이 찧어도 모양이 잡히지 않는, 무언가.
누군가는 별똥별을 보며 빈다. 하지만 별은 너무 멀다. 달은, 비교적 가깝다. 그래서 우리는 달을 본다. 달을 향해 소원을 걸고, 달을 바라보며 그리운 이를 떠올린다.
이제 사람들은 진짜로 달에 간다. 희미한 중력을 딛고, 낯선 흙을 밟고, 다시 돌아오기 위해 흔적을 남긴다. 과학이라 부르지만, 그 안엔 여전히 막연한 바람이 있다.
달에는 무엇이 있을까. 토끼도 없고, 소원도 안 들리는데 우리는 왜 자꾸 그곳을 향해 고개를 드는 걸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일지도. 비워진 흰 그릇처럼. 그래서, 모두가 그 위에 자신의 바람을, 사랑을, 미래를 얹는다. 그런 흰 달.
<마틴 루터 킹, 오바마, 카카오, 흑미, 커피, 밤, 검은 머리카락>
모든 것이 서로를 끌어당긴다. 빛과 어둠은 끝없이 엉킨다.
그 사이, 경계는 사라진다.
서로가 서로를 품고, 결국 한 덩어리가 된다.
흰색은 밝지 않다.
검은색은 어둡지 않다.
그들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서로를 부정하지 않으며, 서로의 완전함이 된다.
검은 머리카락 속에 흰 빛이 있다.
흰 쌀 속에 검은 씨앗이 있다.
새벽에서, 검은 흙 속에서, 그들의 주장 속에서, 모두가 함께 숨 쉰다.
하얀 종이는 검은 먹을 기다리고, 검은 밤은 흰 아침을 기다린다.
그 경계에서, 그들은 서로를 놓지 않는다.
모든 것이 끝없이 서로를 향해 흐른다.
트렌드 코리아 2025 (2025 대한민국 소비트렌드 전망)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 (캐릭터부터 주제까지, 지브리로 배우는 마법 같은 이야기 쓰는 법)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은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기 위한 창작 방법을 쉽게 알려주는 책이다. 지브리의 작품을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스토리를 접근하고 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재미있는 일화들도 읽을 수 있어 흥미로웠고, 그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깊이 연구할 기회가 되었다.
자신의 작품을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과 유사하게 만들 수 있는 도움을 주는 책이 아니다. 스스로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친절히 알려주는 책이다. 나만의 스토리를 찾아가도록 길을 잡아주고 용기를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세계관을 구축하고, 인물을 설정하고, 주제 의식을 만들어가는 모든 단계를 지브리의 작품을 통해 설명한다. 책을 읽어 가면서 영화의 장면들이 연상되고, 마치 하나의 영상물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지브리 작품에 대한 지은이의 해석도 엿볼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지브리를 좋아한다면 친숙한 작품들을 분석해 가면서 창작의 원리와 스토리텔링 방식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은 스튜디오 지브리에 관심이 있고, 창작을 하는 입장이라면 꼭 한번 읽어봐야 한다. 창작의 과정이 어렵고 힘들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줄 것이다. 지브리의 철학을 배우는 과정에서 창작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건축가가 사는 집
『건축가가 사는 집』는 일본의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가 세계의 다양한 건축가의 주택을 탐방해 기록한 건축 에세이이다. 건축가들의 독창적인 철학을 담은 주택의 내부를 곳곳이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크고 멋진 주택뿐만 아니라, 작고 소박한 집들도 소개되어 있다. 아담한 공간 안에서도 건축가의 의도를 엿볼 수 있고, 삶이 그 공간 안에 자연스레 녹아든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건축에 대한 많은 지식 없이도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주택 외부, 내부의 사진이 많고 평면도도 복잡하지 않게 첨부되어 있어서 집의 구조, 생김새 등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무엇보다 건축물에 대한 기술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시선에서 집을 관찰한 내용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읽기 흥미로웠다. 그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도 세세히 전하기 때문이다. ‘주택’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기에 실제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의견 또한 궁금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어서 공간에 대한 이해가 더욱 잘 되었다. 어떻게 이 집에 견학을 오게 되었고, 주택에 사는 이들은 누구이고, 왜 이러한 집을 지었는지 천천히 읽다 보면, 그 주택에 내가 사는 상상을 하게 된다. 책은 읽은 후에는 나에게 맞는 완벽한 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평소에 집을 꾸미거나, 인테리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볍게 읽어보기 좋은 책이다. 다양하고 독특한 아이디어가 담긴 주택을 읽어보고, 건축가의 삶의 방식과 가치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창작자를 위한 지브리 스토리텔링 (캐릭터부터 주제까지, 지브리로 배우는 마법 같은 이야기 쓰는 법)
걱정 해방 (불안 과잉 시대, 마음의 면역력을 키우는 멘탈 수업)
요즘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감정은 ‘막연한 불안’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대학생의 일상 속에서 특별히 큰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나 자신은 늘 마음 한구석에 설명하기 어려운 답답함과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지금 이 선택이 맞는지에 대한 의심,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기는 사소한 오해나 눈치, 그리고 비교와 열등감이 마치 안개처럼 머릿속에 내려앉아 있다. 어느 순간부터 이런 감정들이 일상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저 ‘내가 예민해서 그런가’ 하고 넘기려 했지만, 더 이상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무게가 커졌을 때, 도서관에서 우연히 『걱정 해방』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불안 과잉 시대, 마음의 면역력을 키우는 멘탈 수업’이라는 부제는 지금 내 상태를 너무나도 정확하게 표현해주는 말 같았다. ‘마음에도 면역력이 필요하다’는 문장은 낯설지만 동시에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몸을 단련하듯이, 감정적인 스트레스나 걱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마음에도 회복탄력성을 길러야 한다는 메시지가 인상 깊었다. 저자인 폴커 부슈는 독일의 신경과학자이자 의사로, 전문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우리의 뇌와 불안 감정 사이의 관계를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이 책이 단순한 과학서처럼 딱딱하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고 사려 깊게 독자에게 말을 거는 느낌이라 금방 몰입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불안’이 단순히 나의 성격이나 감정적 약점 때문이 아니라, 인간 뇌의 구조와 진화의 산물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해 항상 위험 요소를 감지하려는 특성을 가지고 있고, 이는 원시 시대에는 분명 도움이 되었지만 지금의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과도한 걱정과 긴장 상태를 만들어내는 원인이 된다고 한다. 즉, 불안을 느끼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정상적인 반응’이라는 말에 안심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불안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책에서는 실질적인 방법들을 여러 가지 제시하는데, 그 중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걱정할 시간을 정해두라’는 조언이었다. 걱정을 그때그때 모두 떠올리고 그 안에 빠지는 대신, 하루 중 일정한 시간을 정해 그때만 걱정을 하도록 훈련하면, 오히려 머릿속이 훨씬 정리되고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처음에는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었지만, 실제로 시도해보니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막연하게 떠오르는 불안감이 줄어들고, 걱정이 ‘정돈된 정보’로 느껴지는 경험이 처음이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내용은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태도’가 오히려 불안을 키운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끊임없이 ‘더 나은 모습’, ‘부족함 없는 삶’을 요구받는다. SNS에 올라오는 반짝이는 일상들 속에서 나만 뒤처진 것 같은 느낌, 실패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은 매 순간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완벽주의가 우리 뇌를 더 취약하게 만들고,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게 하며, 결국 스스로를 옭아매는 원인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는 불확실함을 피하려고 애쓰지만, 그 불확실함을 오히려 ‘인생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음의 탄력성을 기르는 길이라는 저자의 조언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나 자신에게 얼마나 엄격했는지, 그리고 불안해하는 나를 얼마나 질책했는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종종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자신을 ‘문제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며 부끄러워했는데, 이 책은 그런 감정도 결국 인간적인 것이고, 그 자체로 충분히 이해받고 위로받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불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안에서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는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다만, 이제는 그 걱정이 내 삶을 무조건적으로 지배하도록 두지는 않을 것이다. 『걱정 해방』은 단순히 정보를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나에게 ‘다른 시선’을 열어준 책이었다. 감정은 없애야 할 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친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는 그 감정을 스스로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앞으로도 나는 많은 불안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졸업 후 진로, 취업, 인간관계, 더 나아가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까지,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들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는 이 책이 들려주던 조용한 위로를 떠올릴 것이다. 불안을 없애기보다는,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진짜 ‘마음의 면역력’이고,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삶의 태도라는 것을, 이 책이 가르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