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이 책은 내향인에 관한 책이지만, 또 모두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재밌었던 건 왜 이렇게 mbti가 유행이고, 인기가 식지 않는건지 이 책을 읽으면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인격문화에서 성격문화로 전환된 문화의 역사를 따라가는 게 흥미로웠다. 또한 주변에서 흔히 봤던 내향인과 외향인의 갈등을 책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어서 재밌었다. 더 나아가 그런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외향인과 내향인이 어떻게 소통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려준다. 점점 일과 삶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시대에, 나의 내향적 성격을 효과적으로 발휘 시킬 수 있는 방법도 제시한다. 내향적 개인이 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마음 (에디터스 컬렉션 9)
의타적 믿음
최정현
“누군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완전히 사랑할 수는 있다.” 현대에는 이런 말들이 영화에 쓰이고 수필집이 유행을 탄다. 과연 100년전 시대는 누군가의 마음과 감정이 중요했을까? 이 책은 당시 봉건적 질서, 관습이 당연했던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무언가를 믿는다면, 나라를 믿고, 종교를 믿고, 국왕을 믿고, 선배(선생님)를 믿고, 의타성에 갇힌 시대정신이 난무했다. 나 자신만을 믿으며 누군가에게 배반당하지 않으려 애썼던 선생님은 고결한 엘리트로 묘사된다. 하지만 나 자신을 믿던 선생님은 결국 죄의식에 갇히고 만다. 즉, 선생님의 배신 당한 마음이 아닌 배신한 마음에 더 큰 초점을 두는 장면을 통해 ‘죄의식’에 방점이 찍힌 점을 알 수 있다. 당시 일본의 급변하는 세계관 속에서 무기력했던 엘리트의식과 죄의식이 혼재된 채로 살아가는 지식인의 일상세계를 나타냈다고 본다. 엄격한 윤리의식, 에고이즘만을 이야기해야 했다면 마음이라는 책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등장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나’를 통해 선생님은 다음 세대가 살아가야할 방법을 이야기해주는 것이다. 나 자신 조차도 완전히 믿어서는 안되며, 우리 인간은 의타적인 존재라는 점을 인지하고 참회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누구를 믿었던 걸까?
K를 믿었다고 본다. K라는 인물은 결코 자신의 암울한 현실에 비관하여 죽는 인물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존귀한 인물로 K를 대한다. K 역시 선생님을 존귀하게 대했다. 어쩌면 K에 대한 믿음이 크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 의지할 사람은 몇 없었고 선생님과 K는 부모와 나라로부터 신경 쇠약만을 얻을 뿐이었다. 그들의 유대감은 점차 쌓여 서로 없으면 안되는 사이로까지 발전한다. ‘나’에게 동성에 대한 호기심과 마음이 후에는 이성에 대한 마음이 될 것이라는 요상한 선생님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의 마음은 누구에게 의존하는가에 따라 삶의 방향이 정해지고 그것이 이성인지, 동성인지, 국가인지, 종교인지는 각기 다르다. 이 점에서 선생님의 마음이 온전히 K에게 어느새 의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죄의식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일 죄의식이 없었다면 선생님에게 자신이 그토록 의지했던 K를 그릴 방도가 없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타성이라는 본성이 죄의식이란 감정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믿으며 살아야 할까?
노기대장, 천황의 죽음으로 메이지 시대가 끝났듯이, 선생님의 죽음으로 아내를 향한 고결한 사랑이 유지되고 친구를 향한 고결한 우정이 유지된 채 선생님의 믿음이 아름답게 마무리 된다. 만일 죽음, 희생 따위가 없었다면, 믿음의 의타성이란 마음, 즉 본성이 인간의 배반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으로만 서술되기 때문이다. 이는 작가가 예수의 죽음을 굉장히 모티브로 삼지 않았을까 싶다. 성경에서 예수가 죽지 않았다면? 말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존하고 싶은 마음, 배반하고 싶지도, 배반 당하고 싶지도 않은 마음으로 살아간다. 선생님 역시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던 마음을 더이상 비관하기보다는 죽음을 통해 끝냈다. 작가는 오랫동안 온갖 잔병과 신경 쇠약, 일본문화에 의해 자살이란 것이 하나의 자연스러운 죽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저 죽을 때가 된 것처럼 말이다. 35년을 참은 노기대장의 죽음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 역시 죽음이란 것을 언젠가는 맞이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믿음을 가지고 의타적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나쓰메 소세키는 이 책을 마음을 다스리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권한다고 한다.
소년이 온다 (한강 장편소설)
마음 (에디터스 컬렉션 9)
아버지의 병세 악화던, 선생님의 옛사람과 관련된 발언이던. 나에게는 그리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옛 시절에 있던 사람들이 다음 세대로 발을 딛지 못하는 어려움도 공감하기 어려웠다. 내게 유독 공감을 샀던 대목은 선생님의 예전 이야기. 소설을 읽으며 그에게 들러 쌓여 보이는 베일이 무엇인지가 궁금했었다. 그 이야기는 선생님의 말투와 편지 속 서두처럼 담담하게 전해지는 것 만큼의 보통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아마 그 속에 있는 ‘자살‘이라는 무겁고 어두운 키워드가 소설의 전반적인 내용을 담담하고 있는 마지막 파트를 두껍게 깔고 있어서 그런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죽음을 문 앞까지 두고 연명했다. 끝끝내 삶을 살며 자신이 살며 도움을 받았던, 도움을 줬던 사람들에게 정신이 들 때 고마움을 남겼다. 잘 키워온 자식들에게 보살핌을 받아가며 편안하게 예정 되어 있던 죽음을 언제라도 맞이 할 수 있는 상황에 있었다. 그런 것에 비해 선생님은 자신이 감사함을 느꼈던 그 누구에게도 웃는 얼굴로 마음을 전할 수 없었다. 그의 죽음은 그에게만 예견 되어 있던 것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선택 할 수 있었던 마지막이었다.
주인공은 그런 선생님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드렸을까.
자신이 존경하고 선망하던 누군가의 죽음이란 무척이나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워서 주인공은 기차에 몸을 싣고 선생님이 있는 곳으로 간다. 소설은 그렇게 끝나지만 주인공이 선생님의 사연을 모두 접한 뒤에는 어떤 마음였을지 궁금했다. 기차에 내리며 선생님의 생가에 방문하였을까 아니면 다시 간다고 한들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끝 없는 추궁과 눈물만 보일 사모님만 있는 생가를 뒤로 한 채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아버지를 보필하려 바로 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을까. 나는 전자라고 생각한다. 주인공과 선생님은 어느정도 닮아 있는 구석이 있었다. 형으로부터 느끼는 열등감, 죽음을 가까이 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있는 시간의 기회를 뒤로 한 채 편지 상으로는 이미 죽음을 확정하고 맞이한 선생님에게 가는 무모함. 선생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성의 감정으로도 자신을 낮게 보며 모순감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소설이라고 하여 단편적인 사건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나타내는 것은 이해하지만 꽤나 입체적인 선생님의 성격을 한 쪽으로 치우치게 한 것은 아닌지 고민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곧 인간이 대표하고 있는 ‘모순’이라는 성질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사람은 얼마나 모순적인가. 남을 욕할 처지도 아닌 것이 공인의 단편적인 실수를 보고 대중과 섞여 욕하고 그를 폄하하고 마음대로 용서하는 과정들이 나에게 있어선 극히 모순적이었고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하면서도 그렇지 못하는 같은 모순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본디 인간은 하나의 관점에서 출발하는 행동들을 일치하게 하지 못하고 다른 관점에서도 끊임없이 바라보고 사고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선생님은 죽은 k로부터 얻은 전리품인 자신의 아내와 살아옴과 동시에 그 사실을 끝까지 함구하였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가도 숨겼고 잘못된 행동임을 앎과 동시에 자신의 행동은 작은아버지에게 배신 당한 그 시점부터 모든 책임을 작은아버지에게 맡기며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함과 동시에 ‘여자‘라는 대표적인 인물인 지금의 아내만 신처럼 여기며 믿었다.
주인공은 이러한 선생님의 모순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고백을 감사히 생각 할 수 있을까. 선생님의 죽음은 그와 친해지는 마지막 단계가 되었으니 말이다.
헌책방 기담 수집가 (사연 있는 책을 찾아드립니다. 수수료는 당신 삶의 이야기!)
최초의 질문 (기술 선진국의 조건)
최초의 질문은 우리나라가 기술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현재 모방으로 빠르게 성진국에 올랐지만 더이상은 모방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화이트 스페이스라는 더이상 누군가 개척하지 않아 미지의 상태인 곳에 다다른 대한민국은 화이트 스페이스에 직접 나아가고 그곳에 미래를 그려야만 한다. 그런 상태에서 작가는 최초의 질문이 그곳을 헤쳐나갈 방법이라 제시하고 있다. 최초의 질문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일반적인 개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질문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질문은 누가 보기엔 터무니 없어 보이겠지만 지금까지 세상을 바꾼건 이런 터무니 없는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최초의 질문이 중요하다 하였으나 한국은 최초의 질문이 나오기에 매우 불리한 환경 속에 있다. 한국은 새로운 것을 개척하기보다는 단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하며 실패를 거듭하기엔 실패자로 낙인 찍히고 더이상의 도전할 기회마저 얻기 힘들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대한민국의 혁신을 주도할 자들이 절망하고 있다.
작가는 축적을 통해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제시하지 않으면 그것은 축적이 아니라 퇴적이 될 뿐이다. 시장 전체 포트폴리오가 바뀌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도 일본의 갈라파고스 증후군처럼 좁은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결국 작가가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 것은 최초의 질문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고 그것을 계속 도전하여 끊임없는 실패와 도전을 반복하면 그 경험이 축적될 것이고 이는 창조적 파괴를 이끌어 혁신을 주도한다는 것인데, 우리나라는 왜 이 과정으로 진행되기가 어려울까? 나는 이러한 문제의 가장 주된 문제는 정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전반적인 문제이기에 개인이 바꾸기보다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할 문제이다. 정부의 지원과 환경의 변화가 있어야 혁신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을 펼칠 수 있다. 정부는 연구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한다. 스케일업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한다면 기술혁신을 일어날 것이다. 정부의 노력과 더불어 기업들도 변화할 필요가 있다. 내부적으로 기업은 새로운 기업문화를 조성하여 혁신으로 나아가야 한다. 단순 매출 증가에만 만족해서는 안된다. 미래를 주도하고 먼저 선도하는 기업에 대한 갈망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기업의 리더는 황당한 질문을 하는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 그 질문으로부터 새로운 혁신을 이끌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뭐든지 빨리빨리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 지칭하듯 빨리빨리 민족이라는 별명도 있다. 빨리 일을 해결하는 것이 매우 좋을 수 있다. 하지만 혁신에서는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시련의 시간을 아까워 한다면 결코 기술혁신을 이끌 수 없을 것이다. 수많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여야 비로소 화이트 스페이스를 이끌 선진국으로 나아갈 수 있다. 마냥 기업이 성과가 나지 않는 것에 투자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정부의 역할은 더욱 강조된다. 정부는 그들이 인내 자본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다. ‘알려지지 않은 미래로 도전해 나가는 것이 더 가치 있다는 미래지향적 패러다임을 심어 준 것’이라는 내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책을 쭉 읽으며 많은 시행착오가 중요하고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나 자신도 사실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에 도전하라고 하면 많이 망설여진다. 과연 그것이 내 현재를 지키고 안위하는 것보다 나을까?라는 고민에 빠져있다. 나아가는 미래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는 미지수지만 그것이 더 가치있다는 미래지향적 패러다임은 기술혁신 외에도 삶 속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고방식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을 지녔을 때,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또한 나를 위해서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최초의 질문을 끊임없이 해야하며, 대한민국도 이런 환경이 잘 조성되어 화이트 스페이스를 가장 먼저 나아가 세계를 주도하는 미래를 그려보는 국가가 되길 바란다.
최초의 질문 (기술 선진국의 조건)
최초의 질문 (기술 선진국의 조건)
Chat gpt가 등장했다. 사람들이 걱정하던 인공지능의 시대의 도래가
바로 눈 앞으로 다가왔다. 우린 걱정한다. 대부분의 일을
Chat 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될 것이라고.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리 인간은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 어떤 고민을 해야하는가? 그 답에 조금이나마 해답을 줄 수 있는 책, [최초의 질문]은 완전히 새로운 세대에 마주하고, 이전에 없었을 직업을 갖게 될
우리 세대에게 나침반 역할을 해준다.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고, 더
나아가 미래를 예측하여 적절한 질문을, 도전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경영학도로 성장하기 위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화자는 책에서
최초의 질문을 강조한다. 최초의 질문이란 기존 분야에서 정석으로 받아들여지는 답변과 다른 규범을 제시하려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은
“정답”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반복적인
최초의
질문을
통하여
기술적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생각에
공감이
갔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정답을
찾아가는
사회이다. 산업화가
한창이었던
1960년대부터 우리는 다른 국가들의 기술을 따라가야 했었다. 빠르게 모방하는 것이 곧 생존은 길이므로 많은 지식을 빠르게 흡수하는 능력이 중요했다. 빠르게
흡수한
방대한
지식을
통해
타국가를
모방한
전략을
사용하여
값싼
제품을
만드는
것이
과거
우리나라의
경쟁력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시대가
바뀌었다. 우리나라는
예전의
가난하고
기술력
없는
나라가
아니다. 선도하고
있는
산업분야도
있고
나름의
기술력도
탄탄히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
정답을
찾으려고
애를
쓴다. 여전히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동안 암기 위주의 정답을 쓰는 교육을 받는 상황을 보면 씁쓸해진다..
우리나라도
기술적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밑바탕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앞서
언급했던
과거의
전략으로
인한
관습에
여전히
지배받고
있는
현실이
기술적
선진국으로
가는
길의
발목을
잡는다. 최초의
질문을
할
사회적
여건이
부족하다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현실적으로
최초의
질문을
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충분히
투자되어야
한다. 이러한
‘투자’를 우리나라는 ‘낭비’로 보는
경향이
짙다. 단시간에
성과가
나지
않으면
금방
포기하고
지원을
끊는다. 최초의
질문을
통해
축적된
실패와
자잘한
성공은
헛된
낭비로
치부될
수
없다. 그러한
시행착오들이
모여
혁신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Chat gpt로 도입의 포문을 열었다. 지금의 가장 블루 오션은 인공지능 분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서
앞다퉈
인공지능에
관련한
영상을
게시하고
관련
책을
출판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의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해를
넘어선
깊이
있는
연구와
도전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최초의
질문을
받아들일
수
있는
분위기와
시간이
수반된다면, 우리나라의
혁신도
멀지
않았다고
전망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나의
몫이다. 미래의
직원으로서
CEO로서, 오늘은 열망있는 경영학도로 이 책의 메시지를 접한 것을 잊지 않고 행동하고 고민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가길 다짐한다.
마음 (에디터스 컬렉션 9)
<나츠메 소세키, ‘마음’ 감상평>
시대를 초월한 인간 본성 해부
김민상
‘마음’은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본 국민 소설이며, ‘도련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소세키의 대표작이다. 세상에 나온 지 100년이 넘은 소설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마음’이 다루는 소재가 여전히 생명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인간의 본성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데 성공했고 이제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소세키의 ‘마음’에서 선생님은 ‘나’에게 말한다. “사람은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갑자기 악인으로 변하니까 무서운 거네.” 이 대사를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선생님의 관점과 소세키의 통찰을 잘 알 수 있다. 부모님의 유산 문제를 다루던 중, 언급된 내용으로 어떤 일이란 일반적으로 독자에게 금전적 문제, 즉 ‘돈’에 대한 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 대사는 이익 앞에서 나약한 인간의 마음으로 해석되기 쉽다. 그러나 이 대사에서 중요한 부분은 ‘어떤 일’이 아니라 ‘갑자기’이다. 사람은 갑자기 변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자기 자신도 놀라울 만큼 빠르게 변하는 사람의 마음을 소세키는 지적하고 있다. 작중 선생님은 k가 하숙집 아가씨에 대한 마음을 고백하자 갑자기 돌변한다. 가장 확실히 선생님의 돌변을 알 수 있는 장면은 선생님이 밤중 자살한 k를 처음 발견한 장면이다. 자살한 친구를 보고 선생님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k의 유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친구의 유서에 자신의 배신에 대한 언급이 담겼을지 두려워하고 하숙집 가족들에게 폭로될까 두려워한다. 동맥이 끊어져 길게 튄 핏자국은 유서를 확인한 다음에야 눈에 들어온다. ‘마음’을 끝까지 읽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명백히도 선생님은 인간성을 상실한 인물이 아니다. 선생님은 근원적으로 친구의 죽음에 대한 가책으로 죽음까지 이르게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갑자기 인간성을 상실하고 악인으로 돌변했다. 소세키가 ‘마음’을 통해 지적하고 싶던 인간 본성이란 이러한 것이다.
‘마음’에는 선생님의 입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여러 통찰을 그대로 전하고 있지만, 그중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문장이 하나 있다. “예전에 그 사람 앞에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 머리 위에 발을 올리게 하는 것이네.” 표면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문장은 자신의 죄(k를 기만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죄)에 대한 죄의식과 죄를 숨기고 있는 사람의 경계심, 그리고 언젠가 죄가 폭로되었을 때 받을 경멸에 대한 경계로 읽힌다. 그러나 인간 불신 혹은 인간 혐오(자기혐오를 포함한다.)에 가까운 선생님의 사상이 과거의 두 인물, 작은아버지와 k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생각할 때, 이 문장을 k와 선생님의 관계에 대입해서 읽으면 흥미롭다. 과거 k에 대한 선생님의 감정은 미묘하게 묘사된다. 경외심과 동정심을 동시에 갖고 하숙집에 들어가서는 열등감으로 해석될만한 장면도 여러 나온다. k와 선생님의 관계에서 무릎을 꿇은 기억이란 k에게 경외심을 품었던 마음이고 머리 위에 발을 올리는 것이란 열등감으로 충동질해 k를 죽음으로 이어지게 한 행동을 의미하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종장에 이르러 결과적으로 선생님과 k, 그리고 ‘나’는 공통된 속성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고향의 상실이다. 작은아버지와의 불화로 죽을 때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않은 선생님과 거짓말로 인해 두 가족에게 절연을 당한 k의 자리를 아버지의 임종을 내팽개치고 상경한 ‘나’가 계승하는 것이다. 이것은 작품의 시작부터 이어진 사제 관계의 완성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나’에 대한 부분으로 작품이 완결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한 가지 아쉬웠던 부분은 ‘마음’이 선생님의 편지에서 끝나버린 것이다. 이 작품은 명백히 1, 2장에서 흥미로운 인물인 선생님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3장에서 모든 복선을 회수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1, 2장에서 ‘나’와 ‘나의 가족’에 대한 서사는 단지 선생님 서사에 대한 부속적 부분으로 취급하기에는 아쉬울 정도로 잘 만들어졌기에, 선생님의 유서를 읽은 후 ‘나’에 대한 언급 없이 작품이 끝난 점에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