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

‘천 개의 파랑’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함께 천천히 달리는 방법에 대해 배운다. 천천히 달리는 법을 처음부터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리 어른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알기란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보경과 은혜, 연재의 세 명으로 이루어진 이 가족은 관계가 단절된 지 오래다. 각자 자신의 페이스대로 달리기에 급급한 것이다. 그들에게 여유를 쥐어준 것이 소방관과 투데이며 콜리와 지수이고, 가족들 서로이다. 인생은 혼자 달리며 살아갈 수는 없음을 ‘천 개의 파랑’을 읽는 내내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런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천천히 달리는 것이 꼭 하나의 인생이 될 터다.

사라진 후작

  표지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읽기 시작했다. 초반부에서 뭔가 에놀라 홈즈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놀라 홈즈는 이 책을 읽기 몇 년 전에 이미 시청한 영화였다. 물론 이 책에 대해 알지도 못 했다. 이 책 초반에 ‘에놀라 홈즈’가 주인공의 이름이란 게 나왔을 때, 이 책이 그 영화의 원작임을 알았다. 나름 영화 장면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재밌게 읽었다.
  에놀라 홈즈는 예전 셜록 홈즈 드라마에 등장한 셜록 홈즈의 여동생과는 정반대의 모습과 행동을 보여준다. 굉장히 인간미가 넘치면서도 현명하고 따스한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가족을 애정하는 모습이, 특히 엄마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에놀라는 굉장히 사랑스러운 아이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엄마가 자신의 곁을 떠나버리는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물론 에놀라는 성인이 아니었고 가정의 애정에 매달릴 수 있는 나이지만 독립심이 길러지지 않았다고 느껴졌다. 결국 엄마와 대면하지는 못하지만 엄마와 신문 광고를 통해 애너그램으로 대화하면서 에놀라의 성장하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굉장히 그 점이 흥미로웠다. 셜록 홈즈가 자신을 찾아내지 못하게, 마이크로프트 홈즈가 자신을 기숙사 학교에 보내지 못하도록 도망다니면서도 엄마를 쫓으며 턱스베리 경 사건을 홀로 해결한다. 엄마 없이 아무것도 못할 것처럼 생각하던 에놀라는 결국 모든 일을 혼자 해낸다. 정말 멋있는 아이이다.
  굉장히 빠른 시간 안에 완독할 정도로 재밌는 책이었다. 영화는 각색되어 튜크스베리 경이 나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원작을 읽으면서 튜크스베리가 어떻게 표현될지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원작에 등장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에놀라 홈즈를 봤거나 볼 계획이라면 한 번씩 읽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하얼빈 (김훈 장편소설)

 ‘하얼빈’을 읽기 전에 영화 ‘영웅’을 봤다. ‘하얼빈’과 ‘영웅’은 모두 안중근이 이토를 살해하고 체포되어 사형 당하는 역사적 흐름을 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두 작품을 보면 그려내는 안중근과 그 주변 인물들, 심지어는 이토 히로부미까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한 작품만 보아도 물론 재미있고 잘 만들어진 역사 재구성물이지만, 두 작품을 모두 보고 비교하면서 읽으니 더 흥미가 생겼다.
 하지만 작품을 넘어 인물의 일생에 대해 더 깊게 이해하고 싶다면 단연 ‘하얼빈’이 우위에 있다. ‘영웅’은 역사적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영화로 만든 작품이니 만큼 몇 차례의 각색이 걸쳐 있다. 그러나 ‘하얼빈’은 어느 정도의 각색과 작가의 상상이 들어가 있다고는 하나 조금 더 실제 역사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하얼빈 (김훈 장편소설)

  후기를 쓰기에 앞서, 이 책은 소설의 내용 부분 뿐만이 아니라 그 뒤에 나오는 작품의 후기와 작가의 말까지 반드시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는 (혹은 읽으려는) 99.9%의 한국인들이라면 제목만 봐도 이 책이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을 소재로 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역사적인 순간과 사건에만 집중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아는 거사(擧事) 부분을 소설의 정 가운데에 두고 그 앞에는 안중근 의사와 이토 모두 하얼빈에 도착하여 대면할 때 까지 각자의 여정을,  그 뒤에는 사살에 대한 일본과 조선의 반응, 안중근 의사의 심문과 재판 과정 등 이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책에는, 특히 1909년 10월 26일 이후 부분에서 천주교와 관련된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천주교를 믿지 않는 독자로서 이해하기 어려운(사실 전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의 후기와 작가의 말까지 전부 읽어보았을 때, 앞서 말했던 이 책의 이야기 구조와 작품 속 천주교와 관련된 부분들이 많이 나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후기에는, “여기서부터는 소설이 아니고 안중근의 거사 이후 그의 직계가족과 문중의 인물들이 겪어야 했던 박해와 시련과 굴욕, 유랑과 이상과 사별에 관한 이야기” 라고 적혀 있다. 후기는 안중근 의사의 이토 사살이 80년 동안 한국 천주교회에 의해 용납되지 않았다는 것, 안중근 의사의 자식들이 조선 총독부의 ‘박문사 화해극’에 동원되었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 속에서, 안중근은 이토를 죽인 이유를 알리고자 하지만 재판정과 일본 언론이 단순 무지에서 비롯된 일로 몰아가는 것은 물론이요 당시 한국 천주교회의 뮈텔 주교도 그의 행위를 죄악으로만 여기며 빌렘 신부의 면회 및 고해성사 요청을 거절했다. 이토를 죽임으로서 이토가 “더 이상 작동하는 것”을 멈출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이토를 지우고 세상을 이토로부터 온전히 풀어놓는 것”(본문 89p)으로 곧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토는 죽었지만 이토가 만든 세상은 계속 작동하고 있었으므로, “교회가 영적으로 하느님의 나라에 속한다 하더라도 교회는 이토가 만든 세상의 땅 위에 세워진 것”(본문 222p)에 의해 그의 뜻이 당시의 종교적인(영적인) 부분에도 쉽게 전달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토가 세운 세계에서,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이 전달되지 않았던 안타까운 과거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작가의 말에 따르면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도, 실탄 일곱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 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 라고 한다. 이러한 작가의 말은 상술한 후기와 함께 소설의 거사 전 부분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을 준다. 이 소설에서는 하얼빈으로 가는 안중근 의사의 여정 속에서, 이토 살해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안중근 의사의 마음과 생각을 보여주고 있으나, 그 묘사가 어떤 ‘대의’처럼 느껴지지 않게 서술하고 있다. 이것과 앞서 설명한 후기의 내용을 함께 보면, <하얼빈>은 이후 수난을 당하고,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이 전해지지 않는 결과를 낳을지라도, 이토의 사살을 위해 하얼빈으로 가던 젊은 안중근의 날것 그대로의 생각과 심정, 용기를 다루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얼빈 (김훈 장편소설)

 책 표지를 보고 첫 장을 넘겼을때, 쓰라린 일제의 폭거에 대한 아픔이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첫 장, 둘 쨋장 넘기다 보니 최대한 중립적으로 쓴 소설이라는 게 느껴졌다.
어찌 보면 이토도 안중근도 국가를 우선으로 해 누구보다 이기적으로 살지 않았는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토도 일본의 부흥을 위해서, 안중근은 대한제국의 부흥을 위해서 달렸을 뿐이다.
그 과정 속에 일어났던 살인은 사실 상대방의 관점으로 보았을땐 
서로 이해하지 못할 벽이지 않을까? 
우리 사회도 그런 환경 속에서 사는 게 아닐까 싶다.
누가 던진 돌에 맞아도 자신의 아픔과 상처에만 관심을 가질 뿐
던진 사람은 왜 던졌는지 어떻게 됐는지는 중요하지않다.
세상은 변하고 정보는 바다라 불릴 정도로 넘쳐난다. 
그런데 사람들의 시야는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
산업혁명과 기술의 폐해인가? 아니면 인권 의식의 발전이 일으킨 부작용인가?
둘다 일 수도 있다. 인간의 삶은 변화하면서 주식 차트 처럼 과거보다 훨씬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다.
부자와 거지 일 수도 있고, 슬픈 사람과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 속에서 하얼빈이라는 이 소설은 물론 안중근의 삶과 일본의 지배를 이겨내고자하는 
대한 제국의 항일 운동가들의 삶을 보여주긴 한다.
하지만, 세상에 나쁜놈은 없다. 그걸 알려주고자 하는 것 같다.
나쁜놈은 없지만 이기적인 놈은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런 이기적인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좁아진 시야와 급격한 변동 속에 
한 사람의 배려는 오히려 ‘호구’라며 이용하기 바쁘다. 우리 모두가 배려하고 기뻐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 졌으면 좋겠다. 너무 착한 호구를 욕하는 사회이기 보다. 이용자를 처벌하고 나쁘다는 걸 
당연히 인식하는 사회로 다시.. 돌아갔으면 좋겠다.
아니어도 좋다. 그것도 그 나름대로의 삶이니 그저 내 바램이다. 하얼빈은 오랜만에 내 생각을 꺠워준 것 같다.
김훈 작가에게 감사를 표한다.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장편소설)

재난 여행이라는 여행 상품, 자연재해일까, 인재일까. 남의 죽음이 관광의 가치가 있는 걸까. 만들어낸 죽음으로 돈을 번다면 떳떳하게 돈을 벌었다고 볼 수 있을까.
읽고 있으면 많은 생각이 드는 책이다. 사람들은 재난이 일어난 곳을 관광한다. 재난이 일어난 곳을 보면서 ‘저런 일이 있었지만 나는 살아있다.’라는 생각을 한다. 여행에서 항상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지만, 남의 불행을 구경거리로 삼는 건 올바른 일일까? 생각해 보면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인 폼페이도 이와 관련한 곳이다. 재해로 인해 사람들이 죽은 곳이지만 지금은 관광지가 되었다. 이런 곳이 있기 때문에 미래에는 이런 여행지가 많이 생길 거라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결국 더 많은 관광객을 만들기 위해 자연재해인 척 인재를 만들려고 한다. 스토리가 있으면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질 거라는 이유로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연기까지 하게 만들면서. 만들어낸 재해로 마을 사람들이 관광객을 더 받을 수 있다면 이로운 일일까? ‘살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책이었다. 미래엔 정말 이런 관광 문화가 생길까….

나인 (천선란 장편소설)

내가 사람이 아니라 식물이라면? 내 손에서 잎이 자란다면? 식물과 대화할 수 있다면?
주인공에 대한 설명은 위에 세 질문으로 완성되는 것 같다. 나도 내가 1n년을 살았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 엄청 충격일 것 같다. 나는 사실 다른 행성에서 온 새로운 종족이며 잎에서 태어난 생명체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든 당황하기 마련일 테니까. 본인도 납득하기 어려운 사실을 소설 속 친구들은 항상 믿어 준다. 친구라는 이유로. 이런 걸 보고 있으면 정말 소설은 소설인 것 같다. 물론 주인공도 설득하기 위해서 능력을 보여 주긴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믿을 수 있을까? 읽고 있다 보면 내가 식물과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무얼 물어볼까 생각이 든다. 아니면 잠자코 식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런 능력이 정말 범죄와 관련된 조사를 할 때 도움이 된다면 범죄자들은 이 능력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든 찾으려고 하겠지. 네이버 웹툰 ‘숲속의 담’이 떠오르는 책이었다.

삶을 변화시키는 질문의 기술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이 책은 새로운 직장에 주요 임원급으로 이직하면서 이전과 같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벤 나이트라는 인물이 CEO로부터
조셉이라는 코치를 소개받으면서 전개된다. 그 후, 벤 나이트는
조셉에게 질문들을 받으며 직장과 가정생활 등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이 책에서 내가 느낀 핵심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내 발언의 80%는 질문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한 가지 조건을 전제로 한다. 바로 이 대화는 심판자의
질문이 아니라 학습자의 질문이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심판자와 학습자의 질문에는 어떤 차이들이 있을까? 심판자의 질문의 특징적 예시에는뭐가 잘못됐지?’, ‘누구 탓이지?’,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내가 상처받을 수도 있겠지?’ 등등이 있었고, 학습자의 질문의 특징적 예시로는이 일에서 유익한 것은 뭘까?’, ‘내가 배울 점은 뭘까?’, ‘사실은 뭘까?’, ‘큰 그림은 뭘까?’ 등이 있었다. 내가 느끼기에 이 둘의 차이점은 적대자와 협력자의 차이인 것 같았다. 개인적인
사례로 이전에 학교에서 팀플 등의 일을 할 때에도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억지로 할 때보다 서로 협력하며 존중해주는 분위기에서 일을 진행할 때, 훨씬 능률이 오른다는 느낌을 받았고, 실제로 느끼는 피로도도 낮았다. 이러한 사례를 떠올리면서 어쩌면 대화에서도 이러한 기전이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는 자신이 스스로 심판자가 되려할 때
, 학습자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팁까지 전해준다. 이 과정은 총 4단계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바로인식이다. 혹시 심판자의 길로 들어선 건 아닐지 스스로 인식해보는 것이다.
번째는
호흡이다. 잠시
호흡의 여유를 갖고 한 걸음 물로서서 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지 점검하는 것이다
.
번째로
호기심이다. 나는
모든 정보를 확보했는가
?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등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 네 번째로선택이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학습자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어떠한 관계에서는 해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특히 이 책에서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선택할 수는 없다
해도 그렇게 일어난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라는 구절이 인상깊었다. 사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많은
것들이 결정된 채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 그렇기에 개인에게 더 큰 책임을 돌리는 이 문장은 어떤 이들에게는
잔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생각보다 세상은 더 냉철하고 잔인하지 않은가. 어짜피 내가 책임지고 살아가야 할 인생이라면 조금 더 유리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문장을 오히려 희망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일들에 그저 휘둘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식적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나는
이 책을 스스로 대화의 기술을 얻기 위해 자신을 바꿀
의지
있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 성격의 변화라는 것은 생각보다 쉽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의 저자도 책의 도입부에당신에게 일어난 일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 그에 따라 스스로 변화할 뜻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 나의 대답은”,
하지만 책을 읽은 후 나의 삶에 적용시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차근차근 그리고 끈임없이
전환의 질문을 하면서 나를 돌아보고
, 때로는 책에서의 팁들을 떠올리며 내가 심판자인지 학습자인지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

SAVE THE CAT!: 흥행하는 영화 시나리오의 8가지 법칙 (흥행하는 영화 시나리오의 8가지 법칙)

대학 입시 시절에 많이 추천 받았던 시나리오 작법서 중 하나. 당시에도 조금 보긴 했지만 2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다시 읽으니까 전공에서 나온 부분들이 언급되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영화 시나리오의 8가지 법칙을 자기 마음대로 이름 붙이긴 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본 영화들도 해당 기법이 사용되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시리즈로 나온 책 중 모든 영화 시나리오에 숨겨진 비밀도 있는데, 이건 영화를 가지고 설명을 하는 거다 보니까 영화 내용이 스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하고 읽으면 될 것 같다.

브로콜리 펀치 (이유리 소설집)

<식물과 인간이 대화를 하는 듯한>

2371108 지연재
 죽은 아버지의 유골함을 화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자라는 나무 한 그루를 아버지로 보는 것이 인상깊었다. 나무 한 그루를 아버지로 보고 서로 대화를 주고 받는 것이 흥미로웠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유골함에서 자란 나무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다.
 나무 한 그루가 마치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 이 소설의 장점이라고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