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과 도덕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글쓴이를 의심했다. 단순히 국민대 대학원생이 자신의 의견을 마구 써둔 책인 것 같았다. 
다소 화난 말투와 자신의 강한 의견을 내뱉고 주입 시키듯이 말한 내용들은 책에 대한 신뢰감을 많이 떨어트렸다. 
읽으면서도 고개가 갸웃거리는 듯한 내용도 실제로 많았다. 
하지만 그 안에 전달하고자 하는 의견과 주장들이 점차 이해 가기 시작되었다. 
어투는 강했지만, 그 안에 내용이 진실 되게 느껴지는 순간이 왔었다. 
디자인 전공을 하고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 미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되는데, 
자신의 디자인 가치관이나 얻는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야한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 디자인의 정의와 가치 등등 
당장은 필요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자신만의 디자인 색이 생기려면 꼭 해야 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사실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하더라고, 제품은 결국 쓰레기를 만든다’라는 문구다. 
제품 디자인을 진로로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환경을 생각하는 제품 및 친환경 디자인 등등의 방향을 생각해 보게 되는데, 이러나저러나 
결국 모든 제품은 쓰레기가 된다는 점에서 머리가 땡 하고 울렸다. 
단순히 디자인에서만 환경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생산 시스템 그 체계 자체와 전 세계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라는 점이 
이 책의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었는데, 나 또한 공감한다. 
디자인에 관련된 여러 전공서적을 많이 읽은 사람들에게 한 번쯤 추천한다.

디자인과 도덕

  디자인과 도덕을 읽으며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디자인과 도덕이라는 그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도덕에 대한 단어는 바로 ‘착한’이라는 단어이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착한 디자인’이라는 단어 자체에 매우 불만을 갖고 있는 지은이에 대해 나는 오히려 조금씩 짜증이 났던 것 같다. 나는 착한 디자인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디자이너들이 착한 디자인을 하기를 원하기도 했으며 이를 지향하기를 바랬다. 왜냐하면 지금 환경 오염은 너무 심하고 기후 위기는 이미 우리 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근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왜 지은이가 그렇게 말하는지 알게 되었다. 세상에 착한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만든 것들이 실상을 보게 되면 그 뒤에 또 다른 오염을 불러오고, 더 많은 자원을 낭비하는 경우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착한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겉보기만 그럴듯하게 하는 사례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 얘기를 하며 꺼낸 지은이의 세월호 얘기는 정말 인상 깊었다. 세상이 이렇게 발달했지만 2016년에 창창한 아이들이 그렇게 죽어갈 때 그렇게 발전한 제품과 기술이 이 아이들을 한 명도 살리지 못했던 그 사실과 오히려 잠수부들이 배를 꺼내려 쓴 도끼가 가장 큰 역할을 한 그 시대에 맞지 않는 모순적인 현실이 지은이에게 있어서 정말 충격적이고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나도 최근 들어 환경에 더욱 관심이 많아지고 더욱 심각성을 느끼고 있는데, 그 와중에 읽은 지은이의 이러한 의견과 시선은 나에게 있어 정말 인상 깊게 다가왔다. 그리고 책의 막바지로 가며 이 책의 핵심을 뚫는 문장을 읽게 되는데, ‘디자인으로 세상을 바꾸자고 주장하기보다는 시스템을 바꿀 생각을 해야 할 것이다’라는 문장이었다. 세상의 생산과 소비가 반복되며 쓰레기가 쌓기만 하는 이 최악의 시스템과 우리의 근본적인 인식이 변화해야 하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느낀 것은 지은이가 ‘착한 디자인’이라는 단어에 그렇게 불만을 가지며 글을 쓰는 것은 착한 디자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디자이너에게 세상의 문제를 바꿀 책임을 넘겨버리는 것만 같아서 그 말을 싫어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실제로 이미 그렇게 쓰시기도 했다.) 그래서 지은이는 디자이너만 생각하고 고민하는게 아니라 모두가 고민하고 함께 변화시키려 해야 한다며 말을 마무리 했다. 책을 마무리 지으며 나도 지은이의 생각과 나의 생각을 잘 맞출 수 있었고, 뭔가 지은이와 화해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디자인과 도덕을 함께 생각하며 우리가 결론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세상의 시스템을 점차 변화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18세기의 세책사 (소설 읽기의 시작과 유행)

18세기에 나타난 세책문화의 역할과 현대적 의의

18세기의 세책사를 읽고

 지난 학기에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책을 읽었다. 전기 소설의 대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마리앙투아네트는 신선하게도 혁명의 대상이 되는 왕과 왕비의 입장에서 혁명을 바라본다. 지루하지만 진지한 연구서보다는 사료에 섬세한 상상력을 더해 소설처럼 풀어쓴 전기 형식이었지만 혁명이 원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혁명에서 기득권 층과 비 기득권 층의 역할이 각각 무엇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18세기라는 시대의 특수성에 특히 눈길을 두게 되었다. 당시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이 이루어진 시기이지만 여전히 중세의 흔적들이 짙게 퍼져있었다. 그리고 당시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계몽주의의 흔적 속에선 당시에 반영된 중세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었다.

 나에겐 이 점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중세를 비합리와 야만이 지배하던 머나먼 과거이며 현대와 관계 없는 역사로 여겼었기 때문이다. 마리앙투아네트를 읽으며 중세가 현대 사회에 분명히 영향력을 행사하는 의미 깊은 시간대로 인식하게 되었다. 

 중세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현대 사회의 어떤 것이 계몽주의 이전의 것이고 어떤 것이 그 이후의 것인지 살펴보는 것을 즐겁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중세와 현대를 연결하는 18세기의 사회와 변화에 관심이 생기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관심 속에서 18세기의 세책사라는 제목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또한 평소 문헌정보관리에 대한 관심과 세책이라는 들어본적 없는 개념에 대한 호기심도 도서의 매력을 더해 주었다. 이렇게 독서클럽에서 18세기의 세책사를 읽기로 하였다. 

 마리앙투아네트를 읽으며 계몽주의 전과 후를 비교해볼 수 있었던 경험을 18세기의 세책사에도 적용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8세기라는 과도기 속에 세책은 어떤 수요에 응답하기 위해 등장하였는지 파악하고 어떤 환경 속에서 등장할 수 이었는지, 당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지 영향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세책이란 돈을 내고 일정 기간 책을 빌려보는 것을 말한다. 18세기에는 인쇄술의 발달로 책의 생산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대증에게 있어 다양한 서적을 구매하는 것은 여전히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세책업은 이러한 틈새 시장을 노려 등장하였다.

 세책점에서 인기 있는 장르는 흥미로운 통속 소설이었다. 오늘날 드라마와 웹소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낭만적인 로맨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영웅서사 등이 그러한 종류이다. 이러한 작품들을 소비하며 초기 세책업의 성장을 견인한 주요 고객층은 여성 독자들이었다. 현대의 드라마도 보통 여성들이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음을 생각해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이 흥미로운 스토리에 빠르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어온 셈이다.

 그러나 서사에 대한 욕망은 여성의 것만이 아닌 인간의 본성에 가깝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사람이 스토리텔링을 통해 세계를 인식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그렇게 파악한 원인과 결과를 한 덩어리로 인식한다. 또한 인간은 즐거움을 선하게 여기고 추구하는 특성이 있는데, 이 두가지 특성이 맞물려 서사 컨텐츠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소설의 대중화 이전에도 이야기꾼, 연극 등이 성행하였고 소설의 대중화 이후에도 영화, 게임과 같이 더욱 생생하게 이야기를 누릴 수 있는 미디어로 대중들의 관심이 옮겨 갔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수요는 시대와 지역, 성별을 뛰어넘어 존재해온 것이다.

 한편 18세기에는 인쇄술이 보급되며 책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적 환경이 갖춰졌다. 종이를 묶어 만든 책은 라이트 미디어로 과거의 헤비 미디어와 대조된다. 바위와 돌판, 양피지 같은 헤비미디어는 기록의 매체가 무겁고 대량생산이 힘들다. 따라서 많은 내용을 전달하려면 시와 같이 함축적인 글을 주로 작성하였다. 반면 종이로 대표되는 라이트 미디어는 가볍고, 저렴하게 더 많은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기 때문에 더 생생한 서사 체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세세하고 긴 내용도 담을 수 있었다. 

 또한 18세기부터 널리 퍼지기 시작한 계몽주의는 사람들의 관심을 기존의 신과 종교에서 세계와 사람으로 옮겨 놓았다. 로맨스와 영웅서사와 같은 인간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스토리텔링에 대한 근본적인 욕구,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라이트 미디어의 등장, 사회적 관심의 이동이 소설의 수요를 이루었다. 

 하지만 책은 여전히 대중에게 생소한 미디어였으며 여전히 비싸 접근성이 높지 않았다. 이 수요와 공급의 엇갈림을 조율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세책업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재밌는 책을 빌려주어 소설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세책점은 이 과정에서 독서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다. 이후 세책문화는 남성과 지식인들로 확대 되었고 학문적이고 전문적인 서적도 취급하게 되었다.


 세책점의 이러한 역할은 독서문화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18세기 이전의 문학은 시와 민요를 뜻했다. 그러나 소설이 대중화 되며 문학 갈래의 한 축을 차지하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가장 대중적인 갈래가 되었다. 

 또한 낭독 중심의 모여 읽기 문화에서 묵독 중심의 혼자 읽기로 전환되었다. 18세기 이전에는 책을 가진 누군가가 읽어주어야만 했지만 세책점에서는 개인적으로 빌려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독서가 개인적인 취미가 되었으며 독서 문화에 있어서는 개인주의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또한 한 권을 깊게 읽던 전과 달리 여러 권을 넓게 읽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 또한 한 사람이 접할 수 있는 책의 양이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기존의 깊게 읽기에서 넓게 읽기로의 전환을 일으켜는데, 학문 성취와 정신 수양을 위해 한 권을 공부하던 과거와 달리 정보와 통속을 위해 다양한 책을 흝어보는 문화를 만들었다. 오늘날에도 취미로 책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통속과 표면적인 정보를 목적으로 독서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책업의 사회적 역할은 축소되고 이전되어 쇠퇴하게 되었다. 세책점의 요금은 구매보다는 저렴했지만 여전히 중산층 아래로는 부담스러운 수준이었다. 그리고 신문이 이 간격을 매우는 대체제로 등장하였다. 신문은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흥미로운 가십거리들을 담고 있었다. 독자들은 신문을 통해 이야기에 대한 욕구를 채울 수 있었다. 또한 영화, 텔레비전의 등장은 서사의 시각적인 체험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영상매체는 한 차원 높은 서사 체험을 제공하였기 떄문에 소설을 뛰어넘는 수요를 창출하였다. 

 세책업의 내부적인 문제점도 있었다. 세책점은 이익을 늘리기 위해 자체적으로 책을 복사해 대여해주곤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원본과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여러 권을 빌려보도록 한 권의 소설을 여러 권으로 분권하는 과정에서 문학적 가치가 훼손되기도 하였다.  

 이에 더하여 미국에서는 계몽주의 정신에 힘입어 국가차원에서 공공 도서관을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서사를 즐길 수 있게 되고 국가 차원에서 양질의 서적들을 제공함으로 세책업의 유용성은 감소하며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세책업의 역할이 축소되는 과정 속에서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한 세책점들이 이 있었다. 그들의 경영전략이 오늘날에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점이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세책업의 역할 변화를 인식한 세책업자들은 영업 전략을 변경하였다.  부유한 이들은 자신의 교양을 과시하기 위해 세책점에 후원을 하기도 했다. 또한 세책점은 교양 있는 사람들의 사교 클럽이 되기도 하였다. 이를 간파한 세책업자들은 인테리어를 고급스러운 살롱으로 꾸미는 등 사교 문화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오늘날에는 온라인 서점의 등장으로 동네 서점들이 역할을 잃고 쇠퇴하고 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서점 고객들을 대상으로 백일장을 개최하고, 함께 낭독극의 시간을 갖거나 독서 모임을 개최는 등의 활동을 한다. 이는 책에 관심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로컬 커뮤니티의 역할을 수행하려는 것으로 바라볼 수 있다. 특히 사회의 신뢰가 약해져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커진 요즘, 비슷한 관심사로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을 덜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스피노자의 뇌 (기쁨, 슬픔, 느낌의 뇌과학)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스피노자의 뇌는 느낌과 정서라는 인간 경험의 근본적인 측면을 탐구하며, 과학적 통찰과 철학적 성찰을 조화롭게 엮어낸 작품이다. 이 책은 단순히 신경과학이나 심리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감정 체계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 인간 존재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특히, ‘느낌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며 그것이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탁월하게 풀어낸다.

 

책의 도입부에서 다마지오는 느낌과 정서를 쌍둥이에 비유하며, 정서가 먼저 태어나고 느낌이 뒤따라온다고 설명한다. 그는 느낌을 정서의 그림자로 묘사하며, 느낌이란 정서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을 의식으로 드러내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동안 느낌의 출처에 대해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를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으면서 깊이 고찰하게 되었다.

 

다마지오는 단순히 느낌과 정서의 작동 원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스피노자의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인간의 신체와 정신, 그리고 감정의 상호작용을 논의하며,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심도 있게 탐구한다. 그는 스피노자의 철학에서 영감을 받아, 우리의 느낌과 정서가 단순히 뇌의 반응이나 신체적 작용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삶과 의식의 핵심적인 부분임을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다마지오는 과학과 철학의 경계를 허물며, 독자들에게 인간의 감정 경험을 이해하는 새로운 통합적 관점을 제시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점은 다마지오의 통찰이 단순히 학문적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일상과 삶 전반을 관통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느낌이 단순한 신경 반응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하며,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과 삶의 질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논의는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단순한 생리적 현상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사피엔스 책이 유명한 책이기에 한 번쯤은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번 독서클럽 프로그램을 통해서 읽을 기회가 되었다. 책 제목만 보았을 때는 인간의 진화와 관련된 내용으로 가득 있을 줄 알았다. 책을 읽어보니 각 챕터마다 주 내용이 있지만 책을 읽어보니 내용이 계속해서 이어갔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솔직히 이해가 되진 않았다. 되게 철학적이고 심오한 내용으로 책이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고 완전한 이해를 하지 않은 채 은 이해를 하면서 일단 책을 완독하는 걸 목표로 하였다. 여러 번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충분히 작가의 의도를 완전히 이해하고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순 (양귀자 장편소설)

삶의 본질을 받아들이다 : 양귀자의 『모순』을 읽고
모순으로 가득한 삶을 우리는 살아간다. 인생을 탐구하겠노라 마음을 먹으면서도 결국에는 인생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고난에 굴복해버리고,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에게서 스스로 멀어지며, 우리를 괴롭게 하는 존재를 우리가 직접 거두어들인다. 삶은 결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복잡다단한 존재다. 어쩌면 인생은 정의하려 해서는 안 되는, 정의되어서도 안 되는 것일지 모른다. 
현대 사회를 돌아보면, 우리는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성공을 추구하면서도 행복을 잃어가는 삶, 더 많은 연결을 원하면서도 진정한 소통을 놓치는 아이러니. 양귀자의 작품은 이러한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자,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모순을 관조하고 수용하도록 이끈다. 작품 속 인물들은 인생의 복잡함 속에서 답을 찾으려 애쓰지만, 결국 답은 없다. 이는 곧 삶의 진리로 다가온다. 삶은 단순히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겪고,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할 여정이다.

삶의 모순을 해결하려 하지 마라. 그 모순은 우리의 인생을 우리의 인생으로 만들어주는 것이기에. 양귀자는 이를 통해 말하고 있다. “삶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그 모순이 바로 삶의 진정한 미학이다.” 우리는 모순 속에서 살아가며, 그 모순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간다.

결국, 삶의 모순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삶의 본질을 묻는 행위와 같다. 그것은 정의를 넘어선 존재의 형태이며, 이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진정한 깊이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모순』은 그런 깨달음을 주는 작품이다.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평소 읽던 소설이 아닌 시집을 고른 것은 우연에 가까웠다. 시를 읽는 것을 좋아하긴 하나 시집을 특별히 찾아보진 않고 인터넷을 돌아다니거나 지하철 스크린 도어에 붙어있는 짧은 구절을 읽고 지나가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시영 시인의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는 현대까지 이어져 온 ‘막지 못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전쟁과 폭력, 넓게 나아가보면 인간의 발전으로 일어난 자연의 파괴까지.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너무나도 쉽게 나타났다 흐려지고만 소실들에게 저마다의 이름을 붙여 거시적 시선에선 지워져 버린 죽음을 세밀한 시선에서 바라보았다.

시는 다른 어떤 형식보다도 사람에게 여운을 깊게 남긴다. 나는 그 이유가 짧은 문구로 이루어진 시가 페이지에 남기는 여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이나 에세이같이 길게 이어지는 글은 마지막 페이지가 아니라면 문장을 넘어가고, 페이지를 넘기면 다음 이야기가 있음을 직감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의 시는 한 페이지에서 온점을 찍고 여백을 만나 버리면 끝이 나기에, 독자는 여백을 지나가며 자신의 감정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시의 단어, 문장이 주려 했던 의미나 시인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속뜻을 짐작해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시영 시인이 ‘막지 못하는 죽음’들을 시로 써야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시의 여운으로 죽음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준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만약 바쁜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쳐버렸던 긴 시간 중 잃어버리거나 뒤돌아보지 않아 놓쳐버린 것들이 있던 사람들이 있다면 이 시에 실린 시 한 편을 읽어보길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문장이 끝났을 때, 여백의 여운을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이광웅 형을 군산 가까운 서해 낮은 산자락에 묻어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바다 갈매기들이 바다로 가지 않고 끼룩거리며 우리 뒤를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 「 모년 모월 모일 」 전문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라는 제목에 이끌려 독서클럽에 참여하게 되었다. 다정함이 우리의 생활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평소에 생각해왔기 때문에 부담 없이 즐기며 읽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많은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읽어 보니 책이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개되었다. 내가 생각하는 ‘다정함’ 만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고, 다른 관점에서의 ‘다정함’ 또한 소개하는 책이다. 정확히는 ‘친화력’ 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자기가축화의 개념을 길게 설명하고, 조금씩 내용을 쌓아서 결론을 낸 책이다. 이 책에서는 ‘다정함’ 또는 ‘친화력’ 을 세부적으로, 다른 관점으로 살펴 봤을 때 부정적 결과 또한 초래할 수 있다는 내용을 소개했는데, 나에게는 이 부분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의 분쟁에 관련한 설명을 서술한 것, 책의 후반부에 정치적 성향에 대한 설명을 서술한 것이 그 예시이다. 이번에 독서하며 이런 반전의 내용을 접해서 어떤 개념이 다양한 각도에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 한 의미로 설명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번 독서는 나에게 ‘다정함’ 에 대한 개념을 더 확장하고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래서 이번 독서클럽에 참여한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달과 6펜스

처음에 이 책을 읽었을때 되게 재미없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이 책을 극찬하는 이유가 너무 궁금했다. 대체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던 걸까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독서클럽을 통해 클럽원들과 교수님과 함께 4차시동안 이야기해보니까 어느 순간 내가 주인공이 궁금해지고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들게되었다. 제목에도 있는 ‘달’과 ‘6펜스’가 주는 의미를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떠올려봤을때 처음 완독을 하였을때의 나와 독서클럽이 끝난 나의 생각이 너무나 달라져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였다. 독서클럽용 책으로 이 책을 정말 강추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친화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인류의 진화에 관하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나은미 교수님께서 이 책을 선정하셔서 읽기 시작했던 책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책의 표지를 우선적으로 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 표지는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제목과 걸맞는 사람들이 서로 껴안고 사이좋게 붙어있는 그림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엔 인문학적 내용을 다루는 에세이 형식의 책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펴자마자 자연 과학 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과학이라는 분야 자체가 원리와 선뜻 대답하기는 어려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들을 해나가는 학문이기 때문에, 아무리 관심이 생기더라도 시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자연 과학 책은 평소에 흥미가 크지 않아 독서 시도를 많이 해보지 않았언터라 좀 어색하고 어려운 느낌이 컸다. 하지만, 독서 모임이라는 수행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좀 어렵더라도 참고 읽었다. 이 책은 내가 실제로 진행해보지 않으면 설명을 들어도 납득하기 어려운 실험, 관찰 등의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만의 나열을 하기보다는 현실적인 인간 본연의 모습을 통찰해서 인류 생존에 기여한 것은 ‘힘, 무력’ 과 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다정함’ 이라는 것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가 펼친 주장에는 모두 과학적 근거가 존재했기 때문에 책에 대한 신뢰도와 흥미도가 모두 높아져서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저자의 일관된 주장에서의 핵심내용은 ‘동물이든 사람이든 친화력이 생존에서의 정답이다.’ 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전제를 설정하고 마치 토론을 하듯 다양한 연구 결과들로 입증을 해 나간다. 
 우선 첫 번째로는 ‘다윈의 적자생존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말한다. 원래는 ‘가장 잘 적응한 개체가 살아남는다’ 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해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 라는 뉘앙스로 흔하게 오해를 받는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우월한 자’가 더 잘 생존하고, 생존해야 마땅한 것을 의미하며 그러한 존재가 가장 잘 적응한 개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주장하며, 이러한 오개념 때문에 인류의 역사에는 많은 잔인한 일들이 벌어져왔음에 비통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이를 어떻게 정의내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까? 바로 ‘강한 자가 아닌 다정한 자가 생존해 왔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여기에서 이제 ‘자기 가축화’라는 가설이 등장했는데, 이름이 매우 생소해서 이 단어가 인간에게 적용되었을 때 어떤 의미를 가질까라는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다. 동물로서는 진화론을 참고하여 늑대랑 비슷한 개의 조상종에서 인간에게 친화적인 개체가 가축화되어 지금의 개가 되었음을 말한다. 친화적인 개체의 특성으로는 개의 외모였고, 이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음을 얘기한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종 교배를 통해 이렇게 친근한 개의 종만이 살아남게 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인간의 경우, 호모사피엔스도 이런 ‘자기 가축화’ 과정을 통해 네안데르탈인과 같은 다른 인간 종류가 멸종할 때 살아남았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나는 이러한 것을 읽고 ‘자기 가축화’가 인류의 생존에 기여했던 특성을 설명하는 이론이기에 인간의 생존 핵심이자 매우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가 설명된 이후 작가는 바로 ‘자기 가축화’의 양면성에 대해 얘기한다. 결국 ‘자기 가축화’에 인류에게 이렇게 이로운 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면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무엇일지 궁금해하며, 추측도 해보았다. 인간이 자기 가축화를 통해 타인에게 너무 맞추다보면 본인의 색깔과 특성이 없어지기 때문에 자립하기 어려워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작가는 이것이 내집단을 소중해하는 만큼 외집단에 대해서는 정도를 따지지 못할 정도의 잔인함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말했다. 특히 우리와 다른 ‘종’일 경우에 말이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대립하는 집단이나 전쟁이 발생했을 때 상대국에 대해서 평범한 사람들이 펼치는 행동은 별 죄의식 없이 사람을 죽이는 등의 행동 기제가 나타난다는 것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때, 중요한 심리적 기제가 바로 ‘비 인간화’이다. 인간이 어떤 집단이나 사람을 인간 이하의 ‘비 인간화’를 하게 되면 한없이 잔인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존재들을 열등하게 보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 가축화’로 인해 발생하는 양면적인 면인 ‘비인간화’와 같은 심리적 기제를 극복하자는 것이 이 책의 취지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정하게 타집단을 수용하면 해결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에도 물론 과학적인 근거를 대준다. 바로 다정함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보노보’라는 유인원에 대한 사례를 알려준다. 암컷 보노보는 아주 다정하고 친절한 수컷 보노보에게 큰 애정을 보이며, 그러한 특성을 가진 수컷과만 새끼를 가지고자 한다는 사례이다. 결국 이 사례에서도 다정한, 친근한 개체가 생존에 성공한 것이다. 이미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도 발현된 결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짐승돌’처럼 남성성을 보이고, 힘이 강한 남성이 인기가 여전히 있기는 하지만, 최근에 부쩍 다정한 남성들에 대한 인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요즘 다정한 사람이 귀하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듣는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실제로 많이 각박해졌고 사람들은 본인만을 챙기기도 버거워한다. 하지만, 이 책 덕분에 더 다정하게 살아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의 독자들이 모두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한 명씩 더 다정해져서, 다정한 기운을 사람들에게도 퍼뜨리면 우리 사회도 또 금방 다정한 분위기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았다. 자연 과학 책을 읽고 이렇게 깊게 고민해보고 생각해본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욱 책을 읽고 난 후의 뿌듯함이 크게 느껴졌던 것 같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