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팔리는 것들의 비밀 (새로운 소비 권력의 취향과 열광을 읽다)

이 책은 ‘MZ’세대라고 불리는 계층의 소비에 대한 기본서 같은 책이다. 무거운 이론보다는 여러 사례들을 많이 나열하며 ‘MZ’세대의 소비에 대해 접근한다. 
책에 나오는 사례들을 보며 공감이 많이 가는 부분도, 전혀 이해를 못하는 부분도 있었다. 사실 사람의 취향은 세대가 아닌 개개인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MZ’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와 비슷한 나이대와 살아가다 보니 겹치는 것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들은 생각은 기업 입장에서 마케팅이 과거 영업의 하위개념에 지나지 않았다면 현재는 홍보/마케팅이라는 독립적인 분야로 성장한 만큼 마케팅의 중요성은 점점 커질 것이며 기업의 미래 가치 부분에서 마케팅이 차지하는 부분이 상당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봤다. 그리고 그 마케팅을 좌지우지할 대상이 바로 ‘MZ’일 것 같다.

책을 통해 MZ세대는 윗 세대보다 자유로운 삶을 추구, 선호하며 윗 세대가 한 직장에서 오래 있고 회사를 위해 일하며 높은 직급으로 올라가는 것을 중시했다면, MZ세대는 위라벨을 중시하며 개인의 사생활을 회사보다 우위로 두고, 일에 대한 인정과 그에 따른 이직이 자유롭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정리해봤다.
가장 인상 깊게 본 부분은 2장이었다. 2장에는 미닝 아웃(소비자 운동의 일종으로서, 정치적ㆍ사회적 신념과 같은 자기만의 의미를 소비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함.)이라는 용어가 나오게 되는데 이 부분을 가장 공감을 하지 못했기에 여러 번 읽고 가장 기억에 남았다.

‘MZ’세대가 자신의 사회적 신념을 굳이 기업을 상대로 표출하고 그에 동조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이성’이 아닌 ‘감정’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불매운동 등이 괜히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고 느끼며, 좀 더 이성적인 사고가 바탕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세대가 좀 더 사회에서 영향력 있고 구매력을 가지게 되면 결국 기업은 이리저리 끌려다닐 것이고 그것이 옳은 불매라면 마땅히 박수보내고 동참할 의사가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오히려 기업을 흔들어버리는 나쁜 ‘갑’의 탄생이 되기 때문이다.

불황의 경제학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세계 경제 대진단)

크루그먼은 경제학의 원리와 실증적인 데이터를 통해 불황의 원인과 영향을 깊이 있게 분석합니다. 그는 금융 위기와 금리 정책, 정부의 역할, 재정 정책, 국제 경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경제학의 핵심 개념을 적용하고 이를 통해 현실 세계의 경제적 현상을 해석합니다.

“불황의 경제학”은 크루그먼의 특징적인 글쓰기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그는 복잡한 경제 이론을 재미있고 생생하게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경제학을 즐겁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의 풍부한 경험과 염려심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의 견해와 주장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크루그먼은 정치적인 관점에서 경제 문제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그는 자유 시장 경제와 규제의 필요성, 정부의 역할과 영향에 대한 주장을 제시하며, 이러한 관점이 경제학의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불황의 경제학”은 현대 경제의 핵심 이슈를 다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용어나 수식을 최소화하고 설명에 중점을 둡니다. 따라서 경제학에 대한 선행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크루그먼의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통해 경제의 복잡성과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불황의 경제학”은 불황과 경제 위기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제공하는 훌륭한 자료입니다. 크루그먼의 직관적이고 흥미로운 글쓰기 스타일은 독자들을 매료시키며, 경제학에 대한 통찰력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 책은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가치 있는 자료입니다.

오이디푸스 왕

소포클레스의 걸작인 “오이디푸스 왕”은 인간 본성에 대한 극작가의 심오한 이해와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남기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만드는 그의 뛰어난 기술을 보여준다. 운명, 자유 의지, 죄책감, 그리고 인간 지식의 경계에 대한 탐구를 통해, 그 연극은 관객들을 매혹적인 비극의 세계에 몰입시키고 심오한 사색을 불러일으킨다.
“오이디푸스 왕”의 핵심은 충격과 매혹을 주는 능력이다. 관객들이 등장인물들을 피하는 지식을 소유하고 있는 극적인 아이러니의 교묘한 사용을 통해, 연극은 설득력 있는 긴장감과 감정적인 깊이를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오이디푸스의 변함없는 진리 추구를 목격할 때, 그의 피할 수 없는 몰락을 목격할 때, 압도적인 비극과 절망의 물결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 연극이 제기하는 지속적인 의문은 우리가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정도이다. 오이디푸스는 예언을 거역하려는 그의 가차없는 결심으로, 미리 결정된 결과를 조작하는 것의 무익함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조심스러운 인물이 된다. 소포클레스는 인간 기관의 취약성과 우리의 운명에 대한 통제의 한계와 씨름하도록 우리에게 도전한다.
죄의식과 개인적 책임에 대한 탐구에서, “오이디푸스 왕”은 인간 감정의 깊은 곳을 파고든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혐오스러운 행동과 그에 따른 자기 눈가리개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은 죄책감의 무게와 그를 소비하는 깊은 후회의 가슴 아픈 상징으로 작용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선택과 행동에서 발생하는 광범위한 결과들을 극명하게 상기시켜주는 것이다. 소포클레스의 명석함은 극적인 구조, 캐릭터 개발, 언어의 전문적인 장인정신에서 빛을 발한다. 그 연극의 강력한 대화, 인상적인 이미지, 그리고 중심 인물들의 복잡한 묘사는 모두 그것의 지속적인 유산에 기여한다. 오이디푸스는 고귀한 자질과 궁극적인 몰락으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결함을 모두 구현하며 비극적인 영웅으로 등장한다. 소포클레스는 여행을 통해 인간 조건의 복잡성을 능숙하게 조사하여 우리 안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오류 가능성을 밝힌다. “오이디푸스 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반향을 일으키며 지속적인 예술 작품으로 남아있다. 심오한 주제와 시대를 초월한 딜레마에 대한 탐구는 우리의 집단 의식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이 연극의 지속적인 매력은 자기 성찰을 유발하는 능력에 있으며, 운명과 자유 의지 사이의 상호 작용, 죄책감의 무게, 그리고 우리 자신의 불완전함의 복잡한 깊이를 반성하도록 강요한다. 결론적으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은 그리스 문학의 비극적인 탁월함에 대한 증거이다. 그것은 극적인 아이러니의 전문가적인 사용, 근본적인 인간 딜레마에 대한 심오한 검토, 그리고 변함없는 관련성을 통해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우리가 오이디푸스의 비극적인 세계에 몰입하면서, 우리는 우리 존재의 가혹한 현실에 직면하고 운명의 복잡성, 인간 기관의 경계, 그리고 우리 자신의 결함의 심오한 복잡성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불황의 경제학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세계 경제 대진단)

 불황의 경제학이라는 책 제목에서 처음에는 이 책이 불황의 상황에 대한 얘기만 다루는 줄 알았다. 그러나 불황의 경제학이라는 제목은 세계의 모든 경제상황을 꿰둟고 있다. 우리는 크고 작은 경기불황을 겪으며 지금에 이르렀다. 경기가 좋았을 때도, 나빴을 때도 신문 1면에는 “경제가 미쳐 날뛴다” 라는 자극적인 헤드라인 하나로 우리의 눈을 멀게 만 만들었다. 인플레이션이니 IMF니 하는 뜬구름 잡는 얘기들 뿐인 얘기들은 치우고 불황의 경제학을 읽으며 자세한 불황의 내막에 관하여  알게 된 것은 경제학도로서 아주 즐거운 기회였다. 
 조금 놀라운, 사실 아닌 사실이 있다. 대단한 경제학자는 틀림없는 폴 크루그먼이 한국의 IMF로 불리는 경제위기 상황에 대해서 얘기할 때 이다. 어쩌면 당연히 알 수 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미국의 경제학자인 그도 우리나라의 정경유착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것 이었다. 정치와 경제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이를 바탕으로 대기업 위주의 급격한 성장을 이루어 낸 것을 우리는 지금 한강의 기적 이라고 부른다. 대단히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국민들 사이에선 여전히 이런 경제성장에 관한 영상을 보면 고양감에 도취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정경유착을 기본으로 한 정실자본주의 페해인 줄 도 모르고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지금의 여러 사회문제에 직면한 것은 결국 급격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이루어진 경제성장이라고 생각한다. 돈은 많은데 행실 때문에 존경받지 못하는 졸부처럼 들떠버린 국민들은 결국 정치와 경제의 실세들에 의해 굴러가는 톱니바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만 같다. 조금 천천히, 내실있게 쌓아온 선진국들의 경제체제와 국민성이 부럽기도 하다. 어찌됐든 시간은 되돌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지금이라도 올바른 경제관과 주관을 갖고 돈도 좋지만 조금은 신념있게 사는 것이 더 가치있는 삶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이디푸스 왕

  민음사에서 출판한 <오이디푸스 왕>은 총 4곡의 희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이디푸스왕, 안티고네, 아이아스, 트라키스의 여인들이 바로 수록된 작품들이다. 이 책은 내게  희곡을 읽고 해석하고 팀원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천천히 알려주었다. 잘 모르는 희랍식 표현에 익숙해지고 이 작품의 번역가가 표현한 인물들의 이름에 익숙해지고 페이지를 넘기면서 나는 이 책을 처음 폈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점점 잊은 채로 작품에 즐겁게 몰입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궁금하거나 모르는 배경을 검색하고 팀원들과 함께 작품을 해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작품의 이해도를 높였다. 그래서 나는 이 작품이 혼자 읽을 때보다는 함께 읽을 때 더 즐길 수 있는 작품인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핀 사람이라면 내가 그랬듯이 처음 나타나는 어색하고도 어려운 희랍식(혹은 그리스식) 표현에 질겁하며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처음의 그 거부감을 이겨내고 여러 표현들에 점차 익숙해지면 누구나 이 작품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의 서로 다른 비극을 담은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그 속에서 여러 전통 민화나 현대의 어떤 고질적인 시사 문제, 혹은 옛날 우리가 즐겨 읽던 그리스 신화 속 신들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될지도 모른다.
 이 작품 속 비극의 주인공들은 모두 비극의 대상이 된 이유가 다르다. 그럼에도 그들의 몇 안되는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오만하거나 조급한 마음가짐을 가졌을 때 비극은 기꺼이 찾아와 그들의 소중한 것들이 앗아갔다는 점이다. 오이디푸스 왕이 그토록 찾아 헤맸던 범인은 바로 자신이었고 거짓말쟁이라고 의심했던 예언가는 오직 사실만을 말했다. 그는 그렇게 불행해졌다. 안티고네 속 주인공인 안티고네는 기꺼이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해내다 죽었고 그런 그녀가 죽도록 몰아가고 신들을 욕보인 오만한 크레온은 결국 소중한 제 가족들을 모조리 잃는 비극이 찾아오게 된다. 무구를 받지 못해 질투에 찬 아이아스는 오디세우스를 죽이려 하고 오만한 행보를 보이다 결국 예언대로 헥토르의 창에 찔려 죽게 된다. 또한, 데이아네이라는 사랑을 빼앗길까 두려워 조급함에 헤라클레스에게 조치를 취하지만 결국 그 조급함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남편을 죽이게 되고 본인도 자결한다.
 이렇듯 이 작품 속 인물들은 여러 이유로 목숨을 잃고 비극을 맞았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결국 예언을 받고 어떠한 불길한 징조나 비극을 맞게 되어도 꿋꿋하게 제 길을 개척해나간다는 것이다. 설령, 그 선택이 제 목숨을 앗아가고 비극을 불러올지라도 그들은 어떤 갈림길에서 결국 선택을 하고 제 선택에 따른 대가를 치르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나는 작품에서 다양한 인간상을 접하며 이 작품의 입체적인 이야기에 금방 매료되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미래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작품을 처음 폈을 때의 어려움에 겁먹지 말고 차근차근 함께 읽다보면 이 책은 당신에게 놀랍고도 신기한, 어떤 점에서는 미묘한 카타르시스를 전하는 이야기를 전해줄 것이라고. 이 책이 읽었을 때 조금 어려운 것은 어쩌면 단점이 아니라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장점일 것이라고.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소설은 1970년대의 서독을 배경으로 사생활, 언론 선동, 사회적 판단의 결과에 대한 탐구를 다룬다. 조용하고 사건이 없는 삶을 살던 근면하고 겸손한 가정부인 카타리나로 시작된다. 그러나 카타리나의 세계는 파티에서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 루트비히 괴텐을 만난 거꾸로 뒤집힌다. 밤을 함께 보낸 , 괴텐은 범죄 수사에서 주목받는 용의자가 되고 괴텐의 진실된 정체성을 알지 못한 카타리나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중심으로 몰린다. 언론은 괴텐과의 연관성을 악용하여 카타리나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명예를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기자들은 카타리나의 개인 공간에 침입하며, 진실을 왜곡하고 대중의 추측을 부추기는 등 비방이 가득한 기사를 게재한다. 사회로부터의 무자비한 관찰과 판단은 카타리나를 극한으로 밀어내며, 그녀가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기 위해 절박한 조치를 취하게 한다. 작가는 언론과 개인 사이의 권력의  움직임을 역사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선동성의 파괴적인 본성과 개인 사생활의 붕괴를 강조한다. 카타리나의 고난을 통해 작가는 언론이 이야기를 팔고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조종적 전술을 드러내며, 종종 진실과 동정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은 개인이 대중의 단순한 소비 대상으로 물건처럼 다뤄지는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같다. 작가는 언론의 침입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파괴적인 결과를 묘사하며, 그것이 정신적, 감정적인 안녕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을 보여주려 한다고 느꼈다. 뿐만 아니라, 소설은 시대적인 사회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도 탐구한다. 작가는 시대의 의심과 망상적인 분위기를 소설에 담아내며 이는 전쟁 독일의 긴장과 불안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사생활, 언론 윤리, 판단의 결과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는 소설이다. 작가의 스토리텔링 기술과 통찰력 있는 사회적 코멘트는 책을 문학 작품계에 기여로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책은 언론의 선동주의의 영향과 대중의 관심 속에서 개인의 존엄성과 명예를 보존하는 중요성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경고적인 이야기로서의 역할을 한다.

회색 인간

  처음에는 단순히 유명하다는 이유로  책을 읽었다무슨 내용이기에 <회색 인간>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유명한 거지?라는 생각을 가지며

  당연하게도 책의 처음 부분엔 목차가 있다그런데 목차들이 하나같이 무슨 내용인지 전혀 예측이  되는 제목이었다 책에서 무슨 내용을 말할지 더욱 궁금해져서  페이지를 넘겼다. ‘회색 인간’. 대뜸 책의 제목이 그대로 쓰여있었다읽으면서도 이게 뭐지 싶었다그러나 차츰 챕터의 수가 커질수록 내가 읽는 속도는 빨라졌고머릿속엔  사람은 천재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단편 글은 장편 글보다 짧기에 상대적으로 읽을  이야기의 구성이  보인다그중에서도 특히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보는데마무리를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그러나 회색 인간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참신하고 반전적인 결말로 이야기를 끝맺는다단편을 하나하나 읽어갈 때마다  읽고 싶어지고마지막으로 갈수록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까하는 두근거림이 누적된다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챕터는 ‘소녀와 소년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챕터였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나라에 가기 위해 소년과 소녀는  자리에서 여정을 떠난다소설에서 묘사되는 소년은 무리의 식량을 빼앗아 이탈하고유익한 정보는 절대 남에게 알리지 않는 이기적이고 약은 모습을 가졌다반면 소녀는 자신의 마지막 식량이자 어머니의 유산인 초코바  개를 나눠먹는 인성을지녔다그럼에도 나라의 지도자와 사람들은 소녀가 초코바를 먹고 바닥에 버리는 모습만 보고 소년을 들여보내기로 결정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뉴스에 보도되는 단편적인 내용만 보고  대상을 비판하고심하면 욕하기도 하며 때로는 칭찬을 일삼기도한다정작  실상은 어떤지 아무도 모르면서 말이다나는 소설에서 이런 현대사회를 비판한다고 느꼈다그리고 읽으면서 이런 현실에 대처할  있는 능력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사회에는 불합리적이고 이해할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에나도 이럴 때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있었다.

  <회색 인간>에는 단순히 작가의 상상을 적은 것이 아닌우리 사회로까지  범위를 넓혀 생각할  있는 글들이 많아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있다고등학생  배우는 ‘생활과 윤리’ 과목이  책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인권과 죽음양심  인간의 심리와 도덕이  책의 중요 소재이기 때문이다우리는 이에 대해  번쯤은 깊이 생각해  필요가 기에 고민해볼 주제를 많이 던져주는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권력의 책임 

카라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인간은 자신의 집단 속에서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는 경우가 잦다 가족의 구성원으로써어떤 조직의 팀장 혹은 팀원으로써 정체성을 갖는 것이 그것이다인간은 타인과 사회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영향을 미칠   목표를 갖기도 하고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하며 책임감을 갖게 되는  같다그렇기 때문에 카타리나 블룸의 이야기를 통해   있듯자신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적인 사건들을 체험함으로 개인은 성격과 같은 내면적인 부분부터 재산과 같은 물질적인 측면까지 격변할  있다  개인은 사회 속에서 충분한 이해를 받지 못하고(혹은 공리주의적인 안일한 생각 위에서제어할  없는 사회적 힘에 무력히 휩쓸리곤 한다이처럼 사회속의 거대한 힘은 인간이 만들어낸 형태없는 실체로 개인의 삶을 통째로 쥐고 휘두를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집단주의전체주의파시즘과 같은 극단적인 개념들부터 가깝게는 자신이 속한 지자체학교직장군대와 같이 작은집단들까지 인간이 소속감을 느끼고 정체성을 찾을  있는 집단이라면 어디서든 사회의 힘에 자신이 강제될 수도 있고 안에서  목소리가 미칠  있는 범위가 작을수록 개인은 무력해진다형태없는 집단의 목소리는 학교 쓰레기통의 위치를 바꾸는 작은 일부터 나라를 전복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일까지도 해내게 한다.(크고 작은 일이라고 썻지만 결국 본질은 같다결국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말할  있느냐가 권력의 본질인  같다

  이렇듯  힘을 갖고 있는 권력이 작은 개인들을 위해 쓰이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권력은 전체를 위해 쓰이나 작은 개인들까지 돌아보기는 어렵다그것은 개인들이 너무 작고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발언권의 본질은 사람들의 어그로를 끄는 것에 있다는 점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람 조명할  있을 만큼 사회는 따뜻하지 않다카타리나 블룸이 언론을 통해 해명할 기회가 있었다면 어땟을까결백을 증명할  있는 자료들도 있었다면물론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만듣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녀의 결백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겼을 것이고 카타니라 본인도살인을 저지르는 것까지는 이르지 않지 않았을까이처럼 작은 개인들은 공리주의 적인 안일한 사고 위에 혹은 개인의 욕심 위에 희생당한다

  만약 모든 기술의 발전으로 개개인이 모두에게 똑같은 영향력으로 말할  있는 세상이 구현된다면 어떨까나는 그것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누구나 말할  있는 사회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  있을 만큼 개인들은 주체적이지 않고 이기적이다모든 사람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있는 지식 있는 것도 아니며 가치판단에 대해서는 각자가 다른 기준을가지고 있다따라서 너무나 다양한 의견들로 일정 규모이상의 집단들이 생겨나기는 어려울 것이고 사회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더뎌지거나 퇴화할 것이다따라서 공평한 발언권의 실현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러한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할까권력은 자신의 말이 어떤 이들을 살리고 죽이는지 알아야한다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리기만 하는 일은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들을 죽이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지해야한다또한 죽는 사람들에게는 말할 기회를 줘야한다이것이 권력이 자신에 힘에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다언론의 경우에는 기자윤리가 그것이고 인플루언서들에게는 크고작은 논란이 일때마다 따라오는 ‘공인이니까 그것이다무엇보다 정치인과 다국적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만큼 심사숙고하고 말해야한다한편 개인들도 단순히 사회적 집단 속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가져서는 안된다미디어에서 인간은 흔히 자유의지를 갖고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것처럼그려진다그러나 불안감에 빠져 분명한 목적 의식 없이 남들 다하는걸 따라해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누군가 부여해주는 과제, 할 것은 열심히 하지만 내가 정한 일은 잘 끝내지 못한 겸험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사회 속에 살며 자신의 정체성에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고 정체성에 사회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자신의 자아를 강하게 한다고 해도 거대한 힘에 쓰러지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하지만 자신이 옳다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지지해주고 믿어 준다면 조금  강하게 살아갈  있지 않을까.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10만부 기념 응원 에디션) (최서영 에세이)

저는 이 책을 저자와의 만남을 통해 알게 되고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 분의 특강을 듣고 책을 읽는 것이라 더 머리 속에 잘 들어왔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무언가 시작 전에 할까말까를 남과 상의하지말것이라는 부분이 제일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 가장 많이 고민해 본 것은 자신일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조언은 들어도 최종적으로 결정은 자신이 하라는 내용이 항상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고 좌지우지하는 저를 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오이디푸스 왕

 제목보고 겁먹은 당신, 일단 읽어라.

 

 비교과 포인트를 위해 하게 독서토론. 무슨 책을 읽을 친구들과 의논을 하다가 결정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며 강의들을 듣는데 어쩜 교수님들이 모두 같은 책을 강의에서 추천하신다. <오이디푸스 >.

 

 그리하여 읽게 <오이디푸스 > 처음에 나에게 겁을 주었다. 얇다고는 못할 두께에 책을 피자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았다. 신화 인물의 이름은 생소하였고 문장들은 처음보는 희랍식 표현들로 가득 차있었다. 



 하지만 결국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속도가 났고 재미를 느꼈다.



 나름 책을 읽으며 요령을 얻었는데 검색하여 간단한 줄거리와 전후 사정을 미리 알고 읽었다. 미리 줄거리를 알고 읽는 것은 독서의 재미를 줄일 있지만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고 처절한 비극을 맛보며 수려한 문장들과 놀다보면 여전히 재밌을 뿐만 아니라 쭉쭉 읽혔다. 전후 사정 또한 내용에서 유추할 있고 주석도 달려있지만 이야기에서 독자인 혼자 이해를 못하고 따돌림 당하는 기분이라 알고 읽는 것이 이해와 몰입에 도움 되었다



 책은 <오이디푸스 >, <안티고네>, <아이아스>, <트라키스 여인들>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번째 작품인 <오이디푸스 > 운명을 피하려다가 운명을 맞이하고 진실을 탐구하여 파멸하는 인간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추리극 형태로 진행된다. 누가 라이오스를 죽였는가?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인 라이오스는 운명을 피하려고 오이디푸스를 버리지만 이로 인해 오이디푸스가 장성하여 자신을 죽이고 자신의 아내를 취하는 결과를 맞이한다. 오이디푸스도 운명을 피하려고 의도한 행동이 오히려 운명을 맞이하는 결과를 불러온 아이러니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탐구하다가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르고 맹인이 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전의 오이디푸스와는 다른 경이로움을 느낄 있다..


 두번째 작품인 <안티고네> 주인공인 안티고네의 이름은 꺾이지 않는 라는 뜻이다. 이에 맞게 <안티고네> 스토리도 크레온에게 대항하는 안티고네의 이야기이다. 테베의 왕인 크레온이 안티고네의 오빠인 폴리네이케스를 매국노로 여기고 그의 시체를 장례식없이 들판에 두는, 내세를 믿는 그리스인에게 매우 끔찍한 벌을 내린다. 안티고네는 폴리네이케스를 몰래 장례식을 치르나 들켜서 동굴에 가두어지고 자살한다. 안티고네를 사랑한 크레온의 아들인 하이몬은 아버지를 저주하며 자살하고 이로 인해 크레온의 아내인 에우리디케도 크레온을 저주하며 자살한다. 지도자인 크레온이 시민과 부하의 말을 듣지 않고 과하게 잔혹한 벌을 내려 벌을 받는 모습에서 당시 그리스에서 추구하는 지도자 상을 있다.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이스메네와 달리 안티고네는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하면서 원하는 것을 이루려한다. 적극적인 안티고네의 꿋꿋한 모습은 일반적인 사람은 없으며 글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있었다.

 

 <아이아스> 자신의 능력을 믿던 아이아스가 오만으로 인해 파멸하는 내용이다. 아이아스가 헥토르의 칼을 묻고 위로 몸을 던져 자살하는 장면은 누구나 알만큼 유명하다. 아이아스가 자살하기 , 아내와 아들과 길게 대화하는데 대사에서 자살을 암시하며 긴장감과 안타까움을 느낄 있다. 무력에서 월등한 아이아스보다 지략을 갖춘 오디세우스가 무구를 받을 자를 정하는 투표에서 선택을 받는 것에서 올바른 지도자의 역량 또한 생각하는 기회를 가질 있었다.

 

 <트라키스 여인들> 우리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알고 있는 대표적인 영웅인 헤라클레스의 마지막을 담은 내용이다. 데이아네이라를 아내로 헤라클레스가 이올레에게 사랑이 빠져 이올레를 갖기 위해 이올레의 조국을 멸망시키고 집에 데려갔다가 데이아네이라가 이를 알게 된다. 데이아네이라는 바람을 피우지 않는 약으로 소개받은 네소스의 피를 헤라클레스의 옷에 바르고 이로 인해 헤라클레스는 고통스럽게 사망한다. 이올레를 처음 데이아네이라가 포로로 붙잡혀와 아내가 자신의 모습을 이올레에게 비추어보며 동정하는데 뒤에도 이올레의 입장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다.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조국이 멸망하고 한순간에 자유인, 그것도 단순한 자유인이 아닌 왕족에서 노예로 전락하였는데 이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동정한 , 사랑한 모두 죽어버린다. 재밌는 점은 이올레는 희곡에서 아무런 대사가 없다는 점이다. 말도 못하고 불행을 지켜보며 운명에 끌려다니는 이올레의 심정을 생각하며 읽으면 더욱 재밌다. 헤라클레스가 네소스의 피가 묻은 옷을 입은 , 묘사가 굉장히 긴데 강력하던 영웅이 하나에 쓰러지는 모습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낄 있다. 죽은 네소스의 피가 살아있는 헤라클레스를 죽이는 것에서 아이러니를 느낄 있다. 헤라클레스는 죽지도 못하고 부글거리는 살에 움직일 수도, 죽을 수도 없이 고통에 빠져있다가 아들에게 자신을 태워 죽여달라고 말하여 스스로 아들에게 죽기를 택한다. 비참한 헤라클레스의 모습에서 그리스 희곡의 비극을 제대로 느낄 있다.

 

 독서 토론을 하여 혼자 책을 읽을 때보다 질문을 통해 책을 더욱 심층적으로 파고들어가 책을 이해할 있었다. 많은 교수님이 추천하여 호기심으로 읽게 되었는데 읽고나니 추천하시는 이유를 어렴풋이 느꼈다. 시대에 인간의 본성을 이만큼 탐구하였다는 것이 놀라웠고 문장들도 아름다웠다. 이전까진 생소하던 그리스 비극 희곡의 재미를 깨달을 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