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경제학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세계 경제 대진단)
크루그먼은 경제학의 원리와 실증적인 데이터를 통해 불황의 원인과 영향을 깊이 있게 분석합니다. 그는 금융 위기와 금리 정책, 정부의 역할, 재정 정책, 국제 경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경제학의 핵심 개념을 적용하고 이를 통해 현실 세계의 경제적 현상을 해석합니다.
“불황의 경제학”은 크루그먼의 특징적인 글쓰기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그는 복잡한 경제 이론을 재미있고 생생하게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경제학을 즐겁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의 풍부한 경험과 염려심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의 견해와 주장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크루그먼은 정치적인 관점에서 경제 문제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그는 자유 시장 경제와 규제의 필요성, 정부의 역할과 영향에 대한 주장을 제시하며, 이러한 관점이 경제학의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불황의 경제학”은 현대 경제의 핵심 이슈를 다루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용어나 수식을 최소화하고 설명에 중점을 둡니다. 따라서 경제학에 대한 선행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크루그먼의 통찰력 있는 이야기를 통해 경제의 복잡성과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불황의 경제학”은 불황과 경제 위기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제공하는 훌륭한 자료입니다. 크루그먼의 직관적이고 흥미로운 글쓰기 스타일은 독자들을 매료시키며, 경제학에 대한 통찰력을 넓힐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 책은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가치 있는 자료입니다.
오이디푸스 왕
불황의 경제학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의 세계 경제 대진단)
오이디푸스 왕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이 소설은 1970년대의 서독을 배경으로 사생활, 언론 선동, 사회적 판단의 결과에 대한 탐구를 다룬다. 조용하고 사건이 없는 삶을 살던 근면하고 겸손한 가정부인 카타리나로 시작된다. 그러나 카타리나의 세계는 파티에서 매력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인물인 루트비히 괴텐을 만난 후 거꾸로 뒤집힌다. 밤을 함께 보낸 후, 괴텐은 범죄 수사에서 주목받는 용의자가 되고 괴텐의 진실된 정체성을 알지 못한 채 카타리나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중심으로 몰린다. 언론은 괴텐과의 연관성을 악용하여 카타리나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명예를 무자비하게 공격한다. 기자들은 카타리나의 개인 공간에 침입하며, 진실을 왜곡하고 대중의 추측을 부추기는 등 비방이 가득한 기사를 게재한다. 사회로부터의 무자비한 관찰과 판단은 카타리나를 극한으로 밀어내며, 그녀가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기 위해 절박한 조치를 취하게 한다. 작가는 언론과 개인 사이의 권력의 움직임을 역사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선동성의 파괴적인 본성과 개인 사생활의 붕괴를 강조한다. 카타리나의 고난을 통해 작가는 언론이 이야기를 팔고 대중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조종적 전술을 드러내며, 종종 진실과 동정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소설은 개인이 대중의 단순한 소비 대상으로 물건처럼 다뤄지는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 같다. 작가는 언론의 침입이 개인의 삶에 미치는 파괴적인 결과를 묘사하며, 그것이 정신적, 감정적인 안녕에 미치는 광범위한 영향을 보여주려 한다고 느꼈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은 시대적인 사회 및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도 탐구한다. 작가는 시대의 의심과 망상적인 분위기를 소설에 담아내며 이는 전쟁 후 독일의 긴장과 불안을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사생활, 언론 윤리, 판단의 결과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제기하는 소설이다. 작가의 스토리텔링 기술과 통찰력 있는 사회적 코멘트는 이 책을 문학 작품계에 큰 기여로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이 책은 언론의 선동주의의 영향과 대중의 관심 속에서 개인의 존엄성과 명예를 보존하는 중요성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경고적인 이야기로서의 역할을 한다.
회색 인간
처음에는 단순히 유명하다는 이유로 이 책을 읽었다. 무슨 내용이기에 <회색 인간>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 유명한 거지?라는 생각을 가지며.
당연하게도 책의 처음 부분엔 목차가 있다. 그런데 목차들이 하나같이 무슨 내용인지 전혀 예측이 안 되는 제목이었다. 이 책에서 무슨 내용을 말할지 더욱 궁금해져서 한 페이지를 넘겼다. ‘회색 인간’. 대뜸 책의 제목이 그대로 쓰여있었다. 읽으면서도 이게 뭐지 싶었다. 그러나 차츰 챕터의 수가 커질수록 내가 읽는 속도는 빨라졌고, 머릿속엔 이 사람은 천재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단편 글은 장편 글보다 짧기에 상대적으로 읽을 때 이야기의 구성이 잘 보인다. 그중에서도 특히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마무리를 잘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회색 인간의 단편들은 하나같이 참신하고 반전적인 결말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단편을 하나하나 읽어갈 때마다 더 읽고 싶어지고, 마지막으로 갈수록 또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두근거림이 누적된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챕터는 ‘소녀와 소년, 누구를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챕터였다. 핵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나라에 가기 위해 소년과 소녀는 각 자리에서 여정을 떠난다. 소설에서 묘사되는 소년은 무리의 식량을 빼앗아 이탈하고, 유익한 정보는 절대 남에게 알리지 않는 이기적이고 약은 모습을 가졌다. 반면 소녀는 자신의 마지막 식량이자 어머니의 유산인 초코바 한 개를 나눠먹는 인성을지녔다. 그럼에도 나라의 지도자와 사람들은 소녀가 초코바를 먹고 바닥에 버리는 모습만 보고 소년을 들여보내기로 결정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뉴스에 보도되는 단편적인 내용만 보고 그 대상을 비판하고, 심하면 욕하기도 하며 때로는 칭찬을 일삼기도한다. 정작 그 실상은 어떤지 아무도 모르면서 말이다. 나는 소설에서 이런 현대사회를 비판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읽으면서 이런 현실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사회에는 불합리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에, 나도 이럴 때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지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회색 인간>에는 단순히 작가의 상상을 적은 것이 아닌, 우리 사회로까지 그 범위를 넓혀 생각할 수 있는 글들이 많아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다. 고등학생 때 배우는 ‘생활과 윤리’ 과목이 이 책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인권과 죽음, 양심 등 인간의 심리와 도덕이 이 책의 중요 소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에 대해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기에 고민해볼 주제를 많이 던져주는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권력의 책임
–카라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읽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집단 속에서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찾는 경우가 잦다. 한 가족의 구성원으로써, 어떤 조직의 팀장 혹은 팀원으로써 정체성을 갖는 것이 그것이다. 인간은 타인과 사회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영향을 미칠 때 목표를 갖기도 하고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하며 책임감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카타리나 블룸의 이야기를 통해 볼 수 있듯, 자신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적인 사건들을 체험함으로 개인은 성격과 같은 내면적인 부분부터 재산과 같은 물질적인 측면까지 격변할 수 있다. 한 개인은 사회 속에서 충분한 이해를 받지 못하고(혹은 공리주의적인 안일한 생각 위에서) 제어할 수 없는 사회적 힘에 무력히 휩쓸리곤 한다. 이처럼 사회속의 거대한 힘은 인간이 만들어낸 형태없는 실체로 개인의 삶을 통째로 쥐고 휘두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집단주의, 전체주의, 파시즘과 같은 극단적인 개념들부터 가깝게는 자신이 속한 지자체, 학교, 직장, 군대와 같이 작은집단들까지 인간이 소속감을 느끼고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집단이라면 어디서든 사회의 힘에 자신이 강제될 수도 있고그 안에서 내 목소리가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작을수록 개인은 무력해진다. 형태없는 집단의 목소리는 학교 쓰레기통의 위치를 바꾸는 작은 일부터 나라를 전복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는 일까지도 해내게 한다.(크고 작은 일이라고 썻지만 결국 본질은 같다) 결국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느냐가 권력의 본질인 것 같다.
이렇듯 큰 힘을 갖고 있는 권력이 작은 개인들을 위해 쓰이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권력은 전체를 위해 쓰이나 작은 개인들까지 돌아보기는 어렵다. 그것은 개인들이 너무 작고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발언권의 본질은 사람들의 어그로를 끄는 것에 있다는 점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한사람 한사람 조명할 수 있을 만큼 사회는 따뜻하지 않다. 카타리나 블룸이 언론을 통해 해명할 기회가 있었다면 어땟을까?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들도 있었다면? 물론 사람들은 듣고 싶은 것만듣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그녀의 결백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겼을 것이고 카타니라 본인도살인을 저지르는 것까지는 이르지 않지 않았을까. 이처럼 작은 개인들은 공리주의 적인 안일한 사고 위에 혹은 개인의 욕심 위에 희생당한다.
만약 모든 기술의 발전으로 개개인이 모두에게 똑같은 영향력으로 말할 수 있는 세상이 구현된다면 어떨까? 나는 그것도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사회를 옳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만큼 개인들은 주체적이지 않고 이기적이다. 모든 사람이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지식 있는 것도 아니며 가치판단에 대해서는 각자가 다른 기준을가지고 있다. 따라서 너무나 다양한 의견들로 일정 규모이상의 집단들이 생겨나기는 어려울 것이고 사회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더뎌지거나 퇴화할 것이다. 따라서 공평한 발언권의 실현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효율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이러한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할까. 권력은 자신의 말이 어떤 이들을 살리고 죽이는지 알아야한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리기만 하는 일은 없다고 하더라도 어떤 이들을 죽이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히 인지해야한다. 또한 죽는 사람들에게는 말할 기회를 줘야한다. 이것이 권력이 자신에 힘에 책임감을 가지는 것이다. 언론의 경우에는 기자윤리가 그것이고 인플루언서들에게는 크고작은 논란이 일때마다 따라오는 ‘공인이니까‘가 그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인과 다국적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만큼 심사숙고하고 말해야한다. 한편 개인들도 단순히 사회적 집단 속에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가져서는 안된다. 미디어에서 인간은 흔히 자유의지를 갖고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것처럼그려진다. 그러나 불안감에 빠져 분명한 목적 의식 없이 남들 다하는걸 따라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누군가 부여해주는 과제, 할 것은 열심히 하지만 내가 정한 일은 잘 끝내지 못한 겸험이 없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사회 속에 살며 자신의 정체성에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고 정체성에 사회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자신의 자아를 강하게 한다고 해도 거대한 힘에 쓰러지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자신이 옳다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지지해주고 믿어 준다면 조금 더 강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잘될 수밖에 없는 너에게(10만부 기념 응원 에디션) (최서영 에세이)
오이디푸스 왕
제목보고 겁먹은 당신, 일단 읽어라.
비교과 포인트를 위해 하게 된 독서토론. 무슨 책을 읽을 지 친구들과 의논을 하다가 결정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며 강의들을 듣는데 어쩜 교수님들이 모두 같은 책을 강의에서 추천하신다. <오이디푸스 왕>.
그리하여 읽게 된 <오이디푸스 왕>은 처음에 나에게 겁을 주었다. 얇다고는 못할 두께에 책을 피자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았다. 신화 속 인물의 이름은 생소하였고 문장들은 처음보는 희랍식 표현들로 가득 차있었다.
하지만 결국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속도가 났고 재미를 느꼈다.
나름 이 책을 읽으며 요령을 얻었는데 검색하여 간단한 줄거리와 전후 사정을 미리 알고 읽었다. 미리 줄거리를 알고 읽는 것은 독서의 재미를 줄일 수 있지만 인물의 감정에 몰입하고 처절한 비극을 맛보며 수려한 문장들과 놀다보면 여전히 재밌을 뿐만 아니라 쭉쭉 잘 읽혔다. 전후 사정 또한 내용에서 유추할 수 있고 주석도 달려있지만 이야기에서 독자인 나 혼자 이해를 못하고 따돌림 당하는 기분이라 알고 읽는 것이 이해와 몰입에 도움 되었다.
책은 <오이디푸스 왕>, <안티고네>, <아이아스>, <트라키스 여인들>로 총 네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작품인 <오이디푸스 왕>은 운명을 피하려다가 운명을 맞이하고 진실을 탐구하여 파멸하는 인간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추리극 형태로 진행된다. 누가 라이오스를 죽였는가?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인 라이오스는 운명을 피하려고 오이디푸스를 버리지만 이로 인해 오이디푸스가 장성하여 자신을 죽이고 자신의 아내를 취하는 결과를 맞이한다. 오이디푸스도 운명을 피하려고 의도한 행동이 오히려 운명을 맞이하는 결과를 불러온 아이러니에서 오는 재미가 있다. 오이디푸스는 진실을 탐구하다가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르고 맹인이 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이전의 오이디푸스와는 다른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두번째 작품인 <안티고네>의 주인공인 안티고네의 이름은 ‘꺾이지 않는 자’라는 뜻이다. 이에 맞게 <안티고네>의 스토리도 크레온에게 대항하는 안티고네의 이야기이다. 테베의 왕인 크레온이 안티고네의 오빠인 폴리네이케스를 매국노로 여기고 그의 시체를 장례식없이 들판에 두는, 내세를 믿는 그리스인에게 매우 끔찍한 벌을 내린다. 안티고네는 폴리네이케스를 몰래 장례식을 치르나 들켜서 동굴에 가두어지고 자살한다. 안티고네를 사랑한 크레온의 아들인 하이몬은 아버지를 저주하며 자살하고 이로 인해 크레온의 아내인 에우리디케도 크레온을 저주하며 자살한다. 지도자인 크레온이 시민과 부하의 말을 듣지 않고 과하게 잔혹한 벌을 내려 벌을 받는 모습에서 당시 그리스에서 추구하는 지도자 상을 알 수 있다.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이스메네와 달리 안티고네는 목숨을 잃을 것을 각오하면서 원하는 것을 이루려한다. 적극적인 안티고네의 꿋꿋한 모습은 일반적인 사람은 할 수 없으며 글을 읽으며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아이아스>는 자신의 능력을 믿던 아이아스가 오만으로 인해 파멸하는 내용이다. 아이아스가 헥토르의 칼을 묻고 그 위로 몸을 던져 자살하는 장면은 누구나 알만큼 유명하다. 아이아스가 자살하기 전, 아내와 아들과 길게 대화하는데 대사에서 자살을 암시하며 긴장감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다. 무력에서 월등한 아이아스보다 지략을 갖춘 오디세우스가 무구를 받을 자를 정하는 투표에서 선택을 받는 것에서 올바른 지도자의 역량 또한 생각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트라키스 여인들>은 우리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알고 있는 대표적인 영웅인 헤라클레스의 마지막을 담은 내용이다. 데이아네이라를 아내로 둔 헤라클레스가 이올레에게 사랑이 빠져 이올레를 갖기 위해 이올레의 조국을 멸망시키고 집에 데려갔다가 데이아네이라가 이를 알게 된다. 데이아네이라는 바람을 피우지 않는 약으로 소개받은 네소스의 피를 헤라클레스의 옷에 바르고 이로 인해 헤라클레스는 고통스럽게 사망한다. 이올레를 처음 본 데이아네이라가 포로로 붙잡혀와 아내가 된 자신의 모습을 이올레에게 비추어보며 동정하는데 이 뒤에도 이올레의 입장을 생각하면 더욱 안타깝다.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인해 조국이 멸망하고 한순간에 자유인, 그것도 단순한 자유인이 아닌 왕족에서 노예로 전락하였는데 이로 끝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동정한 이, 사랑한 이 모두 죽어버린다. 재밌는 점은 이올레는 이 희곡에서 아무런 대사가 없다는 점이다. 말도 못하고 불행을 지켜보며 운명에 끌려다니는 이올레의 심정을 생각하며 읽으면 더욱 재밌다. 헤라클레스가 네소스의 피가 묻은 옷을 입은 뒤, 묘사가 굉장히 긴데 강력하던 영웅이 옷 하나에 쓰러지는 모습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낄 수 있다. 죽은 네소스의 피가 살아있는 헤라클레스를 죽이는 것에서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다. 헤라클레스는 죽지도 못하고 부글거리는 살에 움직일 수도, 죽을 수도 없이 고통에 빠져있다가 아들에게 자신을 태워 죽여달라고 말하여 스스로 아들에게 죽기를 택한다. 비참한 헤라클레스의 모습에서 그리스 희곡의 비극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독서 토론을 하여 나 혼자 책을 읽을 때보다 질문을 통해 책을 더욱 심층적으로 파고들어가 책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많은 교수님이 추천하여 호기심으로 읽게 되었는데 다 읽고나니 추천하시는 이유를 어렴풋이 느꼈다. 이 시대에 인간의 본성을 이만큼 탐구하였다는 것이 놀라웠고 문장들도 아름다웠다. 이전까진 생소하던 그리스 비극 희곡의 재미를 깨달을 수 있던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