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스(20주년 기념판) (새로운 과학의 출현)

이 책은 무질서 속의 질서라는 역설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우리가 무질서라고 생각했었던 과학 현상들에서 질서를 찾고 다양한 주제를 제시하여 독자로 하여금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하여 흥미를 유발한다.

가이아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이 책의 작가는 지구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독자에게 지구의 역사, 지질, 진화, 대기, 기후 등 지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제시하여 독자로 하여금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지구에 대해 더 나은 이해를 제공하고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이 책은 신경 학자인 올리버 색스의 책으로 다양한 신경계 질환들에 대해 다루며 뇌에 대한 높은 지식을 바탕으로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어 인간을 새롭고 따듯하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한다.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

이 책은 인간이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나는 유전자에 관점을 진화 생물학과 연관 지어  진화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풀어내어 흥미로운 내용을 다루고 있다. 철학적인 내용과 과학적인 내용을 모두 담고 있기 때문에 다방면으로 되게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코스모스

이 책은 이과생이라면 한 번 즈음은 읽어봤을 책으로 광활한 우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주라는 미지의 공간에 대한 역사, 현재 미래에 대해 설명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며 상상력을 자극한다.

위험한 과학책 (지구 생활자들의 엉뚱한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

이 책은 우리가 살면서 한 번 즈음은 혼자 생각해 봤을 만한 상상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그 상상의 내용에 실제 과학 이론과 접목 시켜 과학적으로 어떤 원리가 숨어있고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에 관해 상세하게 설명하여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자극하고 흥미를 느끼게 한다.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예전에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마침 독서클럽 주제 도서로 교수님께서 에코의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을 추천해 주셔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가 생전에 ‘성냥갑 칼럼’에 남겼던 칼럼들을 그가 작고한 후 열린책들에서  한 곳에 모아서 책으로 발행한 것이다. 그렇기에 장마다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에코는 20세기 으로서 급격하게 변화하는 ‘유동 사회’를 냉철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가 이 칼럼들을 작성한 시기가 2006년~2016년에 이르는데, 약 1~20년이 지난 지금 읽어보아도 전혀 어색한 부분이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예견하고 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에코가 SNS에 대해 비판하는 부분이었다. 나는 평소에 SNS를 잘 하지 않고, SNS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기에 에코의 의견에 동감하면서 읽었다. 사람들은 ‘사생활 보호’를 외치며 자기만의 개인적인 생활을 지킬 권리를 주장하지만, 정작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SNS에 서슴없이 올리며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이러한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에코의 글을 보며 SNS를 더욱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독서클럽에서 친구들과 이에 대해 논해보았는데, 친구들은 나에게 SNS의 긍정적인 측면이 많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SNS는 졸업 후 멀어진 친구들을 이어주고, 인류애가 충전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 긴급 헌혈 수혈 모집 등) 독서클럽을 진행한 후, 내가 편협한 사고에 사로잡혀서 SNS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는 현상의 장단점을 모두 바라보며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시각을 갖춰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책에서 에코는 인터넷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는 인터넷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지만, 그것을 어떤 목적에 맞게 어떻게 찾고, 어떻게 거르고 선별할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인터넷은 도구일 뿐인데, 우리는 인터넷이 만능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나치게 의존한다. 그의 통찰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들어맞고 있다. 오히려 모든 질문에 대해 만능 답변을 만들어 주는 챗GPT의 등장으로 이러한 문제는 더욱 심화하고 있다.
 에코는 인터넷에서 자료를 베끼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독서클럽 멘토 교수님도 이에 적극 동의하셨다. 우리는 항상 모방하면서 배운다. 아무리 뛰어난 소설가이더라도, 처음은 잘 쓰인 책을 베끼면서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는 잘 베끼는 방법에 대해 배워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등의 명목으로 정보 활용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실상 학생들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인터넷에 들어갔을 때, 이를 잘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이 든다. 나는 이러한 문제가 ‘교육’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학교 도서관이나 정보 수업 시간에 신뢰할 수 있는 정보원을 찾는 방법을 배우지만, 이론으로만 가볍게 다룰 뿐, 실제로 정보를 검색하는 실습은 제공하지 않는 것 같다. 나 또한 어디에서 어떻게 정보를 찾아야 하는 지, 어떻게 정보를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교육을 여러 차례 받았지만, 정작 검색할 때는 네이버와 구글에 검색해 보고, 없으면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은 것 같다. 올바르게 정보를 활용하는 방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외에도 에코는 레거시 미디어(종이신문, TV)의 소멸, 인종주의와 파시즘, 음모론, 사랑과 철학 등 우리 사회의 전반을 이루는 요소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 번쯤 이 책을 읽어보며 그가 예상한 미래 모습을 우리 시대의 모습과 비교해 보고, 우리의 미친 세상이 잘 굴러가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보기를 추천한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책을 읽으며 현재 한국에서 쉽게 보이는 언론 상황과 당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저널리즘 상황을 비교하였을 때 크게 다른 점이 느껴지지 않고 쉬이 읽힌다는 것은 이 소설이 얼마나 고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지 알려준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정보가 빠르게 흐르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더욱 이러한 집단적 매장이 일상적으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주변에 벌써 여러 명의 카타리나 블룸을 보기도, 떠나보내기도 함과 동시에 우리는 이미 잠재적 카타리나 블룸이기도 하다. 

카타리나 블룸의 분투는 더욱 집단적이게 된 기업과 언론, 익명성의 그림자에 숨은 대중들에게서 개인은 어떻게 자신을 총을 빼 들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이 들게 한다.

작 중 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차이퉁과 같은 언론에서 멋대로 휘두르는 폭력과 함께 익명의 대중들 또한 더욱 능동적으로 폭력을 휘두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는 수많은 SNS와 댓글들을 통한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의 혓바닥에 개인은 마치 껌처럼 어떠한 통제권을 갖지도 못한 채로 씹히다 단물이 빠지면 툭 뱉어진다. 그리곤 바로 너무나도 쉽게 다음 껌을 꺼내 씹는 것이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화형대에 오른 개인은 평소 자신이 정말 신뢰하는 지인들에게서도 찜찜한 의심을 거두기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지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개인이 아무리 외친다 한들 이미 대중에게 짓밟힌 호소는 그저 무력하고 허망한 메아리일 뿐이다. 결국 언론의 비도덕적 행태를 저지하지 못하고 방관하는 것도 어느 정도의 동조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언론인뿐만 아니라 언론을 이용하는 사람들 역시 스스로의 책임의식에 대한 재고와 동시에 자정작용이 필요하고 그렇지 않다면 이는 언젠가 다시 돌아와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도 가짜 뉴스와 가십, 숏 폼 컨텐츠, AI를 활용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러한 사례를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무엇이든 감시당하고 녹음 당하며 기록되는 사회. 물론 이전부터 쭉 있었지만, 이젠 교묘히 모습을 바꾸어 우리가 알아채지도 못할 방식으로 더 일상적이고 사소한 부분까지 태연자약하게 우리를 옭아맨다. 이런 환경에서 자연스레 아닌 척 하지만 어쩌면 맘 속 저 깊은 곳에선 서로에 대한 불신이 뿌리내리는데 영향을 미쳤을지 모를 일이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빛나는 성과들을 보며 문득 살기 좋아졌다고 느끼게 되지만 그 반짝임 한 꺼풀 아래 이면에 정말 소름 끼치는 부분이 존재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우린 쉽게 잊곤 한다. 

비단 저널리즘 뿐 아닌 많은 분야에서 우리는 옛 시대와 비교도 안 되는 자유를 얻게 되었지만, 그만큼의 책임을 지고 있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방종으로 만들어진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행복해질 수 있는가? 

이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지 않는다면 눈이 행복을 찾으려 하는 헛된 반복 속에 우리가 나아가야할 바른 길은 없으리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