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존스 가족이 운영하는 장원 농장의 동물들이 그 중에서도 돼지들이 리더 역할을 하여 존스 가족을 농장에서 내쫓고
그 농장에서 살던 동물들이 농장안에서 먹고 자고를 주체적으로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농장의 이름은 동물
농장으로 바뀐다. 처음에는 스노볼이라는 이름을 가진 돼지가 리더 역할로 모든 계획이 다수결로 진행하며, 모든 동물이 평등했다. 하지만 다른 돼지 나폴레옹이 계획적으로 스노볼을
내쫓고 동물 농장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동물들 간의 계급이 생기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동물 농장의
기반이 되는 7개의 원칙 또한 나폴레옹의 뜻대로 조금씩 바뀌어갔지만,
기억력이 나쁜 동물들은 바뀐 사실조차 모른채로 나폴레옹과 그의 수하인 스퀼라의 모든 말들을 사실로 믿었다. 나중에는 스노볼이 자신들을 위해 했던 행동도 모두 스노볼의 나쁜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한 큰그림이었다는 헛소문
또한 진실처럼 치부되었고,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은 스노볼이었기에, 그
소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에 대한 여부도 증명되지 못했다. 돼지들은 점차 동물주의의 원칙인 “인간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는 원칙을 깨고 침대에서 잠을 자며, 존스의 저택을 이용하고, 옷을 입고, 다른 인간과 거래를 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동물주의의 가장 중요한
원칙 “모든 동물을 평등하다.” 는 문구를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욱
평등하다.” 는 문구로 바뀌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읽을 가치가
없는 글은 읽지 않는 벤자민이라는 가장 나이가 많은 당나귀가 자신의 규칙을 깨면서까지 이 문구를 읽는 장면은 꽤나 인상깊었다.
동물들에게 지성이 존재한다면? 이러한 관점으로 농장의 동물들을 그려낸
전체적인 스토리가 충격적이다. 좀 더 서로 사이좋게 지냈다면 좋았을텐데.. 제일 먼저 혁명을 선동한 그 돼지. 너무 초반에 바로 죽어버려서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지만 그 돼지가 만일 살아있었더라도 상황이 그렇게까지 됐을까.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왜 나폴레옹은 스노볼과 함께 하지 않았을까. 스노볼도 뒤에서는 사실
나폴레옹처럼 무언가 권력을 쥐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공산주의의 역사를 아주 짧은 동화로 풀어내 이해하기
쉬웠다.
동물농장
동물농장 (최신 버전으로 새롭게 편집한 명작의 백미, 책 읽어드립니다)
이 책은 1945년 8월 17일에 출간이 되었는데 작가는 사회주의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시대적 배경을 보았을 때 사회주의 자체를 비난한 것이 아니라 스탈린주의 체제를 동물농장이라는 소설에 비유해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간이 지난 현대에 적용해 보았을 때 인간의 내면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의 여지가 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지금까지 3번 읽으면서 사회주의만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읽다 보니 나 또한 돼지였다면 특권을 내려놓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했을까? 토론을 통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인간의 내면은 권력이 한쪽에 쏠리면 부패하므로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을 전달하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복서가 폐마업자에게 팔려 가는 장면이었다. 소설 속에서 복서는 부지런하고 희생정신이 강한 캐릭터이다.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일하는 사람이다. 조직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존재이다. 하지만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하여 사회적으로 필요가 없어지자 고기로서 팔려 갔다. 희생된 복서에게 감정이입이 되어 안타까웠고, 나폴레옹의 악랄함에 충격을 받았다. 읽으면 읽을수록 깊이를 더하는 좋은 책이다.
심리 조작의 비밀 (어떻게 마음을 지배하고 행동을 설계하는가)
인간 실격
타인의 고통
항상 도구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용도는 극단적으로 변할 수 있다. 다이너마이트 같은 경우에는 전쟁에서 쓰이며 많은 사람들이 죽어 무기의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탄광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도구라는 것이 항상 양날의 검이라지만 사진은 특히 그 쓰임새를 조심해야 하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이 찍을 수 있고 찍힐 수 있기에 쉽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지만 한 번 난 상처는 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상처를 입은 곳에 더 큰 상처를 줄 수 있고 결국 계속 상처가 난 곳은 흉터만 남고 감각은 사라진다. 사진은 어떤 순간만을 영원히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상처도 영원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은 보통 상처를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찍힌 사람이 상처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자신에게 크게 와닿지 않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이기 때문이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아는 사진은 여행을 가서 추억을 남기기 위해 찍는 등 행복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사용되었다. 하지만 책에서는 전쟁에 대한 사진을 주로 다루었다. 전쟁에 대한 사진들이다 보니 잔인하고 참혹한 부분들이 많았고 내가 너무 행복한 세상에서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책에 있는 사진은 옛날에 찍혔기 때문에 흑백사진이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은 색상이 있는 곳이다. 우리는 흑백사진을 통해 색상이 있는 사진까지 생각하지 못한다. 흑백사진을 본 이상, 우리의 뇌에는 흑백사진만 남는 것이다. 우리는 전쟁을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갖고 있던 사진에 대한 생각이 전쟁까지 미치지 못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까지 생각을 못하기 때문에 이 책과 같은 매개체가 필요한 것 같다. 책을 통해 사진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전쟁사진에 대해, 사람의 잔인함과 인간의 동정, 연민 등과 같은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이 무뎌지는 것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사진에 대한 더 성숙한 생각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까지 생각할 수 있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에 결코 욕망과 욕심이 들어가지 않는 사람이 사진을 찍는다면 순간이 영원이 되는 것이 타인의 행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