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공장에서 제품처럼 ‘생산’되는 세계” 이 책의 뒤표지에 쓰여있는 문구다. 이 책에서 ‘멋진 신세계’라고 불리는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는 달리 인간이 공장에서 제품처럼 생산된다.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고 아이를 잉태하는 행태가 아닌, 공장에서 똑같은 자동차를 몇백 대씩 찍어내듯이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곳에서 인간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실로 공장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수정되기 전부터 알파, 베타, 감마, 오메가, 엡실론의 5개의 계급으로 분류되고, 계급을 넘어서 인생까지 설계되어 ‘생산’된다. 이곳에서의 신은 ‘포드’이다. 자동차 회사 창립자 포드와 신세계의 신 포드. 이 둘의 이름이 같은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닌 것이다.
다른 등장인물의 이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버나드 마르크스의 경우, 버나드 쇼와 카를 마르크스를 합친 이름이다. 사실 이 책을 읽을 때 이름을 이렇게 지은 것을 의도한 걸까?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찾아보니 작중 이름이 있는 계급의 모든 인물은 역사적 인물의 이름들을 조합한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등장인물은 차치하고, 이 책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인물인 존의 이름이 나는 제일 궁금했다. 존은 신세계의 사람이 아니다.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자라난 존은 어머니인 린다가 신세계의 사람이다. 모종의 이유로 신세계에서 퇴출당한 린다는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존을 낳은 뒤 존에게 계속 신세계로 돌아가고 싶고, 신세계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 말한다. 존은 그러한 신세계에 환상을 갖게 되고, 어느 날 신세계로 갈 수 있게 되는 날이 오자 흔쾌히 그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야만인 보호구역과 신세계는 완전히 대립하는 곳이었다. 냉전이라든가 그런 의미가 아니라, 사상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그 두 세계는 절대 공존이 불가능하다. 소설 속에서 존은 신세계에도, 야만인 세계에도,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한 존을 보면서 나는 문득 존의 이름의 유래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John Doe. 영어권 국가에서 신원 미상의 남자 변사체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존이 결국 자살을 하는 것으로 짐작했을 때, 존의 이름은 여기서 따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공식적인 발언은 없었으니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난 뒤 만약 내가 이곳에 산다면 어떨지도 고민해 보았는데, 정작 나는 이 세계에 만족하고 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지위와 세상에 만족하라고 설계되어 태어났다면, 지위가 낮은 오메가나 엡실론으로 태어났다고 한들 그 세상 속에선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 우리가 말하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지만, 신세계 속에서의 ‘행복’에 부합한, 그러한 행복한 삶을 살지 않을까? 높은 계급이든, 낮은 계급이든 모두가 만족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유토피아가 아닐까? 물론 신세계를 바깥에서 보는, 읽는 입장에선 계급에 만족하도록 최면 유도 학습이 된 것을 차치하더라도 낮은 지위로 태어났는데 어떻게 만족할 수 있는지, 그리고 미래가 완벽히 설계되어 태어나는 것이 과연 만족스러운 삶이냐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 멋진 신세계라는 책이 유토피아의 이면을 잘 꼬집은, 아주 첨예하고 치밀하게 쓰인 작품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