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역습 (오만한 지식 사용이 초래하는 재앙에 대한 경고)

이 책의 저자는 웬델 베리(Wendell Berry)이다. 미국의 시골 중의 시골이라 하는 켄터키에서 농사를 지으면서(자급자족한다고 한다) 글을 쓴다. 지금으로부터 몇 십년 전에 쓴 것으로 보이는 전기산업비판, 컴퓨터로 대표되는 3차 산업혁명에 대한 비판 글을 접하면서 웬델 베리를 처음 알게 되었다. 웬델 베리는 컴퓨터로 글을 쓰지 않고, 1956년산 타자기와 연필로 글을 쓴다고 한다. 컴퓨터로 글을 쓰지 않고, 타자기와 연필로 글을 쓰는 것은 단순히 취향문제가 아니라 대규모 전력 산업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즉 그는 조금의 편리함을 위해 자연을 착취하거나, 에너지 문제에 있어 대형 기업이나 산업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 인구 1000만이라는 서울(지금은 950만 9,458명)에 살고, 삼성 노트북으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하는 나로서는 좀 거리가 먼 이야기인 것 같다. 특히 온라인 수업덕분에 인터넷이 필수가 되어버렸다.
  웬델 베리는 이런 산업체제에 의존하는 것에 문제가 있지는 않은가? 특히나 환경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는데 도시중심적인, 전력과 석유에 의존하는 사회가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들을 다룬다. 그래서 웬델 베리에 대해 알아보고 읽어보는 것은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 <지식의 역습 The Way of Ignorance>은 총 4부(1부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하여, 2부 더 나은 경제가 필요하다, 3부 생태적이면서도 경제적인, 4부 희망을 주는 정치)로 구성된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인간의 무지를 궁극적으로 치유할 수는 없다.’,’어떤 문제들은 영영 해결되지 않으며 어떤 질문들은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인간은 아무리 애써도 죽음을 피할 수 없고 편견과 결함과 실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인간이 습득한 지식의 양은 언제나 무지의 양과 똑같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이 책의 글들에 대한 전제가 될 것이라 한다. 기술적 특이점, 인공지능, 사이보그화 등등 기술혁신으로 인간이 무지에서 완전히 벗어나 신의 위치에 이를 수 있다는 일반적인 견해와 달리, 웬델 베리는 무지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 속성이라 한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무지의 길은 “이웃 사이의 사랑과 친절, 염려와 관심, 적당한 규모, 검약, 올바른 노동과 생활”이라 한다. 즉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요컨대 무지의 길이란 우리가 가진 지식의 한계와 효능을 제대로 알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며,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적절한 규모로 일하는 것이다.”
  1부 1장에서는 괜찮은 개인주의와 위험한 개인주의를 나눈다. 시민 불복종 운동의 선조라 불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개인주의는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공공의 이익과 일치함으로 꽤 괜찮다고 한다. 위험한 개인주의란 신, 정부, 공동체, 이웃, 후손도 아랑곳않고 하고싶은데로 하는, 대표적으로 자신의 재산은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발상이 위험하다고 한다. 재산권을 절대적 권리로 인정하면, 소유주가 일시적 이익을 위해 영구적인 가치가 있는 것들을 남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개인주의는 위험하다고 한다. 특히 대기업이 ‘법인’이라는 것으로 인간의 지위를 획득할 경우, 대기업은 이런 과격한 개인주의자가 되어 자기 자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사람들의 권리는 이런 극소수 법인들의 손에 넘어가고 있다.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해 행동하라”라는 교리를 따르기보다는 돌봄, 믿음, 친절, 평화의 언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다음 2장의 <무지의 길을 가라>에서는 인류가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나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등의 생각은 오만한 무지라고 한다. 최근까지도 벌어지고 있는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상황을 말하는 듯 이런 문구가 있다.”오만한 무지에 의해 응용된 현대 과학(화학, 핵물리학, 분자생물학 등)은 여섯 살짜리 아이가 모는 자동차, 또는 원숭이의 손에 쥐어진 장착된 권총과 닮은꼴이다. 오만한 무지는 세계화 경제를 장려하면서도 그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세균과 질병의 국제적 확산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오만한 무지는 평화에 대해서는 고려하지도 않고 무조건 전쟁을 일으킨다.-p.20″ 이 책이 2007년에 나온 것을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 후 2장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엘리엇이 말한 ‘무지의 길’을 따라간다고 한다. 엘리엇의 <이스트 코커> 중 일부를 인용한다. “지식은 형식을 만들고 왜곡한다./형식은 매 순간 새롭기 때문이다./그리고 매 순간은 우리의 존재 전체에 대한/새롭고 충격적인 평가이기 때문이다.” 모든 순간, 모든 창조물은 새롭고 독자적이다. 하지만 우리의 지식때문에 새로움이 왜곡된다고 말한다. 
  1부 3장과 4장에서는 삶과 노동의 목표, 풍성한 삶의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오래 사는 것만이 무조건 좋은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오래사는 것보다 ‘완전한 삶’을 이상으로 보는 듯하다. 삶과 노동의 목표는 무엇이고, 무엇이 되어야 할까? 이것은 아주 조심스럽게 대답해야 하고, 개개인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저자는 “옛날부터 인류는 자기 소명을 인식하고 그것을 성실하게 따르며 행복한 마음으로 일하는 삶을 모범이나 이상으로 여겼던 것 같다.”라고 말한다.  그것은 “결혼가고 가정을 이루며 가족을 부양하는 삶, 이웃과 넉넉하게 어우러지는 삶, 자기 지역의 자연에서 얻은 것들을 먹고 마시며 즐기는 삶, 자기 아이들과 이웃의 아이들이 자신의 역할을 대신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늙어가지만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쓸모 있는 존재로 남는 삶, 그리고 마침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좋은, 또는 신성한 죽음을 맞이하는 삶”이라고 한다. 
  2부 ‘더 나은 경제가 필요하다’에서는 오랜 역사를 가진 자급자족 경제가 산업화때문에 사라졌다고 한다. 또한 작은 하천과 장소를 무시하면서 대륙과 해양을 깨끗이 유지할 수는 없고, 이런 작은 파괴가 쌓이면 심각한 파괴 양상이 드러난다고 한다. 또한 더 나은 경제, 즉 지역사회를 살리는 경제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말을 이용한 삼림업 등, 지역사회에서 벌고 쓰면 더 좋은 경제 효과가 난다. 
  3부 ‘생태적이면서도 경제적인’에서는 트랙터가 몰아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작한다. 우리는 자연을 이길 수 없고, 이렇게 자연을 파괴하는 방식으로는 건강, 경제를 파괴함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협력하며 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러면 도시 주변부, 농촌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로 지금의 정보화 사회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흐르는 정보는 추상적이거나 보편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진다. 중심에서 개발한 것들이 지역에서는 그 지역의 특수성과 관련 없이 획일적으로 쓰인다. 지역 문제에 대해서 최적의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이 가진 지역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런 지식은 특정한 장소에서만 얻을 수 있으며, 그 장소를 벗어나면 무지와 별반 다르지 않기’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저자는 인간의 소통 수단에 한계가 있음을 잊지 말자고 한다. 가령 농사일같은 경우는 언어, 정보는 적절한 수단이 되지 못한다. 즉 정보가 아닌 오직 경험과 협력을 통해서만 습득 가능한 지식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환경 보호에 있어서, 특히 토양 문제에 있어서 윤리보다 지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그가 느끼기에 대부분의 목장 주인들은 윤리 관념은 그대로이지만, 목초지가 훼손되지 않게 가축을 제대로 통제하자 풀이 다시 자랄 시간이 충분히 보장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4부의 제목은 ‘희망을 주는 정치’이다. 지금까지 보면 알듯이, 사회, 삶, 경제, 생태, 정치 이런식으로 구성이 된다. 그는 책 곳곳에서 자연이 주는 즐거움, 모든 존재는 얽혀 있고, 그런 것들이 소중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마지막 장에서는 무슨 내용을 말할지 알아보자. 첫 장에서는 인권과 정부의 기밀 유지에 대한 ‘업무상 필요’와 대조로 시작한다. 인권을 ‘자연법과 신법’에서 비롯된 권리라고 명시한 데는 정부 권력보다 높은 곳, 정부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인권을 두기 위해서이다. 국가의 목적은 애초부터 시민 개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그 다음 장에서는 2차 세계대전 전에는 미국이 다수가 소유한 나라였지만, 소수가 소유한 나라, 몇몇 대기업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나라가 되어가는데, 역대 모든 정부가 공공연히 이런 길을 걸어왔고 이런 변화에 반대하는 정부가 필요하다고 한다. 
  우리(미국인)는 미국을 파괴했다. 스스로 파괴했다고 말한다. “우리 경제는 발전이나 보존이 아니라 착취를 목표로 한다.” 즉 대기업은 지역 주민을 다른 곳보다 싼값에 착취할 수 있을 때까지만 머물고 그들이 떠나간 곳은 모두 텅 비었고, 죽음만이 있다. 이런 파괴가 자행되는 이유는 우리가 경제학의 두 가지 거짓말을 믿고 살아가기 때문이라 한다. (“1. 시장에서 가격이 매겨지지 않은 것은 가치가 없다. 2. 우리 지역의 경제를 대기업에 넘겨주어도 괜찮다.”) 이런 경제적 폭력, 파괴에 대한 책임은 미국 국민에게 있지만, 정부 또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개인이나 공동체는 이런 경제적 침략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기 때문에 주 정부와 연방 정부가 보호해야 한다. 
이런 파괴는 문제가 있고 더 나은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는 장소를 존중하자. 둘째, ‘산업을 유치해서’ 경제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자. 셋째, 규모의 경제에 정직하게 대처하자. 마지막으로 우리의 토지를 구석구석 돌보는 일에 절대적인 우선순위를 부여하자.”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실제 경험에 기초한 글쓰기를 위해 언제나 ‘경험을 상상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기억이나 사실의 기록도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사실을 넘어 그림을 완성한다고 한다. 수많은 작가들과 책들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오랜 세월 웬델 베리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책과 작가는 성서, 호메로스, 단테 ,셰익스피어, 밀턴, 블레이크가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난 뒤 느낀점: 한국어 제목은 지식의 역습, The Way of Ignorance를 직역하면 무지의 길이다. 제목만 보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잘 짐작이 안 갈 수 있다. 지식의 역습이라니? 무지의 길? 우리는 ‘아는 것이 힘’, 지식은 좋은 것, 무지는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지식, 지혜는 생존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한계, 자연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지식추구를 비판한다. 즉, 그런 지식추구는 불가능하고 오히려 해만 입힌다는 것이다. 지식을 통해 인간의 모든 고통을 없애고, 수명을 무한정 연장시키는 일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유해하다고 한다. 무지의 길을 가자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살자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의 유명한 책 <호모 데우스>에서는 인류의 다음 목표가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라 한다. 즉 노화와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에 대항하기 위해 인간의 뇌에 컴퓨터를 심는다고까지 한다. 기술적 특이점이 오면,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다. 아니면 정치, 경제적인 문제때문에 소수만 그 혜택을 누릴지라도 어쨌든 인류는 신이 되었기 때문에 기술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한다. 웬델 베리는 우리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은 존재하고, 한계는 없앨 수가 없다고 한다. 이런 기술의 무한 발전이 오히려 실패로 끝나고 파멸로 끝난다고 한다. 중심이 주변을 착취하는 관계가 아니라 주변이 자치하고 자족할 수 있게 되어야 인간다운 삶이 가능해진다. 
  무엇이 인간다운 삶인지는 독자 개개인이 판단해야 할 것이다. ‘자급자족하고, 지역에서 먹고 살기. 중심은 지역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해야 하지 착취해서는 안된다 ‘등이 인간다운 삶에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해외에 생필품을 의존하면서, 세계화라는 명목으로 모든 경제가 얽혀, 도시에서 살면서 스스로 먹고 살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자본주의의 엄청난 생산력은 물질의 풍족함을 가져다 주었지만, 풍족함의 대가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같다.

유원 (창비청소년문학 96)

 가장 멋진 여자에게 추천받은 책이어서 읽기 전부터 기대가 됐다. ‘유원’이라는 제목답게 주인공의 이름이 ‘유원’이다. 유원이 아기였을때, 집에 불이 나게 된다. 윗집에 사는 아저씨가 담뱃불을 떨어뜨렸고, 그것이 불씨가 되어 집이 활활 타게된다. 그 시간에 집에 있었던 건 유원과 유원의 언니 유예원. 그 당시 유원의 언니인 유예원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유예원은 동생을 이불포대기로 감싸고 베란다 밑으로 던진다. 밑에 있던 아저씨가 유원을 받으면서 아저씨는 다리를 다치게 되고 한쪽 발을 절게 된다. 유원은 그 뒤로 언니의 목숨을 대신 살아야한다는 압박감과 아저씨의 무례한 돈요구에도 아무 말 할 수 없는 가족들을 봐야했다. 그런 유원의 삶에 나타난 친구 수현. 수현은 사실 아저씨의 딸이었다. 그런 수현을 모르고 절친한 친구가 되고, 그 사실을 알고난 후로도 둘은 절친하다. 유원이 수현을 통해 얻는 위로와 수현이 유원을 통해 얻는 위안. 이 책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멈칫하고, 분노하고, 마음이 아팠다.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은 아니지만, 어딘가에 있을 유원의 행복을 바란다. 세상 모든 유원의 행복을 바란다.

더블린 사람들 (세계문학전집 307)

제임스 조이스. 어렵기로 유명한 <피네간의 경야><율리시스>를 쓴 아일랜드의 대문호이다. 원래는 그의 이름만 알고 있었지만, 도서관을 둘러보다 우연히 <더블린 사람들>을 읽게 되었다. 조이스가 쓴 책들 중 그나마 대중들이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책이다. 그가 쓴 책들 중 가장 대중친화적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완독하고 작품 해설을 볼 땐 정말 놀라웠다.

 

감상

우선 책의 구성이 흥미로웠다. 이 책은 15개의 단편 작품을 유년기청년기성년기공동생활이라는 큰 구조로 구성하고 있다. 유년기에서 성년기까지의 작품은 주인공 중심의 일화를 다룬다. 공동생활로 넘어가면서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나오고, 다양한 인간들의 상호작용을 보여준다. 읽으면서, 점점 나이가 많은 주인공으로 바뀐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개인에서 집단으로의 변화는 확실하게 인지하지 못했다. 이러한 구성 덕분에, 책이 굉장히 체계적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통 단편집을 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지만 주제의식이 비슷한 작품을 묶어둔 경우를 많이 봤다. 작품들이 별로 연관되어 있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더블린 사람들>은 단편집이지만 마치 하나의 장편처럼 느껴진다. 이런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할 텐데, 조이스가 대문호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 것은 조이스의 솔직함이다. 그는 타락한 아일랜드의 모습을 현실 그대로 묘사하려고 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나라의 문제점을 진지하게 지적함으로써 정신적 해방을 도모했던 것이다. 사람 또한 자신의 과거를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과거에서 해방되고, 미래를 도모할 수 있게 된다. 그런 것처럼 아일랜드 사람들이 타락과 혼란에서 해방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국뽕도 애국심에 도움 되기는 할 테지만, 문제점을 온전히 직면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에 좋은 도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좋았던 것은 묘사이다. 사실 이 책의 묘사는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배경 묘사가 매우 자세해서 책 속의 세계에 한 번 빠져들면 마치 상황을 직관하는 느낌이 든다. 여러 인물이 나오는 부분은 배경을 파악하는 데 힘을 좀 써야 한다. 따라서 집중해서 읽지 않으면 한순간에 흐름을 놓쳐버리게 된다. 이러한 점에서 독자가 지루함을 느끼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것 같다.

묘사에 더 얹자면, 이 책의 묘미는 에피파니(epiphany)”이다. 에피파니란 행동이나 마음 자체에서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정신적 현현을 말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인물이 특정 사건이나 자신의 본질 등을 깨닫는 현상이다. 책에 나오는 내용으로 예를 들자면, <애러비>의 마지막 부분에서 소년이 거의 문 닫은 바자에서 어둠이 깔린 곳을 허무하게 응시하는 장면이 있다. 또한 <작은 구름>의 챈들러가 현실을 직면하는 부분, <가슴 아픈 사건>의 더피가 뒤늦게 외로움에 빠진 것 등이 있다. 아마 수록된 단편 대부분에 어느 정도의 에피파니가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마치며

고전답게, 작품 해설을 읽는데도 정말 재밌었다. 책에 숨겨진 내용, 이해를 더 깊게 해주는 내용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왜 조이스가 20세기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대문호이고, 그의 작품이 고전으로 평가받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율리시스>를 읽어봐야 그의 진가를 알 수 있겠지만.. 아무튼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매번 다른 인물들과 다른 배경들을 파악하느라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모든 작품이 연결되어 하나의 구성을 이루니 정말 새로웠다. 킬링타임 위주의 소설보다 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작품을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더블린 사람들>을 읽어보길 바란다!

정의란 무엇인가 (한국 200만 부 돌파, 37개국에서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의)

이 책에서 보여주는 정의라고 하는 것은 미덕, 자유, 이성, 관점 등 주로 4가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것을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법학과를 희망한다면 이 책을 한 번씩 읽어봤을 것이다. 정의를 접근하는 첫 번째 방식은 정의란 공리나 복지의 극대화,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방식은 정의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 방식은 정의란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 문구는 페이지 379쪽에서 나오는데 우리가 생활과 윤리, 도덕적인 관념에서 배우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한다고 주로 말할 수 있다. 우리가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올바른 행동 실천도 중요하겠지만 정의는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가치를 측정하였을 때 사람마다 측정하는 기준이 다르고 공정하게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사회 구성원들의 많은 무수한 고민이 전반적인 사회 가치를 상승 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우리가 쉽게 일상생활에서 지나칠 수 있는 일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고 즉 성찰 할 수 있는 시간을 지니게 해준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는 다 다르고 그걸 측정하는 가치도 다르지만 어떻게 정의를 해석하고 흡수하냐에 따라 사회가 달라질 것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78년 초판 발간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도시 하층민의 고통을 담아낸 내용이다. 4차 산업 시대로 발전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 사람들의 희생 중 여기서 나오는 주인공들이 바로 희생자이다. 70년 개발 도시 산업으로 인해 주인공은 자신의 주거지를 잃게 되었고 한순간에 집을 잃어버리는 처지가 되었다. 
여기서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라 다양하게 나오는데 영희 영수 등 가족들의 남매 이야기와 부모 이야기로 주를 이룬다. 영희는 자신의 입주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픈 결과를 내놓았다. 또한 영수도 노동 운동을 열심히 펼치며 그들 또한 열심히 노력하려고 애쓰고 있다. 또한 영수의 가족들과 상반되는 부유한 집안들의 이야기가 대조 되면서 나오기 때문에 영수의 가족들이 더 아프게 느껴지고 동정심이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을 읽고 우리가 4차 산업 시대로 발전하면서 그 과정 속에는 수많은 아픔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5년간의 수요일 (리커버 특별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 수요시위)

이 책은 1992년 1월 8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수요 시위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나온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우리나라 역사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잠시 동안 잊었던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 중 일부분인 ‘위안부’를 생각하게 되면서 4차 산업 시대에 살아가며 우리가 짊어야 할 숙제는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위안부로 생활하시며 일제 강점기 시절 아픈 상처를 가지고 오신 할머니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겪은 상처를 쉽게 잊을 수 없듯이 그들도 똑같이 쉽게 잊을 수 없을 것 이다. 또한 한국사 시간에 일제 강점기 역사에 대해 배울 때 일본 군 ‘위안부’라는 명칭을 계속 써도 괜찮을지, 어떻게 바꾸면 좋을지에 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과거 중학교 재학 당시 짤막하게 피해자들의 시선을 중점으로 배웠고 고등학교 이후에는 ‘위안부’와 관련된 내용은 뒷전으로 배우고 일제 강점기의 무단 통치와 문화 통치에 대해서만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더 알아보면 좋을 것 같아 일본 군 ‘위안부’에 대한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작가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의 정의를 시작으로 이 책을 열기 시작하였다.  위안부 이름에 대한 수업을 하고 난 후, 그 문제에 대한 이름을 규정하고 확실히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한국사에서 역사를 가르칠 때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 투사들 뿐만 아니라 위안부 사람들의 내용도 생생히 파해쳐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쉽게 왜곡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어렸을 때 ‘궁금한 이야기 WHY’ 책을 주로 읽으며 한국사와 관련된 책을 접했다. 이 책은 그것보다는 성인들과 청소년의 시선에 맞추어 ‘조선’이라는 역사를 좀 더 깊게 파악하고 신중하게 알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은 500년을 이어져 왔다. 또한 지금 이 시기 2022년을 기준으로 역사를 따져봤을 때 아주 최근에 존재했던 나라이자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나는 조선 시대로 태어난다면 어떠한 신분으로 태어날 것인가’가 나오는데 내가 어떠한 신분을 가지고 있는 지에 따라 이 책을 바라보는 시선이 슬플 수도 때로는 기쁠 수도 있고 재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잘 아는 임진왜란. 우리나라가 외부의 접촉을 물리침으로서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생각하지만 ‘ 임진왜란 당시 그들은 과연 정말 행복했을까?’ 라고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외세의 침략을 물리쳤지만 그만큼의 커다란 생명들을 빼앗아 같다. 지배층은 자신들의 권력과 입지를 단단히 하고 우리나라를 지켜냈다는 자부심에 차 있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백성들은 나라를 지키고 자신들의 소중한 사람들을 빼앗긴 셈이 되었다. 이러한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아직 역사 속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전쟁 속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고 느끼게 해준 책이 되었다. 

총, 균, 쇠 (무기 병균 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퓰리처상 수상작)

이 책은 제목과 연관을 지어 인류의 역사를 가장 크게 받은 혹은 받게 된 총, 균, 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상업이 발달하고 무역이 활발해지며 이전까지 많은 역사가 존재 했고 그 안에 수많은 전쟁들이 존재하였다. 유럽이 큰 전성기를 맞이하여 아프리카 대륙을 차지하고 이후에 쇠퇴기가 찾아왔고. 그 이후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일본의 을사조약 체결을 맺어 일본의 식민지 아래에 힘겹게 살아왔는지, 2차 세계 대전 때 독일과 일본이 지게 되었는지 이유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 3차 세계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겠지만 총,균,쇠를 떼지 못하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이 말 뜻은 전쟁으로 인해 총과 연관을 짓는 것이 아닌 평화를 위해서 총으로 그들을 협박하기도 하고 지금과 같이 코로나 19시대에 균으로 인해 백신과 치료제를 끊임없이 만들며 세계 안정과 평화를 누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는 쇠가 가장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여기서 말하는 쇠는 서로 각기 다른 나라에 빈부격차를 유발하기도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개발을 위해서도 아마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4차 산업 시대에 AI가 모든 것을 다 대체하고 연관성이 깊다고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우리는 여전히 총, 균, 쇠와 연관되어 가며 살아갈 것이고 AI가 등장을 한다 해도 같이 공존하며 살아갈 것이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세계적으로 볼 때 UN의 많은 기부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이 생기고 기아가 발생하는 이유는 선진국의 이기심으로 발생했다고 본다. 남는 곡식을 폐기해버리거나 아프리카 땅을 매입하여 유럽인들에게 값비싸게 채소나 각종 과일을 파는데 이런 자잘한 행동들이 가난을 낳고 있는 주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조금 더 성숙하게 그들을 배려하고 자신이 이기심을 가져가지만 않는다면 세계의 절반, 그 몇 분의 1이라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어쩌면 대부분의 숙제로 남겨져 있는 기아 문제, 식량 부족 문제, 가난 문제에 대해 이미 선진국들은 해결책을 알고 있을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북한에서도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 북한은 자신들의 자금들을 식량 해결로 쓰기보단 군사력 증권과 핵 개발에 힘을 쓰고 있고 식량 문제 발생 시 남한과 중국 다른 나라에게 원조를 바라는 무책임한 상태에 글렀다. 또한 아프리카도 쿠데타가 잦아들어 자신들의 권력을 앞세우기 위해 막대한 자금들을 식량 원조에 힘쓰는 것이 아닌 군사력 증권을 높이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선진국의 무책임한 자잘한 낭비 행동도 문제지만 가난한 나라를 지도하는 지도자들의 행동도 우리가 앞으로 주의 깊게 볼 커다란 숙제라고 생각한다. 그저 우리가 먹는 음식과 낭비하는 행동들을 생각하는 것을 앞세워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온 자금들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단단한 공부 (내 삶의 기초를 다지는 인문학 공부법)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어떻게 공부해야 효율적일까?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한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내가 특히 궁금했던 부분은, 속독이 좋은 건지, 얼마나 빠르게 읽어야 하는지, 하나하나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은지 같은 세부적인 내용들이었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 독서법 영상도 여럿 보았지만, 명쾌하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가벼운 마음으로 중고서점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었다. 나는 한순간의 고민도 없이 책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서점 구석 벽에 기대서 훑어보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법, 책 읽는데 좋지 않은 습관, 예습하는 방법 등등감탄스러울 정도로 상세하게, 내가 궁금했던 내용들이 제시되어 있었다. 책의 뒷면에는 영미권에서 60년간 읽힌 공부법의 고전이라고 설명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구매한 후, 집에 와서 꾸준히 읽기 시작했다.

 

책의 장점

책의 내용은 대만족이었다. 이 책은 효율적인 공부법에 대한 나의 갈증을 해소시켜주었다. 또한 상황에 맞추어 적합한 방법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나를 이끌어 주었다. 목차만 보더라도 공부에 대해 다방면으로 다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4장인 읽는 것에서 더 얻는 법에서 독서법에 대한 궁금증을 말끔히 해결했다. 나머지 장들에서는 어휘, 외국어, 역사 공부법 등 다양한 것들을 배웠다. 물론 배운 것을 직접 실천해본 후 나에게 맞게 수정해야 하겠지만, 이 지식들을 처음 접한 것만으로도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게 되었다.

내가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매 장의 도입에서 잠언을 제시해 동기를 자극해 준다는 점, 부드럽게 쓰여 있어 읽기 편하다는 점, 공부법을 자세하게 알려준다는 점이 있다. 잠언의 예시로, 7장의 도입에서는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침략자가 가장 먼저 불태우는 것은 도서관이다.”라는 토마스 모어의 말이 적혀있다. 이런 짧은 문장만 보더라도,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축복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렇게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공부하는 데 흥미가 생기도록 글을 쓴 부분에서, 독자의 학습을 돕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절실히 느껴졌다.

 

책의 단점

물론 단점도 있다. 10~14장은 특정 학문에 관한 공부법이라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 공부법을 무작정 받아들이고 따라 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10장에서 14장은 외국어, 수학, 과학, 시험 등 특정한 영역에서 공부하는 방법을 다룬다. 이 부분은 학생이라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일반인들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도 후반 부분은 빠르게 훑어보기만 했다. 그리고 아무리 공부법의 고전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잘 맞는 방식이 있고 안 맞는 방식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무작정 좋다고 생각하며 따르기보다는, 하나씩 시도해 보고, 효과가 느껴지면 습관화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마치며

이 책을 읽고 독서를 하며 얻는 이점이 확실히 늘어났다. 생각 정리도 잘 되고, 시간당 읽는 페이지 수도 늘었다. 역시 모든 일에는 항상 더 효율적인 방법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학습법에 대한 연구도 끊임없이 해나가야겠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