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좋은 기회로 독서클럽에 참가하게 되었다. 독서 클럽에서 활용할 책은  「멋진 신세계」 였다. 처음 이 책을 사고 제목만 봤을 때는 굉장히 희망찬 결말로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생각했던 결말과는 반대로 존의 자살 이라는 극단적인 결말로 끝났다. 이에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
  제일 인상깊었던 부분은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 이라는 표어를 앞세워 사람을 계급화하여 다룬다는 것이었다. 올더스 헉슬리가 그린 멋진 신세계에는 계급 있으며 각자의 위치에 만족해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과연 다들 진정으로 만족해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소마라는 일종의 마약을 통해 감정을 통제당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세계를 지향해야 할까.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이 글을 쓰는 지금, 2022년 1월의 후반은 대선이 채 50일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각 후보는 저마다의 공정한 사회로의 도약을 약속하고 나섰다. 무엇이 공정이고 불공정인지에 대해서는 제각각 다른 의견을 내비치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 작년부터 모든 언론과 정치권에서 가장 화두가 됐던 주제는 ‘공정’이다. 한국 사회에서 활발히 논의된 공정은 통상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이뤄졌다. ‘인국공 사태’라 일컬어지는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논란만 봐도 가히 그러하다.
  마이클 샌델은 책을 통해 누구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능력주의의 신화가 결국 극단적으로 세상을 분열시켰다고 지적한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기회라는 건 결국 개개인의 재능과 운에 의해 결과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이 필연적이며, 이 재능과 운에 대한 가치 보상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 고스란히 개인의 능력 혹은 열등함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말이다. 삶의 결과들을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주의는 결국 승자에게 아첨을, 패배자에게 모멸감을 주는 사회를 고착화시켰다. 샌델은 해당 논리를 전개해나가면서 개인의 업적에 대한 사회의 다양한 평가와 보상 체계에 대한 철학적 가치에 대해 설명한다. 이 세상을 망쳐놓은 것이 ‘똑똑한’ 이들이며, 특히나 대학은 이 똑똑함을 공인해주며 그간 권력이 돼버렸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학이 우리 모두를 경쟁의 고통 속에 빠트렸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학생부종합전형의 각종 문제점과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등을 참고하면서 한국 사회에서의 학력이 끼치는 영향에 대해 숙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자가 아니더라도, 사회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존엄하고 고상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조건이 평등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과정은 국가와 같은 공동체의 개입이 필요하다.
  샌델의 주장에 한계도 존재한다. 샌델은 사회적/경제적 이득을 취한 사람들이 성공에 대한 운의 작용을 인정하고, 겸손한 태도로 소통하며, 공동선에 기여해야 함을 피력한다. 하지만 이는 능력주의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소시킬 수 없다. 구조적 문제를 간과했다는 지적이 당연하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 책이 출간된 지 1년이 넘은 지금도 능력주의에 대한 갑론을박이 여전하다. 각 분야의 ‘전문가’라 여겨지는 분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것을 보니 4주간 뾰족한 묘안을 내놓지 못한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기분을 조금은 지울 수 있었다. 하지만 하루빨리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에 대한 공론의 장이 더 깊게, 더 넓게 확대돼 사회적 합의를 이루길 바란다. 특히나 과도한 경쟁 사회를 살고 있는 20대, 30대 등의 청년층에게 이 책을 권한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 (100쇄 기념 에디션) (100쇄 기념 스페셜 에디션,주제 사라마구 장편소설,Blindness)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익명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을 통해 인물들 각각의 본질적인 모습들을 더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렇기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스토리가 진행됨에 있어서 더욱 집중하며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책 초반에 눈이 먼 사람들은 감염병 환자로 분류되어 정부의 조치에 따라 정신병원에 격리된다. 이 격리는 상당히 처참한 모습으로 이뤄졌는데, 공공을 위한 조치이더라도 그 방식의 적절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실명 증상의 확산세가 감염병의 조건을 갖추었다는 판단 아래 환자들에게 격리를 행한 것은 분명 옳은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개인의 인권을 중시하는 시대이지만, 그 인권 또한 공공의 안전을 비롯한 사회적 안정이 이루어져야 보장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작중에서는 다소 소량의 식량 배급을 제외하고는 복지와 치안 등을 포함한 어떤 것의 제공도 이루어지지 않아 격리 시설 내에서 많은 갈등과 사고가 생겨난다. 이는 개개인의 인권을 논하기 전에 공공의 안전에서부터 어긋나버린 방식의 조치가 아니었나 싶다. 격리시설 속에서 일어나는 폭행 및 성추행을 비롯한 갈등과 부상자에 대한 연민 등 여러 사건과 감정들을 보며 시력을 잃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욕망과 사회의 모습 자체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음을 느꼈다. 또한,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본질이 사회의 모습 내지는 성격을 규정한다는 뜻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아낸 것 같았다.
작중 안과 의사는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를 진료했는데, 그동안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정확한 병을 진단할 수 없었기에 집에서 서적들을 찾아보다가 눈이 멀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에 거울에 마주선 장면에서 “그의 비친 모습은 그를 볼 수 있는데, 그는 그의 비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물론 살아가면서 노후와 가정을 비롯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가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음은 분명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를 위한 삶과 시간을 잃는다면, 의사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그동안 해왔던 노력과 최선은 아무 의미가 없어짐을 가르쳐주고 있는 구절이라고 생각했고, 인상깊게 다가왔던 것 같다.
정신병원에 격리되고 나서 처음에 모인 인원끼리 대화를 나눌 때, 사팔뜨기 소년은 자신의 눈에 대한 결함을 밝히는 것을 꺼려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결함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그런 신체적 결함이라는 것은, 잘 알아보지 못하다가도 이야기를 듣고 나면 눈에 쏙 들어오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사람들은 신체적 결함보다 내면적 결함이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판단할 때에 외적인 것을 꽤나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게 되면 본인들 조차도 타인에게 쉽게 보여지는 외적인 것에 대해 신경을 더욱 쓰게 되고, 내면의 발달은 점점 악화되기만 할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눈’의 방향성을 새로이 잡아야 함을 일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책에서는 검은 안대의 노인을 필두로 ‘눈이 머는 순간에 보았던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이 딱히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중요하게 작용하지도 않는데, 유독 나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 부분을 읽으며 갑자기 침대에 눕기 전 마지막으로 한 것, 유튜브에 가장 마지막으로 검색한 것, 어제 가장 마지막으로 만났던 사람 등을 되짚어 보는 나를 발견했다. 현재 우리 가까이에 있고 익숙해져 있는 것들이 사라졌을 때가 되어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장면이었다.
격리시설 속 깡패 무리는 식량을 무력으로 차지하고 다른 병동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데, 식량에 대한 여성들의 성 상납까지 요구하기에 이른다.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가 자신의 아내는 절대 못 간다고 선포하자, 의사는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윤리에 따라 행동하는 거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는 대사를 한다. 작중 작가의 말처럼 존엄성이란 값으로 매길 수 없으며, 양보하기 시작하면 결국 인생이 모든 의미를 잃을 수 있다. 또한, 아내의 성 상납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남편의 당연한 도리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아내가 남편의 소유물과 같은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하는 의사의 모습에 놀랐고, 어쩌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상황임에 읽으면서도 절망적으로 다가온 장면이었다.
물론 이러한 비인륜적 행위를 통해 식량을 독차지하는 깡패 무리를 보며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다만 더 큰 갈등을 빚는 살인을 저지른 아내의 행위는 복수심에 지나친 행동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나에게 검은 안대의 노인의 대사는 소위 말해서 한 방 먹였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가장 지독한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이곳에서, 수치심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하이에나 굴로 들어가 그를 죽일 용기를 가졌던 사람 덕분이기 때문이오. “ 존엄을 바탕으로 한 수치심에 따른 행동이 우리의 배를 불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일말의 수치심이 남아있다면 우리의 권리는 주장할 수 있어야 함을 느끼게 해준 가장 인상깊은 부분 중 하나였다.
작중에서는 눈먼 이들이 떠나고 남은 노파를 보여주는데, 사람들이 떠남으로써 식량을 자신이 독차지할 수 있음에도 아무도 없다고 느껴지는 고요 속에서 노파는 눈물을 흘린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계속 살고 싶은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 이는 식량을 포함한 물자는 확보했지만, 홀로 남음으로써 살아갈 이유가 사라졌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앞선 이야기에서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인간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상호작용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담은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야기의 막바지에서 사람들의 시력이 돌아오고,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의사의 아내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라는 말을 한다. 인간에게는 선한 면이 있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악한 면도 존재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러한 알고 있어도 보고싶지 않은 악의 면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만일 갑작스레 실명 상태가 된다면 책의 인물들처럼 본능에 충실히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눈’이 있음으로써 교육을 통해 사회적 안정과 욕구의 절제가 유지되고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

당신은 이 문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은 곧, 성공하기 위해서는 노력만 하면 된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100%의 노력으로 성공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단 1%일지 몰라도 개인의 성공에는 ‘운’이 필요하다. 능력주의를 기반으로 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해당 도서는 능력주의의 이면을 들추어 보며 현대 사회의 공정성과 정의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해당 도서는 능력주의가 승자와 패자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이며 사회적 지위의 획득과 일종의 계층 이동, 학력주의, 성공에 대한 운의 작용, 능력주의의 폭정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기회의 평등에 대한 대답은 결과의 평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쟁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도 공정하고 존엄하게 삶을 살 수 있는 출발점, 조건의 평등에 있음을 시사한다. 능력 있는 사람이 더 큰 대우를 받고 보다 큰 이익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 나에게 새로운 시각을 일깨워 준 책이다.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이 책의 구성은 “대학입시의 모순”으로 시작해서 경쟁의 승자와 패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한 공정과 보상의 모순, 미국의 리버럴들이 트럼프에게 진 이유, 사회 모순을 개인의 능력으로 돌리는 “학력주의”, 성공과 윤리의식, 학벌대학철폐, 일의 존엄성에 대해 주제별로 챕터를 분류하고 있다.
먼저 이 책을 읽고 가장 처음으로 든 생각은 우리 사회는 능력을 토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며 얼핏 보면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출발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선천적인 요인과 경제력 등 많은 부분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기회의 평등으로 인해 많은 불평등이 가려지고 모두가 공정하다고 여긴다. 또한 능력주의로 인해 사회 상층부는 자신의 노력만이 자신의 성공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여 오만해지고 하층부는 자신의 능력을 탓하며 굴욕감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능력주의의 문제의식을 제기하여 학력과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것이 능력주의의 폭정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접해 능력주의의 인식이 변화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이 책의 구성은 “대학입시의 모순”으로 시작해서 경쟁의 승자와 패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기독교에서 말한 공정과 보상의 모순, 미국의 리버럴들이 트럼프에게 진 이유, 사회 모순을 개인의 능력으로 돌리는 “학력주의”, 성공과 윤리의식, 학벌대학철폐, 일의 존엄성에 대해 주제별로 챕터를 분류하고 있다.
먼저 이 책을 읽고 가장 처음으로 든 생각은 우리 사회는 능력을 토대로 모든 것을 평가하며 얼핏 보면 공정하고 모두가 같은 위치에서 출발한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선천적인 요인과 경제력 등 많은 부분에 차이가 있다. 하지만 모두에게 같은 기회가 주어진다는 기회의 평등으로 인해 많은 불평등이 가려지고 모두가 공정하다고 여긴다. 또한 능력주의로 인해 사회 상층부는 자신의 노력만이 성공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여 오만해지고 하층부는 자신의 능력을 탓하며 굴욕감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능력주의의 문제의식을 제기하여 학력과 직업의 귀천을 따지지 않는 것이 능력주의의 폭정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 능력주의의 인식이 변화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멋진 신세계

  멋진신세계는 지금으로부터 200~300년 후의 시점으로써, 늙음, 외로움,고통, 불만족이 없는 세계이다. 이 세계는 정말로 멋진신세계일까.

 과학과 자본주의의 결합이 어떠한 견제 없이 무한히 팽창할 때, 소멸되는 인간다움. 사회의 부품화가 되어 버린 사람들. 사유를 잃은 사회의 무서운 단면.

 멋진 신세계 속에서 사람은 모체가 아닌 실험실에서 태어난다. 사람들은 총 다섯 개의 계급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으로 구분된다. 각 계급의 사람은 자신의 계급에 불만을 갖지 않도록 교육 받는다. 이 세계에서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없다. 모든 이가 실험실에서 태어나거니와, 모체에서 태어나기를 방지하기 위해 모두가 불임이다.

– [4S]
이곳 사람들은 쾌락을 느낌으로써 행복한 삶을 산다. 모두가 자유연애(S)를 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촉감영화(S)와 스포츠 경기(S)를 본다. 간혹 스트레스를 받을 땐,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약인 소마(S)를 먹는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길 때, 그것을 소마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겨 버린다. 이러한 4S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유를 앗아간다.

– [헨리 포드, 대량생산의 아이콘]
멋진 신세계에는 유일신이 있다. 헨리 포드다. 조립 라인이라는 당대 획기적인 발상으로 자동차를 처음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던, 포드사의 창업주이다. 사람을 만들어내는 부화-습성 훈련 런던 총본부의 건물에는 십자가가 아닌, ‘T’ 자가 걸려 있다. 바로 포드를 자동차왕으로 만들어 준 포드‘T’형을 본뜬 것. 한 개의 난자에 엡실론 아기 96명까지 태어나는 것을 고려한다면 건물에 걸려 있는 T는 의미심장하다.

– [야만인 존]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멋진 신세계로 넘어 온 인물 존. 존은 모체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로부터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여러 교육을 받았다. 존은 멋진 신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유하는 인물이다. 존과 세계관의 최고 권력자 중 한 사람인 무스타파 몬드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이 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요구합니다.”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임을 인식하게 된 존의 모습이다. 

– 한편으로 보면 멋진 신세계는 안전한 사회이다. 두 인물의 대화처럼, 이곳에선 늙지도 추악해지지도 매독이나 장티푸스에 걸릴 일도, 걱정과 불안의 밤을 새울 필요도 없으니까. 디스토피아 소설로서 조지오웰 의 1984 와 많이 비교되는데, 이 소설을 단순 디스토피아라 할 수 있을까.

멋진 신세계

여러분의 유토피아는 어떤 곳인가?
온 세상 사람들이 공평한 곳?
모든 것이 안정적인 곳?
불행하게 만들 모든 곳이 없는 곳?
이러한 곳이 올더스 헉슬리가 만든 멋진 신세계이다.
나쁠 점 하나 없어 보이는 이 세계에 끊임없이 반기를 드는 사람이 있으니, 멋진 신세계와 다르게 개발이 되지 않은 곳, 즉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온 ‘존’이다.
처음에는 멋진 신세계에 감탄했지만, 날이 갈수록 신세계 사람들의 ‘어머니’, ‘아버지’, ‘가족’에 대한 혐오와 서로 깊은 사랑에 빠지지 않으며 육체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 모습, 고통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다양한 오락과 마약을 즐기는 모습 등으로 존은 큰 충격을 받는다. 이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존은 신세계에 사는 사람들에게 ‘야만인’이라 불리며 심지어는 동물원에 있는 동물 취급까지 받는다.
사람들은 안정적이게 되었지만, 그의 대가로 ‘불행할 권리’를 빼앗겼다.
인간은 오로지 행복하기 산다는 심오한 질문에 그렇다면 불행해질 일을 없앤다면 행복해지겠구나! 라는 답을 내놓는 게 맞느냐는 끊임없는 질문을 내놓게 하는 책이다.

레버리지 (자본주의 속에 숨겨진 부의 비밀)

“레버리지 할 것인가, 레버리지 당할 것인가?”

지은이인 롭 무어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묻고 있는 말이다. 레버리지를 하는 것이 부를 축적하며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며, 우리는 레버리지를 해야 한다고 한다. ‘레버리지’가 과연 무엇인지, 실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이다. 성공한 사람에 관한 책이며,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나와 있어 우리에게 좋은 생활 습관을 갖게끔 하고, ‘레버리지’라는 것을 알려주며 기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타파시켜주는 좋은 책이다.

 처음 1장을 읽었을 땐 이 책이 너무 이상적인 것들만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이 책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1장을 읽을 땐 특히 심했다. 더 열심히, 더 오래 일하라는 말은 이미 옛날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은 사회적으로 굳어져 있는 말이고, 만약 내가 이 책의 내용처럼 레버리지를 하려고 하더라도 잘 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초반에 나왔던 봅의 이야기처럼 회사에서 일을 했다가는 해고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99퍼센트의 전략을 따라하지 않고 상위 1퍼센트의 전략을 따라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 역시도 상위 1퍼센트를 어느 정도 따라할 여유가 있어야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극단적인 예이긴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네가 성공하려면 상위 1퍼센트의 사람들을 따라 해야 해! 지금처럼 살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로 조금은 가진 자들에게 하는 이상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느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고 VVKI 전략에 대해 알려주면서 우선순위로 무엇을 두어야 하는지,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하면 지켜낼 수 있는지에 대해 짚고 넘어갈 수 있게끔 해주어 좋았다.
 1장을 읽을 때 생각했던 것과는 약간 반대로 2장을 읽을 땐 나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았다. 지식을 습득하고, 자기계발 및 성공한 사람들에 관한 책을 읽으며, 나보다 성공한 사람들과 파트너십을 맺음으로써 본인에게 투자를 많이 하라, 나이를 먹고 나서 자유를 누릴 생각 하지 . 말고 지금부터 레버리지를 함으로써 자유를 얻어라, 본인이 쓰는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며 가치 있는 시간에 투자를 하고 나머지는 레버리지 하라, 감정 정복을 통해 삶을 관리 하라 등 현재 우리가 습관으로 가지고 있으면 좋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미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당연하게 알고 있을 법한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금 이 내용을 상기 시키며 우리가 어떻게 생활하면 좋을지에 대해 말하고 있어 좋았다. 특히 감정 관리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다. 나는 나의 감정에 많이 지는 사람인데 이 감정들에 대해 언급하며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를 알려주어 나에게 있어 유용했다.
 3장은 앞서 2장에서 언급한 파트너십을  한 번 더 언급하며 내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공동체에 대한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 한다. 열등감을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보았는데 이 열등감으로 자극을 받으면 역으로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것을 배웠다. 다음으로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해 또다시 언급을 하는데 삶은 시계추와 같아서 중앙에 머무르지 않으니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고 생각하지 말고 두 가지를 함께할 수 있도록 하라는 말을 전한다. 신박하며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항상 둘은 함께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함께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마지막 4장은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리더십은 동아리 회장직을 맡으며 항상 나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펩시 사장을 고용한 사례와 이 책의 저자인 롭 무어의 사례로 리더란 무엇인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내가 잘못 했던 것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있게끔 만들어 주었고, 이 파트를 읽으면서 내가 한 번 더 어떤 공동체의 리더 자리를 맡게 된다면 조금은 더 나은 리더가 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또한, 부를 축적하는 방법도 알려주고 있어 돈을 제대로 모으지 못하는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되었다.

 총평을 하자면 이상적인 것들을 행하라고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도 많고,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알고는 있어도 잊고 사는 것에 대해 다시 언급해주는 것이 좋은 책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대학생이 주 독자층이라기보다는 사업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더 잘 맞는 책이라고 느껴진다. 또, 요즘 MBTI가 유행인데 MBTI의 P와 J 중 J인 사람들에게 더 맞는 책인 것 같다. 그리고 경제경영 베스트셀러 1위이지만 그쪽보다는 자기계발 및 심리 쪽에 더 맞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아의 문으로 (구병모 장편소설)

“상아의 문으로” 는 도시 전역에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을 할 수 없고, 꿈이 현실을 장악하는 ‘꿈 증상’이 널리 퍼진 도시에서 이 증상을 겪는 진여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책이다. 초반에 이 책을 읽을 때는 난해한 표현들과 생소한 어휘들로 읽기 매우 어려웠고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책의 중반부로 갈 수록 이러한 어려운 표현들을 통해 주인공인 진여가 겪는 혼란스럽고 뭐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르겠는 꿈 증상을 독자들이 간접적으로 겪어보도록 하기 위한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표현들을 이런 식으로 이해를 하고 나서부터는 책을 읽는 것이 조금은 수월해지고 이해하기도 쉬웠던 것 같다. 또한 등장인물이 진여, 무기, 마야 이 셋 뿐인데 단 세명의 등장인물들로도 탄탄한 스토리로 전개되었던 것 같고, 책의 후반부의 반전 요소까지 더해져 흥미롭게 읽었던 것 같다. 
“상아의 문으로” 책으로 토론을 진행하면서 이 책에는 정말 생각해볼 거리들이 많다는 것들 느꼈다. 등장인물의 이름, 반영된 사상이나 종교적 의미, 작가의 의도적 표현 , 등장인물의 역할 등 팀원들과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며 표현의 의미를 추리해가는 과정이 재미있었고 소설을 더욱 의미있게 읽고 접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전형적인 소설 말고 새로운 형식을 접하고 싶은 독자나 철학, 종교적인 요소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읽는 다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어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진여가 자신이 마야의 꿈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되고 “마야와 진여가 조금의 접점도 없는 완전한 남남이며 실상 타인이라는 존재가 누군가와의 상대적 관계에서만 성립한다고 볼 때 진여는 남남 조건도 갖추지 못 한 꿈 속의 환상, 마야가 겪는 수많은 꿈 증상 가운데 유독 끈질기고 고집스러운 바이러스라고 한다. 마야에게 흡수될 근거도, 마야의 과거 한 조각을 이룰 단서도 없이 다만 박멸되어야 하는 존재. 처음부터 여기 없었다는 듯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내일의 비옥한 꿈을 발아시키고자 부식토 아래 파묻힐 수도 없는, 꿈 속 연산의 오류 “라는 문장이다. 진여는 자신이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고 한 사람의 꿈 속에서만 존재하며, 자신 때문에 한 사람이 꿈 속에서 깨어나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자신 스스로 바이러스, 박멸되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그러한 사실을 받아드리는 과정이 매우 힘들었을 것 같다. 저 문장을 읽었을 때 진여 스스로가 자신을 저렇게 지칭하는 것이 내가 느끼기에는 너무 슬펐고 속상했었다. 내가 진여였다면 자신이 그러한 존재라는 것을 끝까지 부정하며 믿지 않았을 것 같은데 진여는 받아드리고 스스로 사라지는 것을 선택했다는 것이 매우 멋있으면서 마음을 먹먹하게 하는 인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