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눈먼 자들의 도시 (100쇄 기념 에디션) (100쇄 기념 스페셜 에디션,주제 사라마구 장편소설,Blindness)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익명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표현 방식을 통해 인물들 각각의 본질적인 모습들을 더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렇기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스토리가 진행됨에 있어서 더욱 집중하며 흥미진진하게 읽어나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책 초반에 눈이 먼 사람들은 감염병 환자로 분류되어 정부의 조치에 따라 정신병원에 격리된다. 이 격리는 상당히 처참한 모습으로 이뤄졌는데, 공공을 위한 조치이더라도 그 방식의 적절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다. 실명 증상의 확산세가 감염병의 조건을 갖추었다는 판단 아래 환자들에게 격리를 행한 것은 분명 옳은 조치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개인의 인권을 중시하는 시대이지만, 그 인권 또한 공공의 안전을 비롯한 사회적 안정이 이루어져야 보장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작중에서는 다소 소량의 식량 배급을 제외하고는 복지와 치안 등을 포함한 어떤 것의 제공도 이루어지지 않아 격리 시설 내에서 많은 갈등과 사고가 생겨난다. 이는 개개인의 인권을 논하기 전에 공공의 안전에서부터 어긋나버린 방식의 조치가 아니었나 싶다. 격리시설 속에서 일어나는 폭행 및 성추행을 비롯한 갈등과 부상자에 대한 연민 등 여러 사건과 감정들을 보며 시력을 잃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사람들의 욕망과 사회의 모습 자체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음을 느꼈다. 또한,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의 본질이 사회의 모습 내지는 성격을 규정한다는 뜻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아낸 것 같았다.
작중 안과 의사는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를 진료했는데, 그동안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정확한 병을 진단할 수 없었기에 집에서 서적들을 찾아보다가 눈이 멀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에 거울에 마주선 장면에서 “그의 비친 모습은 그를 볼 수 있는데, 그는 그의 비친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물론 살아가면서 노후와 가정을 비롯한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가기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옳음은 분명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를 위한 삶과 시간을 잃는다면, 의사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그동안 해왔던 노력과 최선은 아무 의미가 없어짐을 가르쳐주고 있는 구절이라고 생각했고, 인상깊게 다가왔던 것 같다.
정신병원에 격리되고 나서 처음에 모인 인원끼리 대화를 나눌 때, 사팔뜨기 소년은 자신의 눈에 대한 결함을 밝히는 것을 꺼려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다른 결함들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그런 신체적 결함이라는 것은, 잘 알아보지 못하다가도 이야기를 듣고 나면 눈에 쏙 들어오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사람들은 신체적 결함보다 내면적 결함이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판단할 때에 외적인 것을 꽤나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게 되면 본인들 조차도 타인에게 쉽게 보여지는 외적인 것에 대해 신경을 더욱 쓰게 되고, 내면의 발달은 점점 악화되기만 할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서 ‘눈’의 방향성을 새로이 잡아야 함을 일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책에서는 검은 안대의 노인을 필두로 ‘눈이 머는 순간에 보았던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이 딱히 스토리 전개에 있어서 중요하게 작용하지도 않는데, 유독 나에게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 부분을 읽으며 갑자기 침대에 눕기 전 마지막으로 한 것, 유튜브에 가장 마지막으로 검색한 것, 어제 가장 마지막으로 만났던 사람 등을 되짚어 보는 나를 발견했다. 현재 우리 가까이에 있고 익숙해져 있는 것들이 사라졌을 때가 되어서야 그것의 소중함을 느끼게 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 준 장면이었다.
격리시설 속 깡패 무리는 식량을 무력으로 차지하고 다른 병동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데, 식량에 대한 여성들의 성 상납까지 요구하기에 이른다.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가 자신의 아내는 절대 못 간다고 선포하자, 의사는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윤리에 따라 행동하는 거지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는 대사를 한다. 작중 작가의 말처럼 존엄성이란 값으로 매길 수 없으며, 양보하기 시작하면 결국 인생이 모든 의미를 잃을 수 있다. 또한, 아내의 성 상납에 대해 반대하는 것이 남편의 당연한 도리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아내가 남편의 소유물과 같은 존재가 아님을 분명히 하는 의사의 모습에 놀랐고, 어쩌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상황임에 읽으면서도 절망적으로 다가온 장면이었다.
물론 이러한 비인륜적 행위를 통해 식량을 독차지하는 깡패 무리를 보며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다만 더 큰 갈등을 빚는 살인을 저지른 아내의 행위는 복수심에 지나친 행동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나에게 검은 안대의 노인의 대사는 소위 말해서 한 방 먹였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가장 지독한 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이곳에서, 수치심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하이에나 굴로 들어가 그를 죽일 용기를 가졌던 사람 덕분이기 때문이오. “ 존엄을 바탕으로 한 수치심에 따른 행동이 우리의 배를 불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일말의 수치심이 남아있다면 우리의 권리는 주장할 수 있어야 함을 느끼게 해준 가장 인상깊은 부분 중 하나였다.
작중에서는 눈먼 이들이 떠나고 남은 노파를 보여주는데, 사람들이 떠남으로써 식량을 자신이 독차지할 수 있음에도 아무도 없다고 느껴지는 고요 속에서 노파는 눈물을 흘린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계속 살고 싶은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 이는 식량을 포함한 물자는 확보했지만, 홀로 남음으로써 살아갈 이유가 사라졌다는 뜻으로 다가왔다. 앞선 이야기에서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인간은 유대감을 형성하고 상호작용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교훈을 담은 장면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야기의 막바지에서 사람들의 시력이 돌아오고,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의사의 아내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라는 말을 한다. 인간에게는 선한 면이 있지만 누구나 그러하듯 악한 면도 존재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러한 알고 있어도 보고싶지 않은 악의 면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만일 갑작스레 실명 상태가 된다면 책의 인물들처럼 본능에 충실히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눈’이 있음으로써 교육을 통해 사회적 안정과 욕구의 절제가 유지되고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
멋진 신세계
과학과 자본주의의 결합이 어떠한 견제 없이 무한히 팽창할 때, 소멸되는 인간다움. 사회의 부품화가 되어 버린 사람들. 사유를 잃은 사회의 무서운 단면.
멋진 신세계 속에서 사람은 모체가 아닌 실험실에서 태어난다. 사람들은 총 다섯 개의 계급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으로 구분된다. 각 계급의 사람은 자신의 계급에 불만을 갖지 않도록 교육 받는다. 이 세계에서는 가족이라는 개념이 없다. 모든 이가 실험실에서 태어나거니와, 모체에서 태어나기를 방지하기 위해 모두가 불임이다.
– [4S]
이곳 사람들은 쾌락을 느낌으로써 행복한 삶을 산다. 모두가 자유연애(S)를 하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촉감영화(S)와 스포츠 경기(S)를 본다. 간혹 스트레스를 받을 땐, 아무런 부작용이 없는 약인 소마(S)를 먹는다. 사람들은 문제가 생길 때, 그것을 소마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겨 버린다. 이러한 4S는 사람으로 하여금 사유를 앗아간다.
– [헨리 포드, 대량생산의 아이콘]
멋진 신세계에는 유일신이 있다. 헨리 포드다. 조립 라인이라는 당대 획기적인 발상으로 자동차를 처음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던, 포드사의 창업주이다. 사람을 만들어내는 부화-습성 훈련 런던 총본부의 건물에는 십자가가 아닌, ‘T’ 자가 걸려 있다. 바로 포드를 자동차왕으로 만들어 준 포드‘T’형을 본뜬 것. 한 개의 난자에 엡실론 아기 96명까지 태어나는 것을 고려한다면 건물에 걸려 있는 T는 의미심장하다.
– [야만인 존]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멋진 신세계로 넘어 온 인물 존. 존은 모체에서 태어났고 어머니로부터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여러 교육을 받았다. 존은 멋진 신세계에서 유일하게 사유하는 인물이다. 존과 세계관의 최고 권력자 중 한 사람인 무스타파 몬드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이 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요구합니다.”
– 한편으로 보면 멋진 신세계는 안전한 사회이다. 두 인물의 대화처럼, 이곳에선 늙지도 추악해지지도 매독이나 장티푸스에 걸릴 일도, 걱정과 불안의 밤을 새울 필요도 없으니까. 디스토피아 소설로서 조지오웰 의 1984 와 많이 비교되는데, 이 소설을 단순 디스토피아라 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