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사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SF 장르 소설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내 기억 속에 있는 나의 첫 SF 소설책이 끝까지 다 읽지 못하고 내려놓게 만드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가 이해하기엔 내용이 비관적이며 심오했고 또 너무 철학적이었다. 그 이후로 SF 장르 자체에 관심이 사라져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 서점을 구경하다가 책 한 권이 눈에 띄었다. SF 장르인 것을 알면서도 집어 들었고 오늘 소개할 책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총 일곱 개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각 단편들의 간략한 줄거리와 나의 감상을 몇 자 적어보려고 한다.
–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데이지라는 소녀가 사는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성년이 되면 시초지로 순례를 떠나는 성인식이 있다. 데이지는 그 행사를 보며 매번 귀환하지 않는 순례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자신의 일기를 통해 깨닫는다. 그 이유를 마을 어른들에게 물어도 네가 성인이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라며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이에 의문을 가진 데이지는 마을의 비밀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p. 54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세상은 복합적인 감정들이 한데 섞여있다. 불평등으로 인한 분노, 슬픔.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 속에서 나오는 행복, 기쁨 등 많은 것들이 우리 주변에 공기처럼 맞닿아있다. 과거의 나는 이 부정적인 요소들 때문에 많이 괴로웠다. 그리고 지금도 그 괴로움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고통을 받고 있음에도 나는 그 감정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들이 존재하기에 우리가 좀 더 다채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 스펙트럼
우주탐사를 떠났다가 실종되어 40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된 생물학자 희진은 자신이 실종된 시간 동안 외계 행성에서 외계 지성 생명체들과 함께 생활했으며 그들을 발견한 최초의 조우자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사람들을 희진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 희진에게는 명확한 증거가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행성의 위치에 대해 물어볼 때면 입을 다물어버렸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된 희진은 손녀에게 자신이 겪은 경험담을 이야기해주며 기억을 회상한다.
p. 96 그러나 그중 잊히지 않는 한 문장만큼은 지금도 떠오른다. “이렇게 쓰여있구나.” 할머니는 그 부분을 읽을 때면 늘 미소를 지었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
희진이 무리인의 협곡에서 멀어지기 위해 20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디고 구조 후에도 미친 노인 취급을 받으면서도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던 우직함이 너무 멋있었다. 그리고 그 우직함이 무리인들을 지키기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유약한 이방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지 않았을까? 서로를 아름답고 신비로운 존재로 인식하고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서로를 위해주었던 루이와 희진의 관계성이 너무 좋았다.
p. 88 “그럼 루이, 네게는” 희진은 루이의 눈에 비친 노을의 붉은 빛을 보았다. “저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겠네” 
우리가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동안에도 지구는 열심히 자신의 언어로 말을 한다. 매일 뜨고 지는 해가 그렇고 언제나 푸르고 반짝이는 바다가 그렇듯이 말이다. 어쩌면 달콤하고 따뜻한 말을 속삭이고 있는 풍경들을 우리는 너무나 심드렁하게 지나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 공생 가설
서울 광진구의 뇌 해석 연구소에서는 피험자의 생각을 언어 표현으로 옮기거나 표현된 언어를 역추적하여 생각을 추측하는 생각-표현 전환 기술을 연구한다. 이 기술의 분석 대상을 동물에 이어서 인간에게로 넓혔고 이내 신생아의 울음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분석 결과는 기이할 정도로 이상했다. 일차원적인 욕구들일 것이라는 예상과 반대로 신생아들은 심오하고 복잡한 철학적인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연구원들은 이 말도 안 되는 결과를 이해하기 위해 여러가지 가설을 세우기 시작한다.
–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슬렌포니아 행성에 가기 위해 우주 정거장에서 우주선을 기다리는 할머니, 안나의 이야기이다. 자신을 파견직 직원이라고 소개하는 남자에게 안나는 자신의 사연을 서서히 말하기 시작한다.
p. 181 “예전에는 헤어진다는 것이 이런 의미가 아니었어. 적어도 그때는 같은 하늘 아래 있었지. 같은 행성 위에서, 같은 대기를 공유했단 말일세.”
난 이별에 있어서 슬픔이 없는 편이다. 친한 친구가 유학을 위해 다른 나라로 떠나게 되었는데 주변 친구들이 눈물을 흘릴 때 난 덤덤하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넸다. 어떻게 보면 정이 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영영 못 보는 것도 아니고 잠시 떨어져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나에게 있어서 영원한 헤어짐은 죽음뿐이었는데 안나의 문장을 읽고 나서 아주 먼 훗날에는 죽음 말고도 또 다른 형태의 영원한 헤어짐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헤어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유도 우리가 지구에 발이 묶여있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에 안나가 사는 시대였으면 난 이별을 퍽 아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 감정의 물성
어느 날 행복, 침착, 공포, 증오, 우울과 같은 감정을 조형화한 제품인 ‘감정의 물성’이 출시되고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잡지 기사인 정하는 감정의 물성이 유사과학 같은 상술쯤이라고 치부하며 구매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증오와 우울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팔리는 것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정하는 자신의 연인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점차 제품 사용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p. 206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시선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물성을 감각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거든요.”
나는 무언가를 기록해서 실물로 남기는 것들, 예를 들면 일기나 다이어리 같은 것들을 굉장히 좋아한다. 또한 쓰지도 않으면서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러한 행동들이 개인적인 성향 탓이라고 여겼는데 이 챕터에서 나의 행동들의 이유를 객관적으로 명시해 둔 것 같아서 신기했다. 
– 관내분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종이책이 아닌 전자책으로 점차 대체면서 기존의 도서관은 죽은 사람들의 생애 정보를 데이터로 이식한 ‘마인드’를 모아놓는 마인드 도서관으로 바뀌게 된다. 마인드와 접속을 하면 망자의 영혼과 조우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들을 망자를 추모하거나 만나기 위해 도서관을 찾는다. 지민은 3년 전에 엄마의 마인드 인덱스가 도서관 내에서 분실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엄마의 흔적을 찾아나서기 시작한다. 
–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
우주에 생긴 터널을 통해 우주 저 반대편으로 가기 위해 항공우주국은 터널 우주 비행사를 선발하게 된다. 선발된 비행사는 터널을 지나는 극한 상황을 견디기 위해 3년 동안 인간의 몸을 기계로 바꾸는 사이보그 그라인딩이라는 프로젝트를 거치게 된다. 그렇게 재경은 고통스러운 3년을 버텨 터널 비행사가 되었고 터널로 떠나기 하루 전, 바닷속으로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린다.
     

컬러의 말

교보문고에서 여러 분야의 베스트 셀러를 보다가 화려한 표지의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명이 ‘컬러의 말’이라길래 어떤 내용인가 한번 펼쳐봤더니 소개하는 색의 책 끝 부분마다 해당 색이 인쇄되있는것을 보고 망설임없이 책을 구매했던 기억이 있다. 입시 미술을 3년동안 하면서 자주 사용되는 색깔은 나도 모르게 외웠었는데 가끔 ‘왜 옐로우 오커는 왜 이 이름일까?’,’ 울트라 마린은 왜 울트라 마린일까? 제일 바다같은 색이여서? ‘같은 생각을 바쁜 입시속에서 스쳐지나가는듯 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물감을 어느정도 만졌던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정말 강력 추천하고 싶다. 물론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화려한 색채들에 이끌려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아는 색이름이 나올때마다 너무 반가웠는데 자주 만나던 그 색이 이렇게 깊은 역사를 갖고 있는지, 하나의 색이 만들어지기까지 이렇게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새롭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어서 너무 유익하고 재밌었다. 또 단순히 미술사조로만 연관지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유럽이나 아시아, 전세계의 시대별 상황에 맞춰 벌어자는 여러 사건들에  사회문화적으로 다가가  그 사건으로부터 하나의 컬러가 탄생했다는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진행되어서 미술에 전혀 관심없는 사람들도 끈기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데미안(초판본): 블랙 스카이버(가죽) 금장 에디션(양장본 HardCover) (1919년 오리지널 초판본 표지디자인)

독서클럽으로 정해지기 전 데미안이라는 책을 몰랐었다. 하지만 이 책은 한번 더 봐도 될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데미안을 읽으면서 종교적인 느낌은 피할 수는 없었다. 책의 시대 배경이 중요한 것이구나 또 한번 깨달았다. 데미안은 하나님이자 예수님의 역할로써 싱클레어(나 자신)에게 희생하고 싱클레어가 외면하고 나 혼자만을 생각하다가도 힘든 일이 있을 때, 결국은 데미안에게 의지하는 것도 종교적인 의미가 담겨있던 책이었던 것 같고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데미안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역할이라고 생각이 들었으며 혹시나 내가 싱클레어의 상황이었을 때, 진정한 나의 멘토나 옆에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과 가족, 친한 지인이 있을 것 인가에 대한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나의 생각들을 독서클럽을 통해 의견을 주고 팀원들의 의견을 들어보면서 다양한 사고가 생긴 것 같다.

컬러의 말

단색위주로만 알고 있었지 그 사이에 존재하는 색들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랐는데 이책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정말 색 그 자체에대한 이야기만을 할까봐 지루할줄 알았는데 색의 역사, 유래, 전통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읽었다. 기억에 남는 색에 대해 말해보자면 오렌지 계열인 더치 오렌지가 있는데 이 색이 네덜란드에서 어떻게 유래되었고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의 색인지 알 수있었다. 

컬러의 말

색에 대한 자세한 개념을 접할 수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색들을 접할 수 있었다. 색에대한 글을 읽을 때 그냥 색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색의 유래, 관련된 역사, 전통등에 대해 이야기를  해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한가지 기억나는 것을 말하자면 오렌지 계열인 더치 오렌지가 있는데 이 색이 네덜란드에서 유래했고 국민들에게 더치 오렌지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컬러의 말

색에 대한 자세한 개념을 접할 수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색들을 접할 수 있었다. 색에대한 글을 읽을 때 그냥 색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색의 유래, 관련된 역사, 전통등에 대해 이야기를  해서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한가지 기억나는 것을 말하자면 오렌지 계열인 더치 오렌지가 있는데 이 색이 네덜란드에서 유래했고 국민들에게 더치 오렌지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배운 삶의 의미)

 유품정리사 입장에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생소한 직업인 유품정리사에 대해 알 수 있었고 에피소드 식으로 일을 하며 겪은 사연을 소개하며 이야기가 전개되어 책이 쉽게 읽혀 좋았다.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이유로 죽음을 맞이하고 죽은 이가 남긴 흔적을 통해 고인의 삶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슬픈 장면도 있었고 나의 가족, 주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죽음을 다루는 직업이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많은데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사람들의 시선이 좋지만은 않아 안타까웠고 나는 그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는지, 편견을 가지진 않았는지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다.
 책을 오랜만에 읽어 걱정을 조금 하였는데 책을 별로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책이 쉽게 읽히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 좋은 것 같다. 책을 읽으며 경제적으로 심리적으로 신체적으로 힘들어 생의 기로에 서있는 사람들의 고충을 알게 되어 더욱 내 주위 사람들을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다음에도 이런 에세이를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장편소설)

나의 리뷰
상상독서 프로그램을 하며 시선으로부터, 라는 책이 주제로 정해지면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은 작중인물인 김시선의 가족들이 김시선을 삶을 이야기하며 제사상에 올릴 물건들을 찾으며 자신의 삶도 완성해가는 이야기였다,
나는 이 책에서 작중인물인 우윤과 지수에게 많은 공감을 하며 읽었다
우윤은 어릴 적 아팠기에 늘 안전하고 보호받는 삶 어쩌면 답답한 삶만을 살아왔고 지수는 디제잉을 하며 자신이 맞는 삶을 사는 것인지 궁금해하였다.
그러나 김시선 제사상을 위해 하와이로 떠나며 우윤은 서핑을 하며 난생처음 위험성있는 것을 도전하였고 지수는 마지막에 하와이 친구를 따라가며 기름 유출을 도우러 가며 자신의 삶의 방향을 찾으러 갔다.
제사상에 우윤은 서핑을 계속 성공을 못하다 마지막에 가장 큰 파도를 서핑하는데 성공하여 그 파도 거품을 담아 제사상에 올리고 지수는 무지개 사진을 찍어 올렸다.
이를 보며 김시선의 제사 즉, 그녀를 기리는 행위를 하는 것에 역경을 스스로 도전하고 해낸 우윤의 파도 거품이 김시선의 삶의 방향과 모습을 그리게 되었고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주체적으로 떠난 지수 또한 김시선을 떠올리게 하여 가장 기억에 남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강렬히 기억되는 것은 제목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였다. 시선으로부터, 이 뜻이 김시선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남들의 시선을 뜻하기도 하며, 김시선의 가족들의 이야기니 김시선으로부터 나온 아이들 또한 말이 된다고 생각하며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고 생각하였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만약 그들의 삶이 답답하고 웅크려 있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 때 읽으면 좋을 책으로 추천해주고 싶다. 

빛의 과거

<빛과 그림자>
 지난 사건에 대한 완전히 객관적인 시각은 존재 할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이미 익히 알고 있다. 역사에 기록된 사건들 또한 무수한 사건들 중에서 선별되어 적혔기에 역사 자체가 이미 거대한 주관이다. 적히는 순간 역사가 주관이 되었다면, 기억은 적히지 않았기에 주관의 정도가 더 심하다. 이미 선별되어 저장된 기억은 그 안에서도 편의에 따라 왜곡되고 삭제된다. 그리하여 기존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새롭게 변모하고, 이 변모는 좀더 구미에 맞는 방향을 찾아가며 끊임없이 수정을 거듭할 것이다. 이렇게 따지고 들면 인간의 인식안에서 객관적 사실이라는건 성립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지켜져야 할 진실이란 분명히 존재한다.
 77년도의 대학생활을 17년도에 대학생이었던 사람의 시점에서 보자면 ‘이렇게 까지 다르다고’ 와 ‘별반 다르지 않네’ 의 반복이다. 그 시대의 차별과 폭력은 요즘의 상식과 많이 어긋나는지라, 다른 나라의 일처럼 느껴질 정도다. 사소한걸 하나 찝어보자면 이성과 잠자리한게 들키면 기숙사 퇴출이라니. 심지어 기숙사에서 한거도 아니다. 근처 숙박시설에서 했다. 개인의 사생활이 물리적인 불이익으로 돌아온다니. 하지만 또 잘 생각해보면 오늘날의 차별과 폭력은 좀 더 온건한 포장지를 썼을 뿐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대 기숙사생의 1등 신붓감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생리대를 멀리 실어다 버린다고 투덜대는 기숙사 사감의 대목에서, 얼마전에 본 생리대의 티비 광고가 생각났다. 광고 모델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거리를 거닐다가 몸에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고 운동을 한다. 생리대는 생리혈이 아니라 세제같은 파란 액체를 흡수했다. 성녀와 창녀로 이분화되던 여성성 판타지는 여전히 대세에 머물러 브라운관으로 송출된다.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남학생들의 태도이다. 예의를 모르는 사람처럼 처음보는 여자를 잡아끌고, 순위를 매기고, 가르치려든다. 40년의 간극에도 그 태도가 오늘날까지 유지될수 있는 건. 사회가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여 바라보는 시선이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욕망에 솔직할 수 있는건 남자 뿐이며 여자는 여전히 판타지의 성별이기에 가장 기본적인 욕구조차 숨겨야 하는 처지다.
 이 소설은 여러 간극을 가로지른다. 과거와 현재, 여성과 남성, 빈과 부, 개인과 단체, 순종과 저항, 지방과 서울.
과거와 현재를 제외하면 그 간극들을 만들어낸건 권력이다. 그 당시 대학생들은 위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정작 그들은 곁에 있는 약자를 돌아보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약자끼리도 연대하는 법을 모른다. 그 증거로 김유경과 김희진은 친구라고는 하지만 오래도록 서로 반목하고 있다.
 이 두 사람은 같은 사건과 인물에 대해 전혀 상반된 시각을 보여준다. 전개를 이끌어 가는 것이 김유경이기에 처음에는 김유경의 입장에 이입하며 글을 읽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초반 김희진은 전형적인 악역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다 읽으면 그녀는 결코 악역이 될 수 없다는걸 알게된다. 그녀도 김유경과 같은 그 시대의 가장 낮은 곳에 있던 개인일뿐이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지방출신이고 여성이다. 그녀의 자기중심적인 권력주의도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다. 그리고 그녀의 퇴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사소한 권력은 사회의 진짜 권력앞에선 연약하기 그지없다. 그래도 차라리 욕망에 솔직한 김희진의 태도는 약점을 핑계로 자기연민에 빠져 현실을 회피하는 김유경보다 나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현재의 김유경 또한 그 사실을 인정하며, 스스로를 무고한 피해자 취급하던 본인의 기억이 다분히 자의적임을 새삼 깨닫는다.
 김유경의 약점인 말더듬은 곧 벙어리의 상태와도 같다. 드라마에서 부자집 고용인들을 부러 말 못하는 언어장애인으로 설정해놓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밀을 누설하지 못하고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함구할 수 밖에 없는 벙어리의 상징성때분이다. 물론 그녀의 말더듬은 장애 축에도 못낀다. 그럼에도 그녀는 사회적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본인을 피해자의 영역에 밀어넣고 체념했다. 그녀에겐 얼마든지 기회가 있었지만 잠을 깨우려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안주했다.
 개인적으로 은희경의 소설은 ‘새의 선물’ 이후 두번째다. 이 책의 화자인 김유경도 새의 선물의 화자처럼 관찰을 통해 본질을 읽어내는 시니컬한 논조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예리한 시선에 대해서조차 비판적인 태도를 갖는다. 대상과 거리를 두고 관조하는 행위도 실은 회피라는 거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한 상황에서의 중립이 방조죄가 될 수 있듯이 말이다.
 이 소설에는 드라마틱한 극복이 없다. 그래서인지 사건들이 거듭 우연성에 의해 연결되어도 그리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어가고 있는 것이라는 비관적인 말도 있다. 김유경은 연애에 실패하고 결혼에 실패하고. 현실을 관조하거나 몰두하는 회피를 통해 현재에 이르렀다. 절벽에서 떠밀리는 추락은 없더라도 하루하루 조금씩 노화하듯, 서서히 하강했다. 하지만 극복이 없다고 성장이 없는 것은 아니다. 77년도의 말더듬이 김유경과 달리 17년도의 김유경은 개인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좀더 객관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됐다. 최소한 ‘성의 정치학’ 을 읽으며 ‘낭만적 사랑’ 이나 ‘정서적 조작’ 따위에 집중하진 않을 것이다. 김유경은 이제 개인성이라는 안대를 벗어내고 전체를 본다. 개인사적 비극이 아니라 공동체적 비극을 볼 수 있다.
 객관과 주관을 떠나 반드시 지켜져야할 진실이란 권리이다. 인간이 인간이라는 사실만은 시간이 지나 역사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약점이라는 사회가 만든 족쇄에 스스로 매인 탓에 김유경은 자기를 자기로 만드는 권리와 욕망을 포기했다. 말을 더듬지 않으려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 발음이 쉬운 사람에게 연락하고, 눈앞의 부정도 바로잡지 않은 채 도망치기 급급하다. 물론 김유경의 처절한 주변의식과 자기검열은 그녀 개인의 탓만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불합리한 주변이나 상황탓만 하고 있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77년도의 여성은 권리가 없었기에 기실 인간 취급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 시대의 청춘들은 여느 시대의 청춘들이 그렇듯 반짝였다.
 과거에 몰두하는건 움직일 수 없도록 발이 매이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과거는 필요하다. 반짝이는 것과 그림자가 공존하는 과거의 명암을 빠짐없이 직시해야한다. 오답노트가 없으면 배움이 없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 빛을 현재까지 이어온다면 비로소 미래까지 비출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언어 천재’ 타일러가 말하는 코로나 이후의 위기)

 사실 책을 처음 읽을 때 환경이라는 주제 때문인지 딱히 끌린다는 느낌을 받진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끌리고 말고가 문제가 아님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환경 문제를 등한시하는 사람이었다. 천천히 망가져 가는 지구에도, 여름마다 오는 태풍이 점점 세지고 빈번해져도, 그저 운이 좋지 않은 해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또, 분리수거를 하긴 하지만 아주 신경쓰는 편은 아니며 일회용품으로 이루어진 배달음식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서 지금부터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느낌이 점점 든다. 타일러가 목소리를 낸 것처럼 나도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주변 가족, 친구들 뿐이라도 우리의 터전에 대한 소식을 알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6도의 멸종>> 처럼 끔찍한 일을 절대 막을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든 감정은 무력함과 슬픔이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나름의 목소리를 낸다고 해도, 내 주위 사람들은 바뀔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일상속에서 1회용품을 줄일수도 없고 고기를 안 먹을 수도 없다. 법적인 규제를 할 수도 있지만 문제가 훨씬 심각해진 후에야 가능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