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고민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을 한 적이 있거나 그 고민을 해결하지 못해 혼자 끙끙 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고민 때문에 힘들었던 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부모님을 비롯해 친구들, 선생님 덕분에 난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고 혼자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었다. 개인 사정을 남에게 밝히고 싶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더 봉쇄하거나 혼자 해결하려고 들었을 텐데 주변 사람들과 환경의 도움을 많이 받아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책 속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나미야 잡화점은 30여 년간 비어 있던 오래된 가게이다. 어느 날 이곳에 세 명의 남자아이들이 숨어든다. 그들은 강도짓을 하고 경찰의 눈을 피해 달아나던 중이었다. 외딴집인 줄로만 알았는데 난데없이 나미야 잡화점 주인 앞으로 의문의 편지 한 통이 도착하고, 세 사람은 얼떨결에 편지에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답장을 보내며 자신들의 일처럼 상대방의 사정을 진심으로 걱정하게 된다. 각 장마다 고민 상담 편지를 보낸 이들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

운동선수는 자신의 고민을 담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성의 없이 답변을 해주어 화를 낼 것 같았는데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어 감사 인사를 건넸다. 역시 무거운 짐을 혼자 드는 것보단 여러 사람이 함께 짊어져야 모두가 행복한가 보다. 주변의 작은 관심만으로도 한 사람은 큰 힘을 얻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내 주변에 가족, 친구, 선생님 또는 책 속 나미야 잡화점같은 상담소라도 없었더라면 난 홀로 외롭게 그 고민을 부둥켜 안은 채 우울증에 시달리고 말았을 것이다. 내가 도움을 받은 만큼 타인에게 베풀고 어떠한 작은 슬픔이나 행복도 같이 나누면 보다 더 평화롭고 화목한 세상이 오지 않을까 느꼈다.

소설에서 여러 가지 흥미 있는 점들이 많았다. 상상만 해도 으스스한 분위기에 거의 폐가가 되어버린 건물의 주인 앞에 놓여진 편지라니. 나는 기겁을 하고 도망갔을 것이다. 하지만 모험심이 넘치고 호기심 많은 세 아이들은 그 편지를 읽어보고 답장까지 해주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점이 있다면, 잡화점 밖과 안의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이다. 따지고 들면 건물 안의 1분이 밖에선 약 4분인 셈이다. 책을 읽으며 신비로움을 감출 수 없었다.

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Is That So? I’m A Giraffe)

화자는 돈을 벌기 위해 시간당 삼천 원의 전철 푸시맨, 천오백 원의 주유소 알바, 천 원의 편의점 알바를 한다. 전철 승객을 사람이 아니라 화물로 생각하라는 코치 형의 이야기, 정원 180명의 차에 400명이 타야 하는 현실이다. 화자는 전철 속 한바탕 벌어질 전쟁을 생각한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며 화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가 보는 마음이 아렸다. 승객의 등을 밀고 심지어 아버지의 등도 밀어야 하는 안타까움에 제대로 밀지를 못하는 그 마음이 깊게 느껴졌다. 마지막 부분에서 아버지를 닮은 기린을 환상으로 만난다.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으면 낮잠을 자고 난 후 기린이 보였을까. 형상은 기린이지만 그 안에 아버지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화자는 카프리썬 하나가 자기 인생의 이십오 분이라고 했다. 그 말인즉슨 카프리썬의 가격이 25분 일 했을 때 받는 돈이라는 것이다. 돈을 지출하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자신이 얼마만큼 더 일을 해야 하고 땀을 흘려야 되는지 계산한다는 게 안쓰러웠다. “나이 마흔다섯에 시간당 삼천오백원이 아버지의 산수라고 하는데 여기서 산수란 경제 수준을 의미한다. 화자는 자신이 아버지와 비슷한 수준으로 살아야 됨을 암시했다. 푸쉬맨 일을 하게 된 화자는 전철 안전선은 신체의 안전선이지만 삶의 안전선은전철이라고 했다. 나는 화자처럼 위태롭게 간신히 하루의 고비를 넘기고 내일의 시련을 생각하며 힘겹게 살지 않을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아버지와 똑같은 삶을 살아야함을 깨닫고 막막해하고 두려워한다.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절대로 결코 절망하고 후회할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고 깊이 되뇌이고 또 다짐했다. 현대 자본주의 삶에 얽매이지 않으리라 믿는다.

회사 말고 내 콘텐츠 (남의 생각에 시중드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세상에 소비와 생산이 있다는 관점에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어서 흥미있게 읽은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비와 생산은 단지 돈에 대한 소비, 물건을 만들어내는 생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튜브 보기, 책 읽기, 어디가서 강의 듣기, 영화보기, 블로그에서 짧은 글을 보는 것. 이것을 하고 있다면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생산은 반대로 앞의 것들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소비를 안하고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생산을 하지 않고는 그럭저럭 살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러지 말고 생산을 하는 삶을 살아보라고 권한다. 바로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면서 말이다. 이제는 인터넷이 열려서 콘텐츠 하나 만들어보는 것은 쉽다.

여기서 저자는 하루라도 빨리 콘텐츠를 만들어보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소비하는 콘텐츠와 생산하는 콘텐츠의 격차가 벌어질수록 자신의 것은 한없이 초라해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콘텐츠를 시작하려는 용기가 안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튜브만 보더라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삐까뻔쩍한 편집방식으로 자신의 콘텐츠를 뽐낸다. 이런 것에 익숙해지고 난 다음 자신의 영상을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하자. 이때 자막 밖에 달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거기서 포기해버릴 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냥 지금 당장 뭐 하나를 만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것 같다.

책에서 이런 말도 나온다.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생산을 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런 것 같다. 난 생산을 해보기 전까지는 영화들을 보고 ‘재미있네, 별로네’ 등등 평가질하기만 바빴다. 하지만 전자책을 써보는 등 생산을 해보려는 노력 이후 생산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걸 깨달으니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와, 이 장면은 어떻게 찍었을까, 이 장면 찍으려고 개고생 했을 거 같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작업에 시간을 쏟았을까’하는 존경심이 들기도 한다.

때론 부럽기도 하다. 얼마전 유튜브에서 넥플릭스 드라마 디피 제작 발표회? 같은 것을 보았다. 감독들과 배우들이 나와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걸 보면서 ‘다 같이 고민하고 고생하면서 만든 결과물이 인기를 얻고 그걸 또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게 얼마나 재미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부러웠다. 이렇게 대단한 걸 만들어본 적은 없지만 확실히 무언가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만으로도 세상이 달리보이기는 한다.

생산을 해야겠다~해야겠다~ 생각만 하던 내게 좋은 자극을 주는 책이었다. 읽어보기 잘한 것 같다.



일을 잘한다는 것 (자신만의 감각으로 일하며 탁월한 성과를 올리는 사람들)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두 작가가 대화하는 형식의 책이다.개인적으로 나에게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이 책은 ‘감각은 이런 것이다!’라고 딱 정해주지 않는다. 그 대신 많은 사례를 보여주며 알아서 감 잡으라는 식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ㅎㅎ.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이해한 것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책 전반적으로 저자들은 기술과 감각이라는 두축을 이용해 설명을 해나간다. 그 중에서도 감각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이 안중요하다곤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기술만으로는 ‘일을 잘한다’라고 말하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기술이 마이너스(-)에서 0으로 가게 해준다면 감각은 0에서 플러스(+)로 가게 해준다.

오직 기술만이 중요한 상황은 수요가 공급을 뛰어넘어버리는 상황뿐이다. 이 책에서는 만두로 설명을 해준다. 갑자기 사람들에게 만두가 트렌드가 되어 만두를 미친듯이 찾기 시작한다. 이때 만두를 만드는 사람이 부족해진다. 그러면서 만두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는 사람은 굳이 다른 감각이 없더라도 돈을 벌고 일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만두를 만드는 기술이 각광받으면 그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 점차 많아진다. 점차 그 중 가장 맛있는 만두가 주목을 받을 것이고 사람들은 점점 그 사람에게 몰릴 것이다. 즉, 감각이 있는 사람에게 몰린다. 마치 현재 코딩 기술을 배우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사람들은 이렇게 감각이 중요한 시대에서도 기술을 쫓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왜냐? 기술은 바로 눈에 보이고 측정하기가 쉽다. 그리고 명확하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영어를 유창히 잘하는 기술을 기르고 토익 점수를 내밀면 끝이다. 프로그래밍을 이라는 기술은 자격증이나 작업물로 보여주어 가시화할 수 있다. 하지만 감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가시화하기는 어려운게 사실이다.

이렇게 감각이라는 것은 불확실하고 눈에 안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시하려하고 한다. 심지어는 감각을 기술로 덮어씌여 버리려는 모습도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는 사람마다 좋고싫음이라는 나름대로의 감각이 있는 것인데 이것을 옳고그름이라는 과학적인 시각으로 덮어씌운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논쟁을 벌인다. 감각은 감각으로 남아야지 기술적으로 자꾸 측정하려고 하면 그것은 그냥 기술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중요한 감각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냐?’ 라고 물으면 나도 모르겠다. 책에서 딱 잘라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감각이라는 것은 분명 후천적이고 키울 수 있는 것이라고 해준다. 이때 감각은 기술처럼 ‘이런 커리큘럼을 따라가 이런 기술을 얻었다’로 인과관계가 설명되진 않는다. 나중에 결과를 보고 ‘아 이걸 해서 이렇게 된거였구나’라고 나중에 인과관계를 깨닫는 것이 감각의 특징이라고 한다.

또한, 자신이 어느 자리에 있어야 빛나는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알려준다. 이건 오직 많은 경험을 통해 알수 있는 것이라 말해주기도 한다. 다른 어떤 적성 검사나 성격 검사 같은 것은 우리와 같은 복잡한 인간에게 의미가 없다.

책 중간에서부터는 수많은 경영자의 사례가 나온다. ‘시너지, 순열적인’ 등등 어려운 용어도 나온다. 그래서 난 알아듣지 못해 훌훌 넘기며 봤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참 아리송한 책이었다.

 

공부머리 독서법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독서교육의 모든 것)

자녀를 둔 부모님을 타겟으로 쓰여진 교육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책이다.

초등학생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이유를 언어 능력으로 풀어 설명한다.

초등학교 교육은 사교육 일명 쪽집기 과외를 받으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으나, 중학교부터는
내용의 어려움과 절대적인 공부량 증가로 사교육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스스로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않은 초등학생은 언어 능력이 부족해 교과서를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성적의 변화를 겪는다.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성적을 되돌아보니 나에게도 적용되는
정확한 분석이었다.

내가 수학과 영어를 제외한 과목을 공부하기 싫었던 이유가 교과서나 참고서를 읽어도 이해를 못했다. 그렇게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결과를 얻었다.

대학교에 들어와 버려지는 통학시간이 아까워 독서를 시작했다.

살면서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책을 읽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꾸준히 책을 읽으면서 언어 능력이 고등학생 수준을 뛰어넘게 되었고, 수준
높은 책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이 쉬워졌다.

내가 독서를 안해서 성적이 떨어지고 독서를 해서 성적이 올랐구나하는 깨달음이 있었지만 가장 큰 소득은 독서 가치관이 변화했다.

살면서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독서를 지금까지 해왔다면 이제는 독서는 선택이나 사치가 아닌 필수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생의 한가운데 (문예세계문학선 5)

  나는 할머니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생전 처음으로 느꼈어요. 우리가 정신 속에서 우리를 구제하지 않는다면 삶이란 끔찍한 것에 불과하다고.
 소름이 끼치는 것도 너에게 해는 안될 것이다. 그것도 다 생의 일부분이니까. 우리는 추악한 것을 보지 않으면 중요한 것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어두컴컴하고도 출구없어 보이는 복도를 무한히 걸어갈 때면 너는 언제나 문을 열어주었고, 나에게 와서 햇빛이 찬란한 넓은 평야의 광경을 보여주었다. 비록 그 평야에 내가 발을 들여놓을 수는 없었으나 그 광경만이라도 나를 최후의 절망에서 구제했다.

완전한 행복 (정유정 장편소설)

 우연인지 혹은 사람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특정한 이들’에 대한 관심(호기심 혹은 피하고자 하는)이 늘었기 때문인지 정유정의 소설을 읽기 시작하고 곧 유튜브를 통해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는 흔히 자기애와 자존감이 높은 사람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병리적 성향을 가진 사람이다. 사람들이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결국 내가 관계한 사람들 중 ‘나르시시스트’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들에게 분명 피해를 받고 있고 10명 중 3명은 존재한다는 이들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것인가에 대한 염려가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내가 집중한 것은 이들이 가족 구성원일때, 특히 소설 속 유나와 같이 아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 주 양육자일 경우이다. 실제로 유튜브 검색창에 ‘나르시시스트’라고 쳤을 때 연관 키워드로 ‘부모’가 가장 먼저 따라붙는다. 그리고 댓글에는 부모가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을 인지하고 앞으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내용이 심심치 않게 눈이 띄었다.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가 만들어 놓은 자신만의 규칙을 따르지 않았을 때 가해치는 처벌과 한 순간에 천국과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행동패턴은 건강한 성인조차 견뎌내기 힘든 정서적 고통을 안겨주는데 하물며 부모를 신처럼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가스라이팅’은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와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이 함께 있다는 작가의 말을 상기해본다. 자기애가 강조되는 요즘 공존과 타자에 대한 배려를 왜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지 고민해보았다.

무례함의 비용 (막말 사회에서 더 빛나는 정중함의 힘)

처음에 이 책을 고른 이유는 지금 일하고 있는 아르바이트 사장 때문이었다. 21살부터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봤지만 이렇게 아르바이트생에게 무례한 사장은 없었다. 사장은 툭하면 ‘솔직히 이 정도면 개꿀알바 아니냐?’라고 물었고, 나는 그때마다 대충 얼버무리며 답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오래 서 있어야 하는 일의 특성 때문에 목 신경 압박이 심해져 일을 더 할 수 없다는 의사를 표했을 때 사장은 이를 ‘그만두기 위한 핑계’로 보았고, 나는 억울한 마음에 정형외과 진료 결제 내역을 사장에게 보여줬다. 하지만 그러고도 사장은 본인이 허리디스크 걸린 경험이 있는데 그 경험상 2주 정도면 충분히 낫는다며 두 달 뒤 일거리가 많은 달에는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그런 이기적인 사장에게 예의를 차린다는 명목으로 적당히 비위를 적당히 맞추면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내심 누군가 “꼰대인 사장은 망하게 되어있어! 괜찮아 잘 하고 있어!”라는 말을 해주길 바랐다. 그런 와중에 내가 원하던 말을 해줄 것 같아 보이는 이 책을 집었다.


이 책에 의하면 회사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무례하게 대할 경우, 엄청난 비용 손실이 발생한다. 무례한 대우를 받거나 그런 대우를 받는 모습을 본 부하 직원들은 정중한 대우를 받은 경우보다 업무 결과의 질이 좋지 않았다. 게다가 무례한 대우를 받은 사람들은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이는 폐쇄적이고 비관적인 마인드로 이어진다. 이러한 심리상태에 놓인 사람들은 피드백이나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꺼려 하는데 서로 교류가 적기 때문에 결국 예방하거나 쉽게 처리할 수 있었던 문제들도 커져서 손쓸 도리가 없을 정도로 크게 키우는 문제를 야기한다. 협력하여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음에도 그런 기회가 사라져 버리는 건 당연하다. 이렇게 발생하는 손해는 수치상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쉽게 여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손해는 점점 가시화된다. 다행히(?)도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본인이 무례한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조직 구성원들끼리 서로를 향한 예의의 선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이를 지키고자 한다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매너 없는 사람이 해결할 의지가 있는 경우에나 그렇다.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그 사람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다. 직장 내에서나 우리에 삶에서 말이다.

무례함은 우리 모두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간다. 우리를 감정적 롤러코스터 상태에 빠뜨린다. 우리의 인지능력을 빨아들인다. 심지어 정신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결국 우리는 산산이 부서져 극도로 위축되고, 평소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P. 53)



이 책을 읽을 때 처음에는 책 한마디 한마디에 공감하며 읽었다. 고용주는 내가 건강 문제로 아르바이트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우선 내 말을 곧이곧대로 이해하지 않았다. 나의 건강 문제를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기 위한 핑계로 이해하였고, 의사도 아닌 본인이 나의 상황을 멋대로 진단하였다. 당연히 이는 장문의 문자로 오고 갔는데 매번 몇 줄이 넘어가는 장문의 문자였다. 이런 사람 밑에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자책을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에 대한 열정이 식어갔다. 어느 순간 나는 딱 ‘사장이 시키는 일만 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되어있었다. 그런 변화를 체험한 것이 최근이기 때문인지 이 책이 말하는 무례함의 영향력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더욱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을수록 ‘정중함’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정중함이란 타인의 비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나의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예의를 차리는 것, 타인과 나를 동시에 존중하는 자세여야지 타인을 과도하게 높이거나 나를 낮추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한 것은 정중함이었는가, 단순한 비위 맞추기에 불과했는가.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무례한 태도는 비생산적이고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앞으로 무례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서 상처받을 것이 아니라 적당히 흘려듣는 처세가 필요함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말도 있는데 막말하거나 예의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도 없는 사람은 적당히 상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 책이었다.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연작소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 종종 육칠십년대에 청춘을 보내고, 그 당시의 거리를 걸었던 사람들만이 완벽하게 이해 가능한 정서가 깔려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누군가도 내가 속한 세대만의 완벽하게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담은 글을 써줬으면 했다. 이 소설이 그렇다. 문장 중간에 무심하게 툭툭 서술된 유행가 가사를 직관적으로 캐치 할 수 있으려면 그 노래를 체화하다시피 들은 세대여야 한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떤 노래나 예술작품이 체화되는 시기는 보통 성장기이다. 
노래 가사 같은 사소한 키워드 말고도, 너무 사랑해서 이전 세대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과한 교육열과 취향의 통제)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나,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탓인지 제대로 아니면 그저 아직 미숙한 탓인지 상대방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감정에 매몰되는 연애 방식, 개방적인듯 하지만 여전히 미묘한 죄의식을 가지는 성관념, 기성세대에 대한 무관심과 옅은 경멸까지도. 소위 요즘애들의 특성을 디테일하게 묘사해내고 있어서 재밌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를 주인공으로 둔 퀴어소설이고, 한국사회에서 퀴어의 현실은 굳이 말 안 보태도 여전히 어둡다. 이 책은 그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논조만큼은 발랄함을 유지하고 있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가독성이 좋고 개그코드도 많아서 쉽게 읽히지만 결코 그 안에 메세지가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충분히 깊이 있게 현실에 대해 다루고 있다. 
또 책을 읽으면서 공간을 따라가는 재미도 있다. 제목에서 ‘대도시’라는 공간을 상정하는 만큼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가봤을 법한 올림픽공원이나, 혜화 등 익숙한 공간이 많이 등장해서 한층 현실감을 더한다. 

대도시의 사랑법 (박상영 연작소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으면 종종 육칠십년대에 청춘을 보내고, 그 당시의 거리를 걸었던 사람들만이 완벽하게 이해 가능한 정서가 깔려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누군가도 내가 속한 세대만의 완벽하게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담은 글을 써줬으면 했다. 이 소설이 그렇다. 문장 중간에 무심하게 툭툭 서술된 유행가 가사를 직관적으로 캐치 할 수 있으려면 그 노래를 체화하다시피 들은 세대여야 한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떤 노래나 예술작품이 체화되는 시기는 보통 성장기이다. 
노래 가사 같은 사소한 키워드 말고도, 너무 사랑해서 이전 세대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과한 교육열과 취향의 통제)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나,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탓인지 제대로 아니면 그저 아직 미숙한 탓인지 상대방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감정에 매몰되는 연애 방식, 개방적인듯 하지만 여전히 미묘한 죄의식을 가지는 성관념, 기성세대에 대한 무관심과 옅은 경멸까지도. 소위 요즘애들의 특성을 디테일하게 묘사해내고 있어서 재밌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퀴어를 주인공으로 둔 퀴어소설이고, 한국사회에서 퀴어의 현실은 굳이 말 안 보태도 여전히 어둡다. 이 책은 그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논조만큼은 발랄함을 유지하고 있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가독성이 좋고 개그코드도 많아서 쉽게 읽히지만 결코 그 안에 메세지가 가볍다는 뜻은 아니다. 충분히 깊이 있게 현실에 대해 다루고 있다. 
또 책을 읽으면서 공간을 따라가는 재미도 있다. 제목에서 ‘대도시’라는 공간을 상정하는 만큼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가봤을 법한 올림픽공원이나, 혜화 등 익숙한 공간이 많이 등장해서 한층 현실감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