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에 따라 급격하게 변하는 트렌드를 다양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특히 메타버스와 관련된 이야기에 흥미를 끈 것 같았다. 또한 과거와 다르게 디지털을 이용하여 등기소 처럼 만든 NFT 라는 내용을 처음 알게 되어 조금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CHANGE 9(체인지 나인) (포노 사피엔스 코드)
과거에서 현대로, 또 세대가 바뀌면서 디지털 문명화의 변천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신인류의 추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때에 살갗으로 느끼는 동영상 플랫폼으로써 자신의 취미가 곧 수익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인상깊었습니다.
CHANGE 9(체인지 나인) (포노 사피엔스 코드)
2021/10/08
지금까지 인류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오늘날 스마트폰이 신체의 일부로 생각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한다. 우리는 진화를 할 방식을 예측하며 발전해 갔고,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살아남는 방식을 터득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단순히 개도국에서 만드는 수준으로 배워왔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되었다. 앞으로 우리는 선진국에 맞는 수준으로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 강의를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것만 가지고는 실제 회사에서 직접 업무를 보는데 한계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것을 선진국 혁명이라고 한다. 과거의 방식으로 배우는 것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아날로그 시대를 버리고 디지털 시대로 넘어가야 한다.
CHANGE 9(체인지 나인) (포노 사피엔스 코드)
기계공학과의 교수님으로서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현실적으로 진행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특히,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과정이 아닌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말씀해주시고 학생들의 입장에서 설명해 주셔서 와닿았습니다.
CHANGE 9(체인지 나인) (포노 사피엔스 코드)
강연을 들으면서 앞으로의 세계관과 교육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세계관을 디지털로 바꾸고 학교의 교육뿐만 아니라 커뮤니티나 그 외의 내가 하고 싶은 분야에 대해서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업그레이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의 디지털, 빅데이터와 같은 신지식과 뉴노멀 시대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을 수 있었으며 중요성들을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그리고 결국은 인간의 마음 즉 인간다움과 진정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번 강연은 몇 부분만 요약해서 설명하셔서 기회가 된다면 책 전체 부분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CHANGE 9(체인지 나인) (포노 사피엔스 코드)
선진국 혁명으로 인해 높아진 허들로 앞으로 힘들어지는 취업 난이도에 대해 극복해야하는 방법 , 혁명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전혀 모르는 분야에서 성공을 이끌어낸 대표적 사례들을 봤습니다. 이전에 있던 세계관으로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 현재 디지털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굉장히 와닿았습니다.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르네상스 저작집 7)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으로 유명한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생부터 죽음까지를 면밀히 관찰하고 서술하며, 저자 시오노 나나미의 분석까지 곁들여져있다.
1부는 마키아벨리가 태어나기 전의 일들을 ‘마키아벨리는 무엇을 보았는가’라는 제목으로 설명한다. 피렌체 유력가인 메디치가문이 조반니, 코시모, 피에로를 거치며 어떻게 힘을 갖게 되었는지를 말하고 마키아벨리가 행운의 사나이라 부르는 로렌초 데 메디치의 행운과 군주로서의 능력을 말하며 시오노 나나미 역시 이에 동조한다.
2부는 르네상스의 선구자였던 북부 이탈리아의 도시 피렌체에서 태어난 마키아벨리는 집안이 명문가도 아니었고, ‘비대학 출신’으로 학문에 조예가 깊지도, 큰 뜻이 있는 인물도 아니었다. 스물 여덟의 마키아벨리가 정청에서 ‘서기관’으로서 일하게 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피렌체 정부로부터 업무를 받아 각국의 정치자와 만나게 되는데 이러한 경험들을 토대로 <군주론> 등이 탄생하게 된다. 쫓겨났던 메디치가문이 다시 피렌체로 복귀하면서 소델리니 밑에서 15년간 일했던 마키아벨리는 정치 전면에 관여하지 못하게 된다. 유배되어있던 시간동안 집필을 했으며 마키아벨리는 자국의 군대와 강력한 군주를 역설하고 현실화시키고자 여러차례 노력했으나 끝내 피렌체공화국은 마키아벨리의 죽음과 같은 운명을 맞이한다.
꽤 많은 분량임에도 책을 읽는 동안은 내가 15-16세기 이탈리아에 와있는 듯한 생생하고도 즐거운 기분이었다. 마키아벨리의 공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사적인 스캔들까지도 나와있어 상당히 흥미롭게 읽었으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때에는 나 역시도 마키아벨리가 친구로 느껴졌다. 마키아벨리의 저서를 읽을 때에 이 책과 함께 읽는다면 이해도는 배가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서술은 상세하며 여러 기록을 비교분석한 흔적이 있는 책이다.
군주가 정치를 할 때에는 도덕이 고려되지 않으며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 시킨다는 마키아벨리즘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쓴 시기는 ‘혼란의 시기’였으며, 마키아벨리도 군주정체를 이상적으로 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화정체를 이상적 정치체로 보았지만 그 시기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강력한 군주가 필요하다는 마키아벨리의 판단인 것이다. 또, 마키아벨리는 도덕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도덕과 정치를 분리시켜 자신의 논지에 도덕을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마키아벨리즘은 현대의 시각에서만 비춰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 시기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다면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노희경 원작소설)
이별이란 왜 있어야 하는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 헤어짐이 견딜 수 없이 싫었던 나이기에 아름다운 이별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봐오면서,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어르신들이 해오는 말씀을 들으며, 지나가는 노래 가사로도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말고’ 라는 문장을 많이 접해왔다.
이별에 정답이 없고, 분명 후회되는 순간도 있을 것이고 죄책감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현재를 살아가고 현재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글로 썼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이별의 순간과 그 이전의 순간들을 기록하여 책에 남긴다는 것 자체가 아름다웠다.
이별의 대상과 매순간이 좋을 수 없지만, 그 순간들마저 돌아보면 찬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고,
내가 가진 이별에 대한 정의 또한도 더 생각해보고 나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정립할 수 있었던 시기인 것 같다.
반려동물과 이별, 할머니와의 이별이 있었던 나는, 그 순간들이 너무나 찬란했던 것을 기억한다.
아직도 마음 한 구속에 슬픔이라는 덩어리가 가끔 날 찌르기도 하지만, 함께 했던 순간들이 있기에, 내 마음에 그들을 기억하는 따스함과 추억이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마음으로는 놓아주지만, 항상 기억하고 추억할 것이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하여
눈먼 자들의 도시 (: Blindness)
알 수 없다.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의 시간들이 존재한다.
갑자기, 원인도 제대로 알 수 없는 실명이 이어졌다.
동식물위에 포식자로서, 자연 위에 군림하고 있는 이 당당한 존재들이 한 순간에 약해졌다.
어쩌면 사람이라는 존재는 원래부터 연약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사람에게 동식물을 함부로 하고 자연을 파괴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단지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이성과 본능을 가진 우월한 존재로 스스로를 여기며 상생이 아닌 지배적인 관계로 지구촌을 망가뜨려온 지금까지의 일들,
그 모든 것들은 다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떻게 보면 눈이 하나 먼 것 뿐이다.
하지만 더 이상 이전처럼 우월하게, 격식있게 살아갈 수 없고
진짜 본능만 남은채로 사람인지 짐승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생존을 위한 노력을 간접적으로 보고, 생각해보고, 느껴가며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을 극복할 수 없고 시련을 겪는일이 많기에 피조물이라는 말을 한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이 절대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고, 그런 존재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가며 너무 자만하지도 말고,
너무 자책하지도 말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더 생각해보며 살아가야 겠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Midnight Library)
미드나잇 라이브러리, 자정의 도서관. 처음에 책을 골랐을 때는 그저 그런 생각 뿐이었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궁금하다, 나의 호기심을 유발한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노라의 삶을 다시 거치고, 따라가며 그녀와 함께 했다.
나라면 이 삶을 살았다면, 후회가 사라지고 행복해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자꾸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이 남는다는 것을 함께 느꼈던 것 같다.
삶을 살아오면서 사실 후회가 없었던 순간은 없던 것 같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을 때에는 언제나 과거에 선택을 했던 과거의 나, 혹은 그 주변인물들, 혹은 그 상황들에 탓을 돌려왔다.
그러다보니 나라는 사람은 현실을 사는게 아니라, 후회속에 살던 사람이었다.
이 책을 만나게 되고, 그 삶을 나로 함께 대입해서 따라 읽으면서, 과연 내가 그 삶을 살았다면, 내가 원하던 바대로 삶이 이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선택이라는 것이 돌이켜보면 그 당시의 나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기억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에 조금 더 더하고 싶은 말이 있다. 현재에 만족하고, 현재에 행복할 수 있도록, 그것이 어렸을 때부터 지금의 내가 선택해온 길이기에 후회하지 말고 열심히 살으라고, 분명 그 삶에 가치가 있는 것이 맞다고, 거기에 더해서, 삶이라는 것이 일회성으로 그친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선택에 있어서는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들으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생각했던 그 생각들이 항상 정답이 아니었기에, 돌다리도 두들겨 가보자는 마음으로 하나씩 두들기다 보면 나에게 맞는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