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리터의 눈물 (눈꽃처럼 살다간 소녀 아야의 일기)

아야의 아픔에 대해 공감할 수는 없다.
다만 그 아픔이 얼마나 갑작스럽고 안타까운 것인지는 느껴질 수 있었다.
아야가 이만큼 웃기따지 1리터의 눈물이 필요했다는 말이 있었다. 만약 나였다면,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힘들고 어려운 환경이 닥칠수록 불평 불만이 늘게 된다는데 나도 작은 일 하나에 불평하고 불만을 갖지 않았을까.
세상을 살면서 하루하루 경험들이 쌓이며 느끼는 것은 아무리 잘 살고,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해도 사람의 본성만큼은 닦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든 고초를 겪음으로 더 강하게 자랄 수 있는 식물들이 있듯이 온실 속 화초로만 사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에게 주어진 힘든 환경들도, 어쩌면 작은 것의 소중함과 일상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힘들고, 아파 하면서도 끝까지 삶이라는 희망을 놓치않았던 아야,
아야가 살고 싶고, 그토록 바래왔던 내일을 사는 우리들은 정말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감사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영혼을 찍는 카메라가 있다면, 짓눌리고 억압받는 정신을 촬영하고 인화할 수 있는 과학이 있다면, 렌즈를 들이대고 분명히 찍어두어야 할 여성의 깊은 상흔은 일일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찍어야 상처의 증거가 되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은 교묘하고 복합적이다. 이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일상적으로 이해되고, 그리하여 일상의 하나로 무심히 잊히는 시회는 진정 옳지 않다.
 그래서 강민주가 등장했다. 낮은 포복을 혐오하고 높이 기립해서 사는 여자, 물살을 거스르며 하류에서 강의 상류로 나아가는 여자. 그런 주인공이 필요했다. 현실에는 없지만, 소설에서는, 소설이므로, 강민주 정도는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성의 대결이나 성의 우월을 가리기 위해 이 소설이 쓰인 것은 아니다. 이 소설은 말하자면 상처들로 무늬를 이룬 하나의 커다란 사진이다. 함께 들여다보면서, 서로 대립하지 않고, 각자 동등한 자리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데 유용하게 쓰여야 할 사진이다. 강민주의 테러가 잔인한 보복으로 끝나지 않고 가슴 더운 인간의 길로 접어든 것도 그 때문이다.
작가의 말
나의 할머니, 이모, 하물며 친구의 친척까지 여성들의 삶은 영화 한 편, 책 3권의 분량을 훌쩍 넘을 드라마를 담는다. 그것이 가장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남성의 가학과 폭력으로 인한 비극이라는 데 매번 절망한다. 양귀자 작가 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읽으며 소설이 발행된 년도를 거듭 확인했다. 오늘날 젖은 날개를 달고 하늘로 날지 못하는 여성들의 모습 그대로를 담았고, 92년과 크게 달라질 것 없는 모습에. 그러나 어쩐지 다행스러움도 느꼈다. 적어도 지금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물론 아직은 소수라 생각하지만) 자신 속에 강민주를 품고 산다. 세상의 폭력으로부터 더 이상 익숙해지지 않기 위해 서로를 북돋우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다.

체호프 단편선 (세계문학전집 70)

공포
「말 좀 해보시오, 친구. 무시무시하거나 비밀스럽거나 환상적인 이야기를 할 때, 우리는 어째서 실제의 인생으로부터가 아니라 꼭 유령이나 저승 세계에서 소재를 취하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으니까 무서운 거지」
「아니 그렇다면 인생은 이해가 되시오? 말해 봐요, 그래 당신은 저승 세계보다 인생을 더 잘 이해한다고 생각합니까?」
(…)
「우리 인생이나 저승세계나 매한가지로 불가해하고 무섭습니다. 유령을 두려워하는 자라면 나도, 저 불빛들고, 그리고 저 하늘도 두려워해야 마땅하지. 왜냐하면 이 모두가 잘 생각해 보면 저승의 망령들만큼이나 불가해하고 환상적이니까.(…)」
「모든 것이 무서워요. 나는 천성이 심오한 인간이 못 되는지라 저승 세계니 인류의 운명이니 하는 문제에는 별로 흥미가 없어요. 뜬구름 잡는 일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다는 얘깁니다.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진부함이에요. 왜냐하면 우리들 중 누구도 고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내 행동들 중에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가려낼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전율하게 만들어요. 생활 환경과 교육이 나를 견고한 거짓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놓았다는 걸 나는 압니다. 내 일생은 자신과 타인을 감쪽같이 속이기 위한 나날의 궁리 속에서 흘러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나는 죽는 순간까지 이런 거짓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무섭습니다. (…) 내 생각에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매일 실수를 저지르고 옳지 못한 짓을 하며 서로 비방하고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겁니다. 사는 데 방해만 되는 불필요하고 시시한 짓거리들에 우리는 자신의 힘을 소진합니다. 이것이 무서습니단 왜냐하면 이 모든 일ㅇ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
<그는 삶이 무섭다고 말했지.>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삶에 대해 격식을 차리지 말라고. 삶이 나를 짓누르기 전에 네가 먼저 삶을 부숴버려. 삶으로부터 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취하란 말이야.>
베로치카
술로 데워진 그의 마음은 유쾌했고, 따뜻했으며, 또한 슬프기도 했다……. 걸어가면서 그는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자주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가를 떠올리고 이런 만나 뒤에는 추억만이 남겨질 뿐임을 안타까워했다. 지평선 위에 두루미들이 가물거리고, 산들바람이 이들의 애원하는 듯한 혹은 기뻐하는 듯한 울음을 실어오기도 했지만 몇 분 뒤에는 아무리 애써 푸른 저편을 응시도 점 하나 보이지 않고,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다. 바로 이처럼 사람들의 얼굴이나 말도 삶 속에서 명멸하다가는 과거 속으로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다. 보잘것없는 기억의 자취만 빼고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로.

도덕을 위한 철학통조림 (매콤한 맛)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철학이란 무엇일까? 고전 소설과 추리 소설 등 소설을 비교적 많이 읽고 평소 철학자도 가까이 하지 않는 나에게 철학이 낯설고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철학이라는 단어 자체만으로도 딱딱하고 어렵다는 생각에 막연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분야의 책을 읽어보고 싶어서 어려움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철학책이나 에세이를 접하고 싶었다. 그 중 눈에 띄는 게 철학통조림이었다. 우선 표지부터 신선했다. [철학 통조림 : 매콤한 맛]이라는 제목에서 작가의 감각을 엿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독자들을 이해시키거나 설득을 할 땐 등장인물간의 대화형식이나 독자들에게 말을 하는 듯한 화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아마 이 책도 이런 식으로 내용을 이어나가지 않을 까 하는 내 생각이 딱 맞았다. 작가의 쉬운 해설에도 불구하고 책의 내용은 거의 철학을 접하지 않는 나에게 아직 먼 나라 이야기였지만 평소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도덕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작가가 말하는 철학은 참된 지식과 바른 삶의 길을 가기위한 인생의 나침반, 지혜로운 항해법이라고 말했다. , ‘참된 지식에 대한 탐구순수 의견이라고 했다. 참된 지식이란 막연하게 알고 있는 어떤 상식적인 것들을 의심하고 꼼꼼히 따져 본 후에야 비로소 얻게 되는 건전한 상식이다. 이는 잘못된 상식을 깨뜨리는 일이기도 하며 진정 나의 건전한 지식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 철학이란 삶의 진리를 연구하는 학문인 것 같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모든 것은 다 인간의 사회생활에서 시작된다. 적어도 나는 철학이란 인간이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학문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중요함을 모르고 살아간다는 걸 깨달았다.

이 책은 이제까지 알고 있던 막연한 상식들을 꼼꼼히 따져보았다. 그리고 위대한 인물들이 평생 고민하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느끼게 해준다. 어쩌면 나는 한 평생 살면서 고려하지 못할 것들을 단지 이 책 한권만으로 깨닫게 되었을지 모른다. 몇 세기를 걸쳐 쌓아진 내공을 한꺼번에 나에게 쏟아 붓는 것 같아 흥분되었다. 이 책은 소홀히 잘 읽어냈지만 아직까지도 철학이란 무엇인지 헷갈린다. 그러나 [철학 통조림 : 매콤한 맛]은 다시 한 번 읽어볼 만한 아주 유익한 책이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의 고민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을 한 적이 있거나 그 고민을 해결하지 못해 혼자 끙끙 앓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고민 때문에 힘들었던 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부모님을 비롯해 친구들, 선생님 덕분에 난 그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고 혼자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었다. 개인 사정을 남에게 밝히고 싶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더 봉쇄하거나 혼자 해결하려고 들었을 텐데 주변 사람들과 환경의 도움을 많이 받아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책 속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시 외곽에 위치한 나미야 잡화점은 30여 년간 비어 있던 오래된 가게이다. 어느 날 이곳에 세 명의 남자아이들이 숨어든다. 그들은 강도짓을 하고 경찰의 눈을 피해 달아나던 중이었다. 외딴집인 줄로만 알았는데 난데없이 나미야 잡화점 주인 앞으로 의문의 편지 한 통이 도착하고, 세 사람은 얼떨결에 편지에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답장을 보내며 자신들의 일처럼 상대방의 사정을 진심으로 걱정하게 된다. 각 장마다 고민 상담 편지를 보낸 이들의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

운동선수는 자신의 고민을 담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성의 없이 답변을 해주어 화를 낼 것 같았는데 그녀는 오히려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어 감사 인사를 건넸다. 역시 무거운 짐을 혼자 드는 것보단 여러 사람이 함께 짊어져야 모두가 행복한가 보다. 주변의 작은 관심만으로도 한 사람은 큰 힘을 얻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내 주변에 가족, 친구, 선생님 또는 책 속 나미야 잡화점같은 상담소라도 없었더라면 난 홀로 외롭게 그 고민을 부둥켜 안은 채 우울증에 시달리고 말았을 것이다. 내가 도움을 받은 만큼 타인에게 베풀고 어떠한 작은 슬픔이나 행복도 같이 나누면 보다 더 평화롭고 화목한 세상이 오지 않을까 느꼈다.

소설에서 여러 가지 흥미 있는 점들이 많았다. 상상만 해도 으스스한 분위기에 거의 폐가가 되어버린 건물의 주인 앞에 놓여진 편지라니. 나는 기겁을 하고 도망갔을 것이다. 하지만 모험심이 넘치고 호기심 많은 세 아이들은 그 편지를 읽어보고 답장까지 해주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점이 있다면, 잡화점 밖과 안의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이다. 따지고 들면 건물 안의 1분이 밖에선 약 4분인 셈이다. 책을 읽으며 신비로움을 감출 수 없었다.

박민규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Is That So? I’m A Giraffe)

화자는 돈을 벌기 위해 시간당 삼천 원의 전철 푸시맨, 천오백 원의 주유소 알바, 천 원의 편의점 알바를 한다. 전철 승객을 사람이 아니라 화물로 생각하라는 코치 형의 이야기, 정원 180명의 차에 400명이 타야 하는 현실이다. 화자는 전철 속 한바탕 벌어질 전쟁을 생각한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며 화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가 보는 마음이 아렸다. 승객의 등을 밀고 심지어 아버지의 등도 밀어야 하는 안타까움에 제대로 밀지를 못하는 그 마음이 깊게 느껴졌다. 마지막 부분에서 아버지를 닮은 기린을 환상으로 만난다.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으면 낮잠을 자고 난 후 기린이 보였을까. 형상은 기린이지만 그 안에 아버지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화자는 카프리썬 하나가 자기 인생의 이십오 분이라고 했다. 그 말인즉슨 카프리썬의 가격이 25분 일 했을 때 받는 돈이라는 것이다. 돈을 지출하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자신이 얼마만큼 더 일을 해야 하고 땀을 흘려야 되는지 계산한다는 게 안쓰러웠다. “나이 마흔다섯에 시간당 삼천오백원이 아버지의 산수라고 하는데 여기서 산수란 경제 수준을 의미한다. 화자는 자신이 아버지와 비슷한 수준으로 살아야 됨을 암시했다. 푸쉬맨 일을 하게 된 화자는 전철 안전선은 신체의 안전선이지만 삶의 안전선은전철이라고 했다. 나는 화자처럼 위태롭게 간신히 하루의 고비를 넘기고 내일의 시련을 생각하며 힘겹게 살지 않을 것이다. 화자는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아버지와 똑같은 삶을 살아야함을 깨닫고 막막해하고 두려워한다. 그의 모습을 보고 나는 절대로 결코 절망하고 후회할 삶을 살지 않을 것이라고 깊이 되뇌이고 또 다짐했다. 현대 자본주의 삶에 얽매이지 않으리라 믿는다.

회사 말고 내 콘텐츠 (남의 생각에 시중드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세상에 소비와 생산이 있다는 관점에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어서 흥미있게 읽은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소비와 생산은 단지 돈에 대한 소비, 물건을 만들어내는 생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튜브 보기, 책 읽기, 어디가서 강의 듣기, 영화보기, 블로그에서 짧은 글을 보는 것. 이것을 하고 있다면 소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생산은 반대로 앞의 것들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소비를 안하고 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생산을 하지 않고는 그럭저럭 살아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러지 말고 생산을 하는 삶을 살아보라고 권한다. 바로 자신의 콘텐츠를 만들면서 말이다. 이제는 인터넷이 열려서 콘텐츠 하나 만들어보는 것은 쉽다.

여기서 저자는 하루라도 빨리 콘텐츠를 만들어보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소비하는 콘텐츠와 생산하는 콘텐츠의 격차가 벌어질수록 자신의 것은 한없이 초라해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콘텐츠를 시작하려는 용기가 안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유튜브만 보더라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삐까뻔쩍한 편집방식으로 자신의 콘텐츠를 뽐낸다. 이런 것에 익숙해지고 난 다음 자신의 영상을 만들어보려고 한다고 하자. 이때 자막 밖에 달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거기서 포기해버릴 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냥 지금 당장 뭐 하나를 만들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것 같다.

책에서 이런 말도 나온다.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생산을 하기 시작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런 것 같다. 난 생산을 해보기 전까지는 영화들을 보고 ‘재미있네, 별로네’ 등등 평가질하기만 바빴다. 하지만 전자책을 써보는 등 생산을 해보려는 노력 이후 생산에는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걸 깨달으니 영화 한 편을 보더라도 ‘와, 이 장면은 어떻게 찍었을까, 이 장면 찍으려고 개고생 했을 거 같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작업에 시간을 쏟았을까’하는 존경심이 들기도 한다.

때론 부럽기도 하다. 얼마전 유튜브에서 넥플릭스 드라마 디피 제작 발표회? 같은 것을 보았다. 감독들과 배우들이 나와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걸 보면서 ‘다 같이 고민하고 고생하면서 만든 결과물이 인기를 얻고 그걸 또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게 얼마나 재미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부러웠다. 이렇게 대단한 걸 만들어본 적은 없지만 확실히 무언가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만으로도 세상이 달리보이기는 한다.

생산을 해야겠다~해야겠다~ 생각만 하던 내게 좋은 자극을 주는 책이었다. 읽어보기 잘한 것 같다.



일을 잘한다는 것 (자신만의 감각으로 일하며 탁월한 성과를 올리는 사람들)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두 작가가 대화하는 형식의 책이다.개인적으로 나에게 너무 어려운 책이었다. 이 책은 ‘감각은 이런 것이다!’라고 딱 정해주지 않는다. 그 대신 많은 사례를 보여주며 알아서 감 잡으라는 식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ㅎㅎ. 그래서 더 어렵게 느껴졌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이해한 것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책 전반적으로 저자들은 기술과 감각이라는 두축을 이용해 설명을 해나간다. 그 중에서도 감각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이 안중요하다곤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기술만으로는 ‘일을 잘한다’라고 말하기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기술이 마이너스(-)에서 0으로 가게 해준다면 감각은 0에서 플러스(+)로 가게 해준다.

오직 기술만이 중요한 상황은 수요가 공급을 뛰어넘어버리는 상황뿐이다. 이 책에서는 만두로 설명을 해준다. 갑자기 사람들에게 만두가 트렌드가 되어 만두를 미친듯이 찾기 시작한다. 이때 만두를 만드는 사람이 부족해진다. 그러면서 만두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는 사람은 굳이 다른 감각이 없더라도 돈을 벌고 일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만두를 만드는 기술이 각광받으면 그 기술을 배우는 사람이 점차 많아진다. 점차 그 중 가장 맛있는 만두가 주목을 받을 것이고 사람들은 점점 그 사람에게 몰릴 것이다. 즉, 감각이 있는 사람에게 몰린다. 마치 현재 코딩 기술을 배우는 현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사람들은 이렇게 감각이 중요한 시대에서도 기술을 쫓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왜냐? 기술은 바로 눈에 보이고 측정하기가 쉽다. 그리고 명확하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예를 들어, 영어를 유창히 잘하는 기술을 기르고 토익 점수를 내밀면 끝이다. 프로그래밍을 이라는 기술은 자격증이나 작업물로 보여주어 가시화할 수 있다. 하지만 감각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가시화하기는 어려운게 사실이다.

이렇게 감각이라는 것은 불확실하고 눈에 안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시하려하고 한다. 심지어는 감각을 기술로 덮어씌여 버리려는 모습도 보인다. 대표적인 예로는 사람마다 좋고싫음이라는 나름대로의 감각이 있는 것인데 이것을 옳고그름이라는 과학적인 시각으로 덮어씌운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논쟁을 벌인다. 감각은 감각으로 남아야지 기술적으로 자꾸 측정하려고 하면 그것은 그냥 기술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중요한 감각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냐?’ 라고 물으면 나도 모르겠다. 책에서 딱 잘라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감각이라는 것은 분명 후천적이고 키울 수 있는 것이라고 해준다. 이때 감각은 기술처럼 ‘이런 커리큘럼을 따라가 이런 기술을 얻었다’로 인과관계가 설명되진 않는다. 나중에 결과를 보고 ‘아 이걸 해서 이렇게 된거였구나’라고 나중에 인과관계를 깨닫는 것이 감각의 특징이라고 한다.

또한, 자신이 어느 자리에 있어야 빛나는 사람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알려준다. 이건 오직 많은 경험을 통해 알수 있는 것이라 말해주기도 한다. 다른 어떤 적성 검사나 성격 검사 같은 것은 우리와 같은 복잡한 인간에게 의미가 없다.

책 중간에서부터는 수많은 경영자의 사례가 나온다. ‘시너지, 순열적인’ 등등 어려운 용어도 나온다. 그래서 난 알아듣지 못해 훌훌 넘기며 봤다. 결론적으로 나에게 참 아리송한 책이었다.

 

공부머리 독서법 (실현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독서교육의 모든 것)

자녀를 둔 부모님을 타겟으로 쓰여진 교육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전달하는 책이다.

초등학생이 중학교,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이유를 언어 능력으로 풀어 설명한다.

초등학교 교육은 사교육 일명 쪽집기 과외를 받으면 충분히 따라갈 수 있으나, 중학교부터는
내용의 어려움과 절대적인 공부량 증가로 사교육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스스로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않은 초등학생은 언어 능력이 부족해 교과서를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성적의 변화를 겪는다.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성적을 되돌아보니 나에게도 적용되는
정확한 분석이었다.

내가 수학과 영어를 제외한 과목을 공부하기 싫었던 이유가 교과서나 참고서를 읽어도 이해를 못했다. 그렇게 성적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결과를 얻었다.

대학교에 들어와 버려지는 통학시간이 아까워 독서를 시작했다.

살면서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책을 읽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꾸준히 책을 읽으면서 언어 능력이 고등학생 수준을 뛰어넘게 되었고, 수준
높은 책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이 쉬워졌다.

내가 독서를 안해서 성적이 떨어지고 독서를 해서 성적이 올랐구나하는 깨달음이 있었지만 가장 큰 소득은 독서 가치관이 변화했다.

살면서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독서를 지금까지 해왔다면 이제는 독서는 선택이나 사치가 아닌 필수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생의 한가운데 (문예세계문학선 5)

  나는 할머니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생전 처음으로 느꼈어요. 우리가 정신 속에서 우리를 구제하지 않는다면 삶이란 끔찍한 것에 불과하다고.
 소름이 끼치는 것도 너에게 해는 안될 것이다. 그것도 다 생의 일부분이니까. 우리는 추악한 것을 보지 않으면 중요한 것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어두컴컴하고도 출구없어 보이는 복도를 무한히 걸어갈 때면 너는 언제나 문을 열어주었고, 나에게 와서 햇빛이 찬란한 넓은 평야의 광경을 보여주었다. 비록 그 평야에 내가 발을 들여놓을 수는 없었으나 그 광경만이라도 나를 최후의 절망에서 구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