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 (한강 장편소설)

 예전에 이 책을 지인으로부터 추천을 받아서 언젠가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독서클럽 활동을 기회로 삼아 읽어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사실적이고 감각적인 문체로 5.18 민주화 운동의 끔찍한 현장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담아냈다. 다소 자극적이고 끔찍한 상황을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담아내는 장면이 인상이 깊었다. 특히 2장의 ‘검은 새’ 이 부분에서 이런 점이 잘 나타나있다고 할 수 있다. 이 2장의 문체는 나에게 너무 충격적으로 다가와서 책을 다 읽고 덮은 순간까지 그 생생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 많은 책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사람의 죽은 영혼의 생각을 그려냈다는 것이 독특할 뿐더러  마치 내가 이 화자의 영혼이 되어 그 사람들의 시체 무더기 속에서 시체 썩은 내를 맡으며 비참하고 참혹한 현장에 직접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소름이 돋았다. 이 작가는 어쩌면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게 의도적으로 그렇게 표현한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죽은 영혼의 정대 이 한명의 인물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화자를 두고 장마다 바꿔가면서 5.18의 참혹한 현장을 이야기한다. 책 중반에서는 5.18로 인해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친구를 두고 계속해서 죄책감을 갖고 회의적으로 자기자신을 대하는 여자의 이야기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다 읽고 덮음과 동시에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해주는 책이다. 이 내용을 가지고 친구들과 독서토론을 하여 많은 생각들을 나눔으로써 이 책에 대한 깊이도 더 깊어졌고 다시 한번 책 내용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단순히 책을 읽는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눈다는게 내 사고를 더 넓힐 수 있다는 것을 이번 독서클럽 활동을 하면서 깨달았다. 

자존감 수업 (하루에 하나, 나를 사랑하게 되는 자존감 회복 훈련)

지금 우리 사회는 처음으로 학교라는 사회적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경쟁, 비교, 때로는 남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감 저하를 겪게 되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필자 또한 대입을 준비하며  실패를 겪음으로 많은 자신감 저하를 경험해 보았다.
문득, 이 ‘자존감 수업’이라는 책을 처음 접하고서 가장 먼저 나의 몇 몇 사건들이 스쳐갔다. 지금 되돌아보면 별거 아닌 일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나에게 정말 신경 쓰이고 걱정되던 일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 이라는 생각과 함께 읽어내려 갔다.
필자는 “자존심이 강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자존심이 무엇이길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으나 한번도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 책을 피면 바로, 자존심은 자존감에서 발생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단어는 자존심이 아니라 “자존감”이다.
자존감은 우리가 아는 자신감, 자만심, 자존심의 모든 원천이다. 따라서 자존감이 어떠한 상태인지에 따라 세가지의 감정이 결정된다.
우리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학교를, 직원으로서 회사를, 남편 혹은 아내로서 가족 구성원으로 말이다.
이렇게 구성원으로 살아가면서 감정적으로 다양한 충돌을 경험하게 된다. 불쾌하며 때로는 짜증나는 경우도 있다. 이와 동시에 나의 자존감도 무너진다. 
이렇게 무너진 자존감을 그대로 두면 남과의 충돌이 더욱 많아지는건 당연하며, 나 스스로 불만과 자괴감에 빠져들게 된다.
따라서 무너진 우리의 자존감을 회복해야 한다. 필자의 자존감은 어떠한지 알아보고,  책에 수록된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나쁜 습관과 이별 계획 세우기’, ‘자신을 사랑하기’ 는 나에게 있어 책의 가장 인상 깊었던 활동이었다. 
나쁜 습관은 결국 나의 자존감을 망가뜨리는 빠른 지름길이나 다름없었다. 나의 나쁜 습관 몇 개를 생각해보고 책을 읽는 동안 고쳐보려 노력해보았다.
또 ‘자신을 사랑하기’에서 나의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걷기를 추천해줬다. 
처음에는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걷기를 하라는 것에 의문이었지만, 직접 해보고 나서야 이해가 되었다. 
걷는 동안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는 기회가 되었으며, 이를 통해 나의 하루를 되돌아보고 가끔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걷기를 하는 것 또한 효과적임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었던 이 시간은 나의 자존감을 알고 확립할 수 있는 갚진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때로는 자존감이 무너질때 또 다시 도움이 되길 바란다. 

뼈 있는 아무 말 대잔치 (이왕이면 뼈 있는 아무 말을 나눠야 한다)

이 책은 한 권을 통틀어서 성공하고 싶다면 피나는 노력을 하라는 말을 전한다. 작가는 젊을 적엔 방황을 했지만, 커서 정신을 차린 뒤 정말 엄청난 노력으로 성공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글쓰기를 위해 자신이 쌓아온 것을 내려놓은 뒤 다시 노력해서 작가로 성공을 한다. 결국 작가는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두면서 우리도 자신과 같은 노력을 통해 성공에 가까워지라고 방향을 제시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 활동들을 완전히 포기한 채 성공하려는 분야에 노력을 쏟아붓는 것은 엄청난 고문이다. 특히나 노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 작가의 말이 너무 극단적이고 과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작가의 말들이 완전히 공감이 되지는 않았다. 내가 아직 대학교 3학년이라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은 졸업 이후의 삶과 현재 앞에 다가온 방학에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지 고민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명확하게 삶의 지혜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약간은 답답하게 느껴졌다. 이 책은 노력을 하고 싶은 데 자극이 필요한 사람들이 읽으면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탄력을 받아 열심히 할 동기가 되게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눈 앞에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막연히 그런 고민 필요 없고 노력을 하라고 말하기 때문에 후반으로 갈 수록 흥미가 약간 떨어졌다. 하지만 책의 초반에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마음 속에 담아두면 이로운 말들이 적혀있어서 인상 깊었다. 이 책에서의 ‘너무 자주 하는 7가지 오해’에서는 “공부하면 무조건 이해되고 성장한다”라는 말이 나온다. 즉 실제로는 공부를 하면 무조건 이해되고 성장하지 않는 다는 말이다. 작가는 공부가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말한다. 정체구간에 들어가면 공부에 투입한 노력에 비하여 성장의 결과물이 절대 비례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알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한다면 결국 느린 실력 향상이 멀리서 봤을 땐 숲이 되어있을 것이라 한다. 나는 이 포화상태라는 말이 현재 내 모습을 잘 나타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3학년이 된 나는, 1, 2학년 때와는 다른 전공 내용들과 과제에 치여 무엇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고 생각을 했다. 때로는 아 그냥 포기할까 라는 생각도 많이 들고는 했는데, 이런 하나하나 들이 다 결국엔 내 경험치로 쌓인다는 생각을 하니, 내 미래가 기대되면서 좀 더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자기계발 서적을 읽으면서 예전에는 이런 책을 읽을 때 모든 말들에 공감을 하면서 읽었는데, 지금은 어느정도 내 생각이 자리잡혀 이런 부분에서는 공감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스스로의 의견을 생각하면서 내 관념을 단단히 다지게 되는 것 같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차별에 대한 여러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완벽한 피해자성, 가해자성이란 없다는 걸 꼬집는게 가장 인상적이었다. 피해자성을 가진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피해자성을 지키고 싶어 방어적인 자세를 취할 때가 많다. 예를 들면 트랜스젠더를 대하는 여성들의 자세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차별하는 행위는 결코 용인될 수 없다. 더 다양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여 옳바른 방향으로 나아가야지 소수자를 배척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된다. 이런 생각 등은 대체로 인권과 복지가 파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타범주’가 인정 받고 복지를 받을수록 ‘자신들은’ 그만큼 해택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듯 말이다. 하지만 인권은 결코 파이가 아님을 확실히 인지해야한다. 차별 당하지 않고 오롯 한 사람으로서 존중 받는 일은 인간이라면 당연히 누려야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켜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많은 차별 속에서 살고 있다. 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아마 내가 알고 있는 차별은 극히 일부일 것이다. 그럴 때, 모든 걸 인지 할 수 없다는 건 인정하고 들어가야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른 척 외면한다는 뜻은 아니다. 차별하는 순간을 직시했을 때, 또 이의가 제기 되었을 때, 그 순간이 중요하다. 그러한 순간을 모두 대비할 수는 없지만 어느정도 가이드를 만들어 적어도 차별이 대물림되는 일은 방지해야할 것 같다.

지식인의 옷장 (알고 입는 즐거움을 위한 패션 인문학)

지식인의 옷장. 다른 패션 관련 책들과는 다르게 제목이 독특했다. 
사실 독서클럽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같은 전공인 학우들과 함께 ‘지식인의 옷장’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패션 관련 분야의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책이긴 하다.
이 책에서는 “~은 ~이다”라는 규정을 지으며 확정을 짓는 말이 대부분이라서 약간의 반발심이 생겨 정말 흥미로운 내용과 주제들을 찾을 수 있어, 
패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패션들을 되돌아 보고, 과거에는 대중들이 어떤 패션에,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다른 나라들은 어땠는지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도 갖게 되었다. 
특히 마지막장에 있는 주제인 “패션을 몰라도 되는 사람은 없다”라는 문장이 가장 인상깊었다.
패션은 특정 계층의 것이 아니라, 생존의 기본인 ‘의식주’의 첫머리에 오는 것이다.
옵션이라고 생각하면 특정 계층의 문제겠지만 기본이라고 생각하면 관점이 바뀐다.
패션을 통한 관계 맺기는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사회 속의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에 애정을 가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보는 것이 패션이다.
이러한 시도를 반복하며 자존감을 키우고 꾸준히 사회적으로 소통하려는 노력, 매력적인 애티튜드와 스타일링을 통해
타인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려는 노력이 어째서 사치라고 할 수 있을까.
패션에 관심을 가져보라는 제안은 단순히 옷을 잘 입으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과 같다.
그러니, 패션을 단순히 사치나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고 가꾸는 것이라 생각하고 패션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라고 권장하고 싶다.

세 종교 이야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믿음과 분쟁의 역사)

 종교의 실체적 사실에 관심이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을 접한 것은 좋은 기회인 것 같다. 이 책은 세종교 관계 안에서 역사를 바로보고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바라봐야할지에 대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특히 9장 <반목과 갈등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반유대주의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로 인해, 세종교의 이해관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유대인의 비극에 대해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했지만, 그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설명은 되었다.
수 천년동안 세종교의 대립은 지속되고 있다. 아직도 유대인의 비극은 계속 된다고 생각한다. 과연 세종교 간 대립이 끝나고 평화공존이 가능할지에 대한 저자의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종교의 순기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과연 종교는 역사 안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종교가 어떻게 우리 일상에 자리잡았는지에 대해 알아가면서 종교의 순기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같은 책을 읽은 친구들과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책에 내용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가능했다.
 
 
 
 

세 종교 이야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믿음과 분쟁의 역사)

 종교의 실체적 사실에 관심이 있는 상황에서 이 책을 접한 것은 좋은 기회인 것 같다. 이 책은 세종교 관계 안에서 역사를 바로보고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바라봐야할지에 대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특히 9장 <반목과 갈등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반유대주의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로 인해, 세종교의 이해관계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유대인의 비극에 대해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했지만, 그들의 이해관계에 대한 설명은 되었다.
수 천년동안 세종교의 대립은 지속되고 있다. 아직도 유대인의 비극은 계속 된다고 생각한다. 과연 세종교 간 대립이 끝나고 평화공존이 가능할지에 대한 저자의 질문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종교의 순기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과연 종교는 역사 안에서 어떻게 성장했는지, 종교가 어떻게 우리 일상에 자리잡았는지에 대해 알아가면서 종교의 순기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같은 책을 읽은 친구들과 생각을 공유함으로써, 책에 내용에 대한 깊은 이해가 가능했다.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超.殺人事件)

  처음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가면산장 살인사건이었다. 이때 나온 반전이 마음에 들어 그의 소설을 찾아 읽었었고,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도 비슷한 이유로 읽게 되었다. 자세히 알아보지 않고 작가의 이름만 보고 골랐던 만큼, 단편집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또한, 추리소설이라기보단 추리소설을 이루는 여러 요소들을 이용하여 문학계의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은 어떤 소설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같은 책을 읽었던 다른 사람은 추리 소설을 많이 기대했었던지, 여러 단편집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난 오히려 그런 면이 독특하고 마음에 들었다. 하늘 아래 다 같은 추리소설은 있지 않겠지만, 그의 추리소설을 한 권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단편을 읽을 것 같다. 추리소설가의 살인사건 속 여러 단편들은 여러 가지 시각에서 현실을 비판하고 있었는데, 고령화되어 가는 문학계, 허세로 읽는 독자들, 그걸 노리고 돈을 벌기 위해 책을 이용하는 편집자 등이었다. 평소 누구나 생각할 법한 일부터 실제로 그 업계에 있지 않다면 모를 만한 일까지 추리소설의 골자를 이용하여 너무 재미있고 흥미롭게 비판했다. 이게 무슨 내용이야 싶다가도 놀랍거나 어쩌면 허무함이 느껴지는 반전으로 자신의 생각을 때려박아 이해시키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마지막엔 열린 결말식으로 애매하게 끝이 나, 독자의 상상을 부추겼다. 읽는 사람이 짜증이 날 법한 결말이 아니라, 대체 작가는 무슨 생각으로 이 글을 쓴 걸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결말이었다. 가령, 예고소설 살인사건의 경우에서는 과연 범인은 작가 본인이었을까? 라는 추리소설적인 의문이 들었다. 또한, 무명 생활 10년을 거친 작가로서 나는 같은 결정을 내리겠는가? 라는 의문과 그렇게 해서라도 인기를 얻고 싶을 수많은 무명 작가들이 떠올랐다. 이렇듯 한 편 한 편마다 단편이라기엔 어떠한 장편보다도 현실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처음 원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이 책을 읽었던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고,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읽어보며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다.

팩트풀니스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팩트풀니스를 읽으면서 부제 말 그대로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어, 우리는 세상을 상당히 오해하고 있다는 점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하던 책이라 읽어보자라는 마음가짐만 가졌지, 책의 겉표지로 인해 장벽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 독서클럽 활동을 통해 한스 로슬링이 저자인 이 책을 오랜시간을 들여  두고두고 읽어 보았다. 첫 장부터 퀴즈를 풀어보라고 문제를 내는데 나는 처음에 70%이상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4문제만 맞추어서 이 문제의 의도를 파악 했던 것 같다. 일부로 많이 틀리게 문제를 내는게 당연하지만, “이렇게 내가 사회 문제에 대해 무지한가?”라는 생각을 많이 들었다. 이 책의 내용 중 아무래도 가장 인상깊은 내용은 1장 ‘간극 본능’이다. 아무래도 도입부를 맡고 있고, 내용의 중심이 되다보니 그런 것 같다. 이 파트에서 소득수준으로 세상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으로 바라보는게 아닌 1단계부터 4단계로 나누는 방법을 새로 제시해서 가장 인상에 깊었다. 간극 본능을 이해하면 뒤에 마지막 11장 사실충실성까지 내용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주는 가장 큰 깨달음은 팩트와 의견을 구분하는 것 이다. 적어도.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말을 팩트가 아니라 의견일 뿐이다. 극빈층이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만 가지고 총체적으로 ‘좋은 세상’, ‘괜찮은 세상’이라 단정 지을 수 없다. 기준을 어디에 잡느냐에 따라서, 어떤 기준이 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가치판단은 달라질 수 있기 떄문이다. 따라서 이것을 다른 통계적 자료에 뒤섞여 하나의 의견이 아니라 팩트인척하는 것은 기만이다. 그렇기 때문에 팩트풀니스를 바탕으로 우리는 더욱 더 깨어있는 사고를 해야한다. 이 세상의 왜곡된 진실을 알아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