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나를 사랑하는 연습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더 나은 오늘은 어떻게 가능한가)
쇼코의 미소 (최은영 소설)
‘쇼코의 미소’는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이다. 책의 제목이자 대표작인 ‘쇼코의 미소’를 비롯하여 ‘씬짜오, 씬짜오’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한지와 영주’, ‘먼 곳에서 온 노래’, ‘미카엘라’, ‘비밀’로
총 7개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소설의 배경과 등장하는 인물들은 동떨어진 것이 아닌, 실제 있었던 멀지 않은 사건들이고 우리
주변 혹은 나 자신과 겹쳐볼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삶과 감정에 일맥상통하는 부분들을 가져
읽으면서 소설에 더 공감할 수 있게 한 작품들이었다.
작품들 속 내용과 배경은 다 다르지만 모두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이별을 겪는다. 하지만
인물들은 이에 따르는 상실감을 억지로 극복하거나 상실감에 저항하려고 하기 보다는, 있는 그대로 그것을
느끼는 모습들을 보인다. 끊어지는 관계를 억지로 매어 놓지 않고 그대로 흘려보내는 모습들도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한지와 영주’ 에서 주인공 영주의 할머니가 어린 영주에게 이별에 대하여 말하시는 부분인데 ‘사랑하는
사람이 죽거나 떠나도 너무 마음 아파하지 말라고,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 버리지 말라고’ 말씀 하시며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라고 하신 부분이다. 물론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많은 것을 배우며,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하여 마음의 안정과
위안을 얻는 점을 생각하면 관계의 단절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영주의 할머니가 하신 말씀은 아마도
관계의 단절에서도 너무 자신을 슬픔으로 깎아 무너지지 말고 계속 살아나가라 라는 뜻 일거라고 생각하였다. 실제로
‘한지와 영주’ 에서, 한지는
해외봉사 활동지인 수도원에서 영주와 만나고 둘은 대화를 나누면서 관계를 쌓아나간다. 한지는 영주의 일상에
들어온 사람이지만 어느날 갑작스럽게 대화를 거부한다. 영주는 이유도 모른 채로 갑작스러운 관계의 단절을
겪게 되고, 둘의 단절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사람들의 시선까지 더해지며 혼자 남겨지게 되지만 계속 살아나간다. 관계의 단절이란 ‘씬짜오, 씬짜오’ 에서 주인공의 아버지와 투이 아주머니네 사이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대화 갈등으로 인한 단절 같이 어떤 이유가
있어서 찾아올 수도 있지만, 한지와 영주의 사이처럼 갑작스러운 단절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러한 단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끊어지는 관계가 있으면 다시 찾아오는 관계도 있다. ‘먼 곳에서 온 노래’에서 소은은 대학 노래패 선배이자 한때 동거를 했던 미진선배가 러시아로 떠나고,
미진선배가 러시아에서 살던 율랴의 집으로 찾아온다. 자신이 어려운 상황 에서도 소은을 돌보아주고
감싸주었던 미진을 사랑하던 소은과 미진과 3년간 플랫메이트로 살면서 미진의 러시아 생활을 도운 율랴는
사실 미진의 죽음 이후 그것을 계기로 연락을 주고받게 된 사이이다. 둘 사이의 관계의 시작점은 아이러니하게도
둘 사이의 공통점인 미진과의 관계의 끝남으로 찾아온 것이다. 이 책 속 이야기들은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관계를 담담한 문체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를 읽고 관계의 신비함, 그리고
관계 자체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의 소설들에는
베트남 전쟁, 인혁당 사건, 민주화 운동, 세월호 사건 등의 우리 세대 혹은 부모님의 세대에서 겪어 공감할 수 있는 사건들이 배경이 된다. 본격적인 역사소설은 아니지만 그 시대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주인공들은
그 사건의 당사자는 아닌 사람들인데, 그래서 그들이 그 사건에 대해,
역사에 대해 행동하는 방식이 더 기억에 남는다. ‘씬짜오,
씬짜오’에서 베트남 전쟁에 대한 왜곡된 역사를 배워 본의 아니게 베트남인 가족들에게 상처를
준 주인공, 인혁당 사건의 구명운동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고 사건을 잊은 사람, 세월호 사건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끼고 사건의 언급을 지겹다고 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걸 알지만 나서서 반박하거나
행동하지는 못하는 사람 등이다. 오히려 주인공 보다는 주인공의 주변인물들이 사건의 당사자가 되거나, 혹은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나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공과
비슷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갑자기 혁명가가 되라는 것이 아닌,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가지고, 역사를, 사건을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