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최진영 소설)
별 생각없이 읽었다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일주일>이다. 우리 사회가 숨기거나, 숨겼지만 결국 드러나는 이야기에 주목하고 있다. 청소년의 불행, 과연 이것은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불행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자의보다는 타의적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나에게 공격적인 것만 같고, 나를 향해 비난하는 것 같고, 나를 억압하는 것 같은 때. 그러한 때를 우리는 불행하다고 한다. 어쩌면 나의 탓은 하나도 없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불행을 감내하는 것은 오직 나의 몫이 된다. <일주일>에서는 불행의 책임을 스스로 져야만 하는 청소년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울고 있는 어린이를 바라보면 어린이는 점점 ‘소’라는 글자에 겹쳐졌다. ‘소’를 닮은 어린이는 자라서 열아홉 살이 되었고 혼자 울 때 이제 나는 ‘서’라는 글자와 비슷한 것 같다.’ (14쪽)
<일주일>에서 다루는 특성화고의 실습은 마치 선심 쓰듯 부당함을 강요하는 어른들의 무대이다. 청소년이라 아무것도 모른다는 둥, 원래 이런 것이라는 둥, 감사함을 모르는 애들이 많아졌다는 둥 사실과는 별개로 제멋대로 판단하는 어른이 판을 친다. 어른이니까 믿었고 어른이라서 따랐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아이러니하게도 청소년이 지게 된다. 홀로 서야한다는 의무감으로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어른’의 무게를 지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정작 어른들은 책임을 미루기만 하는 웃긴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혼자 울면서도 체념하고 홀로 서야하는 어른의 탈을 쓴 청소년이 될 것인지, 부당함에 맞서고 사회에서 차츰 소외되는 청소년이 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에게든 너무 가혹한 현실이다.
죽음과 상처가 분명하지만 누구도 이에 주목하거나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에 대해 가시지 않는 의문을 넣어두고 애매한 웃음(37쪽)으로 청소년의 짧은 끈기와 이기심과 불성실함에 동의해야 하는 현실. 어른들의 어리석고 이기적인, 오직 ’내가 맞다‘고 주장하는 질문이 던지는 동아줄을 잡을 수 밖에 없는 현실.
이러한 현실이 현 사회의 현 주소라는 것이 씁쓸하다.
‘나는 아니겠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도 똑같은 사람인 때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고충을 토로하는 이들에게 함부로 ‘버티라’고 말하던 어느 날의 내가 있었음을 잊고 있었다. 버티고 버텨서 이겨내라, 돌아오는 것은 지는 것과 다름없다는 말이 ‘돌아와달라’는 애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를 살아가야할 창창한 청소년들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야 할 것이다. 그들을 잃고 후회하지 않도록, 미뤘던 책임이 배로 돌아오지 않도록 해야한다.
심판
쓰게 될 것
< 사랑은 원래 불안합니다.
> 그런걸 왜째서 7번이나 했어요?
< 은율님은 불안한데 왜 사랑합니까? (105쪽)
사랑은 원래 불안한 것, 그럼에도 사랑하는 것. 최진영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이다. 또 일편단심을 추구하는 은율이와 7번째 사랑과 결혼한 서진의 사랑 경험치 차이가 느껴져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 ㄴㅅㄱㄹㅎㄴㅇㄴㅇㅈㄱㅇㄹㅇㅂㅎㅅㄷ
> ㄴㅇㅈㅂㅎㅅㄹㅋㅅㅎㄷ
> ㅅㅈㅌㅈㄴㅈ (107쪽)
갑작스럽게 등장한 초성에 당황했지만, 은율이가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꼭 알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생각을 해보았다. 직접 이 책을 읽고 내용을 추측해보면 좋을 것 같다. 각자의 해석이 다를테지만 나는 이 초성에 담긴 내용에 꽤 충격을 받았다. 내가 자연스럽게 사랑의 다양성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최진영 작가의 이야기에는 늘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등장하기 때문에 방심해서는 안된다.
‘디너코스’에서는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다 아버지의 은퇴를 기념해 모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이야기가 인상깊었던 것은 은퇴 이후의 삶을 ‘제2의 인생’이 아닌 ‘인생 후반전’이라고 하며 곧 펼쳐질 날을 불안함보단 기대감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아버지의 지혜로운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날에 대한 미련이 있을지언정 후회하지 않고, 앞으로 살아갈 날에 불안이 있을지언정 두려워하지 않는 낙천성 아래 숨겨진 한 존재의 단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신념을 굳게 지키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일인지 체감했다.
‘차고 뜨거운’에서는 누구나 겪을 법한 가족 간의 부정적 이야기를 다룬다. 엄마의 이중성에 고통받는 자녀의 감정, 그와 대비되는 화목하고 따뜻한 다른 가정의 모습에서 느끼는 박탈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가족이 늘 같은 편이 아닐 수 있다는 다소 슬픈 사실과 그러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나에게도 있던 일이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일으킬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항시 기억하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쯤은 있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의 이유를 조금 더 생각하며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