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설명할 수 있는가?보이는 것만 이야기한다면 도시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 기준에서 가장 오래 본 도시는 태어나 살아온 서울이고, 그 도시를 설명하라 한다면 높은 빌딩들로 만들어진 콘크리트 숲, 거미줄보다 더 조밀하게 짜여진 도로들과 그 위를 지나는 바퀴들을 가장 먼저 말할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떠올리는 도시는 내가 설명한 범주에서 조금 벗어나는 정도가 아닐까?하지만 도시에는 위에 언급한 것들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 등장하는 퇴락해 가는 제국 타타르의 황제 쿠빌라이 칸과 젊은 여행자인 베네치아의 여행자 마르코 폴로가 이 작품의 중심 서술자다. 쿠빌라이 칸의 청에 따라 마르코 폴로가 이야기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며, 마르코 폴로가 여행했다고 말하는 도시들에 대한 이야기와 둘의 대화가 페이지를 채운다. 하지만 나는 이 둘이 작품의 주인공이라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인물들이 아니라 도시들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55개의 도시들은 전부 실존하는 도시들이 아니다. 마르코 폴로가 이야기하는 모든 도시들은 ‘기억’, ‘욕망’, ‘기호’, ‘눈’, ‘교환’, ‘지속되는’ 그리고 ‘숨겨진’과 같은 명사와 형용사 뒤에 번호를 단 제목을 가지고 등장한다. 평범한 독서를 하던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을 법한 구성을 하고 있어 사실 처음 읽었을 때엔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저자인 칼비노는 도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도시는 기억, 욕망, 기호 등 수많은 것들의 총체이다. 도시는 경제학 서적에서 설명하듯 교환의 장소이다. 하지만 이때 교환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언어, 욕망, 추억들도 교환될 수가 있다. 내 책의 이야기들은 계속 형태를 취했다가 사라지는, 불행한 도시 속에 숨어 있는 행복한 도시들의 이미지 위에서 펼쳐진다. 」
위 문장들을 통해 저자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도시들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 지 유추해볼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도시들을 탐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각 부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마르코 폴로와 쿠발라의 칸의 대화로, 그 대화들은 해당 부에서 다루는 도시들의 대한 설명을 늘어놓아 도시들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나는 수많은 도시들 중에 ‘지르마 시’에 대한 내용이 가장 인상깊었다. 이 도시는 독특한 기억들로 가득 차 있어 여행자들은 그곳에서 본 다양한 것들을 필연적으로 이야기한다. 지르마 시를 여행했다던 마르코 폴로는 수많은 맹인들과 만원인 지하철,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비행선들을 이야기 하며 다음과 같이 추억했다. ‘도시는 필요 이상의 것들로 넘칩니다, 무엇인가를 머릿속에 각인 하기 위해 도시는 스스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르코 폴로가 기억하는 지르마 시는 그렇게 표현되었다. 하지만 기억은 시간 자체를 남기지, 가끔은 세부적인 내용을 과장 하기도 한다. 그 증거로 마르코 폴로와 여행했던 사람들은 비행선도 단 한 개, 만원인 지하철에는 뚱뚱한 여인은 한 명 뿐이었다고 말한다. 즉, 마르코 폴로에게 도시는 자신을 더 기억하게 하기 위해 각 상징적인 ‘기호’들을 반복하여 인상을 깊게 만들었던 것이다.
‘기억은 필요 이상의 것들로 넘칩니다. 기억은 도시를 존재시키기 위해 기호들을 반복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과연 내가 기억하는 ‘도시’들은 얼마나 진실된 것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