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는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와 그 위기의 본질을 짚어주는데, 저자는 현대 민주주의가 겉으로는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는 제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극단적인 소수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이 책은 단순히 민주주의의 위기를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더 공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적 참여를 활성화하고, 제도적 개혁을 통해 다수의 의견이 실제로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만, 이러한 개혁이 쉽지 않다는 점을 인식하고, 변화가 이루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우리 스스로가 정치적 참여를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한다. 결국, 이 책은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보다 건강하고 공정하게 만들기 위한 노력과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독자들에게 강력하게 일깨운다.
명랑한 은둔자
대개 ‘은둔자’를 떠올리면 우울하고 어두운 이미지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책은 고독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자아를 발견하는 중요한 과정이었음을 서술한다.
《명랑한 은둔자》는 캐럴라인 냅의 자전적 에세이로, 은둔의 삶과 그 안에서의 자기 탐구를 통해 경험하는 감정과 성찰을 그린 작품이다. 저자는 자신의 삶 속 감정과 경험을 마치 친한 친구의 이야기처럼 풀어내어 독자에게 따뜻하고 진솔하게 다가온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고, 수줍음이 많고, 주변인과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들이 모두 나와 닮아서 깊은 공감을 자아냈다.
“혼자 방에 앉아 있으면서도 초조해지지 않는 것, 연애의 틀 밖에서도 안락과 위로와 인정을 얻을 수 있다고 느끼는 것, 내가 가진 자원만으로도—나라는 사람, 내가 하는 선택만으로도—고독의 어두운 복도를 끝까지 걸어서 밝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 이런 것은 잘하지 못했다. 나는 시리얼 그릇을 들고 거실로 가서 TV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로 명랑하게. 이게 내 집이야.“
인간은 누구나 고독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고독을 피하고자, 외로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며 살아간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고독을 외면하려는 노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온전히 인정하고 그 삶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다. 내 안에 존재하는 고독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며, 삶을 있는 그대로 감싸 안는 데서 느껴지는 평온함에 감명을 받았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장편소설)
마션 (어느 괴짜 과학자의 화성판 어드벤처 생존기 | 앤디 위어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
박지성 마이 스토리 (PARK JI-SUNG MY STORY)
13계단(밀리언셀러 클럽 29)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목숨의 가치는 누가 판단할 수 있는가? 과연 죽(死)일 놈이란 무엇인가?
사람을 죽인 죄로 긴 시간을 한 칸 방에 갇혀 사형을 기다리는 삶. 이를 두고 사형제도는 과연 옳은 것인가 의견이 분분하다.
사람을 죽인 전적이 있는 난고와 준이치. 전자는 교도소로서 후자는 범죄자로서. 난고는 두 명의 범죄자를 사형 집행한 후 매일 밤 괴로워하며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그런 그에게 억울한 사형수를 구해내자는 의뢰는 그가 가진 업보를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 됐다.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환생한 남자는 그 후로 한참 동안 독방 한가운데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이윽고 지도 교육 담당인 수석 교정 처우관이 곁에 웅크려 앉더니, 사카키바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 결정 뒤에는 대단한 희생이 치러졌다. 그 사실을 영원히 잊지 말도록.” 」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희생은 정말 희생이라 말할 수 있는 걸까? 사람을 구하기 위해 행한 일은 결국 또 다른 살인을 낳았고 난고는 스스로 종신형을 내렸다. 난고 쇼지의 쌍둥이 형 쇼이치는 동생에게 갚은 빚이 결국엔 동생이 살인자가 됐음을 알고 어떻게 반응했을까. 사람을 살렸지만, 사람을 죽였다. 이 이야기의 결말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죄수와 간수가 협력하여 억울한 사형수를 구해내자는 어찌 보면 정의로워 보이는 표면과는 달리 결말은 매우 찝찝하다. 이 책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 어떤 근거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제도라는 허울좋은 명목으로 허용되고 있는 것에 참여하게 되는 사람들의 죄의식은 무엇으로 보상되어야 할지 성찰하게 한다. 그러나 결말이 선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통찰하지 못했다.
한동안은 시계를 차지 못하는 사람을 유의 깊게 볼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