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마시는 시간 (그들이 사랑한 문장과 술)

 술과 문학.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개의 단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이 둘이 마치 물과 기름 같아서 절대로 섞일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로 술과 문학은 서로 관련이 없는 것일까? 이 사소한 질문에서 시작된 궁금증은, 캡스톤디자인 수업을 듣는 학우들과 함께 프로젝트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술과 문학을 연결해 주는 책, ‘소설 마시는 시간’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어렸을 적부터 수많은 문학 작품들을 접해 왔고, 수많은 작품에서 술이 하나의 장치로 사용되는 것을 봐 왔다. 또한 ‘노인과 바다’의 저자로 유명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유명한 술고래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책은 연희동의 책바 사장님이 정인선 씨가 쓰신 책이다. 생각보다 문학작품에는 술이 많이 등장하고, 술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작가분은 술과 문학작품에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나마 쉽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을 쓰셨다.  그래서 이 책은 ‘술 이름 X 문학작품’ 형식으로 진행되는 방식이다. 목차를 살펴보면  ‘그라파 X 무기여 잘 있어라’, ‘아구아르디엔테 X 백년의 고독’과 같이 고전문학 작품도 소개되어 있고, ‘헨드릭스 진 토닉 X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부나하벤 X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과 같이 한 번쯤은 들어본 제목의 문학들도 소개되어 있다. 오히려 목차를 보고 ‘이 문학에 이러한 술이 등장했었나?’라는 생각과 함께 나의 기억력을 되짚어 보게 된다.
 책은 각 문학작품과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술을 하나의 세트로 묶어서 설명한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을 깊이 분석한다거나, 술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한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가벼움을 유지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지루하거나 의미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적당한 가벼움을 통해 술과 문학이 다가가기 어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면서도 문학에서 술이 담당하는 의미를 더하거나 빼지 않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해당 술에 대한 궁금증을 높인다.’ 나도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진 리키와 민트 쥴렙을 마시면서 위대한 개츠비와 함께 파티를 즐기고 싶다’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만든다. 사실 이보다 더 훌륭한 문학작품의 홍보가 어디 있겠는가!
 재미있는 점은, 나를 포함해 캡스톤디자인 수업을 듣는 학우들 모두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는 점이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학생들이 술과 문학에 대해 논하다니, 어떤 이는 모순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술과 문학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수많은 작가들에게 작품의 탄생을 같이 한 술이 있었다. 그리고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술들은 의미를 숨기고 있다. 이것이 드러나 있는 문학작품도 있고, 잘 드러나지 않는 문학작품도 있다. 독자들이 이를 해석하며 읽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고전 문학들을 고리타분한 사람들의 이야기로만 치부하지 말고,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들도 사랑했고, 힘든 삶을 겪었다. 우리가 하루를 마치고 맥주 한 잔으로 피로를 푸는 것처럼, 문학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술을 통해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고 의미를 전달하는지 살펴본다면, 문학에 대한 흥미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가미 (구병모 장편소설)

구병모 작가의 책을 읽을 때면 습기가 가득해 눅눅해진 공기가 내 몸을 휘감고 있는 느낌이 든다. 특히 이번에 읽은 ‘아가미’는 물을 잔뜩 머금은 습기가 2층 계단을 타고 내 방 안에 들어와 순간의 공기를 7월의 장마로 바뀌게 한다.

사실 ‘아가미를 가진 소년’ 이라는 곤이의 특이점만 제외하면 특별하게 판타지적 요소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비현실적일 것만 같은 불행한 삶을 기분 나쁠 정도로 세세하게 표현했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춘기 남자 소년의 어리숙한 감정을 직설적으로 보여줬다. 그렇기에 ‘아가미를 가진 신기한 소년’에 초점을 맞춰  그들에게 닥쳐온 불행과 현실, 그럼에도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온기에 집중하면서 책을 읽었다.

책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은 숨 쉬듯 불행이 찾아왔고, 그들에게 기분 나쁘게 달라붙었다. 그러다 잠시 떨어져 숨 쉴 틈을 보이면 어느새 다가와 빠르게 휘몰아쳤다. 그들에게 불행은 멈추지 않는 소나기였다.

그러한 불행한 삶 중 가장 유별난 건 곤이였다. 곤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야기가 끝날때까지 불행했다. 곤이에게 불행은 당연했고, 자신에게 아무런 정보도 물어보지 않은 무관심한 주인 부부에게 고마움을 느끼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반짝거리는 아가미를 숨기고  살아야하는 현실세계 속 곤이는  행복할 수 없었다.

그런 곤이는 결국 홍수에 휩쓸린 할아버지와 강하의 시체를 찾으러 물속으로 들어가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그리고 나는 책을 덮고 생각했다. 그래도  지금은 행복하지 않을까?라고 수많은 이름 모를 물고기들과 몸을 스치고 돌 틈에  발끝에 간지러움을 느낄 때쯤  할아버지와 강하를 만났으면, 그리고 옅은 미소라도 지을 수 있었으면.

최진기의 지금당장 경제학

21살 무렵 나의 소비습관이 너무 충동적이고 계획이 없음을 느껴서 다음날 충동적으로 구매한 책이다.

4년동안 숙성을 충분히 해주고 최근 주식시장과 비트코인 열풍에 통찰력을 얻고자 읽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경제의 역사부터 이론까지 다양한 내용을 다룬다.

중상주의, 기회비용, 소비 곡선, GDP, 금리, 국채 등 처음 들어보는 내용과 일상에서 뉴스나 책에서 보았던 내용이 소개된다.

중상주의와 기회비용 같은 내용은 과거의 역사적 위인의 이야기와 가벼운 예시를 들어 가볍게 읽어도 금방 이해가 되는 구성으로 아주 좋았다.

그러나 책의 후반부는 소비 곡선, GDP, GNP, 로렌츠 곡선으로 깊은 내용이 나오면서 상당히 어렵지만 새로운 지식을 많이 소개해준다.

쉬운 내용으로 시작해서 어려워지는 구조가 교과서나 문제집의 느낌을 주기도 했고, 챕터가 끝날 때마다 10개 정도의 문제가 나온다. 문제를 풀면서 내용을 다시 상기하게 해주는 점이 귀찮았지만 확실하게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책의 내용이 당장 나한테 투자 통찰력을 높여주거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거나 뉴스를 볼 때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하는 깊이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뉴욕주민의 진짜 미국식 주식투자 (현직 월스트리트 트레이더가 알려주는 투자의 정석)

유튜브에서 주식을 공부하면서 우연히 뉴욕 주민을 알게 되었다.
헤지펀드 매니저라는 이미지에서 오는 강렬함보다는 영어 발음에 취해 알지도 못하면서 들었던거 같다.
책이 나왔다는 커뮤니티 소식을 보고 최상위 커리어를 가진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가 배움을 얻고자 독서를 시작했다.
첫 장에서는 무방비하게 주식시장에 뛰어들지 말라고 경고하면서 시작한다.
주식 투자 1년을 되돌아보니, 나는 그냥 무작정 뛰어들어 투기를 했다.
오를 거 같으니까 매수하고, 많이 내려갔으니까 올라가겠지라는 생각으로 매수했다.
뉴욕 주민은 나같이 무지한 투자자를 위해 투자의 기본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SEC에서 발행하는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과 위험요소를 담은 보고서 10-K, 10-Q를 읽어보는 방법을 이미지를 첨부해가면서 따라 할 수 있게 설명해 준다.
보고서에 있는 BM과 Risk facter 등 최소한 읽어봐야 하는 요소를 알려주고 가장 중요한 매매 방법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업의 가치(Valuation)를 분석하고 내가 생각하는 적정 가치보다 낮은 가격(price)에 거래가 되고 있는 기업을 매수하라.’
항상 요동치는 주가(price)에 빠지지 말고 가치(valuation)에 집중하라는 말에 너무나 빠져들었다
밤마다 움직이는 가격에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종가를 확인했다.
내가 항상 불안했던 이유는 공부를 하지 않아서, 내가 계산한 적정 가치가 없어서 확신이 없으니까 불안감을 가진 것이었다.

이기적 유전자

고전적인 유전학에서 독창적인 통찰력을 이용한 리처드 도킨스의 유전학
유전자에 대한 진실과 저자의 통찰을 담은 이기적인 유전자는 너무나 유명하고 자극적인 이름으로 책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알고있는 명저다.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며
‘유전자(혹은 더 작은 유전형질)가 이기적이게 진화한다는 뜻이다’ 라고 말한다면 많은 오해를 살 수 있다. 책을 이해한다면 이기적 유전자라는 이름이 얼마나 멋진 통찰력을 가지고 붙인 이름인지 알게된다. 유전자는 자연선택에 의해 기계적으로 진화하고 사라진다. 진화의 주체가 생물 개체 하나 하나라는 기존의 유전학에 대한 반박으로 유전자가 그들을 개체를 어떤 식으로 활동하게 만드는지 개미와 여타 다른 동물들을 예시로 전혀 알지못했던 방식으로 유전을 설명한다. 또한 생명체의 진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희박한 확률로 돌연변이가 발생해 현재 유전자풀에서 진화하는 과정을 간단한 사고 실험으로 우리의 이해를 돕고 독자들이 과학적 사고를 하게 만든다.
이기적 유전자의 오해
혹자는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며 모든 생명의 유전자는 이기적이야! 라는 책의 주장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를 하곤한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의미는 유전자가 환경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챙기며 살아남는 것이 아닌 그의 정반대인 환경에 알맞는 유전자 만이 살아남는 현상 때문에 아무런 감정을 가지고 있지않은 유전자를 읽는 독자가 쉽게 이해 할 수 있게 한 마리의 생명체 처럼 설명하려는 의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배운점
리처드 도킨스의 최고 걸작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며 나는 과학자적인 사고와 통찰을 하는 법을 배웠다.  흥미를 위해 양질의 지식을 얻기 위해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일반인 들이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학을 배운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전반적인 유전학이라는 분야의 흐름과 방향을 조금 알게되었고 그의 책들이 흥미가 생겨 조금 더 찾아볼 생각이다. 

25년간의 수요일 (리커버 특별판)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시위, 수요시위)

  역사 시간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배울 때마다 정말 너무 안타까웠고 할머님들의 증언을 들으면 내가 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었다. 늘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성인이 되기도 했으니 조금이나마 직접적인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 할머님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던 중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더 공부하고 아는 게 많아야 그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해보려고 이 책을 빌려서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관심이 있다고 말로만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내가 모르는 것보다 더욱 참혹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가 묻혀있었고, 할머님들의 생생한 증언을 읽을 때마다, 그리고 할머님들이 이 이야기를 알리기 위해 힘들게 온 세계를 다니시며 연설하셨던 것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닐 동안 매주 수요일마다 더워도 추워도 한 번도 안 빼먹고 할머님들, 학생들이 수요시위에 나와 세상에 목소리를 내었을 생각을 하니 지금에서야 이 책을 읽고 너무 늦게 공부하려 한 게 죄송스러웠다.
  따라가지 않으면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일본군의 협박 때문에 어린 소녀들은 가족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끌려갔을 것이다. 한창 꿈 많을 십 대, 그리고 나와 같은 이십 대의 소녀들이 일본군에 의해 억지로 가족의 생계를 이끌어야 하는 그런 상황으로 내몰렸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위안부’ 여성들이 돈을 받았고, 장교들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또 강제성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럼 소녀들이 대체 뭐 때문에 가족들을 놔두고, 고향을 버리고 일본군을 따라나선 거란 말인가? 또 그럼 지금 용기 내서 증언을 하고 계시는 할머님들은 뭐가 되는 것인가? 일본 정부의 말도 안 되는 입장은 계속해서 우리 할머님들께 지금까지도 상처를 주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일본 정부가 제대로 이 문제를 직면하려 하지 않고 회피하기 때문에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런 일본 정부가 너무 미웠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인정하지 않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하고 있지 않은 일본 정부는 당연하고 한국 정부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며 한국 정부가 할머님들의 동의 하나 없이 마음대로 해결지으려 한 경우도 있었다.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한국으로 와서 남은 생을 편안히 보냈으면 했는데, 그 당시 우리 사회는 소녀들을 따뜻하게 맞아줄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던 것 같다. 고향에 오고도 마음 편히 생활하지 못하고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는 이유로 눈초리를 받으며 살아온 할머님들께 냉담하고 뜨뜻미지근한 당시 한국 정부의 태도는 또 한 번 할머님들께 대못을 박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1992년 1월 8일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수요시위가 진행 중이다. 가장 오래된 시위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데, 그만큼 감사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수요시위에 참가하여 할머님들을 직접 뵙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도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책임감을 갖고 더 열심히 공부해서 지금 계시는 할머님들이 단 하루 만이라도 편안히 두 발 뻗고 주무실 수 있도록 우리 세대가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리 부는 여자들

 이 책은 세 저자가 각 파트를 맡아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첫 파트에서 권사랑 작가는 비혼 여성이 안전하고 덜 외롭게 살아가는 방법으로 ‘비혼 여성 공동주거’를 제시한다. 한 집에서 함께 사는 방법도 있지만,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친구들과 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장소에 모여사는 것이 얼마나 안전하고, 소중한지 이야기한다. 각자 반찬을 들고 모여 식사를 함께 하고, 혼자서는 설치하기 힘든 침대 조립을 함께 해내고, 내 소식이 뜸할 때면 어디 아픈 거 아닌지 들여다봐줄 수 있는 이들과 사는 일상들을 보여준다. 권사랑 작가의 글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그녀의 실제 삶과 말이 의심없이 같은 맥락을 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프라인 강연에서 만난 작가는 나에게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과의 만남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그로 인해 쉽게 실망하지 말라고 이야기 해주었다. 그의 글에서도 유사한 언급이 있다. 마음이 맞는 친구와 함께 사는 것이 언제나 행복할 수 만은 없을 거고 미래에도 어떤 이유로 공동주거 생활을 유지할 수 없을 지 모른다고.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삶에서 당연히 있을 수 있는 변수임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결혼하지 않는 여성의 삶이 외로움만 남아있는 삶일 뿐이라 염려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두 번째 파트는 학창시절부터 여성과 관계 맺어온 평범하면서도 가슴 떨리는 서한나 작가의 이야기이다. 나는 서한나 작가의 글을 통해 나를 스쳐간 여성들을 떠올렸다. 분명 그 당시에 나를 뒤돌아보게 만들었음에도 그저 흘려보낸 숱한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언제나 타인의 시각에서 나의 생각과 행동을 재단하였고, 어는 순간부터는 단 한 순간도 진심으로 솔직한 적이 없었다고 느낀다. 그런 나와는 다른 선택지의 삶을 살아온 그녀의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어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던 것 같다. 독자에게 새롭지만 당연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꺼내준 작가에 감사함을 느낀다. 
 세 번째 파트에서 이민경 작가는 자신이 의식하지 않았던 어린시절의 기억으로 자신을 찾아간다. 세 가지 경우 중 나의 삶의 궤적과 가장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느순간 이성애 관점에서 벗어나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고 그 길에서 모든 게 새롭다 느꼈는데, 의식하지 못한 기억 속 어딘가 분명 따스한 기억이 있다. 그것이 이민경 작가에게는 강아지와 관련된 기억일테고 나에게는 피아노 혹은 다정함에 대한 집착일 듯 싶다. 
아마 이 책은 개인의 경험과 인식의 정도에 따라 감상이 천차만별일 것이다. 하지만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눈을 가리고 있다면 책의 표지만 겉돌뿐 피리 소리는 듣지 못할 것이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이며, 어떤 길을 함께 걷게 될지 들여다보고 싶은 여성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그 남자네 집

학교 주변 지리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뻤던 적은 없었다. 간간히 한옥의 형태를 띤 가옥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박완서 소설 속 성북동, 삼선교, 성신여대는 내 기억과 아주 달랐다. 박완서 역시 그곳을 다시 찾았을 당시 아주 놀랐다고 이야기한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른 시대 속 존재하지만 분명히 몸으로 체화한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소설 제목 속 그 남자와 헤어진 후 남자의 누나의 간곡한 청으로 그를 다시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졸업식에서 아무리 서럽게 우는 아이도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우는 것은 아니라고. 이별의 감정을 이렇게 완벽하게 설명하는 문장이 또 있을까 싶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는 엄마의 등에 업혀가던 ‘나’가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밀려오는 낯선 감정에 울음을 터뜨리지만 엄마는 그 이유를 알지못해 당황스러워 한다. 말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 역시 그 감정을 너무도 정확히 알고 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과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 순간 낯선 것으로 돌변해버리는 시간을 느끼는 때를. 
<그 남자네 집>이 재밌는 또다른 이유는 화자의 솔직함과 능청스러움?이라 생각한다. 전후라는 시대상 속에서 먹는 것에 집착하는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에 이골이 나 치마를 짧게 수선해 장보러 가는 날 결혼 전 만난 남자와 데이트를 하는 모습, 차분하고 실리밝지만 엄마가 우선인 남편과 자신에게 다정하고 순애보이지만 가족들에게 망나니처럼 구는 그 남자를 적당한 거리에서 묘사하는 부분은 놀라운 정도다. 심지어 자신의 감정상태도 재미있게 묘사한다.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같은 문화를 공유한 우리만이 공유하는 그 무언가를 자꾸 발견하는 기분이다. 마냥 웃을 수 밖에 없는 소재 조차 사람 사는 이야기로 들려준다. 

키메라 (세계문학전집 240)

우리에게 잘 알려진 세 개의 신화(고전)를 패러디한 소설이다. 이야기 자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신화인지 분별을 모호하게 만든다. 생동감있는 묘사와 인물 개개인의 개성을 존 바스만의 문체로 살려낸다. 존 바스의 작품은 <키메라>가 처음이었는데 신화라는 장르에 새로 관심이 생길정도로 매력있었다. 

A가 X에게 (편지로 씌어진 소설)

“내가 한참을 살고 나서도 죽기 전에는 몇 달의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는 시간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내가 열한 살밖에 되지 않은 것 같은, 아직 알라 가야 할 일들이 많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어요.”
“아니, 우리는 누군가를 따라잡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 밤이나 낮이나, 동료 인간들과 함께, 모든 인간들과 함깨 나아가는 것이다. 그 행렬이 앞뒤로 너무 길어지면 안된다. 그렇게 되면 뒤에 선 사람들이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더이상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점점 더 드물게 만나고, 점점 더 드물게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덧없는 것은 영원한 것의 반대말이 아니에요. 영원한 것의 반대말은 잊히는 것이죠. 잊히는 것과 영원한 것이, 결국에 가서는,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들은 틀렸어요.”
“그들은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지. 그냥 진실하려고 했을 뿐이지만, 거기엔 아름다움도 있었단 말이야. 그건 관습이었어.”
“돌아오는 길에는 수레를 끌며 고철을 모으고 있는 배드를 만났어요. 그는 벌집에서 꿀을 뽑아내는 기술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꽃이 다 진 지금이 비로 꿀을 모으는 때인데, 그래서 그고 이야기를 꺼낸 거겠죠.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지, 그가 말했어요. 하지만 완벽한 건 그다지 매력이 없잖아. 우리가 사랑하는 건 결핍들이지.”
“우리를 두렵게 하는 건 작은 일이에요. 우리를 죽일 수도 있는 거대한 일은, 오히려 우리를 용감하게 만들어주죠.”
“젊은이들은 현재 자신들이 아는 걸 그 누구보다 생생하고, 강렬하고, 정확하게 알아요.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부분에서는 전문가예요. 나머지 부분은 우리가 보여줘야 하는 거겠죠. 어쩌면 항상 그런 식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건, 승리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 투쟁에는 끝이 없으며, 그러한 사실을 알고도 투쟁을 계속해 나가는 것만이, 삶이 우리에게 준 커다란 선물을 알아보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거겠죠!”
96년생 여성들의 자살률이 급증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리고 몇일 후, 자신의 권리를 용기내 이야기하던 이가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관련 기사에는 너무나 혐오적인 말들이 위로를 가장한 채 떠난 이를, 그리고 떠난 이를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매섭게 내리꽂혔다. 나는 내가 얼마나 나약한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그때 읽고 있던 책이 <A가 X에게>였다. 여성인권을 공부하며 세상에 외면받는 많은 생명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상처를 주는 사람들은 아직도 그대로인데 상처받는 이들은 자꾸만 곪고 다치고 죽는다. 나는 그들이 나와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세상이 바뀌었으면 하고 바라던 마음이 이제는 얼굴을 알지 못하는 그들과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내어 언젠가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되었다. 너무 길지는 않은 행렬에서 더 자주 얼굴을 마주하고 더 자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를 지치게 만드는 것은 작은 것일 뿐이라는 아이다에게 듣고 싶은 답을 들은 안도의 기분을 느꼈다. 슬픔에 잠식되는 순간, 어딘가에 분명 같은 마음으로 바뀐 세상을 기도하는 이가 있음을 알기에 움직일 수 있다. 작은 소리라도 입밖으로, 내 몸밖으로 내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