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언젠가 맞이하게 될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최진영 작가의 시선으로 풀어낸 단편집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들은 ‘ㅊㅅㄹ’, ‘디너코스’, ‘차고 뜨거운’이다.
최진영 작가는 여러 작품에서 첫사랑과 관련한 이야기를 써냈다. 첫사랑이라는 단어로 정의했지만, 모두 다른 이야기이다. <쓰게 될 것>의 첫사랑은 청소년과 성인의 대화를 통해 첫사랑의 설렘과 고충, 화자에 따른 색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누구보다도 사랑에 진심이지만 누구보다도 불안정한 청소년 ‘은율’과 사랑과 인생을 경험할대로 경험한 농후한 어른 ‘서진‘의 기묘한 티키타카가 보는 내내 웃음을 준다.
은율이는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친구에게 털어놓으려다가 실수로 모르는 어른인 서진과 이야기를 이어나가게 된다. 서진은 뜬금없이 받게 된 사랑이야기에 당황하지만 이내 몰입해 대화한다. 그 과정에서 은율과 서진은 사랑 경험에 대한 격차를 느끼기도 하고, 그 격차가 주는 풋풋함과 농후함을 느끼며 교감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고 난 일편단심이 꿈이에요’ (105쪽)
얼핏 보았을 땐 사랑에 쩔쩔매는것 같았던 청소년 은율이가 생각보다 강단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첫사랑을 향해 직선으로 뻗어진 감정이 부러우면서도 이런 단단한 감정을 가질 수 있는 날이 있었던가 돌아보게 되는 문장이었다.
> 나만 좋아하는 것 같아서 불안한데
< 사랑은 원래 불안합니다.
> 그런걸 왜째서 7번이나 했어요?
< 은율님은 불안한데 왜 사랑합니까? (105쪽)
사랑은 원래 불안한 것, 그럼에도 사랑하는 것. 최진영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이다. 또 일편단심을 추구하는 은율이와 7번째 사랑과 결혼한 서진의 사랑 경험치 차이가 느껴져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 ㄴㅅㄱㄹㅎㄴㅇㄴㅇㅈㄱㅇㄹㅇㅂㅎㅅㄷ
> ㄴㅇㅈㅂㅎㅅㄹㅋㅅㅎㄷ
> ㅅㅈㅌㅈㄴㅈ (107쪽)
갑작스럽게 등장한 초성에 당황했지만, 은율이가 하고싶은 말이 무엇인지 꼭 알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생각을 해보았다. 직접 이 책을 읽고 내용을 추측해보면 좋을 것 같다. 각자의 해석이 다를테지만 나는 이 초성에 담긴 내용에 꽤 충격을 받았다. 내가 자연스럽게 사랑의 다양성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최진영 작가의 이야기에는 늘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등장하기 때문에 방심해서는 안된다.
‘디너코스’에서는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다 아버지의 은퇴를 기념해 모인 가족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이 이야기가 인상깊었던 것은 은퇴 이후의 삶을 ‘제2의 인생’이 아닌 ‘인생 후반전’이라고 하며 곧 펼쳐질 날을 불안함보단 기대감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아버지의 지혜로운 모습이 담겨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날에 대한 미련이 있을지언정 후회하지 않고, 앞으로 살아갈 날에 불안이 있을지언정 두려워하지 않는 낙천성 아래 숨겨진 한 존재의 단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신념을 굳게 지키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일인지 체감했다.
‘차고 뜨거운’에서는 누구나 겪을 법한 가족 간의 부정적 이야기를 다룬다. 엄마의 이중성에 고통받는 자녀의 감정, 그와 대비되는 화목하고 따뜻한 다른 가정의 모습에서 느끼는 박탈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가족이 늘 같은 편이 아닐 수 있다는 다소 슬픈 사실과 그러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야기를 읽는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나에게도 있던 일이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내가 일으킬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항시 기억하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하나쯤은 있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나는 사랑의 이유를 조금 더 생각하며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