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이방인

알베르카뮈의 ‘이방인’은 예전에 읽어본 적이 있는 책이다.
 한번 읽은 책은 두번읽히지 않는데 다시 한번 책을 읽은 이유는 좋아하는 저자이기도 하며,  지금에서야 주인공 뫼르소를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청년 뫼르소가 엄마의 장례식 소식을 들으면서 시작된다. 
어머니의 장례식과 연인 마리에게 보인 그에 태도는 보기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무덤덤했다.
뫼르소의 모습과 그의 행동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평범한 반응이 아니었고 다소 불편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소설속에 보여지는 그의 모습은 그의 전부가 아닐 수 있고, 우리는 이를 통해 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뫼르소는 레몽이라는 친구의 사건에 휘말려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이후 재판을 받게 된다. 
재판장이 뫼르소에게 아랍인을 권총으로 쏜 이유를 묻자 그는 ‘태양이 너무 눈부셨기 때문이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엄마의 장례식에서 그가 보인 무덤덤한 행동들은 재판에서 그를 불리하게 만들었고 검사는 그를 흉악무도한 인간으로 만들었으며, 결국 그를 사형수로 만든다.
그는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동안 사제를 만나 신을 부정하며 진실 털어놓지만, 그 누구도 뫼르소를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가치관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소외시키는 문제를 소설 속 재판에서 볼 수 있는데 재판의 당사자지만 재판에서 소외되버린 뫼르소의 모습이 그러했다.
재판과정의 사회의 부조리와 이기심, 권위에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뫼르소, 그리고 신의 구원 앞에서도 자유로워지기 위해 마지막까지 죽음을 택한 자신에게 정직하고 이성적인 뫼르소의 아픔이 전달된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책의 저자 막스베버가 살았던 독일은  그 당시 농촌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되는 과도기였고 산업화에 따라 새로운 합리성이 필요했다. 
막스베버는 한 개인이나 국가가 부유해지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자본주의 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책 제목의 프로테스탄트는 16세기 종교개혁의 결과로 로마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와 성립된 종교단체, 그리고 그 분파를 말한다. 프로테스탄트 윤리로부터 자본주의의 정신을 찾는다는 것이 막스베버의 생각이었다.
유럽안에서 나라마다 자본주의 발전 속도가 달랐는데 그 이유를 카톨릭과 개신교라는 점을 집어냈다.
가톨릭의 가치관은 사람의 부유함을 추구하지 않고 인생의 목적을 부에 두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덜 발전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프로테스탄트의 가치관은 가톨릭과 달리 직업을 소명으로 여겼으며,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트의 윤리 의식이 ‘자본주의 정신’으로 자본주의를 발달시키는 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막스베버는 이러한 종교차이를 통해 자본주의의 발달을 분석하였다. 이로써 사회현상을 설명할 때, 그 구성원의 의식과 가치관이 매우 중요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만해도 종교와 경제는 별개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종교는 사상이자 허상에 가까우며, 경제는 우리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 이성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를 하는 주체인 사람이 가지는 종교와 종교로 인해 사람이 가지는 가치관, 이념은 경제 체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통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미국 하버드대의 투웨이밍 교수는 금세기 후반 동아시아 5개국 한국과 일본, 대만, 홍콩 및 싱가포르의 고도 성장국으로 부상하며 이를 ‘ 동아시아의 자본주의 정신’이라 말한다. 이는 막스베버의 자본주의 정신과 동양사회를 접목시킨 새로운 연구주제라고 할 수 있다. 막스베버의 이론을 한번 쯤 본다면 앞으로 다양항 경제서를 읽을 때 도움이 될 것 같다. 

동물농장

동물농장은 한 농장의 동물들이 농장주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고 인간의 착취가 없는 ‘모든 동물이 평등한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내용이다.
수퇘지인 메이저 영감이, 농장의 주인은 착취하는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 농사짓는 동물들의 것이라는 자각을 함으로써 시작된다. 메이저영감이 다른 동물들에게 이를 호소하며 이후 인간에게서 승리를 거둔다. 동물농장은 동물들의 협동아래 자발적으로 일하며 효율적으로 진행되었으나 이러한 환경으로 오래가지 않았다. 

동물들 사이에서 권력싸움이 일어나고 이상주의인 스노볼과 음흉한 현실주의자인 나폴레옹의 싸움에서 나폴레옹의 승리하면서 나폴레옹의 독재가 시작외었다. 새로운 독재환경에서 나폴에옹은 스노볼을 이용하여 모든 악을 스노볼의 탓으로 돌리며 독재체제는 심해지면서 동물들은 다시 노예 상태로 되돌아갔다. 동물들이 할 일은 자신의 노동력을 바쳐 일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고 마지막은 처음 장원 농장의 상태로 돌아간다.
동물농장은 전체주의 국가가 성립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우화소설이며, 전체주의의 폭력성을 경고한 풍자소설이다. 
소설을 통해 권력의 타락에 대한 경고를 그리고 지식인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권력이 한사람의 독재자에게 이용될때 일어날수 있는 특권계급의 특권을 이용한 타락, 그리고 독재자 손에 의해서 점점 나약해지고 어리석어만 가는 일반 대중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저자 오웰은 독재자에 의해 자행되는 전체주의 국가에서의 피해자는 일반 대중 뿐만 아니라 독재자 자신도 포함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동일한 환경과 모습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기때문에 평등을 논하려면 개개인의 차이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동일성만 강조하는 전체주의의 속임수에 빠지면 안된다. 
제국주의 시대 이어 무정부주의와 공산주의에 나타나는 현실과 괴리 그리고 우리가 찾고자 아는 휴머니즘 이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다.

노인과 바다 (세계문학전집 278)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도전적인 삶과 성숙한 세계관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서, 헤밍웨이가 근 이십년간 생활했던 쿠바와 낚시를 즐겼던 멕시코 만류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산티아고 노인은 84일 동안 한마리의 고기도 잡지못하다가 85일 되는날 만난 엄청큰 크기의 청새치를 몇 날 며칠 잡기위해 사투를 벌인다. 그는 청새치를 잡았지만 상어 떼의 습격에 물고기의 살점을 거의 빼앗기지만 노인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싸운다. 산티아고 노인은 포기를 모르고 불굴의 정신을 보여준다.

노인과 바다의 기원은 헤밍웨이가 1936년 <에스콰이어>지 4월호에 <푸른대양에서: 멕시코 만류 통신>을 기고한 내용에서,  이미 자신의 배인 필라호로 낚시를 즐기며 목격한 경험을 이야기 한 바 있다. 쿠바의 늙은 어부가 거대한 생채기를 잡았지만 상어들의 습격을 받아 청새치의 살을 대부분 뺏기고 실신 상태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헤밍웨이는 불굴의 정신을 발휘한 늙은 어부의 모습에서 감동받았다고 했는데, 그 모습에서 자신이 이상으로 삼은 남자다운 거친 남성상을 보았기 때문인 것 같다.
저자는 이러한 상을 반영하여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초같은 이미지와 고난 속에서 우아함을 잃지 않는 불굴의 인간상을 소설속 산타아고라는 노인을 통해 보여준다.
산티아고 노인은 ”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배할 수는 없다”라고 말하며 상어 떼와 맞선다. 
소설은 그가 포기하지 않은 강임함과 그 이면의 그의 고독함을 볼 수 있다. 노인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 치열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강인한 모습 이면에 존재하는 인간의 나약함과 고독을 노인과 자연의 교감을 통해 볼 수 있는 인생과도 같은 소설이다.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

과학 기술의 발전에 의해 미디어는 발달해 왔고 덕분에 사람들은 서로 만나지 않아도 손쉽게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러한 단계까지 인간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발달을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구어시대(Oral Age) 로 말을 통한 방법이다. 예로 문자가 없었던 시기의 그리스인에게 기록을 전승할 방법은 사람의 기억과 말 두 가지였고 이러한 기억이 모인 지식을부족 백과사전이라 불렀다. 이때 사람들은 기억하기위해 모든 감각을 사용했다. 두 번째 단계는 문자가 발명된 이후의 시대(Liter ate Age)로 말보다는 글로 기록하는 것이 많아졌고, 그 기록을 보기 위해 청각보다 시각을 사용하는 비중이 많아졌다. 세 번째 단계는 15세기 구텐베르크가 활판 인쇄술을 발명한 이후의 시대(Gutenberg Age)로 사람은 시각에 보다 더 의존하게 되었고, 그로인해 혼자 책을 읽으며 생각하는 문화로 이어져 개인주의와 민족주의가 발달하게 되었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전기 매체의 시대(Electric Age)이다. 인터넷과 과학 기술로 세계가 하나로 이어진지구촌(Global Age) 이 형성된 것이다.

위와 같은 단계 정의는 마샬 맥루한 (Herbert Marshall McLuhan)이 그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에서 설명하였다. 그는 20세기 말의 미디어학자이며, 그의 책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그의 정의와 이론은 21세기의 미디어와 연계하여 볼 수 있으며, 앞으로 미래에 나타날 새로운 미디어에도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회자되는 인물이고 그의 저서는 여전히 권장되어지고 있다. 그는 미디어의 정의를 광범위하게 사용하였는데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미디어로 보았고, 인간의 몸과 감각기관의 확장을 통해 만들어 졌으며, 새로 만들어진 미디어는 다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다. 같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미디어가 다르면 사람은 인식하는 방법이 달라지고 내용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모든 미디어는 우리가 인식하는 방식에 메시지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를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이라 하였다.

디지털 시대에 사는 우리는 찾고자하는 정보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찾을 수 있고 매일 일어나는 이슈(issue)를 시간과 공간 제약 없이 텔레비전이나 개인의 핸드폰에서 손쉽고 간단하게 볼 수 있다. 이처럼 미디어가 발전 할수록 삶은 유익해지고 편해진 반면에 우리는 생각하고 사고하며 사색하는 방법 자체를 잊은 것 같다현대사회의 소비생활을 비판한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그의 저서 Simulacra & Simulation에서 시뮬라크르는 현실을 대체하는 모사된 이미지를 뜻한다. 우리가 보는 텔레비전, 핸드폰, 컴퓨터는 현실에 대체되어 표현된 시뮬라크르이며 우리는 다양한 미디어에 표현되어 만들어진 이미지를 소비한다고 보았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미디어 그 자체에 의존하고 무조건 신뢰할 것이 아니라 미디어 또는 기록이 믿을 수 있는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고 그를 통해서 얻은 정보를 가지고 우리는 다시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68년 프라하의 봄을 배경으로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책을 읽다보면 무슨 주제를 다룬 책인지 의아하고 의문이 들정도로 심오한 책이고, 한번 읽어서는 책의 실마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다.
토마시와 그를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그 옆에 있는 테레자, 하지만 토마시는 진지한 사랑을 부담스러워하고 계속해 다른 사람을 만난다. 토마시의 연인으로 나오는 사비나는 자신에게 얽혀있는 사회(조국)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며 그런 사비나에게 끌리는 프란츠가 나온다.
책을 읽고나서 저자를 찾아볼 수 밖에 없었다. 
저자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책을 통해서 무엇을 투영하고 싶은 것은지 확인한 후 소설을 읽으면 해석에 도움이 되었다.
쿤데라는 “영원성이 무거움이라면 이 일회성은 가벼움이다.”, “즉 필연과 우연도 마찬가지이다. 특정한 시점에서 특정한 사건과 직면하여, 과연 그래야 하는가 하고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모든 사건은 전부 단 한 번뿐인 까닭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한개인의 삶과 한 국가, 나아가 세계의 역사는 그렇게 만들어 진다.” 라고 해석했다.
토마시와 테레자는 일회성과 우연을 통해 가벼움이 무거워지는 순간을 보게 된다.
토마시는 그의 조국의 삶,역사와 평생선을 이루는데, 체고 공산주의자들에게 자신들의 죄를 통감할 것을 ‘철회’의 요구와 그는 계속 추락한다.
테레자는 토마시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였으며, 그녀가 항상 갖고다니는 ‘안나 카레니나’ 책은 그녀에게 상징적이며, 그녀는 삶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필연의 법칙을 따르며, 그녀에겐 가벼움은 고통이다. 그래서 그녀는 토마시의 가벼움을 참지못한다,

국부론 (월드북 21,An Inqur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우리가 생각하는 부의 기준은 돈이 많은 기준일 것이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는 ‘부유한 국가는 금이나 화폐가 금고가 많이 쌓여 있는 나라가 아니라, 재화를 많이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역략이 풍부한 나라’가 부유한 나라라고 말한다. 
애덤스미스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28세에 글래스고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그는 도덕철학의 강의를 맡아 ‘도덕감정론’이라는 저서를 냈으며, 1776년에 국부론을 발표했다.
 당시 국부론은 윤리학 논문이었다고 한다. 그때는 아직 경제학이 없었기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애덤스미스를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국부론’ 경제적개념보다 우리의 저녁식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에 대한 고찰이 나온다
식탁에 음식이 오르기 전까지의 과정은 정육점과 양조업자, 제빵업자의 자기 이익을 중시하기 위해 이루어진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음식을 만들고 신선한 고기를 파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서(자비심) 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기심으로 결과적으로 우리의 식탁이 풍요로워진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바로본 인간은 이기적이고 사리만을 추구하고 이윤동기만을 생각하는 존재이다. 이런 표현만 보았을 때는 좋은 사회구성원이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이들의 이기심이 사회 전체의 이익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며, 최종적으로 국가의 부를 증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다만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시장이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할 때의 이야기이다. 자유방임사상과 정부의 개입최소화가 전제되어야 시장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보았다.
지금은 나라마다 다양한 경제 체제를 다루고 있고 시대마다도 매번 경제체제는 바뀐다. 즉, 아직 완벽한 시장경제체제는 없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이 인정받아 온 이유는 경제학이 없었던 시기에 국부의 원천과 시장과 분업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보여주며, 그의 이론이 지금 시장경제의 일부로 작용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

플라톤의 국가는 조국 아테네가 같은 그리스 도시국가인 스파르타와의 30년에 걸친 펠로폰네소스전쟁으로 인해 몰락해 가는 모습을 담고 있다.
국가론은 플라톤의 대화편의 약 1/5를 차지할 만큼 많은 분량과 함께 국가 뿐만아니라 철학, 정치, 경제, 교육, 문학 등 인류의 문화의 원형이 담겨져 있다.
플라톤은 국가의 기원과 발전에 관한 역사적, 철학적 고찰에서의 현실주의자였다. 플라톤의 국가관은 국가를 유기체로 그리고 개인을 그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세포로 바라보는 ‘구가주의적’ 국가관이다. 기술의 발달로 산업이 발전하고 화폐가 널리 유통되면서 영리적, 군사적, 지배적인 여러 계급들이 점차 국가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을 매우 명백하게 제시한다.
‘국가’에서 나오는 플라톤의 주장은 지금 보기에 몇가지 당혹스러운점이 있다. 이를 대담하다고 표현할 수 있는지는 읽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플라톤은 시인 추방론을 주장했다. 시인은 덕과 기타의 형상을 흉내낼 뿐이며 경험세계만을 겉핥기를 하는 시의 교육적 가치를 부정한다.
부인 공유제는 지배계급에 강요한 것으로서, 부인을 공유함으로써 상속의 동기를 상실하게 된다고 보았다.
사주덕론은 플라톤이 다룬 4가지 주된 덕으로 정의, 지혜, 용기, 절제를 통해 사람은 머리는 지혜롭고 가슴은 용기가 있으며 정욕은 절제될 때 정의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철인통지는 국가는 정의는 토대로 할 때에만 좋은 국가가 될 수 있고 앎에 기초한 통지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무엇보다 인간이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잘 사는 것인지를 주제로 하고 있다. 
책의 구성은 열린구조로 향후 논의내용과 전개방향은 언제든지 달라질수 있다. 
개개인에 따라 생각과 추구하는 전개 방향이 다른 것처럼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의미를 찾아갈 것인지에 따라  ‘국가’의 진정한 의미 또한 열려있을 것이다.

국화와 칼 (일본 문화의 유형)

‘국화와칼’은 일본을 다룬 가장 객관적인 책으로 손꼽히는 고전이다. 아마 일본어학과 학생들은 한번쯤은 들어봤을 책이다.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쓴 일본연구서로서, 평균적인 일본인의 행동과 사고 패턴을 탐구하였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일본의 문화와 일본인의 인류학적 내용으로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접어든 1944~1946년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이 인류학분야와 일본문학에서 많이 읽히고 있다.
국화는 일본의 황실을 상징한다. 일본인들은 나라꽃인 벚꽃보다도 국화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꽃들은 피지 않는 차가운 가을에 홀로 피는 국화는 깨끗하고 청결하고 조용하고 엄숙하고 고귀하다고 생각해서이다.

 제목에서의 ‘국화’와 ‘칼’은 일본의 이중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손에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국화를 들고 있지만 허리에는 칼을 찬 일본인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일본 사람들 스스로도 자신들은 앞에 내세우는 얼굴과 속마음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한다.
책에서 일본인의 외면적인 행동의 묘사와, 행동, 사고방식, 문화의 패턴을 분석하며, 그들은 어떠한 생활의 변화에도 좀 처럼 변화하지 않는다는 인류학적신념으로 일관되어있다.
놀라운 점은 저자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을 한번도 방문하지 않고 썼다는 점이다.
어떻게 대상을 직접 보고 관찰하지 않고 분석할 수 있었는지 놀랍고, 그것이 가능했다는 걸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되었다.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 번역 개정판)

저자 미셸푸코는 1926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22세에 프랑스 엘리트 교육의 산실인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한 후 정신의학에 흥미를 가지고 심리학, 정신병리학 등을 공부하며 임상을 연구하고 26세에 교수자격 시험에 합격한 뒤 알튀세의 추천으로 고등사범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36세에 ‘광기의 역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감시와 처벌은’  1975년에는 부르주아 권력과 형벌제도의 관계를 파헤친 내용으로 출간되었다.
책에서 감옥이나 정신병원, 성 같은 변방의 익숙지 않은 주제와 특정계층이나 소수자 집단에 관한 사회적 담론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재생산되는지를 설명하였다. 형벌제도의 변화를 통해 각 시대의 권력이 어떻게 개인을 통제하고 예속시켜 왔으며, 개인이 권력의 작용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 

18세기까지 절대왕정시대의 형벌은 잔혹한 공개처벌이였다. 하지만 사회적 문제점으로 18세기에서 19세기에는 감금형과 강제노동이 도입되었다. 권력을 과시하던 형태에서 잔혹성을 숨기고 교묘하고 효율적으로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18세기 후반 감옥은 감시권력과 감시당하는 자가 명확히 대비되는 ‘보이지 않은 규율 권력’이 행사되는 전형적이 예였으며, 근대 계몽주의 시대 이후 합리하를 중시하는 이성적 근대권력은 처벌과 억압보다 지식과 담론을 만들어내어 방식을 감옥과 정신병원에서 찾은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처벌의 변화는 인권의 진보나 인류의 보편애로 인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좀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한다.
권력의 ‘눈’은 아무것도 놓치지 않으며, 감옥, 정신병동,군대, 학교, 노동자의 기숙사, 어디에서든 푸코는 감옥체제야말로 근대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며, 감옥은 다만 선명한 축소판일 뿐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