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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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게 될 것’은 단편 소설집으로 ‘쓰게 될 것’, ‘유진’, ‘ㅊㅅㄹ’, ‘썸머의 마술과학’, ‘인간의 쓸모’, ‘디너코스’, ‘차고 뜨거운’, ‘홈 스위트 홈’이 실렸고, 해설과 작가와의 인터뷰가 담겼다. 최진영 작가님의 작품들을 읽다 보면 시간이 뒤틀려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과거, 현재, 미래가 뚜렷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구의 증명’, ‘이제야 언니에게’이 그렇다. (아직 ‘이제야 언니에게’ 독후감을 쓰지는 않았지만.) 쓰게 될 것에 실린 몇 작품들도 시간이 직선으로 흐르고 있지 않는다. 책을 많이 읽지 않았던 시절에 접했을 때 뒤섞인 시간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 작품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지금은 다행히 책을 읽는 실력이나 능력이 늘어서 뒤섞인 시간들을 읽으면서 내가 찾을 수 있는 건 무엇인지 고민했다.

다른 작품들보다 최진영 작가님의 작품은 읽다가 갑자기 중간에 ‘아, 그래서 제목이 이거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많다. 쓰게 될 것에 실린 소설들도 대부분 이런 생각을 했다.

‘쓰게 될 것’을 읽으면서 ‘해가 지는 곳으로’가 많이 생각났다. 다른 세상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세계가 비슷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은 고심하고 사고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가능성을 만들고 싶은 주인공. 사랑하는 사람의 존재가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을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기억하고 살아남는 모습.

실은 책을 읽으면 생각할 수 있어서 행복하지만 표현할 수 없어서 불행하다. 표현력이 전무하다는 걸 독후감 쓰면서 느낀다. 내 생각은 어떤 단어들로 엮어 말할 수 있을까. 내용이 좋다,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말 말고 무슨 내용이 왜 좋았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문장으로 표현하고 싶다. 해설이나 줄거리를 따라 말하는 게 아니라.

‘ㅊㅅㄹ’은 없던 사랑도 하고 싶어지게 만들기도 한다. 사랑은 불안하다. 이 마음을 떨칠 수 없어서 내 사랑은 집착이나 질투가 탄생한다.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만드려고 노력한다. 연애만 그런 게 아니라 우정이나… 그런 모든 사랑에 대해 집착과 질투는 탄생한다. 탄생하는 이유는 내 마음이 너무 커서 나만 아끼고 소중하고 사랑하는 느낌이 들고 나를 떠나 버리고 사라질 듯한 생각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불안함이 떠나지 않아서 사랑을 처음부터 망설이고 주저하고 시작하지 않는 지경에 다다른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원래 불안하니까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무엇이든.

‘인간의 쓸모’는 ‘이 문장 정말 인상깊다.’싶은 문장은 없지만 ‘쓰게 될 것’ 소설집에서 가장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다. 고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갤럭시존, 타운존, 노고존으로 구분된 사람들을 다룬 이야기다. 배아 디자인이라든가 그런 게 넘쳐나고 갤럭시존과 타운존이 생각하는 학교는 우범지대에 속한 세계. 인간의 쓸모는 무엇일까, 싶은 생각이 들면 이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갤럭시존과 타운존의 인간은 정말 어느 부분에서 쓸모가 있는지 의심이 멈추지 않는다. 함부로 노고(No go)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공교육을 없애고 AI에게 잘못된 빅데이터를 주입하고 그 빅데이터를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모습. 인공지능의 위험성에 대해 알아야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 검색만이 완벽한 답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

모순 (양귀자 장편소설)

나는 이 책을 드라마 보듯이 가볍게 보았다. 주인공은 주변 인물의 사건, 사고에 늘 휘말리며 인생에서 모순을 알게 된다. 드라마처럼 볼 수 있었던 이유는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 제일 중요한 논제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엄마의 삶’과 ‘아무런 사건,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이모의 삶’의 비교에 있다. 엄마의 삶은 불행의 연속 같아 보이나 그 불행은 엄마를 더 성장 시켰고, 엄마를 더 단단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엄마는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보일 만큼 부피가 넘치는 삶을 살고 있었다. 이모의 삶은 호화로워 보이지만, 실상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어떤 사건, 사고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한 삶. 이 삶은 이모에게 그 어떤 성장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 부피가 없는 삶을 살던 이모는 드라마 주인공이 절대 될 수 없을 것이다. 작가는 힘든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는 ‘엄마’라는 인물을 통해 지금의 힘든 상황이 당신을 더 성장 시킬 것이며 당신의 삶을 재밌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거 아닐까? 그렇지만 나에게 엄마랑 이모 둘 중 누구로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난 망설임 없이 이모를 고를 것이다. 철없어 보일 수 있겠지만, 이런 책을 읽고도 이모 같은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내 생각이 꽤 모순적인 게 이 책과 잘 어울리지 않나? 

모순 (양귀자 장편소설)

이번 독서클럽에서 부원들과 함께 ‘모순’이라는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오래전 쓰인 책인데, 최근에 각광을 받으며 인기가 다시 올라온 책이다. 해당 책은 소설책이며, 양귀자 작가님의 필력에 감탄하며 읽어내려갔던 것 같다.
해당 책의 줄거리는 진진의 인생에서 불타오르는 부분으로부터 인생에서 식어가는 부분까지의 내용이다. 해당 책을 보며 정말 많이 공감이 간 부분은 진진의 집안 문제이다. 진진의 아버지가 술을 먹고 가정의 구성원들의 속을 썩여가는 부분, 어머니가 정말 열심히 사시는 부분에서 나의 가정과 비슷하다는 동질감을 느꼈으나, 나의 경우는 아버지가 그래도 강한 책임감을 가지시는 부분에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책을 들었을 때는, 모순이라는 부분을 어떻게 살렸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었는데, 책이 끝나갈때쯤, 그리고 책의 마지막장을 다 읽을 즈음에서 아, 정말 인생의 모순인 부분들은 끝이없이 많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특히나, 내가 정말 바라는 모습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불행과 고통을 겪어야한다는 모순적인 부분을 짚는 문구에서는 뼈저리는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수많은 실험과 작성해야할 논문에 묻혀 살면서, 미래에 취업하고 잘 사는 모습이 되려고 많은 고통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까.
모순은 누군가에겐 공감을, 누군가에겐 깨달음을, 누군가에게는 재미를 줄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모순을 읽고자 한다면 일단 가볍게 들어보길 권한다.

모순 (양귀자 장편소설)

  책을 좋아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알게 되어, 그 뒤로 유명인들이 인생책으로 많이 언급하는 걸 보게 되면서 소장하고 싶어했던 책이었다. 이 책에 대한 솔직한 감상을 결론부터 말하자면 약간의 실망과 소설 내용보다는 작가의 말이 더 인상깊었다는 것이다. 다들 인생 책이라고 하길래 뭔가 얻는 메세지가 많은 책인가? 하고 높은 기대를 가졌던 것이 문제였던 것 같다. 물론 장점도 많았다. 쉽게 술술 읽히는 전개가 맘에 들었고, 인물 개개인에 대한 디테일이 살아있어 몰입하기에 좋았다. 2013년에 쓰여진 소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요즘 시대의 인간상과 비슷한 면모들이 소설 속 인물들을 통해 많이 보였다. 그러나 내가 아쉬웠던 점은 내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이 몇 없었다는 것과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분명하지 않아서였다. 후루룩 재밌게 읽긴 했지만 오히려 마음의 울림을 준 건 작가의 말 부분이었다. 작가가 어떻게 이 소설 내용을 구상하게 되었는지, 왜 책의 이름은 <모순>으로 정했는지 등등. 내가 알아채지 못한 메세지를 거기서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에 가진 실망감과 별개로 읽는 내내 같은 k-장녀라는 이유로 안진진에게 공감하고 그녀의 행운을 빌게 되던 나였다. 안진진이 초반엔 삶에 대해 불타오르는 열정을 가졌다가도, 마지막에 가서는 점점 식어가는 모습을 보인 것에 대해 ‘삶에 순응’이라는 해석 대신 그저 그녀만의 삶의 방식을 터득했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사람마다 삶에 대해 불타오르는 순간이 제각기 있고 그 시기와 기간이 다르기 마련이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결론을 내리는지는 온전히 그 사람의 선택에 의한 것이기에, 안진진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안주하는 삶을 택했다고 해서 절대 그 선택의 과정에서 열정이 식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결국 그것 또한 그녀가 열심히 고군분투하여 선택한 그녀의 삶이기 때문이다. 사적인 요소 때문에 마음에 기울어졌는지는 몰라도 이 소설 속에서 제일 맘에 드는 인물이었고, 그저 잘 버텨준 것만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은 인물이었다. 
  그녀가 언급한 ‘삶의 부피’에 대해서도 생각 않을 수 없었다. 안진진은 불행을 느낌 삶의 부피가 커진다고 서술했는데 정확히 ‘삶의 양감’이라는 것이 뭔지는 모르겠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음의 양식’이라고 보았다. 경험이 적어도 그 속에서 수많은 걸 얻는 사람이라면 마음의 양식이 풍부하겠지만, 그저 시간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듯 사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도 모른 채로 마음의 양식이 적은, 즉 삶의 부피가 작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이 바로 마음의 양식이 풍부한 사람이다. 매 순간 무언가를 생각하고 얻어가는 사람. 삶의 부피감이 큰 사람. 


  간단한 감상을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꽤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연애와 결혼의 차이점부터, 삶의 방향성까지 다양한 분야를 건드리는 소설이다. 내가 인상 깊었던 대목이 몇 가지 있다. 첫째로는 어머니의 활력과 그녀만의 삶의 방식, 즉 불행의 과장법에 대한 것이었고, 둘째로는 아버지를 향한 진진의 마음을 사랑으로 볼 것인지, 자기 합리화로 볼 것 인지에 대한 것이었고, 셋째로는 서로의 숨 쉴 공간이 되어줬던 진진과 이모의 관계, 넷째로는 순수하지만 책임감 없고 무모했던 진모, 다섯째로는 현실적이고도 반전있었던 진진의 남편감 선택, 여섯째로는 주리와 진진의 상반된 생각과 대화에서 보인 ‘부모가 아이에게 끼치는 영향력’, 마지막으로는 이모의 엄마 쌍둥이의 상반된 삶을 비교하며 과연 좋은 삶이란 무엇이며 삶의 부피감은 어떻게 채우는 것일까에 대한 것이었다. 
  위의 대목들을 혼자 생각하고 끝냈더라면 난 아마 이 책에 대해 실망감만 안고 더 이상 펴보지 않았을 테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독서 클럽 사람들과 서로 질문하고 답하면서 내가 놓쳤던 내용을 다시 짚어보고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저 재미로만 읽지 말고 나와 관점이 다른 사람들과 토의하면서 보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아직 한 번 밖에 안 읽어봤지만, 두 번째 읽었을 때에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책인 것 같다. 그때에는 내가 가졌던 실망감은 사라지고 그저 온전히 몰입해 안진진의 삶과 나의 삶을 응원하게 되길. 다른 독자분들도 이 책 만큼은 여러 번 읽어보며 자신만의 메세지를 얻어가길 바란다.

생각한다는 착각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으로 풀어낸 마음의 재해석)

 “무의식적으로” 라는 말을 우리는 생활에 굉장히 많이 사용하고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제시한 무의식이라는 개념은 이제 프로이트를 몰라도 무의식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 하고 있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은 나도 학술 적인 정의와 상관없이 그냥 사용하는 것만 해도 그런 것 같다. 무의식은 우리의 뇌에서 자각 되지 않는 부분이자 우리의 마음속 깊숙하게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 영역으로, 미지의 영역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무의식 적으로” 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이 책은 모든 것을 부정한다. 심리학에서 해석의 영역으로 여겨지고, 우리가 많이 사용하던 무의식 이라는 것부터 생각 이라는 것조차 부정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뇌에 대해 서 과장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과학적인 것은 아니지만 영화 “루시”의 소재로도 사용이 된 것 같이 우리는 뇌에 대해서 과도한 환상을 갖고 있다. 영화 “루시”에서는 인간의 뇌를 100% 사용한다면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현실을 조작하는 등 신의 영역에 도달한 것 같이 묘사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가장 신뢰하고 모든 판단의 주체가 되는 시각조차 굉장히 작은 범위 밖에 보지 못한다. 우리의 눈은 중심부에 위치한 굉장히 작은 부분만 인지한다. 그래서 실제로 눈의 중심부가 향하는 부분의 색과 형태를 제대로 보고 나머지는 뇌에서 처리하여 그럴 듯 하게 처리가 될 뿐이다. 그래서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학교 사람들도 큰 범위에서는 같은 세상을 보고 있지만, 각자의 시선에 따라 실제로 다른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생각의 경우에도 비슷하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리는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하고 있지 않다. 일단 우리의 뇌는 과거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활동한다. 너무 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이 부담되기에 위에서 시각이 작동하는 방식 같이 제한된 정보 만을 받아들이고, 들어온 데이터들에 의미 부여를 하여 우리가 “생각”한다는 착각에 이르게 된다. 사실 나도 처음에는 이 사실을 믿지 않았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납득이 된다. 가장 대표적인 감정도 환경에 의해 학습 하는 것이고,
우리가 하는 행동들도 대부분 과거의 경험에 의존하게 된다. 이 사실을 인지한 순간 굉장히 무력해 졌다. 그렇다면 정말 데이터를 기반으로 나오는 AI와 사람의 차이점이 정말 
모호해졌다. 옛 일본 애니메이션인 “공각 기동대” 에서 던진 질문처럼 무엇이 나를 인간으로 만드는가 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사실 이제는 진짜 모르겠다. 어쩌면 16세기에 말에 태어난 데카르트의 말이 어쩌면 질문이자 해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이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아닐까.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언어 천재’ 타일러가 말하는 코로나 이후의 위기)

“작은 상자 바깥에 더 큰 상자가 있다.”
작은 상자란 인공적인 시스템, 규율, 제도와 같은 인류가 만들어낸 사회를 의미한다.
그러나 더 큰 상자인 자연 생태계가 붕괴되면 고스란히 작은 상자로 돌아온다.
타일러는 <6도의 멸종> 문명과 인류의 멸종을 야기한다. 이론적인 부분은 이미 현실화 되고 있고, 현시점에서 환경 문제는 크고 절박하고 막막하다.
우린 조금이라도 거기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완벽이란 없고, 깨어있는 의식과 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게 중요하니까.
감상문을 작성하면서도 들이쉬는 산소는 생존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디서 오는 걸까? 산소는 바다에서 많이 생산된다. 작은 플랑크톤이 번식하며 산소를 배출하는데, 그게 우리가 숨쉬는 산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기후위기로 바다는 극한 상황을 겪고 있다고 우리에게 몸소 얘기해주고 있다. 그러나 모르는 척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닐까?
IPCC(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설립된 UV 산하 국제 기구)측의 ‘해양 및 방권 특별보고서’를 살펴보면 2050년엔 해수면 상승은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극한상황을 겪는다고 밝혔다. 기후변화연구 비영리단체인 클라이밋 센트럴에서 AI와 위성사진을 활용하여 애니메이션을 구현했다. 해수면 상승으로 베트남 남부 전역과 중국, 상하이, 인도 뭄바이의 상당 면적이 바다에 잠긴다고 추정했다. 단순히 해수면 몇 미터 상승하는게 아니다. 맹렬했던 ‘헐린’처럼 허리케인은 바다의 수온 상승으로 태풍의 피해가 증가한다. 더 많은 비와 폭풍의 힘의 원천이 된다는 뜻이다. 또 다른 이상 변화로 ‘바다의 산성화’가 있다.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생태계적 장치는 바다로, 수소이온이 증가하면서 탄산염이온과 반응한다. 이때 해양생물이 껍데기를 만들 때 필요한 탄산염이온이 부족해지면서 갑각류들의 외피는 단단하게 형성되지 못한다. 즉 게, 랍스터, 새우, 대하 등이 줄어들면서 또 다른 해양생태계 변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유난히 더웠던 올 해, 한반도 연안에 해파리 개체수가 급증하면서 피서객 감소 뿐만 아니라 참치가 해파리 독에 쏘여 죽는 일로 어업에도 피해가 발생했다. 나는 이 점에서 해파리 서식 요건이 충족된 캄브리아기 이전 시대가 괜스레 떠올랐다.
빙하가 녹는것은 단순하게 북극곰이 터전을 잃어 눈물 흘린다는 것이 아니다. 시공간적으로 단절되어 있던 박테리아가 되살아나고, 미지의 세계가 깨어났다. 시대적 충돌의 관점은 ‘코로나는 시작에 불과하다’로 볼 수 있고 앞으로의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WWF에서 향후 10년간 인류에게 다가올 위험 요인으로 1위와 2위 모두 기후위기를 꼽았다. 자연 생태계 변화는 전세계적으로 약 44조 달러 규모의 타격을 입으며, 이는 전 세계 GDP 절반 이상이라고 한다. 생존을 위해 적응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환경 난민은 누구나 될 수 있다. 바다의 이어짐은 여기서 끝이 아닌 지하수 과다 사용으로 인해 지하 침반과 씽크홀 사태가 속출되고 있다. 부천, 수원, 용인, 고양, 화성 등 ‘서울 땅꺼짐’ 키워드를 검색하면 내용을 쉽게 접할 수 있다. 4년 6개월간 1.9일마다 한 번꼴로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말은 우리 생활에 가까이 자리하며 점점 경각심이 고조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불안하고 조금 두렵긴 하다.
오늘 다룬 내용은 바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전개했다. 심도 있게 구성한 것도 아니며, 지극히 일부만을 전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국가의 경제적 손실 뿐만 아니라 티핑 포인트를 넘어서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날씨가 좀 더워지네, 과거보다 해수면이 높아졌네, 야생동물 개체수가 적어진게 뭐가 문제야?라는 단편적인 부분에 시각을 둘 게 아니라는 점이다. 경제가 서로 얽혀있는 것처럼 생존의 중심을 생태계의 먹이사슬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무관심과 무차별적 탄소배출의 그 끝은 지구는 괜찮고, 인류는 안 괜찮다.

햄릿 (셰익스피어 4대 비극)

햄릿의  독백 “To be, or not to be”는 존재의 의미와 고뇌를 상징적인 기법으로 표현한다. 전체적으로 햄릿은 인간 존재 본질과 복수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에 관한 심오한 질문을 독자애게 던진다 .

엄마 졸업식 (엄마가 되고 나서야 보이는 것들, 엄마를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

이 책을 읽고 정말 많이 슬펐다. 이 책의 저자는 먼저 떠난 엄마를 기리기 위해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이 책은 내 부모님 세대에서 느꼈을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었다. 불우했던 가정에 부모님을 미워하고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났나 슬퍼하고 이런 내용이였다. 나도 예전에는 잔소리를 하고 하고싶은 걸 못하게 하고, 사고싶은 것도 안사줘 투정을 많이 부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도 힘든 시기가 있었고, 경제적으로 모든 것을 해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를 이해하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살고있다. 누구나 한번 쯤은 이 책을 읽고 부모님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네가 무엇을 하든,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네가 옳다 (나의 삶이 너희들과 닮았다 한쪽 다리가 조금 ‘짧은’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한 ‘길고 긴 동행’, 그 놀라운 기적)

인정받는 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원동력을 얻게 되는 힘이다. 아이들은 부모와 선생에게 인정을 받고 행복을 느끼고, 더욱 더 인정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이 저자는 공부방을 운영하며 부모에게 인정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대화를 하고 따뜻한 인정의 말을 건네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교육봉사를 다니고,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던 날을 떠올리며 많이 안타까운 모습을 봤던 날들이 생각났다. 어릴 때 아이들에게 부모님들의 인정은 어른이 되어서도 자존감 향상에 큰 기여를 한다. 내가 아이를 키우게 되는 날을 생각 하기에는 너무 멀지만,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을 되살리며 아이에게 따뜻한 인정의 말을 건네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