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

사피엔스 책을 1학년 때 수업에서 다뤘지만 책이 두껍기도 하고 일부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강의를 통해 다시 복습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고 인류의 시작을 좀 더 이해 할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 
디자인은 예술로만 보는 것이 아닌 우리 생활에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라고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내 생활을 다시 생각도 해보았다
디자인과 인류에 대한 강의 내용이었는데 특히 여러나라 건축물 간의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것을 더 알 수 있었다.
강의에서도 나왔듯이 독립문과 개선문이 비슷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외에도 워싱턴DC에 있는 워싱턴모뉴먼트가 여러나라에 있을 거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못했었다
하지만 강의를 통해 여러나라에 현재 있으며 이집트문화를 모방이 아닌 문화재를 무단 반출했던 약탈의 문화라고 하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문화의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부분이 많으며 생각치도 못한 부분에서 여러 나라의 문화재의 연관성을 알 수 있었다.
또 생각보다 많은 부분의 디자인과 문화에서 이집트의 영향이 많이 받고 있었다. 또 이집트의 문화 중 내가 아는 피라미드의 모형은 가장 일반적인 모형이었으며 
피라미드의 쇠퇴라는 것이 가장 인상깊었다. 굴절형이나 계단형이 일반형에서 진화한 형태라고 생각했지만 정반대의 진화라서 충격적이었다. 
강의를 통해 문화도 전세계적으로 디자인을 돌고 도는 것이며 패션만이 돌고 도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 강의를 통해 알아갈 수 있었다.
처음 해보는 독서 아카데미 프로그램이었는데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는 느낌이었고 아무래도 영상이도 보니 좀 더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는 느낌이라서 좋았다. 
독서 프로그램에서 어떤 주제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과가 패션이다보니 패션과 관련되 주제에 대해서도 다뤄지는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다
전공에서 배우는 패션을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가 배울 때 어렵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많다. 요즘은 패션에도 관심 있는 사람도 많다보니 패션에 대해서
좀더 쉽고 재밌게 다뤄지는 주제를 통해 쉽게 패션에 대해 알 수 있는 강연이 있었으면 좋겠다.

바우하우스

 바우하우스는 1919년 선언에서 바우하우스를 ‘공예가와 예술가 사이에서 장벽을 세우는 계급 구분’이 극복되는 곳으로 정의된다.
 목표는 새롭고 보편적인 디자이너를 길러내는 것이었다고 한다. 또한 바우하우스는 예술과 건축, 디자인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도 했다. 
바우하우스 업적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그로피우스가 설계한 데사우 교사 건물이다. 이 교사의 역동적 구성, 비대칭적 평면 구성, 부드러운 백색 표면과 수평적인 창문 등이 바로 1920년대 국제주의 양식을 대변하는 바우하우스 건축의 특징이 된다. 삶의 모든 영역을 하나의 지붕 아래 놓는 것, 즉 교육, 노동, 주거, 오락, 운동이 한데 모일 수 있는 공간이 바우하우스인 셈이다. 우리 모두 삶의 모든 영역을 집 안에 놓는 상상을 한 번쯤 모두 꿈꿔봤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이러한 집에 사는 것이 나의 이상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우하우스는 조형예술 및 공예와 건축에 주목하고 모든 예술 활동을 합쳐 새로운 건축의 구성 요소로 탄생시킴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작했던 운동이다. 스테인드글라스를 중심으로 한 유리 공방은 바우하우스의 취지에 가장 적합한 공방이었다. 시대적으로도 건축에서 유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스테인드글라스는 충분히 미래 지향적 가치와 가능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우하우스를 개교했을 때 까지만 해도, 그로피우스는 여학생도 남학생처럼 자유로운 인간임을 인정하는, 당시의 상황으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입장이였다. 그로피우스는 아름다운 성과 강한 성과 같은 성별 차이는 존재하지 않으며, 평등만이 아니라 의무에 있어서도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숙녀 대접은 기대하지 말아라 작업에 관하여우리는 모두 장인일 뿐이다라고 주장하며 성별 고정관념 편견을 없애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실패로 끝이 났다. 현대 사회에서도 아니고 당시 사회에서 이러한 용기는 정말 대단하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 중 하나로 뽑았다. 이번 특강으로 인해 바우하우스라는 책을 알게됨으로써 얻게된 지식이 많은 것 같다. 다음 번에는 1cm 다이빙과 같은 자기계발도서의 주제도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독서 프로그램이 더 많이 개설되었으면 한다.

바우하우스

독서 아카데미는 상당히 유익한 강의였다. <디자인, 문명의 관점에서 생각하다>라는 주제에 맞게 인류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문명에 대해 관찰하고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해하기 어렵지 않아 좋았다. 그 중에서도 ‘불멸의 디자인’이라고 표현된 피라미드가 인상깊었다. 피라미드의 디자인에 관해 흥미로운 얘기를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인지, 불멸의 디자인이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사막과 바다로 둘러쌓여 지형학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이집트는, 외부 침입에 방어가 용이했기 때문에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 그들만의 고유하고 질 높은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이집트인들은 영원한 생명, 즉 불멸을 꿈꾸었고, 그들의 왕 파라오는 신과의 매개자로서 국민들을 돌보았다. 기독교의 예수 그리스도와 비슷한 패턴이다. 다만 예수와 다른 점은, 파라오는 신도 인간도 아닌 매개자였고 예수는 신이 보낸 아들이었다는 것 정도이다. 어찌되었든 파라오는 살아있을 적엔 신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파라오의 무덤인 피라미드는, 죽은 그를 진정한 신으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피라미드는 중간 기착지였던 셈이다. 게다가 대략 300만년의 시간을 피라미드 안에서 보낸 뒤 하늘로 올라가 신이 되어야했기 때문에 튼튼하고 큰 건물로서 지어졌는데, 이것은 곧 피라미드 디자인이 무덤 디자인 보다는 집 디자인에 가까웠다는 뜻이기도 하다. 
피라미드가 디자인의 진화를 거쳤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나는 지금까지 사각뿔 형태의 피라미드만 존재하는 줄 알았는데, 계단식 피라미드부터 굴절형 피라미드, 일반형 피라미드 등 여러 디자인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비록 중왕국, 신왕국의 역사를 거치며 그 형태가 바뀌고 사라져 나중에는 암굴무덤이 자리했지만 말이다. 피라미드가 도굴에 취약했다는 점이 매우 아쉬웠다. 그리고 커다란 무덤이니만큼, 그 무덤을 짓는데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사실 피라미드는 왕의 무덤으로 썩 좋은 디자인은 아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왕의 무덤을 짓는 것에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드는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이다. 
비록 시간이 흘러 나중에는 신전속으로 흡수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지만, 피라미드의 디자인은 국민들의 염원과 노력이 담긴 아름다운 디자인이었음은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다음에는 이집트 피라미드 디자인 뿐 아니라 그들의 신화나 신 적 존재 등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강연을 들으면 좋을 것 같다. 

바우하우스

이 책에서 바우하우스는 미술사의 거인이라고 표현합니다. 디자인 혁신의 아이콘으로 여겨지는 미국 애플사의 디자인은 울름조형대학에 빚을 내었고, 이 학교의 이념적 모체가 바로 바우하우스입니다. 개교한 지 100년이 된 바우하우스는 신화적인 존재라고 불리웁니다. 이 책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 내용은 잘 모르는 바우하우스를 디자인, 건축, 미술 각 분야에서 서술한 책 입니다.  또한 그동안 깊이 다루지 못했던 바우하우스의 건축, 그래픽 디자인, 타이포그래피, 전시와 공연, 여성 디자이너와 공예 등을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파고들며 사람들이 바우하우스를 어떻게 수용했는지에 대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존재하는 기간은 짧지만 지금은 신화처럼 여겨지는 이 책에서 말하는 바우하우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우하우스의 지금과 내일이라는 부분에서는 바우하우스는 1919년 선언에서 그곳을 ‘공예가와 예술가 사이에 오만한 장벽을 세우는 계급 구분’이 극복되는 곳으로 정의됩니다. 바우하우스의 목표는 새롭고 보편적인 디자이너를 길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디자이너는 예술가의 창의성과 미의식에 공예가의 기교 및 생산에 주력하는 태도를 결합하는 동시에 사회적 인식과 책임감을 가졌고, 바우하우스는 실험적 디자인에 교육학적 초점을 맞추어 학제적 추론과 연구를 하는 곳이었습니다.  필요한 실용 기술과 이론을 공부하면서 바우하우스의 학생들은 중요한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디자인에는 우연이 없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당면한 디자인 문제를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사물을 마치 처음 보듯이 보고 디자인 과정을 기초적 현상과 과정으로 단순화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우하우스는 예술과 건축, 디자인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저, 과거로만 남은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일상까지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예술과 기술이 융합된 기능주의 디자인’을 탄생시켰고 ‘국제주의 양식 건축’을 완성했으며 대량생산된 일상용품의 획기적 개선도 불러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번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애플을 포함한 새로운 지식들을 얻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공과대학 학생으로서 신입생때 수강했던 디자인과목 이후에 처음 접해보는 디자인 강연이였습니다. 다음 회차에는 자기개발, 공대에 관련한 책들도 독서 프로그램에서 진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우하우스

저번 1회차 테마 독서 강의와 연결되는 느낌의 강의였다. 1회차에는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에 대한 소개가 많았는데 이번에는 에게 문명 부터 중세 시대가지의 내용이었다.
이번 강의에서도 예전에 배운 ‘세계사’의 내용이 보였지만, 건축과 디자인과 관련한 관점으로 접근하여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특히 에게 문명에 대한 특징이 유럽의 첫 단추가 
된다는 것은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또한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나는 이 건축물이 다 직선인 줄 알았는데 이게 아니였다는게 충격적이였다.
그리스 신전 건축에서는 ‘형태미’를 중요시하여 건축의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착시현상교정기법을 사용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였다. 또한 이러한 건축이 기초가 되어
미국의 ‘백악관’도 이러한 형태를 띄고 있는데 이는 민주주의가 처음 생겨난 것과 관련되었기 때문이라는 점도 접하게 되었다. 
이와 다른 성격을 ‘로마’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로마는 국가의 땅이 넓어 통치하는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이상주의인 그리스와의 반대인 ‘실용주의’적인 형태가 많이 건축에서도 보이고 있는 것을 사진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 문화를 모두 버린 것이 아닌 흡수하여 자신의 문화로 융합했다는 점이 참 인상깊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공공시설이 발달하여 수로, 하수도, 도시 인프라가 발전하게 된 것 같다. 또한 ‘아치’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치의 기원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그리스에도 이 기법은 존재했으나 형태미가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사용을 많이 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나에게는 충격적인 점이였다. 이 밖에도 콜로세움, 판테옴, 목욕탕에 대한 
간단한 지식들을 습득할 수 있었다.
이번 테마가 있는 독서 아카데미를 수강하면서 위의 언급한 것 처럼 ‘그리스’ , ‘로마’가 제일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위의 글에서 언급되지 않은 중세시대에 대한 설명도 존재
했지만 특히 인상적이였던 것은 ‘그리스’와 ‘로마’의 특징이 대조되어 각자의 특징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시대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하였다.
총 2회차의 독서 아카데미를 들으면서 역사의 일부분에 디자인적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는 점이 매우 재미있었다.

바우하우스

  지난 시간에 이어서 2강에서는 유럽 문명에 대한 디자인을 알아보았다. 평소에 중세 시대의 유럽 예술들에 대한 것들을 많이 접해서 중세 유럽에 대한 디자인들을 알아보면서 내가 아는 내용들이 나올까 기대가 되었다. 이런 기대를 가지고 강의를 들었다.
  유럽문명은 에게 해 문명에서 시작되었다. 에게 해 문명은 해양 문명이었는데, 무역 상업 중심이었기 때문에 타협과 협상, 융통성 있는 문화로 발전하게 되었다. 자유로운 사회가 태동했기때문에 유럽 문명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그리스 크레타 섬의 미노스문명은 장식이 많고 화려한 건물이 없는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또한 권위적 건물이 없는 것으로 고대근동과 해양 문화의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문명의 건축물은 그리스 건축의 특징인 기둥양식의 초기형태이다. 대표적 그리스 건축물로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파르테논 신전의 특징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형태미를 중요시했기때문에 착시현상을 교정하는 기법을 동원하였다. 이후 이 파르테논 신전에 대한 변종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고대 로마 문명은 실용주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의 미적 개념을 차용하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 문명과의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실용성을 중요시 했기때문에 내부 인테리어와 규모가 큰 토목공사를 많이 하였다. 이때문에 기술력이 매우 좋아졌고 공공시설이 발달하게 되었다. 구조는 아치, 볼트, 돔을 재료는 콘크리트를 사용하였는데  이를 통해 건축공학적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콜로세움, 판테온등 이 있다.
  기독교 문화는 고대로마와 반대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중세는 기독교의 연대기를 따라간다. 초기 기독교양식, 비잔틴 양식(동로마),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 순으로 디자인의 역사가 흘러갔다. 초기 기독교양식은 매우 볼품 없었다. 로마문화의 아류정도였다. 이후 비잔틴 양식은 로마의 문화였기 때문에 매우 발전돤 양식을 가지고 있었다. 대표적 양식으로는 라벤나가 있다. 고딕양식은 중세시대의 꽃이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더불어 발전한 새로운 건축양식이었다. 대표적인 양식으로는 리브볼트, 트레이서리, 스테인드 글라스 등이 있다.
  내가 알고 있었던 중세유럽의 양식은 고딕 양식이었다. 과거 학교에서 미술을 배울 때 고딕 양식의 건축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과거에 배운 것을 다시금 짚어보니 좋았다.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중세유럽의 문명을 알아보아서 디자인들의 진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다음에 독서프로그램 아카데미를 다시 듣게 된다면 과학기술에 대한 주제의 독서 프로그램에 대한 강연을 듣고 싶다.

바우하우스

 문명의 관점에서 본 디자인은 무엇일까?세계의 여러 문명들은 서로 다양하게 발전하였지만 각 문명들의 건축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한점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강연은 이렇게 서로 다른 다양한 문명들이 비슷한 과정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디자인의 역할을 찾아보고 미래의 디자인의 발전방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유럽 문명의 시작으로 볼 수 있는 에게 해 문명은 해양 문명으로써 무역과 상업이 중심이 됨으로써 타협과 협상이 있는 융통성 있는 문화가 발전했으며 섬이 많았기에 서로간 통행이 제한되어 개인주의가 생겨나고 각각의 학문과 문화가 발전했다. 그 예로써 크노소스 궁전을 살펴보면 장식이 많고 디자인이 화려하며 중심에 권위적인 건물을 찾아볼 수 없는데 이것은 풍요롭고 개인주의 적인 해양문화의 대표적 특징으로 볼 수 있다. 다른 사례로 파르테논 신전을 살펴보면 초기의 단순한 디자인에서 밖을 보충하여 점점 화려한 디자인으로 변형시켰고 인간의 착시까지 이용하는 등 형태미를 중시하였다.
 다음으로 로마문명을 알아보자. 로마 문명의 정체성은 실용주의 라고 볼 수 있는데 로마는 그리스의 여러 문명들을 지배하게 되면서 에트루리아 문명에 그리스 문명을 더한 형태가 되고 규모가 큰 토목공사와 내부를 중요시한 광대한 인테리어가 인상적인 형태가 되었다. 로마 실용주의의 대표적 예시를 들자면 아치형 구조가 있는데 아치구조는 예전에도 알려져 있었으나 미적기준에 미달되어 쓰지 않았다. 그러나 실용주의적인 로마인들은 아치형태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대표적인 아치형태의 구조물로 80개의 아치로 구성된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이 있다. 또한 로마의 창의성의 최고봉 급인 판테온은 다신교 국가인 로마제국의 모든 신께 바치는 신전으로 판테온 하나로 모든 신전을 대신하는 실용성을 볼 수 있다.
 그 이후 로마에 기독교가 승인되면서 기독교 문화가 생겨나는데 초기 기독교 건축의 특성인 바실리카 양식은 기존 로마 건축물을 모방한 것이다. 그후 로마가 쪼개지면서 비잔틴 양식이 생겨나는데 마치 보석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형태의 모자이크가 특징으로 로마의 모자이크가 발전하고 정교해져 기독교적 이데올로기가 합쳐진 형태가 비잔틴 양식이라 할 수 있다.
 그뒤 12세기에 파리에서 고딕 양식이 생겨나는데 고딕양식으로 창 윗부분의 장식적인 구조물인 트레이서리와 유리를 통해 기독교의 서사를 보여주는 스테인드글라스가 특징이다.
 이렇게 디자인은 문명이 발전하고, 쇠퇴하고, 정복하고, 정복되는 일련의 과정속에서 섞이고, 과거로 돌아가는 등 여러 변화를 거쳐 현재에 도달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임이 틀림없다. 그렇기에 디자인을 통해 그 문명의 특성을 확인 할 수 있다.
 다음 테마가 있는 독서 아카데미의 테마는 나라별 철도산업 특성에 나라의 특징을 연관시켜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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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강에서는 디자인과 인간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강의를 듣기 전에 디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스타일이 제일 먼저 생각이 났다. 무언가의 스타일이 곧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였다. 내가 생각한 의미가 인간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떠올려보면서 강의를 들었다.
  디자인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최정기획물, 과정, 행위, 아이디어, 스타일, 브랜드등 많은 의미가 있다. 이처럼 의미가 다의적이기 때문에 선택적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디자인을 문명적 관점에서 생각할때는 보편적인 관점으로 바라보아야한다.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디자인들이 유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문화적 유전자가 존재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공간적인 것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디자인의 유사성을 확인 할 수 있다. 로마의 개선문 디자인이 프랑스로, 또 우리나라의 독립문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이를 통해 현재의 문명은 과거의 디자인 덕분임을 알 수 있다. 문화적 유전자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보편적인 관점으로 디자인을 바라보아야하는 것이다. 
  인간은 진화를 거듭해왔다. 그 중 현재의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았다. 호모 사피엔스는 신체적으로 네안데르탈렌시스에 열세였지만 결국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그 이유는 문화적 진화 때문이었다. 사피엔스는 인지혁명을 거쳤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협력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사회규범 및 정치 체제 등을 신속하게 변화시킬 수 있었다. 또한 인지 혁명을 통해 허구를 믿는 능력을 갖게 된 인류는 생물학적 유전자가 아니라 상상과 서사에 의해 다양한 추상적 이념을 가지게 되었고, 문명을 발전시켰다. 이 부분에서 문화적 진화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호모사피엔스가 출현 이후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다양한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석기시대의 뗀석기, 동굴벽화, 원시오두막, 지역공동체 등 다양한 디자인을 보여주었다. 이것들은 현재 디자인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처음부터 순서대로 도구디자인, 인테리어 디자인, 주거 디자인, 도서 디자인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강연을 들으면서 내가 생각하였던 디자인의 의미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또한 문화적 유전자라는 말을 처음 들어보았는데, 다양한 사례들을 보면서 이것이 존재함을 몸소 알 수 있었다. 인류가 진화하면서 가장 중요했던 것이 단순히 지식의 풍부때문인 줄 알았는데 이 역시 문화적 진화가 기반이 됨을 새로 알게되어 신기하였다. 독서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통해 디자인에 대한 색다른 경험을 해서 좋았고 과학기술을 주제로 한 독서 아카데미 프로그램 또한 경험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였다.

바우하우스

이번 2차 독서아카데미 강연은 1차 강연에서 나온 내용만큼이나 흥미로웠고, 좀 더 내용에 대해 깊고 세세하게 설명해주시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미지 자료를 통해 문명 간의 비슷한 점과 차이점에 대해서 확실히 비교해 볼 수 있었고, 과거 문명의 디자인들이 그 시대가 어떤 것을 추구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강연을 듣기 전까지는 그리스 문명과 로마 문명은 비슷한 것을 추구하고 있고, 디자인 역시 비슷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허나 그리스 문명은 편집증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보이는 형태적인 미를 추구하였고, 로마 문명이 질적으로는 그리스문명에 비해 열등했다 하나 목욕탕과 같이 공공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발달시켜 시민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아치 구조등과 같은 건축공학적 혁신을 이루게 되어 오히려 실용적인 부분에서는 보다 나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목욕문화라는 것이 로마의 공화정과 제국 시기에도 존재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위생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그림으로 봤을땐 요즘 시대의 목욕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넓은 규모여서 씻는 용도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친목과 사교 활동도 행하고 체육관, 음식점도 함께 있는 복합적인 문화시설의 역할을 수행 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외에는 고딕양식에 대한 설명이 의외였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 있는 고딕풍을 가진 명동성당과 같은 건물을 볼 때  굉장히 웅장하고 하늘로 뻗어나가는 느낌을 받는데 르네상스 시대에는 오히려 이 고딕 양식을 천박하고 경멸적인 것으로 생각했고, 고딕이라는 용어의 어원 역시 르네상스인들의 평가절하에서 생겼다는 점이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시대에 따라 디자인이 추앙받을 수도 있고 오히려 좋치 못한 평가를 당할 수 도 있다는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다음 테마주제로는 시대의 흐름에 따른 사람들의 삶이나 문화의 변천 과정을 통해 과거의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고, 또 현세대의 인류는 그 과거의 문화를 얼마나 발전시켰고, 또 어떤 부분을 주로 발전시켰고, 어떤 것을 도태시켰는지에 대해서 보여주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바우하우스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디자인은 스타일,이미지,공간,시스템 등의 다양한 의미가 있다. 이번 강연에서는 이 ‘디자인’에 대한 강연이다.
특히 이번 강연에서는 디자인의 보편적,통합적,전체적인 관점에서 디자인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디자인이 어떻게 확장되었으며  현재의 디자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알아보고  미래의 디자인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를 계획해볼지를 알아보자.
 세계 곳곳에는 높은 기념비들의 원형인 오벨리스크 동양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있는 불상들과 비슷한 모양을 가진 서양의 알렉산더 대왕의 두상 등의 세계에서는 비슷한 모양을 가진 작품들이 많다. 또한 지금의 디자인들을 보면 과거에도 동일하거나 비슷한 모양이 많다. 이를 통해 유추해볼수 있는것은 우리가 새롭게 여기는건 과거에 있었던 것이 많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인류가 인류가 공유하는 신화나 이념에서 정치,사회,문화,예술, 라이프스타일 까지 과거의 인류가 상상하고 도전하고 노력해 성취해낸 디자인의 스펙트럼 안에 자리잡았다고 볼 수 있으며 그렇기에 현재의 문명은 과거의 디자인 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의 인류는 어떤 디자인을 통해 성장했을까?
 인류의 진화를 잠깐 알아보자면 인류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 등 여러 단계를 거쳐 진화했는데 지금의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은 호모 사피엔스로 알려져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대단히 중요한 사건으로는 약 7만년전 일어난 인지혁명이 있는데 인지혁명이 일어나 생물학적 진화의 궤도에서 벗어난 인류는 많은 사람들과 협력이 가능져 사회규범 및 정치체제등을 신속하게 변화시킴으로써 느린 유전자적 돌연변이 에서 보다 빠른 문화적 돌연변이의 형태로 진화하게되어 더욱 빠른 발전이 가능해졌다. 또한 인지혁명을 통해 허구를 믿는 능력을 가진 인류는 상상과 서사를 통해 추상적 이념공유로 문명을 발전 시켰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의 디자인 여정을 알아보자 과거의 제품 디자인은 곧 도구의 개발이라고 볼 수 있는데 도구를 이용한 공간성을 채우는 확장으로 보다 다양한 체험을 가능하게 했으며 이로써 기술의 발전이 더욱 가속화 되었고 끊임없는 개발을 통한 더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인테리어의 원형은 동굴벽화로 볼 수 있는데 크로마뇽인의 특징으로 볼 수 있는 동굴벽화는 성공적인 사냥을 위한 물신적 상징물 이자 시뮬레이션의 도구로써의 기능을 했으며 동굴 벽의 굴곡을 살려 삼차원적 효과를 냄으로써 역동성을 주었다. 이를 통해 인류가 험악한 자연에서 정복할수있는 공간으로 변화했다
 주거 디자인의 원형은 원시 오두막으로 볼 수 있는데 동굴을 벗어나 인공적인 축조물로 볼 수 있는 원시 오두막은 기둥이 출현했으며 불을 중심으로 공간을 나누었다.
 도시 디자인 원형은 지역공동체로 볼 수 있는데 신석기혁명으로 채집경제에서 생활경제로 변화하고 농업혁명으로 인한 식량이 대폭 늘어나 인구가 크게 증가하고 농경생활로 인해 정착생활이 시작되고 창고,관개시설 등 일회성 공간이 아닌 다양한 시설이 필요해짐에 따라 마을내 커뮤니티 생성되고 마을내 방어막이 형성되면서 발전을 거듭해나아갔다. 그후 절대 권력이 등장하면서 그 상징을 왕궁,신전등이 건축되고 인류간 전쟁이 시작됨에 따라 도시가 요새화되고 왕궁과 신전을 성채로 둘러쌓이기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예로써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를 볼 수 있는데  범람으로 부터 신전을 보호하는 실질적인 기능과 함께 높이를 통해 권위를 높이는 상징적인 목표 또한 있었다.
 그렇다면 전쟁이 없었다면 어떤형태로 발전했을까? 이 사례는 이집트로 부터 알 수 있는데 이집트의 경우 전쟁이 없었기에 내세의 영원성을 중시했고 파라오는 죽으면 신이 된다는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사후세계를 위한 집으로 여겨 무덤 디자인 발달했다.
이러한 이집트 문명의 조건을 보자면 사막과 바다로 인한 지형학적 고립성으로 인해 외부 칩입에 대한 방어가 용이하여 질 높은 문화가 지속적으로 보존되었고, 규칙적으로 범람하는 나일강 삼각주는 식량생산에 유리했기에 사유재산 축적이 축적 되면서 위계질서 형성되고 권력이집중되면서 불평등사회로 발전되었다, 나일강의 영향은 이뿐만이 아닌데 나일강이 지역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기에 측량술이 발달하였고 후에 나일강은 종교적 대상으로 발전하여 다원적 종교관 형성되었고 파라오를 태양신의 아들로 규정하여 피라미드의 높이를 중요시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다음 테마 주제로 철도의 역사와 철도의 발전이 인류에게 미친 영향으로 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