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폭풍의 언덕은 두 남녀의 죽음을 넘어선 광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사랑의 힘. 비극적인 운명 앞에서도 한 줄기 희망이 되는 ‘사랑’이란 무엇인 지 잘 보여준다.


<시놉시스>

  소설 속 배경인 워더링 하이츠에는 언쇼 주인과 그의 부인, 아들 힌들리와 딸 캐서린, 하인 조셉, 가정부와 그녀의 딸인 넬리 딘이 있었다. 어느 날엔가 주인인 언쇼씨는 리버풀로 여행을 떠났다가 한 고아를 데리고 온다. 그는 전에 죽은 아들의 이름인 히스클리프를 이름으로 붙여주고 친자식처럼 애정으로 키운다. 딸인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좋아했지만 친아들인 힌들리는 아버지의 애정을 가로챈 그를 시기하여 못살게 괴롭혔다. 훼방꾼인 힌들리가 유학을 떠나자 캐서린과 히스클리프의 애정은 빠른 속도로 깊어졌다.

  그러던 중 농장 주인이자 아버지인 언쇼가 죽게 되고 새로운 주인 역할을 맡아야 할 장남 힌들리가 결혼한 여인과 함께 돌아온다. 히스클리프를 아끼던 아버지가 없으니 힌들리는 아예 히스클리프를 하인으로 취급하며 학대하기 시작한다. 힌들리의 감시를 피해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들판을 뛰어놀던 중 캐서린이 낯선 농장에서 다리를 다친다. 그 농장은 린튼가의 드러시크로스 농장이었다. 그 곳에는 린튼과 린튼 부인, 아들 에드거와 딸 이사벨라가 살고 있었다. 린튼가는 천해보이는 히스클리프는 경멸하며 밖으로 내쫓고 이웃 가문의 아가씨인 캐서린은 5주간의 정성어린 간호와 손님 대접을 한다. 이 곳에서 야생마처럼 자유분방하던 성격의 캐서린은 교양 있는 성숙한 아가씨로 거듭나게 되며 에드거와 좋은 감정을 간직한 채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온다.

  얌전해진 캐서린의 모습에 히스클리프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그런 와중에 의도치 않게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고 이를 놓치지 않고 힌들리 역시 그에게 수모를 안겨준다. 이를 계기로 히스클리프는 힌들리와 린튼가의 자녀들을 증오하게 되며 복수를 다짐한다. 캐서린을 향한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여전했다. 그는 자꾸만 찾아오는 에드거 린튼이 못마땅했다. 반면 캐서린 역시 여전히 히스클리프를 사랑했지만 무일푼에 고아인 그와 결혼할 경우 자신의 신분이 낮아질 것을 염려했고, 에드거에게 청혼 받은 날 밤, 이를 친구 같은 하녀 넬리에게 토로하다 그만 히스클리프가 듣게 된다. 히스클리프는 그 길로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캐서린은 영혼의 짝인 히스클리프를 잃은 슬픔에 심한 열병을 앓았다. 그 즈음에 힌들리는 아내를 병으로 잃게 되고 핏덩이 같은 아들을 얻게 됐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이성을 잃고 아이를 방치한다. 방치된 이 아이의 이름은 헤어튼 언쇼이다.

  여러 해가 지나, 캐서린은 애드거와 결혼하여 린튼 부인으로 드러시크로스 농장에서 살게 됐다. 그들은 서로의 비위를 맞추며 나름대로 행복한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히스클리프가 돌아왔다. 그는 교양을 갖추고 많은 돈을 벌었으며 훤칠한 외모의 사내가 되어 돌아왔다. 그는 부유한 재산으로 술과 도박에 빠진 힌들리의 농장과 재산 모든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복수를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도 여전히 캐서린만을 사랑했기에 끊임없이 드러시크로스 농장을 들락거렸으며, 캐서린 역시 그를 무척이나 반겼다.

  남편인 에드거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그의 여동생인 이사벨라는 히스클리프를 사랑하게 된다. 히스클리프는 이사벨라를 전혀 사랑하지 않았지만 에드거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이사벨라를 꾀어 도주한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가 떠남에 다시 열병이 도져 앓아눕게 된다. 캐서린의 병세가 악화돼 갈 때쯤 히스클리프와 이사벨라는 혼인한 채로 돌아온다. 히스클리프는 죽어가는 캐서린과 사랑을 확인하며 정열적인 재회를 한다. 그렇게 캐서린은 딸을 출산함과 동시에 사망하게 된다. 에드거 린튼은 딸의 이름을 어머니와 같은 캐서린 린튼으로 지어주며 사랑으로 키운다. 히스클리프는 한동안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지냈다. 그 기회를 틈타 이사벨라는 자신을 방치하고 학대하던 히스클리프로부터 도주하여 런던으로 간다. 그 곳에서 그녀는 그의 아이 린튼을 낳게 된다.

  에드거와 달리 아내를 잃은 뒤 나날이 난폭하게 변해간 힌들리는 술에 취해 자신의 자식마저 죽일 뻔 한다. 무의식적인 반사작용으로 히스클리프는 힌들리 손에서 떨어지는 헤어튼을 구해주게 된다. 힌들리가 아버지의 역할을 못하자 히스클리프는 헤어튼의 아버지 역할을 자진했다. 그러나 이는 힌들리에 대한 복수였다. 히스클리프는 헤어튼이 타고난 성품과 기량이 뛰어났음을 알고도 가르치지 않았고 무식한 목동처럼 키운다. 못된 욕지거리를 내뱉을 땐 나무라지 않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할 때는 칭찬을 일삼았다.

결국 힌들리는 병으로 죽게 되고, 워더링 하이츠는 완벽한 히스클리프의 것이 된다. 히스클리프의 아내인 이사벨라는 린튼이 12살 되던 해에 타지에서 병으로 죽게 된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아들이 아버지이자 잔혹한 악마 히스클리프 손에 넘어가게 될까 걱정됐던 이사벨라는 의절한 자신의 오빠 에드거에게 편지를 남겨 린튼을 맡아줄 것을 부탁했다. 에드거는 곧바로 조카 린튼을 드러시크로스로 데려와 캐서린과 함께 키우려했지만, 이를 눈치 챈 히스클리프가 자신의 아들을 도착한 다음날 바로 데려간다.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아들 역시 무심히 대했다. 오히려 자신의 모습보다는 증오해마지않는 린튼가의 모습을 더 빼다 박았다며 헤어튼 보다도 꼴보기 싫어했다.

  그가 자신의 아들인 린튼을 거둬들인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자신의 아들을 에드거 린튼의 딸과 혼인을 하게 만들어 린튼가의 농장과 재산까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때문에 히스클리프는 끊임없이 캐서린과 린튼을 만나게 하여 두 소년 소녀가 서로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나중에는 자신의 아들이 병으로 죽어감에도 아랑곳 않고 캐서린을 꾀어내도록 궁지에 몰았다. 또한 에드거 린튼과 자신의 아들인 린튼이 비슷한 시기에 함께 오늘 내일 하는 것을 보고는 조바심이 나 캐서린을 납치하기에 이른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캐서린은 다 죽어가는 린튼을 신랑으로 맞이하고 악에 바쳐 아버지에게로 돌아간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자마자 캐서린은 다시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가야 했다.

  이로써 린튼가의 재산까지 손에 넣는데 성공한 히스클리프는 이제 쓸모가 없어진 자신의 아들 린튼과 캐서린을 벌레보다도 못한 취급을 하게 된다. 린튼은 얼마가지 않아 병으로 죽게 되었고, 캐서린은 젊은 과부로 워더링 하이츠에서 지내게 됐다. 툭하면 자신에게 손찌검을 해대는 히스클리프와 거친 성미의 헤어튼, 저주를 일삼는 하인 조셉, 이 세 남자들 틈에서 캐서린 역시 방어적이고 교양 따위는 잊어버린 채 독에 차서 살아간다. 그나마 헤어튼은 캐서린에게 호감을 사고자 호의를 베풀곤 했는데 그때마다 캐서린은 그의 무식함을 경멸하며 방어적으로 응대했다. 헤어튼은 글공부를 시작함으로써 캐서린에게 인정받고자 했지만 그 역시도 수치스러움만 안고 끝났고 이로써 헤어튼은 화가나 그녀의 호감을 사려던 행동을 그만둔다.

  헤어튼의 화난 모습에 캐서린은 그가 진심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과를 건네며 직접 글을 가르쳐주기로 한다. 젊은 두 남녀는 오해의 벽을 넘어서 진심을 확인하고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 둘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처벌했을 히스클리프는 캐서린 언쇼에 대한 병적인 그리움으로 기력이 쇠한 상태였다. 캐서린의 영혼을 찾기 위해 정처 없이 밖을 떠돌다 워더링 하이츠로 돌아온 어느 날, 다정히 한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 캐서린 린튼과 헤어튼 언쇼를 보며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는 헤어튼에게서 캐서린을 사랑하던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또 헤어튼의 얼굴이 캐서린과 많이 닮았기에 더욱 고통스러워한다. 그 이후로 그는 캐서린에 대한 기억과 추억에 잠겨 나흘간 음식을 먹지 않았고 끝내 죽음을 맞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캐서린과 함께할 수 있음에 입가에 환한 미소를 띠고 죽었다.

  이 지방에는 사람들이 폭풍처럼 정열적인 삶을 살다 죽은 후 무덤 속에 들면 무덤 속에서도 편안히 누워 있지 못한다는 전설이 있다.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히스클리프가 죽은 후에도 종종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영혼을 본 것 같다고 한다.

<인상 깊은 구절>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틀림없이 너 나 할 거 없이 누구나 자기를 넘어선 자기가 있고 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법이야. 나라는 존재가 오로지 나에게만 국한된다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어디에 있겠느냐 말야. 이 세상에서 나의 큰 비참함은 히스클리프의 비참함이었어. 나는 처음부터 그 불행의 각 품목을 지켜보고 느꼈어. 삶에서 내 머릿속을 전적으로 차지하고 있는 것은 히스클리프야. 다른 것이 모두 없어져도 히스클리프만 남는다면 나는 계속 살아갈 테지만, 다른 모든 것이 남고 그가 사라진다면 이 우주는 지독히 낯선 곳이 될거야. 나는 우주의 일부로 보이지 않을 거고. 넬리, 나는 히스클리프야. 그는 늘 내 마음속에 있어. 나 자신이 내게 늘 즐거운 존재가 아니듯 그가 즐거운 존재로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로서 내 마음속에 있는 거야.” _ 이는 캐서린이 에드거의 청혼을 받은 날 밤 넬리에게 토로한 말이다. 불행히도 히스클리프는 이 전의 자신을 비참하게 만드는 말만 듣고 떠났기 때문에 이 말은 듣지 못했다.


린튼의 무덤을 파고 있던 묘지기더러 캐서린의 관 뚜껑 위에 덮인 흙을 치우라고 하고 나서 내가 직접 뚜껑을 열어봤는데, 그녀의 얼굴을 보니…… 아직도 옛날 그대로였어. 거기 함께 누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 ……내가 거기 묻히게 되면 그녀의 관 한쪽을 뜯어버리고 내 것도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해두었어.” _ 이는 히스클리프가 캐서린을 그리워하는 마음에 정처 없이 떠돌고 돌아온 밤 넬리에게 건넨 말이다. 캐서린을 향한 히스클리프의 사랑이 얼마나 광적이고 지독한 것인지 알려준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은 후에>

   종종 다른 독자들은 여자 주인공인 캐서린의 감정 변화에 주목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사랑하는 여자를 잃은 상황에 처한 세 남자 린튼, 언쇼와 히스클리프가 보인 각각 다른 반응에 더 흥미를 느꼈다. 린튼은 이별의 아픔을 딛고 아이를 돌보며 치유의 과정을 겪지만, 언쇼는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술과 도박에 빠져 망나니의 삶을 살게 된다. 주인공인 히스클리프는 더욱 더 독기를 품고 복수를 이어가는 광적인 면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사람이 인생을 살며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이자 절망적인 사건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상황을 각각의 캐릭터가 어떻게 겪어내는 지를 매우 대조적으로 잘 풀어낸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히스클리프를 데려온 언쇼부터 케서린, 헤어튼까지 무려 3대를 걸친 사랑 이야기가 책 속의  세계관을 더욱 더 견고하게 만들어주어 독자로써 매우 몰입하기 쉬웠다. 초반에는 쉽게 인지되지 않는 등장 인물 간의 관계들과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화자의 변화 등의  이유로 쉽게 몰입되지 않는 책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한 번 인지의 장벽을 넘어선 후에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빠져들게 된 흡입력 있는 소설이다.   


모두 거짓말을 한다 (구글 트렌드로 밝혀낸 충격적인 인간의 욕망)

 책을 읽었다가 안 읽었다. 주로 통학시간에 책을 읽었던 나는 코로나19 사태로 없어진 통학시간이 독서를 하지 않을 이유가 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개강 이후 바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독서를 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강의를 듣는 시간, 과제를 하는 시간, 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24라는 숫자는 여전히 컸다. 쇼핑을 했다. 20만원이 넘는 금액을 결제하고도 계속 소셜 커머스 어플에서 ‘볼 거리’를 찾고 ‘살 거리’를 아이쇼핑했다. SNS에 접속하는 시간이 늘었다. 멈춘 타임라인이 시시해 어플을 종료했음에도 습관적으로 똑같은 어플을 실행시키는 나도 있었다. 매일매일이 똑같았다. 그러다 봤다. 사람들이 다 거짓말을 한댄다. 오바마 당선 이후 KKK를 검색한 사람들이 더 많아졌댄다. 호기심이 일었다.
 데이터로 말했다. 작가는 빅데이터로 어떤 연구를 했는지, 빅데이터와 스몰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했다. 호기심에 읽기 시작한 책은 내가 궁금한 줄도 몰랐던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맥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거짓말을 하지만, 구글 검색창 앞에서는 솔직해진다.’ 구글은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 중 하나다. 수십 억의 사람들이 갖는 궁금한 내용이나, 말할 수는 없지만 한 번쯤 찾아보는 내용을 구글 검색창에 입력한다. 사람들은 연인이 문자메시지에 빠르게 답장을 하지 않는 이유를 검색한다. 연인이 관계를 원하지 않는 이유를 검색한다.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묻는다. 연인이 문자메시지에 빠르게 답장을 하지 않는 이유를.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묻지 않는다. 연인이 자신과의 관계를 원하지 않는 이유를. 또 남편이 동성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고백의 해답을. 작가가 ‘사람들이 구글 검색창 앞에서 솔직해진다’고 말한 이유는 이것 때문인 듯하다. 사람이 사람들에게 거짓을 말할 유인(incentive)은 많지만, 구글 검색창에 입력할 문구를 고를 때 거짓을 검색할 유인은 상대적으로 적거나 없기 때문이다.
 책이 말하는 데이터를 가공해 분석한 여러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결론을 기다렸다. 3부로 나뉘는 여러 가지의 이야기들은 호기심을 흥미로 바꾸기에 충분했고, 흥미는 결론까지 읽게 하는 유인이 되었다. 빅데이터로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작가가 분석해 보여준 연구들도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 책의 결론이었다. “나는 이 책을 적절한 방법으로 끚맺을 것이다. 데이터에 따라서, 사람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행동에 따라서 말이다. 나는 친구들과 맥주를 한잔하고 이 망할 결론을 그만 쓸 것이다. 빅데이터가 말하길 여기까지 읽고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니까.” 작가는 이렇게 썼다. 빅데이터에 관한 책을 어떻게 끚맺을지 고민하던 작가가 내리기에 매우 적절한 결론이어서 그랬을까, 책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망할’이라는 표현이 있어서 그랬을까 책을 읽은 지 며칠 지난 지금도 작가가 이 결론에서 보여준 빅데이터의 유쾌함은 남아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며 얼만큼의 거짓말을 했을까? 내가 알지 못하는 새 했던 거짓말과 나를 그럴싸하게 포장하기 위해 했던 거짓말들은 어떤 데이터가 되어 나를 나타낼지 궁금하다.

창조 바이러스 H2C (홈플러스그룹 이승한 회장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책을 접하게 된 계기

처음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던 계기는 한창 생각의 전환 같은 것과 나 자신에게 무엇인가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을 만한 책이 필요할 때에 접하게 되었다.

책의 겉표지를 보고나서 책읽기 싫어하는 나였지만, 나도 모르게 책을 집어들었다.

무심코 그냥 흥미에 집어든 책이었지만,이 책을 통해서 나의 생각이 조금 바뀌게 된 것 같다.

책의 책표지를 절묘하게 육각형모양으로 얼굴을 가려놔서 어떻게 생기신 분일까 더 많이 궁금해서 얼른 넘겨보았었다.

역시 이런 부분이 다른 책들과 달라서 나에게 어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넘겨서 프롤로그와 목차를 보고나니 난 더욱 더 이 책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벌집으로 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이신 이승한 회장님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홈플러스에 다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었다.

홈플러스는 나에게 어릴 적부터 가장 많이 이용하고 또 즐겨 찾아서 그런지 내게는 좋은 기억으로 많이 남아있었다.

매장 밖에 쉼터도 있고 어린이와 성인들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과 이벤트들 그리고 홈플러스 곳곳의 편의시설들과 사용자들에게 맞추어진 점포들의 위치와 각도등 이러한 모든 마케팅이 저자의 경영철학에 녹아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고 섬세하였다.

조그마한 부분에서도 치밀하였고, 경영체계, 기업문화가 이웃과 사회에 기여해야한다는 생각등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까지 생각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다시한번 깨닫게 될 정도였었다.

생각 보다 루즈하지 않았고, 재미와 공감 그리고 도전 등을 논스톱으로 빠르게 전개해주었다.

책을 거의 다 읽어가니 책 제목인 창조바이러스는 저자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이라고 생각되었다.

무의미한 창조성만을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무슨 일 맡거나 시작하면 반드시 결과를 만들어내겠다는 그 만의 확고한 결심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창조적인 발상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열정이 창조의 도화선같이 불꽃이 되어 그러한 능력이 터져나왔다고 생각되었다.

책의 내용중에 공통점은 기존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두려워 하지 마음으로 모든 대상을 바라보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남들과는 차별화 된 생각으로 그가 가진 열정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굳은 마음이 있었기에 이런 것들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해보았다.

정말 자신에게 처해지는 사건들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더 맞받아쳐서 현명하게 대처하는 모습에 감탄이 터져 나왔다.

여기서 내가 가장 인상깊었고 본받고 싶었던 것은 어떠한 위기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절망을 희망과 기회로 바꿀 수 있었던 강한 의지에서 내가 반했던 것이 아니였나싶다.

끝으로 나 또한 앞으로 위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나에게 닥친 상황에 당황해하지말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상자 밖에서 생각을 하듯이 다양한 사고로 기회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신에게 믿음이 없고 항상 축쳐져 있는 사람들과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바우하우스

독서 아카데이 2차 수업 시작은 에게 해 문명이였다. 이 문명은 유럽문화 형성을 위한 첫 단추로써 바다를 통해 여러 나라들과 무역을 통해 융통성있는 자유로운 문화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의 예시로 그리스의 미노스문명이다. 이 문명 역시 에게 해 문명과 같이 해양 문화에 영향을 받아 유적들을 보면 벽화에 자유로운 모습들과 여성들을 자유분방한 머리 스타일을 볼 수 있다. 더욱 놀랐던 점은 파르테론 신전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이루어졌다는 점과 우리나라의 덕수궁 ‘석조전’이 파르테론 신전에 영감을 받아 지어졌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지난 시간에 배웠던 내용처럼 문명들은 다른 문명들과 융합하게되어 그 나라의 문화에 맞춰 새롭게 탄생한다는 것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역사수업을 들었을 당시에 아치형은 로마문명에서 많이 볼 수있어 로마인들이 최초로 만들어 낸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그리스와 이집트인들이 최초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들은 아치형모형이 단지 밉다는 이유로 사용을 안했다는 것이 너무나 웃겼다. 이때부터 문명별로 추구하는 미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로 놀라웠던 챕터는 비잔틴 양식이였다. 이태리에서 성당에 화려한 패턴을 서로 엮어 모자이크 양식을 바닥이 아닌 천장에 장식하였다. 사실 유럽여행하면 4분의3은 성당에 많이 방문한다고 들었다. 이 자료화면들을 접하기전에는 바깥모습만 봐서 그런지 구경거리가 없다고 생각하였는데 성당 내부를 보고나선 생각이 바뀌었다. 화려하고 패턴들과 많은 양식으로 이루어진 성당은 내눈을 사로잡았고 너무나 웅장하다고 느껴졌다. 또, 스테인드 글라스에 햇빛이 투시되는 모습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다. 특히 이번수업을 통해 중세시대의 인테리어와 데코레이션에 너무나 매력을 느꼈고 훗날 내 집을 갖게 된다면 모자이크 양식으로 인테리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여행을 하고 싶을 정도로 너무나 매력적인 내용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유럽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의 특색을 볼 수있도록 여행을 주제로 하여 새로운 독서 아카데미 수업을 듣고 싶다.

바우하우스

 이번 2회차 강의에서는 정치, 역사, 경제, 생활적으로 건축양식과 문화가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하여 시간순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문명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어떠한 이유로 변화해왔는지 등에 대해 분석해보고 그에따른 디자인을 살펴보면서 건축양식이나 디자인에서 그치지 않고 전반적인 그 시대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 시대에서는 쓰지 않던 아치형의 건축 양식이 어째서 로마시대에서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리스의 문화가 로마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 로마 문명이 어떠한 이유로 사라지게 되었는지 등 흐름을 따라가며 문화에 대해 알아보다보니 그냥 그 시대의 문화에대해 외우는 것 보다 훨씬 수월하게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번에도 그저 그 시절의 문화를 알아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 문화가 지금까지 어떻게 내려오는지, 그 문화가 지금은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고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등에 대해서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러한 문명의 변화를 이해하기 쉽게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였던 것 같다. 로마의 실용주의가 어떤것을 버리고 어떤것을 취하게 되었는지, 기독교 양식이 어떤 양상을 띄었으며 왜 암흑시대라 불리게 되었는지, 등등 여러가지 문화적 토픽을 여러가지 요소들과 연관지어 유기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어 생각의 폭이 더더욱 넓어진 것 같다고 느꼈다.
 위 강의를 통해서 이제 어떤 문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를 어떻게 나의 디자인에 접목시킬지 등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디자인과 문화에 대한 강의가 많아졌으면 좋겠고 다음에는 지금의 디자인에 그동안 과거의 문명들이 어떠한 영향을 끼쳤고 어떠한 요소에서 이를 찾을 수 있는지에 대하여 좀 더 깊게 살펴볼 수 있는 강의가 생기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책 속 내용이 아니어도 위 내용과 관련된 시청각 자료가 있다면 같이 활용하면 강의의 내용이 더욱 풍성해지고 이해하기 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음에도 이러한 유익한 수업을 또 듣게 되면 좋을 것 같다.

바우하우스

   이번에 배움에 있어 근원을 알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유럽 예술의 근원인 에게 문명, 그리스 로마 문명 등의 특징에 대해서는 많이 배웠었다. 그러나 우리와 관계없을 것 같았던 로마와 비슷한점인 현세주의, 인생주의, 허무주의 등 이런 측면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건축물의 역사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파르테논 신전이 바닥면이 직선이 아니고 곡선이다는 점과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과 지붕의 구조가 다른 나라에도 퍼져 있고 유럽과 멀리떨어져 있는 우리나라까지 전파가 된 것을 볼 수 있었다. 로마에서는 그리스와는 다른  실용주의와 향락의 집합체인 콜로세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지만 원래 구조와 차양막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콜로세움의 층별 다른 양식의 기둥을 쓴 것을 보며 국제적인 특성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로마의 목욕탕에서도 온돌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 매우 신기했다. 온돌이 우리만의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한다 느꼈다. 한편으로는 문화라는게 더 많이 향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발전시켜왔기에 존재한다는 점도 생각해봤다.
기독교의 건축물에서 성당에 왜 벽화가 많은가에 대해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단지 성당이라서 혹은 신성한 곳이라고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강의를 통해서 당시 사람들이 문맹이라서 라는 현실적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에 종이를 구하기 힘들었겠구나 생각이 났다. 허구적(?) 믿음을 전하는데 예술은 중요하다. 중세의 고딕이 고스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딕이라 생각하면 뾰족하고 깊은 신앙의식을 담고 있을 것 같은데 켈트족을 비하하는 의미로 어둡고 반항적인 것을 이른다고 한다. 언어란 표면적인 것만 생각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중세의 성당이 몇 백년동안 지어지면서 건축의 유행 변화에도 민감하게 작용이 된 것 같다. 고딕의 대표건축물로 노트르담 대성당이 초기 고딕양식 부터 후기 고딕양식을 가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금은 약간 불타서 소실되었지만 현대의 건축기술을 담아서 고딕의  재해석을 해보지 않을 까 생각한다.
예술은 원본을 추구할 수 없는 것 같다.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원하지만 완전 새로운 것에 대해서 많은 괴리감을 느끼고 그에 대해서 거부를 한다. 그래서 그런 괴리를 줄이고자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혹은 새롭다고 느낄만한 것을 모방하며 작품을 만들어 낸다. 그런 것이 우리 주변에 많이 퍼져 있다.  사람의 시각은 비슷하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저번에도 언급한 부분이라 느끼지만 사람들 눈에 좋아보이고 예뻐보이는 것은 지켜나가고 싶어한다. 물론 내가 가질 수 없으면 망가트릴 거야 라는 이유로 망가졌던 작품도 있고 망가트리라고 했던 사람도 있다. 우리는 지켜나가고 더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아직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보호하고 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어나가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바우하우스

 요즘의 뉴스들은 항상 미래를 이야기한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A.I 등등 .. 우리가 어디를 향해 바라보고 나아가야 하는 지, 미래 사회는 얼마나 발달된 기술이 적용이 될 것인 지 말한다. 마치 미래만이 정답이고 방향인 것 처럼. 하지만 우리는 잠깐 뒤를 돌아보며 무엇을 놓치도 있었는 지 살펴봐야할 필요가 있다. 이번 독서아카데미의 큰 주제인 문명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디자인은 먼 옛날 호모사피엔스부터 시작하여 중세시대까지 그들 속 기술의 발전, 디자인의 발전을 이야기한다. 인류의 역사는 곧 디자인의 역사라는 이야기를 하며 호모사피엔스의 인지혁명은 생물학적 진화의 궤도에서 벗어난 이유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렇게 문화적 진화는 호모사피엔스를 이전 다른 인류들을 제치고 지금까지 살아있게 하는 이유이다. 특히 영상 속 그리스의 문화를 보면서 문화적 진화가 뚜렷하게 나타난 지역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믿는 신앙을 위해 신전을 만들고 심지어 이 순간까지 놀라움을 자아내는 완벽함과 위대함이 담긴 디자인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하나의 디테일도 허투루 지어진 것이 없으며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의 관점을 계산하여 만드는 노력이 인상깊었다. 이런 디자인의 발전을 보면서 하나의 질문이 떠올랐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을까? 흔히 말하는 디자인은 멋지게 그려낸 예술 작품, 패션보다 더 나아가 일반성,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항상 마주치는 건축물, 인테리어, 패션 등 누구나 접근 가능한 공간에서 그 시대정신, 문화를 담아낸 디자인이 나타나왔으며 지금까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때 기독교를 향한 신앙심이 높아지고 현세뿐만 아니라 내세를 믿는 사람들은 더 이상 멋진 건축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현상으로 문화 반달리즘, 거꾸로 가는 문명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였다. 이렇게 다양한 문명, 문화가 디자인을 변화하는 사례들을 살펴보면서 현재 외치는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의 미래 속 건축물, 인테리어과 같은 디자인은 어떤 모습일 지 궁금해진다. 

바우하우스

 저번 강연에 이어 두 번째 강연 역시 흥미롭고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다. 첫 번째로 놀라웠던 점은 파르테논 신전은 직선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편집증적 착시 교정으로, 만약 직선으로 건축물을 짓는다면 오히려 건물이 휘어 보여 그리스인들은 그것까지 감안하여 처음부터 파르테논 신전을 직선으로 짓지 않았다. 신전을 건축할 때 형태미를 중요시한 그리스인들은, 완벽하고 이상적인 건축 형태의 표현을 위해, 착시현상을 교정하는 기법들을 동원하여 파르테논 신전을 지었던 것이었다. 지혜롭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파르테논 신전은, 빌라 로톤다로, 백악관으로, 석조전으로 변종되었다. 저번 영상에서도 그랬지만, 하나의 건축물이나 미술작품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살을 붙이며 더 멋진 작품으로 탄생한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가슴이 벅찼다. 과거의 문명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증거이니 말이다. 또 한가지 흥미롭게 봤던 점은 교수님께서 “이보다 더 우아한 의자는 없었다”라고 말씀하시며 클리스모스(Klismos)의자를 설명하신 점이었다. 클리스모스 의자는 나도 알고 있던 의자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클리스모스 의자를 알고 있다기보단, 클리스모스 의자의 디자인이 꽤 눈에 익은 디자인이어서 영상에 나왔을 때 더 반가웠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 의자 다리 모양대로 선을 따라 그려주셔서 그림 속 의자의 디자인을 한눈에 알 수 있어 좋았다. 강연을 통해 알게 된 많은 내용이 흥미로웠지만, 또 하나 생각나는 건 ‘로마인들이 아치 구조를 최초로 발명했다고?’라는 질문에 대한 내용이었다. 넓은 개구부를 구조적으로 연결하는 아치의 사용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도 알려진 방법이었다. 하지만 이들 문명에게 있어서 아치는 아름다운 기준에 미달하는 실용적 기술에 불과한 방법이기에 아치 구조를 한정된 곳에만 사용했었다. 이에 반해 로마인들은 건축물의 내부 공간을 만드는데 아치의 잠재력을 적용하고 멋진 건축물을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로마 문명의 정체성이 실용주의라는 것이 한몫했을 것이다. 
 이렇게 강연을 모두 보고 나니 다양한 역사 속에 들어갔다 나온 기분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으로 강연을 들었지만, 오프라인 강연만큼의 퀄리티로, 매우 열심히 들었다. 다음에도 독서 아카데미를 한다면, 저번 리뷰에서 말했듯이 성선설, 성악설 등 인간의 본성에 관한 내용에 대해 다루면 재미있게 들을 것 같다.

바우하우스

‘테마가 있는 독서 아카데미’ 1회차를 마무리하고 2회차를 이어 듣게 되었다. 2회차에서도 1회차와 마찬가지로 세계사를 바탕으로 그 과정에서 탄생하고 발전하게 된 건축물이나 물건 등의 디자인에 대해 소개한다. 개인적으로 1회차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이집트’와 관련된 디자인이라고 한다면, 2회차는 ‘그리스, 로마’가 기억에 남을, 이야기의 중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중심이 유럽의 건축물인 만큼, 교과서 등에서 만이 접했던 건물들이 많이 보인 것 같아 흥미를 더했다. 첫번째로 언급이 된 것은 역시 그리스 신전이었는데, 신전을 멀리서 찍은 것 같은 사진들만 여지껏 접하다가 사람이 안에 있는 사진을 이번에 처음 보게 되었다. 그리고 사람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신전의 기둥들에 크게 놀랐다. 어떻게 이러한 건축물을 그 옛날에 지을 수 있었던 걸까 하는 의문이 드는 와중에, 신의 위압감, 인외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그렇게 거대한 기둥을 세우고 했다는 것을 곧 이어 듣게 되었는데, 건축물들은 얼마나 치밀하게 설계되어 만들어지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떠올랐다. 
이어 언급된 것은 ‘로마’의 건축물이었는데, 그리스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과 대비해 로마의 실용주의를 듣게 되었다. 물론 로마의 건물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들에 대한 감상을 덮을 만큼 실용주의에 대한 인상이 아주 깊게 남았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콜로세움은 오로지 시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역할이기 때문에 실용성을 따져 콘크리트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어 언급된 로마의 신전은 그리스의 신전에 돔 형식의 건축물을 이어붙인 것이었다. 아무리 실용주의라지만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콘크리트를 활용하는 것이라던가 아치형 구조를 사용하는 것 등을 남겼다는 점에서 분명히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에 기독교와 관련하여 나타나게 된 건축양식, 문양이나 장식 등 다양한 것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과거의 것들이 생각보다 많이 현재에 등장하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아주 먼 옛날에 등장한 것인데도 우리는 그것들을 그대로 또는 각색하여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것을 보며 가깝지만 전공자들의 영역이라는 생각에 감히 시도해보지도 않았던 디자인에 한 번쯤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 ‘테마가 있는 독서 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통해 디자인이라는 것에 느끼고 있던 막연한 벽을 조금 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상상하고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아주 흥미로운 프로그램이었고 다음에 이와 비슷한 강의가 또 열리게 되어 참여할 수 있게 된다면 매우 좋을 것 같다. 

바우하우스

바우하우스를 읽고-2
책에서는 다양한 고대 문명들의 디자인 특성에 대해 알려준다.  유럽 문명중 하나였던  미노스 문명의 크노소스 궁전은 아름답지만 중심이 되는 권위적인 건물이 없다. 이것은 지배가 아닌 타협과 공동체 문화가 발전한 당시의 특성이 디자인으로 발현된 것이다. 그리스 문명의 파르테논 신전은 신전이기에 상징성과 완벽을 나타내는 형태미가 중요했다. 그리 보이게 하기 위해서 심지어 실제로는 완벽한 직선형태가 아니지만 인간의 눈에 그렇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 어느정도 굴절을 가해서 만들어 졌다. 그 파르테논 신전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건물은 미국의 백악관등 셀수없이 많다. 어릴 때 그리스로마신화같은 만화책을 보거나 그런 배경을 가진 게임을 하면 신전은 저기 위 고고한곳에 지어져있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아크로폴리스와같은 신전도시는 높은곳에 지어져서 방위가 용이한 장점을 지니고, 고고한 신전의 자태를 가지게하는 특징도 가지고 있다. 그리스 문명이 쇠퇴하고 일어난 로마 문명을 볼때, 그리스 문명과 같은  미학은 없지만, 정복자들인 그들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내어 기술력과 혁신, 공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수로와 하수도, 공중목욕탕 등 규모가 큰 토목공사가 일어났으며 아치, 볼트, 돔과 같은 건축요소가 이용되었다. 하지만 로마에서 그러한 종류의 건축만 있던것은 아니다. 기독교가 들어오기전 다신교를 가졌던 로마는 판테온이란 신전을 지었는데, 이것은 창의적 구조와 기하학적인 미를 매우 충족시킨 건물이었다. 지붕이 돔으로 되어 있는데, 천장 중심에 있는 원형구멍으로 부터 햇빛이 들어와서 신비함을 더했다. 그리고 카라칼라라는 공중목욕탕은 단순히 목욕탕을 넘어서 기능적인 부분을 무한으로 확장하였다. 이곳에서 사교활동이 가능함은  물론 체육관과 음악당, 도서관 과 음식점이 있었고, 열탕또한 존재했다. 여기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문화 반달리즘으로 어느정도 디자인이 침체되었지만, 기독교의 건물로 새로운 디자인 양식이 생겨나고  더욱 발전하였다. 고딕양식, 바로크양식, 비잔틴 양식이 생겨나었고, 선/악 신/이단을 넘어선 새로운 양식이 탄생하는 계기의 발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