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글씨 (문예세계문학선 12)
‘주홍글씨’는 ‘미국 문학사에서 영원히 움직일 수 없는 고전’으로 높이 평가 받는 작품이다. 그러한 작품으로 평가 받으려면 당시 시대 상황이 이야기에 잘 반영되어야 하며, 잘 짜인 플롯에 등장인물의 성격이 개연성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뛰어난 스토리텔링은 당연하다. 주홍글씨는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작품이다. 특히 당시 시대 상황에 대한 반영이 놀라울 정도였다. 이 책을 읽음으로써 이 시대에 대한 배경을 온전히 알 수 있었다.
이 시대에는 청교도 정신이 매우 엄격하게 지켜지던 시기였고, 신앙주의자나 퀘이커교도와 같은 타종교의 배척이 매우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마녀가 단두에 오른다는 것에서 마녀사냥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불륜의 죄를 저지른 헤스터의 이마에 낙인을 찍으라는 등의 말을 하고 그녀를 공개적으로 구경거리로 만들어 수치를 주고 그녀가 만약 사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형벌이 엄하다고 안하고 그녀의 죽음을 지켜보겠다고 할 정도로 청교도 사상이 엄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작가가 기독교적인 요소를 작품에 집어넣었다고 볼 수 있는 부분 중 인상깊었던 부분은 칠링워스가 딤즈데일 목사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A’를 본 장면이었다. 이 때 칠링워스는 사탄과 같은 모습으로 변모하는 태도를 보인다. 작품에서 사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칠링워스와 비교하는 것을 보며 칠링워스가 악인임을 여실히 나타낸다. 또한 헤스터의 딸인 ’펄‘은 천사, 혹은 하나님의 종으로 비유된다고 생각한다. 펄은 헤스터가 자신의 죄를 잊으려 가슴에 붙어있는 죄의 상징인 ’A’를 떼어 버리면 악을 쓰며 다시 가져오라고 소리를 지른다. 또한 헤스터와 함께 불륜을 저지른 딤즈데일 목사의 손을 잡은 뒤 손을 씻는 등의 행동을 보이는데 이는 죄를 저지른 자들이 그들의 죄를 잊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작가인 너새니얼 호손은 ‘주홍글씨’라는 한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다양한 주제와 의견을 전달해준다. 청교도인들의 말도 안 되는 엄격함에 대한 비판과, 인간의 사랑에 대해서 응원을 하지만 부정한 사랑에 대한 비판도 동시에 이루어내고 있다.
채식주의자 (한강 연작소설,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
위대한 개츠비
위대한 게츠비는 한남자의 지고 지순한 한남자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데이지라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그녀는 이미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게츠비는 그녀를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저택을 마련해두고 그녀에게 언제든 원하는 것을 얻게 해줄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오해가 겹쳐서 결국에는 죽게 되었다. 한참 금주령이 심했던 시기였다. 게츠비는 검은 돈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사람이었다. 톰 뷰캐넌은 스포츠맨이자 부유한사람 이였다. 그는 데이지와 결혼을 했지만, 불륜을저지르게 된다. 소설의 끝에서 데이지는 톰뷰캐넌의 불륜녀를 차로 박아서 뺑소니를 친다. 하지만 개츠비는 자기가 모든 것을 뒤집어 쓰고 남편에게 죽임을 당한다.
개츠비는 순수한 사랑을 추구하는 그런사람이었을까? 개츠비는 심할정도로 데이지에게 뭐든 것을 다 주었다. 시대상은 쾌락과 방탄이 절정을 이루고 쾌락을 위해서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많은 것을 버리는 사회 자본주의 정점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가 위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시대에 그가 지고지순한 사랑을 해서일까? 그렇다. 방종과 방탄의 세상에 자신이 더러운 돈으로 자신의 사랑을 지키는것 과연 순수할까? 나는 잘 모르겠다. 여운이 많이 남는다. 작가가 학고싶은 말보다는 내생각에 집중하게 되는 책이다.
채식주의자 (한강 연작소설,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
작가의 문장력 덕분인지 혹은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읽기 거북한 내용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내용에 몰입할 수 있었다. 적나라하게 묘사된 남편의 폭력적인 행동, 형부의 이상성욕, 그리고 영혜의 삶이 피폐해져가는 과정 등을 통해 주인공이 처한 상황에 깊이 공감하고 사색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처음엔 독서 토론을 목적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되었고 이 책이 문학적으로 가지는 의미나 위치는 전혀 모르는 상태였으나, 책을 읽을수록 담담하게 비극적인 이야기를 토로하는 필자에 의해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하려 계속 노력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채식주의자들은 자신의 신념이나 식단 관리 등을 위해 채식주의자의 길을 택한다. 하지만 영혜는 꿈을 통해 생긴 트라우마 때문에 채식주의자가 되길 원했으며, 가족들은 이를 보고 영혜가 정신이상자가 되었다 말하며 폭력을 행사한다. 자의가 아님에도 채식주의자가 되었다는 이유로 폭력의 피해자가 된 영혜를 보면서 연민과 억울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영혜의 몽고반점을 보고 처제에게 성욕을 느끼는 형부에게서는 형용할 수 없는 거부감과 추악한 욕망 또한 엿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영혜가 정신병원에서 자신이 나무가 되어 가고 있다고 말하며 죽어가는 장면에선 알 수 없는 불쾌감을 느꼈다. “나무가 되어 가고 있다” 라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책에선 영혜가 실제로 식물이 되어가고 있는 듯한 묘사를 사용했다. 이것이 정확히 어떤 것을 상징하는지는 추측하기 어려웠으나, 짐작컨대 본인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는 영혜의 삶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싶다. 본인의 의지가 아닌 트라우마에 의해 채식주의자가 되었고, 이조차도 주변 인물들에 의해 부정당했으며, 형부에게 성적 폭력을 당한 것도 모자라 정신병원에 갇혀 죽어가는 자신의 삶에서 생명이 있음에도 스스로 움직이거나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 식물, 즉 나무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닐까. 결국 마지막으로 자의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 죽음이었다는 결말에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앞서 말한대로 거부감과 불쾌감을 잔뜩 안겨준 책이었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내용에 더욱 집중하고 영혜에게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위대한 개츠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비극적이지만, 우리에게 사회에서 장애에 대한 인식,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라 등의 교훈을 남겨준 책을 이렇게 접할 수 있었다는 것에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7년의 밤
쇼코의 미소 (최은영 소설)
제목 : 쇼코의 미소
날짜 : 2019.12.06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란 걸 알면서도, 몰입하고 공감하며 감정을 전달받는다. 그 과정에서 깨달음 혹은 카타르시스 등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얻게 되는데, 가끔 어떤 소설은 허구보다 현실에 가깝다. 현실에 지나치게 가까워 우리가 외면하던 감정들, 생각들을 비추고 날카롭게 파고든다. 쇼코의 미소가 그랬다. 우리의 감정이지만, 낯선 감정. 이기적이고, 냉철하며, 열등감 덩어리인 것들. 오히려 부끄럽게 하는 소설. 내가 쇼코의 미소를 읽고 느낀 건 그런 것이었다.
이 책을 구성하는 몇 가지 단편들은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한 점을 갖고 있다.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가 외면하는 감정과 생각들을 비춘다는 점. 또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리고 잊어가는 사건들을 재조명한다. 세월호, 민주화 운동 등이 그런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의 묘사와 표현은 날카롭다 못해 시리게 우리를 파고든다. 쇼코의 미소 중, 한 때 소중했던 쇼코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평하는 주인공. 순애 언니를 오랜만에 만나고 오히려 불편해하고 혐오하는 주인공.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하며 이제는 질린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
소설에 담긴 직설적인 메시지는 누군가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전달된다. 그리고 작가의 극히 사실적인 묘사와 표현으로 우리는 그 감정을 공유 받고 날카로운 메시지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자신이 좋아했던 언니를 오랜만에 만났지만, 상황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불편함이 싫어 회피했던 주인공. 자신이 힘들다며 연락하는 친구가 귀찮고 힘들었던 일을 떠올리며 공감했지만, 그게 정말 잘 한 걸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쇼코의 미소는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다룬다. 미카엘라에서는 세월호를 다루는데, 세월호 사건을 떠나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야기한다. 타인의 고통을 이애하고 공감하지 못한 채로 그저 귀찮고 더 듣기 싫다며 외면하는 모습은 과거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반드시 세월호가 아니더라도, 나 또한 어떤 일에 있어 내 일이 아니면 쉽게 외면하고 누군가 상처 받더라도 관심을 주지 않았으니까.
여러 단편이 수록되어 있지만, 결국 같은 말을 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더 이해할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담겨있다고 느꼈다. 자신의 삶이 힘들다고 남의 고통을 쉽게 말하고 외면하며 심지어는 언어로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하는 우리. 쇼코의 미소는 소설 속 내용을 떠나 우리에게 그런 아쉬움을 전한다. 나는 과연 잘 하고 있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