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책을 읽으며 한편에 비극을 본 기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함께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함께 늙어가는 것에 대한 행복을 느꼈다. 벤자민은 홀로 삶을 거꾸로 살았기 때문에 함께 할 사람이 없고 그러다보니 벤자민의 상황이나 마음을 이해해줄 사람도 없었다. 이 부분을 느끼며 차라리 모두가 삶을 거꾸로 살았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혼자만 거꾸로 시간이 흐르니까 모두 벤자민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태어나서는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늙어서는 아들과 아내의 사랑도 받지 못했다. 이러한 벤자민을 보며 나는 너무 슬펐다. 사람들이 주변에 있지만 정작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편으로는 벤자민에게 동정심이 들었지만 이러한 힘든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하고싶은 것을 이뤄 나가는 벤자민의 삶에 대한 태도는 배워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상황이 나빠도 벤자민은 꿋꿋하게 자신이 이루고자하는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 나갔다. 포기하지 않는 벤자민의 열정은 지금 대학생활을 하며 하고싶은 것을 찾고 실행해나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Me Before You (Paperback) (미 비포 유)
나는 미비포유를 읽으며 윌과 루이자가 만난 것에 대해 이중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루이자를 통해 행복함을 느끼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다행이라고 느끼면서도, 죽음을 준비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 자체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과연 윌은 루이자를 만나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때 죽기 전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기뻤을까, 아니면 절망 속에 피어난 행복이 그의 비극을 더욱 크게 만들었을까. 독자인 나는 루이자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그가 처한 상황의 절망이 더욱 크게 느껴지게 만들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때문에 나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고 힘이 되어 주었지만 결국 죽음을 택한 그의 선택이 이해가 간다. 설득하는 루이자를 두고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며 결국 죽음을 택한 윌을 통해 그가 견뎌낸 절망의 무게가 적나라하게 느껴져 그저 먹먹했다.
나는 미비포유라는 책을 두고 친구들과 토론을 하며 내가 느낀바가 나만 느낀 것이 아님을 느꼈다. 다들 윌의 선택에 가슴 아파 하면서도 그의 선택을 존중해주었다. 그는 충분히 고통 받았고 고통에서 해소될 권리가 있다는 점에 나는 크게 공감하였다. 물론 지혜처럼 존엄사는 도덕적 윤리를 해치는 일이란 의견에도 일부 공감한다. 하지만 도덕적 윤리라는 명분하에 개인의 고통과 선택을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비포유는 가슴 따뜻하면서도 먹먹한 이야기를 다루는 책 인 것 같다. 이 책은 나에게 죽음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친구들과 새로운 주제로 토론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이번활동을 통해 바쁜 학기 중에 친구들과 함께 잠시나마 책에 몰입해 가슴 따뜻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Me Before You (Paperback) (미 비포 유)
개인별 독서 클럽 활동 소감
황시연
우선 책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정말 재미있으면서도 생각해볼 것이 많았다. 책에서 윌은 루이자를 만나 행복해하면서도 더는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면서도 많이 안타까웠다. 당장 손만 다쳐도 생활이 불편한데, 그의 신체적 불편함은 말할 수 없이 힘들었을 것이다. 사고 이전에는 능력이나 다양한 활동에 있어서 거의 완벽한 그였던 만큼 사고 이후에 상실감이 훨씬 컸을 것 같다. 루이자를 만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평범한 포옹도 못해주는 자신이 더욱 비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루이자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행복하지만 힘든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가 존엄사를 준비하는 것을 알면서 그에 곁에 남아 그를 행복하게 해주려는 그녀의 모습이 정말 대단했다.
나는 책을 읽으며,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마무리할 권리가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너무 슬픈 선택인 것 같아 쉽게 동의하기가 어려웠다. 최근에 연예인의 자살이 기사로 올라온 적이 있었는데 정말 안타까웠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선택을 했는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고, 만약 나와 가까운 사람이 그런다면 나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고통인 사람에게 당신이 죽는다면 주변사람들이 힘들 것이니 더 살아봐라 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 사람의 인생이고 선택이기 때문에 존중해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다만 존엄사를 법적으로 허용해야 하는지는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볼 문제인 것 같다. 존엄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이것이 우리의 삶에 익숙해질수록 조금만 힘들어도 쉽게 죽으려는 태도를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책을 읽고 다양한 생각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다. 고등학교 이후로는 사실 시간을 내서 이러한 활동을 하기가 힘들었는데, 이번 독서 클럽 활동으로 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는 누구나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했는데 막상 친구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같은 것을 보아도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의 의견은 모두 조금씩 달랐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도 같이 들으니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해가 됐다.
대학교를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정말 세상에 이상한 사람 많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많은 사람과 만날 수록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시간은 점점 줄어들다보니 내 마음대로 사람들을 판단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번 토론을 통해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내가 생각한 것 만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겼다. 4회에 걸친 친구들과의 토론에서 오랜만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깊이 있게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아주 건강하고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잠시나마 지친 마음이 차분해지고 힐링되었다.
미 비포 유 (Me Before You)
미비포유
박주원
‘안락사’라는 키워드를 미리 알고 읽었던 책이라 무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내내 윌과 루이자의 모든 행동에 대한 마음이 깊게 와닿아서 누구를 욕 할 수가 없었다. 가장 깊게 와닿았던 장면은, 루이자가 윌을 자신만만하게 윌을 데리고 나간 첫 날인 경마장에 간 날이다. 사실 내 주변에는 사지마비환자가 없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레스토랑 직원의 행동 때문이다. 나는 현재 아르바이트를 하는 입장이라 레스토랑 직원에게도 이입이 됐다. 그러다보니 직원의 융통성 없던 행동도 욕을 할 수가 없어서 루이자의 절망감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 장면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다. 윌과 루이자의 입장이었다면 융통성 없이 원칙만따지고 고객을 돌려보낸 직원에게 분노를 느꼈겠지만 단지 일개 직원 입장이었다면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원망했을 것 같다. 윌의 성격이라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절망했을 것 같다. 집에가서 말이 없어진 그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을 안락사 해달라고 하면 나는 그것을 허락할, 거부할 권리가 없다. 나는 그의 삶을 살아보지 못했고, 그가 느껴왔을 감정을 알지 못 하기 때문에 함부로 왈가왈부 할 수 가없어서 그를 막지 못 하겠다. 현재 하는 대로 아주아주 세세한 절차를 거쳐서 그의 선택을 존중해주는 것(안락사를 허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미비포유는 많은 토론이 나왔던 유명한 책인데, 읽어 볼 생각을 못했다. 독서클럽활동을 통해 읽어보고 나의 인생 책 리스트에 오를 책 한권이 더 생겼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이번 독서클럽의 4주간의 활동은 너무나도 유익했다.
채식주의자 (한강 연작소설,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1. 사피엔스에게 상상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사피엔스에게 생각하는 능력이 없었다면 현존하는 인류는 당연히 사피엔스가 아니였을 것이며 인류의 발전 또한 더 진보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하는 능력으로 다른 종들과 차별화를 가졌던 사피엔스가 생각하는 능력을 갖지 못하였다면 어쩌면 다른 뛰어난 개체에 의해 인류가 사라져 버렸을 수 도 있을 것 같다. 만약에 인류가 계속 유지 되었어도 지금의 우리와의 생활 방식은 물론 인체 구조 또한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2. 농업이 사피엔스의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개선이라고 저자는 주장했다. 이에 대해 공감하는가?
농업이 사피엔스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었다는 것은 논리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물론 이전에 하지 않았던 농업에 대한 노동으로 인해 사피엔스가 더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문제를 주장하기 전에 농업 발달에 본질을 생각해보자. 농업을 발달시킨 이유는 사피엔스의 생존과 직결된다. 사피엔스는 식재료를 구하는 것이 쉬운 문제가 아니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농업을 발달시켜왔다. 농업 발달이 없었다면 아마 사피엔스의 생존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며 이는 농업으로 인한 삶의 힘들어짐 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한 안정이 확보되지 않은 삶에서 사피엔스들은 그들의 종, 즉 인류의 유지 및 발전에 힘쓸 수 있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3. 인류의 역사에 방향성은 있을까?
역사에 방향성은 없다고 주장한다. 수천 수만년에 걸쳐, 여러문화들이 모여 복합적인 문화가 생겨났다. 이렇게 생긴 복합적인 문화에 방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이전에 존재했던 작고 단순한 문화들에 대해 연관성 및 방향성이 일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과 반대되는 의견에는 인류가 거의 동일한 경제, 지정학, 법, 과학체제를 이루고 있다는 의견이있다. 하지만 이러한 규제의 모임들이 방향성을 설명할 수 있을까? 새로운 규제가 갑작스럽고 빠르게 등장해 인류에 스며든다면 어떨까? 이것이 기존에 존재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라면 우리는 이에 대한 방향성을 예측 및 해석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가 어떻게 새로 쓰여질지는 현재 체제로 해석을 하면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 하겠지만 체제라는 것이 언제 변화할지 모르고 언제까지 유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방향성은 없다고 생각한다.
4. 인간은 과학기술 혁명의 주체인가, 노예인가?
인간은 과학기술 혁명의 주체이다. 애초에 인간이 더 잘 살려고 개발한 과학기술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노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더욱 풍요롭고 나은 삶을 위해 개발한 과학기술에 대해 인간이 그것에 휘둘리는 것에 대해 노예라는 표현은 맞지 않다. 이렇게 인간은 과학기술 혁명의 노예다 라는 주장 또한 더 낫고 진보된 과학기술의 등장으로 충분히 무마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기술보다 훨씬 발전된 과학기술이 등장한다면 우리가 지금 느끼고 생각하는 이 문제점들은 하나 둘 없어져 나갈 것이며 결국엔 인간이 과학기술 혁명의 노예다 라는 생각 또한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 과학기술의 혁명은 인간에 있어 이전보다 훨씬 낫고 발전된 문화를 이끌었을 뿐 그것의 노예는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