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1학년 때 교양 수업인 삶과 꿈수업에서 주제 도서로 다뤄서 1학년이라면 필수로 모두 읽어야 했던 책이다. 나 역시도 작년에 수업을 위해 열심히 읽으려 했었지만, 실상 맡은 주제 범위를 제외하고는 제대로 정독하지 못해서 계속 아쉬움이 있었다. 20대라면 꼭 한 번 쯤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해서 호기심이 있기도 하였고, ‘사피엔스라는 지금의 를 포함한 전 인류의 서사에 대해 엄청난 두께로 서술한 그 책에 대한 약간의 학문적인 욕심이 생기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저런 핑계로 한참을 계속 미루던 와중에, 독서 클럽 공고를 보고 문득 다시 이 책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서론이 길지만 사실 이 책을 재미있게 읽지는 못했다. 작년에 부분적으로 볼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책의 내용이 쉬운 편은 아닌데다가 분량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베스트 셀러로 뽑혔던 만큼, 여유가 된다면 한 번쯤은 시간 내어 읽어볼 만하다. 우선 저자인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길었던 교육 과정동안 배워왔던 대부분의 상식들을 깨트려 버린다. 상식이라고 알아왔던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하여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준다.

이런 것의 예시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농사에 관련한 것이다. 우리는 농사는 인류 정착의 원인이자 인류 발전의 원인이라고 배워왔고, 또 지금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는 이러한 농사, 즉 농업혁명이 인류 최대의 사기라고 서술한다. 사피엔스는 유목민이었는데, 농업을 시작하면서 밭을 가꾸기 위해 정착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로 인한 노동때문에 삶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서술했다. 이런 저자의 설명을 읽으니 애초에 수렵 채집을 하던 유목민일 때는 필요한 만큼의 노동만 했지만, 정착을 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잉여 작물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추후에는 일종의 부의 기준이 되었다고 배운 것이 생각났다. 그 부를 축적하기 위해 노동의 강도가 필요 이상으로 높아지고, 따라서 삶의 질도 떨어지게 되었다고 연결지어 생각하니 이해가 잘 되어서 신기했다.

내가 나중에 혼자 따로 이 책을 읽어 볼 수도 있었겠지만, 독서 클럽이라는 형태를 통해 다른 사람과 의견을 나누면서 책을 읽음으로써 더 깊이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또한 나와 동등한 학생과만 의견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지도 교수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더 많은 지식을 나눌 수 있었고, 개인적인 진로와 책의 내용을 연결지어 볼 수도 있는 기회도 있어서 더 좋았다.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이번 19-2학기 독서클럽을 진행하며 나는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책을 읽었다.
자본주의 사회는 현재 대부분의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주었고 더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부는 다국적 거대 기업이나 금융기관, 소수의 부자들의 손에 넘어가 권력화되었고 이를 통해 그들은 더욱 많은 부를 독점했다.
장 지글러는 이 책을 통해 근본적으로 왜 세계의 가난이 사라지지 않는지, 왜 부는 한 쪽에만 치우져쳐 집중되며 부자들은 계속 잘 살고 가난한 이들은 왜 계속 가난한지 
직접적으로 과감하게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지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저자는 공산주의가 더 낫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아마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를 가진 사람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스스로 부를 나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할 지는 전혀 기대되지 않는다.
또한 장 지글러의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계속해서 읽으면서 거부감도 없지 않아 들었다. 저자의 생각이 너무 일방적이고 과격한 주장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했다.
읽고나서 매우 많은 생각을 들게끔 하는 책인 것 같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며 자본주의에 적응하고 익숙해져있는 우리의 모습이지만 정녕 자본주의가 어떠한 양면성을 가지는 모른 체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정작 자본주의 체체가 정확히 어떠한 시스템으로 구조되었고 돌아가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과연 자본주의가 옳은 것일까? 옳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책을 잃고나서도 끊임없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역시 마땅한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는다.
장 지글러도 책에서 자본주의을 끊임없이 비판하며 잘못된 부분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장 지글러 그 조차도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침표가 느낌표로, 그러나 느낌표는 다시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로 남아버렸다.
유토피아는 절대 실현할 수 없다. 유토피아는 그저 우리의 환상 그 자체이며, 환상으로 남기 때문에 유토피아는 완벽할 것이라고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조금 극단적인 말이지만, 아마도 세계의 가난은 앞으로도 사라지진 않을 것 같다.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책을 읽다 보면 가끔 이 책은 죽을 때까지 내 서가에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들을 만날 때가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아주 오랜만에 내가 그 책을 발견했음에 희열을 느꼈다. 사실 이 책이 도서관 서가에 꽂혀있는 것을 자주 봤었고, 흥미로운 제목을 보고 몇 번 들춰본 적도 있었지만, 읽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왜 지금까지 이 책을 모른 척 하고 지나갔을까 후회하게 만들 만큼 너무 좋아져 버렸다.
 이 책의 매력을 꼽자면 수도 없이 꼽을 수 있겠지만 형식이 아주 독특하다는 점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다. 건지 감자껍질 파이 북클럽은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로만 이루어져 있다. 등장인물들끼리 주고받는 편지로 책이 이루어져 있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읽다 보니 전혀 그런 걱정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편지로 등장인물의 성격과 캐릭터를 더욱 정확하고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시드니, 도스, 줄리엣, 등 각각 다른 성격을 가진 인물들의 편지를 읽고 있자면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짜 편지를 읽는 느낌이 든다. 마치 내가 편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러니 우리에게 익숙한 줄글 형태의 소설을 읽는 것 보다 인물들의 캐릭터 파악이 쉽고 재미있다. 또 인물들의 현재 상황과 그에 따른 감정을 아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내가 만난 지 10년이 넘은 초등학교 동창이 구구절절 써서 보낸 편지를 읽는다고 생각했을 때 푹 빠져서 읽는 것을 상상해 보면 그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400여 페이지의 편지를 읽어야 하다 보니 지치는 감도 있었다. 편지는 개인적이면서도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편지 한 통을 읽을 때마다 소모되는 에너지가 다른 소설들보다 더 많았던 것 같다. 어떤 소설은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대단해서 그 자리에서 후루룩 다 읽게 만드는 책이 있는 반면에, 이 책은 너무 소중해서 조금씩 아껴먹는 사탕과도 같은 책이다. 많은 분량의 편지들을 읽느라 지치기도 했지만, 조금이라도 더 이 책을 음미하면서 읽고 싶었기에 이 점이 오히려 좋았다. 조금씩 오래 볼 수 있으니까.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작가의 위트를 편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작가의 위트는 이 책의 제목에서부터 보인다.. ‘건지 감자껍질 파이 북클럽’. 그 누가 감자껍질 파이 이름의 북클럽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 책의 저자인 메리 앤 섀퍼는 1976년에 방문했던 영국해협 채널제도의 건지섬을 배경으로 책을 쓰면서 수년에 걸친 조사 기간을 걸쳤다. 그동안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영국에서 유일하게 점령했던 건지섬의 비극적 상황을 알게 되었고, 끔찍했던 과거를 유머와 웃음으로 승화시켜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이 외에도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위트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책에는 아주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감자껍질 파이 북클럽의 회원들, 줄리엣과 시드니의 편지에서 어쩜 그렇게 한 인물을 허투루 버리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다. 어떡하면 모든 인물을 사랑스럽게 독자들에게 전할지 고민한 흔적들이 엿보인다. 예를 들어 건지섬에 사는 5살 남자아이인 ‘킷’을  표현한 장면이 있는데 시드니가 자신의 편지에서 킷을 ‘동글동글동글동글……’, ‘동글동글한 볼, 코, 눈……’이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표현을 보고 귀여움에 넘어가지 않을 독자는 없다고 생각한다.
 건지 감자껍질 파이 북클럽의 또 다른 매력 중 하나는 편지형식을 띠면서 인물들에게만 집중하도록 할 수 있었지만,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상황 전달과 건지섬의 묘사를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건지섬의 아름다움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면서 추모하게 될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영국에서 유일하게 점령했던 곳이 건지섬이다.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 갇혀 지내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고통이 어떤지 생생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건지섬의 특성상 지배자였던 독일군도, 영국인인 건지섬의 주민들도 모두 고립된 생활을 통해 물질적으로 부족함은 물론이고 감정적으로 힘든 상황을 겪었음을 알게 해준다. 이 책을 읽은 후 전쟁은 지배자( 소수의 권력자)에게는 승패가 갈리는 게임이지만 주체(시민들)자들에게는 무조건적 파괴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우리의 감자껍질 파이 북클럽 멤버 중 한 분인 에번 램지 씨는 [셰익스피어 선집]을 굉장히 아낀다. 셰익스피어는 이 책에서 ‘밝은 날이 다했으니 이제 어둠을 맞이하리라’라고 말하는데 정말 아이러니한 문장이지 않나? 감자껍질 파이 북클럽 회원들은 2차 세계대전을 통해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다. 어둠이 다했으니 밝은 날을 맞이하라고 해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인용문이 등장한다. 하지만 쑥대밭이 된 상황에서 승리가 없는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어두움을 맞이하는 준비를 하는지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어둠을 기꺼이 맞이하는 그들을 보면서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느꼈다. 그들을 향한 동경과 안타까움이 섞인 이상한 감정과 동시에 나에게 밝은 날은 평생 가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 어둠을 모른 척 할 것인지, 아니면 어둠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이렇듯 여러 가지 생각들이 몰려온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들은 마치 마법의 약물을 만들 때 무지개 빛 색깔들이 커다란 가마솥 안에서 섞여지듯이, 아주 복잡하지만 어둡지는 않다. 전쟁 중에서 탄생한 감자껍질 파이 북클럽과 같다. 그 이름 자체가 내포하는 아이러니와 유머가 책 곳곳에 숨어있다.
 물론 위와 같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편지 내용을 읽으며 줄거리만 따라가도 아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그저 줄글로 된 책을 읽는 게 지루하거나 색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꼭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나는 이 책의 제목만 읽고는 무거운 주제의 철학책인줄 알았다. 
그리고 나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아마도 그는 자본이 한곳에 정체되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들여다보자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의 내용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저자는 자본주의에 대해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 없어져야 할 체계, 반드시 무너져야 할 것… 
내 생각은 정확히 절반, 단 절반만이 저자의 생각과 일치했다. 
나도 현제의 체제에 대해 평등하다고, 완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 또한 지배계층이 아닌 피지배계층에 위치하는 시민으로서 이 사회에 불만이 없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만약 현재가 붕괴된다면 그나큰 부작용을 낳을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자본으로 돌아가는 이 세상이 갑자기 붕괴된다면? 그리고는 저자의 말대로 공산주의가 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면? 
절대로 세계가 제대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공학도로서 모든것은 점진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달리던 자동차가 갑자기 멈춘다면, 잘 흐르던 강줄기가 갑자기 빨라진다면 무엇인가 부작용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나는 저자의 주장 “자본주의는 무너져야 한다”에 동의하지만 완벽히 동의하지 않는다. 
무너지기보다는 서서히 변해가는 쪽, 완만한 기울기로 나아가야만이 훨씬 안정적이고 완벽한, 모두를 안전히 보살필 수 있는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자들의 음모 (부자아빠 기요사키가 말하는)

이 책은 올해 초에 읽은 책으로, 1년을 돌아볼 시점이 되니 올해의 내가 선정한 책을 고민하다 선정한 책이다.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읽은 후의 나로 극명하게 변화된 모습을 보며, 학우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쓴다.
다소 자극적인 부자들의 음모라는 책은 우리나라에서도 부자아빠 가난한아빠의 저자로 유명한 로버트 기요사키가 지은 책이다.
나는 그 유명한 부자아빠 가난한아빠도 읽어보지 않았지만, 경제에 관심이 많아진 올해 초
나의 멘토로부터 추천받은 책이 “부자들의 음모”이다.
이 책을 읽으며 놀라기도했고 슬프기도했으며 다짐하기도 했다.
우리들 부모님세대에서 주로하는 말 “대출은 위험한거야”,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서 평생일하며 살아라” 등
내가 지금까지 안일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였었던 말들이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는 더이상 당연한 말이 아니었다.
우리의 교육과정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경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 적이 있는가?
교과서나 대중매체에서는 우리에게 노동자로서 남의 돈을 벌어다주는 역할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가?
이 책은 우리나라에 없는 그러한 간극을 메워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온 배경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책을 읽어도 행동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책장을 덮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로버트 기요사키가 주장한 몇몇 부분을 실천해보았다.
두려워도 내가 그려놓은 나의 펜스를 벗어나고자 노력했으며, 이 책을 읽은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 펜스 밖에있는 나를 발견하게되었다.
지금 나는 부자라고 자신있게 말할 순 없지만
내면은 부자가 되기위한 셋팅이 마친 상태고, 외형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듯 하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 세계로 뛰어들자 !

헝거 게임

그저 서포터 역할을 하고 수동적인 여주인공이 아닌 당당하고 주체적인 능력있는 여성의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이 다른 소설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고 매우 매력적이었다. 일단 먼저 세계관 자체가 탄탄하게 설정되어있어서 중간에 복선이 이어지지않거나 허점이 보이는 장면이 존재하지않았다. 이 소설의 설정이 그저 소설 속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는 것이라고 느꼈다. 주인공인 캣니스의 앞으로의 행보가 매우 기대되고 이 게임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해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갈리아의 딸들

결국, 아이를 보는 것은 맨움이야.” 용기를 내어 뱃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 아들, 페트로니우스에게
엄마인 루스 브램은 남성은 아이를 보아야 한다며 그의 꿈을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라 말한다. 이갈리아의
사람들은 현실과 완전히 뒤바뀐 듯한 가모장제의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여성(women)은 움(wom), 남성(men)
맨움(menwom)으로 불리며 대부분의 정치인, 결정권자, 기업의 회장 등 모든 분야에서 권력을 가진 존재는 여성이다. 심지어
예수조차 이곳에서는 남성이 아닌 도나 제시카라는 여성이다. 이처럼 인간의 기본형이 여성이 된 사회에서
남성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키가 작으며 통통하고 수염관리가 잘된 남자가 여성에게 좋은 배우자로
선택되고, 남성들은 여성이 낳은 아이에 대한 모든 육아를 담당한다. 그들에게는
경력단절이 낯선 단어가 아니며, 늦은 나이까지 결혼을 못한 남성은 성적으로 매력이 없다고 폄하를 당한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생식기를 가리는 페호라는 속옷을 꼭 착용해야 하는데 만약 이것을 착용하지 않고 밖에 나갔다가는 모두에게 놀림을 받게 될 것이다. 주인공 페트로니우스는 해변가에서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늦은 시각에 숲속에서 세명의 여성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후에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폭행을 당하기까지 한다. 결국 그는 맨움해방주의를
주장하기에 이르지만 이갈리아에서 받는 맨움 차별에 비하면 아직 갈길이 멀 뿐이다. 이 책을 보는 사람들은
아니, 이렇게까지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사회가 어디있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갈리아에서 살아가는 맨움들은
현재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 여성들은 남성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작고, 마른 몸매를 갖기를 강요받으며 자란다. 대부분의 기기혼
여성은 아이를 낳으면 그에 대한 모든 육아와 가사일을 책임진다. 경력단절을 극복하기 위해 일자리에 나가게
된다면 집안일과 더불어 할 일은 배로 늘어나게 된다. 갈비뼈를 꽉 조여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브레지어를
착용하지 않는 여성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디서든 성 범죄를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존재하며, 데이트 폭력은 하루가 멀다하고 기사에 실린다.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여성은 그 단어를 언급한 것만으로도 사회에서 낙인이 찍히는 반면 성범죄를 일으킨 남성들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
극단적이라고 느껴지는가? 아주 일부의 운이 나쁜 여성만의 일이라고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어보아라. 한 번만 이 책을 펼쳐 페트로니우스의
삶을 엿보아라. 남성들은 여성들이 느끼는 불합리에 대해 이해하게 될 것이며, 여성들은 어떻게 하여 남성들이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페트로니우스에게 이입하며 분노하고 한편으로는 권력을 가진 이갈리아의 여성들을 부러워했다. 그리고 책을 덮고 현실 세계로 돌아올 때면 허탈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허탈감을 우울감으로 이어지게 나둬서는 안된다. 사회를 바꾸기 위한 에너지로 사용해야 한다. 그러한 목적으로 이 책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그리고 이 한가지의 생각을 떠올려 주길 바란다. “지금까지의 여성의 역사는 어디로 지워진 것일까?”

이갈리아의 딸들

처음에 독서클럽을 시작한 계기는 책을 읽고 소통하고 싶어서가 아닌 비교과를 받고 싶어서 시작했다. 책을 선정하고 나서는 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최근에는 연극으로도 제작된 책이었고 원래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어 관심을 갖고 있었던 책이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단어가 정말 헷갈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단어 소개장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한지 모르겠다. 여기서는 모든 디폴트의 기준이 여자이기 때문에 움을 여자로 부르고 맨움을 남자라 부른다. 또한 영어권에서 결혼한 여자와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호칭을 나눠서 부르는 걸 여기서는 맨움이 나눠져서 불린다. 또한 페호나 부성보호등 가부장적인 것이 뒤집힌 채 묘사된다.

이곳 이갈리아의 세계는 우리가 기존에 익숙해져 있던 게 완전히 뒤집혀 묘사된다. 외모를 가꾸고 여자에게 선택받길 기다리는 남자들과 시끄럽고 남자를 성희롱하는 여자들이 이 책에서 많이 보인다. 이 책은 읽으면서 옛날에 나온 책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제일 소름 돋았던 건 메이드맨의 무도회 스토리였다. 이건 현대로 비교하면 홈 파티와 유사한 느낌인데 옛날에 나온 책이라고 하기에는 현대랑 비교해도 맞을 정도로 정말 비슷했다. 여기서 맨움은 선택받기 위해 열심히 꾸민 채로 가만히 1층에 있고 움들에게 선택받은 맨움은 방에 들어가 성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것에 대한 묘사도 뒤집혀서 우리가 성관계를 맺을 때도 얼마나 남성중심주의적인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목차마다 신선함을 느낄 수 있고 여러 예민한 주제를 가지고 소설이 진행된다. 부성보호에 선택받지 못한 맨움의 삶, 강간, 데이트폭력 부분을 소개하고 싶은데 이곳 소설에서 주인공이 강간을 당했을 때 자신의 어머니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 부성보호를 받고 싶으면 숨기고 다니라고 하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또한 데이트폭력을 할 때도 이곳 소설에서 움이 맨움을 폭행하지만 너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이성을 잃고 때린거라며 합리화 하는 것을 보고 소름돋았다. 우리도 현실에서 만나주지 않아 폭행하고 죽이기까지 하는데 소설에서도 사실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맨움의 얘기를 듣자마자 죽이기까지 하려고 한다.

옛 서적이지만 현대와 비교해도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가 이 책 세계관이 우리의 현실과 뒤집힌채로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여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가 일상에서 익숙하게 넘기던 것들이 다시 보이게 되고 관련 서적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갈리아의 딸들

처음에 독서클럽을 시작한 계기는 책을 읽고 소통하고 싶어서가 아닌 비교과를 받고 싶어서 시작했다. 책을 선정하고 나서는 좀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최근에는 연극으로도 제작된 책이었고 원래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어 관심을 갖고 있었던 책이었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단어가 정말 헷갈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단어 소개장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한지 모르겠다. 여기서는 모든 디폴트의 기준이 여자이기 때문에 움을 여자로 부르고 맨움을 남자라 부른다. 또한 영어권에서 결혼한 여자와 결혼하지 않은 여자의 호칭을 나눠서 부르는 걸 여기서는 맨움이 나눠져서 불린다. 또한 페호나 부성보호등 가부장적인 것이 뒤집힌 채 묘사된다.

이곳 이갈리아의 세계는 우리가 기존에 익숙해져 있던 게 완전히 뒤집혀 묘사된다. 외모를 가꾸고 여자에게 선택받길 기다리는 남자들과 시끄럽고 남자를 성희롱하는 여자들이 이 책에서 많이 보인다. 이 책은 읽으면서 옛날에 나온 책이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제일 소름 돋았던 건 메이드맨의 무도회 스토리였다. 이건 현대로 비교하면 홈 파티와 유사한 느낌인데 옛날에 나온 책이라고 하기에는 현대랑 비교해도 맞을 정도로 정말 비슷했다. 여기서 맨움은 선택받기 위해 열심히 꾸민 채로 가만히 1층에 있고 움들에게 선택받은 맨움은 방에 들어가 성관계를 맺게 되는데 이것에 대한 묘사도 뒤집혀서 우리가 성관계를 맺을 때도 얼마나 남성중심주의적인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은 목차마다 신선함을 느낄 수 있고 여러 예민한 주제를 가지고 소설이 진행된다. 부성보호에 선택받지 못한 맨움의 삶, 강간, 데이트폭력 부분을 소개하고 싶은데 이곳 소설에서 주인공이 강간을 당했을 때 자신의 어머니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면서 부성보호를 받고 싶으면 숨기고 다니라고 하는 사실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또한 데이트폭력을 할 때도 이곳 소설에서 움이 맨움을 폭행하지만 너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이성을 잃고 때린거라며 합리화 하는 것을 보고 소름돋았다. 우리도 현실에서 만나주지 않아 폭행하고 죽이기까지 하는데 소설에서도 사실 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맨움의 얘기를 듣자마자 죽이기까지 하려고 한다.

옛 서적이지만 현대와 비교해도 다른 점을 느끼지 못하는 우리가 이 책 세계관이 우리의 현실과 뒤집힌채로 같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여자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우리가 일상에서 익숙하게 넘기던 것들이 다시 보이게 되고 관련 서적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갈리아의 딸들

이갈리아의 딸들이라는 책은 한때 sns를 뜨겁게 달구었던 화재의 책이다. 이 책을 둘러싼 많은 구설수와 말들은 아직까지 인터넷상에서 떠돌고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는 욕으로 어떤 상황에서는 칭찬으로 쓰이는 뜨거운 감자와도 같은 책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선택했다.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에. 이갈리아의 딸은 페미니즘을 진득하게 다뤄낸 완벽한 미러링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 모두는 불편할 것이고 기분 나쁠 것이다. 작가는 그 불편함을 의도했다, 책을 읽으며 기분이 나빴다면 작가의 의도대로 책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으며 잘 읽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갈리아의 딸이라는 책 속 사회는 현재의 세계와는 전혀 반대된다. 남성이 여성이고 여성이 남성인 그 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이질감을 불러일으키고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무엇이 여성인지 남성인지 혼돈이 오게 되는 것이다. 이갈리아의 남성들은 치마를 입고 다니며 통통한 몸과 작은 키를 강요받는다. 이곳에서는 남성미는 작고 통통한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여성이 남성을 데리고 가주지 않는다. 라는 기본적인 믿음이 바탕이 되어있다. 우리는 책의 초반부에서부터 이질감과 불편함에 부딪힌다. 이 작은 단락부터가 현 사회의 많은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왜 현 사회에서 뚱뚱한 여성들을 찾아보기 힘든 것인지. 이것은 위의 기본적인 믿음에서부터 비롯된다. 우리는 그렇게 알게모르게 세뇌되었던 것이고 교육 받아 왔던 것이다. 많은 미디어에서 혹은 어른들의 입에서 여성은 뚱뚱하면 안된다라는 말에 길들여져 많은 뚱뚱한 여성들이 자신을 혐오하고 구석에 숨게했는가.


이갈리아의 딸의 책 속의 남성들은 스토리가 진행 될 때 마다 점점 각성한다. 남성해방운동을 펼치며 시위를 한다. 많은 미디어에서 이것을 폭동 혹은 변태들의 소동이라고 치부하며 사회의 문제아 취급하며 기사로 다뤄낸다. 나는 이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흐름들이 현 한국의 페미니즘이 흘러가고 있는 형상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차별을 느낀 여성들이 점차 각성을 했고 각자 다른 방식대로 여성운동을 진행하고 있으며 많은 과격한 부분이 기사화되어 현 사회에서 페미니즘은 문제 덩어리 혹은 도태 여성들을 발악 쯤으로 치부해 버리고 있다. 우리는 이것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문제로 치부해 버리는 권력층은 남성들이며 그들의 판단의 잣대는 항상 그들이 유리한 위치에서 작용된다. 우리는 항상 생각해야 한다. 어떤 것이든 당연하게 넘어가면 안된다.


이갈리아의 딸을 읽으며 현 사회에서 습관처럼 베어있는 여성혐오, 여성차별에 대해 많은 부분을 공감하고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현 사회의 여성혐오에 길들여져 무엇이 여성혐오인지 인지 할 수 없었던 여성들과 그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아무말 없이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던 여성들에 관해 깊게 얘기할 수 있어 굉장히 뜻깊은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