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발탄을 읽고 6.25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은 전쟁에 대한 걱정 없이 살고 있지만 지금도 우리나라는 휴전국으로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인 나라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나온 전쟁직후의 상황이 언젠가는 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철호는 집안의 가장으로써 최선을 다해 살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철호의 어머니와 동생들, 아내는 철호에게 의지했고 그들을 등에 업은 철호는 정직한 삶을 살며 꾸역꾸역 가정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죽고 동생이 경찰서에 잡혀가고 어머니가 미쳐버리는 악재가 겹치게 된다. 이는 우리에게 전시 후에 어려웠던 서민들의 당시 상황을 보여주며 전쟁의 참혹함을 일깨워준다.
여기서 나는 이 당시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가 얼마나 바뀌었을지 생각해보았다. 전쟁 직후 사람들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조건이였던 의식주의 해결에서부터 어려움을 느꼈다. 60년 가량 지난 현재 우리는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저 당시의 현실과 지금의 현실을 비교해본다면 사람들의 생활은 확실히 나아졌다. 편한 생활에 풍족한 먹거리, 많은 여가 활동을 즐기게 되었다. 하지만 전쟁이 다시 한번 일어나게 된다면 우리는 순식간에 그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 따라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아야 한다. 현재 분단상태인 우리나라를 봤을때 전쟁의 위험이 크진 않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은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과의 원만한 관계유지가 필요하며 가능하다면 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80년대를 상상해보라고 하면 드라마<응답하라 1988>에서 보았던 복고풍의 낭만적인 서울을 떠올렸었다. 내가 부모님에게 들은 서울의 80년대는 학생들이 데모를 하지만 한 쪽에서는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문화생활을 즐기는 희망이 감도는 낭만적 도시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80년대라고 하면 막연히 행복한 시대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양귀자 작가의 ‘원미동 사람들’은 8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런 낭만적인 이야기를 다루지않는다. 책의 첫 시작은 서울을 떠나 부천의 원미동으로 향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은혜네 집은 아버지가 서울에서 근무를 하지만 서울 안에서도 계속해서 떠도는 집이였다. 서울 안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떠돌던 이 가족은 결국 삶의 터전을 원미동으로 옮기게 된다. 해당 단편에서는 원미동을 멀지만 아름다운 동네라고 표현한다. 원미동으로 향하는 동안 은혜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트럭 뒤에 짐처럼 실려간다. 나는 이 모습이 마치 서울이라는 전쟁터에서 밀려난 피난민 같다고 느꼈다. 책에서 묘사되는 원미동은 분명 일상적인 풍경을 가진 동네이다. 동네 안에는 싹싹한 청년과 해맑은 아이들 그리고 인심 좋은 이웃들이 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원미동은 서울에서 벗어나고싶지 않은 사람들의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원미동의 의미는 ‘찻집 여자’라는 단편에서 강하게 다가왔다. 사진관을 하는 엄씨와 불륜관계가 된 찻집 여자는 원미동에서 밀려난다고 갈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생활 이하로 떨어져내리고 싶지는 않다고 이야기한다. 찻집 여자의 이 말은 아마 원미동 사람들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불씨의 등장인물인 진만이 아버지는 원미동에 살며 새로운 일을 구하려고 해보지만 결국 영업사원 업무, 리어카 행상 등을 전전하다가 원미동을 떠나게 된다. 이러한 모습에서 원미동은 서울, 혹은 안락한 삶을 꿈꿀 수 있는 끝자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지막 땅의 등장인물인 강노인이 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주변 인물들과 가족들이 그 땅을 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에서 이 시기의 자본주의적 성향을 확인 할 수 있다. 이것은 멀지만 아름다운 동네라는 원미동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한 평범한 동네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원미동 사람들’은 그 시대의 일면을 보여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80년대 한국사회의 모습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또한 현대 사람들의 서울에 대한 일종의 집착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되었다. 양귀자 작가의 책은 ‘원미동 사람들’이 처음이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하여 작가의 다른 책에도 흥미를 가지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교과서에서 한 번은 접해보았을만한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문학기행을 기획하며 다시 한 번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정해진 틀에 맞춰 해석해야 했던 입시 때와는 다르게 순수하게 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 읽었을 때 막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다시 읽었음에도 그 생각엔 변화가 없다.
[줄거리]
봉평 장에서 다음 장터로 가는 길 허 생원과 동이, 조 선달이 동행하게 되고 허 생원이 자신의 추억 이야기를 한다. 동이도 자신의 가족사를 얘기하는 데 이것을 들은 허 생원은 동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복선은 많은데 약간 의아함을 자아낼 수 있는 글이다. 첫 문단에서 허 생원을 왼손잡이라고 언급하는 것, 동이와 함께할 때 이상하게 생기는 마찰들, 동이의 집안 사정 등 동이가 허 생원의 아들일 가능성들을 여러 곳에 두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에 동이가 허 생원과 같은 왼손잡이라고 언급하며 끝나는 것. 이것으로 부자지간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 하지만 냉철하게 보면 아버지와 아들이 둘 다 왼손잡이일 가능성이 적고, 왼손잡이라고 부자지간으로 엮는 것도 무리일 듯하다. 하지만 앞서 뿌려놓았던 복선들 덕분에 왼손잡이가 화룡점정이 되는 것 같다.
메밀꽃 필 무렵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묘사가 아닐까 싶다.
보지 않았어도 그려지게 만드는 어휘들. 두드러지게 표현된 구절 몇 개를 인용해보았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열린 결말로 마무리하면서 독자에게 그 후의 이야기를 맡기고 있다. 동이가 정말 허 생원의 아들이 맞는지, 동이의 엄마와 허 생원은 다시 만났는지. 나의 상상에선 허 생원과 동이의 엄마는 다시 만나고 동이가 허 생원의 아들도 맞지만 그렇다고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 같진 않다. 셋이 모여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형성되지 않고 정착하지 못해 허생원은 떠돌아다니며 장사를 계속할 것만 같다.
이 책은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포함하여 총 14편의 박태원 작가의 작품이 들어있는 책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더 집중해보려한다. 처음 이 이야기를 읽었을 때는 주인공 ‘구보’가 산책하며 관찰하는 것들에 대한 내용, 그의 내면과 과거 이야기가 번갈아 나와서 내용 정리가 확실히 되지않아 혼란스러웠다. 아마 문장 속 한자어들이 익숙치 않아 더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인공 ‘구보’가 고독과 행복에 대한 고민을 했다는 것, 그리고 나도 이 고민에 동의하며 그의 고민을 통해 고독과 행복이란 무엇인가 한 번 더 탐구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 고독이다. 구보는 경성시대에 그 어떤 곳보다 빠르게 변화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에서 취업도 결혼도 하지 않은 채로 어떻게 보면 고립된 존재로써 존재한다. 그는 다른 이들처럼 돈을 쫓지도 그렇다고 사랑을 쫓지도 않으면서 철저하게 관찰자의 입장에서 서울을 바라본다. 소설 속 구보는 고독을 좋아하면서 동시에 벗어나고자 한다. 그는 고독을 아예 없애버리고 싶지는 않다는 뜻을 내비친다. 고독은 소설가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더 나아가 고독이 그의 정체성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다른 이들처럼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온전히 글과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그의 모습은 그 자체라고 생각했기때문이다. 또한, 나의 고독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 역시 고독이라고까지 생각해보진않았지만 세상에서 혼자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소외되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분리되어 있는 느낌이다. 난 이 느낌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이를 느낄 때에 나 자신에 대해 더 깊은 고민과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너무 몰입되어 고독 속으로 빠지면 나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미칠 것을 알기에 고독을 마냥 사랑하지도 않는다. 이 점에서 나는 구보의 이야기에 더 몰입해서 작품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음은 행복이다. 행복은 내가 어려서부터 쭉 고민해오던 것이다. 자본주의와 개인주의가 점점 더 커져가는 사회에서 행복의 가장 큰 기준은 돈이라고 밖에 보이지않는다. 나는 나의 삶 속에서의 생활 그 자체로의 행복을 누리고 싶은데 어쩌면 이 조차도 경제적인 여유에서 오는 여유와 행복 아닐까?라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했다. 구보의 이야기 속에서도 행복에 대한 그의 고민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결론은 내려주진 않는다. 그 역시 돈과 여자, 인간의 본능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는 요소들과 연관 지어 행복에 대한 고찰을 이어나간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 역시 행복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갔으나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아마 결론은 평생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행복에 대한 고민을 더 이어나가고 이에 대해 더 생각해보며 나만의 행복의 기준과 틀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어쩌면 구보 씨의 하루는 내 일상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숨 막히는 식민통치 아래 억압된 채 살아야 했던 당대 지식인의 설움과 무력감에 비할 바야 못 되지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 가운데 스미는 권태와 막연함은 그의 것과 어느 정도 비슷한 성질을 띠고 있었다. 글로 써낼 영감을 얻으려는 명목이든 기분전환 삼아 거니는 행위든 허울은 그럴듯해도 결국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려 떠돈다는 점에서 우린 같았다.
소설이라 하지만, 알고 보면 온전한 수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섬세한 감정 표현이 두드러지는 이 글은 구보 씨가 어머니의 근심 어린 음성을 뒤로 한 채 집을 나서면서 시작한다. 밖에 나가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을 아들에게 한마디라도 건네고자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어찌 그렇게 와닿도록 그려낼 수 있는지,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서운한 기색을 애써 삼키는 그 모습이 절로 두 뺨에 불을 지피고, 매일 아침 오늘은 몇 시에 들어오니, 묻는 우리 할머니가 떠오르면서, 작가의 묘사는 참 사람 마음을 시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고 느꼈다. 목적지 없이, 혹은 목적지가 너무 많은 채로, 구보 씨는 정처 없이 걷는다. 나도 종종 날씨가 좋은 날이면, 또는 기분이 울적해 그 감정을 걸음에 담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은 날마다, 학교서부터 창경궁을 지나쳐 종각역 부근에 있는 광교까지 걸어가곤 한다. 집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다니는 그곳에 도착할 무렵에는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생각과 감정이 상당히 정리된 상태다. 마치 구보 씨가 마지막에 그의 어머니를 떠올리고, 소설을 쓰기로 결단하며, 그렇게 고뇌하던 행복을 나름 제 것으로 만든 것처럼 말이다.
당장은 관련 지식이나 문학을 분석하는 능력이 부족해 문학적 측면에서 해석하긴 어렵지만, 훗날 시대적 요소들을 비롯한 배경지식과 고전문학에 대한 이해를 쌓은 다음 다시 한번 읽어봐도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이런 막장소설이 이 시대에도 있었다니.
이 책을 읽은 후 내 감상은 딱 그것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소설은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라던가, ‘날개’와 같은 소설이었고 그것은 알기 어려운 상징과 표현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포한 의미는 또 어떠한가.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소설이 담은 의미가 협소하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소설에 비해 상당히 직설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과 날개에 대해 발표했지만 아직도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소설은 전반적으로 아름다운 분위기로 흘러간다. 상당히 투박한 대사와 등장인물이지만 주변 상황을 묘사하는 말들이 워낙 아름다워 그런 투박함 쯤은 쉬이 넘길 수 있게 만든다. 책을 조사해보니 “소설을 배반한 소설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하더라. 나쁜 의미가 아니라, 문장 자체가 시구처럼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메밀꽃은 꽃 자체로는 작고 볼품없지만 그 꽃들이 빽빽하게 자리한 들판 달밤을 거니는 두 남자의 모습은 환상적일만큼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되었다. 직접 그 밤을 거닐어보고 싶을 정도로. 이런 묘사들이 ‘보여주기’기법을 제대로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의 경우 글을 쓸 때 항상 성격이 어떻다던가 하는 설명을 집어넣어야만 등장인물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는데, 직접적인 언급 없이 그들의 행동으로 성격을 묘사한 것이 매우 탁월했다.
아무튼,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가진 소설의 내용은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는 젊은 남자와 메밀꽃밭에서 일어난 하룻밤을 못내 그리워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던가. 심지어 이 둘은 부자지간이다! 빠르고 가볍게 읽히면서 기본 줄기는 막장 드라마에다 향토성과 아름다움을 살린 글이라니, 이런 역작이 또 있을까. 나중에 가서 허생원의 나귀와 허생원이 계속 비교되며 일치되는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소름이 돋았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어디에서 나올까? 그는 메밀꽃밭의 무엇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상상했을까? 직접 그가 거닐었던 풍경을 보고, 소설에 나오는 오일장 등을 다니며 소설에서 느낀 충격을 다시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자!가자!” 미치면 목소리마저 변하는 모양이었다.’. 이범선의 단편소설 오발탄에서 주인공 철호의 어머니가 병적으로 하는 말이다. 그녀는 도대체 어디로 가자고 하는 것일까?
이 소설의 배경은 6.25 전쟁 후 피난을 떠나 삶이 힘들어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해방촌이 무대이다. 집안의 가장인 철호는 가정을 위해 계리사로써 열심히 일하지만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은 당대 피난민들이 직업을 찾아 법과 양심에 따라 돈을 벌지만 빈부격차를 극복하지 못하는 당대 사회 현실을 통찰력있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내려오지만 그들에게 놓인 현실은 극복하기에 너무 힘들었다.
반대로 철호의 동생인 영호는 법대로 살아는 형을 보고 안쓰럽기도 했지만 불만이 있기도 했다. 전쟁 중 상이 군인이 되어 일자리도 찾지 못하고 술로만 세월을 보내다 결국 일을 저지르고 만다. 어느 날 저녁, 집에 와서 ‘이제 우리도 한번 살아 봅시다.’ 라고 말하며 사라졌고 얼마 안가 은행 강도로 붙잡혔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위해 인간답지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려고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며 인간성의 상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장면이다. 선량한 시민들이 겪어야 했던 비참한 현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현대를 떠올리게 되었다. 최근 들어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빈익빈부익부 현상과 상당히 유사한데 그 당시 보다는 경제적으로 많이 향상되었지만 가난한 자들과 부유한 자들의 격차는 훨씬 더 벌어지고 있다. 하루 빨리 이 문제가 해결될 날이 오길 바란다.
철호와 영호로부터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파악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철호의 어머니에 초점을 맞출 차례이다. 이 소설은 이데올로기적 흑백논리를 살펴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매일마다 집에서 ‘가자’를 외치는 어머니에게 철호가 ‘어머니, 그래도 남한은 이렇게 자유스럽지 않아요?’라고 말하는데 이는 가난을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로 덮으려고 하는 철호의 태도를 독자가 자연스럽게 비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철호는 어머니가 고향으로 가자는 것을 타이르기 위해 남한이니까 생명을 부지할 수 있고 북한으로 간다면 당장 죽는 것이라며 자유롭게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설명을 한다. 그러나 이는 남한은 자유롭고 북한은 그렇지 못하다는 흑백 논리적 사고를 볼 수 있다. 물론 그의 어머니는 자유라는 개념을 끝내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가자’를 외친다. 결국 이 ‘가자’라는 외침은 현대 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더이상 영위할 수 없음을 암시하며 전후의 참담함을 알리는 동시에 고향의 그리움을 나타내는 복합적인 표현이다.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바로 마지막 부분이다. 치과에서 충치를 제거하고 나와 무작정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물어보는 기사에게 어머니와 똑같이 ‘가자’를 되뇌이며 철호마저 결국 인생의 방향성을 상실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택시에 그의 감정을 이입했다. 이 장면 역시 전후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전쟁이라는 것이 한 가정을 이렇게 풍비박산 낼 수 있다는 점과 살기 위해 인간성을 잃어 버리는 안타까움을 동시에 깨닫게 해 주었다. 철호의 가정에 다시 평화와 안위가 찾아올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철호는 어떤 방향성을 잡아 움직일까? 이에 대한 궁금증을 남기며 서평을 줄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