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비노식 하루3분 눈 건강법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 컴퓨터 자주 보느라 눈이 쉴틈이 없다.
이 책을 보면 눈의 피로도가 어느정도 풀리고 심지어는 눈에 눈물이 맺힐 수도 있다.
즉, 안구건조증도 예방할 수 있다.

채식주의자 (한강 연작소설,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작)

위 소설은 총 세개의 단편으로 이어진 연작 소설이며 단편마다 화자가 달라진다.
1. 채식주의자 –  주인공 영혜의 무난함이 좋아서 결혼한 남편. 어느날, 채식주의자를 선언한 그녀의 이상 행동으로 남편은 난감한 입장에 놓인다. 영혜의 친가 모두가 그녀를 질책하였고, 식사 자리에서 고기를 완강히 거부하는 영혜에 화가 난 아버지는 그녀의 입에 억지로 탕수육을 쑤셔 넣었다. 그녀가 다시 도로 뱉어내자, 아버지는 그녀의 뺨을 때린다.  그 후 그녀는 과도를 집어 들어 자신의 손목을 긋는다. 그 사건으로 영혜는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남편은 이러한 그녀와 이혼하게 된다.
2. 몽고반점  – 영혜가 형부와 성관계를 하는 내용이다. 인물 감정, 행위 묘사가 디테일하다. 형부는 처제인 영혜와 성관계 동영상이 부인에게 발각되며 결국 가정이 파탄나게 된다. 형부는 결국 직업, 결혼생활, 아버지의 역할을 잃게 된다.
3.나무불꽃 – 결국, 영혜는 정신병원 폐쇄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가족 모두가 영혜를 등졌지만 언니만이 유일하게 자신을 돌봐준다. 그 형부의 부인이기도 하다. 병원에서 만난 동생의 상태는 의사와 간호사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심각하게 되었다.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호스로 음식물을 주입하려고 해도 그녀는 완강하게 몸부림치며 거부한다. 그녀는 시간이 흐를수록 심하게 말라갔고, 물구나무를 서는 일이 잦아졌다. 영혜는 자기 스스로를 ‘나무’라고 칭하였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난해하고 추상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독자에 따라서 반응이 다양하게 나올 수 밖에 없는 소설이다. 영혜가 채식주의자를 선언하게 된 이유에는 아버지의 폭력이 있었다. 어린시절 개가 영혜를 물었는데, 아버지는 이 개를 육질을 좋게 하기 위해 오토바이로 끌고 다니며 죽인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과 개를 잡아먹었다. 이러한 폭력적인 일들이 영혜에게는 부정적으로 각인되었다. 또한 결혼 후에는 단순히 고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뺨까지 맞게 된다. 아동학대라고 단순하게 주제를 말하는 의견도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몇가지 숨겨진 의미를 내 시각에서 들여다 보았다.
첫번째, 가족들은 채식만 하는 영혜를 강제로 자신들의 틀에 맞추려고 하였다.
영혜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수로부터 받는 억압과 폭력일 것이다.
두번째, 반대로 영혜의 가족들의 삶은 엉망이 되었다. 즉, 나의 독단적인 행동은 주변에 민폐를 끼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영혜는 폭력을 싫어했다. 그래서 채식주의자 선언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가족들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된 셈이다. 남편의 평범한 삶에 피해를 줬고, 형부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아서 언니를 이혼하게 했다. 결국 형부는 선을 넘은 대가로 직업, 아버지의 역할 모든 것에서 배제되었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 것이다.
소설 결말에, 영혜는 나무가 되려고 병동에서 물구나무를 선다. 물과 햇빛만으로도 살 수 있다고 말하면서. 아마도 땅에 팔을 딛고 다리는 하늘로 향하는 나무처럼, 소속된 경계를 초월하는 존재가 되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나무처럼 모든것을 아우르는 폭력적이지 않은 존재로 말이다. 나무는 모든 생명체와 유기적인 연결성을 지닌다. 즉,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우리는 서로간에 연결되어있다는 것이다. 서로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굉장이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소설이었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예술성이있다, 혹은 난해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형부와 처제의 정사는 외설로 보여지는게 일반적이다. 표면적으로 이해했을 경우에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것이 이 소설의 가장 포인트였다고 생각한다. 형부와 처제의 장면은 이상하리만치 리얼하고 묘사가 자세했다. 거기에 수식어 등으로 아름답게 묘사하려고까지해서 의구심은 더욱 증폭됐다. 내 생각에는 한강 작가가 독자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끼도록 의도했던 것 같다. 소설 속 영혜의 가족처럼 독자들도 영혜를 질책하고 불편하게 느끼게  의도한것이다. 또한 독자들의 이러한 심리는 영혜에게 폭력으로 다가 올 것이다. 이러한 정사 장면을 넣음으로써, 독자를 입체적으로 소설속에 참여시켯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개인적인 추측이다. 비유적이고 은유적인 상징들이 많아 난해했지만, 나의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직장이 없는 시대가 온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이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을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직장이 없는 시대가 우리에게 이득이 될수도 있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이병률 여행산문집)

제목: 여행의 의미

 

 

이 책은 단순히 여행 장소를 소개하는 것이 아닌 사진과 더불어 서정적 느낌을 준다. 그래서 너무 공감되거나 좋았던 부분을 남겨보려고 한다.

 

 

<사랑이랑 여행이랑 닮은 것은>

서투르게 남아 내가 보이게 해준다.

한번 빠지게 되면 잘 헤어나오지 못한다.

 

 

<여행은 인생에 있어 분명한 태도를 가지게 하지>

여행이 사람을 자라게 하기 때문에 자기 인생에서 분명한 태도를 갖게 한다.

사람은 원래 약하고 여리고 결핍되게 만들어졌다. 그래서 스스로 약한게 싫거나 힘에 부치는게 싫은 사람들은 불완전한 자신을 데리고 여행을 떠나게 된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내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으면 절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

내가 사람으로 행복한 적이 없다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

 

 

<큰 파도를 기다린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생길수록 살고자 하는 길의 방향이 더 선명해지고, 살아가야 할 이유도 명백해진다.

통치론 (시민정부의 참된 기원, 범위 및 그 목적에 관한 시론)

제목: 자연상태에서의 인간

 

   로크는 자연상태의 개념을 통해 하느님이 인간들을 세상에 둔 조건을 보여주며 이에 근거하여 하느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어떠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는 가를 보여준다. , 로크가 말하는 자연상태는 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인간의 조건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이다. 로크의 정치 철학의 출발점 역시 인간은 평등하고 분리된 개체로 살고 있다는 자연상태에 있는 인간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런데 로크에게 자유는 자연적 자유, 정치적 자유이든지 간에 법에 상관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방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에게 자유란 인간이 이성으로 하여금 독자적 판단을 하여 자연법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로크는 법률이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법률을 자유를 위해 꼭 존재해야 한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더불어 자연상태에서 자연법(이성 즉 하느님이 인류에게 준 공통의 규칙과 척도)의 위반을 막을 권리와 의무는 개인만이 수행할 수 있다고 보고 누군가가 무고한 사람을 공격하는 등 자연법을 어길 시에 해악에 대한 배상을 받아내지 못한다면 자연법은 유명무실해질 것이라고 간주한다. 자연상태에서 갖게 되는 만인이 다른 만인에 대해 갖는 능력은 자의적인 권력이 아니라 이성과 양심으로부터 도출되고 있다.

   이러한 자연상태에 근거하여 로크는 진정한 정치사회나 시민사회를 인민의 입법부가 설치되어 있고, 입법부의 일원인 인민이 법을 제정하고 이 법을 따르는 사회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로크가 보는 정치권력의 핵심은 한 정치 사회 내에서는 공정성을 가져야 하며, 사회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집행력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다. , 정당한 집행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 외적으로는 외부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사회 구성원들을 보호하는 것에 있다. 로크는 이렇듯 최고의 권력을 가진 입법부에서 제정된 법률에 의해 복종의 의무가 규정된다고 본다. 하지만 여기에서 제한이 존재한다. (첫째, 아무리 입법부라 하더라도 인민의 생명과 재산은 좌우 할 수 없다. 둘째, 즉흥적이고 자의적으로 입법권이 행사되어서는 안된다. 셋째, 어떤 사람으로부터든지 간에 재산의 일부를 그의 동의 없이는 취할 수 없다. 넷째, 입법권 자체는 양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로크는 인민들에 대해 전쟁상태를 초래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민들의 저항은 반란이 아니라고 본다. 무질서를 야기하고, 인민의 권리를 침해하기 위해 정부의 구조와 틀을 전복시키는 것을 죄악이라고 여기며, 이에 대해 대항하는 행위는 정당방위이며 자연법이 허용하는 범주에 속해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쟁상태는 적의, 악의, 폭력 및 다른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려는 상호파괴의 상태이다. 또한 전쟁상태는 공통된 우월자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인신을 해치기 위한 힘이 사용될 때 자신의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 나타난다. 이렇게 정당한 이유 없이 인간의 인신을 해치기 위해 힘을 사용하는 것은 전쟁상태를 초래하며 자연상태에서와 시민사회에서 모두 전쟁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로크는 인민을 최고의 주권자로 여기므로 개인들이 한 사회 내에 양도한 권력은 개인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권력이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민들은 정치권력을 입법부에 양도한 것이고, 그 사회가 존속되고 있는 한 입법권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이 때, 정치 공동체를 결성하는 계약은 명시적이고 구체적인 동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로크는 입법권을 최고의 권력으로 보며, 입법권은 공동체와 그 구성원들을 보존하기 위해서 국가의 힘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지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능력이라고 말한다.

 

 

   자연상태에서 법률에 근거하여 개인의 정당한 소유권을 인정한 로크의 정치이론이 좋았다. 왜냐하면 물리적이고 강제적인 힘에 의해서 타인의 것을 착취하여 소유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당한 방법을 통해 형성된 개인의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은 사회를 정의로운 방향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유재산권을 생존에 필요한 가치로 보며 이것을 독자적이고 절대적인 권리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본 로크의 해석에 대해 공감하는 바이다. 소유에 대한 권리가 생존에 대한 권리보다 우선시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