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 나이 20살까지, 그리고 현재에도, 나에게 있어서 역사란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존재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짧은, 20년 동안, 내 인생에 역사란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나에게 다가왔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역사에 흥미가 없었던 난, 그동안 오직 수업시간 역사교과서로만 역사를 접했었다. 그마저도 고등학교에 올라가서 국사를 선택과목으로 택하지 않아 고2부터는 역사를 접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내가 20년 동안 알게 되고 배우게 된 역사가 무엇이 있을까?
초등학교 땐 뗀석기, 간석기….중학생 땐 좀 더 체계적으로 구석기 시대부터 근대사 까지 시대별로 특징을 정리해가면서 배웠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땐, 지금까지 배운 내용을 좀 더 심화시킨 것 뿐 반복되었었다.
솔직히 말해서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 나에게 역사란 항상 부담되고 힘든 부분으로 다가왔다. 항상 역사수업시간에는 펜을 들고 수업시간 내내 팔이 아플 정도로 빽빽하게 필기하고, 그 필기한 내용을 어떻게는 외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기억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교과서 뿐만 아니라, 역사라는 주제 자체가 나에겐 공포의 대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정말 열심히 교과서를 통째로 암기하려고 애썼지만, 시험 결과는 항상 나에게 눈물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지금 역사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나이를 먹어서 일까? 역사란 그냥 흘러가는 여러 사실들의 나열이라고 말하고 싶다. ‘역사는 흐르는 강물이다’라는 명언처럼 역사는 무언가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고, 단지 인생의 흐름 그 자체인 것이다. 심지어 내가 오늘 6시에 전공시험을 본 것도 나의 역사가 될 수도 있고 전공 시험 후에 친구와 함께 떡볶이를 먹으러 간 것도 나의 역사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또 지금 생각해보면, 고3까지 내가 역사과목에 약했던 이유는…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난 역사를 단순히 암기해야할 사항들을 빼곡히 나열한 것이라는 생각뿐 이였고, 그 문장과 문장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고 여러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마 지금 깨달은 이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역사라 아마 좋아졌을지도 모른다.
역사를 두려워했고, 부담스러워했고, 힘들어 했지만, 지금의 난 역사문화학부라는 곳에서 대학공부를 하고 있다. 여기서의 개인의 작은 소망이 있다면, 4학년이 될 때쯤이면, 역사를 사랑하고 역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심장 뛰는 사람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바란다.
하지만, 지금까지 거의 3학년을 마무리 짓고 있는 이 시기에도,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누군가 나에게 한다면, 난 자신감 있고 확신에 찬 대답을 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난 역사에 대한 나의 생각, 주관이 자리 잡지 못했다.
대학에 입학해서, 역사과에 첫 발을 내딛는 그 순간부터, 3학년을 마무리 짓게 된 지금 이 순간까지, 내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대학생이라는 기분에 취해 있던 것뿐이다. 여러 동아리와 학생회에 들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문화에 빨리 동화되는 법을 익히는 것에 급급했다. 그 결과, 친구들과 아는 선배들, 즉 인간관계는 넓혀졌지만, 역사에 대한 나의 관념, 생각은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 역사라는 것에 대한 나의 주관도…그 외의 나에 대한 모든 생각들이 실타래가 꼬인 것처럼 단단히 꼬여 풀릴 기미가 전혀 보이질 않았다.
요즘 들어 나 자신에 대해 많이 혼란스러워 여러 친구들, 선배님들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생각을 공유해 보았다. 단순히 ‘넌 꿈이 뭐니’ 라는 질문부터 시작해 ‘너 인생에 있어서 역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에 이르기까지 많은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정말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사소한 것 하나라도 각 자의 쓰임새를 지닌 것처럼, 그리고 모든 생명들이 지닌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사람들마다 각 개인이 가진 색깔과 특성이 다르다.
이 사람들 중에서는 역사과가 자신과 맞지 않아 전과를 고민 중이라는 사람도, 꿈을 정하지 못해 혼란스러워 하는 친구도, 공무원 준비를 하는 선배들도, 독일로 유학을 가는 친구도, 꿈도 없고 아직 하고 싶은 것도 없지만, 역사가 좋다는 것만큼은 확신을 갖고 있는 언니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역사가 좋아서 역사문화학과라는 곳으로 왔지만, 실제로 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해보니 자신이 생각해왔던 것과 다른 모습이라는 사실에 혼란을 느끼고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친구도 있었다.
난 1학기 중간고사를 본 뒤부터 내 미래에 대해, 내 꿈에 대해, 내 길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길이 보이지 않아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2학기를 지나서 주변사람들과 이러한 생각을 나눈 후에, 나의 초조함에 가면 갈수록 심해졌다.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꿈을 향해 첫 발을 내딛고 있지만, 난 아직도 고 3의 연속인 것처럼 어두운 암흑 속에 나 혼자 갇혀 있다는 느낌에 내 스스로가 답답하고 이런 악 순환이 지속되자 나도 모르게 점점 스스로 지쳐갔다. 아무리 고민하고 고민해서 출구가 없는 터널 속을 무한 반복해서 뱅뱅 돌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아직도 난, 계속 고민하고 있다. 스스로 난 아직 스무 살 밖에 안됐어! 라며 위로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내 자신스스로가 너무나 불안해하며 떨고 있다.
특히 대학에 들어와서 역사라는 전공이 나에게 과연 어떠한 길을 안내해 줄까 라는 불안감과 궁금증이 존재했다. 난 내 손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고도 싶고, 여행사에서 여행가이드로 일하고도 싶고, 박물관에서 유물, 유적에 대해 설명해 주는 사람이 되고도 싶고, 너무나도 많은 일을 하고 싶다. 아마 그래서, 내 스스로 불안해하는 것 같다. 역사라는 전공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살린 일을 하고 싶다.
누군가는 내 나이에 꿈이 많은 것이 당연한 것이고 어떻게 보면 좋을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답답하고 발전이 없어 보일 뿐이다.
위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선, 먼저 역사에 대한 나만의 관점과 생각이 바로서야 한 다고 생각한다. 역사란 과연 무엇일까? 언제쯤 난, 이 답을 얻을 수 있을 까? 10년? 20년? 아님 평생 동안 난 이 답을 갈구하게 될 지도 모른다.
난 이번 과제가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역사란 무엇인가 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듣고, 읽고, 이해해 보는 것도 내가 발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H 카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인문학에서 굉장히 유명하며, 역사학도들의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책 중 하나라고 들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끝까지 읽기가 매우 힘들었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다 읽을 수 있었다.(서론)
저자 E.h 카는 여섯 개의 목차를 통해 역사가의 의무와 역할, 역사와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 사회와 개인의 관계와 역할, 역사와 과학과 도덕과의 공통점과 차이점,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 진보로서의 역사 등을 다루고 있다. 즉, 이 책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역사와 역사가와 역사서와 인간과 세계로 두루 관찰하는 ‘역사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1부>
1부에서는 역사가와 사실을 다루고 있다. 역사상의 사실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한 존재할 수도 없기 때문에 결국 순수한 채로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없다. 말하자면 그것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하여 항상 굴곡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이 역사책을 읽으려 할 때에 가장 먼저 관심을 두어야 할 일은, “그 책 속에 어떤 사실들이 실려 있느냐는 문제보다도 그 책을 쓴 역사가가 어떠한 사람인가라는 문제이다”라고 이야기 했으며, “역사를 연구하고 싶다면 사실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선 역사가를 연구하라”라고 역사와 역사가에 대한 오해에 대해 기술하였다.
시계의 제반 역사서들은 과거의 모든 역사적 사실을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역사가들이 특정 사실을 골라서 자신의 역사철학에 맞도록 구성한 것이며, 따라서 역사 또는 역사서 읽기를 전후하여 역사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크로체는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며 정의했다. 역사적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 역사를 해석하는 시점의 사화분위기와 학문적 연구동향에 따라 계속해서 역사적 사건에 대해 다른 조명과 해석이 비추어진다.
또한 19세기 랑케는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였다. 역사는 확인된 사실들을 모아둔 것이라며 워털루 전투를 프랑스, 영국인, 독일인, 네덜란드인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역사는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고 기록자의 마음을 통해 굴절된다는 것인데, 과연 어떤 역사가의 주장이 가장 ‘역사의 기록’에 근접한 것일까?
그에 대한 답으로 사실과 주관의 공존. 역사는 역사가가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건을 뽑아 기록하는 게 중요하다는 E. H카의 말을 들 수 있다.
E. H카는 친일파의 서구숭배주의자들이 구성한 한국의 과거 역사와 현대시기가 불신 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명쾌하게 지적한다.
역사가는 임시로 선택된 사실과, 그러한 사실선택을 이끌어준 임시적인 해석, 그것이 타인의 것이건 자신의 것이건 모두를 가지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일이 진해됨에 따라서 해석이나 사실의 선택 및 정리는 다 같이 쌍방향의 상호작용을 통하며 미묘한 반무의식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또한 역사가는 현재의 일부이고 사실은 과거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상호작용에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상호관계가 아울러 내포되는 것이다. “역사가와 역사상의 사실은 서로가 필요한 것이다”라고 피력하고 있다.
결국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결과이며, 현재와 과거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솔직히 첫 번째 장에서는 권기중 선생님 수업시간에서 중간고사 보기 전에 배웠던 내용과 많이 일치해 읽기가 다른 장보다는 수월했다. 하지만 여러 번 읽어도, 정확히 어떤 말을 의미하는 건지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2부>
2부에는 사회와 개인을 다루고 있다. 사회와 개인의 상호관계와 역사의 진행과정에서 사회와 개인의 역할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사회와 개인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고 대립관계가 아닌 상호간 필요한 관계라는 것이다.
J.S 밀의 견해를 들어보면 인간은 함께 모아놨을 때 다른 종류의 실체로 변하는 것이 아니며 어떠한 종류의 실체를 가지고 있다던가 하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 했다. 역사이전의 모든 관계에서 인간은 사회 속에 태어나고 아주 어렸을 적부터 그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사회 속에서 개별화의 과정과 사회의 힘 및 결합력의 증대와의 사이에 대립관계를 설정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일 것이다. 사회의 발전과 개인의 발전은 병행하는 것이며, 서로가 필요조건이 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복잡하고 발달한 사회라고 할 때에 그것은 각 개인의 상호의존관계가 진보되고 복잡한 형태 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다. 근대국가 사회가 개인구성원들의 성격과 사상을 형성하는 힘에 있어서나, 그들 간에 단합성이나 획일성을 이룩해 놓는 힘에 있어서 미개부족 사회보다도 무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우리들은 자유와 평등 사이의 긴장이라든가 개인적인 자유와 사회적인 정의 사이의 긴장이라든가 하는 문제를 추상적인 용어로 이야기하는 도안에 자칫하면 그러한 싸움이 추상적인 관염의 싸움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기 쉽다. 그것은 개인 그 자체와 사회 그 자체와의 투쟁이 아니라 사회 속에 있는 개인집단 상호간의 투쟁인 것이며, 각 집단은 자기편에 유리한 사회정책을 추진하고 자기에게 불리한 사회정책을 저지하려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위인을 역사적 과정의 산물 내지는 그 사역인 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의 형세와 인간의 사상을 변화시키는 사회 세력을 대표하고, 창조하는 뛰어난 개인을 가리켰다.
사회와 개인 간 의 가상적 대립이란 우리들의 사고를 혼란시키는 함정에 불과하고 추상적인 고립된 개인 간 대화가 아니라 금일의 사회와 지난날의 사회의 대화이고, 인간으로 하여금 과거 사회를 이해시키고 현재 사회에 대한 그이 지배를 증진시킨다는 것이 역사의 이중적 기능인 것이다.
역사가로서 역사가를 연구하려면 그의 역사적, 사회적 환경을 연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어 연산군 이라는 인물을 연구할 때, 그의 탐욕과 폭군이 되고자 하는 야망을 보는 것에서 그치는 것보다는 그 당시의 훈구세력과 사림세력의 권력다툼에서부터 시작한다면 연산군의 나쁨에 대한 복잡하고 높은 견해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개인의 행동이 아닌 무의식적인 외부의 어떠한 힘으로만 봐서는 또 다른 문제가 생겨버린다.
<3부>
3부는 역사와 과학과 도덕이라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 세상에는 명칭 이외에는 보편적인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같은 명칭을 가진 사물도 그 하나하나는 모두 개별적이고 단일한 것이다”라는 홈스의 명언을 소개하면서 비판한다. 그런 관점은 자연과학에 있어서도 진실임에 틀림없으며 같은 지질학에도 똑같은 두 개의 지층이 없고 동물도 사람도 똑같은 개별은 없는 것처럼 역사에서도 동일한 두 개의 역사적 사건은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펠레폰네소스 전쟁과 제 2차 세계대전은 크게 다른 것이고 특수한 것이지만, 역사가들은 양자를 모두 전쟁이라고 부른다.
역사는 특수한 것과 일반적인 것과의 관계를 취급하는 것이다. 역사가가 사실과 해석을 분리시킬 수 없듯이 이 양자도 떼놓을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양자 중의 하나만을 우위에 올려놓을 수도 없는 것이라고 한다.
E. H카는 역사가가 보편성과 일반성을 다루는 문제의 진정한 핵심은 “이를 통해서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으려는 데 있다”고 한다. 즉 어떤 한 사건에서 얻어낸 교훈을 딴 대목의 사건에 적용한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일반화를 할 때에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이러한 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에 있어서의 예언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서는 “일반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 사이의 차이점을 놓여 있는 것”이라며 역사가에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일반화란 불가피한 것이고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 비록 개별적인 예언은 아닐지라도 미래행동을 위한 타당하고도 유능한 일반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역사와 과학을 함께 바라보면 역사가는 과학자가 사용하는 같은 방법으로 역사연구를 하고 있다. 이는 기본법칙을 추구하는 것을 단념하고 사물의 동태를 조사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역사가들이 연구과정에서 사용하는 가술의 지위와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지위와의 사이에 유사성이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가설을 설정하고 귀납적인 방법으로 법칙을 찾고 다른 반대 세력들과 가설에 대해 싸우면서 진리에 다가간다. 사실 역사도 똑같다. 역사에는 과학과는 다르게 절대불변의 진리란 게 존재하지 않을 뿐 역사적 사실의 원인과 다양한 가설들로 ‘역사의 기록’을 서술하는 것이다.
이를 전제로 역사와 과학에 대한 현재 시점을 적용해보면, 정치나 경제, 사회문화 현상에 대해 경제학자나 역사학자들, 또는 정치가나 정치 평론 자들이 소위 객관적이라는 전제로 분석, 진단, 예측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객관적일 수 없으며, 그렇다고 주관적이지도 않은, 즉 상호작용에 의하여 미래의 예측이나 예상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반응, 대응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역사와 도덕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역사가가 자기가 취급하는 역사 인물들의 사생활에 대해서 도덕적인 판단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은 오늘날 새삼스럽게 내세울 필요조차 없다”면서 역사가와 도덕가의 입장은 다른 것 이라고 규정한다. 다시 말해 역사가는 도덕적 판단에 의해서 역사를 서술해선 안 된다.
결국 역사가는 과거의 개인에 대해서가 아니라 사건, 제도, 정책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린다고 하는, 보다 이득 있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헨리 8세가 나쁜 남편 이였을지 몰라도 그는 좋은 국왕임을 확실하다.
<4부>
4부에서는 역사에서의 인관관계를 다루고 있다. 역사가에게는 일반화란 불가피한 것이고 또한 일반화를 통해서 비록 개별적인 예언을 아닐지라도 미래행동을 위한 타당하고도 유용한 일반적인 지침을 마련할 수 있다.
즉 E. H 카의 말대로, 개인뿐만 아니라 역사가들 역시 미래에 일어날 역사에 대해 정확하게 예측, 예언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를 돌아보고 현재의 조건을 따져봄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역사에 대한 개연성 또는 합리적 추측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 또는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에게 역사가 중요한 것이다.
역사가란 끊임없이 “왜?”라고 질문하는 것, 그리고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다. 역사가란 한 사건에 대해 한 가지 원인만 중요시 하는 일은 없어야한다. 역사가가 원인의 문제에 접근하는 첫 번째 특색은 한 사건에 관해 여러 가지 원인을 분석 하는 것이라 한다.
책에서는 1917러시아 혁명에 대한 답으로 비유했는데, 요즘 사건에 접목해본다면 세월호 사건의 원인에 대해서 비유해 볼 수 있겠다. 사건의 원인을 화물의 과적, 무분별한 증축, 늦은 구조와 위기관리능력 다양한 이유를 찾는 것이다.
여기서 접근법 두 번째 특색이 필요하다. 저 정도 이유를 찿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원인의 상호관계를 정리하는 것이다. 결론을, 마지막 분석을 궁극적 원인 또는 모든 원인 중의 원인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가의 주제에 대한 해석이라고 한다.
하지만 저렇게 원인을 제시하는데 역사가들은 항상 어떤 원인을 위에 놓아야 하는가에 하는 문제에 귀착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세월호 원인에 대해 항상 어떤 원인이 우선인가 섣불리 정의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측면이라고 본다.
역사에 대해 한편으로는 우연이라고 말한다. 역사는 우연의 집합체 이며 우연에 일치에 의해 결정된 전적으로 우발적인 원인이 결과라고 생각되는 사건들의 연속이라 한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E. H카는 설득력이 없다고 한다.
역사가와 원인의 관계는 역사가와 사실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이중의 상호적 성격을 갖는다. ‘원인은 역사적 과정에 대한 역사가의 해석을 결정하고, 동시에 역사가의 해석은 원인의 선택과 정리를 결정한다.
다시 말해 여러 원인들의 상하 관계, 하나 또는 한 묶음의 원인, 또는 다른 원인의 상대적 중요성이야말로 본질 인 것이다. 해석을 해보자면 원인은 역사가의 해석을 결정하고 역사가의 해석은 원인을 선택하는 것이다.
<5부>
5부에서는 진보로서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역사에서 역전이나 이탈, 중단이 없이 일직선으로만 전진해 나온 진보는 없다고 설명하며, 역사의 의미와 내용, 방향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피력한다.
“유전에 의한 진화는 몇 년 전, 몇 백만 년을 단위로 해서만 측정될 수 있는 것으로써, 유사 이래로 인간에게는 아직도 이렇다 할 생물학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획득에 의한 진보는 세대를 단위로 하여 측정될 수 있는 것이다.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본질은 과거의 여러 세대의 경험을 측정함으로 자기의 가능성을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에 있다. 즉 ”획득된 기량이 세대에서 세대에 전승되는 것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진보를 말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진보의 내용은’ 진보를 믿는다는 것은 결코 어떠한 자동적인 불가피한 과정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을 믿는다는 것을 뜻한다. 역사서술을 진보하는 과학이라고 한 이유는, 그것이 발전해 나가는 제 사건의 진전에 대해서 부단히 넓혀지고 깊어지는 통찰을 마련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저자는 역사에 있어서의 진보는 사실과 가치와의 상호의존과 상호작용을 통해서 이룩되는 것이라 하고, 이러한 상호과정을 가장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객관적인 역사가라고 설명한다.
가장 인상적인 글귀는 역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라는 것은, 역사 자체의 방향감각을 찾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이다 라는 마지막 문장이였다. 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미래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급속히 무관심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역사’라는 것이 축적되어 지금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문화이든 과학이든 과거에 획득된 기술이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 것을 통해 진보하는 것이다. 진보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진보라는 것은 계속되는 여러 시대의 요구사항과 조건에 의해서 각 시대만의 특정한 내용이 채워지는 과정 이라고 한다. 또 객관성에 대해서 E. H카가 짚고 갔다. 역사 사실은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 역사가가 주는 의의에 따라 역사상의 사실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우리의 가치와 관점은 항상 시대와 더불어 이동해 나가며, 그래서 우리들의 눈은 상대적이고 한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 여지위에서 역사사고의 객관성과 유효성은 무엇이고, 이러한 문제를 추구하고 찾아감에 있어 저자의 진가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본론)
책을 읽고 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E. H 카의 명언 중에 하나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역사란 무엇인가에 관해 에드워드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어떻게 보면 61년에 쓰인 책이 2014년 지금까지 한국어로 번역 되서 읽히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도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생각한다. 그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에드워드 카와 어떤 대화를 했을까? 이것이 사실 ‘역사를 무엇인가’를 읽고 난 뒤 마지막 남은 과제라고 생각한다,
앞서 책을 읽기 전에 했던 ‘내 인생의 역사란 무엇일까?’를 해결하기엔 아직 먼 것 같다. 오랜 시간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는데 너무 큰 그림을 보지 않고 보이는 것부터 생각해야 될 것 같다. 아직 내가 머릿속으로 가지고 있는 여러 의문들, 그리고 나의 인생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은 해결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아직 혼란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 해결해나가야 할 과제도 많고 내가 챙겨야할 사람들도 많고, 스스로에게 묻지 못한 답들과 질문도 많다. 그것들에 대한 답들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해보았다. 계속된 고민 끝에 내가 생각해 낸 답은 하나 뿐 이다.
내 인생의 목표 하나를 정해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아가다보면, 내가 품고 있던 여러 의문들에 대한 실마리를 알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한 가닥 한 가닥 엉킨 부분을 풀다보면, 어느새 누군가가 강요하거나 만들어낸 결론이 아닌 나만의 결론에 다다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보다 더 많은 의문들을 품게 된 것 같다. 다시 돌아와서 책을 읽기 전 에 구하려던 답보다 새롭게 얻은,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가진 고민은 ‘지금까지 이 책을 읽는 시간동안 나는 어떤 대화를 했는가? 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난 E. H카 와 많은 교감과 교류를 했다. 그가 가진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신적인 세계와 내가 가진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세계가 서로 뒤 엉킨 것이다. 서로의 가치관과 정신세계가 만나 그가 가진 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았다.
나는 그 답에 대해 독후감 마지막인 만큼 명쾌하게 답을 쓰고 싶고 그래야 할 것 같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단 몇 줄로 내가 이해한 그의 세계를 서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와 난 이 책을 통해 많은 대화를 했다는 점이다. 보통 내가 책을 읽을 때와는 다르게 대화해보려고 노력했고, 또 노력했다.
그 결과를 통해 책을 통해 서로 대화를 한 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그것이 어떤 느낌이지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에게 이는 매우 큰 경험이었고, 엄청난 변화 중에 하나이다. 앞으로도 난 어떤 책을 읽든지 서로 대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러한 점들은 아마 지금 이 책을 읽고 과제하는 많은 친구들도 마찬가지일 것 이라고 예상한다. 중요한 교훈을 얻었지만, 여러 의문을 남긴채로 ‘역사란 무엇인가’읽기를 끝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