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구조적 기아는 선진국에는 없거나 이미 오래전에 퇴치된 전염병이나 질병이 창궐하는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해결하기가 더욱 어렵다.

우리는 남아시아나 아프리카,페루,브라질 등의 대도시 주변에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를 사진으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 예로 필리핀 마닐라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쓰레기 산이 있는데 현지에서는 이 산을 스모키 마운틴 이라고 무른다. 이런 쓰레기 산 옆에는 빈민촌이 들어서 있는데 이곳에는 30만명이 거주하고 있고 그 중 3/4 이 실업자이다.

또한 이집트 카이로의 경우에는 사막이 있는 환경이다 보니 쓰레기 산이 생기면 사막의 건조한 공기가 음식들을 상하지 않게 보존해주기도 한다.

카이로 근처 묘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쓰레기 음식들이 연명이다.

굶주린 사람들은 쓰레기 산 위로 몰려가 곡괭이로 쓰레기를 뒤진다.

고기조각이나 동물의 시체, 빵조각,썩은채소 등을 발견하면 비닐봉지에 담아서 구한 먹을 거리를 빈민가에 가족들에게 가지고 간다.

하지만 그것들안에는 기생충이 득실거리기 때문에 몸을 공격하는 주범이 된다.

이러한 기생충의 칩임의 피해는 주로 어린 아이들에게 더 쉽게 찾아오는데 근본적으로는 영양이 부족한 엄마들에게도 있다.

기력이 딸린 엄마들은 아기에게 줄 젖이 충분하지 않고 영양분이 부족하기 때문에 엄마의 젖을 먹은 아기들은 며칠이 못되어 고통스럽게 죽게 된다.

또한 브라질에서는 실제로 이름도 없는 작은 아이들의 묘라는 무덤이 있는데 그곳은 태어난지 며칠 되지 않아 배고픔과 쇠약,탈수 등으로 숨진 이름 없는 아이들의 무덤이다.

출생신고를 하려면 1-2레알을 내야하는데 빈민들에게는 그 돈을 낼 형편이 안된다.

그래서 아기들은 태어나서 이름 조차 얻지 못한 채 고독하게 죽게 된다.

지구상에는 1분에 250명의 아기가 태어나는데 그중 3분에 2가량이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에서 운명을 맞이한다. 그래서 한 철학자는 이들을 가리켜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이를 돕고자 세계식량계획이라는 기구가 피난민,빈곤층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선진국으로부터 남아도는 식량을 지원받는 방식이었지만 활동방식이 점차 바뀌어 선진국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으면 그 돈으로 식량이 부족한 나라에게 식량을 사들여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뀌어갔다. 초기 방식은 주식의 차이가 있고 음식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지원하는데 문제점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1/4이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소들이 먹어치우는 곡물 사료는가 50만톤에 달한다.

세계식량계획은 반쪽짜리 진실로, 시장가격이 인위적으로 부풀려지기 때문에 식량을 마음대로 확보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결국은 몇몇 금융 자본가들이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들의 엄청난 권력행위로 인해 시장거래가격이 결정된다.

국제적 거래가격은 이윤극대화라는 원칙에 복종한다.

시카고 거래소를 주름잡는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의 정부가 높은 가격을 감당할 수 있을 지 따위는 눈곱만큼도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매주 수백만 달러를 더 벌어들이는 것이며 배고픈 자들에 고통에 대해서는 유엔이 있고 국제 적십자가 있지 않은가 하는 식이다.

일반적으로 수확량,수송경비의 변동,투기적 거래,세계시장의 수요같은 요소가 세계식량가격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부유한 나라들은 식량을 대량으로 폐기 처분 하거나 법률이나 그밖에 조치를 통해 농산물의 생산을 크게 제한하고 있다. 생산자들에게 최저 가격을 보장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예를 들어 얼룩소의 착유량을 제한해야하는데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할당량을 초과하게되면 많은 벌금을 물게 된다.

그럼에도 남는 식량을 가난하고 굶주린 나라에 보내지 않는 이유는

유엔은 나름의 논리를 따르고 있는데 자국의 농민들을 살려야 하고 그 때문에 농산물가격을 높게 유지해야하며 배고픈 사람을 돕는 것은 FAOWFP의 과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개인의 의견을 정리해보자면, 국가의 역할은 국민들의 안보와 안중에 힘써야 하는데 그것이 단지 자국에만 치중되게 된다면 그 국가 또한 피해를 입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자국중심적인 성향은 이해하나 그로인해 파생되는 문제가 크기 때문에 구호중심이 필요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이라는 나라가 방대한 자원과 힘을 가지고 있으면 그에 따르는 내부적인 문제는 당연히 뒤따를 것이다. 편향된 일자리 문제와 자원낭비로 인한 지구온난화, 기득권 층의 욕구에 뒤따라 분열을 통한 내부 혼란 등이 있다. 또한 외부적으로도 미국의 자원을 함몰키시고 빼앗으려는 세력들이 점점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때문에 국가 간에 협력은 매우 중요하며 국가 간 뿐 아니라 파생되는 국제 기구들이 함께 협력될 때에 세계적으로 평화와 안보가 적절히 유지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국가는 안보와 구호의 적절한 배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거대한 사기극 (자기계발서 권하는 사회의 허와 실)

이 책은, 자기계발서를 읽지 말라는 자기계발서다.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이렇게 되겠다. 내용 자체는 분명 흥미롭고 좋은 내용이라고 생각되지만 단순히 거기에서 생각을 그치기에는 모순점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4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각각 자기계발이 널리 퍼지게 된 역사, 자기계발의 담론, 자기계발의 형식, 자기계발의 타겟팅을 주제로 한다. 이 책을 4주에 걸쳐 읽고, 조원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는 동안 나는 감히 내가 한 단계 성장해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는 눈을 키웠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계발은 단순히 자기계발서를 읽는 개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숨쉬고 살아가는 사회 정가운데를 깊이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가장 강하게 들었던 생각은 자기계발서가 마치 종교의 경전같이 느껴졌다는 점이다, 보통 에세이나 자서전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자기계발서는 성인의 삶을 늘어놓은 것 같다. 그 성인, 자기계발서의 모델을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성공 신화는 종교의 성인이 깨달음을 얻는 과정과 같다. 주인공은 보통 평범한 경우가 많다. 평범한 주인공은 늘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힌다. 이것은 운의 문제가 아니라, 삶에 고질적인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라 깨달은 주인공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한다. 무작정 몸으로 고생하기도 하고, 여러 책을 읽기도 하며 어떤 것이 옳은지는 잘 모르지만 여러 가설을 세워 하나하나 실험하기도 한다. 마침내 삶이 완전히 바뀐다. 그 사람이 그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신경쓰지 않은 채로 빛나는 모습만을 꽉 채워 한 권의 책을 완성한다. 그 곳에는 규율처럼,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 적혀있다. 첫째, 아침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둘째, 감정을 잘 다스려라,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한때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살아가는 정답을 찾기 위해 서점을 돌아다니며 자기계발서 읽는 것을 취미처럼 했던 때가 있었다. 참 많은 삶의 방식이 있구나를 깨닫고, 나도 이렇게 한다면 바뀔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게 하는 그 책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고난을 이겨내는 과정 자체가 드라마와 같은 쾌감을 주기 때문에 재미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자기계발서는 잘 팔린다. 그 책을 쓰는 사람들이 정말 사람들을 돕기 위해 그 책을 썼을까? 잘 팔리기 때문에 쓰는 것 아닐까?


자기계발서를 무조건적으로 나쁘게 볼 수 만은 없다. 분명 그로 인해 나름의 깨달음을 얻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삶이 크게 바뀌는 사람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예전의 나처럼 아무 생각도 없이, 비판 의식이 없이 자기계발서를 줄줄 읽으며 언젠가 내가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 책은 사람들에게 그 비판의 시각을 심어준다.


다만 이 책 역시 자기계발서와 비슷한 양상으로 사람들에게 작용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가진 생각이다. ‘맞았어, 그동안 내가 너무 다른 사람들의 방식에 집중했어. 이제는 나의 방식을 찾아 열심히 살아야지!’ 라는 마음을 갖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이 가진 비판적인 생각이 옮아버린 걸지도 모르겠지만, 누구나 각자의 주장에는 허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며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생각의 성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 관심이 많은 사람, 자기계발서를 무비판적인 시선으로 수용하고 있는 사람에게 꼭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실력의 배신 (왜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도 여전히 불행한가?)

실력의 배신  -실력자들  이슬희 개인보고서


실력의 배신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실력주의 사회에 대한 정의와 어두운 그늘과 그에 대한 비판을 말하고 있다. 2부는 실력주의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신실력주의에 대해 설명하고 신실력주의로 가기 위한 길과 교육개혁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3부는 아이들은 위한 교육과 다른 나라들의 교육방식과 정책 그리고 우리나라의 교육 방식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제시하고 있다.

먼저 1부에서는 저자가 말하는 실력에 대한 정의와 노력에 관한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노력에 부모의 경제적인 요소가 포함이 되는가였다. 이부분에서 대다수의 조원들이 동의하고 나또한 동의 하였다. 또 흥미를 느낀 주제가 노력 무한가능론과 노력무용론이었다. 어느쪽에 속하냐고 한다면 나는 노력 무용론이었다. 흔히 노력이 부족해서다. ‘노오력을 하세요라는 말로 1020대 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된 노력이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를 누었다.

2부는 신실력주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고 신실력주의를 어떻게 이루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러나 2부의 내용은 너무 어렵기만 하고 이상적인 내용이 많았고 특별히 인상깊은 주제도 없었다.

3부에서 주입식교육에 대한 내용이 내게는 흥미있게 다가왔다. 흔히 주입식 교육이라고

책을 읽으면서 내내 고등학교때 공부를 포기한 애들에게도 억지로 필기를 시키던 수학 선생님이 생각났다. 포기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마지못해 가르치는 모습과 나와서 문제를 푸는 아이들에게 왜 이걸 못푸냐며 묻고 아이들에게 민망함을 주던 선생님이 생각났다.

3부에서 놀란 것은 선진국보다 아직 개발도상국에 가까운 인도와 브라질의 제도와 정책이었다. 사회적으로 배려가 필요한 이들을 대학정원의 50퍼센트를 이들로 넣어야하며 이후 대학교 내부에서 일어날 차별에 대해서 준비해놓은 것이 정말 좋은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상위권의 성적을 받아 학교에 가는 아이들과 달리 성적이 조금 떨어지는 사배자 전형의 아이들을 위해서 1년정도의 예비교육을 해준다는 것이 인상깊었다.

대입 전형 중 하나인 사회적 배려자 전형이나 지역균등 전형은 상위권 대학에서는 무시받거나 경멸의 대상이라는 말을 듣고 놀랐다. 그들은 자신의 실력으로 학교에 온것이기에 그들은 무시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그들의 실력이 아닌것에 학교를 오게된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토론 중에 학교를 다니면서 사배충이나 지균충에 대한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하자 다른 조원이 우리학교의 주간과 야간의 차별에 대하여 말했다. 주간과 야간의 수업 시간대가 다르다는 것 하나로 인해 동시에 어디든지 차별이 일어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책에서는 아이들에게 진행하는 교육을 개선해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미래에 사회를 이끌어가는 것이 현재 교육받아 사회에 나가게 될 아이들이다.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교육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더 나은 교육방식을 연구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들의 교육에 대해서 깊게 생각할 수 있는 책이었다. 교과목은 아니나 사서 선생으로서 희망 진로를 가지고 있는 나는 전공과 연관지어 한번더 생각할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도서관이 학생들이 받는 교육과 선생들의 교육방식에 어떤식으로 도움을 줄수 있는지 학교에서 도서관이라는 장소가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 어떤 장소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할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우리의 월급은 정의로운가

첫 시작 주제부터 강력한 주제로 접근한다. 바로 비정규직 문제를 대두시킨 구의역 사건 우리가 그동안 방관해왔고 쉬쉬했었던 것들의 문제가 구의역사건,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서 대두 된 안타까운 사건이였다. 현재 우리나라는 최저임금 문제로 나라 안에서 전체적으로 뜨거운 감자이다. 최저임금의 인상률로 인해서 기업과 노조와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른다. 우리의 노동인구중 4/1은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그 임금 노동자는 최저임금으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한다. 요즘 언론들은  최저임금으로 인해서 나라의 경제가 좋지 않은상황으로 몰고가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라는 의문으로 이책을 접근한다면 굉장히 유익할 것 같다. 나는 무조건 적으로 기업이 임금을 뗴어먹는 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업의 목적 자체가 이윤을 창출하는데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임금 조건이 굉장히 열악한 것은 사실이다. 다른 나라를 비교 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든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어째서 안좋은 조건에서 노동을 해야하는가? 우리나라의 노동은 단순히 임금만이 아니라 노동자에게 있어서 상하 구분이 극명한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도 바꾸어야한다. 귀족주의나 극도의 성공주의 이런 항상 나오는 애기들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은 고리 타분하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는 어떤것이 있을까 우리는 모두 고민해봐야한다. 그러의미에서 이책은 우리나라의 노동조건에게 질문을 던진다. 단순히 노동여건을 개선 해주지 않는데 돈을 조금 올리는것이 잘못 된것인가 냐고
  

야시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이 책은 바람의 도시 와 야시 두가지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이야기는 바람의 도시이다.
바람의 도시의 시점은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주인공 7살 무렵 시골길 같은 산책로를 발견한다.
이후 12살이 되었을 무렵 그때의 그 산책길을 친구 가즈키와 걷게되고 한참 걷던 도중 찻집을 발견한다. 그 길은 고도 즉 귀신의 길임을 알게된다.
그리고 한 청년의 도움으로 출구를 통해 나가던 도중 가즈키의 고모리에 의해 가즈키가 총살을 당한다. 친구를 잃은 주인공은 그 청년으로 부터 고도에 길에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비의 사원이 있음을 알게된다. 주인공은 친구 가즈키를 살리기 위해 길을 떠난다. 
가즈키를 살리기 위한 주인공의 험난한 여정 그리고 같이 떠난 형 ‘렌’은 고도에서의 이야기를 들려 준다.
렌이 왜 고도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신과의 대화 그리고 우연히 만난 고모리 를 통해서 그는 잃어버린 기억들을 하나하나 찾아 맞춰 나간다.
그리고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와 주인공의 친구 가즈키를 죽인 고모리와 렌의 싸움 장면을 이해시키는 실마리가 된다.
귀신의 길’고도’ 이야기에 끝에 친구 가즈키를 살리지 못해 참 안타까웠다. 가즈키를 살리기 위해서는 비슷한 또래의 육체, 키워줄 보호자 그리고 목돈
어떻게 보면 승려의 조건이 까다롭게 보일 수 있지만 소설 밖을 나와 본다면 이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당연한 조건일 것이라 생각이 든다.
렌의 어머니의 입장에서도 고도에서 낳은 아이를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신이 끝까지 책임질 수 없는 그런 상황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단편 소설을 통해 사후 세계에 대한 또 다른 생각의 전환이 되었고 생명의 무거움과 죽음의 두려움 그리고 지금 나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느꼈다.

 

두번 째  이야기는 야시 이다.

 

아즈미는 친구 유지에 집에 놀러가 하루밤 지내기로 하였다. 유지는 놀러온 아즈미에게 오늘 밤 야시가 열리니 놀러 가자고 제안한다.

야시란 밤 야에 시장 시 즉 밤에 열리는 시장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즈미는 유지에 손에 이끌려 바닷가를 지나 숲으로 들어간다.
시장이라고 눈 씻고 찾아 볼 수 없는 곳에 시장이 열려 있었다.

아즈미와 유지는 시장을 둘러 본다. 젊어지게 하는 물약 빨리 죽게하는 물약 키커지는 물약 등 신기한 물건들이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가격들은 몇억 엔씩 하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참 시장을 둘러 보는데 나가는 출구는 찾을 수 없었고 몸은 지쳐만 갔다.
그러다 눈앞에 머리카락이 식물인 한 상인으로 부터 이곳 야시는 무조건 물건을 사야만 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믿을 수 없었던 아즈미와 유지는 열심히 출구를 찾아 보지만 상인의 말대로 찾을 수가 없었다.

사실 유지는 어렸을 적 야시에 온 경험이 있었고 그곳을 빠져 나온 방법은 같이 갔던 자신의 동생을 넘기고 야구를 잘하는 능력을 얻어 나온 것이였다.

유지가 다시 돌아온 이유 역시 자신의 동생을 찾기 위함 이였다.

아즈미는 유지가 그 때 처럼 자신을 동생과 바꿔 치기 할 것이라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지는 애써 아니라고 부정한다.

아즈미는 그럼 유지의 말을 믿고 납치상인을 찾아 나서는 것을 도와 준다.
 노신사의 덕분으로 유지와 아즈미는 납치 상인을 찾게 되었지만 아즈미는 자신의 동생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후에 내용의 반전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납치 상인은 잃어버린 동생을 거짓으로 소개 시켜줬고 노신사는 사기친 납치 상인의 목을 자신이 산 칼로 잘라 버린다.
그리고 노신사는 과거를 회상하는데 납치 상인에게 빠져나간 일 그리고 젊음을 팔아 자유를 얻은일 등 알고보니 노신사는 유지의 잃어버린 동생이었다.
이 소설의 복선과 연결된 고리 그리고 마지막 반전이 이 책을 흥미 진진하게 만들어졌다.
유지가 마지막에 야시를 벗어나지 못한것에 연민을 느끼지만 어렸지만 그때의 실수와잘못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하며 눈앞에 이익을 위해 진짜 중요한것을 잃지 말아야 겠다.

위저드 베이커리 (Wizard Bakery)

‘위저드 베이커리’는 내가 중학생 때 매우 좋아했던 책이다. 판타지 소설이란 것을 알 수 있는 제목과 신비로운 책 표지로 홀린 듯이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 판타지스럽고 몽환스러운 분위기에 빠져 읽다 보니 책의 결말이 다가올 때는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책을 다 읽은 후 이 책에 대한 내용이 기억이 나지않을 때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느새 5~6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을 좋아하는 팀원들과 독서클럽팀을 이뤄 이 책을 처음부터 읽게 되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내 기억이 왜곡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내 기억과 같이 몽환적이고 신비한 분위기였으나, 마냥 밝은 분위기가 아닌 어두컴컴한 마치 지하실 같은 분위기였다. 도입 부분에서 주인공의 어린 여동생의 속옷에 피가 묻어있는 것을 주인공이 알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그 여동생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인데 중학생의 나는 그 의미를 어렴풋이 예상만 했을 뿐, 제대로 인지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따라서 나는 도입 부분부터 내 기억 속의 ‘위저드 베이커리’는 없다는 것을 느끼고 충격을 받았으며, 진짜 이 책이 나타내는 메시지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마저 책을 읽었다.

 도입 부분이 지난 후 가정폭력을 피해 위저드 베이커리 안에 들어갔을 때부터 중학생의 내가 느꼈던 분위기가 나타났다. 마법의 빵을 굽고 판매하는 아름다운 위저드 베이커리의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건 단지 위저드 베이커리의 단편적인 모습이었다. 어른이 된 내가 들어간 위저드 베이커리는 신기한 마법만 있는 공간이 아닌 책임이라는 무거운 짐이 함께 있는 공간이었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는 각종 신기한 마법 빵을 판매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고, 싫어하는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등 사람이라면 한 번쯤 가지고 싶을 만한 빵 들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판매하는 빵은 모두 부작용이 있다. 구매자가 원하는 만큼의 효과보다 더욱 과장된 효과들이 나타나고, 마법으로 인해 상대방에게 피해가 가는 만큼 구매자에게도 피해가 더 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이 선택한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 위저드 베이커리를 보다 현실감있게 만들어 준다. 과거의 나는 위저드베이커리가 신비한 마법 세계로 느꼈다면, 지금의 나는 어디엔가 있을 법한 곳으로 느껴졌다. 

 마법이 가득한 이 책의 모든 요소들은 현실성을 띠고 있다. 재혼부부 사이에서 양어머니에게 학대당하는 아이, 양아버지에게 성폭행 당하는 어린 여자아이, 빵을 구매하는 구매자들에게 일어나는 상황 모두 현실에서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이런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나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결말을 더 빨리 보고 싶게 했다. 

 이 책은 아동학대를 당하는 주인공이 부모님을 피해 위저드 베이커리로 들어가서 생긴 일을  나타내는 이야기다.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빵을 판매하고 부작용을 얻어 항의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도 짧게 보여준다. 학대를 피해 위저드 베이커리에서 지낸 주인공이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을 때 주인공의 양어머니가 위저드 베이커리로 주인공을 저주하는 부두 인형 쿠키를 주문한다. 주방장은 이 저주 인형 쿠키를 제작하여 이것과 함께 시간을 돌려주는 ‘타임 리와인더’를 주인공에게 준다. 주인공은 이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고 집에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있는 자신의 여동생을 발견한다. 이때 양어머니가 돌아오고 주인공이 자신의 아이를 성추행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고 주인공에게 달려든다.

 이때 결말은  Y의 경우와 N의 경우 두 가지가 있다. Y의 경우는 양어머니가 달려들때 ‘타임 리와인더’를 삼켜 자신의 아버지와 양어머니가 재혼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때 주인공은 무의식적으로 재혼을 반대하게 되고 아버지는 나중에 어린아이들을 성추행하다가 감옥을 간다. N의 경우는 양어머니가 달려들대 ‘ 타임 리와인더’를 삼키지 못하여 과거로 돌아가지 않은 경우다. 이 경우 양어머니는 나중에 성추행범이 자신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게되 고 주인공의 아버지는 감옥에 들어간다. 두 결말 모두 위저드베이커리답게 지극히 현실적이다. Y의경우 과거로 돌아갔음에도 어린아이들을 성추행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사람의 성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X의경우 역시 아버지가 성추행으로 감옥에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끝맺는다.

 이  책을 읽으며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도입 부분에서는 과거의 내가 느꼈던 것과 다른 무거운 분위기라 놀랐고 책의 중반부에서는 이런 내용을 중학생의 내가 읽어도 되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책의 결말이 다가올 때는 현실적인 모습에 분노하였다. 중학생의 내가 알던 위저드 베이커리와 실제 위저드 베이커리 간의 괴리감을 느끼며 이 책의 내용에 더 몰입하고 분노할 수 있었다. 책을 읽고 난 직후에는 이렇게 무거운 책이 청소년 필독도서라는 게 이해가 되지않았다. 그러나 과거의 나의 생각과 비교하며 독서토론을 하다 보니 나의 생각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깨닫게 되었고 그제야 이 책이 청소년에도 읽고 성인이 되어서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책이라 청소년 필독 도서라는 것을 알 게 되었다. 과거에 이 책을 읽었던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1971409 IT공과대학 유태영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이라는책은 전반적으로 인터넷이 우리의 뇌구조를 바꾸고있다는 주장과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의문점과 흥미를 동시에 일으켰다.
 내용이 그리 어렵지도 않고, 분량이 많은 것도 아닌데 정독은커녕 완독조차
못하고 있는 책이다. 물론 퇴근 후 짬을 내어 띄엄띄엄 읽고 있기는 하지만 그 이유 때문은 아닌 게 분명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주의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세계적인 IT 미래학자이자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니콜라스 카이다. 정보, 기술이 우리의 사회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하고 그에 관한 칼럼을 발표해왔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적확한 예제와 명쾌한 분석으로 IT경제에 관한 진실을 단순 명료하게 소개한다는 평가(「뉴욕 타임스」)를 받는 그는 정보기술이 인류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물론 그 폐해까지도 날카롭게 꼬집는 글을 발표하면서 IT 업계는 물론 비즈니스 전반에 다양한 파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에서 그는 인류가 정보를 다루는 도구의 변화에 따라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리고 현재의 정보기술, 즉 인터넷과 스마트 기기로 압축되는 기술 변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것인지 탁월한 식견으로 풀어냈다.
또한 이책은 인터넷, 정보기술, 스마트 기기의 발달은 우리의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에 거대한 변화를 불러일으켰다고 말하고있다. 책 한 권을 다 읽고 밑줄을 그으며 지식을 얻기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단 몇 분 만에 손쉽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세상이 열린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양의 정보들이 차고 넘치며, 사람들은 걸어 다니면서도 정보를 찾아낸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더 스마트해졌을까? IT 전문가이자 저명한 칼럼리스트인 저자 니콜라스 카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디지털 기기에 종속된 이후 우리의 사고하는 방식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글을 쓰는 방식과 읽는 방식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밝히고있다.

“생각하지 않는사람들“ 이라는 책을 통해 오랫동안 느끼지 못했던 공감능력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다소 어려운 내용들이 있었지만, 뒤로 갈수록 현재사회와 밀접한 인터넷과 컴퓨터 인공지능과 관련된 내용들이 나와서 많은 흥미와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사회의 변화는 혁신적일 것이다. 나는 인공지능이 발달되면 사라지거나 대체될 기술과 직업들을 통해 부정적인 시선으로 느끼고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을 막을수는 없을것이라고 생각하기때문에, 미래지향적인 삶을 추구하면서 먼 미래를 보며 인공지능이 지배하고 대체할 수 없는 기술과 직업들을 파악해 나가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었다.

어른이 되면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보낸 시설 밖 400일의 일상)

우리가 고등학생 때 한 반에서 동고동락했던 특수반 친구들은 어른이 된 지금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책을 읽고 나서야 나는 그것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만약 내가 장애인이
되어 이 사회에서 살아가야 한다면
, 또는 내 소중한 가족이 장애인이라면 나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아주 어릴 때 종종 했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이 너무 막연해서
나는 감히 상상해 볼 수도 없었다
. 장애라는 것은 내게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은 그런 내게 충격적이었다. 책의 도입은 비장애인인 언니 혜영 씨와 장애인인 동생 혜정씨의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다. 장애인 동생을 둔 언니로서 살아왔던 혜영 씨의 기억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 글을 통해 그 어려움을 국가가 아닌 가족이기 때문에 온전히 감당해야했던 가족의 고충이 느낄 수 있었다. 혜영 씨는 혜정 씨와 떨어져 살기 전까지 자신이 이혜정으로 존재한 적이 없음을 이야기한다. 오로지 혜영 씨의 언니로서 존재해야 했던 그녀는 어쩌면 또다른 사회의 피해자일 것이다. 또한 단지 장애인 자녀를 두었다는 이유로 세상에 죄진 것처럼 살아가는 그 어머니의 마음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렇게 견디지 못해 결국 혜정 씨를 장애인 보호 시설에 보내서야 혜정 씨는 이혜정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를
고민할 수 있었다
. 그럼에도 시설에 있을 동생을 돌아볼 수 밖에 없던 그녀는 결국 시설을 나와 새 시작을
할 것 임을 이야기한다
. 장애인 동생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기댈
곳 없었고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안한 발걸음을 뗐다
. 시설을 나와 하루 종일 혜영씨와 혜정씨가
함께 하는 일상을 혜영씨의 관점으로 서술한다
. 어느 날은 친구들과 같이 노래를 부르고 즐겁게 여행을
가기도 하고 스티커 사진을 찍기도 하며 또 어느 날은 다른 장애인분들과 함께 배움을 받을 수 있는 학교를 찾아가고 또 국가의 보조를 받기 위해
집을 나선다
. 그 일상 하나 하나를 덤덤히 서술하며 우리는 그 속에서 우리 사회가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얼마나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 그러나 우리 비장애인에게 장애인은 미지의 존재이다. 우리가 그동안 추측만 하고 결코 이해하지 못했던 장애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장애인에 대해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지, 또 얼마나장애인이라는 편견에 둘러싸여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장애인의 일상이 결코 비장애인인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을 것이다. 불쌍한 것이 아니라 똑같이 소중한 삶이다. 나의 편의를 위해 다른
사람의 삶이 희생될 수 있다면 나의 삶 또한 얼마든지 사라질 수 있기에 우리는 어느새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버린 장애인의 삶을 알아야한다
. 또한 장애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시선과 불편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는 가족의 삶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시설이 장애인을 가두기 위한 곳인지 보조하기 위한 곳인지 실태를 알아야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작은 문제를 인식하고 똑바로 바라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그런 계기를 확실히 짚어주고 또한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할 지향점을 제시하고 그런 사회를 꿈꾸게 한다
.

어른이 되면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보낸 시설 밖 400일의 일상)

평소 일상이라고 생각하면 알람을 듣고 혼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씻고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다가 집에 오거나 약속이 있으면 다른 곳을 가는 것을 떠올린다이러한 하루 일과에 내가 혼자서 하지 못하는 일은 거의 없다하지만 이 일상이란 것이 나에게만 적용되는 일상이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일상이 아니다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다그렇게 모든 사람들은 당연하게 자기만의 특별한자신에게 당연한 일상을 가지고 살아간다그리고 비장애인들이 그런 것처럼그 일상은 장애인들도 마찬가지다다른 사람들과 다른 일상일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당연한 일상을 가지고 살아간다장애인이라서 특별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내 옆의 친구가가족이 그렇듯 당연하고 특별한 일상을 살아간다그리고 우리들의 일상에 불편한 점이 있듯장애인들에게도 불편한 일상이 있다우리가 우리 일상의 불편함에 분노 하듯 혜정씨는 혜영씨의 불편함에 분노했다비장애인들의 일상을 보장받기 위해 장애인의 인권이 침해당하는 현실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장애인의 삶을 불쌍하게약간 높은 위치에서 바라본다고 생각했던 나의 시선을 바꾸어주었다혜영씨의 일상을 장애인의 일상이라는 이유로 조금 특별하고 측은한 마음을 품고 읽기 시작했다하지만 우리들의 일상이 각자 다른 것처럼 조금 다르고 불편할 뿐이지 동정하고 불쌍하게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느꼈다우리가 봐야할 것은 그들의 불쌍한 삶이 아니라 그들이 받는 비인간적인 대우였다혜영씨와 혜정씨의 일상을일상을 찾아가는 발걸음을 지켜보는 내내 즐거웠고분노했다혼자 읽고 끝냈다면 그저 감상에 지나지 않았을 텐데 함께 읽고 각자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독서클럽이라는 자리가 있어 조금이라도 더 깊이 생각하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아 4주 동안 보람찼다모두가 당연하게 누린다고 생각한 일상을 정말 모두가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가 조성되도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실력의 배신 (왜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도 여전히 불행한가?)

제목을 보면 마치 우리는 왜 실력을 갖추고 있어도 성공할 수 없는가에 관해 이야기할 것으로 보이는 책이었다. 실제로도 그런 책이라고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실제 책의 내용은 그것과 조금 달랐다.
교육전문가인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실력의 성공 신화는 실제로는 진짜 실력이 아닌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성공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실력만으로 성공하는 사회는 결코 평등한 사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실력으로 이루어낸 성공은 누구나 가능한 것이므로 평등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저자는 한 사람의 실력을 만드는 데에 들어가는 데에 얼마나 많은 환경이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말한다. 한명이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의 경제력이나 학교의 지원 등 많은 요소가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무조건적인 실력주의에 대한 찬양은 사회를 오히려 불평등하게 만들며, 소모적인 경쟁을 부추긴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성공을 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개인의 실력으로 정도를 나누는 것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사람의 실력이라는 것이 그렇게 평등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러한 실력주의의 개선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제시한다. 그 방안 중에는 너무 이상적인 내용도 있었지만 어떤 방안은 실제로 적용된다면 실제 문제의 개선에 도움이 될 것 같은 내용도 있었다. 이번 도서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 사회가 현재 나아가고 있는 이 무한 경쟁사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신의 능력을 갖추고 성공하기 위해 계속해서 스펙을 쌓고 노력해 성공을 얻는 것이 이 경쟁사회에 대한 승리인 것이 아니라 사람을 실력으로만 재단하는 것이 아닌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진짜 이러한 경쟁사회에 대한 승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