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밝거나,지나치게 자신에게 엄격하거나, 지나치게 잘해야 된다 생각하거나, 지나치게 눈치를 보거나, 지나치게 잘 참거나 , 지나치게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은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지나치게 밝거나,지나치게 자신에게 엄격하거나, 지나치게 잘해야 된다 생각하거나, 지나치게 눈치를 보거나, 지나치게 잘 참거나 , 지나치게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은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1969년 고교 야구 팀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11번의 감독을 맡았고 8번의 불명의 퇴진을 당했지만 쌍방울, SK등 여러 약체팀을 맡아 강팀으로 성장시키는 이른바 ‘마법’을 보여주며 강팀으로 성장 시켰고 그 과정이 책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김성근 감독의 철학과 노하우를 엿볼수 있었습니다.
선수 하나하나의 개인 역량을 세밀하게 체크하고 메모하며 비주전 선수의 가능성을 보고 기회를 주어 성장시키고 전력을 분석해서 데이터 기반의 전술로 개개인의 역량과 팀의 역량을 성장시킨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허나 책을 읽으면서도 세간에서 흔히 지적받는 선수 기용이라던지 프런트와의 마찰이라던지 여러 야구에서의 매너라던지 김성근 감독의 단점이 책에서도 많이 보였으며 정신론적인 내용 또한 많이 있었기에 실력은 있지만 과연 무결한 명장일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재일 교포라는 한국 일본에서도 재일/반쪽발이 라는 차별속에 한국 야구에 큰 획을 그었고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는 사람으로서의 카리스마를 엿볼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책의 내용보다 그 제목이 워낙 유명해서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주는 느낌만큼 정말로 난해하고 복잡한 소설인 것 같다. 인간의 마음만큼이나 어떤 하나로 정의되거나 확정할 수 없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복잡한 심경만큼 그 복잡난해한 마음의 혼란스러움이 느껴지는 듯 하다.
네 명의 연애소설.-이 소설이 연애소설인 줄도 몰랐는데,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사실 읽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왠지 어렵고 지루할 것 같아 손이 안가는 소설이었는데, 생각보다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난해하긴 하다. 읽기는 쉽지만, 그 뜻을 새길수록 더 복잡해지는 소설같기도 하다. 아마 한 번 읽어서는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을 충분히 느끼지 못할것 같기도 하다. 여러 번 읽어보아야 할 소설인 듯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자신의 인생에서 평생 가벼움을 추구했지만 정작 어느 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무거움의 의미를 알게 된 순간. 그 무거움이 자신에게 온전히 다가올 때의 그 무섭고도 아득한 기분이란 어떤 것인지.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뒤집어 생각해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 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 _p.9
자유롭고 가볍게 살 것인지, 무거움을 지고 살아갈 것인지. 등장인물들이 사랑하는 모습들로 표현했지만, 더 나아가 삶의 모습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사실 어느 한쪽으로만 일관되게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우리가 속한 사회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그 이전에 한 개인 안에도 여러 가지 모습들이 있기에 늘 한 방향의 올곧은 선택을 할 수 없다. 많이 알게 돼서 인지, 아님 우유부단해진 건지 전에는 비교적 명확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가끔은 고민이 된다. 그 반대 방향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나 부러움이 생기기도 한다. 좀 더 나이를 먹으면 흔들리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이 짙어지는 깊고도 따뜻한 책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 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작가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1980년 5월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다.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통해 저자 특유의 정교하고도 밀도 있는 문장으로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게 된 중학생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고통 받는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며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던 그는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날, 돌아오라는 엄마와 돌아가라는 형, 누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동호는 도청에 남는다. 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들은 5·18 이후 경찰에 연행되어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살아 있다는 것을 치욕스러운 고통으로 여기거나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다. 저자는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 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2017년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말라파르테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그날 해 질 녁에 느이 아부지 어깨를 짚고 절름절름 옥상에 올라갔다이. 난간에 기대서서 현수막을 길게 내리고 소리질렀다이. 내 아들을 살려내라아. 살인마 전두환을 찢어죽이자아. 정수리까지 피가 뜨거워지게 소리 질렀다이. 경찰들이 비상계단으로 올라올 때까지, 나를 들쳐메고서 입원실 침대에 던져놓을 때까지 그렇게 소리 질렀다이.” 189, 190p, 6장 꽃 핀 쪽으로
각 장의 목소리가 독보적이었지만, 6장은 ‘소년‘의 어머니가 들려주는 육성이 내내 귀에 맴도는 기분이었다. 그 먹먹함이, 그 분노가 가슴에 차오르곤 하였다. 필연적으로 겹쳐지는 각 장의 전개, 그럼에도 독립적으로 펼쳐지는 한 사람의 이야기, 사실을 뚫고 가슴을 울리는 묘사, 책을 읽는 내내 이것이야말로 소설이구나 생각했다.
소년이 온다는 그동안 많이 다뤄지지 않았고 영화로서만 많이 다뤄졌던 그 이야기를 수면 위로 그리고 놀라운 문학적인 필체와 함께 씌어졌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아픔이 되살아나고 부끄러운 역사가 되살아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진실을 밝혀야 하고 그리고 이겨야 한다.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들 너머 조금씩 드러나는 진실. 끝나지 못할 소설의 ‘끝‘에서는 새로운 아픔이 아닌 한 단계 진보된 민주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남은 자들은 죄책감과 책임감을 갖고 살아갈 것이다. 그것은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일이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언가라도 해보는 것 일테다. 이제, 우리는 ‘그 도시‘를 광주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소설가 한강은 진실을 담아 소설을 썼다. 소설로 ‘소년‘을 부르고 있다. 언제까지나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마다 ‘소년‘은 올 것이었다.
<빛의 과거>는 1977년에서 2017년에 이르기까지 한 여대 기숙사에서 만난 여성들의 미묘한 관계 속에서 불완전한 청춘의 민낯을 드러내며, 한 개인의 성격 혹은 당대의 풍속과 문화적 격차를 통해 ‘다름’과 ‘섞임’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다룬 소설이다.
1977년의 시대상은 독재 정권이 대한민국을 장악한 시대로, 이제 막 성인이 된 유경은 그간 주어진 대로 수긍해야 하는 미성년으로서 ‘다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운영되는 기숙사에 들어설 때만 하더라도 섞인다는 것의 비극 또한 당연히 알지 못했다.
국문과 1학년으로 막 입학한 그녀는 322호로 배정받아 그곳에서 화학과 3학년 최성옥, 교육학과 2학년 양애란, 의류학과 1학년 오현수와 룸메이트가 된다. 최성옥과 친한 417호의 송선미 덕분에 그곳 룸메이트인 곽주아, 김희진, 이재숙과도 자연스레 교류하기에 이른다. 그녀들은 각기 다른 지점으로부터 다른 조건을 지니고 떠나왔다. 저마다 다른 지역 출신과 계층적 배경 속에서 자란 만큼 의식하든 안 하든 자기라는 존재가 다름의 형태로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이를 테면 무리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조용히 발전시키는 오현수, 매사에 즉흥적이고 변덕이 심하며 자신의 욕구 충족에 충실한 양애란, 항상 자신이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김희진, 다른 사람의 청순과 정숙까지 관리하려 드는 곽주아 등이 그렇다. 한편, 유경은 평소 말을 더듬는 게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해서 그것을 숨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친밀한 만남에서는 과장된 사교력을 연기하며 입담과 재치를 발휘하는 데 적극적일 데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는 ‘회피’에 가까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같은 생활공간에서의 다름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개별적인 ‘다름’은 앞으로 이어질 기숙사 생활에서의 여러 에피소드 등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섞임’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고 거기에는 비극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서투름과 욕망의 서사가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의 관계성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훈육과 세뇌, 복종과 강제력이 동원된 사회 속에서 자라난 미성년이 사감과 부사감으로 대표되는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제한된 청춘의 자유를 누리는 모습이 인상깊다. 그것은 고스란히 한국 근대 여성의 정체성으로 연결되어 ‘기숙사가 미팅을 위한 일종의 물류 창고인 셈이었고 일단 필요한 물량은 채울 수 있었던 것’으로 묘사되고, ‘여자들 점수 매기기가 주된 화제이며 누구는 못생겨서 얼굴에 보자기 띄우고 해야 한다는 둥 우연히 지켜진 처녀성은 가치가 없다는 둥 키득거리는 가운데 동료애가 싹트는 남자’들로 인해 여성은 여전히 제한된 가능성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한편으로는 유경이 이왕 대학 학보사 기자가 된 만큼 좀 더 밀도 있는 정치적, 사회적인 목소리가 드러났더라면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이 역시 당시 여성이 중심이 될 수 없었던 현실, 즉 주변부에 머무르게 했던 현실을 반영한 작가의 정교한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내 납득하게 된다.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해 사회의 모든 면을 관리, 지배하고 인간의 추생과 자유까지 통제하는 미래 문명 세계를 그린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금세기에 미래를 가장 깊이 있고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가족이라는 유대가 사라진 세계, 죽음까지도 익숙해지도록 길들이기 훈련을 받는 세상에서 인간은 최소한의 존엄성과 인간적 가치, 그리고 스스로 생각할 자유마저 박탈당한다.
다섯 개의 계급으로 이루어진 런던 사회 속에서 그 모두는 질서를 지키며 안정적으로 살아가고, 그것이 곧 강요일지라도 완벽한 행복임을 확신한다. 그 완벽한 행복은 곧 유일한 정답처럼 여겨진채 지속된다. 이 퇴색한 회색빛 사회의 공장에서 하나의 난자로 여러 일란성 쌍둥이들을 만들어낸다. 이들이 아기를 생산해내는 과정에서부터 계급이 나뉘어진다. 계급은 육안으로도 쉽게 가늠할 수 있게 태아 단계에서부터 육체적인 차이를 만든다. 최상층 계급인 알파플러스는 큰 키에 강인한 몸과 높은 지능이 부여되는 반면, 최하층 계급으로 설정된 엡실론들은 성장호르몬을 멈추게 해 난쟁이로 만든다. 출생 후에는 계급과 그가 속한 기능에 맞게 파블로프 습성 훈련, 최면 학습 등 무의식 훈련을 받게 된다. 이들은 끝없이 반복되는 수면 학습과 세뇌를 통해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고 정해진 운명에 순응한다. 노화도 겪지 않고, 책임도 도덕도 없고, 정신적인 외로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쾌락과 만족감뿐이다. 정해진 노동 시간 이외에는 단순한 자극으로만 이루어진 오락들로 꽉 짜여 있으며, 혹 나쁜 기분이 들거나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면 항상 소마라는 가상의 약을 통해 즉각적인 쾌감을 경험한다. 마약과도 같은 소마는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사고할 능력을 빼앗는다. 때문에 이 완벽한 유토피아에서는 누구나 다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 통제 없는 구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들이 ‘원시 지역의 야만인‘이라 표현하는) 존이 우연히 신세계로 초대받는다. 그는 처음 보는 고도의 과학 문명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설계된 세계에 감탄하지만, 통제된 질서와 강요된 안정에 강한 환멸을 느낀다. 결국 그는 문명에 절망하고 좌절한 채 불편한 고독을 스스로 선택한다. 소설에서 존이 책의 제목인 ‘멋진 신세계’를 몇 번 언급한다. 초반엔 통제 없는 구역에서 자란 존이 문명세계를 동경하기에 “오 그런 사람들이 사는 멋진 신세계여. 우리 당장 출발합시다”라는 말을 한다. 반면에 후반부에서는 문명사회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깨닫고서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우냐! 멋진 신세계여…….”하고 조롱을 한다. 작가는 반쯤 미쳐버린 존을 통해 미래사회의 한계를 보여준다.
헉슬리는 야만인 청년 존을 통해 두 세계, 즉 유토피아 세계와 원시 세계를 비교함으로써, 우리의 현재와 미래상을 병립시켜 보여준다. 오로지 최대의 능률과 발전만을 목표로 삼는 현대 과학 문명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함께, 곧 도래할 섬뜩한 미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에게는 무엇이 참된 이상향이며, 우리들은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답을 알아내는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숙제로 남아 있다.
현 자본주의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국제 경제와 국내 경제와의 관계 그 중 중국경제와 우리 경제에 관한 이야기, 경제 사이클의 관한 이야기, 인플레이션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한국에서 가장 핫한 부동산 이야기 등을 담은 책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가지고 있는 생각은 어떤 식으로든 앞날이 호황일지 불황일지 절대로 예측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어떤 변수가 도처에 있을지 모르기 때문인데 다른 변수가 없다는 가정하에서 지금껏 흘러온 상황을 충분히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투자자의 관점이라면 충분히 상황에 적용해 볼만한 내용도 더러 있었지만 저자가 한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전망하지 않았기에 저자도 공포론자인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들기도 했습니다.
충분히 공부를 하는 사람입장에서 얻을 거리도 많았지만 어쨋든 책 한권이기에 걸러 들을것은 걸러 듣고 취할것은 취하자 라는 생각이 많이 드는 도서였습니다.
처음 책의 제목을
보고 느낀 생각은, ‘차별에 찬성한다니, 대체 어느 누가 차별이라는 불평등에 찬성을 하겠는가?’ 였다. 특히나 취업을 목전에 둔 20대가 말이다. 하지만 나 또한 차별에 찬성하는 20대 중 한 명이라는 점을 알게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런 깨달음이 저자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저자가 특히나 문제시하는 것은 자기계발서였다.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자기계발서들, 그리고 그 성공 사례에 중독되어 강박증에 시달리는 나라가 된지 벌써 몇 십년이 되었다고 한다. 자기계발서는 계발이라는 이름을 담고 있지만 자신의 능력 신장이 아닌 노력을 강요하는 책이 되었다. 즉 사람을 현실에 순응하게 만들고 공장 부품을 찍어내듯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으로 만들기 위한 책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나는 그 의견에 찬성한다. 나도 본래 자기계발은 취업을 위한 활동들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독서 클럽 팀원들과 대화하며 자기 자신을 위한 활동 전반을 자기 계발이라 칭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간상에 자신을 끼워 넣어도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아마 이런 생각들이 자기계발서에 중독된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책의 저자가 집어낸 사회의 온갖 문제점들엔 이견이 없지만, 분명히 현 20대가 처한 상황은 자기계발서 뿐 아니라 다른 요인들도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선 자기계발서와 취업, 그리고 20대에만 국한해 책을 풀어나가려 해 읽으면서 의아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자기계발서에 얽힌, 어쩌면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글을 읽어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