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과거>는 1977년에서 2017년에 이르기까지 한 여대 기숙사에서 만난 여성들의 미묘한 관계 속에서 불완전한 청춘의 민낯을 드러내며, 한 개인의 성격 혹은 당대의 풍속과 문화적 격차를 통해 ‘다름’과 ‘섞임’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다룬 소설이다.
1977년의 시대상은 독재 정권이 대한민국을 장악한 시대로, 이제 막 성인이 된 유경은 그간 주어진 대로 수긍해야 하는 미성년으로서 ‘다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고,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운영되는 기숙사에 들어설 때만 하더라도 섞인다는 것의 비극 또한 당연히 알지 못했다.
국문과 1학년으로 막 입학한 그녀는 322호로 배정받아 그곳에서 화학과 3학년 최성옥, 교육학과 2학년 양애란, 의류학과 1학년 오현수와 룸메이트가 된다. 최성옥과 친한 417호의 송선미 덕분에 그곳 룸메이트인 곽주아, 김희진, 이재숙과도 자연스레 교류하기에 이른다. 그녀들은 각기 다른 지점으로부터 다른 조건을 지니고 떠나왔다. 저마다 다른 지역 출신과 계층적 배경 속에서 자란 만큼 의식하든 안 하든 자기라는 존재가 다름의 형태로 드러나게 되어 있었다. 이를 테면 무리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조용히 발전시키는 오현수, 매사에 즉흥적이고 변덕이 심하며 자신의 욕구 충족에 충실한 양애란, 항상 자신이 주인공이 되길 바라는 김희진, 다른 사람의 청순과 정숙까지 관리하려 드는 곽주아 등이 그렇다. 한편, 유경은 평소 말을 더듬는 게 자신의 약점이라고 생각해서 그것을 숨기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친밀한 만남에서는 과장된 사교력을 연기하며 입담과 재치를 발휘하는 데 적극적일 데가 있었다. 그러면서도 어떤 결정적인 순간에는 ‘회피’에 가까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렇듯 같은 생활공간에서의 다름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개별적인 ‘다름’은 앞으로 이어질 기숙사 생활에서의 여러 에피소드 등을 통해서 필연적으로 ‘섞임’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고 거기에는 비극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서투름과 욕망의 서사가 개입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의 관계성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점에 초점을 맞추면 좀 더 재미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훈육과 세뇌, 복종과 강제력이 동원된 사회 속에서 자라난 미성년이 사감과 부사감으로 대표되는 엄격한 규율과 통제 속에서 제한된 청춘의 자유를 누리는 모습이 인상깊다. 그것은 고스란히 한국 근대 여성의 정체성으로 연결되어 ‘기숙사가 미팅을 위한 일종의 물류 창고인 셈이었고 일단 필요한 물량은 채울 수 있었던 것’으로 묘사되고, ‘여자들 점수 매기기가 주된 화제이며 누구는 못생겨서 얼굴에 보자기 띄우고 해야 한다는 둥 우연히 지켜진 처녀성은 가치가 없다는 둥 키득거리는 가운데 동료애가 싹트는 남자’들로 인해 여성은 여전히 제한된 가능성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한편으로는 유경이 이왕 대학 학보사 기자가 된 만큼 좀 더 밀도 있는 정치적, 사회적인 목소리가 드러났더라면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이 역시 당시 여성이 중심이 될 수 없었던 현실, 즉 주변부에 머무르게 했던 현실을 반영한 작가의 정교한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내 납득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