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들

 2018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대표작 <방랑자들>. 소설을 가리켜 국경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는 심오한 소통과 공감의 수단이라고 이야기하는 저자가 지향하는 가치가 생생하게 빛나는 이 작품은 2008년 폴란드 최고의 문학상인 니케 문학상을, 2018년도에는 맨부커 상 인터내셔널 부분을 수상했다.
 이 책은 미술로 따지자면 추상화이고 데칼코마니 형식이다.소설이 이렇게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냥 무거운 소설이 아니라, 전공 서적을 읽는 느낌처럼 어려웠다. 여행을 소재로 한 소설이어서 처음 읽어 내려갈 때에는 프랑수와 를로르의 ‘꾸뻬씨의 행복여행’ 같은 부류라 생각했다. 근데 그러기에 이 소설은 책 두께만큼이나 무겁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만해도 수 백명이나 되는 듯하고 이야기가 앞부분과 이어지고 있는건지, 지금 이 이야기를 누가 하는 것인지 헷갈렸다.마치 최수철 작가의 ‘독의 꽃’을 읽는 느낌이었다. 작중인물이 끊임없이 바뀌고 소설을 이야기하는 목소리도 계속 바뀐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백과사전식 정보 페이지도 글을 읽는데 헷갈리게 만들었다. 글 한 편 한 편의 결말이 열려있었고, 이 이야기가 왜 나오는 것인가란 의구심이 들었다.하지만, 책 중간이 넘어가면서부터 마치 연관성 없던 이야기들이 미미하게 연관성을 가지면서 단편이 모인 글인데 마치 크게 보면 전체적으로 하나의 이야기처럼 기, 승, 전, 결의 구조를 띄면서 클라이막스 구간도 있는듯 느껴졌다. 이야기 중심부 부터 앞장으로 다시 넘어가는 이야기 구조가 마치 책 중간을 두고 펼쳤을 때 데칼코마니 처럼 대칭되어 이어지는 느낌도 받았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은 연결성이 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을 모아서 여행서인듯 보이지만 결국 생, 로, 병, 사, 희, 로, 애, 락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마치 철학책 한 권을 읽은 느낌이고 한 번으로 끝날 수 있는 책은 아니었다. 그러기에 책을 읽다 덮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을 담고 있는 책이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다.
 “이야기에는 완벽한 통제가 도저히 불가능한, 고유의 타성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는 나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자신감이 없고 우유부단하며 쉽게 현혹당하는 사람들. 단순하고 무지한 사람들.” _p.323

한여름 밤의 꿈

 셰익스피어의 4대 희극 중 한 편인 <한여름 밤의 꿈>은 요정의 왕 오베론과 요정의 여왕 티타니아의 숲에 발을 디딘 네 명의 남녀(허미아, 라이샌더, 드미트리우스, 헬레나)가 숲에서 하루 밤을 보내며 겪는 사랑 찾기가 주 내용이지만 단순히 웃으면서 읽을 정도로 만만한 내용이 아니었다.

 잠자는 사람의 눈꺼풀에 팬지 꽃즙을 바르면 눈을 떴을 때 맨 처음 보는 생물(남자든, 여자든, 짐승이든)에게 미치도록 사랑을 느끼는 데, 문제는 이 꽃즙을 요정인 로빈 굿펠로, 일명 퍽이 라이샌더를 드미트리우스로 착각하면서 소동으로 발전한다. 퍽은 오베론의 명령으로 꽃즙을 요정 여왕 티타니아, 라이샌더, 드리트리우스에게 바른다. 티타니아의 경우는 오베른이 원하는 대로 당나귀 머리의 바틈을 사랑하게 되어 성공하지만, 퍽의 착각은 허미아, 라이샌더, 드미트리우스, 헬레나의 사랑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다. 서로 사랑하여 아테네를 떠나 결혼하려고 도망치던 허미아와 라이샌더, 허미아의 아버지가 선택한 사윗감인 드미트리우스, 드미트리우스를 사랑하는 헬레나. 이들의 관계는 엉뚱한 팬지 꽃즙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외부의 영향(오베론과 퍽이라는 타인의 개입이다.)으로 라이샌더는 허미아가 아닌 헬레나에게 열렬한 사랑을  호소하고 드미트리우스도 자신이 버린 헬레나를 얻으려고 라이샌더와 다툰다. 갑작스런 두 남자의 변심에 허미아는 충격을 받고 헬레나는 허미아와 두 남자가 자신을 놀리려고 작당했다고 의심한다.  꽃즙 때문에 그 바로 직전까지 열렬히 사랑한 허미아를 일시적으로 헌신짝처럼 버리듯 배신한 라이샌더나 헬레나를 혐오한다고 외치던 드미트리우스가 꽃즙때문에 헬레나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장면은 인간이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이들의 어처구니 없는 관계는 오베론의 개입으로 다시 원래대로 재정리된다. 라이샌더와 허미아, 드미트리우스와 헬레나 커플의 탄생이다. 
 이 극 안의 또 다른 극인 <피라무스와 디스비>이야기가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이야기라고 하는데, 셰익스피어가 같은 시기에 “로미오와 줄리엣”도 창착했다고 한다. 이 또다른 극은 비극적이지만 바틈과 그의 직공일행들을 통해서 희극으로 변질된다. 꽃즙때문에 요정의 여왕인 티타니아가 일시적으로 사랑하게 되는 바틈은 사랑이나 상상력에는 일절 관심없는 인물이다. 그는 티타니아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에게는 의미없는 일이고 비극적인 이야기조차 그는 쓸떼없이 불필요한, 일상에 필요없는 귀찮은 것으로 치부한다. 진실한 사랑이란 게 어쩌면 제눈의 안경일지도 모른다는 한바탕의 폭소는 진실한 사랑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한여름의 환상과도 같을 수 있다는 묘한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희극이든 비극이든 작가나 독자에게는 그저 종이 한장의 차이인 것일까…?
 아테네의 테세우스가 하는 말이 귀에 남는 것도 그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상한 게 사실보다 더 많지요. 난 절대로 이런 옛 전설이나 요정의 장난을 못 믿겠소. 연인들과 광인들은 머리가 너무나 들끓고 너무나 조형력이 강하여 차가운 이성으로 파악하는 것보다 더 많은 걸 감지하오, 광인과 연인과 그리고 시민은 오로지 상상으로 꽉 차 있는 자들이오 
 -중략-
 시인의 두 눈이 세련된 광기로 구르면서 하늘에서 땅, 땅에서 하늘까지 쳐다보고 상상력이 알려지지 않았던 형상들을 구체화함에 따라 시인의 펜촉은 그것들을 형체 있는 것으로 바꾸면서
 무형물들에게 거주지와 이름을 준다오 강력한 상상력은 속임수가 뛰어나서 그 어떤 기쁨을 감지만 하여도 그 기쁨의 원인이나 제공자를 떠올리오 또는 밤에 무언가가 두렵다고 상상하면 덤불은 얼마나 쉽사리 곰으로 보입니까! ‘_p.91  

모비 딕 1

 모비딕 완역본 읽기를 끝냈다. 3개월간 우리집 책 받침에 얌전히 펼쳐져 있었다. 두께가 만만치 않아 이동 하면서 읽기엔  불편해서 늘 붙박이로 있었고, 읽기는 참으로 허름하게 읽었다. 그저 마지막 까지 읽기를 끝낸 것으로 만족한다. 이 책은 곳곳에서 기억에 남는, 혹은 길이 기억하고 싶은 구절들이 많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앞장을 펼치니 딱 한 문장만이 기억에 남는다. “내 이름을 이슈메일 이라고 해두자.” 로 시작 하는 이 문장. 이 책은 이슈메일 1인칭 소설이다. 주석도 어찌나 친절히 잘  정리되어 있던지 이 책 읽는데 모르는 것이 나와도 별 어려움 없다. 그 긴 내용들이 뭐였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모비딕에게 한 쪽 다리를  빼앗긴 이후로 오로지 복수를 위해 흰 고래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선장 에이헤브의 기다림이  이 책을  언제 끝낼 수 있을까? 하는 내 기다림과 견줄만하다. 왜냐하면 그 고래는 책의 가장 마지막 장에서 마침내 나타난다.  그리고 3일간 모비딕을 추적 하지만  피쿼드호는 산산 조각이 났다. 선장을 비롯 모든 선원들은 물 속으로 사라졌고 이슈메일만이 살아 남아 그 긴 고래잡이의 여정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이슈메일…구약성서에 나오는 이스마엘에서 유래한 인물이다.  ‘세상에서 추방당한 자’ 고래잡이의 여정을 우리에게 들려주려고 멜빌이 선택한 사람. 이 책은 그 긴 내용에도 불구하고 옮긴이의 해설을 읽으면서 완전 다른 작품이 된다. 멜빌의 시대(1819년 생)적 배경과 정치적 배경 그리고 종교적 내용까지 곁들인 번역가의 이야기는 내가 알아내지 못한 이 소설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비딕은 고래잡이를 통해 인간사회를 이끌어가는 용기와 신뢰와 믿음과 잘못된 집착을 그린 책이다. 모비딕은 위험을 향해 돌진해가는 돈키호테와 같은 선장 아합을 통해 자기와 자기에 속한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무모하고 장렬한 집착을 그린 대 서사시이다. 어떻게 묘사해도 모비딕이 주는 묘한 매력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다. 이 책은 그 어느 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장대함과 섬세함과 구체성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혜와 인간 내면의 내밀한 그 어떤 감성까지도 다 이끌어내는 책이다. 번역의 훌륭함과 뛰어남이 한껏 발휘되어 번역서의 껄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않고 읽을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위대한 개츠비 (세계문학전집 75)

 경쟁만이 난무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하루하루를 숫자 놀음만 하며 살아가는 ‘껍데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저 눈에 보이는 휘황찬란한 황금을 ̫기 위해, 인간에게 있어서 어떠한 것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내면의 ‘알맹이’를 외면하지는 않았는가? 위 소설을 마치면서 나 자신은 이러한 의문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가 사는 이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위대함’을 가령,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하듯이 남들보다 막대한 부를 쌓은 사람이나, 더 높은 위치, 지위에 올라서서 그들을 호령하는 인물에게 부여한다. 하지만 개츠비라는 인물의 위대함은 이러한 사람들과 동급이라서 붙여진게 아니다. 그들을 뛰어넘는 능력으로 이 사회를 재패한 영웅인 것도 아니다. 종이 쪼가리에 모든 것을 바치는 우리들이 의식 저편으로 미뤘던 ‘낭만’이라는 보석을 끝까지 간직했기에 위대한 것이다. 
 ‘데이지’는 위대했을까? 일견 개츠비와 만난 후, 그와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고, 이성보다 감정에 호소하는 인물로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현실을 택했다. 감당할 수 없는 큰 위협이 닥쳤을 때, 자연스럽게 그녀는 이상을 버렸다. 뿐만 아니라, 애초에 사랑에 대한 주체가 그가 아닌 그가 지닌 상상이상의 ‘부’였고, 자신이 이전에 접해보지 못한 물질에 감탄한 평범한 ‘속물’일 뿐이었다.
 ‘뷰케넌’은 위대했을까?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충분히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유서 깊은 가문의 일원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 전형적인 엘리트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사랑꾼’과는 거리가 멀다. 데이지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을 한 낭만주의자이긴 커녕, 하류층의 다른 한 여인을 더 좋아했고, 이 또한 육체적인 사랑을 탐닉한 ‘비틀린’ 낭만을 행했다.
 ‘닉’은 위대했을까? 앞선 두 인물보다는 그러해 보인다.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항상 친구를 걱정하고, 그에게 충고와 조언을 해주는 우정을 보여준다. 또, 친구가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하고, 끝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들에게 분노하고 경멸했다. 하지만 끝없는 분노보다는 그들의 태도와 현실에 순응하고 체념했다. 또 다른 관점에서, 개츠비는 자신의 많은 고민들을 그에게 털어놓았지만, 정작 닉은 자신의 속사정이나 고민거리 등을 개츠비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지 않았다. 즉, 일방적인 관계로써, 진정한 우정으로 볼 수도 없다.
 물론, 개츠비는 자신의 틀에 갖혀서 모든 것을 바라봄으로써 죽기 전까지 그 환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그러한 삶의 방식 때문에 과연 그의 아름다운 ‘순수함’을 폄하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는 이런 낭만과 환상을 갖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하지못한 무모한 사랑을 해봤고, 변치않는 우정을 보여줬다. 그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잃어버렸고, 잊어버렸던 그 무언가를 품에 안고 살았던 위대한 그였다.

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조남주 장편소설)

 “조심해서 들어가. 도착하면 연락해.”

 별 생각 없이 친구와 헤어질 때 주고받던 이 인사말이 여자들만의 것이었단 사실은 내게 적잖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남편은 친구와 헤어지면서 저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여자란 이유로 집에 가는 길에서조차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현실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이 잘못되었음을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나서야 겨우 깨달았다. 내가 경험했던 평범한 일들이, 소설 속 김지영 씨의 삶을 통해 들여다보자 아주 이상하고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82년생 김지영>속 지영 씨는 흔한 이름처럼 흔한 인생을 보냈다. 초등학교 때 반장은 항상 남학생의 몫이 되는 걸 지켜보고, 학창시절 학교 앞에서 변태를 만나도 요란을 떨면 안 되고, 여자라는 이유로 취업시장에서 고배를 마시고, 회사 사람들과 식당에 가면 당연하게 자리마다 수저를 세팅하고, 결혼 전에는 된장녀라는 말을 들으며 웃고, 결혼 후 아기를 낳은 후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맘충이라는 말을 듣는다. 대한민국 여성이라면 모두가 경험해 보았을 그런 에피소드로 지영 씨의 삶은 꽉 차있다. 지극히 평범한 삶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 모든 경험들이 낯설지 않다고 느꼈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차별과 여성에 대한 폭력에 이미 익숙해졌다는 사실의 반증이다. 사실, 지영 씨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고, 희생을 강요당하고, 때로는 멸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영 씨의 삶을 보며 자신의 모습을, 주변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많은 사람이 지영 씨의 고민과 병에 공감한다. 결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는 그녀의 인생이 보편적인 여성의 삶으로 여겨지는 모습이 씁쓸할 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82년생 김지영>을 읽었으면 좋겠다. 지영 씨의 삶을 통해 당신의 어머니가, 누나가, 언니가, 여동생이, 여자 친구들이 겪었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지영 씨의 평범한 삶이 사실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고, 평범한 삶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기욤 뮈소’라는 작가는 절절한 사랑의 아픔과 치유,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상상의 자유로움 외에도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를 주인공에 대입시키게 만드는 요상한 재주까지도 겸비하고 있었다. 이번 작품 역시 구해줘와 같이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점에서는 맥락을 같이 하지만, 전혀 새로운 구성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구해줘의 경우에는 결론을 만드는 이가 과거로부터 등장했으나, 이번 작품에서는 현재에서 과거로 오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결국, 과거나 미래 모두 현재의 이미지로 존재하게 된다.
 실력과 인간미를 겸비한 인기있는 소아외과의사 엘리엇, 동물과의 교감을 신비롭게 이끌어내는 수의사 일리나, 그들의 절절하게 넘치는 사랑을 지켜보는 엘리엇의 친구 매튜. 그들의 이야기는 어느새 30년을 훌쩍 뛰어넘고, 엘리엇은 예순의 나이가 된다. 어느날 갖게된 신비의 약으로 과거를 넘나들 수 있게 되는 엘리엇. 그의 소원은 30년전에 죽은 연인 일리나를 볼 수 있게 되는 것. 과거의 엘리엇과 현재의 엘리엇은 일리나의 사고사를 막기위한 숨막히는 사건들을 이어나가고, 결국 현재와는 다른 결론을 이끌어 낸다. 예순의 그와 서른의 그가 동일인임에도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다른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작가의 상상력은 기발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사랑을, 인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된 영화같은 이 소설은 과거가 바뀌면 현재도 바뀐다는 진리를 바탕에 두고 현존하는 모든 것을 잃지 않으면서 과거의 사랑도 지켜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한 해답찾기로 이어진다. 엘리엇이 되어 함께 생각하며 그가 어떤 방법을 찾아내는가에 대해 몰두할 즈음 절로 터져버리는 이 눈물은 간절한 그의 사랑과 우정에 대한 슬픔이다, 그리고 기쁨이기도 하다.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무기력해진 마음에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의욕과 용기를 불러일으켜 주고, 잃어버린 삶의 의욕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글배우의 이야기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거나> 무기력해진 나에게 혼자의 시간을 잘 보내며 재충전할 수 있는 방법과 내 삶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말해주고, 저자가 직접 겪은 사연을 통해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잘해야 된다는 마음이 큰 사람은 항상 마음속에 불안을 품고 살아가게 된다. 잘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가 많이 밉기 때문에 지나치게 잘하기 위해 애쓰게 된다. 지나치게 배려하거나 지나치게 참거나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을 안 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희생하거나 그러다 보면 지친 하루가 지나가고 또 나를 힘들 게 하는 하루가 찾아온다.
지쳤거나 좋아하는 게 없다면 삶은 무기력해진다. 불안함, 공허함, 외로움, 감정 기복, 자존감 등 매년 수천 명의 고민을 마주하며 상담해온 저자는 지쳤거나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몰라 공허하고 삶에 의욕이 나지 않는다면 혼자의 시간을 갖고 잃어버린 나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책을 통해 연애뿐만 아니라 자존감과 인간관계, 직장, 도전하고 싶은 꿈 등 그동안 쌓인 걱정들의 대한 어떻게 나아가면 좋을지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열정, 희망을 전해준다. 현재에 내가 만나고 바라보면 집중되는 것들로 조금씩 삶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때, 그 과정에서 실수하고 잘하지 못하는 나를 무조건 크게 자책하여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런 나에게 실수하고 실패할 공간을 열어주며 다독이며 내가 만족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찾아갈 때 행복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지나치게 밝거나,지나치게 자신에게 엄격하거나, 지나치게 잘해야 된다 생각하거나, 지나치게 눈치를 보거나, 지나치게 잘 참거나 , 지나치게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은 상처가 많은 사람입니다.”

꼴찌를 일등으로 (야신 김성근)

‘가네바야시 세이콘’ 야구팬 이라면 친숙한 이름인 김성근 감독의 일본 이름입니다. 우연히 도서관에서 존 보글이나 워렌 버핏과 같은 천재 투자자의 자서전을 뒤지다 김성근 감독의 책을 발견 했고 한국 프로 야구에 큰 족적을 남긴 동시에 여러 논란을 남긴 감독이 었기에 어떤 내용이 있을까 대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책은 09년에 발간 되었고 그 당시를 돌아 보면 김성근 감독이 지휘 하던 팀이 몇년간 강팀으로 군림했고 김성근 감독이 마치 야구의 신으로 추앙받으며 지금과 같이 여러 논란이 없던 시기인것을 생각혀며 책을 읽었습니다.
 
책은 김성근 감독이 재일교포로서 일본 학창시절에 겪었던 이야기 초청을 받아 한국에 와 일어난 이야기 그리고 대학시절, 실업야구,고교야구 감독, 프로 야구 코치, 그리고 감독으로서 지나온 나날들을 회고한 자서전이며 이 책을 읽으며 주관적인 생각이 들어가긴 했지만 한국야구의 발전사를 엿볼수 있는 좋은 책 이었 습니다.

 

1969년 고교 야구 팀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11번의 감독을 맡았고 8번의 불명의 퇴진을 당했지만 쌍방울, SK등 여러 약체팀을 맡아 강팀으로 성장시키는 이른바 ‘마법’을 보여주며 강팀으로 성장 시켰고 그 과정이 책에 고스란히 남아있어 김성근 감독의 철학과 노하우를 엿볼수 있었습니다.

 

선수 하나하나의 개인 역량을 세밀하게 체크하고 메모하며 비주전 선수의 가능성을 보고 기회를 주어 성장시키고 전력을 분석해서 데이터 기반의 전술로 개개인의 역량과 팀의 역량을 성장시킨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허나 책을 읽으면서도 세간에서 흔히 지적받는 선수 기용이라던지 프런트와의 마찰이라던지 여러 야구에서의 매너라던지  김성근 감독의 단점이 책에서도 많이 보였으며 정신론적인 내용 또한 많이 있었기에 실력은 있지만 과연 무결한 명장일까 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재일 교포라는 한국 일본에서도 재일/반쪽발이 라는 차별속에 한국 야구에 큰 획을 그었고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는 사람으로서의 카리스마를 엿볼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책의 내용보다 그 제목이 워낙 유명해서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 주는 느낌만큼 정말로 난해하고 복잡한 소설인 것 같다인간의 마음만큼이나 어떤 하나로 정의되거나 확정할 수 없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복잡한 심경만큼 그 복잡난해한 마음의 혼란스러움이 느껴지는 듯 하다.

네 명의 연애소설.-이 소설이 연애소설인 줄도 몰랐는데,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사실 읽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왠지 어렵고 지루할 것 같아 손이 안가는 소설이었는데, 생각보다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난해하긴 하다. 읽기는 쉽지만, 그 뜻을 새길수록 더 복잡해지는 소설같기도 하다. 아마 한 번 읽어서는  이 소설이 주는 감동을 충분히 느끼지 못할것 같기도 하다. 여러 번 읽어보아야 할 소설인 듯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자신의 인생에서 평생 가벼움을 추구했지만 정작 어느 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무거움의 의미를 알게 된 순간. 그 무거움이 자신에게 온전히 다가올 때의 그 무섭고도 아득한 기분이란 어떤 것인지.

영원한 회귀란 신비로운 사상이고, 니체는 이것으로 많은 철학자를 곤경에 빠뜨렸다. 우리가 이미 겪었던 일이 어느날 그대로 반복될 것이고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이 우스꽝스러운 신화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뒤집어 생각해보면 영원한 회귀가 주장하는 바는, 인생이란 한 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한낱 그림자 같은 것이고, 그래서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무게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아무리 잔혹하고 아름답고 혹은 찬란하다 할지라도 그 잔혹함과 아름다움과 찬란함조차도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 _p.9

자유롭고 가볍게 살 것인지, 무거움을 지고 살아갈 것인지. 등장인물들이 사랑하는 모습들로 표현했지만, 더 나아가 삶의 모습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사실 어느 한쪽으로만 일관되게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우리가 속한 사회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고, 그 이전에 한 개인 안에도 여러 가지 모습들이 있기에 늘 한 방향의 올곧은 선택을 할 수 없다. 많이 알게 돼서 인지, 아님 우유부단해진 건지 전에는 비교적 명확하게 선택할 수 있었던 것도 가끔은 고민이 된다. 그 반대 방향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나 부러움이 생기기도 한다. 좀 더 나이를 먹으면 흔들리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생각이 짙어지는 깊고도 따뜻한 책이다.

우리 모두는 사랑이란 뭔가 가벼운 것, 전혀 무게가 나가지 않는 무엇이라고 생각조차 할 수 없다고 믿는다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만 한다고 상상한다또한 사랑이 없으면 우리의 삶도 더 이상 삶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소년이 온다 (한강 장편소설)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작가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 1980 5 18일부터 열흘간 있었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설이다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통해 저자 특유의 정교하고도 밀도 있는 문장으로 계엄군에 맞서 싸우다 죽음을 맞게 된 중학생 동호와 주변 인물들의 고통 받는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냈다학교 3학년이던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매일같이 합동분향소가 있는 상무관으로 들어오는 시신들을 수습하며 주검들의 말 없는 혼을 위로하기 위해 초를 밝히던 그는 시신들 사이에서 친구 정대의 처참한 죽음을 떠올리며 괴로워한다그리고 그날돌아오라는 엄마와 돌아가라는 형누나들의 말을 듣지 않고 동호는 도청에 남는다동호와 함께 상무관에서 일하던 형과 누나들은 5·18 이후 경찰에 연행되어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살아 있다는 것을 치욕스러운 고통으로 여기거나 일상을 회복할 수 없는 무력감에 빠진다저자는 5·18 당시 숨죽이며 고통 받았던 인물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진다. 2017년 이탈리아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말라파르테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그날 해 질 녁에 느이 아부지 어깨를 짚고 절름절름 옥상에 올라갔다이난간에 기대서서 현수막을 길게 내리고 소리질렀다이내 아들을 살려내라아살인마 전두환을 찢어죽이자아정수리까지 피가 뜨거워지게 소리 질렀다이경찰들이 비상계단으로 올라올 때까지나를 들쳐메고서 입원실 침대에 던져놓을 때까지 그렇게 소리 질렀다이.” 189, 190p, 6장 꽃 핀 쪽으로

  각 장의 목소리가 독보적이었지만, 6장은 ‘소년의 어머니가 들려주는 육성이 내내 귀에 맴도는 기분이었다그 먹먹함이 분노가 가슴에 차오르곤 하였다필연적으로 겹쳐지는 각 장의 전개그럼에도 독립적으로 펼쳐지는 한 사람의 이야기사실을 뚫고 가슴을 울리는 묘사책을 읽는 내내 이것이야말로 소설이구나 생각했다

 소년이 온다는 그동안 많이 다뤄지지 않았고 영화로서만 많이 다뤄졌던 그 이야기를 수면 위로 그리고 놀라운 문학적인 필체와 함께 씌어졌다.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아픔이 되살아나고 부끄러운 역사가 되살아나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진실을 밝혀야 하고 그리고 이겨야 한다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처들 너머 조금씩 드러나는 진실끝나지 못할 소설의 ‘에서는 새로운 아픔이 아닌 한 단계 진보된 민주사회가 도래할 것이다. 남은 자들은 죄책감과 책임감을 갖고 살아갈 것이다그것은 떠난 이들을 기억하는 일이며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무언가라도 해보는 것 일테다이제우리는 ‘그 도시를 광주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소설가 한강은 진실을 담아 소설을 썼다소설로 ‘소년을 부르고 있다언제까지나 우리가 소설을 읽을 때마다 ‘소년은 올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