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연작 소설)

원미동 사람들은 양귀자 작가가 쓴 연작 소설로 부천시의 원미동으로 이사온 은혜네부터 원미동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원미동에 사는 여러 인물들의 시선으로 원미동의 인물들과 사건에 대해 바라본 각 단편이 이루어져있다.


이번에 원미동 사람들을 읽으며 <비가 오면 가리봉동에 가야한다.>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 서울에서 원미동으로 이사온 은혜네는 화장실을 수리하기 위해 주물포 주씨에게 소개 받은 임씨에게 화장실 수리를 부탁한다. 처음엔 아내와 마찬가지로 여러가지 일을 하는 잡부라고 무시하다가 이후에 임씨의 수리실력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끼고 그에게 수리 서비스까지 받는다. 이후 임씨와 술을 마시며 비가 오면 가리봉동에 가야한다는 말을 듣는다. 주인공의 임씨에 대한 인상을 말하는 것이 처음에는 부정적인 인상으로 바라보다 수리가 점점 진행되면서 임씨에 대한 인상이 바뀌어갔다. 일상에 있을 만한 소시민적인 인물이 누군가를 하찮고 부정적으로 보다가 인상이 바뀌며 긍정적으로 바뀌는 것을 보며 내 주변에도 저런 사람이 분명 존재했을거고 나 또한 은혜네 아버지처럼 행동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미동 사람들 하면 고등학생 시절에 국어문제집 지문으로 등장했던 원미동 시인이었다. 어린아이가 관찰자의 시선으로 사건과 인물을 바라보는 것은 어른이 관찰자인 것보다 더 객관적이라고 배웠던 기억이 있어서 아직까지도 머리속에 남아있었다.


원미동 시인은 7살 어린아이인 주인공인 경옥이의 시선에서 인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소설이다. 원미동 시인인 몽달씨라고 불리우는 젊은 청년과 경옥이의 언니인 선옥이를 좋아하는 김반장을 바라보고 그 둘 사이의 이야기를 자신의 시선에서 바라본다. 김반장은 몽달씨에게 가게일을 도와달라고 말하며 여러 잡다한 일을 시키는데 불만이 생기려 하면 몽달씨의 시를 읽어보겠다면서 구슬려넘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어느날 갑작스럽게 몽달씨가 김반장 가게로 도망쳐 온다. 가게에서 나오라며 협박하는 이들을 보고 겁먹어 몽달씨를 도와주지 않는 김반장을 보고 경옥이는 실망한다. 더 이상 김반장의 장난에도 반응하지 않으며 간식도 받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다시 김반장의 말에 속아 김반장네 가게를 도와주는 몽달씨를 발견한다. 경옥이는 그날 다 봤다고 김반장은 나쁜 사람이냐고 묻자 몽달씨는 부정하고 자신이 쓴 시를 넘겨준다.


원미동 사람들을 대학교에 와서 다시 읽어보게 되었는데 느낌이 사뭇 달랐다.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공부를 하기 위한 지문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활동을 위해서 읽으니 다른 느낌이었다. 경옥이가 세상 물정 모르는 그저 순진무구한 어린아이가 아니였다. 자신의 처지와 부모님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들이 아니라 딸이 태어나서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보다 어른인 몽달씨와 김반장을 딱하게 안타깝다고 여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놀라웠다. 또한 자신이 그날을의 일을 다 보았다면서 나쁜 사람이냐 묻는 모습을 보며 그저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라고 하기엔 어른스럽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학교에 와서 다시 원미동 시인을 읽어보니 내가 고등학교 때 배웠던 작품이 맞나? 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내 책장에 남은 수능 문제집들을 넘겨보다가 저번 1학기 수업 때 교수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이 났다. 고등학생들이 배울 내용에는 성적인 내용을 배제한다며 일부 부적절한 내용을 잘라내거나 수정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렇지만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의 지문을 문제집에서 배제하는 것은 배우는 사람들에게 어린아이는 그저 순진하다는 생각만 주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 단편선)

 누구에게나 하나씩은 유난히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을 것이다. 하루의 첫 시작부터 평소와는 달랐던 느낌, 왠지 모르게 들뜨는 감정, 큰 정신적 자극을 주는 어떠한 상황이 모여 그 날은 잊을 수 없는 날이 된다. 그저 흘러가는 여느 평범한 날들과는 달리 그 때의 기억은 마음 속에 너무나도 깊숙이 박혀버려서 같은 장소를 가기만 해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기만 해도 금새 그 기억에 사로잡혀서 몰입하게 된다. 그러한 기억들 중에서도 특히 한 개인에게 더욱 소중한 기억은 그가 힘들 때마다 인생을 버티게 해주는 자산이 되어주기도 한다.
 ‘메밀꽃 필 무렵’은 학창시절을 겪은 사람이라면 대부분 읽어본 적이 있을 유명한 단편소설이다. 중학생 시절에 읽었던 소설을 몇 년 후에 다시 읽어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전에는 소설 속의 극적인 전개에만 눈길이 갔던 반면, 이번에 읽을 때에는 허 생원이 아름답게 기억하는 봉평 메밀밭과 그에 대한 허 생원의 감정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허 생원은 젊었을 적 봉평 성서방네 처녀와의 기억이 그의 삶을 살아감에 있어서 굉장히 귀중한 추억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름다운 봉평 메밀밭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흐드러지게 꽃이 핀 메밀밭의 풍경과 그곳에 있는 그의 모습이 그려지니 마음이 다소 먹먹해진다.

홍길동전

홍길동전은 흔히 잘 알고 있는 우리 고전중의 대표적인 최초의 한글소설이다. 어렸을 적에 읽었던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은 사회적인 불평등을 극복한 영웅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10년이 지난 지금 홍길동전을 다시 읽어보니 초등학생 시절에 읽었을 때 보다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었다.

홍길동을 읽었을 때 홍길동이라는 영웅적인 인물을 제시하면서 전기성을 바탕으로 하는 고전소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며 약간의 식상함을 느꼈다. 그러나 내용적인 면을 넘어서 조선시대의 지배와 피지배로 이루어진 시대적인 문제점을 소설을 통해 지적한 작가 허균을 생각해 보면서 우리 이 시대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또한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홍길동전의 줄거리는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태어났으나 서자라는 이유로 호부호형 하지 못하여 길동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홍길동의 재주를 시기한 가족들은 그를 죽이려고 하고,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길동은 출가한다. 길동은 소굴에 들어가 두목이 되고, 기이한 도술로써 탐관오리를 징벌하고 빈민을 구제한다. 국왕은 길동을 수배하지만 당해낼 수가 없어 회유하게 된다. 결국 길동은 병조판서가 된다. 길동은 조선을 떠나 남경으로 가다 율도국을 발견하고, 율도국의 왕이 된다.

홍길동전의 내용은 탐관오리의 비판과 적서차별의 폐지, 새로운 영웅의 등장을 기대하는 마음이 복합된 것이다. 이 작품은 영웅적 인물의 제시와 전기성을 바탕으로 한 사건 전개 등에서 고대 소설의 전형적 형태를 보여주지만 소외된 계층인 서자들의 문제와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비판하여 고대 소설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또한 홍길동전이 고전소설 중에서도 각광받는 이유는 순수하게 우리나라를 무대로 삼고 있으며, 작품을 한글로 표기함으로써 한문을 읽지 못하는 서민들에게까지 독자층을 확대시켰기 때문이다. 최초의 한글 소설이라는 점에서 중요시 될 뿐만 아니라, 후대 소설에서 찾기 어려운 다양성을 보이고 있어 더욱 주목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괭이부리말 아이들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27. 독자 김 하은.

이 책의 차례는 총 26개로 나뉘어져있다. 한 챕터의 가장 강력한 키워드가 소제목으로 되어있는 것이다. 깔끔하면서도 관련해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참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그래서 독후감을 또 하나의 차례로 시작해보고 싶어서 첫 머리말을 이리 작성해 보았다.

작품의 주요 배경은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빈민 지역인 만석동 달동네 괭이부리말이다. 이 곳은 부모님이 아이를 두고 다양한 이유로 도망을 가거나 떠나가기도, 하루에 한 끼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여겨지는 동네이다. 이 안에서 각 사람의 굳어져 있던 마음의 뿌리들이 서로와 깊어지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숙자, 숙희, 숙자 어머니, 숙자 아버지, 영호 삼촌, 김명희 선생님, 동수, 동준, 명환, 호용이. 등장인물의 다 이다. 괭이부리말이라는 동네 안에서 연결되어 있는 그들의 관계 망 사이 안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그들과, 그들이 처한 환경이 더욱 친밀하게 다가왔고 책을 덮을 때는 나 역시 이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었다. 각 인물마다 마음이 쓰였고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는 시간들이었다.

   가장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한 김명희 선생님을 중심으로 보자면, 지긋지긋하고 부끄러운 달동네 시절의 삶을 청산하고 교사가 되었지만 다시 이 변함없는 동네로 와서, 가능성 없는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건 답답할 뿐더러 힘없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처럼 느끼는 선생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근데 이후 이 역시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았던 그녀의 어렸을 때 선생님과 다르지 않았던 모습이었음을 깨닫는 장면이 소름이 돋았다. 김명희 선생님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라는 공감이, 한결같은 달동네를 보며 가난은 대물림으로 가난할 수밖에 없구나 라는 생각이 나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혀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흔히 뉴스나 기사, 책을 봐도, 이 사회에서 모두들 출발선이 다른데, 그로 인한 불평등과 피해, 혜택이 있지 않은가.

 

   현재 1년 간 지역아동센터에서 초등학교 6학년 두 남자아이들의 학습 멘토링으로 봉사하고 있다. 시작할 때는 이 선순환 구조를 통해 사회 양극화의 해소로 나아가고, 함께 성장하는 사회를 만들어가 보자라는 힘찬 패기로 하였다. 시간이 지나고 일주일에 2, 3시간씩 방문하고 함께하는 그 시간들이 익숙해지고 동시에 편해졌다. 그로 인한 무기력감도 느껴졌고 의심이 들 때도, 지칠 때도 있었다. 결국 나 역시 본질을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김명희 선생님을 통해서 계속 아팠던 나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금 채워진 듯하다. 마음이 바뀌면 행동이 변화되는 것이 우리이지 않은가.

사임당의 뜰

신사임당이 살아가던 시대는 여성의 사회활동과 바깥 출입이 제한되어 있던 조선시대였다. 규방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갇혀 있어야 했던 사임당과 그의 딸 매창은 자신이 자신이 가꾸는 뜰을 화폭에 담아내었다. <사임당의 뜰>은 억압된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이상과 그림 세계를 투영해낸 그들의 공간이다. 제목 그대로 뜰에서 볼 수 있는 풀과 벌레 등을 담은 작품들을 해석하였다. 본문에서는 사임당의 작품뿐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재능을 이어받은 맏딸 매창의 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점이 뜻깊었다.
 사임당이 남긴 작품들 중 제일 유명한 <초충도>는 이름 그대로 뜰에 사는 풀과 벌레를 소재로 한 그림이다. 그림 속에서 뜰에 피어 있는 꽃과 풀들은 소박해 보이지만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조선의 임금 숙종이 모사하게 했다는 일화로 유명한 이 작품은 국내외 300여점 이상의 모사작이 있다고 전해진다. 유명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는 것이고, 수많은 모사작이 존재하는 것은 그만큼 사랑받았으며 이 작품만의 특별함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사임당이 어린 시절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따라 그렸다는 기록을 보았을 때는 이토록 많은 모사작을 탄생시킨 작가 또한 한때는 누군가의 작품을 모사하며 성장했다는 사실에 기분이 묘했고,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이 떠올랐다. 타고난 재능도 있었지만 <초충도>와 같은 수작이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창의 작품도 인상 깊었지만 작가가 덧붙인 인물들의 가상 인터뷰도 인상적이었다. 비록 가상의 대화 형식이지만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릴 때 사임당과 매창은 언제나 함께했고, 사임당이 자신의 그림에 대한 매창의 의견을 묻고 듣는 것을 즐겼으며 시를 지으면 항상 읊어 보라고 하였다는 대목이 기억이 남는다. 억압된 현실 속에서도 어머니와 딸이자 예술적 동료로서 함께 예술 세계를 펼쳤던 그녀들의 유대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임당의 뜰

‘신사임당’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조선 최고의 여성 화가, 율곡 이이의 어머니, 그리고 현모양처이다. 화가 신사임당은 당대에도 숙종이 그녀의 작품을 모사하도록 지시했을 정도로 훌륭한 작가로 인식되었다. 높이 평가되었던 그녀의 작품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부모로서의 신사임당은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 속에서도 유교경전을 탐독하며 자녀 교육에 힘썼다. 당시로서는 자녀의 학문 교육이 아버지의 몫으로 여겨졌기 때문의 부모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 셈이다. 율곡 이이를 비롯한 일곱 명의 자녀들은 훌륭한 선비로 자라났다. 그렇기에 신사임당은 분명 훌륭한 교육자이자 양육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후대에 이르러 그녀는 ‘현모양처’라는 이미지를 부여받게 되었다. 가령 한 여자아이가 본받고 싶은 인물로 신사임당을 언급한다면 대개는 화가 혹은 교육자와 같은 직업이 아닌 ‘현모양처’라는 추상적인 말을 들을 가능성이 크다. 뿌리 깊은 유교 사상에 의해 여전히 고착된 부모의 역할은 잔재하지만, 시대가 변화해 감에 따라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자녀 양육은 부모 공동의 몫이라는 인식이 제고되고 있다. 그러한 현 시점에서 신사임당을 ‘현모양처’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화가였다. 이 책은 그러한 그녀의 삶과 작품을 조명하고 있다. 율곡 이이에게 가려졌던, 사임당과 마찬가지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한정된 공간에 머물러야 했지만 그 안에서도 작품 활동을 해 온 첫째 딸 매창의 작품도 소개되었다. 본문 속의 신사임당은 훌륭한 화가이자 교육자의 면모가 부각되어 있다. 이러한 점이 의미있게 느껴졌다. 임금에게 인정받을 정도로 뛰어난 예술적 소질을 발휘했던 그녀의 본업은 예술가이다. 화가로서의 그녀의 모습을 지우는 것은 위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창의융합형 인재상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현 시점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자녀 양육을 게을리 하지 않은 그녀는 현모양처가 아닌, 예술과 교육, 다방면에서 휼룽한 업적을 이룬 위인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연작 소설)

원미동(遠美洞)은 한자를 풀어써서 멀고 아름다운 동네이다. 서울 외곽 경기도 부천에 존재하는 그곳은 꽤 낭만적인 이름을 지니고 있다. ‘원미동 사람들의 저자인 양귀자 작가는 이 동네에서 만나볼 사람들을 단편소설집으로 묶어 차례차례 소개시켜준다. 어느 한 사람 소홀히 여기지 않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부천 원미동에 가 본 적 없는 나일지라도 책을 읽을 때만큼은 원미동 주민들이 조금은 정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멀고 아름다운 동네는 부천 토박이뿐만이 아닌 여러 곳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조금은 여의치 않은 경제생활이 부천에서 지내면 조금은 사정이 여유로워질까봐,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시작으로 발돋움하기위해…….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사정은 얼마나 여의치 못한지 읽는 내내 안타까움을 느꼈다. 자기 한 몸만이 아니라 줄줄이 책임져야 할 가족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심란한 속내쯤은 감추고 힘든 하루를 맞이해야 한다. 1호선 부천역을 타고 오가며 밖을 넘나드는 그들의 심란함을 읽고 있으면 나도 공연히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이다. 한낱 걱정없어 보이는 무표정일지라도 그 속에서는 온갖 고민으로 속이 문드러진 사람이 있을 거라는 짐작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원미동 이야기지만 그들은 원미동에서만 생활하는 것이 아니다. 지하철을 넘나드는 그들을 바라보며 단지 소설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은 아니겠지, 싶었다.

부천 원미동은 지하철만 이용한다면 서울과 그리 먼 동네는 아니다. 서울에서의 자리를 잡지 못해 밀려난 이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부천에서 나고 자라 시가지가 되어 가는 원미동 한 가운데에서 밭을 일구어내는 강노인의 입을 빌리자면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인 것이다. 그들 스스로가 서울에 가지 못하고 부천에서 자리 잡고 지내는 게 못마땅하다가도 내심 안도하는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에 비해 조금 후지더라도 몇 개월에 한 번씩 여러 번 이사를 왔다갔다 은혜네 집 사정보다는 훨씬 안정적일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 반면에 시가지로 발전하는 원미동 한 가운데에 농작을 짓는 강노인은 부천살이에 불만을 갖는 그런 이들에게 눈총을 사는 것이다. 안 그래도 서울보다 못한 생활인데, 동네 형편은 더 나아지지 못할망정 땅을 팔지 않는 강노인 때문에 온갖 불만을 품게 된다. 새로운 사람들이 유입되기 시작하며 변화가 이루어지는 원미동이다. 원래부터 그곳이 고향인 이들에게까지 변화를 강요하는 그 동네 주민들이 못돼 보이다가도 주택가와 상가 가운데에 커다란 밭이 있다는 것도 생활에 불편하게만 느껴질 것 같았다.

원미동은 줄줄이 상가와 주택가가 늘어서 있다. 동네가 작은 만큼 원미동 사람들은 건너건너 이웃이라며 서로 어울려 사는 모습도 보여 준다. 어우러져 산다고는 감히 말을 못할 것 같다. 서로를 위하는 것 같다가도 자신에게 손해되는 일이 발생할까봐 전전긍긍하는 게 그들의 삶이었다. 책을 읽는 입장에서 그들을 지켜볼 뿐이지만 누가 나쁘다고 섣불리 말하기도 애매했다. 그들에겐 생활이 걸린 문제였다. 주민들 모두가 한 가지씩 안타까운 사연을 지니고 있다. 또 소문은 어찌나 그리 빨리 퍼지는지 동네 사람들 입소문에 한번 오르기 시작하면 여간 곤란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보았을 때 원미동 주민들은 새 사람을 그리 반긴다는 인상을 주진 못했다. 원미동이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한 터전임은 썩 마땅치 않아 보였다.

원미동 사람들1980년대 살아가는 사람들의 옛날이야기라고 가볍게 여길 수도 있다. 대수롭지 않은 친숙한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를 알게 것 같았다. 가볍게만 느껴지는 삶 또는 생활의 무게가 사실은 어깨를 짓누르는 거대한 고민이라는 것, 서로 잘 살아가기 위해 외면보다는 타협과 양보, 배려가 조금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주위를 관심 깊게 한번 바라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 같다.

원미동 사람들은 이번이 세 번째 읽는 것이다. 기억에 남았던 내용이 있고 아닌 부분도 있었다. 읽을 때마다 어떤 식으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이 밀려오는 느낌이다. 현실에서 흔하게 있을 법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일의 내면한 부분까지는 나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원미동 사람들은 주변 인물에 대한 사건의 내면을 면밀하게 나에게 알려 준다. 알고 싶지 않고 관심 가져 봤자 뭐하냐며 외면해 왔던 나의 태도를 일깨워주는 책이었다.

원미동 사람들1980년대 살아가는 사람들의 옛날이야기라고 가볍게 여길 수도 있다. 대수롭지 않은 친숙한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를 알게 것 같았다. 가볍게만 느껴지는 삶 또는 생활의 무게가 사실은 어깨를 짓누르는 거대한 고민이라는 것, 서로 잘 살아가기 위해 외면보다는 타협과 양보, 배려가 조금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주위를 관심 깊게 한번 바라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 같다.

괭이부리말 아이들 (MBC 느낌표 선정도서. 양장본)

이 책은 괭이부리말이라는 지역 이름이 어떻게 붙여졌는가에 대해서부터 시작된다. 생각해보니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이름 모두 어떻게 붙여졌는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냥 그 지역 이름이니까 그런가보다 하고 넘기고 살았을 뿐.

괭이부리말은 인천에서도 가장 오래된 빈민지역이다. 그 지역에는 숙자, 숙희 쌍둥이 자매, 동준이, 동수 형제, 영호, 호용이 그리고 마지막엔 명희 선생님까지 같이 산다. 이 책에서는 그들의 삶, 아픔, 슬픔, 소소한 행복 등이 나와 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 부모님이 집을 나가시거나 돌아가셨다는 점,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하는 점, 부모님을 원망하면서도 사랑한다는 점, 성탄잔치를 한다는 생각에 전 날 밤부터 행복해 한다는 점처럼 말이다.

만약 내가 그 당시 괭이부리말에 살았다면 명희선생님과 같은 생각을 가졌을 것 같다. 누구와 어울리지도 않고 추억을 만들지도 않고 오직 공부만 해서 빨리 그 지역을 뜰 생각만 했을 것이다. , 선생님이 되어 괭이부리말에 발령이 나도 아이들에게 정을 주지 않고 3년만 버티자는 식으로 했을 것이고 본드를 한 동수를 맡아 달라고 부탁을 받았다면 매몰차게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희 선생님은 후에 생각을 바꾸고 영호의 집에 가 동수를 봐줬고, 방학식 때 아이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써줬고, 마지막엔 괭이부리말로 이사를 갔다.

제일 인상 깊었던 장면은 동수가 명희 선생님을 데려다 주면서 오고 갔던 대화였다. 명희 선생님은 동수에게 다른 큰 꿈이 없냐고 묻자 동수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이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아요. 선생님은 좀 그럴듯한 직업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런데 전 그냥 기술자가 되고 싶어요. 한 가지 기술로 오랫동안 직장을 다닐 수 있는 그런 기술자, 그게 제 꿈이에요. 배우는 데 좀 힘들어도 오래 할 수 있는 일 말이에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근데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꼭 그런 기술자가 되어서 우리 동준이 대학도 보내주고, 착한 여자 만나서 잘살고 싶어요. 그리고 좋은 아빠 되는 거, 그게 제 소원이에요. 선생님은 제 소원이 시시하다고 생각하시죠?”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현재 우리의 동네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어느 집에 불이 났어도 직접 가보지 않고 핸드폰으로 소식을 듣는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다른 곳에서 만나도 이웃인지도 모른 채 지나가고, 어느 누가 한 순간 없어져도 아무도 모른다. 옆집이 라면에 김치를 같이 못 먹을 정도로 힘들어도 모르고, 나쁜 쪽으로 향하고 있어도 그 사실을 몰라서 도와주지 못한다그래서 그런지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아무 일이 생기지 않아도 마음이 졸여지고 걱정되고 마지막에 행복하게 이야기가 잘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 . 그만큼 주인공들에게 애착이 가게 되는 소설이었던 것 같다. .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그 아이들이 살았던 동네에 한 번 가보고 싶다. .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 무슨 생각을 했을지, , 그들이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지 느껴보고 싶다..

오발탄 (이범선 단편선)

 오발탄을 읽고 6.25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가 지금은 전쟁에 대한 걱정 없이 살고 있지만 지금도 우리나라는 휴전국으로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인 나라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나온 전쟁직후의 상황이 언젠가는 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철호는 집안의 가장으로써 최선을 다해 살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철호의 어머니와 동생들, 아내는 철호에게 의지했고 그들을 등에 업은 철호는 정직한 삶을 살며 꾸역꾸역 가정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죽고 동생이 경찰서에 잡혀가고 어머니가 미쳐버리는 악재가 겹치게 된다. 이는 우리에게 전시 후에 어려웠던 서민들의 당시 상황을 보여주며 전쟁의 참혹함을 일깨워준다. 

 여기서 나는 이 당시의 시대와 지금의 시대가 얼마나 바뀌었을지 생각해보았다. 전쟁 직후 사람들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조건이였던 의식주의 해결에서부터 어려움을 느꼈다. 60년 가량 지난 현재 우리는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저 당시의 현실과 지금의 현실을 비교해본다면 사람들의 생활은 확실히 나아졌다. 편한 생활에 풍족한 먹거리, 많은 여가 활동을 즐기게 되었다. 하지만 전쟁이 다시 한번 일어나게 된다면 우리는 순식간에 그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 있다. 따라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아야 한다. 현재 분단상태인 우리나라를 봤을때 전쟁의 위험이 크진 않지만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은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과의 원만한 관계유지가 필요하며 가능하다면 통일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미동 사람들 (양귀자 연작 소설)

 나는 80년대를 상상해보라고 하면 드라마<응답하라 1988>에서 보았던 복고풍의 낭만적인 서울을 떠올렸었다. 내가 부모님에게 들은 서울의 80년대는 학생들이 데모를 하지만 한 쪽에서는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문화생활을 즐기는 희망이 감도는 낭만적 도시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80년대라고 하면 막연히 행복한 시대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양귀자 작가의 ‘원미동 사람들’은 80년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런 낭만적인 이야기를 다루지않는다. 책의 첫 시작은 서울을 떠나 부천의 원미동으로 향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은혜네 집은 아버지가 서울에서 근무를 하지만 서울 안에서도 계속해서 떠도는 집이였다. 서울 안 어딘가에 정착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떠돌던 이 가족은 결국 삶의 터전을 원미동으로 옮기게 된다. 해당 단편에서는 원미동을 멀지만 아름다운 동네라고 표현한다. 원미동으로 향하는 동안 은혜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트럭 뒤에 짐처럼 실려간다. 나는 이 모습이 마치 서울이라는 전쟁터에서 밀려난 피난민 같다고 느꼈다. 책에서 묘사되는 원미동은 분명 일상적인 풍경을 가진 동네이다. 동네 안에는 싹싹한 청년과 해맑은 아이들 그리고 인심 좋은 이웃들이 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원미동은 서울에서 벗어나고싶지 않은 사람들의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원미동의 의미는 ‘찻집 여자’라는 단편에서 강하게 다가왔다. 사진관을 하는 엄씨와 불륜관계가 된 찻집 여자는 원미동에서 밀려난다고 갈 곳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생활 이하로 떨어져내리고 싶지는 않다고 이야기한다. 찻집 여자의 이 말은 아마 원미동 사람들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불씨의 등장인물인 진만이 아버지는 원미동에 살며 새로운 일을 구하려고 해보지만 결국 영업사원 업무, 리어카 행상 등을  전전하다가 원미동을 떠나게 된다. 이러한 모습에서 원미동은 서울, 혹은 안락한 삶을 꿈꿀 수 있는 끝자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마지막 땅의 등장인물인 강노인이 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지만 주변 인물들과 가족들이 그 땅을 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에서 이 시기의 자본주의적 성향을 확인 할 수 있다. 이것은 멀지만 아름다운 동네라는 원미동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 이러한 평범한 동네사람들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원미동 사람들’은 그 시대의 일면을 보여준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80년대 한국사회의 모습이 얼마나 단편적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또한 현대 사람들의 서울에 대한 일종의 집착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되었다. 양귀자 작가의 책은 ‘원미동 사람들’이 처음이었는데 이번을 계기로 하여 작가의 다른 책에도 흥미를 가지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