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하는 것도 불안의 일종이라면 나는 불안을 참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그 예로 만약 내가 친구와 만난 후 그 친구랑 이야기 나누었던 내용들을 곱씹고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를 했다면 하루종일 아니 매일매일 그것에 대해서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만약 이런 나의 불안을 가족에게 표현하지 않았다면 나는 병에 걸렸을 것이다. 나의 가족들은 나의 이런 증상들이 ‘문제’라고 말하며 나중에 사회생활을 할 때 독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고쳐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나도 나의 이러한 습관을 고치고 싶어 ‘ 내 인생, 방치하지 않습니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흥미로웠던 목차에 대해서 보겠다.
우리는 너무 바쁘고 성실하고 열정적이다.
우리의 성격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
요가와 명상이 내 삶에 들어오던 날.
불안에 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등이 있다.
우리는 너무 바쁘고 성실하고 열정적이다.
‘우울은 낙인인 찍히고 불안은 정당화된다… (중략) 하지만 그럴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고, 결국 우리는 불안이 풍선처럼 커져버린 뒤에야 대처하려고 허둥거린다… (중략)… 더 열심히 노력한다. 더 열심히 생각한다…(중략)… 한마디로 우리는 불안을 이용해서 불안과 싸운다.’
이 말들이 우리의 삶과도 같은 것 같다. 큰 일이 닥칠 때 예를 들어 입시, 취업 준비생 등이 존재한다. 우울해지고 불안해진다. 이 불안들은 우리의 숨을 막히게 만들고 급해져서 상황의 구분이 안되게 만든다.
우리의 성격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
‘불안은 유전이다. 물론 이로 인해 부모를 탓해서는 안된다. 만약 당신이 불안장애라고 판정 받았을 때, 이를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 유전에 불안 유전자가 없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랬다면 우리는 현대 과학을 누리지 못했을 수도 있다.
불안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말고 받아드리는 것이 한 편으로는 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가와 명상이 내 삶에 들어오던 날
나는 요즘에 요가를 한다. 요가는 우리 몸 전체 근육을 움직인다.
요가를 할 때면, 오직 내 몸의 근육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해서 느끼기 때문에 불안을 느낄 틈이 없다. 고요한 노래와 함께 몸을 찢으면 약간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불안에 관한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
위에서 ‘불안이 없다면..’에 대해서 말했듯이 불안은 우리를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우리는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이 불안을 이겨내기 위해 더 한발자국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불안에 대한 나의 정의는 ‘약점’ 이자 ‘문제’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바뀐 나의 불안에 대한 정의는 ‘수용’이자 ‘발전’으로 바뀌었다. 물론 과도한 불안을 나 자신을 망치지만 말이다.
앞으로의 난 어떻게 불안을 다룰 것이냐?
그 동안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싸웠던 대신에 내가 느끼고 있는 불안을 마주볼 것이다. 그리고 받아드리고 어떻게 하면 이 불안을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새로운 방향을 찾아 나갈 것이다.
요가와 명상을 통해서 생각을 비우는 연습 또한 꾸준히 할 것이다. 삶에 있어서 명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계속 불안 즉, 생각을 떠올리면 뇌가 제대로 작동을 할 수 가 없다. 명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면증이 오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 나왔듯이, 불안을 문제로 삼지 말았으면 좋겠다. 불안은 우리 유전에 담겨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불안 증세라고 판정 났다고 하더라도 불안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들의 불안이 당신을 진리에 더 가까이 가져가길 바라며 이만 나의 글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