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容疑者Xの獻身)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미 비포 유 (Me Before You)
인문학 습관 (나만의 업을 만들어가는 인문학 트레이닝북)
제목: 나만의 답
나는 책(특히, 에세이)을 보면서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것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옮기는 것이 힘든 감이 있고 부족했던 것 같다. 이 책은 트레이닝 방법을 제시해주고 있어서 꾸준함만 있다면 미래에 더 성숙해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읽어보게 되었다.
책의 3장 ‘삶을 변화시키는 질문을 던지다’ 부분을 읽으면서 뜨끔 찔렸다. 그동안 선생님이나 의지가 되는 친구, 엄마에게 했던 질문은 다 나를 자책하는 질문이었으며,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답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부터 구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전에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현재의 막막함으로 인생에 답이 정해져있기를 바랐던 것이 부끄러웠다.
책의 5장 ‘시인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본다’ 부분은 저자가 경험을 바탕으로 확립된 돈에 대한 철학을 밝히고 있었다. 이는 남 잘되는 일을 생각하고 행동하면 돈이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기적인 마음이 더 커서인지 이 부분에 관해서는 크게 공감이 되지 않았다. 남 잘되는 일을 생각하고 행동하다가 손해 본 일이 더 많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자연을 관찰하며 삶의 이치를 깨우친다’ 부분에서 상황이나 관계로 혼자 상처받으며 지친 나에게 위로를 주는 구절이 있었다. 이는 저자가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말들이다. “바다가 왜 바다인줄 알아? 세상 모든 물을 다 ‘받아’줬기 때문이야. 모든 물은 흘러 흘러 바다로 온단다. 똥물도 강물도 모두 바다는 받아주지.” , “힘든 일도, 괴로운 일도 모두 받아낼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야.” , “파도가 크게 이는 날 바다는 확 뒤집어지잖니. 우리가 보기엔 위태위태하지만 그 과정에서 바다는 스스로를 정화시킨단다. 그러니 시련이 널 바닥으로 이끈다고 해서 두려워하지 마.” 이 구절들을 보고 힘든 상황들을 파도로 생각한다면 조금이나마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시된 인문학 트레이닝에서 ‘사실과 생각구분하기’는 꾸준히 한다면 스트레스 관리나 인간관계 속에서 나를 옥죄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생각해보면 일어나지도 않을 일, 그 사실에 대한 나의 느낌과 판단으로 내 감정을 시달리게 했던 적이 너무 많았다.
그리고 ‘언행일치 모델링’은 현재 시점에서 나에게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인문학 트레이닝이다. 운동을 바쁘다는 핑계로, 잠 좀 더 자자라는 핑계로 하지 않은지 한 달 반이 지났다. 앞으로 30일 반복 트레이닝을 성공해서 나=자신감이라는 연상도 하고, 언행일치하는 나를 발견함으로 나 자신에게 실망하지 않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현재의 막막한 감정들 때문에 인생에 답이 정해져있기를 바랐던 나를 반성하게 되었다. 나만의 생각으로 답을 만들어 보려고 하지 않고, 나 자신의 기준도 명확히 잡지 못했으면서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나는 왜 이럴까만 한탄했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은 사실 아직 어렵게 느껴지지만 마주하는 상황 등을 통해 나의 감정에 집중하여 나만의 기준과 목적을 설정하고, 이를 이룰 수 있는 내가 되고 싶어졌다.
정의란 무엇인가 (한국 200만 부 돌파, 37개국에서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새로운 시대, 새로운 정의)
tvN 프리미엄 특강쇼 어쩌다 어른 2
어른이 되는 법은 어렵지 않다. 누구나 어른이 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어쩌다 어른이 되어 버린다.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는 정작 어른으로서 사는 방법을 잘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다 어른’이란 이 책은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바쁜 일상에 치이느냐 깊게 생각해보지 못한 행복, 창의성, 호기심과 같은 것들을 다시 돌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냥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게 아닌 어른으로서 살아가는데 있어 행복, 창의성과 같은 추상적인 것들을 다시 끔 회고해보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다양한 책의 챕터들 중에서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챕터는 ‘잃어버린 호기심을 찾아서’였다. 앞으로 창작자가 되고자 하는 나에게 있어서 호기심이란 제재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며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예시를 통해 내게 호기심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제임스 카메론은 훌륭한 작품들을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모션 그래픽 그리고 책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잠수함 기술에도 큰 공헌을 했다. 그가 다양한 기술에도 큰 공헌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만들 작품들을 ‘어떻게 하면 구체화시키고 디테일하게 재현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전문적인 창작물은 없지만 아마추어적으로 글쓰기나 그림을 그리는 창작활동을 해본 나로서는 제임스 카메론의 호기심과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프로세스를 보고 조금 놀랐다. 나와는 완전히 순서가 상반된 프로세스를 통해 창작물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제임스 카메론 같은 경우엔 먼저 작품을 구상한 후 그 작품을 재현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기술들에 관심을 둔다. 반면에 나는 일단 다양하고 새로운 지식, 기술, 경험 등을 해본 후 그 중 인상 깊거나 호기심 가는 것들을 메모해둔다. 그리고 나중에 메모한 것들을 정리하면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통해 작품을 구상한다. 구체적으론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면서 잘 몰랐던 그 시대상황이나, 건축양식, 패션들을 메모해 정리해 두었던 것을 나중에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 구상 및 고증할 때 꽤나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었다.
즉 제임스 카메론은 작품구상에서 호기심이 비롯된 경우이고 나와 같은 경우는 그 반대로 순간 떠오른 호기심이 작품구상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런 창작 방식은 창작자의 성향과 성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도 앞으로 창작활동을 하면서 나만의 창작방식을 고집하지 말고 제임스 카메론처럼 내가 구상한 작품을 어떤 매체를 활용해 어떤 색감으로 표현하면 더 효과적일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편의점 가는 기분 (박영란 장편소설, 창비청소년문학 75)
가난. 흔히 ‘가난’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키워드 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동정’, ‘연민’, ‘안타까움’ 같은 것들. 완전히 똑같은 겉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가난하다는 수식어가 붙은 사람은 어련히 힘들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만다. 그렇게 단단한 시선에 갇혀 살고있는 우리네 사회에서도 누구나 평등하게 존재하는 공간이 하나 있다. 바로 ‘편의점’이다. 편의점은 누구나 들를 수 있는 곳이며 무엇을 사든, 먹든, 이야기하든 문제가 되지 않는 공간이다. 박영란 작가의 『편의점 가는 기분』은 편의점을 거치는 여러 초상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화자인 ‘나’를 중심으로 ‘나’가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수지’, 매일 밤 엄마와 편의점을 찾는 ‘작은 수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훅’, 어릴 적 집을 나간 엄마 대신 호적 상의 부모가 된 ‘나’의 조부모, 그리고 ‘나’가 애증을 가지고 있는 ‘엄마’ 등 여러 사정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나’가 사는 동네는 ‘마계’라는 별명이 붙은 짓다 만 건물을 기준으로 ‘구지구’와 ‘신지구’로 나뉘어 있다. 구지구는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가난의 상징이며 신지구는 그에 반해 신축 건물들이 가득한 부를 상징하는 구역이다. 주인공 ‘나’는 구지구에 있던 외조부의 마트에서 일을 하다 신지구에 편의점을 새로 지어 옮겨왔다. 학교에 다니지 않는 나의 유일한 해방구는 양쪽 다리 길이가 달라 절뚝거리며 걷는 ‘수지’ 뿐이다. 매일 밤 수지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상상도 못했던 때에 ‘수지’는 떠나버린다.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연기처럼 사라졌다. ‘나’는 수지를 찾으려 노력하면서도 잊으려 애쓰는 사람처럼 보인다.
수지는 구지구에서도 가장 열악한 삼호연립의 지하에 살던 아이였다. ‘나‘에게 수지는 불편한 다리 때문에 하루 종일 집에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것이 삶의 전부인 사람처럼 보였다. 책이 끝날 때까지 수지는 ‘나‘의 회상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이다. ‘나‘는 수지를 찾고 싶어하는 듯 보이고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도 짐작하고 있지만 직접 찾아가지는 않는다. ‘나‘에게 수지는 가장 가깝고도 멀리하고 싶은, 감정의 복합체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열여섯 살에 나를 출산하여 술독에 빠져 사는 엄마에게 원망만 듣고 살았다. 학교를 자퇴했고 진로에 대한 생각이 없지만 외조부의 가게에서 일을 하며 나름의 반듯한 생활을 이어나간다. 그는 어린 시절 가족의 해체와 보호자의 부재로 인한 상실감을 느낄 새도 없이 엄마와 조부모에게 죄책감을 가져왔다. 또 장애를 가진 수지의 모습을 보며 느낀 모종의 우월감 또한 그에게는 죄책감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한 켠에는 수지가 삼호연립의 지독한 지하방을 탈출하여 잘 살고 있기를 바라는 희망이 있다. 그가 수지를 만나고 싶어하면서도 직접 찾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수지는 그가 가지고 있는 희망이면서도 절망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아픔을 이해하지만 자신이 가진 마음의 구멍이 너무 커서 온전히 이타적일 수 없는 본인에 대한 죄책감이 나에게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청소년기는 혼란의 시기라고 말한다. 그저 나이가 어려서? 몸이 덜 자라서? 그런 단순한 이유가 아니다. 청소년기에는 필연적으로 작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가족, 학교, 학원 등 제한된 사회 안에서 그것이 전부인 양 알고 산다. 하지만 내가 존재하는 곳이 작은 사회인지 알 수 없다. 큰 세상을 경험해보아야 비교를 통해 상대적인 크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고립된 사회 속에서 살게 해놓고 청소년기의 감정을 그저 ‘사춘기’ 쯤으로 몰아가는 것은 어른들의 이기심이다. 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가족이 무너지고 학교 안에서 가장 친하던 친구와 사이가 틀어지는 것. 청소년 한 개인에게는 전부가 무너진 것과 같다. 한 동네 안에서의 빈부격차와 같은 자본주의가 남긴 황폐함 또한 비단 어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청소년들의 사회 안에서도 그것은 매우 큰 문제로 여겨진다. 오히려 커뮤니티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더 크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복잡하게 얽혀있는 희망과 절망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끊임없이 혼란을 겪는 것이 바로 청소년기이다. 이 작품은 그러한 청소년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마냥 아름답고 푸르게만 그려지는 여느 미디어의 청소년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조금은 우울하고 어두울 수 있지만 그것 또한 청소년들의 모습이라고, 틀린 것이 아니라 말하며 이야기와 같은 현실의 청소년들에게 조심스러운 위로를 건넨다.
편의점에는 나와 같이 각자 마음의 구멍을 가진 인물들이 끊임없이 스쳐간다. 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혼자 이사를 왔지만 복학하지 않는 ‘훅’, 실어증에 걸린 엄마를 혼자 보살피며 빨리 돈을 벌고 싶은 ‘작은 수지’, 추운 겨울에도 온 동네를 돌며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캣맘’ 등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고있는 사람들이다. 각 인물들은 편의점이라는 공간 안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 과정에서 이들은 어느새 하나의 연대 공동체가 되어 간다. 자신의 공간을 내어주고 시간을 할애하며 서로의 구멍을 메우려 애쓴다. 그러한 노력이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말하고, 들어주고, 또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위로를 받는다. 그 연대 안에서 우리는 희망을 느낄 수 있다. 그 희망은 작은 수지네 엄마의 말문을 트이게 했고 훅이 원양어선을 타겠다는 꿈을 꾸도록 만들었으며 ‘나‘가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세상에는 말로 건네지는 위로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그를 응원하며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 신비로운 일이다. 감정을 공유하는 인간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편의점에서 만난 인물들은 모두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들도 모르는 새에 서로를 다독이고 있다.
‘나’는 결국 편의점을 넘기고 구지구에서 운영하던 마트로 돌아간 듯 보인다. 편의점에서 만난 다른 인물들도 모두 각자가 원하는 위치로 돌아갔다. 돌아간 것일 수도 있고 새롭게 길을 찾아 떠났을 수도 있다. 확실한 것은 각자 정답을 정해두고 그것을 쫓아 떠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서로에게 얻은 위로로 스스로를 보듬으며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기 시작했다.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원양어선을 타러 간다는 훅의 모습에서는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까지도 느낄 수 있다. 독자들이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에는, 각자의 마음의 구멍을 숨기지 말고 그것을 당당히 직면하여 위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나만 힘든 것은 아니다. 다들 그렇게 산다. 모두가 위로 받아야 하는 연약한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는 강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타인은 지옥이다 (비프케 로렌츠 장편소설)
‘타인은 지옥이다’
제목만 보고 호기심에 읽기 시작한 책이다. 심지어 책의 뒷면에는 ‘분노 게이지 100%일 때, 이 소설을 펼쳐라!’라는 문구가 적혀져있었다. 어떤 내용이길래 이런 문구가 쓰여져 있는 것일까?
주인공 마리는 잔인한 상상을 하는 강박증을 가졌다. 이 강박증은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상상도 하게 만든다. 어느 날 술을 마시고 정신을 차렸을 때, 자신의 손에는 피 묻은 칼이 들려있었고 앞에는 죽어있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모든 증거가 마리가 살인범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상황에, 마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기가 남자친구를 죽였을거라는 생각을 했고, 결국 치료감호소로 들어가게 된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누어져있다. 그런데 2부까지의 내용이 마리의 과거회상이다. 과거회상이 뒷내용으로 이어져서 필수불가결한 부분이었지만 과거회상이 너무 길게 늘어지기 때문에 읽다가 금방지치기도 했다. 마지막 결말 부분에는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는데 마지막 반전은 읽으면서 너무 급조한 느낌이 들어서 아쉽기도 했다.
옮긴이의 후기를 보다가, 여기서 나오는 -잔인한 상상을 하는- 강박증은 실제로 글을 쓴 작가가 겪은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이를 보다가도 문득 이 아이를 죽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은 살면서 약간의 잔인한 생각을 하고 살 것이다. 어쩌면 잔인한 생각을 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생각이 지속되고, 통제가 불가능하다면 고통에 시달릴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마저 그런식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인간관계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소설 속 주인공도, 작가도 이를 극복하기위해 노력하며 증세를 완화시키려고 했다. 그렇듯 어떠한 증상 또한 사람마다 대처하는 자세가 다르다. 사람은 모두가 다르듯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도 다를 것이다. 이것이 대다수가 말하는 ‘표준치’가 넘어가면 사람들은 무언가 병이라고 칭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는 남들과 다른 것일 뿐 틀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이 책에는 ‘한나’라는 다중인격 소녀가 나오는데, 이 소녀가 아무런 임팩트 없이 책에서 퇴장하는 것이 너무 아쉽다. 소설 속 인물로서 바라볼 때 이 인물을 잘 살린다면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은 ‘타인은 지옥이다’ 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제목은 책의 내용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주인공도 마지막엔 타인과 잘 어울려 살아가고.. 원제목은 ‘모든걸 숨겨야해’였는데 이 또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이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게 밝혀진 것은 스토리상 실질적으로 아주 큰 영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생각은 행동이 아니다’라는 느낌의 제목이 적합했을 것 같다.(하지만 이 문구에는 많은 스포일러가 담겨있다.)
이건 아주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모든 사람이 어떠한 정신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신병이란 아주 특이한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을 가리킬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다르고(그릇이 크다고 무턱대고 좋은 것도 아니고, 작다고 좋은 것도 아님을 명시함)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발현되는 증상도 다를 것이다. 타인의 이러한 점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타인은 지옥이 아니게 되는 첫걸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