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재특회를 통해 본 한국사회
언론은 편향되었다. 인터넷만이 진실을 말하고 있다. 피해자나 유족, 사회적 약자에게 과도한 특혜가 주어지고 있다. 자국민에 우선해 혜택을 받는 가짜 난민, 외국인은 추방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으려면 강한 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유사시 무력 사용은 물론 핵무장도 고려해야 한다. 낯설지 않은 주장들이다. 우리나라라고 생각했다면 오해다.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한국인의 특권을 철폐해야 한다 주장하며 헤이트 스피치(혐오 발언)를 일삼는 재특회(재일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 시민 모임)의 이야기니깐 말이다.
한국과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
일본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로 뭉친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일본에 ‘2ch’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일베’가 있다. 이들의 주장은 네티즌의 의견이라는 이름으로 언론에 인용되기에 이른다. 인터넷이 주 무대였던 이들은 거리로 나서 차별과 혐오 발언을 일삼는다.하지만 경찰은 이들의 시위를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들어 보호한다. 시위를 방해했다가는 집시법 위반이나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 차별을 반대하기 위한 행동 또한 동일한 폭력으로 그려진다. 차별, 혐오 발언은 이렇게 언론에 노출되며 지속적으로 발언권을 얻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주장에 반대되는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다. 재특회는 헤이트 스피치에 맞서 반대 시위를 하는 ‘카운터스’에게 “너희는 반일이다, 한국의 공작원이다, 조센징이다”라고 말한다. 독도에 방문해 독도는 한국땅이라 양심선언한 일본 역사학자에게도 “일본으로 돌아오지 마라, 조선에서 살아라”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일본인 한국인이기 전에 역사학자로서의 의견을 말한 것이지만 민족주의자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일본에게 불리하고, 한국에 유리한 주장을 했다면 그냥 매국노고 조센징이다. 그리고 그 행동이 자신과 조국에 긍정적인 일이라고 굳게 믿는다.
우리는 일본의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에 분노한다. 재일한국인에게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과 혐오 발언은 쉽게 판단하기 어렵다.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이다. 내가 손해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판단을 보류하거나 옹호하기도 한다. “그들은 권리만 주장한다. 평범한 외국인이 되어야 한다. 그들 때문에 자국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이런 주장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재특회가 재일한국인들에게 가한 헤이트 스피치에서 ‘재일코리안‘과 ’일본‘이라는 주어만 바꾼 것이다. 혐오의 구조는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재특회의 “너희는 반일이다, 한국의 공작원이다“, “반일본적인 세력들입니다. 지금의 한국과는 친한 세력이죠.” 하는 인터뷰 내용도 낯설지 않다. 우리나라에선 “빨갱이냐? 북한으로 가라.”라는 말로 대체될 뿐이다.
일본을 보면 우리나라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재특회의 시위를 막기 위해 도로 위에 드러눕는 한 남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재특회의 시위 현장마다 나타나 시위를 방해한다. 경찰은 재특회의 시위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제지하지만 굴하지 않는다. 경찰들을 매달고도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집으로 썩 꺼지라고,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지 말라고 소리친다. 헤이트 스피치를 저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오토코구미(남자조직)의 대장 다카하시의 모습이다. 그는 우익이지만 차별 앞에 좌우는 없다며 재특회의 시위를 막기 위해 거리로 나선 전직 야쿠자다. 다카하시를 중심으로 모인 이들은 폭력도 불사한다. 혐오발언을 주도하는 재특회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를 때려잡으려고 경찰 저지선을 뚫고 들어갔다가 체포된 전적도 있다. 차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순수하고, 평화롭고, 점잖아야 한다는 편견을 정면으로 깨부순다.
헤이트 스피치에 대한 즉각 대응의 필요성
오토코구미의 폭력은 오직 헤이트 스피치에 반대하기 위해서만 사용된다. 하지만 폭력은 실정법에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혐오 발언을 하는 쪽이나 폭력을 쓰는 쪽이나 똑같다는 식의 야유나 비난을 감수해야만 한다. 지금 이 순간 우리나라에도 적용되고 있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그들은 차별 발언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쏟아지는 차별, 혐오발언을 속수무책으로 듣고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 지금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재특회가 공원 불법 점거를 주장하며 조선 제1초급학교에 항의 방문했던 날 그들은 김치냄새가 난다던가 조선인은 범죄자라던가 스파이라던가 하는 말을 수업중인 학생들에게 퍼부었다. 교사들은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재특회는 더 날뛰었다. 학교의 스피커 선을 끊고 골대를 쓰러트리기까지 했다.
물론 재특회의 행동이 명백한 인종차별임이 후에 재판을 통해 밝혀졌지만, 아이들의 상처는 한 평생 따라다닐 것이다. 혐오발언이나 차별에 폭력을 써서라도 즉각 대응해야 함을 주장하는 오토코구미의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카운터스에는 물리력을 사용하는 오토코구미만 있는 건 아니다. 재특회의 혐오 낙서를 지우기 위한 모임도 있고, 헤이트 스피치에 반대하는 내용의 플랜카드를 만드는 모임도 있다. 만화가, 변호사, 학생,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차별에 반대한다. 이들의 활동은 법 제정으로도 이어졌고 혐오표현금지법은 일본 국회에서 통과되어 2016년 6월 3일 시행되기 시작했다.
오토코구미는 더 이상 공식적으로 활동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해체했다. 하지만 혐오 시위가 다시금 세를 불리기 시작했고, 오토코구미도 활동 재기를 꾀하는 모습으로 끝이 난다. 2017년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헤이트 스피치가 표현의 자유 범위 안이다’는 응답이 17%, ‘헤이트 스피치를 당하는 쪽도 문제가 있다’는 답변이 10%에 달했다고 한다(일본 내각부 조사. 전국 18세 이상 남녀 3000명. 응답률 58.6%). 피해자다움, 피해자의 책임을 강요하는 우리나라에서도 유의미하게 봐야 할 통계다. 일본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차별과 혐오에 반대해야 한다.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탓해야 한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순간 차별의 싹이 다시 고개를 들 수 있음을 배워야 한다.
차별과 혐오를 깨트리자
하지만 조심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헤이트 스피치를 일삼는 재특회를 나쁜 사람이나 적으로 규정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들 또한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던 평범한 사람들이다. 진심으로 걱정되어 자발적으로 거리에 나선 시민들이다. 특정 기관이나 단체의 후원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은 본질이 되지 못한다. 후원이 사라진 후에도 그들은 자발적인 성금을 모아 활동을 계속한다. 비난은 충격을 가할 수 있을 뿐이다. 벌어진 틈으로 들어가 혐오를 깨부수지 못한다면 벌어졌던 틈은 오히려 단단해질 뿐이다. 충격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이해하려는 사람들도 있어야 된다. 어쩌다 우리는 서로를 증오하게 되었는가. 이 책이 그 질문에 대한 자그마한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