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죽이기

 사전 지식 없이 이 책을 접했을 때, 제목을 보고 추리 소설이라 생각했다. 주인의 살해현장 목격자가 된 앵무새의 증언이 사건의 조사에 박차를 가하고, 그 앵무새를 노리는 살인자들의 스릴러 범죄극이 아닐까..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책의 초반부 부 래들리의 집에 귀신이 들렸다며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고는 영화 ‘몬스터 하우스 ‘같은 미국의 클리셰 괴담의 원조격 되는 소설인 줄 알았다. 중반부가 되어서야 이 책이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 싶은 소설인지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 이 장면이 여기에 들어가야 했을까?이 부분은 왜 굳이 넣은 장면일까? 궁금중이 일기도 했었다. 특히나 부 래들리의 이야기가 사족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마지막 부분 부 래들리가 등장하고 그의 존재도 ‘앵무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뒷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나도 이떄까지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바지를 수선해주고 선물을 넣어주었던 부 래들리의 행동을 으스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가, 그리고 작중 아이들이 부 래들리를 봤던 것 처럼 개개인의 단편적이고 편향된 시선이 옳아 사회에 퍼지게 된 일이 있었을까 생각 해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 문제가 예멘 난민들의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전쟁을 피해 안전히 살 수 있는 나라를 찾아 멀고 먼 제주도까지 오게 된 비무장 난민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슬림인 그들이 ‘그럴것’이다, ‘그렇게 행동’한다, 그들의 종교는 차별적이다, 우리나라 국민들, 특히나 ‘여성’에게 악영향을 미칠것이다(한국여자 제일 많이 죽이는건 한국남자다).. 등등의 단편적이고, 평향되고, 심지어 근거도 없는 공포심이 그들을 몰아내었다고 생각한다.
 ‘단일민족’이라 스스로를 지칭했던 우리나라도 인종차별에서 자유롭지 않다. 중동,동남아,히스패닉은 얕잡아 보고, 흑인은 동경과 차별이 동시에 섞인 단어로 지칭한다. 백인 앞에서는 스스로를 ‘똥양인’이라고 부르며 자신을 낮추기까지 한다. 같은 동양인 중에서도 중국인을 ‘짱깨새끼’라며 14억 중국인들을 한가지 민족성으로 압축한다. 
 나는 한국에서 23년을 산 한국인이고, 부모님과 외조부,조부 모두 한국인이시다. 내가 어렸을 때는 학교의 원어민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외국인은 커녕 다문화 가정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어서야 다문화 가정 초등생에게 국어 교육을 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아이들과 대화하다 학교에서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실을 알았고,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이들이 왜, 어째서 인종차별을 하는걸까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부모님의 영향일거라 생각한다. 엄마가 중국인은 더럽대, 일본놈들은 얍삽하대.. 이런 말들이 아이들에게 영향이 간 게 아닐까. 그렇다면 역시 어른이 제일 문제다. 한 아이는 엄마가 우크라이나에서 시집와서 18살에 자신을 낳았다고 했다. 다시 한 번 어른이 문제다.
 나는 장애/ 다문화 가정/ 노인/ 어린이 혐오에 대한 해결책은 단 한가지라고 생각한다. 대중들에게 그들을 많이 보여주고, 늘상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편견과 달리 그들은 우리의 삶을 위협하지도, 우리와 상이하게 다른 이방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 그들의 ‘존재’에 대한 혐오가 해소될 것이라 믿는다. 이 한 가지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뒤에 딸린 수백가지의 정책과 보조와 지원이 필요하다. 
  60년에 쓰여진 이 책과 미국의 현실은 다르지만, 동시에 크게 다르지도 않다. 흑인이 10년동안 나라의 대표가 되었지만 여전히 흑인 청년들은 불심검문을 당하고 경찰에게 총을 맞는다. 하지만 나는 조금은 낙관적일 정도로 희망적으로 미래를 생각한다. 흑인에게 총을 쏜 경찰은 2019년에 처벌을 받는다. 미디어에는 흑인과 동양인, 히스패닉이 의무적으로 역을 맡는다. 우리나라는 장애등급제가 폐지되고 장애인 이동권, 다문화 가정에 대한 지원과 관련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사회는 아주 미약하지만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언젠가, 먼 훗날 단 한 마리의 앵무새도 허투루 죽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햄릿 (Hamlet)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의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한번쯤 햄릿의 복수지연, 우유부단한 햄릿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햄릿의 복수지연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원인에 대해 집중하여 생각해 보았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을 썼던 엘리자베스 1세 시대(1558-1603)
이후에도 주인공 햄릿(Hamlet)에 대해 많은 비평가들이 분석을 하였다.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아버지의 장례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와 삼촌의 결혼식에 우울해 하는
초반의 모습에서, 햄릿이 유령의 증언을 듣고 복수를 결심한 후 아버지를 죽인 숙부를 살해하여 복수하는
모습으로 이야기의 막이 내린다. 따라서 『햄릿』은 주인공 햄릿의 복수과정을 다룬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도 햄릿의 복수의 지연과 그 원인에 대한 많은 비평이 나오고 있다. 햄릿은
복수를 바로 시행하지 않고, 극의 마지막 장에서 복수를 하게 된다. 특히
햄릿은 극의 중간에 클로디우스(Claudius)가 기도하는 장면에서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복수를 미룬다. 햄릿이 클로디우스의 기도장면에서 칼아, 참고 기다렸다가 좀 더 살기가 찬 기회를 포착하라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햄릿은 복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햄릿은 클로디우스를 살해하지 않는다. 그 후 햄릿은 복수를 지연하는 자신에게 욕설을 내뱉으면서까지
자책한다. 하지만 이 독백 후에도 햄릿은 복수를 미루다가 클로디우스가 계획한 레어티스와의 검술시합에 참여해서야 클로디우스를 죽이게 된다. 이로
인해 햄릿은 극의 마지막에서야 복수를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폴로니어스, 오필리아, 길덴스턴, 로젠크런츠가 죽게 되고 마지막에는 레어티스와 거트루드까지
죽게 되는 비극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게 만든 햄릿의 복수지연의 원인은 다양하다. 햄릿의 복수가 지연되는 것은 하나의 원인으로만 비롯된 것이 아니라, 매우
복합적인 원인이 섞여 있다고 본다
. 첫 번째로 주인공인 햄릿에 대해 분석할 필요가 있다. 당시 엘리자베스 1세 시대는 기독교 가치관이 팽배해 있었고, 개인적인 복수로 인한 살인은 범죄로 규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실제
영국 사회에서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는 것은 정의로운 일로 여겼다
. 즉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는 사적 복수가 가문의 의무라고 여기는 전통적 의식과 사적 복수를 금지하는 종교적 가르침 사이의 갈등이
있었고
, 그러한 갈등이 『햄릿』에 반영되어 있다. 그 당시
사회 속에는 가치관의 모순이 있었고 그러한 모순이 햄릿에게도 반영되어 심각한
내적 갈등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햄릿은 이러한 내적 갈등, , 기독교적 가치관과 개인의 복수를 하고자 하는 의지 사이에서
갈등을 겪게 되어 복수를 하라는 유령의 말에도 복수를 망설이게 된다
. 이러한 햄릿의 성격 즉 내적인
요인을 복수지연의 원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 하지만 복수 지연에 대한 원인을 햄릿의 내적인 요인만
강조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 햄릿의 주변 환경도 둘러보아야 한다.

거트루드의 결혼, 폴로니어스와 오필리아의 죽음과
같이 햄릿의 내적인 갈등 외에도 햄릿이 복수를 지연하게 된 이유로는 외적인 요인이 있다. 햄릿이 내적
갈등을 겪는 동안 주변 인물들이 햄릿의 내면에 또 다른 갈등을 유발하였다는 점이다. 먼저 거트루드는
햄릿 왕이 죽고 두 달도 되지 않아 숙부와 결혼을 하여 햄릿에게 삶의 회의감과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햄릿이 사랑하던 오필리아 역시 폴로니어스의 명령에 순종하여 햄릿을 속이고 염탐하는 일에 동참한다. 또한 햄릿이 유일하게 친구라고 생각했던 길텐스턴과 로젠크런츠도 클로디우스의 말을 듣고 햄릿을 감시한다. , 햄릿의 주변 인물들이 햄릿의 복수대상자인 클로디우스의 편에
서서 햄릿의 복수를 방해하고 있다. 그리고 햄릿은 어머니를 찾아간 날 도중에 커튼 뒤에 숨어 있던 폴로니어스를
죽이게 되고 이로 인해 영국으로 가서 위험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햄릿은 가치관 충돌에 따른 내적
갈등 외에도 주변 인물들의 배신과 폴로니어스의 죽음 등의 외적 상황에 의해서 외적 갈등을 겪는다. 이로써
햄릿은 자신의 가치관의 혼란과 더불어 주변 인물들의 배신에 대한 분노와 고립을 혼자 이겨 내야하는 외롭고 어려운 상황을 맞게 되며, 그로 인해 햄릿의 복수는 점점 더 늦춰진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햄릿의 내적 갈등뿐만 아니라 주변 인물들로 인한 외적 갈등또한 햄릿이 복수를 시행하는 것을 방해한다.

햄릿의 복수는 왕을 죽이는 것으로 단지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바꾸는 것이다. 따라서 햄릿의 내, 외적인 갈등뿐만 아니라 『햄릿』의 배경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이고, 그가 복수해야
할 대상은 바로 자신의 숙부이자 현재 덴마크 왕인 클로디우스이다. ,
햄릿이 복수를 하게 되면 왕이라는 나라의 최고 권력자를 죽여야 하는 불리한 환경에 있을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를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 햄릿의 복수는 개인의 복수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덴마크라는 하나의 나라의 안위가 달린 문제로 볼 수 있다. 햄릿이 자신이 칼에 찔려 죽는 마지막 순간에서도 다음 왕위의 계승자를 지정하는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햄릿의 사회적 지위는 햄릿이 자신의 복수만을 위해 무모하게 움직이는 것에 대한 한계를 나타낸다. 또한 설령 이러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무시하고 개인의 복수심에만 집중하여 클로디우스를 바로 살해할 수 있을지라도
햄릿 그의 개인 성향이 무모한 행동을 할 성품은 지니지 못한 인물로 보인다

이럿듯 햄릿의 복수 지연 원인을 내적 갈등외적 갈등사회적 위치의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햄릿의 복수 지연 원인을 햄릿의
내적 요인만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점이 있고 주변 인물에 의한 외적인 원인 또한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 또한
마지막으로 햄릿의
사회적 지위를 복수 지연의 세 번째
원인으로 분석하는 것은 중요하다
햄릿의 내적 갈등은 아버지의 살해에 대한 복수 열망과 그것을 금기시하는 기독교 윤리와의 갈등이다. 『햄릿』이 쓰여진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는 기독교 윤리가 강하게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으나 실제 영국 사회에서는 아버지나 자신의 살해에 대한 친족의 복수는 오히려 가문의 의무
, 정의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 이에 두 가치관 사이에서 내적 갈등을 겪고 딜레마에 빠진 햄릿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 햄릿은 선왕 햄릿을 죽이고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한 숙부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과 한편으로는 클로디우스를
죽이면 기독교 윤리에 배반할 뿐 아니라 살인자가 되어 사후 심판을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다
. 이러한
햄릿의 내적 갈등은 오로지 자신의 복수심에 빠져 행동하는 레어티스와는 다른 모습이다
.

햄릿의 내적 갈등 이외에도 햄릿은 외부 환경에 의해 혼란스러움을 겪는다. 거트루드의 숙부와의 근친상간적 결혼은 햄릿을 고통속으로 빠지게 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사랑을 고백한 오필리아 역시 클로디우스의 신하인 폴로니어스의 편에 서서 햄릿을 염탐하는데 이에 햄릿을 매우
외로움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햄릿 주변의 대대분의 인물이 햄릿의 복수의 대상인 클로디우스의 명령에
순응하고 햄릿을 공격한다. 햄릿은 주변 인물들의 배신에 실망하고 분노감을 느꼈을 것이다. 수많은 외부 환경들이 햄릿의 복수를 지체시키고 햄릿을 외적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햄릿의 내적 갈등, 외적 갈등 이외에도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로서 왕인 클로디우스를 죽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왕인 클로디우스를 죽이는 것은 덴마크의 최고
권력자를 죽이는 일이며 덴마크 사회 전체를 혼동에 빠뜨리게 되는 중대한 일이다. 설령 햄릿이 클로디우스를
죽인다고 해도 클로디우스가 선왕을 살해한 것에 대한 증거는 유령의 증언 뿐이기에 햄릿은 반역자라는 큰 범죄자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한 모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햄릿이기에 함부로 복수를 실행하지 못하고 마지막이 되어서야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상황에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복수를 한 것으로 본다. 햄릿의 복수 지연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햄릿 자신의 내적인 요인 뿐만 아니라 햄릿을 둘러싼 외부 환경, 그리고 햄릿의 사회적
지위를 고려하여 한다.

햄릿을 매우 인상 깊게 읽었다. 읽으면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버지를 죽인 존재가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하고 자신마저 죽이려한 상황에 놓였다면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자신이 믿었던 존재들마저 자신을 감시하려든다면 이 세상에 자신의 편은 하나도 없어 외로웠을 것이다. 처음에는 햄릿이 복수를 망설이는 장면이 조금 답답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햄릿은 자신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 그리고 나아가 자신의 나라의 안위까지 걱정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이 들었을 상황에서 고민하며 견딘 햄릿이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햄릿이 클라우디스 왕을 바로 죽였다면 어떠한 결말이 만들어졌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살해하지 않고 신중히 고민하는 모습이 햄릿을 더욱 유명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고 햄릿을 읽고 다양한 관점으로 생각해보면 좋겠다.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독서클럽 – 시와 함께]
2019년도 1학기 독서클럽을 신청하면서 이번에는 어떤 도서를 읽을까 고민하다가 팀원의 추천으로 시집을 주제로 고르게 되었다.
이 시집은 신현림 작가가 110여편의 시 들을 외로움, 사랑, 상처, 꿈, 청춘 이라는 5가지 주제로 묶어 엮어낸 모음집으로, 한 부의 끝 마다 딸에게 전하는 따뜻한 공감과 충고의 편지가 덧붙여져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응원의 시’ 라는 책의 컨셉 답게 책 안에는 지치고 힘든날을 보내는 이 들에게 위로를 주고 응원을 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들이 많이 적혀있었다.
한 학기 동안 이 시집을 몇번이나 반복하여 읽으면서 나 자신에게 위로가 많이 되었던것 같다. 또한 이 안의 시들을 같이 독서클럽을 한 팀원들과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읽어줌으로써 평소에는 부끄럽다거나 전하기 힘들어 잘 하지 못하였던 위로와 응원의 말 들을 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총 110편의 시 들중 여러 마음에 남는 시 들이 있었지만 제일 가슴 깊이 남았던 시를 꼽아 여기에 적어본다.
‘이 또한 지나가리’ 라는 시로, 랜터 월슨 스미스가 남긴 시 구절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
어느 날 페르시아의 왕이 신하들에게 명령했다.
슬플 때는 기쁘게
기쁠 때는 슬프게 만드는 물건을 찾아오라고.
신하들은 밤샘 모임 끝에
왕에게 반지 하나를 바쳤다.
왕은 반지의 글귀를 읽고
웃음을 터뜨리며 기뻐했다.
반지의 글귀는 이러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
슬픔이 밀려와
그대 삶을 흔들고
귀한 것들을 쓸어가버리면
네 가슴에 대고 말하라.
‘이 또한 지나가리.’
행운이 너에게 미소 짓고 기뻐할 때
근심 없는 나날이 스쳐갈 때
세속에 매이지 않게
이 진실을 고요히 가슴에 새겨라.
‘이 또한 지나가리.’
이 시를 읽고 새로웠던 점은, 다른 시 들은 슬픔이 지나가기를, 슬픔이 잦아들기를 바라는 시 들이 많다면, 이 시는 특이하게도 기쁨도 무던하게 느끼며 지나간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는 것 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 모든 일을 무던히, 슬픔이 상처가 되지않게, 기쁨도 자만이 되지 않게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나를 한층 더 굳센 존재로 만들게 해준 시 라고 생각한다.
4주간의 독서클럽 활동으로 팀원들과 시 를 서로 읊어주면서 공감하고, 위로하고, 위로받고, 앞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우리의 월급은 정의로운가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우리의 월급이 정의롭지 않은 부분이 있겠구나 라고 예상할 수 있었다. 뉴스에선 임금문제, 최저임금 인상문제, 비리자금에 대한 이야기를 수도없이 나왔지만 나는 그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니까. 나는 길어야 두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최저임금을 받은 경험이 있다. 생활비를 벌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않고 내가 사고싶은 것을 사기 위해서 했던 것이었다. 최저시급에 주휴수당을 포함해서 받은 월급은 그냥 만족스러웠고 뿌듯하기만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받은 월급은 물론이고 남들의 월급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도 몇년 뒤면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며 나의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순간이 올것이고,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임금에 대해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데 화가나는 사례들이 너무 많았다. 공공기관 건설현장에 고용되는 근로자의 경우 정부에서 정해준 임금을 받을 수 있는데 이것이 그냥 ‘권고사항’으로 여겨져 업체는 그 돈을 그대로 근로자에게 주지않고, 최저임금 만큼만 주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자신들이 알아서 지급하고 나머지 돈을 갖는것이다. 이런식으로 비리자금이 생긴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우리나라 기업들 중 그러한 기업이 많다는 것 또한 알게되었다. 근로자들 중 대부분은 이렇게 최저임금만 받고 평균 3.3명의 가족을 부양해야하는 가장들 이라고 한다. 누군가에겐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함이겠지만, 누군가에겐 이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해야한다는 것이 정말 불공평하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도 말했듯이 미국과 다른 선진국의 임금제도를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문화적 차이도 그렇고 정서도 그렇고 경제 상황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임금제도에 대해 생각하는 관점을 바꿀 순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근로자의 입장에서 임금정책을 결정하고 있었고 우리나라는 돈이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었다. 그들에게 유리한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 책의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 나라의 임금 정책이나 제도는 결코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고, 그것에 대해  분노하고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된다는 것이다. 미국사람들은 자신들이 받는 임금에 대해 불만을 품었고 그것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그러므로 프리베일링 웨이지라는 임금 기준이 생겼고, 그것보다 적지도 많지도 않은 딱 정해진 임금, 즉 적정임금을 받게 되었다. 지금이대로라면 나아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높은 위치에서 돈을 굴리고 있는 사람들이 정한 정책을 따르게 되고, 우리는 그저 불만스러운 임금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현 상황의 문제점을 파악해야 하고 어느 부분에서 우리의 목소리를 높여야 되는지 알아야 한다. 앞으로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해야하는 지금 우리 나잇대의 청년들이 읽어보면 매우 유용하고 경각심을 일깨울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시민의 교양 (지금, 여기, 보통사람들을 위한 현실인문학)

세금
이 책의 세금 파트를 읽기 전 까지는 나는 세금은 단순히 나라에서 돈을 걷어가는 시스템인줄로만 알고있었다. 책을 읽게 되면서 배운 점은 세금은 나라의 아주 큰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시장의 자유에 맡기게 되면 세금은 적게 걷게 되고 자본가가 크게 이득을 보게 된다. 그 반대로는 정부의 개입이 있게 되면, 세금은 높아지고 자본가가 아닌 노동자가 크게 이득을 보게 된 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장의 자유가 있게 되면 정부의 개입이 축소되고 세금이 낮아지고 국가재정이 악화되어, 국가 복지 수준이 낮아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아직 북유럽의 선진국들에 비해 시장의 자유를 중시하고 국가 복지 수준이 그 나라들에 비해 낮은 나라임도 알게 되었다.
자유
이번 챕터에서는 자유에 관해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 자유는 세가지로 나누었는데 첫번째, 자유와 시민의 관계, 두번째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그리고 세번째, 구매의 자유 즉 생산수단을 소유할 자유로 나누었다. 자유와 시민의 관계에서는 시민=자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극적 자유는 타인에게 간섭받지 않는 상태인 것을 알게 되었고 적극적 자유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자유도 의미가 커지고 점점 발전한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직업
시장의 자유에서 의미하는 자유는 생산수단을 개인이 소유할 자유를 의미했다. 개인의 소유가 가능해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이 직업에 대한 구분의 기준이 되었다. 전통적인 의미의 계급은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본가, 노동력을 팔아먹고 사는 노동자로 구분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자본가는 투자자와 사업가 노동자는 비임금노동자와 임금노동자로 구분이 된다. 시장의 자유가 강조되는 국가에서는 생산으로 인한 세금이 낮으므로 자본가가 유리하고 정부의 개입이 강조되는 국가에서는 생산수단에서 나오는 세금이 상대적으로 높고, 증세를 통한 복지가 확대되므로 노동자가 유리하단 점을 알게 되었다.
교육
교육에 대한 접근에서 우리는 형식적 접근을 중요하게 논하였다. 교육의 형식이 중요한 이유는 학생들의 성취도와 무관하게 전면적이고 무제한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으로 알아본 것은 진리에 대한 관점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관점은 객관주의 인식론이다. 객관주의 인식론에 기반한 교육 방식은 강의식 교육, 전통적 교실 구조, 객관식 평가가 이루어진다. 이는 효율적이고 성과가 높은 교육 결과를 보여주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고 경쟁이 정당하다는 신념을 심어 줄 수 있다. 다음으로 알아본 것은 교육의 형태를 결정하는 근본 원인으로서의 경제체제였다. 교육문제는 교육과 관련된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고 경제적 환경이 변할 때 비로소 변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제체제의 방향도 두가지가 있는데, 바로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개입이 있다. 시장의 자유가 있을 경우엔 교육문제 해결은 일자리 창출이 될 것이고, 정부의 개입이 있을 경우엔 소득격차가 완화 될 것임을 알게 되었다. 
정의
정의파트에서는 정의가 세 가지 측면으로 구분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첫번째 측면으로 윤리적 측면이 있다. 윤리적 측면에서의 정의는 ‘정의로움’을 의미한다. 정의로움에 대한 판단은 두가지가 있다. 첫번쨰로, 노력한 사람과 노력하지 않은 사람이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수직적인 정의관이 있다. 두번째로, 모든 사람이 최대한 동등한 권리를 갖고 평등해질 때 정의가 실현된다고 믿는 수평적인 정의관이 있다. 두번째 측면으로 경제적 측면이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의 정의는 분배를 의미한다. 분배로서의 정의는 차등적 분배와 균등적 분배로 구분된다. 차등적 분배는 사회적 기여, 노력, 능력 등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고려해서 부를 분배하는 것이 정의라는 관점이다. 이 관점은 자유주의적 방향성이 드러난다. 다음으로 균등적 분배는 부의 차별적 분배를 제한하고 최대한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이 정의라는 관점이다. 이들은 분배에서의 평들을 추구한다. 다음으로 정치적 측면에서의 정의는 선택이다. 시민들의 정치적 선택을 통해 그 사회의 정의를 확정하고 구체적인 경제체제가 드러난다. 이를 통해 정부가 보수나 진보로 나아갈지 결정이 된다. 시장의 자유가 있을 경우 정의는 보수적이 되고, 정부의 개입이 있을 경우 진보적으로 결정이 된다.
미래
미래파트에서는 앞으로의 사회를 예측하기 위한 지표로서 화폐와 인구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가장 먼저 화폐와 인구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통화량의 변화는 세계의 미래를 이해하는데 유용한 도구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인구의 변화는 한국의 미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됨을 알게 되었다. 통화량의 변화는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을 발생시킨다. 인플레이션 발생하면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고, 부동산과 주식의 가치가 상승한다. 디플레이션 상황에서는 화폐가치가 높아지는 반면 부동산과 주식의 가격이 하락하게 된다. 한국은 현재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베이붐세대의 은퇴를 앞두고 있어서 공급과잉과 수요 부족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것은 소비심리를 위축시켜 지속적인 디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정부는 인플레이션 정책을 펴 소비와 투자를 촉진시켜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수출 중심의 대기업이 큰 이익을 얻고 노동자 개인의 희생이 커지게 하는 즉,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

2019학년도 1학기 독서클럽을 하게 되어 다시 읽은 책이다. 나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이과였고 이과 학생들의 기본권장도서 였었던 이 책을 당시에 읽을 때와 대학생이 되어 읽는 지금의 느낌은 매우 달랐다. 이 책은 ‘이기적 유전자’라는 제목답게 책 내용 전반적으로 ‘인간은 이기적으로 태어났다.’라는 내용을 주장한다. 내용 중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낄 법한 것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테면 부모는 자식을 순수한 사랑의 감정으로 낳고 기르는 것이 아니라, 본인 유전자의 번식을 위해 낳고 기르는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예전에는 마냥 거부감을 느꼈었는데 성인이 된 지금은 어느 정도 공감하는 내용이다. 가끔 인터넷 커뮤니티를 보다보면 본인의 노후 대비를 위해 아이를 여럿 낳아 기른다는 사람도 있는데 아예 틀린 말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독서 클럽 조원들과 함께 이러한 논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들을 뽑아서 토론을 했는데 그 중에는 이런 주제도 있었다. 책의 내용에 의하면 인간은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일본인이 지하철도에 떨어졌을때 자국민도 아니고 타국민인 한국인이 그 사람을 살리고 본인은 죽은 사건’이라던가 ‘생판 남을 도와 본인을 희생하는 사건’등 이러한 사건의 선한 주인공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주제였다. 대부분의 조원들은 이러한 사람들이 돌연변이라고 얘기를 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는데 모두가 이기적이기만 하면 세상이 망하지 않을까라는 이유에서 였다. 이렇게 선한 목적으로 사람을 돕는 유전자도 있어야 세상이 돌아가지않겠느냔 얘기다. 이렇게 조원들끼리 다양한 생각을 나누면서 읽으니까 고등학생 땐 어렵고 지루했던 책이 더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독서클럽-생각하는 사람들조] 1911115 서지연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상당히 자극적이라는 인상을 얻었다. 더불어 호기심도 불러냈다. 누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일까. 내가 속한 독서클럽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를 책으로 선정했다.

 미디어 매체가 발전하고, 정보의 유통방법이 바뀌면서 사람들은 정보를 얻기 쉬워졌다. 클릭 한 번으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자, 사람들은 정보를 스스로 찾는 대신 인터넷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미디어의 발달로 사람들은 편의를 얻었다. 동시에 생각하는 방법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생각하는 방법만 잃었을까, 집중력도 잃게 되었다. 각종 미디어는 우리의 주의를 가져가, 이익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것들에 노출된 우리의 뇌는 주의가 분산되면서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지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서 생각의 깊이 또한 얕아지게 되었다. 글쓰기를 어렵게 느끼면서, 글쓰기를 피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이라는 편리한 기억 장치 덕분에, 더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아지면서, 사람들은 기억하는 능력을 강화하지 않기 시작했다. 망각에 익숙해졌다. 말 그대로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현대 미디어에 잠식된 우리에게 인터넷의 발달로 생긴 이익과 손해, 우리의 뇌에 주는 영향 등을 소개하며 경고를 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인해 우리는 정보를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산만해졌고, 지속적인 집중이 불가능해졌다. 인터넷에 나오는 정보를 곧이곧대로 믿거나, 옳지 않은 정보를 확산시키는 등의 멍청한 일을 저지르기도 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더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어진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먼저 의심을 하고, 한 번 더 생각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앵무새 죽이기

“아빠가 틀린 것 같아요.”
“어째서?”
“그러니까, 사람들이 전부 자기들이 옳고 아빠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서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지. 그리고 그 생각을 존중받을 권리도 있고.” 아빠가 말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의견보다 먼저 나 자신의 생각에 귀 기울여야 해. 사람의 양심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단다.”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이 믿고있는 가치관, 생각,신념등을 따라간다. 즉 다수가 옳다고 믿고있는 가치관을 ‘옳다’고 믿는다.  앵무새 죽이기는 그 믿음에 의문을 던지는 책이다. 정말로 그것이 ‘옳은’일인가? 라며 다수가 믿고있는 신념과 ‘편견’에 대해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진다. 
책에서 앵무새는 사회적 약자, 즉 소수의 사람들로 묘사된다. 소수의 사람들은 책에서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부 래들리과, 흑인 청년 톰으로 묘사 되지만, 우리 주변에도 상황, 성적지향,장애여부,성별,계층 등의 다양한 이유로 인해 사람들은 ‘앵무새’가 된다.
  책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도 앵무새를 죽이고 있지 않느냐라고, 자신의 생각과 양심을 따르는 일 보다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고 있지 않느냐고 끊임 없이 질문을 던진다. 책은 사회에서 차별 받는 이들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집단심리의 부조리함을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며 비판하며, 그것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집단심리에 맞서 자신의 양심과 신념을 지키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때로는 양심과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이들의 비난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에서는 또 이렇게 이야기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가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승리하기란 아주 힘든 일이지만 때론 승리할 때도 있는 법이거든.’
  양심과 신념을 지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많은 이들이 옳지 않다고 믿고 있는 생각과 편견을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 위해선 때로는 자신의 전부를 바쳐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하기도 전에 패배한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끝까지 용기를 내는 것이 용기있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앵무새를 죽이지 않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집단심리에 휩쓸리지 않고, 중심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는 태도와 편견에 맞설 용기 또한 필요하다. 나 역시 사람들에게 맞서는 것이 무서워서 나의 신념을 외면하는 일들이 많았지만, 책을 읽고나서  사람들의 편견과 이데올로기에 맞설 용기를 가지는 일은 , 앵무새 뿐만 아니라 ‘나’를 지키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내가 이 책을 직접 읽으면서도, 독서토론을 통해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눠 볼때도 항상 가졌던 생각이 있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날짜가 1993년 12월 15일로 26년이나 지난 책이다. 그래서 그런지 현재 시대 정서에 맞지 않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 무엇이든 하나로 단정짓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화성인의 성향을 가진 여자나 금성인의 성향을 가진 남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남자와 여자의 성향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화성인과 금성인의 성향으로 나누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생각하며 책을 읽어 나갔다. 연인관계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 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사람들마다 다른 특성을 가진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내 친구나 연인이 항상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단정지어 생각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이 책에 따르면, 화성인들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든 해결책을 제시하려 들고 감정 따위는 무시하는 반면 금성인들은 쓸데없는 조언과 보살핌을 제공하려 한다고 한다. 화성인들은 능력과 효율, 업적을 중요하게 여기고 자기 능력을 입증해 보이거나 힘과 기술을 신장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목적을 이루는 능력을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반면 금성인들은 사랑, 개인간의 친밀한 관계, 대화, 아름다움 등에 높은 가치를 두며 서로 도와 주고, 관심을 쏟고, 보살펴 주는 일에 그들은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자기의 느낌을 남들과 관계를 맺고 함께 나누는 일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화성인과 금성인이 서로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고 관계를 지속하게 되니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화성인들은 자신이 문제가 생기면 명확하게 해결책을 생각해낼 때까지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가 생각을 하는데 금성인들은 그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 채 조언을 해주려고 한다. 이 책에 따르면 화성인들은 쓸데없는 조언이 굉장히 비판적이고 불쾌하게 들린다고 한다. 이렇게 화성인들이 조언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금성인들은 그 모습에 자신이 사랑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상처를 입게 된다. 또한 금성인들은 문제가 생기면 화성인들이 자신에게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기를 바라며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한다. 하지만 화성인들은 금성인들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한 채 해결책을 찾는데만 급급해한다. 이에 조금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은 금성인들은 화성인들이 내놓은 해결책에 대해 시큰둥해 한다. 이를 보고 화성인들은 상대로부터 공격을 받았다고 느끼며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너무나 다른 화성인들과 금성인들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할 필요가 있다.
화성인들과 금성인들이 논쟁을 할 때의 경우도 책에 소개되어 있다. 대부분의 경우 논쟁은 화성인이 금성인들의 감정에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하면서 비롯되어 금성인들이 화성인들에게 불만스러운 듯한 반응을 보이면서 가속화 된다고 한다. 먼저 화성인들은 기본적인 욕구들이 충족되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논쟁이 훨씬 줄어든다고 나와있다. 또한 화성인들은 좀처럼 “미안해”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화성에서는 그 말이 무엇인가를 잘못해서 사과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금성인들이 사용하는 ‘미안하다’의 뜻은 ‘당신 기분이 그렇다니 마음이 쓰인다’ 정도의 가벼운 말로 쓰이는 반면 화성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매우 힘든 화성인들은 명백한 사과는 아니어도 염려하고 있다는 뜻이 충분히 들어날 수 있도록 돌려서 전하곤 한다. 금성인들은 불만을 가슴속에 쌓아뒀다가 감정이 점점 격해지면 쌓아뒀던 것들이 터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보통 금성인들이 논쟁에 불을 당기게 되는 것은 그들이 자기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화성인들에게 불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비난의 뜻이 담긴 말을 돌려서 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화성인과 금성인은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내가 금성인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항상 금성인 같은 성향만 띄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화성인의 성향을 띌 수도 있는 것이다. 나도 무슨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에게 내 사정을 이야기 하며 위로 받는 것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는 부분에서는 금성인과 유사한 성향을 가졌지만 신뢰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 부분에서는 오히려 화성인의 성향을 더 많이 가지고 있었다. 위에서 계속 말했던 것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성향을 띄고 있고 다양한 만큼 나와 같기를 기대해서도 안된다.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며 내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앞으로도 이 내용을 잊지 않고 살아가며 더 원만하고 편안한 친구관계, 연인관계 즉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힘쓸 것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이 책은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다고 말하면서,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많이 싸우는 이유는 이성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왔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충돌을 한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부분이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성별에 관계없이 다른 환경과 조건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격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른다. 이렇게 차이가 나는 것이 당연한 사실인데,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나다 보면 가끔 이런 사실들을 까먹고, 저 사람은 왜 저런 생각을 하는지 이해가 안되고, 상대방을 상처 입히거나, 내가 상처를 입는 경우가 있어왔다. 나만의 생각과 사고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단번에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고, 오히려 그런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생각을 갖는 것이 필요할 것 이라는 생각을 책을 보고 다시 떠올리게 되어, 인간관계에 있어서 내 자신의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좋은 부분의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듯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남자와 여자는으로 시작해서 꼭 남자와 여자는 이렇다.라고 적어놓은 부분이 너무 본인의 생각을 정답이라고만 말하는 것 같아 별로라고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여자는 이야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남자는 동굴에 들어가서 조용히 스트레스를 푼다고 나와있는 부분이 자주 나오는데, 내가 남자가 아니라서 남자의 경우는 모르겠다. 하지만 여자가  이야기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사람의 성격마다 다른 것인데, 이런 것들이 진리인 마냥 써져 있는 부분이 많이 있어서 보는 내내 좀 불편한 부분도 존재했다.

 

 그러나 이 책이 예전에 쓰여진 책이라 그 떄 당시에는 이렇게 구시대적인 생각을  했을 당시라 , 이 책에 나와있는 내용을 남자와 여자의 입장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전반에 대입하면 맞는 말도 많아서, 재밌었고, 다시 한번 다른 사람을 내 자신의 태도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