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와 죽은 자

우연히 중고서점에 들러 표지가 맘에 들어 샀던 책이다.
평소에 책을 잘 읽지 않아서 약600페이지나 되는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이 책을 한번 피니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금세 다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이책은 처음부터 살인 사건이 발생하여 초반부터 긴장된 분위기를 조성한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4명인가 5명의 살인이 발생한다. 살인사건의 시발점은 한 여인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여인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중태에 빠지게 되는데 뇌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장기이식으로 돈을 벌고 싶었던 의사는 뇌사판정을 내려 죽게 만든다.

그 이후로 딸이 엄마의 죽음에 대해 뒷조사를 하고 다니다 살해를 당하게 되는데 이것도 자살로 위장된다.

 

이를 견디지 못한 아버지가 아내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의 주변사람을  살해 한다.

아버지가  당사자가 아닌 주변사람을  선택한 이유는 아마 너도 나와같은 고통을 느껴보라는 뜻이 었던것 같다.긵

마지막으로 아버지는 자살을 하고  끝나게 된다.

 

나는 책을 집중력있게 읽지 못하는 편이라 초반이 재미없게되면 끝까지 읽지 못한다.

하지만 이책을 읽으면서 초반부터 마지막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그리고 사실 이 책은 타우누스 시리즈 중 하나이다. 앞으로 시리즈를 처음부터 읽어볼 것이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사람이 사람이기를 위한 조건은 무엇이 있을까. 사회적 기초도덕 준수? 인간관계? 아니면 cogito, ergo sum?인간으로서의 철학적 사유가 자신을 사람으로서 입증 하는 것인가. 여러 의견이 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4차산업혁명이 진행되는 현재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란 무엇인가.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0과 1의 사고를 가지고 있는 인공지능을 인격이라 취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발전이 되고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유를 따라잡는다 가정하자. 그렇다면 이를 단순히 물건으로 취급할수 있는 것인가. 사람만큼의 사유를 할수 있다면, 이는 그것 만으로 인격체로 판단해야 되지 않는가. 과학 발전은 인류에게 여러 철학적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sf라는 장르가 있다. 사이언스 픽션으로서 과학의 발전에 따른 윤리적 문제를 먼저 집고 넘아간다. 의학 소설로 유명한 로빈 쿡은 인간복제의 기술이 나오기 전에 인간 복제가 불러올수 있는 윤리적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 했으며 수많은 스페이스 오페라 소설들이 인간으로서의 실존에 대해 문제점을 던져왔다.

 
 
 이 작품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는 근미래 핵전쟁 이후 지구는 몰락하고 동식물이 사라지고 황폐해진 세계에서 인류보다 지능이 뛰어나지만 감정이입이 부족한 안드로이드를 쫒는 현상금 사냥꾼의 이야기 이다. 주인공인 릭 디커드는 동식물이 사라진 세계에서 기계로 만들어진 전기 양 대신 살아있는 양을 사고 싶어 하며 그것을 위해 도망친 안드로이드를 사냥하는 현상금 사냥꾼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으로서 이 작품은 인간이 가진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다루고 있다. 이 작품 속 안드로이드는 외형적으로는 인간과 구별이 불가능하다. 정밀한 사고회로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과 구별하기 위해서는 골수검사를 통해만이 가능하다. 작중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차이는 4년이라는 짧은 수명과 공감 이다. 안드로이드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현저히 부족하다. 이는 작 중 많은 것을 보여준다. 인간과 같은 안드로이드, 안드로이드 보다 못한 인간. 인류와 안드로이드를 나누는 간극은 점점 더 좁혀지며 주인공이 안드로이드로 몰리기도 한다. 단순히 안드로이드를 도구로, 기계로 취급할수 있는 것인가. 이는 단순히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비교에서 인간성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이어진다. 사회적 공감이 결여된 사이코패스를 인간으로서 볼수 있는 것인가. 
 
우리는 흔히들 이런식으로 말한다. 넌 인간도 아니야, 개자식, 등등, 부정적인 상용어로 인간성의 상실을 들먹인다. 그렇다면 그 인간성의 상실이란 무엇인가. 보편적인 의미로는 도덕의 상실일 것이다. 공감능력의 부재일수도 있고. 그렇다면 그것은 우리의 인간성은 그것에 있다고 볼수 있는가. 사람보다 사람다운 안드로이드, 공감능력이 결여된 사이코 패스. 둘중 누가 인간이고 사람인 것인가. 깊은고찰을 하게 된다.

모모 (: Momo(1973))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옛날 사람들에 비해 요즘사람들은 여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옛날보다 수명도 길어졌고, 그만큼 주어진 시간도 많아졌는데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는 걸까요? 아이들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하더라도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컵 떡볶이를 사먹고, 놀이터에서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에 엄마가 부르시면 그제야 집에 들어가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의 모습은 마치 학원에 다니는 기계 같습니다. 시간에 쫒기며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 합니다. 하지만 정작 현재의 행복을 놓치고 있지는 않나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모모의 이야기에서도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점차 변해갑니다. 모모는 허름해진 원형극장 한 구석에 살고 있는 고아 소녀입니다. 마을사람들은 이런 모모를 가엾이 여겨 같이 집도 꾸며주고, 음식도 나누어주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모모와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지요. 이렇게 인정도 많고, 여유 넘치던 사람들이 회색의 모습을 한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서 사건이 시작됩니다. 그 이후에 마을 사람들은 시간을 절약한다는 목적으로 바삐 살아가지만, 결국 그들은 회색신사들에게 시간을 빼앗길 뿐 점차 여유를 잃어갑니다. 모모를 매일매일 찾아오던 마을 사람들은 모모에게 쓰는 시간도 아끼게 되고, 결국 모모는 혼자 남게 됩니다. 회색신사들은 모모에게도 접근을 했지만, 실패를 하게 되고, 자신들에게 방해꾼이 된다고 판단하여 모모를 처리하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모모는 거북이의 도움으로 시간 관리자인 호라 박사를 만나 회색신사들을 모두 없애고,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아 줍니다. 모모의 도움으로 사람들은 여유를 되찾게 됩니다.

이곳에 나오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모모와 같이 회색신사들을 무찌르려 노력했지만, 결국 회색신사의 수족이 된 어른들의 전략 하에 탁아소에서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될 무언가를 배웁니다. 이 모습에서 저는 예전과는 다른 현재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뛰노는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시간에 하나라도 더 배워서 머릿속에 무엇인가를 남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노는 시간을 아껴 머리에 무엇인가를 남길지는 모르지만, 모모의 친구들처럼 아이들의 마음속은 점차 쓸쓸해 질 것입니다. 모모의 친구들도 허름한 원형극장에서 놀던 때를 항상 그리워했었습니다. 아이들 뿐 만이 아닙니다. 마을사람들도 모모네 집에 가서 이야기를 하던 시간들을 떠올립니다. 결국 모두가 여유를 바라지만 이유 없이 그들은 항상 시간에 쫓깁니다.

저는 모모의 친구 중 기기라는 관광안내원의 이야기를 통해 왜 사람들이 모모를 그리워하면서도 돌아오지 않는지 깨달았습니다. 기기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냈고, 모모에게 매일 찾아가 새로운 이야기들을 해주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회색신사들의 계획으로 기기는 유명해 졌고, 관광안내원기기가 아닌 이야기꾼 기롤라모가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모모와 같이 시간 도둑인 회색신사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노력했던 기기는 너무 바빠져서 모모가 찾아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졌습니다. 기기가 다시 모모의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부와 명성 때문이었습니다. 기기는 모모와의 즐거웠던 때가 그리웠지만, 부와 명성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시 가난뱅이 관광안내원 기기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잃을 것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도, 현실에서도 사람들은 부와 명성 때문에 시간에 쫒기며 살아가는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회색신사들도 결국 사람들의 마음속에 나온 욕심이라 생각합니다. 모모는 그런 욕심에 물들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모두들 그런 욕심에 물들지 않으리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러기는 쉽지 않습니다. 경쟁사회에서 남을 이겨야만 취직을 할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의 행복과 여유를 찾기 보다는 미래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시간을 투자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경쟁의 사회에서 부와 명성을 쫒지 않고, 자신만의 가치를 따라 행복한 삶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그 사람들은 마치 회색 신사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는 자유로운 모모의 모습 같습니다. 저는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며, 삭막한 시간들을 살아가기 보다는, 모모처럼 행복한 시간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또한,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경쟁의 세상을 따라서 가기 보다는 자신의 가치에 따라 행복해 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송곳 세트(전6권) (최규석 만화)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부조리를 목격한다. 학생때는 양아치학생들의 솜방망이 처벌, 군대에서는 선임이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수많은 폭력과 욕설, 간부들의 성희롱과 공갈 협박 등, 사회로 가면 얼마나 더 많은 부조리를 목격하게 될것인가. 무서워질 지경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저항 조차 하지 못 한다. 용기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알기 떄문이다. 우리가 꿈틀 한다 할지라도 변하는게 없음을. 군대 전역 6개월전 나는 후임의 성희롱피해를 계기로 소대원 전부의 의견을 모아 소대장을 신고했다. 소대원들의 곪아있던 것들을 모두 받아 적었고 그것은 단순 폭력과 사적 제재, 차별행위와 성희롱 협박 등등 다양한 범죄행위였다. 우리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고 용기를 내 행위로 옮겼다. 결과는? 대대장은 우리 소대원 전부를 불러들여 말했다. 명령불복종이라고. 너네가 하는 행위는 집단으로 모여 상사를 모욕하는 행위이며 이는 쿠테타에 비견될 만큼 큰 죄라고. 물론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처벌은 할거지만 너네도 잘한 것은 없다는 초등학교 때나 들었던 어처구니 없는 니가 잘못했으니까 상대도 그런 거다라는 말은 소대원 전부의 입을 다물게 하였고, 소대장은 경고장 한장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그 뒤 나는 어처구니 없는 꼬투리로 가지고 있던 모든 휴가가 잘렸으며 소대원 대부분이 포상휴가를 못 받는 사적 제재를 당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힘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꿈틀댄다고 변하는 건 없었다. 우리에게 남은 건 그저 숙이는 것 이었다. 가뭄에 말라 비틀어진 지렁이 처럼 우린 비틀어 썩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전역한지 2년 아직도 소대장의 이름을 잊을수가 없다. 중위 박종만. 그가 소설에나 나올 틀에박힌 악역같은 사람이었냐고 묻는다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 이었다. 대학교 rotc출신으로 군생활 끝나면 장사를 할 생각을 하고있고 여자친구를 원하고 가족을 생각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누구보다 악당이었고 철천지의 원수 였다. 
 
 이 책 송곳은 노조를 만드는 내용이다. 주인공인 이수인은 불의를 보면 참을 수 없는 사람으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악행들에 눈을 돌리지 못하고 그것을 막기위해 노조를 만들 고자 한다. 그는 불합리와 싸우는 투사가 된다. 그는 온갖 악재와 싸운다. 자신을 적대 하는 상사. 소 닭보는 눈으로 쳐다보는 자신의 부하직원들. 당신들의 권익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건만 그들은 알아주지 않는다. 주인공 이수인은 가장이다. 아내와 함께 갓 돌이 지난 아이가 있다. 그는 그의 회사 노조 한국지부 위원장이며 그의 자리에는 컴퓨터가 없다. 우리는 항상  악인은 벌을 받고 선인은 복을 받는 다고 배운다. 어린아이에게 이야기 해주는 백설공주나 신데렐라에서도 나온다. 공주를 괴롭히는 마녀나 계모는 벌을 받고 공주는 언제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이야기.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선의는 선의로 돌아오지 않으며 악인은 벌을 받지 않는다. 약하다고 무조건 착한 사람인 것은 아니며 부자라고 나쁜 사람인것 또한 아니다. 이 작품에서도 나온다.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랑 싸우는 것이라고. 주인공의 악전고투에도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픽션 안에서라도 해피엔딩을 바라지만 쉽게 이루어 지지 않는다. 여러모로 씁씁할 내용이다.
 
 작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비겁하고 무력해 보이는 껍데기를 잡고, 흔들고, 압박하면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이 작품의 제목이 되는 부분이며 나의 꿈이기도 하다. 나는 송곳같은 인간이 되기를 원했다. 부조리에 눈을 돌리지 않고 싸우는 그런 투사가 되기를 원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상대는 싸워서 이길수 있을 체급이 아니었다. 누구든 용기를 가질수 있다. 그러나 상대가 거대한 산이라면? 그것을 용기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만용이 아닌가. 녹 슨 송곳 한자루로 군대를 상대할 수 있는가. 작품 속 주인공은 그런 녹 슨 송곳 한자루 일지라도 싸운다. 처절하게. 작품 속에 내가 원했던 삶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건만 나는 그것을 행하지 못한다. 오늘도 나는 마음 속의 송곳을 부여 잡고 만용을 참으며 하루하루 숙이면서 살아간다.

무속, 신과 인간을 잇다

 우리의 무속에 대한 이미지는 무엇인가. 알록달록한 오방색의 한복을 차려 입고 날붙이를 들고 덩실 덩실 춤을 추며 고함을 지르는 여자. 말도 안되는 사이비, 흔히 들 부모님 세대가 용한 점쟁이한테 받아 왔다 하면 보이는 여러 부정적 반응들. 우리에게 무속이라는 것은 눈살을 찌뿌리게 하는 원시적 신앙이며 사기꾼의 집단이라는 고정관념이 박혀있다. 그리고 이것은 최순실 게이트라는 한국의 현대사에 어마어마한 궤적을 남긴 사건을 시작으로 더 더욱 심해졌다. 우리는 무속을 미개한 영역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는 무속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자기완결을 낸 것이라 생각한다. 애초에 우리나라의 종교는 적든 많든 모두 무속에 영향을 받았다. 한국 기독교를 보자. 대다수의 종교적 미사는 정숙한 가운데에 치뤄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격렬한 레크리에이션과 합창, 마치 축제분위기 같은 미사 현장은 기독교의 입장에서 보자면 경건 해야할 미사를 훼손한 이단과도 같은 것이다. 이는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오고 한국의 무속에 영향을 받아 한국식으로 변형 된 것으로 불교 또한 한국의 무속의 영향을 받아 한국식으로 교리가 바뀌는 둥 무속이라는 영역은 단순히 미개한 종교가 아닌 우리나라 종교 전반에 영향을 준 당당한 우리나라 토속 신앙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 책은 무속에 대해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들을 서술해 놓은 책이다. 물론 종교라는 것이 꼭 알아야 되는 상식 사항은 아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더라도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불교경전을 들여다 본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나 무속이라는 것에 관심이 있고 싫어하지 않는다면 한번 쯤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지역마다 다른 무속의 형태, 기본적인 행사의례, 무속의 의미와 기원 등.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이비의 영역이 아닌 긴 세월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져 온 우리나라 토속신앙 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신앙에 높고 낮음은 없다라 생각한다. 솔직히 말해서 인류 역사상 신앙의 이름으로 행해진 수많은 작태들을 두고보자면 신앙이라는 것은 인류에 있어서 독이라고도 생각이 들 정도 이다. 그러나 신앙이라는 것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정서적 안정과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의 잠식에 대해 생각 해보면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긴 하다고 생각한다. 무속을 단순히 원시적인 무식한 종교라고 치부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이다. 모든 종교는 원시적이다. 성경의 구약을 한번 읽어보라. 동성애자는 돌로 쳐죽이고 하룻밤에 수십만명을 죽인다. 자신을 믿는 신도를 시험하기위해 아들을 제물로 삼으라는 시험을 내리고 천사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산적의 노리갯거리로 넘긴다. 신앙의 의미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최초의 살인 또한 불합리한 신에 대한 저항일 뿐. 누가 누구에게 원시적이라 비난 할수 있는가.

올해의 문제소설 (2016, 현대문학 교수 350명이 뽑은)

의 삶, ‘진짜

 

 

 

1. 문제 상황 분석

 

주객전도(主客顚倒). 소설 속 의 삶은 마치 주인이 다이소의 물건인 것처럼 보인다. ‘는 물건이 필요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것 같아서 사고, 필요한 이유를 만들어서 사고, 급기야 새로 산 물건 때문에 다른 물건까지 구매한다. 보편적인 사람들처럼 필요에 의해 소비하거나, 적당한 기분전환에 그치지 않고 중독된 듯이 다이소에 가는 것이다. 그렇게 에게 다이소는 삶의 일부에서 전부로 바뀌어간다. 그렇다고 다이소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에게 정말 만족스러운 삶을 선물하였는가?

가 다이소에서 산 물건은 어떠한 느낌을 선물하였다. ‘일류 레스토랑에 간 느낌’, 외국 영화의 커플이 된 것처럼 이국적인 느낌말이다. 그것은 진짜가 아닌 그러한 기분을 들게 하는 잠시의 착각이다. 이 잠시의 착각은 다른 곳으로 뻗어나간다. 특히 개에게 그렇다. 개가 아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완과의 말다툼에서 개를 아기와 연관 지어 생각한다. 개에게 밥을 주지 않은 영완을 육아를 여자에게 미루는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공동육아에 대한 문제까지 걱정하는 모습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는 점점 진짜를 대체할 수 없는 영역과 마주친다. 영완과 싸우다가 지나가는 젊은 부부와 아기를 보며 자신이 소꿉장난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개는 아기가 아니다. 소꿉장난은 진짜 살림살이가 아니다. 아기를 키우는 친구의 삶을 진짜삶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가 은연중에 자신의 삶을 가짜라고 느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가 좋아하던 어떠한 느낌만으로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없다. 그러나 는 아기를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렇게 물건이 의 삶을 빼앗는 상황과, ‘가 자신이 생각하는 진짜삶에 닿을 수 없는 것이 이 소설의 문제 상황이다.

 

2. 주인공의 문제 해결 방식

는 다이소에서 물건 사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넌 다이소 없이 못 살 것 같다라는 영완의 말에 겨우 2천 원짜리 물건에 엄살이 심하다며 대꾸한다. 처음에는 1층에서만 물건을 사던 였지만, 나중에는 전 층을 망라하며 물건을 구매하는 모습은 대수롭지 않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젖병과 딸랑이같이 쓰지 않는 물건도 마구잡이로 구매하던 는 영완과 마지막으로 쇼핑하는 날까지도 아무 생각 없이 한가득 장바구니를 채운다.

그러나 영완이 정말 필요한 물건을 한 가지 골라보라고 말했을 때, ‘는 다이소를 찬찬히 둘러보며 지금까지 샀던 물건들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도 하지 못하며, 윤기 없으며, 정말 필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물건의 소용돌이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삶을 살다가, 영완과의 마지막 시간이 되어서야 문제를 인지한다. 소설 속에서 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나오지 않았으나, 말미에서 자신의 문제를 인지하였으니 앞으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달라지지 않을까?

한편, ‘가 자신이 생각하는 진짜삶에 닿지 못하는 문제에서는 의 해결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는 단순히 눈앞의 상황만 모면하는 방식을 택한다. 친구가 아기 이야기를 꺼낸 이후로 아기용품을 잔뜩 사는 모습은 현실을 외면하는 의 방식이다. 잠깐 아기용품을 사고 아기를 떠올리며 행복해하는 것이다. 개에게 시선을 돌리며 개를 아기처럼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의 일시적 해결 방안은 순간의 기분만 전환시킬 뿐,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결국 는 개로 인해 영완과 다툴 때 지나가는 아이를 보며 피했던 현실과 마주치고 상실감을 갖는다.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은 소꿉놀이에 지나지 않으며,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은 임시방편일 뿐, 진정 원하는 것은 다른 것임에 무기력해진다. 그러나 슬퍼하는 것도 순간이다.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는 계속해서 아기의 물건을 사들이며 마음을 달래고, 영완과 헤어지려 짐을 정리할 때도 애견용품과 아기용품을 놓지 못한다. 계속해서 순간을 모면하는 생활의 쳇바퀴에 갇힌다.

 

3. 평가 및 모색

 

이 소설을 읽으며 에게 강한 동정심을 느꼈다. 한심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인데도 주체를 굳히지 못하고 물건에게 빼앗기는 것이 불쌍했다. 그리고 자신을 친구의 삶과 비교하며 진짜를 갈망하는 모습도 안쓰러웠다.

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자신의 상황을 뚜렷하게 보아야 한다. 다이소의 물건들이 자신에게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객관적으로 자신을 바라볼 때, 자신의 삶을 인지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가 다이소에서 과소비하는 행태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눈앞의 상황들만 임시적으로 모면하려는 행동도 돌이켜야 한다.

이렇게 삶의 주체를 되찾는다면, ‘진짜삶에도 다가갈 수 있다. ‘의 문제는 가 원하는 진짜, 즉 아기와 함께하는 삶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진짜삶의 기준점을 친구를 부러워하며 잡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다시 생활습관을 바로 잡고 물건의 삶이 아닌 의 삶을 되찾는다면, 친구와 비교하며 진짜삶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진짜삶을 꾸릴 수 있으리라.

베를린 필 (2016 제61회 현대문학상 수상소설집)

샛노란 세상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개나리 산울타리를 만드는 사람들

 

 

 

1. 문제 상황 분석

 

노랗다. 소설 개나리 산울타리는 온통 노랗다. 소설 속 표현은 만개한 개나리 같이 따스한 노란색이지만, ‘남자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온갖 병을 다 얻은 듯 텁텁하고 노르께한 색이 떠오른다. 그런 노란색이 떠오르는 이유는 필시 남자의 역겨운 행동 때문일 것이다. ‘남자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비윤리적인 일들을 저질렀다. 대학시절 4-5명의 친구들과 함께 후배를 강간하였고, 버젓이 아내와 아들을 둔 가장이지만 불륜에 원조교제까지 한다. 이는 남자가 정신과 의사가 아닌 오히려 치료를 받아야하는 환자가 아닐까 의문을 갖게 한다. 어쨌든 의사인 남자에게는 그에게 상담치료를 받는 환자들이 있다. 그들은 시각적으로 이상이 없지만 하늘이 노랗게 보여 개나리 손질을 할 수 없다는 초로의 부인과, 심각한 편견에 사로잡혀 회사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내이다. 이들에게 남자를 투영하면 그가 스스로 우물 안에 들어간 개구리이며, 다시 우물을 벗어나려 하지만 실패하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2. 주인공의 문제 해결 방식

 

이 개구리는 넓은 세상이 싫어 자신의 안식처에 스스로를 가둔다. ‘남자는 스스로를 산울타리라는 자신의 좁은 생각 안에 가둔다. 그리고 개나리와 같은 들에 둘러싸여 좁은 하늘을 바라본다. 울타리 또한 원하는 위치에 직접 만들었기에, 그 좁은 하늘에는 남자가 보고 싶은 것만 담겨있다. 개나리 산울타리에 사는 그는, 노란색 하늘에 취해 산다. 이는 마치 편견 가득한 환자처럼 자신의 문제(편견)가 무엇인지 알아도 그것이 자신을 보호해 주리라고 믿는 것 같아 보인다. 이처럼 남자는 유나의 상황에 대해 똑바로 마주하지 않고 막연히 잘 살고 있으리라 믿고 넘겨버린다. 회피하고 자신의 좁은 생각 안에 스스로를 욱여넣어 자기 합리화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남자가 노란 그곳에 자신을 가둘수록 하늘은 더욱 노래진다.

그러나 그는 하늘이 파란색인 것을 알게 된다. 울타리 밖 사람들이 하늘이 파란색이라고 일깨워준다. 남자의 동창은 유나에 대한 죄책감을 비치며 남자의 생각이 틀렸다고, 하늘은 노란색이 아니라며 그를 찌른다. 사실 남자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파란 하늘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파란하늘을 부정하고 숨겼을 뿐이다. 그러나 남자는 계속 해서 찔리자, 무의식중에 파란 하늘을 신경 쓰던 자신을 발견하고, 그제야 울타리 손질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미 노란 울타리와 노란 하늘, 온통 노란 세상이 어지러워 빠져나올 수 없다. 그는 결국 모든 것을 부숴버린다. 아내도, 링고도, 끝내 자신도.

 

3. 평가

역겹다. 소설 속 남자. 가해자가 피해자를 기억하지 못하며, 자기 합리화를 통해 위안을 얻는 모습이. 그 좁디좁은 자신의 생각에 갇혀 현실을 외면하다 겨우 내린 결론이 우리는 젊었지만 한 번도 깨끗했던 적은 없었다고. 순수하고 순결한 젊음은 전혀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고,”라는 것이 더 그렇다. 이는 결론마저 문제 상황을 회피하는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깨끗하고 순수한 젊음이 아니라는 것이 결론이 되어서는 안 되며 더 나아가 더 깊은 반성과 후회, 물의 터널에 빠져 허우적거릴 정도의 자기 처벌이 필요하다.

우리는 소설을 읽으며 주인공을 욕하는 것에만 바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소설을 통해 자신도 비춰보아야 한다. 개나리 산울타리의 주인공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극대화한 작중 인물이다. 그래서 주인공처럼 극단적인 상황은 아닐지라도, 과연 나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직접 만든 개나리 산울타리 속에 들어가 현실을 외면한 적이 없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어쩌면 개나리 산울타리를 만드는 사람은 우리 모두일 수도 있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고, 실수를 하고, 회피하는 방식을 통해 문제를 대응하고. 아닐 거야, 아니야. 설마. 라는 말로 자신을 가두고 노란 하늘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것은 결국 타인에게 해를 줄 뿐 아니라 자신까지 부수는 일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작은 남자가 되지 않기 위해 편견과 좁은 생각, 회피에서 벗어나 문제를 직접 마주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소설 속 남자들이 득실대는 뻔뻔하고 냉소적인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을 멀리하기 위해, 파란 하늘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일깨워 주는 것도 개나리 산울타리로부터 세상을 지키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82년생 김지영 (워터프루프북)

 사람이 사는데 있어서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온다는 둥 뿌린데로 거둔다고 들 하는 이야기 이다. 현대 사회에 있어서 페미니즘이라는 화두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뜨거운 화두가 아닐 수 없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은 과거 가부장제에 시달린 어머니 세대들을 동정하며 그 악습에 관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자는 집안일을 해야 하며 현모양처여야 하고 어쩌구 저쩌구. 흔히들 말하는 페미니스트의 언어로 말하자면 ‘남성들의 억압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코르셋을 풀고 행동해야 한다.’ 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 가부장제에 있어서 최대의 수해자가 남성이라 생각하는가? 돈을 버는 것의 고됨을 모르는 철이 없는 시선들. 집안의 기둥이 되어 상사의 구둣바닥을 핥아가며 세월을 버텨온 가여운 그들을 단 한 순간에 남성권력에 취해 여성을 억압하는 무식하고 폭력적인 인간으로 낙인 찍는다. 페미니스트 여러분 축하합니다. 당신들의 아버지, 삼촌, 등등 주위의 웃 어른들의 삶의 투쟁을 한번에 쓸모없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당신만을 보고 버텨온 한 세월을 무시하는 그 행태에 무엇이 남는가. 나는 고민했다.
 
 이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과장된 소설이다. 페미니스트를 겨냥해 쓴 것이 눈에 보일정도로 허황된 통계를 사실인 양 붙여 놓았으며 작가는 이에대해 이런  말을 했다. ‘실제보다 상황이 안 좋은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어찌 생각하든 거짓말 같은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즉 작가는 소설의 허구성을 인지하며 남성과 여성의 대립구조를 증폭시키기 위해 허황되고 과장된 글을 썻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인가? 그것 또한 아니다. 조작된 통계를 쓰기위해 구체적인 맥락을 무시하는 등의 단순히 메시지 전달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한 부족한 글이다. 그렇다면 이글에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페미니즘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즘. 이제와서 나에게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온갖 허황된 과장과 거짓으로 범벅이 되어 정치권에서 이슈로 사용하는 얄팍한 사상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의 세상에서는 남성은 당연하듯이 여성을 성희롱 한다. 모든 남성들은 여자를 스토킹하고 남아를 선호한다. 남자는 1등시민 여자는 2등시민. 세상 모든 공공 화장실에는 몰카가 숨어져 있고, 지나가는 모든 남성들은 주부들을 맘충이라 비난한다. 여자아이라서 낙태당하고 여자라서 범죄의 피해자가 된다. 여자라서, 여자이기에 당한다. 얄팍하다. 이 글은 얄팍한 글이다. 읽는 사람에게 불쾌감을 줄 뿐인 글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얄량한 가치를 제외하고 이글에 남는 건 한줌 불쾌감이 전부일 것이다.
 
   
  최근 혜화역에서 여성시위가 일어났다. 이유는 몰카범죄 때문.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관도 아니다. ‘남성의 누드모델’을 몰래 찍은 ‘여성’을 빨리 잡았다는 이유로 시위를 벌이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요지는 이렇다. 만약 여자가 당했으면 이렇게 빨리 잡았을 것인가. 범죄자를 빨리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시위를 벌인 것이다. 애초에 용의자가 특정된 상황에서 수사가 빨리 끝날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들에게 논리는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성이 범죄를 저질러서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여성이라서 더 심한 처벌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동일 범죄를 저질렀을시 남성이 받는 형량보다 여성이 받는 형량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즉 수혜는 여성이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통계는 그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논리로서 행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불행한 삶과 부족한 자존감을 페미니즘으로 체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다시 혜화역으로 나가 소리지른다. 무좆유죄 유좆무죄. 

다섯째 아이

  해리엇은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아무나 혼전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 자기의 첫 남자에게 순결을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는 부유함 보다 검소함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 둘은 결혼을 해서 네 명의 아이들을 낳았다. 그전까진 남들의 부러움을 샀던 행복한 가정이었지만 해리엇이 다섯째 아이 벤을 임신할 때부터 가정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벤은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사두증에 힘이 무지 셌고, 인지 능력은 많이 떨어졌다. 마치 다른 유전자거나 생김새 또한 외계인처럼.  벤은 형의 팔을 꺾고, 개를 죽이고, 어머니를 거부하고, 항상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의 가족을 바라본다. 그를 체감하지 않은 의사들은 벤을 ‘정상 범주에 속하는 인간’으로 판정낸다. 하지만 정상인들의 세계에서 벤은 이해되지 못한다. 벤의 존재로 해리엇과 데이비드들이 꿈꾸는 가족의 이상은 파멸된다.
 
  이 책의 내용은 꽤 공포스러웠다. 특히 하는 행동을 묘사하는 부분은.  난 작가가 읽는 이에게 어떤 교훈을 주려고 쓴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원하는 이상향에 예기치 못한 불행이 생길 수 있음을 알려주고 얼마나 그것이 꺠지기 쉬운가. 그걸 가족상에서 보여주고 싶어 한 것 같다. 또한 해리엇과 데이비드가 풍족한 행복을 느끼고 있을 때  한 소녀에게 이런 행복은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거라고 말하는 부분에선 인간의 이기주의를 보았다. 마음에 손을 얹고 눈을 감아보자. 한번쯤은 누군가에게 내가 누리는 것을 너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 있지 않을까?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에도 의문이 생겼다. 일상에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그것은 직접 겪어봐야 안다.
  책을 쓴 도리스 레싱은 영국 여성작가다. 도리스가 어릴 때 그녀의 부모님은 아프리카에서 농장을 운영했는데, 황량한 아프리카 대지에서 도리스는 자유로웠고 어떤 집단이나 그룹 안에 있는 걸 싫어했다. 어떤 집단이란 결혼, 학교, 정당 같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속해있는 테두리를 말한다. 이러한 사고는 저자 도리스의 소설 대부분에 영향을 끼쳤고 <다섯째 아이>의 해리엇과 데이비드의 성격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 후 성장한 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야기가 후속작으로 나왔지만 아쉽개도 국내  정발은 되지 않았다고 한다.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서운하고 속상한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당신을 위한 감정의 심리학)

[상상독서 베스트리뷰 선정 도서 | 대출하러가기]

 이번 기회를 통해서 ‘혼자 잘해주고 상처받지 마라’ 라는 책을 읽어보게 되었는데, 제목부터 독자들을 위로해주고, 또 독자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느낌이 들어서 나의 눈길을 끈 책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참 많은 것을 고민하고, 또 이러한 고민들로 인하여 가끔은 불안하기도 하고 또 상처도 받고 하는 것 같다. 우선 이 책의 제목에서도 암시해주듯이, 너무 남에게 잘해주어야 하고, 남들의 기준에 맞추어주고, 배려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져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비록 남들이 조금은 서운해 할 수는 있겠지만 ‘나’에게 좀 더 중심을 두어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양한 고민을 유발하는 상황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해준다.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아마 남들과 비교를 하게 되는 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은 이만큼의 성과를 내는데, 나는 왜 노력을 해도 이만큼밖에 하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 굉장히 속상하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를 얻을 수 있다. 지금 내가 있는 위치, 나의 목표를 위하여 하나하나 해나가는 과정들이 가치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만큼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세상이 만든 기준에 맞추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때도 있다. 그리고 그 기준에서 조금 뒤쳐진다고 생각하면 불안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항상 자기 자신에게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주며, 또 하루하루를 알차게, 또 자신만의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면, 이것이 가치있는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책에서 또 하나 강조하는 것이 ‘혼자있는 시간의 중요성’이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내게 된다.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그렇지만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혼자만의 시간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특히 자신이 지금 힘든 상황일 때,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서는 일부러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보다는 조금은 웅크리고 있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 책에서 제시한다. 그러면서 조금 더 자신에 대해 성찰도 해보고 진지하게 앞으로의 계획도 세워보는 것이다. 이런 시간들이 자신을 한 층 더 성장시킬 수 있는 정말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하여 많이 힐링도 되고 또 자신감도 얻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나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도 해보고, 또 결국은 내가 행복하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남들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내 자신이 하는 일에 만족감을 느끼고 행복하다면, 그만큼 남들 앞에서도 더욱 당당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꼭 확보하여 나의 마음을 추스르고, 또 나 자신에 대해 점검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의 중요성도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을 때, 또 자존감을 높이고 싶을 때, 읽어본다면 많이 힘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