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가가 형사 시리즈 3)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사신의 7일 (이사카 코타로 장편소설,死神の浮力,ISAKA KOTARO COLLECTION)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야매 득도 에세이)
평소 도서관 혹은 서점에 가도 절대 에세이가 있는 서가 근처에는 가지도 않은 내가 독서클럽을 준비하면서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내가 에세이를 자주 읽지 않는 이유는 나와는 너무 상반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되어 나에게 큰 도움,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또, 힐링과 같은 에세이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는 지금 나에게는 별로 맞지 않아 에세이를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었다. 이 책 역시 처음 부분을 읽으면서 ‘아 내가 역시 에세이를 읽지 않는 이유는 틀리지 않았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계속 읽고 나보니 내 생각이 얼마나 좁은 사고였고, 선입견을 갖고 있는 채로 에세이를 보고 있었는지를 알게 해 준 책이었다.
책의 내용은 책의 서명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너무 삶을 살면서 열심히 살지 말자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열심히 살지 말자라는 말의 맥락은 지금 현대 사회는 너무 열심히 사려고 하니까 승패에 목 매게 되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의 저자는 그래서 마흔을 두 달 앞둔 시점에서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 저자가 퇴사한 이유는 딱히 큰 이유가 아닌 그저 저자를 짓누르고 있는 여러 문제로 멀어지고 싶었다고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세대들이 많이 공감할 수 있고 또 웃고는 있지만 맘 편히 웃을 수는 없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든 이유는 우리가 평소에 살아오면서 매우 소수의 사람은 한번쯤, 다른 보통의 사람들은 거의 매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자존감, 노력, 실패, 계획 ⋯등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들 고민으로 생각하는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자기가 실패했던 (자기가 원하는 대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4수를 했다는 내용 ⋯)경험을 솔직하게 다 말하면서 저자 또한 좌절과 여러 고민을 겪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다양한 시행착오들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작가의 위로는 다른 에세이 보다는 투박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투박한 위로는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고 나와 친한 언니 혹은 오빠가 이야기 해주는 것과 같이 다가왔다.
종강이 다가오면서 방학때에 ‘무엇을 준비해야지 내가 남들보다 더 나아질까?’, ‘시간을 허투로 쓰지 않으려면 내가 어떤 학원을 다녀서 어떤 자격증을 따야할까?’ 와 같은 고민을 하는 나와 같은 학생들이 많을 것 같다. 무의식 속에 더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모든 사람에게 조금 쉬어가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앵무새 죽이기
어쩌다 이런 가족
처음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은 바로 제목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떤 가족이길래 이런 제목이 붙은 걸까?’ 하고 의문이 생겼다. 가족이라는 존재는 선택할 수 없기에 어쩌다 이런 가족을 만났을까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이었다.
이 책은 주인공 가족은 ‘완벽한 가족‘이다. 외부에서 보자면 말이다. 대기업을 운영하기까지 자수성가로 이뤄낸 아버지 ‘용훈’, 온실 속 화초처럼 큰 태풍없이 자란 엄마 ‘미옥’, 아버지의 열정과 어머니의 지성을 물려받은 완벽한 첫 째 ‘혜윤’, 언니에 비해 나은 것이라고는 얼굴 밖에 없어 반항심만 가지는 철없는 둘 째 ‘혜란‘. 겉에서 보기엔 완벽한 가족이지만 사실 속은 텅비어있는 가족이다. 그런 가족에게 혜윤이 폭풍을 몰고 온다. 바로 누군가가 성관계동영상을 찍어서 협박을 해온다는 것, 그리고 자신이 줄곧 성매매를 해왔다는 것. 그야말로 충격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집은 수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그 누구도 혜윤에게 욕하지 않는다. 물론 용훈이 발 벗고 나서겠다며 큰 호통을 치긴 했다. 미옥의 속은 뒤집어지지만 철저히 겉으로 티를 내지 않으며 평소처럼 행동한다. 그 누구도 혜윤의 잘못을 캐묻지 않는다. 그에 반해 혜란은 오히려 재밌겠다며 조사를 한다. 완벽한 언니의 흠집을 캐는 일이 그녀에겐 쉽사리 오지 않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일까? 진실에 점점 빠르게 가까워지는 혜란은 언니를 더욱 깊은 곳으로 빠뜨린다. 그러다 그 속에서 언니가 왜 그런 일을 해야만 했는지 깊은 속을 깨닫곤 가족의 진정한 역할을 찾는다. 겉으로 완벽한 테두리가 있으니 속을 채워나가는 과정을 이제야 알아가는 셈이다.
한번쯤 기분전환으로 읽기에 나쁘지 않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전반부는 상류층에 대한 묘사, 주인공가족에 대한 배경들을 이야기한다. 이 작가가 상류층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묘사가 보다 사실적이고 빠져든다. 또한 전개되는 사건 하나하나가 평범하지않고 몰입력을 높힌다. 하지만 후반부는 아쉬웠다.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절정이 앞선 발단이나 전개에 비해 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작품성이 중요한 스토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책을 읽고 싶은데 난해한 내용은 읽기 싫고 책에 흥미를 못 느끼는 사람들에게 책의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분명 책에 빠져드는 몰입감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무인양품 디자인 1
간략하게 도서를 풀어내보자면, 이 도서는 무인양품의 디자인 철학 뿐만아니라 고문위원이자 디자이너들의 인터뷰, 프로덕트, 커뮤니케이션, 매장인테리어와 비주얼머천다이징 그리고 매장에 잘 알려지지 않은 house project 나 collaboration 까지 모든 것을 담아낸 책이다. 간소하면서도 치밀하게 계산된 디자인, 일본에서 시작했지만 뿐만아니라 세계에서도 사랑받는 디자인, 무인양품 디자인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군더더기 없는 그들의 디자인은 바로 프로덕트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의 “ 디자인을 통일한 것은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스탠더드한 제품이 되길 바랬다. ” 라는 바람 덕에 다른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 이것으로 충분하다 ’ 라는 미니멀리즘을 그대로 보여주는 깔끔한 디자인이 될 수 있던 것이다.
공간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무인양품 매장은 화려함을 피한다. 소재 본연의 것을 소중히하고 그들의 철학은 매장 공간에도 스며들어있다. 프랜차이즈인만큼 매장 마다의 통일성이 있는데, 변함 없는 기본인 나무와 벽돌 그리고 쇠를 유지하는 것이 그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었다는 모습에 깔끔하다는 인상을 확 받았다. 나는 그래서인지 그들의 조용한 매장분위기며 깔끔함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무인양품 매장에 갈 때마다 설레인다. 그렇다면 VMD 는 어떨까. 사실 브랜드의 가장 큰 목적은 소비자들의 구매심리를 자극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출을 위한 디자인이 있는 것이고. 매장에 가면 무인양품의 진열대는 사람의 키보다 훨씬 크다. 키 큰 진열대를 사용할 경우 시선은 높아지고, 상품 구성이 풍부해짐을 확 느낄 수 있다. 높은 선반을 설치하면 보다 많은 상품을 진열할 뿐만아니라 진열량을 늘려 상품을 풍부하게 준비해둘 수 있다면 품절 등으로 인한 판매 기회를 놓치는 손실 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들의 아이디어는 간단하지만 강하다고 생각했다. 패브릭 상품 코너에는 소재의 느낌을 직접 확인할수 있도록 손이 닿기 쉬운 위치에 샘플을 놓게한 것이 소비자들을 배려해주었다고 생각했다. 직접 만져보고 사는 제품이라면 더 신뢰가 가는것이니, 설치아이디어가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깔끔한 진열이 조건이면서도 라이프스타일 상품 특성에 맞춰 강약을 조절하는 것이 무인양품식 비주얼 머천다이징을 책에서 볼 수 있는데, 다 읽고나서 그들의 군더더기 없이 화려하지않고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철학을 바라보며 깔끔한 VMD를 만들어가고싶다고 생각했다. 굳이 많은 패턴이나 울룩불룩한 외형이 아니더라도 깨끗하고 단색만으로도 사람에게 편안함과 안락함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내고 싶고, 앞으로 더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해준 뜻깊은 책이었다.
무엇이 예술인가
이 책을 읽고 난 후 과연 무엇이 예술일까?에 대하여 의문을 가져 보았다. 예술이 제대로 정의되지 못했다는 문제는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 철학자들이 공통의 시각적 특성을 찾다가 포기하고 예술이 열린 개념이라고 결론 짓는다는 데에 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찾기를 포기한 듯하다. 하지만 나는 예술품에 고유한, 최소한 두 개의 특성을 알고 있고, 바로 이 특성들이 예술의 정의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우리는 주위를 조금 더 둘러보고 예숙작품에 공통된 특성을 찾을 필요가 있다. 비트겐슈타인의 시대에 철학자들은 어떤 창작물이 예술품인지를 아주 자신 있게 판별했다. 예술품을 가려내는 일은 사실 예숲품에 크게 달려 있지 않다. 우리가 그것을 예술작품으로 대해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미술평론가처럼 다뤄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열린 개념보다는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나는 예술 철학에 관한 첫 번째 저작에서 예술작품은 어떤 것에 관한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므로 예술작품은 의미를 갖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우리는 의미를 추론하거나 파악하지만, 의미는 전혀 물질적이지 않다. 그래서 주어와 술어로 구성되는 문장과 다르게, 의미는 그것을 담고 있는 사물로 구현된다 embodied. 그러므로 나는 예술작품은 구현된 의미라고 선언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상대적으로 구현에 대해서는 거의 분석하지 않았음을 인정하지만, 나의 직관적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예술품은 물질로 된 사물인데, 이 사물의 특성들은 의미와 관련이 있고 어떤 것들은 그렇지 않다. 관람자가 해야 할 일은 의미를 지닌 특성들을 해석하여, 그 속에 어떤 의도된 의미가 구현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야시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이 책은 <바람의 도시>와
<야시>, 이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있다.
우선 <바람의 도시>는
주인공이 7살 무렵 길을 잃고 우연히 고도(귀신의 길)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주인공은 고도에 대해
누구에게도 이야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12살이
되었을 때, 친구인 가즈키에게 고도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가즈키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주인공과 함께 고도에 들어간다. 주인공은 고도가 고가네이 공원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하고 공원까지 걷기로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공원은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찻집에 앉아 있던 청년
렌에게 도움을 받아 출구를 찾아간다. 그러던 중에 렌의 원수인 고모리에 의해 가즈키가 살해되고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비의 사원’을 찾아가기로 한다. 오랜 시간을 걷고 걸어 겨우 비의 사원이 도착하지만 사람을 살리려면 돈, 일정
기간 아이를 키워줄 부모, 건강한 육체(영혼을 담기 위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가즈키를 살리지 못한 채 주인공 혼자
고도를 빠져나간다.
비의 사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렌의 과거를 듣는다. 렌은 고모리에 의해 살해당하는데
렌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연인이 고도로 들어와 비의 사원을 찾아간다. 비의 사원 승려는 렌의
연인에게도 마찬가지로 돈, 부모, 건강한 육체를 요구한다. 연인은 돈을 지불하고 직접 렌을 임신하여 낳고 키운다.
고도에서는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는데 렌이 그 아름다운 풍경을 부러워하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사실 바람의 도시를 읽으며 주인공과 가즈키, 렌 모두가 고도를 빠져나가길 바랐다. 하지만 렌은 고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고도의 소유물이다. 고도의
소유물은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다는 법칙이 있다. 때문에 렌은 고도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그리고 주인공은 가즈키를 살리기 위해 비의 사원까지 찾아갔으나 가즈키의 영혼을 담을 건강한 육체가 없었기 때문에
가즈키를 살릴 수 없었다. 고도에서 죽는다는 것 또한 고도의 소유물이 된다는 뜻이므로 가즈키의 시신
조차 고도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없었다. 가즈키는 호기심에 고도로 들어왔다가 아무 이유 없이 살해당했다. 렌 또한 바깥 세상에 존재했을 때 고모리에 의해 살해되었고 고도에서 다시 태어나 바깥 세상을 동경하며 살아왔다. 주인공은 친구의 죽음을 눈 앞에서 보았다. 주인공에게 고도에서의
일은 매우 큰 정신적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고도를 나가 그 일들을 잊고 멀쩡히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기대했던 해피엔딩 결말과 달리 모두에게 아픈 감정만 남은 안타까운 이야기였던 것 같아 아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칫 뻔한 이야기가 될 뻔 했지만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반전이 있어 읽는
내내 재미있었다.
<야시>는 요괴들이
운영하는 야시장 이야기이다. 유지는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야시를 가본 적 있다. 야시에는 물건을 사지 않으면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없다는 법칙이 있다. 그
당시 돈이 없었던 유지에게 납치업자는 돈 대신 동생을 주고 재능을 사라고 한다. 별 수가 없었으므로
동생을 팔고 꼭 다시 데리러 오겠다고 동생에게 약속한다. 몇 년이 지나 다시 야시가 열렸을 때 유지는
이즈미와 함께 동생을 찾으러 간다. 그곳에서 한 노신사를 만나는데 유지가 구경하던 칼을 노신사에게 양보한다. 그 칼은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칼이다. 노신사는 보답으로 야시를
안내해주겠다고 한다. 각자 돌아보다가 다시 노신사를 만나게 되고 노신사에게 납치업자의 상점을 안내 받는다. 납치업자에게 10년 전 팔았던 동생의 행방을 물으니 아직 팔리지
않아 자신에게 있다고 말하고 한 아이를 보여준다. 유지가 가진 돈으로는 아이를 살 수 없어 유지에게
자신을 팔아 동생을 사고 같이 야시를 빠져나가라고 말한다. 둘의 거래가 성사되는가 싶더니 노신사가 아까
구입한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칼로 납치업자의 목을 베어버린다. 저 아이는 동생이 아니라며 사기라면서. 이즈미는 납치업자와 거래를 했지만 사기였다. 물건을 구입하진 못했지만
사기였으므로 야시를 빠져나갈 수 있었고, 노신사는 칼을 샀다. 하지만
유지는 아무것도 구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지는 결국 야시에 갇혀 나오지 못한다.
노신사는 이즈미에게 10년 전 야시 이야기를 전달한다. 어떤
형제가 야시에 들어왔는데 돈이 없어 형이 동생을 팔았다. 동생은 그 날 납치업자에게서 도망쳐 한 상점으로
들어갔다. 그곳의 상인에게 젊음을 주고 자유를 사 납치업자에게 다시 붙잡히지 않고 야시를 나갈 수 있었다. 젊음을 내놓았기 때문에 그 아이는 지금의 노신사가 된 것이다.
유지는 어릴 적 동생을 팔았다는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래서 돈을 모아 다시 야시를
가게 되면 동생을 찾고 자살을 하려고 마음 먹었다. 유지가 마지막에 야시를 빠져나가지 못했을 때 그
노신사가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마음 편히 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다. 사실 야시를 읽을 때에도 동생을 찾아 모두 다같이 야시 밖으로 나가길 기대했다. 하지만 바람의 도시와 마찬가지로 다같이 빠져나가지 못했다. 한 명은
유지의 동생이 아닌 아예 다른 존재 노신사로 살아가야 하고 유지는 아예 빠져 나오지 못했으며 이즈미는 친구를 잃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나는 해피엔딩을 원하는 사람이다. 책으로 위로
받고 힐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은 슬프고 아쉬웠다. 하지만
야시도 노신사의 과거와 납치업자의 사기행각 등 여러 반전 덕분에 이야기를 더욱 흥미롭게 했던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