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강의 이름 모를 여인 (기욤 뮈소 장편소설)

‘센 강에서 건져올린, 디오니소스의 양들.’
바이럴 마케팅에 홀려서 구매한 책이다. 추리소설을 그닥 선호하지않는 편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나 기욤 뮈소같은 유명한 작가들의 책은 한번씩 읽어 보고 싶었다. 
추리소설 이라기에는 내용 전개가 설득력없고, 억지스러움이 붙어있었다. 다만 기욤 뮈소가 프랑스 작가이다보니 파리를 묘사하는 배경과 로맨틱함은 매력있었다.
실제 센 강에서 일어난 사건과 그녀의 상징성, 디오니소스 신화를 결합하여 추리소설을 전개하는 것은 독특한 향기를 준다.

그냥 하지 말라 (당신의 모든 것이 메시지다)

펜데믹으로 당겨진 미래, 작가 송길영은 데이터를 통해 우리의 현재를 충고한다. 사회는 분화하고 장수하며 혁신한다. 
까닭에 현대인들의 가치관과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며, 다시 바뀔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변화’에 ‘적응’하기위한 방법을 제시한다. 
나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고 브랜딩하는 것. 즉, 한 분야에서 매력적인 사람이 되는 것.
“I, Sum of record.”

채식주의자

“내가 들어가보지 못한, 알 길 없는, 알고 싶지 않은 꿈과 고통 속에서 그녀는 계속 야위여갔다.”
한번의 꿈으로 그녀는 채식주의. 아니, 육식주의적인 삶에서 벗어난다. 
그녀의 채식주의는 현대사회가 내포한 ‘정상의 범주’, ‘상하관계의 폭력성’, ‘강자의 폭력, 점유, 정복’의 관념에 항의하는 매개이다.
책을 읽으며 불쾌했다. 그녀가 이해가 되지않고, 답답하고, 싫증났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깨달은것은. 
불쾌의 대상이 나, 자신을 향해있었다.
세계는 흑백으로 물들어버린듯 하다. 
다른것은 틀린것으로, 가치를 사실로.
색이 흩어져버렸다.

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장편소설)

“끊을 수 없는 애도의 굴레에 갇혀 그녀는 생각했다. 사실 난 널 괴롭히고 있는 걸까. 널 살리려는 게 아니라 네 비석을 더 매끄럽게 깎고 있는 걸까. 네가 수천 번 죽은 건 나 때문일까.”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무사했을지언정, 그녀는 다행이었던 적이 없었다.”
신인 작가 문목하의 데뷔작, ‘돌이킬 수 있는’은 SF, 미스테리, 판타지 등의 다양한 장르를 결합한 소설이다. 숨쉬기 힘들정도의 흡인력에 이 책에 빠졌고, 잠깐의 꿈을 꿈 것 같았다. 환상통이었다.
작품이 독자에게 대서사시를 상상하게하는 것이, 예술의 큰 가치라고 생각한다. 작가 문목하는 이를 마법같이 너무 쉽게 다뤘으며, 나는 그 흐름을 즐기고 함께했다. 
나는 정여준이었고, 윤서리였고, 최주상이였다.
“난 네 옆에 있어도 괜찮아. 너 같은 사람이 돼도 괜찮아.”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김영하 소설)

 “이게 영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세상의 시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를 안고 있으면 그의 삶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그랬으면 좋겠다.”
김영하의 단편소설집. 8개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이 책은 내가 알던 김영하의 정수를 보여준다. 김영하 작가를 좋아했던 그의 거침없는 문체와 표현들, 서슴없이 드러내는 에로티시즘, 죽음, 비극, 인간.
이야기꾼 김영하는 실재와 환상을 오가는 구성방식을 보여주며, 허무함의 결말은 공허함을 즐기게 만든다.

검은 꽃 (김영하 장편소설)

“죽은 자는 무국적을 선택할 수 없어. 우리는 모두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 죽는거야.”
김영하는 민족의 역사를 폭로나 고발의 차원이아닌, 이야기 그 자체로 제시한다. 그저 미적 대상으로 전유시킨다. 
 
국가를 떠난, 그리고 돌아갈 국가가 없는 그들. 아주 멀리에서 온 그들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허공에 몸을 던진다.

28 (정유정 장편소설)

재앙의 디스토피아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가되는가. 
생명의 존중따위는 저버리는, 존재의 타당성을 무시하는 인간의 이기심.
처음읽어보는 정유정의 소설. 다양한 인물의 시선에서, 개의 시선에서 이 책을 서술한다. 흔한 소재에서 독특한 전개방식, 허무하기까지 한 스토리가 충격적이다. 
그녀는 생명을 바라보는 인간의 이기심, 그리고 동시의 ‘희망’을 얘기한다.

은밀한 결정

특별히 두드러지는 고통도, 유혈도 없이 고요하게 멸망하는 세계가 존재할 수 있을까? 오가와 요코의 은밀한 결정은 질문에 대해 지극히 담담하게 대답했다.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완벽한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의 대척점에는 디스토피아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현실 비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인 만큼 이런 세계관에는 억압과 강제가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은밀한 결정에서 등장하는 ‘섬’의 분위기 또한 비밀경찰이라는 사람들에 의해 관리되고 각종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회로 묘사되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섬에는 아주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사람들이 살아간다. 특별한 대의를 품거나 개척할 것 없이,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순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야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설령 자기 신체의 존재가 소멸하여도 말이다.
이 작품의 주요 소재는 존재의 소멸이다. 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어느 날 전조도 없이 ‘소멸’한다. 일상적인 아침, 눈을 뜨면 공기의 흐름으로 인해 사람들은 소멸을 인식한다. 소멸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그 대상에 대한 감정과 기억까지 모두 빼앗기고 마음에 절대 채워지지 않는 상실을 겪게 된다. 향수는 더 이상 어떤 향기도 가져다 주지 못하는 액체에 불과해지고 리본은 의미 없이 흔들리는 끄나풀이, 모자는 머리에 얹어지는 알 수 없는 물체가 된다. 그 존재에 어떤 추억이 있었든 얼마나 각별한 추억이 있었든 관련 없이 모두 공평하게 아무런 감정도 일으키지 못하는 물질로 변해버린다는 건 평범한 생각으로 어떤 기분일까? 어제까지 즐겁게 감상했던 소설이나 어린 시절 추억의 물건을 아무리 돌아보아도 어떤 기억도 추억도 떠올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서글프게 느껴질 것 같다는 짐작이나 겨우 해 볼 수 있다. 다만 이 세계관에서의 소멸은 그런 감상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소멸한 것은 사라진 존재이므로 남아있는 사람들에겐 어떤 감정이나 기억도 남기지 않는다. 즉, 소멸한 것을 추억할 기회조차 박탈해 간다는 점에서 단순히 잊어버리는 것보다 깊은 마음의 구멍을 남긴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사라지는 것들은 더욱 많아진다. 주인공인 ‘나’는 새가 사라짐으로써 들새 연구자였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강탈당하고, 성인이 되고 소설가가 된 후 소설이 소멸하자 직업도 잃는다. 다행이라면 이 세계에서 이렇게 직업을 잃는 것은 흔한 일이기 때문에 곧 새로운 직업을 구하고 쉽게 적응한다. 나는 이 지점이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소멸에 익숙해진 탓에 어떤 저항도 하지 않은 채 받아들이는 모습이 고요하게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데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사라지는 것은 점점 더 일상 깊은 곳으로 다가오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한 양 아무렇지 않게 소멸의 재앙을 맞이한다.
이 작품에는 풀리지 않은 것들이 많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이 주인공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기에 ‘나’로 표기된 주인공의 이름이 어떤지 알 수 없는 것, 소멸은 어떤 이유로 발생했다거나 비밀경찰들의 존재에 대한 의문점이나 그들이 어째서 소멸한 것들의 잔재까지 전부 소멸시키려 하는지, 책의 종장 부분에서 그 소멸 이후에도 그들은 왜 영향받지 않고 기억을 잃지 않는 사람들은 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등 책을 전부 마무리 지었음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나는 상상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느 정도 궁금한 점은 해결될 수 있기를 바라는 편이라 이런 마무리가 아쉽게 느껴지긴 했지만, 주인공과 동일하게 사라진 것들은 알 수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맥락에 비추어 보면 이런 결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만일 진부한 재앙으로 인해 멸망하는 전개에 질려버린 독자들이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권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골든아워 1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가끔은 드라마나 소설보다 사실적인 이야기를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창작물이 주는 그 표현력도 좋지만,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의 이야기와 그 줄글들이 주는 현장감은 결코 창작으로 대체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기록을 찾아 읽곤 한다. 그런 책을 읽어도 크게 마음에 와닿은 적은 몇 번 없었으나 이 책을 읽으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마음이 힘들어한다는 걸 느껴볼 수 있었다.
중증외상센터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재구성한 골든아워1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장소 자체가 생과 사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장소이기도 하거니와 병원이라는 곳을 방문하는 건 어느 쪽이든 긍정적인 상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프고 다칠 때가 되어야 병원에 방문하고, 그 결과 살아남거나 죽기도 한다. 특히 배경인 중증외상센터는 정말 1초의 순간으로도 생사를 가를 수 있을 만큼 위급한 사람들이 찾아오므로 이야기가 절대 행복하고 낙관적으로 읽힐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응급 의료 시스템은 마냥 발전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전화 한 통이면 구급차를 부를 수 있으나 응급실이 부족하거나 힘든 응급실 근무 특성상 자원하는 사람들도 적다. 게다가 환자의 신속한 구조와 치료를 위해서는 응급 헬리콥터 등의 사용이 필연적인 것에 반하여 우리나라는 국토가 산지인 데다가 헬리콥터 소음 때문에 민원도 자주 발생하므로 한 대 띄우는 것도 어렵다. 평소에는 그런 기사들을 보면서 단순히 더 배려하면 좋을 텐데 같은 막연한 생각을 가졌으나 이 책을 읽으며 그건 배려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필요한 일, 약간의 강제가 있어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소음, 잠깐의 불편함으로 누군가의 생명 하나를 구할 수 있다면 그 정도 불편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최근 있었던 의대 정원 증원과 의사들의 파업, 단체 행동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의사들이 자신의 이득만을 찾기 위하여 저런 행동을 한다고 하고, 비난도 많았다. 물론 그런 마음으로 대응하는 사람이 없진 않을 것이다. 사람은 제 손에 들어올 힘을 놓치기 싫어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니까. 그래서 의사들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환자들을 위해서,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하여 끝없는 싸움을 하고 계신 이국종 교수님 같은 분도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될 수 있었다.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김준녕 소설집)

먼 미래, 우주를 정복하고 더 넓은 공간으로 나아가는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공상 과학이라 부르는 이야기는 잘못하면 뻔하고 흔하며, 참신함이 부족해지기 쉬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고,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은 막연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를 읽었을 때 흔하지 않은 소재가 주는 신선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여러 개의 단편 SF 소설을 엮은 소설집이다. 내용은 미래 사회에 펼쳐질지도 모르는 일상 같은 비일상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억을 사고파는 것, 그로 인해 제 진로가 불분명해진 사람들의 이야기. 바이러스가 창궐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여기까진 흔한 내용일 수도 있으나 세 번째 단편인 망자를 위한 땅은 없다 에서 화성의 부동산을 가지고 인생 마지막 배팅을 하는 장면을 볼 즈음부턴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득히 상상하기 어려운 먼 미래의 이야기에서 현실이 느껴진다는 것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뒤의 이야기는 더욱 재밌는 단편들이 많지만, 알고 보면 지루해질 수 있으므로 길게 적지는 않겠다. 궁금하다면 한 번 읽어볼 수 있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