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살아지는 모든 것들을 열렬히 사랑했다. 저자가 책을 마치며 쓴 문장이다. 그리고 이 문장은 127페이지의 작은 단상 집이 말하고 싶어 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와 같다. 전자기기와 미디어 매체로 가득 찬 도심의 삶을 사는 현대 사회에서 있는 그대로의 주변 환경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 경쟁과 현실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은 언제나 노력으로 가득 찬 시간을 보낸다. 그런 삶의 한중간에서 저자인 안리타는 사라지고, 살아지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생의 목표와 삶의 의미란 삶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되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냐 물으면 어떤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산다고 하고, 목표를 이루고 싶다거나 그저 살아있기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목표를 이루거나, 충분히 행복해졌다면 삶을 끝내도 된다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새로운 목표를 세울 것이라 하거나 행복에는 끝이 없으니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대답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간다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저자는 그저 살아지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잘 사라지는 중입니다. 어쩌면 사라지는대도 사라지고 싶어서 살고 있는다 해도, 살고 싶어서 이렇게 짓거리나 봅니다. (중략) 네, 살고 싶지 않아도 살아지고 살고 싶은 날에도 살고 있는, 이런 알 수 없는 생의 한가운데를 오래 서성입니다. 단지 우리 잘 사라지기로 해요. 그리고 우리 잘 살아지기로 해요. p.5
위 문단은 책에 수록된 단상 중 「사라진다, 살아진다」라는 제목의 단상이다. 저자는 책의 대부분에서 살아가는 것을 살아지는 것이라 표현하며, 그저 ‘살아지는’ 일상을 문장으로 엮어 노래한다. 즉, 저자는 삶의 목적이나 목표를 따지지 않고 살아지는 지금, 이 순간을 심도 있게 관찰하며 일상을 즐기는 것이다. 교육과 시험, 능력을 증명하며 경쟁하는 것이 중요한 이 사회에서 누가 목표 없는 삶의 지향을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저자의 생각과 동의하는 것과는 무관하더라도 이 마음가짐에 감탄을 표하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127페이지로 이루어져 있으나 대부분의 공간이 공백으로 채워져 있는 짧은 단상들로 채워진 단상집이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는 페이지가 너무 공허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느낄 사람들에게 더욱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삶이 꼭 가득히 채워질 필요가 없다고 말하듯 여백이 충분히 있는 이 책을 읽으며 삶의 여백을 생각해 보고 여유가 남는다면 직접 그 공백에 자신만의 글을 적어볼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