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결정

특별히 두드러지는 고통도, 유혈도 없이 고요하게 멸망하는 세계가 존재할 수 있을까? 오가와 요코의 은밀한 결정은 질문에 대해 지극히 담담하게 대답했다. ‘충분히 가능하다,’라고.
완벽한 이상향을 뜻하는 유토피아의 대척점에는 디스토피아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현실 비판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인 만큼 이런 세계관에는 억압과 강제가 거의 필수적으로 등장한다. 은밀한 결정에서 등장하는 ‘섬’의 분위기 또한 비밀경찰이라는 사람들에 의해 관리되고 각종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회로 묘사되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섬에는 아주 평범하고 소시민적인 사람들이 살아간다. 특별한 대의를 품거나 개척할 것 없이,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순응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이야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제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설령 자기 신체의 존재가 소멸하여도 말이다.
이 작품의 주요 소재는 존재의 소멸이다. 섬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어느 날 전조도 없이 ‘소멸’한다. 일상적인 아침, 눈을 뜨면 공기의 흐름으로 인해 사람들은 소멸을 인식한다. 소멸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그 대상에 대한 감정과 기억까지 모두 빼앗기고 마음에 절대 채워지지 않는 상실을 겪게 된다. 향수는 더 이상 어떤 향기도 가져다 주지 못하는 액체에 불과해지고 리본은 의미 없이 흔들리는 끄나풀이, 모자는 머리에 얹어지는 알 수 없는 물체가 된다. 그 존재에 어떤 추억이 있었든 얼마나 각별한 추억이 있었든 관련 없이 모두 공평하게 아무런 감정도 일으키지 못하는 물질로 변해버린다는 건 평범한 생각으로 어떤 기분일까? 어제까지 즐겁게 감상했던 소설이나 어린 시절 추억의 물건을 아무리 돌아보아도 어떤 기억도 추억도 떠올리지 못하게 되는 것은 서글프게 느껴질 것 같다는 짐작이나 겨우 해 볼 수 있다. 다만 이 세계관에서의 소멸은 그런 감상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소멸한 것은 사라진 존재이므로 남아있는 사람들에겐 어떤 감정이나 기억도 남기지 않는다. 즉, 소멸한 것을 추억할 기회조차 박탈해 간다는 점에서 단순히 잊어버리는 것보다 깊은 마음의 구멍을 남긴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사라지는 것들은 더욱 많아진다. 주인공인 ‘나’는 새가 사라짐으로써 들새 연구자였던 아버지와의 추억을 강탈당하고, 성인이 되고 소설가가 된 후 소설이 소멸하자 직업도 잃는다. 다행이라면 이 세계에서 이렇게 직업을 잃는 것은 흔한 일이기 때문에 곧 새로운 직업을 구하고 쉽게 적응한다. 나는 이 지점이 더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소멸에 익숙해진 탓에 어떤 저항도 하지 않은 채 받아들이는 모습이 고요하게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데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진행되며 사라지는 것은 점점 더 일상 깊은 곳으로 다가오는데도 사람들은 그것이 당연한 양 아무렇지 않게 소멸의 재앙을 맞이한다.
이 작품에는 풀리지 않은 것들이 많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이 주인공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기에 ‘나’로 표기된 주인공의 이름이 어떤지 알 수 없는 것, 소멸은 어떤 이유로 발생했다거나 비밀경찰들의 존재에 대한 의문점이나 그들이 어째서 소멸한 것들의 잔재까지 전부 소멸시키려 하는지, 책의 종장 부분에서 그 소멸 이후에도 그들은 왜 영향받지 않고 기억을 잃지 않는 사람들은 왜,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등 책을 전부 마무리 지었음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나는 상상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어느 정도 궁금한 점은 해결될 수 있기를 바라는 편이라 이런 마무리가 아쉽게 느껴지긴 했지만, 주인공과 동일하게 사라진 것들은 알 수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책이 전하고자 하는 맥락에 비추어 보면 이런 결말이 어울리는 것 같다. 만일 진부한 재앙으로 인해 멸망하는 전개에 질려버린 독자들이 있다면 이 책을 한 번 권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골든아워 1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가끔은 드라마나 소설보다 사실적인 이야기를 읽고 싶을 때가 있다. 창작물이 주는 그 표현력도 좋지만, 실제 일어났던 사건들의 이야기와 그 줄글들이 주는 현장감은 결코 창작으로 대체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이런 기록을 찾아 읽곤 한다. 그런 책을 읽어도 크게 마음에 와닿은 적은 몇 번 없었으나 이 책을 읽으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마음이 힘들어한다는 걸 느껴볼 수 있었다.
중증외상센터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재구성한 골든아워1는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장소 자체가 생과 사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장소이기도 하거니와 병원이라는 곳을 방문하는 건 어느 쪽이든 긍정적인 상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아프고 다칠 때가 되어야 병원에 방문하고, 그 결과 살아남거나 죽기도 한다. 특히 배경인 중증외상센터는 정말 1초의 순간으로도 생사를 가를 수 있을 만큼 위급한 사람들이 찾아오므로 이야기가 절대 행복하고 낙관적으로 읽힐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응급 의료 시스템은 마냥 발전되었다고 하기 어렵다. 전화 한 통이면 구급차를 부를 수 있으나 응급실이 부족하거나 힘든 응급실 근무 특성상 자원하는 사람들도 적다. 게다가 환자의 신속한 구조와 치료를 위해서는 응급 헬리콥터 등의 사용이 필연적인 것에 반하여 우리나라는 국토가 산지인 데다가 헬리콥터 소음 때문에 민원도 자주 발생하므로 한 대 띄우는 것도 어렵다. 평소에는 그런 기사들을 보면서 단순히 더 배려하면 좋을 텐데 같은 막연한 생각을 가졌으나 이 책을 읽으며 그건 배려가 필요한 일이 아니라 필요한 일, 약간의 강제가 있어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소음, 잠깐의 불편함으로 누군가의 생명 하나를 구할 수 있다면 그 정도 불편함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최근 있었던 의대 정원 증원과 의사들의 파업, 단체 행동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의사들이 자신의 이득만을 찾기 위하여 저런 행동을 한다고 하고, 비난도 많았다. 물론 그런 마음으로 대응하는 사람이 없진 않을 것이다. 사람은 제 손에 들어올 힘을 놓치기 싫어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니까. 그래서 의사들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지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 환자들을 위해서, 하나라도 더 살리기 위하여 끝없는 싸움을 하고 계신 이국종 교수님 같은 분도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될 수 있었다.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김준녕 소설집)

먼 미래, 우주를 정복하고 더 넓은 공간으로 나아가는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공상 과학이라 부르는 이야기는 잘못하면 뻔하고 흔하며, 참신함이 부족해지기 쉬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고, 아직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은 막연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를 읽었을 때 흔하지 않은 소재가 주는 신선함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여러 개의 단편 SF 소설을 엮은 소설집이다. 내용은 미래 사회에 펼쳐질지도 모르는 일상 같은 비일상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기억을 사고파는 것, 그로 인해 제 진로가 불분명해진 사람들의 이야기. 바이러스가 창궐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여기까진 흔한 내용일 수도 있으나 세 번째 단편인 망자를 위한 땅은 없다 에서 화성의 부동산을 가지고 인생 마지막 배팅을 하는 장면을 볼 즈음부턴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득히 상상하기 어려운 먼 미래의 이야기에서 현실이 느껴진다는 것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뒤의 이야기는 더욱 재밌는 단편들이 많지만, 알고 보면 지루해질 수 있으므로 길게 적지는 않겠다. 궁금하다면 한 번 읽어볼 수 있기를 권한다.

바꿀 수 없는 건 너무 많고 (그래도 바랄 수는 있는 거니까)

무언가 변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을까? 다들 한 번쯤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 있었겠다고 생각한다. 너무 좋아서 혹은 아쉽고 안타까워서. 차라리 시간이 멈추어 여기에 고정된다면 놓치지도, 잃어버리지도 않을 것 같은 순간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감정들이 영원할 리는 없다. 사람은 삶을 살고, 시간의 흐름을 타고 지나다 보면 변하는 게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내가 사랑했던 마음이 변한다고 하여 그 물건에 가졌던 사랑이 완전히 식어버리는 것일까?
나는 이 질문은 이 책의 초반부에 있는 ‘사랑했지만 잃어버린 것들’이라는 단편을 통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파란 장우산이라 한다면 무언가 특별한 감정이 들까? 보통은 그냥 우산이구나 하고 말 것이다. 우산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작가는 몇 년 동안 쓰던 푸른 장우산을 잃어버렸다. 이렇게만 서술되어 있다면 그저 작은 실수로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면 우산을 잃어버리는 행위 자체에 지쳤던 인물이 다시는 그런 경험이 없게 하려고, 자신에게 특별한 푸른 장우산을 결국 또 잊고 말았다고 하면 어떨까? 그쯤 풀어놓는다면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특별한 마음을 가진 우산을 어떻게 잃어버렸는지 알고 싶어하고, 결말을 궁금해할 것이다.
하지만 그 우산을 잃어버리게 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단순한 일상생활 속, 자리를 옮겨 다니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시시한 결말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원래 소중한 것이라고 애지중지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은 점점 가벼워지고 만다. 사람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고, 중요한 기억에서 멀어질수록 마음 또한 멀어지게 되는 법이다.
아무리 사랑했고 좋아했던 것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열렬함이 식는다. 마음이 식어갈수록 처음과는 달라져 버린 자신의 감정을 보곤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던가, 혹은 사랑이 끝났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하는 것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가지를 열렬히 사랑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며 어떤 일이 생길지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그때마다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고 우울해하거나 공허해 할 필요는 없다. 이 마음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니까. 작가는 자신이 현실에서 겪고 느낀 이야기와 감정을 통해 이처럼 담담한 삶의 방식을 알려준다. 어쩌면 괜찮았던 일이었을 수 있다고, 잘못도 실수도 아닌, 그냥 지나가는 삶일 수도 있다고.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뒤를 돌아보는 일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문고판)

 데일 카네기는 심리학자보다 영업 실무자에 가까웠기에 오히려 조금 더 이해 하기 좋은 책 이였던 것 같다. 먼저 내가 생각하는 이책에서 말하는 인간관계 에서 중요한 법칙은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 이다. 
 위의 내용을 조금도 풀어서 말해보겠다. 데일카네기는 저명한 학자가 아닌 실력이 좋은 세일즈맨 이였다. 그가 세일즈를 할 때마다 사람을 잘 구슬릴줄 알아야 했고, 잘 구스려야 실적으로 연결이 됐기 때문에 그는 어느 심리학자보다 긍정관계에 대해서는 우월 하다고 볼 수 있다. 학자는 아니었기에 이론적인 배경은 조금 부족했을 수 있지만 방법론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 하기에는 그의 방법이 굉장히 적합했다. 그래서 초판이 발행된 1930년대 부터 현재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내용도 사실 정말 어렵지는 않은 내용이다. 비난 비판 보다는 칭찬과 감사를, 진심을 기울인 경청, 이해와 독려 등이다. 사실상 현대 교육과정중 유치원에서 배울법한 내용이고 아주 기본적인 사람을 예의 있게 대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처음 이 책을 읽었을때 조금 의아 했었다. 이렇게 기본적인 내용들로 구성이된 책이 어떻게 이렇게 오랜기간 잘팔리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가 없었다. 하지만 그 의문은 금방 풀렸다. 가장 기본적인 것 이지만 가장 잘 이루어 지지 않는 것 이였다. 우리는 누구나 본인이 주인공이 되고 싶어한다. 소심한 사람과 대담한 사람이 있지만 그들 나름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하는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문제다. 한 하늘에 두개의 태양이 뜰 수 없듯, 한 상황에서 동등한 권위를 가진 두명의 주인공은 존재 할 수 없다. 1900년대 초반에도 그러 했던 것이고 현재인 2020년대에도 동일 하다. 그래서 이 책은 이렇게 오래동안 팔릴 수 있던 것이다.

 다시 내가 생각한 이 책의 주제인  “그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 을 긴 문장으로 이렇게 될 것이다. “상황에서 본인을 낮추고 그 타인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호감을 형성한 후 우위를 점하라”다. 무조건 저주는 것도 아니고 그 상황을 좀더 유리하게 만드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진심으로 대해주는 사람에 마음이 열리게 되어 있다.  이 심리를 적절히 활용해 관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세일즈맨 이였던 데일 카네기가 그랬듯이.
 결론적으로 참 기본적인 내용들을 보며 오히려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고 내가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 돌아볼 수 있게 되는 책이였다. 

독학력 (AI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단 하나의 힘)


 우리는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저자는 이 부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저자인 고요엘은 싱가포르 국립대 경영학을 학사 졸업하고 IT,AI 벤처캐피탈 업무를 하는
사람이었다. 저자는 본인이 컴퓨터 공학이나 인공지능을 전공한 사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AI 강의를 제안 받고 스스로 독학하여 교수의 위치에 오르고 글로벌 기업과 영국 정부로부터 인정받았다. 독자는 학사와 석사 그리고 박사과정에서 서로 다른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표명한다. 동시에 하나의 전공으로 이력을 쌓은 사람만을 인정하는 우리의 문화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변화하고 융합하는 시대에 하나의 학문만으로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학문을
공부하기 위해서 작가는 스스로 공부하는 힘인 독학력을 강조한다. 자신이 모르는 분야라고 하더라도 논문 100편을 읽으면 전문가 수준의 학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며, 스스로
그렇게 하여 인공지능 강의를 하여 우수한 평가를 받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경영을 전공한 사람이 컴퓨터 공학인 인공지능 논문 100편을 독해한다는 자체가 이미 지적 능력이 높은 것으로 보이고 일반인들은 쉽게 올라서기 어려운 경지라고 생각되지만
공부를 계속해서 해 나간다면 작가의 절반은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덕분에 내가 한성대학교 사회과학부에서 최근에 유망한 IT개발자가
되기 위한 컴퓨터공학부 트랙이 아닌 내가 좋아하고 진로와 연관된 기업경제분석트랙과 법정책트랙을 전공하며 공부하고 있음에도 독학력을 기른다면 내
전공이 아닌 AI 관련한 기술을 익히고 활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중요한 것은 나의 현재 소속이 아니라 공부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능력은 내가 노력하는 것에 따라서 얼마든지 기를 수 있다. 대학에서
力을 기르고 이것을 기반으로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찾아서 나간다면 많은 제한을 스스로 해제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작가가 얻은 귀중한 경험을 내 삶에도 적용하면서 살아보고자 한다. 나는 분명 발전해 있을 것이고 일하는 분야에서 내가 기회를 보고 실행하는 면면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누가 주문했는지 모르겠지만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 추리의 정석 : 노래 속에 숨겨진 이야기 ]
추리의 정석이라고 볼 수 있는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라는 책에서는 인디언 노래가 인상 깊습니다. 
인디언들에 관한 동요처럼 생각할 수 있으나 그 속에 범죄 수법을 짐작할 만한 것들을 숨겨둔 것을 책을 읽으며 알 수 있었습니다.  
책에 한 내용을 예로 들면 ‘한 인디언은 벌에 쏘여 죽었네.’라는 노래의 한 부분에서 벌침과 같은 뾰족한 것에 죽었다는 것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실제 책에서도 독을 넣은 주사기에 죽은 사람이 등장합니다.
위와 같은 흥미로운 책의 내용을 읽으며 노래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노래와 같은 작은 단서도 추리 소설에서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는 것을 봤습니다. 
저는 노래를 들을 때 노래 속에 숨겨진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귀로 듣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노래를 들을 때 그 속에 숨겨진 의미, 작가의 생각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들을 것입니다. 
 

이기적 유전자 (40주년 기념판)

인간의 본성은 무엇일까? ‘인간은 태어났을 때부터 악한 존재다.’ 라고 하는 순자의 성악설과 ‘인간은 태어났을 때부터 선한 존재다.’ 라는 맹자의 성선설,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선과 불선으로 나뉘어 있지 않다.’는 고자의 성무선악설 등 다양한 철학점 논제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문학과 철학이 아닌 수치와 계산, 검증으로 이루어진 과학은 인간의 본성이라는 주제에 대하여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답을 ‘유전자’에서 찾아내었다. 
인간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짧은 시간 내에 모든 생물체의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거대한 몸집, 강한 털가죽이나 억센 털도 가지지 않은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생물이라면 생존을 위해 살고, 더 강하게,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진화한다. 인류는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며 양 손의 자유를 얻었고, 양 손의 자유를 얻자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생물에게 있어 진화는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장치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진화에 대해 개체 간의 유리함, 즉. 더 강한 개체가 오래 살아남아 그 형질이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진화에 있어 ‘개체’가 아닌 ‘유전자’에서 발생하는 것이라 보았다.
이 책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생물 진화의 주체는 유전자이고, 생물들은 단지 유전자를 자가복제를 최우선으로 두는 기계적 존재다.” 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다고 하면 어째서 책의 이름이 ‘이기적 유전자’인 걸까? 이런 주제로는 이기적이라는 단어가 붙을 이유가 없어 보인다. 이를 이해하려면 책에서 말하는 ‘이타적’의 정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이타심 또한 이기심에 기초하였다고 주장한다. 일개미가 생의 전부를 희생하며 여왕개미를 보좌해 여왕개미의 번식을 돕는 것, 내장이 뽑혀 죽을 위기를 감수하면서 까지 벌집을 지키는 일벌의 행동을 본다면 자신이 아닌 타 개체를 위한 행동이므로 겉으로 보이는 것은 지극히 이타적인 행동이지만 그 내면에는 여왕개미, 여왕벌의 번식을 통하여 자신과 동일한, 혹은 비슷한 유전자를 자가 복제해 다음 세대로 보내기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라는 것이다. 즉, 이 책이 말하는 이기심은 다음 세대로 제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이기적인 본성을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도 진화의 수혜를 받은 생물인 만큼 이러한 유전자의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은 이기적인 본성 뿐만 가진 것이 아니라 ‘이성’을 가지고 있다. 타인과 교류하기 위해, 인간으로서 살며 사회가 약속한 규범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졌다. 이 책을 끝까지 읽다보면 작가가 전하고 싶은 하나의 주제를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상에서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유전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는 것이다.” 

지구 끝의 온실 (여름 에디션,김초엽 장편소설)

SF에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소재는 지구의 종말과 그 이후의 이야기이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인 지구 끝의 온실 또한 2055년, 자가 증식하는 분자 단위의 먼지 더스트가 지구를 뒤덮어 수많은 인류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식물 까지 많은 생명체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고, 살아남은 인류는 생존을 위해 돔을 만들었으나 돔이라는 장소 특성 상 수용할 수 있는 인간의 수가 한정되어 있어 살아남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의 분쟁과 분열, 투쟁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죽거나 죽임을 당했다. 개중 더스트의 내성을 가져 살아남은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이루었으나 자신들만의 문제로 또다시 분열과 생존을 반복한다. 
간단한 개요만 들어도 암울한 세계관이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점점 종말해가는 지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 더스트 사태는 종식되었으나 지구의 상태는 이미 황폐하고, 살아남은 사람들 또한 살아남기에 넉넉치 않은 세계에서 삶을 이어가는 생존자들의 이야기다. 이 또한 이 분야를 자주 찾아 읽었던 사람이라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었겠으나, 책의 구성은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총 3장으로 이루어져 있어 장마다 다른 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책의 시작이 되는 프롤로그는 더스트에 내성을 가진 아마라와 나오미 자매가 랑카위 연구소에서 실험당하던 중, 기회를 얻어 연수고에서 도망쳐 수많은 위협과 절망을 마주하고 생존을 위해 나아가던 중 아마라의 상태가 안좋아지게 되고, 결국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을 찾아 거대한 온실이 있는 축복 받은 숲 프림 빌리지에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책의 시작이 되는 부분부터 이 책의 세계관에서만 사용하는 단어와 개념들이 다수 등장하여 조금 난해하고 어렵게 다가올 수 있지만 문장의 구성이 매끄러워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설정들이 세계관을 더욱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후 이야기는 각각 2070년 더스트 종식 이후의 더스트 생태 영구원 아영, 도피처에 도착한 나오미, 다시 아영의 시점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기억칩의 비밀번호를 푼 이후 지수의 시점으로 바라본 과거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시점이 자주 바뀌는 편이라 자칫 깜빡하면 이야기의 흐름을 놓쳐버리기 쉬울 법도 한데, 특별하게 거슬리는 전개도 없었을 뿐더러 다음이야기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문장들이 가득하여 작가의 구성력이 대단함을 알 수 있었다. 
있는 것을 없애는 것은 쉽지만,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사람들은 보통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와 비슷하게 세상을 망가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다시 복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미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세계를 다시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게다가 그 방법에 확신을 가지기도 어렵다면 자신의 신념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또 몇이나 될 수 있을까. 반대로 자신이 행동하지 않아도 책임을 물을 사람은 없으나 단지 옳은 일이기 때문에 선뜻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혹은 누구도 탓하지 않을지라도 제 책임을 두고 도망가지 않을 사람들 또한 적을 것이다. 
이 책의 지구에 재앙을 안겨준 더스트는 과학 기술을 신뢰한 인류가 기후 위기를 손쉽게 극복하려는 시도 중에 발생한 재앙이다. 게다가 연구소 내부에서 끝날 수 있었던 사고가 책임을 뒤로 한 채 도망쳐버린 직원들이 폐쇄 프로토콜을 따르지 않아 전 세계에 걸친 대재앙이 되어버렸다.
 이 소설을 읽으며 작가가 이야기에 단순히 멸망과 재생 만을 담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 문제를 일깨우는 경고를 넘어, 자연을 제압하고자 하는 오만함, 그리고 그 결과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인류를 꼬집으며 인간과 자연, 과학 기술의 공존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그 과정에서 인간 사이의 공동체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양상의 갈등과 화합을 조명한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아주 간단한 일이라도 시도해 보게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당장 행동하지는 못하더라도 언젠가 위기가 닥쳐온다면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남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닌, 서로 협력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기 마련이다. 특히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일상적인 경험은 더 쉽게 잊혀지고, 살아가며 지나간 기억들을 무의식에 남겨둔 채 새로운 기억을 저장한다. 그런데 만일 일상적인 기억 뿐만 아니라 소중했던 기억, 절대 잊고 싶지 않았던 기억까지 모두 지워진다면 어떨까? 그것도 특별한 사건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닌 상실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 자신이 기억을 잊었음을 완전히 잊을 수도 있다면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
 
주인공인 히노 마오리는 하루 마다 기억을 잃어버리는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아 매일 같이 새로운 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러던 중 카미야 토오루라는 한 남학생의 거짓 고백을 시작으로 교제를 시작하게 되고, 그 후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뒷 내용은 큰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만큼 자세히 서술할 수는 없지만 전개 방향이 흥미롭기 때문에 읽어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만일 내 연인이 매일 나와 함께한 기억을 잊어버린다면 어떨까?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 싸우거나 불편했던 시간, 슬펐던 시간도 전부 잊어버린다면 나와 함께한 시간들이 없다고 생각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는 기억하겠지만, 기억을 혼자만 가지게 된다면 추억을 공유할 수 없으니 함께 있어도 결국 혼자 기억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외롭다고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단지 상실로 인한 비극을 비추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것은 매일같이 사라지는 순간들임을 알고 있어도 상대를 사랑하기 때문에 매일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어 상대를 행복하게 하기 위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관계 속에서 사랑의 깊이를 느낄 수 있으며, 마오리 또한 자신의 상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닌 매일 같이 기록을 남김으로서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을 기억하려 한다.
결국 이 책은 기억의 소멸과 재생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사랑의 불변성을 이야기한다. 비록 함께 지낸 시간이 기억에서 사라질 수 있어도, 함께 했던 시간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감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사랑은 남기에 둘의 이야기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주며,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소소한 행복의 소중함을 깨우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