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7개가 엮여있는 책이다. 각 챕터는 등장인물도 사건도 전부 다르지만 어쨌든 사랑? 그런 것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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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그녀와 나(희원)이 등장한다. 영어 교사인 그녀와 학생인 나.
편향되지 않은 글은 뜻이 없고 순종적인 글이라는 뜻 만은 아니다.
책에서 누군가가 과장된 먼 이야기가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아주 평범한 일상이라는 게 잘 느껴지는 챕터다.
어린 시절 도움 받았던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남자 선생님보다 여자 선생님께 더 큰 애착을 가졌던 것은
아마 나의 미래를 그들을 통해 상상해봤기 때문인 것 같다.
이야기 속에서 희원도 그렇다.
그녀의 현재가 희원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빨리 읽은 것 치고 후에 생각할 게 많았던 챕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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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몫 (개인적으로 제일 좋게 느껴진 에피소드였다)
당신(나), 희영, 정윤 + 용욱이 등장한다.
대자보에 적힌 정윤의 글을 읽고, 읽으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문학 동아리에 들었고, 희영은 동기다.
그대로라고 말하는 것은, 그 많은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예전의 당신이 존재하며 그게 보인다고 일러주는 일이라고 했다.
이 챕터에서 주인공은 ‘당신’이라는 칭호로 등장한다.
그래서 더욱 몰입 됐던 것도 있다.
아마 정윤에게 ‘존경’이라는 감정을 가졌을 희영과, 입 밖으로 뱉은 용욱이 느꼈을 감정은 매우 달랐을 것이다.
존경과, 이기심 그 사이다.
유년기에 나는 보통 희영이였고 용욱을 싫어했다. 그리고 정윤이들과도 유사한 이유로 멀어져 갔다.
그래도 마지막엔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거나, 당신이라는 친구와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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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년
나와 직장 후배였던 다희가 병원에서 재회하며 시작한다.
조금 의문을 가지게 된 챕터다.
책에서 ‘그때의 자신은 온전한 남처럼 기억됐다’ 라는 식의 문장이 몇 번 나오는데, 이 작가는 그것을 안쓰러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나는 타자화라는 게 나쁜 것인지 모르겠다. 이 작가는 본인의 과거는 전부 본인이기 때문에 가꾸고 돌보고 포용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글에서 ‘나’는 ‘다희’를 생각하며 눈이 가득 덮여도 사라지는 것은 없다고, 그녀는 여전히 그녀인 채로 살아 있다고 말한다.
나는 그 눈이 가득 덮이는 사이에 다희가 느꼈을 끔찍한 추위가 그녀의 근간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와 나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달라서 머릿속에 물음 표가 많이 떴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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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답신
나,언니, 형부와 사랑하는 조카 +아빠,고모 할머니 등
아마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화가 났던 파트였던 것 같다.
뒤에 책의 내용을 리뷰? 하는 부분에서도 이 부분에서 다들 분노를 느꼈을 거라고 써있어서 어떻게 알았지 싶었다.
이야기에서 나는 불운한 나의 인생을 날 버리고 떠난 엄마를 탓하며 위로했고, 후엔 언니의 인생을 모두 형부 탓을 했다.
그게 전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들이 나빴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 두 개의 사실을 한 번에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18년도의 내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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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파종
소리, 나, 오빠(소리의 삼촌) 이 등장하는 내용이다.
7개 이야기 중에 가장 쉽게 읽은 대목이다.
이야기는 소리의 자퇴 선언으로 시작된다.
소리 뿐만 아니라 ‘나’도 가족, 더군다나 부모라고 생각했던 이의 이별은 정말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보다 외로운 순간은 그 그리운 상대에 대한 얘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못함을 깨달을 때다.
소리가 무슨 마음으로 백일장 대회에 삼촌 얘기를 썼을지 너무 이해돼서 가슴 아팠다.
소리는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철이 들어있어서 내 동생이 생각났다.
너무 아기인데, 사춘기인데, 티 내지 않은 게 습관이 되어버린 내 동생이 생각나서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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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모에게
이모, 엄마, 아빠, 내가 등장한다.
이모를 닮은 나, 이모의 삶과 짐이 되어버린 나.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아도 되는 나.
‘나’의 삶의 대부분에 이모다 들어 차있다.
이모에 대한 속마음을 무시하면서도 거울에서 이모와 닮은 자신을 발견하는 건
그건 어떤 마음일까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이모에게 보여줄 때 나는 어떤 기분이였을까?
제일 공감이 안돼서 그만큼 많이 상상하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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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기남(나), 우경, 진경, 마이클 + 제인
두 딸을 둔 기남과 남편의 편애
첫째 딸의 알코올 중독 사실을 고백함과 동시에 이 가족은 벌어져 버렸다.
아버지와 진경은 우경을, 우경은 나머지에게 닿지 못할 것이다.
5년 전 미국에서의 ‘그 사건’을 듣다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진경은 남의 안을 들여다 볼 만큼 다정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진경은 마이클과 엄마인 기남에게 너무 다정하다고 말하며, 그건 나쁜 거라고 했다.
실제로 이야기 속 기남은 다정하다
캐리어 하나 통채로 진경네 가족에게 줄 것만 챙기며, 여전히 와인이 말라 붙은 채로 잠이 드는 우경을 살핀다.
반년 이상 금주를 했음에도 진경에게 우경이 여전히 ‘술 마시는 사람’인 것과는 상반된다.
읽으면 읽을 수록 나는 진경과 더 비슷하다고 느꼈다.
앞서서 읽었던 답신이라는 챕터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
그 모든 것을 수용하기엔 난 그럴 여유와 다정함이 없다.
그들을 그런 취급을 하지 않으면, 나의 해소되지 못한 감정은 영영 출처를 찾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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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다 끝난 뒤에 나오는 글을 읽으면서 앞의 이야기들이 더 잘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사랑을 주제로 하는 단편 소설집이면서 속에는 사회문제를 가득 담고 있는 책이다.
첫 이야기에 나온 말처럼
아주 평범한 일상일 수도, 혹은 편향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나와 다른 그들의 삶을 볼 수 있어서 즐거웠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