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세탁소 이야기는 지은의 부모님으로 부터 시작된다. 지은이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의 능력으로 인해 마을사람들과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게 되는 내용에서부터 마음 세탁소를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부모님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을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이라고 확신할 순 없지만, 책에서 나왔던 ‘빛과 어둠은 연결되어있다’라는 내용을 참고했을 때 그들의 감정 또한 단면이지 않다는 걸 느꼈다. 감점들은 연결되어 있고 외면할 수록 외면한 감정의 크기는 속에서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감정은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움과 슬픔, 아픔이 없는 마을이라고 설명했음에도 마을의 서재에는 이런 감정들을 다룬 서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마을은 감정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외면한 채 살아온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외면에 비례해 점점 커지는 감정들은 지은의 능력을 계기로 발현되어 결국은 모두가 사라지는 부작용, 즉 인과관계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은은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수세기를 다시 태어나는 환생을 거듭했다. 하지만 정말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닌 그저 껍데기만 새로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과정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많은 생을 살면서 지은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차를 건내며 남을 위했지만 정작 자신의 과거를 제대로 마주하고 풀어낼 방법은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연찮게 거주하게된 메리골드 마을에서 지은은 세탁소를 열면서 결국엔 과거에 마주하게 된다. 그 사이에 있던 손님들의 역할도 크지 않았나 싶다. 내 생각에는 특히 몇명에게서 조금의 힌트를 얻었던 것 같다.
마음세탁소의 첫 손님이었던 연희는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헌신했지만 배신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를 붙잡고 놓지 못했다. 하지만 알고보니 연희는 외로워서,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서 남자친구에게 상처를 받고도 더욱더 집착하고 포기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간혹 누군가는 상대방과 무관한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상대에게 집착하고 숨을 막히게 하기도 한다. 이게 잘못된 방식임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 연희처럼 ,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뭔가가 어긋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느꼈다. 자신을 사랑하고 아낄줄 알아야 남에게도 옳은 방식으로 사랑을 주고 아껴주듯이, 먼저 자기 스스로를 단단하게 지지하고 사랑하고 아껴야 한다.
이렇게 연희의 이야기에서 자신에 대한 사랑과 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첫 번째 힌트였던 것 같다,
그 다음 힌트로는 영희가 아닐까 싶다.
“어떤 아픈 기억은 지워져야만 살 수 있기도 하고, 어떤 기억은 아프지만 그 불행을 이겨내는 힘으로 살기도 하지.” 지은이가 했던 이 말 중 전자에 대해서 나는 아픔 속에서 배우고, 그것을 극복하며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있었다. 어떤 기억들은 처음엔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지도 못한 좋은 기억들과 연결되어, 결국은 더 나은 나를 만들어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아픈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선택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희에 대한 이야기를 접한 후, 그동안의 내믿음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닐 수 있다고을 깨달았다. 영희는 자신이 잘못한 일이 아닌 일들로 인해 오랫동안 상처를 받았고, 그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깊어졌다. 그의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서 강박으로 변했고, 결국 그것은 영희를 점점 더 옥죄어 갔다. 영희를 괴롭혔던 아이들, 부모님의 말, 끊임없는 비교들, 이런 모든 것들이 영희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을 탓하기 바빴다. 그는 자신이 겪었던 모든 아픔에 대한 책임을 홀로 지려 했고, 그럴수록 마음의 짐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졌을 것이다.
자신을 탓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몇이나 있을지… 모든 책임을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리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다. 그럴 때, 주변의 도움이나 위로가 없으면 그 고통의 무게는 감당하기 힘들 것이다. 영희가 그 고통 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자신을 탓하는 감정을 지울 수 있는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나는 영희가 그런 기회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고 느낀다. 만약 그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그래도 잘 살아왔어.’라고 말해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영희는 조금이라도 덜 아픈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시간이 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영희는 마음세탁소에 도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영희의 모든 일과 감정을 내가 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주제 넘는 말일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영희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싶다.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그런 말들을 듣고 싶었지만 결국은 들을 수 없었음을 알기에 더 안타까웠다. 그 고통 속에서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분명하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결국 지은도 손님들과 비슷한 결말에 다달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과거의 어린 자신을 마주함으로써, 지은은 과거에 괴로워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며, 오늘의 자신을 바라봐주는 해인을 만날 수 있던 것이다.
지은처럼 타인을 먼저 위하는 것도 좋지만,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 나 자신을 먼저 돌보고 아끼는 게 우선이지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단순히 내가 바랐던 것은,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결국은 자신을 위해, 스스로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라도, 그것이 그들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 되기를, 그들이 스스로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지워야 할 기억들을 지울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그들의 삶을 조금 더 가볍고 자유롭게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