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름을 이해하는 연습 >
흥미로운 책 제목과 더불어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은 남자들은 화성에서 왔고, 여자들은 금성에서 왔다고 상상하며 시작된다.
서로 다른 행성에서 왔기에 서로의 차이점들이 있고 그들은 서로 충돌한다.
이성으로 인해 화가 나거나 실망하는 것은 “우리는 상대가 만일 우리를 사랑한다면 그들이 마땅히 이러이러하게 – 자신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행동하고 반응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 행동하리라는 그릇된 믿음을 갖고 있다.” 라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생각해 보면 이성에게만 해당하는 말도 아니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같이 생활하며 화가 나는 경험도 있지 않은가, 이를테면 치약 짜는 방법이 서로 달라 생기는 사소한 충돌도 있다. 어쩌면 각자 다른 환경에서 자랐는데 ‘집’이라는 곳에 모여 살게 되면서 나와 다르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가족과도 차이가 있는데 이성은 어떤가? 화성인들은 “목적을 달성한다는 것은 화성인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유능함을 입증하고 스스로 만족감을 얻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다.”
금성인들은 “남들과 자신의 느낌을 함께 나누는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을 느낀다.”
금성인들이 화성인들에게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면 화성인들은 자신의 전문적인 조언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조언을 해준다. 반면 금성인들은 자신의 문제에 관한 조언이 중점적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상대방이 관심 두고 귀 기울여 들어주는지 중점을 둔다.
나의 경험을 이야기해 보자면 나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하면 아버지는 그에 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신다. 반면 어머니는 먼저 나의 문제로 느꼈을 나의 감정을 공감해 주신다. 이처럼 이성이 서로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을 가까운 가족에게서도 느낄 수 있는데 나의 처지에서 생각한 적이 많았던 지난 과거를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사소한 대화부터 어떤 점이 이성과의 대화가 다른지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이는 고쳐야 할 점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동안 겪었던 경험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대화도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삶에서도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하는 방법을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 책과의 비교 : 다양한 표현 속에서 얻는 즐거움 ]
이문열 삼국지 책을 읽고 난 후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책을 읽어봤다.
같은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느끼고, 느낀 것을 말하는 표현도 다 다른 것처럼 삼국지라는 책도 다양한 표현들을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어떤 삼국지 책에서는 관우가 죄를 짓고 쫓기는 죄인인데 우연히 술집에 들어간다. 그곳에는 유비와 장비가 뜻을 모으는 중이었다.
그렇게 관우가 유비와 장비가 만난다는 표현이 있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에서는 관우는 죄를 짓지도 쫓기는 죄인도 아닌데 장비의 추천으로 유비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표현했다.
이후에 차례로 비교해가며 읽어볼 것이지만 숨은 그림 찾기처럼 책마다 다른 표현들을 찾는 것 또한 재미가 있다.
[ 731부대 : 잊지 말아야 하는 역사 ]
이전에 읽은 731부대에 관한 책이 윤리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책이었다면
이번에 읽은 책은 731부대에 관해 더 자세한 내용과 사진을 담은 책이다.
731부대 외에도 위안부 등 잊어서는 안되는 일제의 만행에 대해서 충격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생체 실험에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과 그 사진들을 보고 충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 731부대에 속해서 생체 실험을 행했던 사람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을까?
[ 당신의 상관이 다른 사람을 해할 것을 명령한다면 이에 따라야 하는가? ]
역사책에서 단 몇 자로 배운 지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 731부대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다.
생체 실험이 행했으며, 각종 실험이 행해지고 난 후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책에서는 ‘상관이 다른 사람을 해할 것을 명령한다면 이에 따라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731부대에 속하고 무고한 사람들에게 생체 실험을 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은 잘못을 모르고, 명령이었기에 따라야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잘못을 알고, 용서를 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을 해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기에 상관이 내린 명령이라고 해도 따라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전쟁 중에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질 때 과연 당신은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고 사람을 해하지 않는다고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가?
명령 불복종으로 혹독한 벌을 받더라도 강력하게 불복종을 행할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여자에게는, 또 공항버스를 포함한 다양한 차량에는 이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21p
“본을 알던 우리는 모두 외과 수술로 몸을 절개하고 그 틈 사이로 보이는 장기를 끄집어내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자동차 충돌 사고라는 도착된 에로티시즘을 인정한다.”
<크래시>라는 소설은 교통사고에 성적인 욕망을 느끼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교통사고’라는 메인 테마를 가진 것 치고 소설은 그닥 박진감있는 진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느리고 선명한 말투로 모든 것을 묘사하는데 이 부분이 특히 읽기 괴롭게 느껴진다. 개그와 호러와 에로티시즘은 서로서로 가까이 맞닿아 있어서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섞이고 뒤바뀌기 마련이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너무 잔인해서 도발적이고 너무 적나라해서 오히려 우습다.
234p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점점 양식화되어서 우리가 유능한 외과 의사나 마술사, 아니면 코미디언 콤비가 된 것 같았다. 이제는 부상당한 희생자를 봐도 두렵거나 불쾌하지 않았다. 이른 오후까지 낀 안개로 사고를 당해 차 옆 풀밭에 앉아서 어이없어하거나 계기판에 찍힌 희생자를 봐도 본과 나는 직업적인 초연함을 느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 일에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이 처음 드러났다.”
이 문장이 다가오기 전까지 나는 망할 책을 현대 사회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은유라느니 하는 그럴듯한 문장으로 포장했다고 생각했다. 문명의 이기는 분명히 우리에게 상처를 남기고 있구나. 그리고 우리는 그런 상처를 알면서도 그 발전이 주는 쾌락에 당연하듯 몸을 맡기고 있구나… 억지스럽긴 했지만 이 책은 마침내 나를 이해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그의 성공적인 비유를 인정하는 것과 책 자체를 인정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일이다. 여전히 불쾌하고 어렵다는 기분을 떨쳐 낼 수가 없다. 우연히 내 눈 앞에 배고프다며 애처롭게 울고 있는 파쇄기가 나타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